한 명은 금융계를, 다른 한 명은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다.두 사람 모두 각자 영역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군림하고 있다.전생에서 역시 그녀와 강지훈은 은밀한 관계를 맺었고, 그 인연으로 강지훈은 그녀 앞 수많은 걸림돌을 치워주었다.이번 생에서... 그녀는 아무도 자신의 앞길을 막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최대한 빨리 해결해요.”송시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랫배를 문지르고는 차에 올라탔다.‘전연우, 장소월과 결혼하면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할 줄 알았어?’‘저번 생에선 장소월 그 쓸모없는 년과 결혼했어도 미친 듯이 싫어했잖아.’‘또 결혼한다고? 사람은 늘 변해. 결국엔 나야말로 너랑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될 거야!’‘서울에서 최강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두 사람을 치마폭에 감싸는 건 어떤 느낌일까?’‘장소월 넌 두 평생을 살아도 절대 알 수 없을 거야.’‘넌 이번 생에서도 처참하게 내 발아래 짓밟히겠지.’차가 떠나간 뒤, 마스크를 한 남자가 빛을 등지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씩 웃으며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는 사람을 향해 다가가 머리에 돌멩이를 내리꽂았다....소민아는 차에는 올라탔지만 엄습해오는 불길함은 감춰지지가 않았다.지금 시간은 새벽 12시 반, 비행기가 뜨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그녀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그때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검은색 차량 몇 대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차 한 대가 그의 왼쪽에서 추월했다. 하여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돌연 오른쪽에서도 차 한 대가 속도를 높여 달려왔다.“제기랄, 이 사람들 뭐 하려는 거야! 죽고 싶은 거야?”소현아는 목베개를 베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전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언니! 이 와중에 잠이 와? 강지훈이 다 쫓아왔다고!”운전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지만 소현아는 잠깐 입술만 뻐금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그는 이미 일찌감치 그들이 도망칠 걸 예상
고요한 밤 흐릿한 달빛 아래. 하늘에서 예고도 없이 돌연 눈이 쏟아졌다. 하얀 눈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렸다.강지훈은 깊이 잠든 소현아를 안아 들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살이 더 붙은 것 같았다.강지훈 주위 다른 여자들은 모두 쭉쭉 빵빵 S 라인 몸매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만은... 돌돌 굴린 눈사람처럼 통통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소현아처럼 자신의 몸매에 신경 쓰지 않는 여자는 종래로 본 적이 없다.머지않은 곳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 차 번호판을 본 순간 소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에서 낯익은 사람이 내렸다.정말 그 사람이다!여기엔 무슨 일로 왔단 말인가?기성은이 자신을 이용했던 일이 떠오른 소민아는 곧바로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기성은이 걸어왔다.“강 소장님.”강지훈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전연우가 보냈어?”기성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대표님께선 소장님과 소씨 가문의 일엔 관여하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왔습니다.”강지훈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 소민아를 데려가려 했던 경호원들도 그녀를 놓아주고 강지훈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살을 엘듯한 찬 바람에 소민아는 몸을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기성은 역시 효율만 중요시하는 냉정한 사람이다. 그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차에 타요.”소민아가 말했다.“쳇, 누가 비서님 차에 앉는대요?”기성은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일기예보에 따르면 두 시간 뒤에 폭설이 내린대요. 현재 비행기도 모두 결항된 상황이고요. 이곳에서 걸어가려면 다섯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길바닥에서 얼어 죽고 싶지 않으면...”“전...”소민아는 운전기사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둘러보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기성은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소민아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 안에 쏙 들어가 안전벨트까지 착용했다.“기 비서님 말씀이 맞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 기회를 놓치게 해서는
기성은이 눈을 내리뜨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여자를 쳐다보다가 다시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선생님, 이 일은 잠시 비밀로 해주세요. 병원 쪽에도 제가 사람을 보낼게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앞으로 치료가 더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세요.”“수고하셨어요”사람들이 떠난 뒤, 기성은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내가 이미 차 불렀으니까 사모님과 먼저 서울에 가 있어요. 그 후 치료는 내가 책임질게요”소민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숙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얘기해주지 않았어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 소씨 가문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내가 말한 대로 해요. 얼마 후 서울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텐데 오늘처럼 운이 좋을지 나도 장담 못 하니까.”“대체 누가 숙모한테 이런 짓을 한 건지 말해주셔야 해요. 또한... 기 비서님이 한 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기성은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성적이지 못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바보 멍청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 같았다.“대체 어떻게 서울대를 졸업한 거예요? 내가 알려준다고 해도 소민아 씨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요?”“이렇게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빨리 짐 싸서 로즈 가든에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기성은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날이 밝기 전 반드시 회사에 돌아가야 한다.그때 마침 명세진의 의식이 돌아왔다.“여... 여기 어디예요?”소민아가 소리쳤다.“숙모! 깨어나셨네요!”“기 비서님?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민아? 현아랑 같이 공항에 간 거 아니었어? 현아는?”“사모님 편히 쉬세요. 전 일이 있어 가보겠습니다.”소민아는 그가 정말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기성은은 집에서 나선 뒤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걸었다.“...네. 송시아 씨가 소씨 가문에 손을 썼습니다. 다음은... 회사일 겁니다.”새벽 한 시 반.서울
사모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도우미들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또 대표님과 싸우는 건가?매번 싸울 때마다 사모님은 분노하며 젓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밥도 먹지 않은 채 위로 올라가 버린다. 사모님이 화가 나면 대표님이 아무리 달래도 무용지물이다.하지만 이제 대표님은 경험이 생겼는지 밥 먹을 때 트러블이 생기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하며 사모님이 화를 다 분출해낼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밥을 먹는다.그녀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듯 전혀 개의치 않은 채 한 손에 금융 신문을 들고 읽으며 다른 한 손으론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그 중간중간에 장소월에게 음식을 집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녀는 전연우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눈에 들어오자 더더욱 화가 치밀어올랐다.“전연우,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내 목소리 안 들려?”전연우는 늘 입던 잠옷 차림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응. 듣고 있어.”“이 치마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 번 입어 볼래?”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최근 약을 복용한 덕분인지 예전보다 감정 기복이 훨씬 줄어들었다.신문은 흑백이라 전연우가 예쁘다고 말하는 원피스는 디자인만 보일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장소월이 그를 흘기며 말했다.“말 좀 돌리지 마!”전연우는 인내심 있게 차근차근 그녀에게 설명했다.“여긴 회사에서 새로 만든 광고 전문 구역이야. 매일 다른 고급 브랜드 여성 의류와 액세서리를 걸어놔. 금융 일보를 챙겨보는 사람은 대부분 경제적 기초가 있는 남성일 테니 광고를 보면 분명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주고 싶을 거야. 또한 매일 올라오는 사진이 여성들의 관심도 끌 테니 앞으로 이 신문의 주문 대상은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겠지.”자신을 칭찬하는 것인지, 남을 칭찬하는 것인지 모를 말이었다.장소월은 컬러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원피스를 쳐다보았다. 500달러나 되는 가격이었다.그 점이 확실히 장소월의 화제를 돌리는 데에 성공했다. 그녀가 신문에 실린 그 옷을
송시아는 아니다...장소월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전연우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그저 일을 그르치기만 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 불과하다.아무 조건 없이 송시아의 의견을 믿을 순 있지만, 장소월의 말이라면 한 구절, 한 글자도 마음에 새기지 않는 사람이다.장소월은 예전 전연우로부터 이런 말까지 들은 적이 있다.“회사 일엔 조금도 끼어들지 마. 너랑 송시아는 비할 바가 못 돼.”...성세 그룹 아침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되었다.“대표님, 정말 그렇게 하실 건가요? 협력 브랜드 회사에선 이미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갑자기 계약을 파기한다면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전연우는 심플한 잠옷 차림이었지만 역시나 평소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사인펜을 돌리며 말했다.“계약 해지하고 계약서에 쓰여 있는 대로 위약금 지불하세요.”“하지만 그 금액이 60억이나 됩니다. 또한 벌써 두 달이 넘게 지나 이제 와 새로운 브랜드 협력사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전연우가 말했다.“협력사는 내 와이프가 이미 생각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상대방이 어떤 요구를 제기하든 일단 만족시켜줘요. 나머지 세세한 부분은 나중에 보충하고요. 오늘 안에 계약서 작성해서 나한테 보내요.”“회의 끝.”고위급 인사들이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로그아웃했다.기획부 임원 한 명이 나가지 않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런 질문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말해요.”“브랜드 의류의 컬러와 가격 문제는 예전에 이미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왜 오늘에야 생각을 바꾸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미우미우는 대중성도 높고 모두가 인정하는 고급 브랜드입니다. 그들과 손을 잡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아직 나가지 않은 임원들은 모두 기획팀 팀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용감함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확실히 그렇다. 이는 별로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이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임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떴다. 그때 바깥에서 한동안 기다리고 있던 소피아가 품에 가득 서류를 안고 다급히 들어와 말했다.“기 비서님, 송 부대표님께서 저희에게 분기 보고서를 비롯한 수많은 서류들을 요구하셨습니다. 아직은 무엇을 하려는지 저희도 모릅니다.”기성은은 태연한 얼굴로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회의실을 나섰다. 소민아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나서자 소피아는 그녀를 휙 밀어내고 득의양양하고도 오만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소피아가 기성은과 함께 일을 해결하러 나간 뒤, 소민아는 원래 기성은과 함께 썼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소유로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물건은 임시 책상 위로 옮겨져 있었다. 얼마 후, 소피아가 안에서 걸어 나와 소민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소민아 씨... 대표님께서 소민아 씨는 곧 회사를 떠나야 하니 남은 일을 저한테 넘겨주라고 하셨어요. 한 달 뒤 인사팀 쪽에서 사인하고 나면 떠날 수 있어요.”소피아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참, 원래 쓰던 책상 깨끗이 정리하고 다른 사무실에 빈 책상이 있는지 알아봐요. 한 달 밖에 안 남았으니까 임시로 앉아 일하면 되잖아요.”소민아가 말했다.“알겠어요. 치워놓을게요.”소피아는 기성은이 분부한 일을 처리하려 밖으로 나갔다. 소민아가 몰래 사무실 안을 살펴보니 기성은은 여전히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기성은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들어와요.”소민아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기 비서님, 제 물건 정리하러 왔습니다.”“그래요. 다 정리하고 나갈 때 잊지 말고 문 닫아요.”소민아가 입을 삐죽거렸다.“아, 네.”얼마 후, 기성은은 전화를 받고 자리를 떴다.소민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물건을 박스에 넣었다.“감정도 없는 냉혈한 같으니라고.”기성은은 듣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까지 갔을 때 마침 기다리고 있는 송시아와 마주쳤다.“기 비서님, 오랜만이에요. 전에
“됐어요.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타요.”소민아는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녀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부대표님,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요?”“전엔 다른 바쁜 일이 있어 민아 씨를 기 비서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기 비서가 힘들게 하진 않았죠?”“힘들다 뿐이겠어요. 사람다운 생활도 할 수 없게 쥐어짜냈어요. 부대표님, 제 다크서클 좀 보세요. 연속 며칠 동안 밤새 일한 것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예요.”송시아가 말했다.“너무 힘들었겠네요. 이만 집에 들어가 쉬세요. 기 비서한텐 내가 말해줄게요.”송시아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소민아는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아니에요. 부대표님, 집에 일이 생겨서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그만둘 거예요.”송시아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 내가 도와줄까요?”“괜찮아요. 큰일 아니니까 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민아의 얼굴엔 괴로움이 가득했다.송시아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한정판 가방에서 은행카드 한 장을 꺼냈다.“처음부터 내 비서였던 민아 씨가 힘들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죠. 이 돈 가져가서 마음껏 써요. 부족하면 얘기하고요.”소민아는 예의를 차리며 거절했다.“말씀은 고맙지만 전 이 돈 받지 못합니다.”송시아가 말했다.“받지 못할 게 뭐가 있어요. 대신 내일부터 내 사무실에 출근해요. 마침 나도 비서가 한 명 필요하던 참이었거든요.”소민아는 결국 돈을 받고 송시아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송시아가 전연우의 일정을 묻자 소민아는 별다른 생각 없이 일정표를 그녀에게 보내주었다.소민아는 차에서 내린 뒤 떠나가는 송시아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곧바로 기성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원 별장으로 향하던 기성은이 이어폰을 귀에 가져갔다.“무슨 일이에요? 말해요.”“송시아 씨가 절 찾아와 고모 상황을 물었어요.”기성은이 말했다.“목소리 들어보니까 기분 좋은가 보네요?”소민아는 손에
“아가씨, 이건 저희 가게에서 가장 비싼 웨딩드레스입니다. 한 벌밖에 없는 디자인이기도 하고요. 위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 모두 한 땀 한 땀 손으로 박아넣은 겁니다. 적잖은 부잣집 아가씨들이 와서 입어 보았지만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은 송시아 씨가 처음입니다. 정 마음에 안 들면 이틀 뒤 신상 웨딩드레스가 도착하니 그때 다시 와보세요. 저희가 직접 가지고 가도 됩니다.”송시아는 시큰둥한 얼굴로 한 곳을 가리켰다.“저 디자인 마음에 드네요.”종업원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아, 저건...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 드레스는...”“아니, 아가씨...”종업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송시아는 성큼 걸어 나갔다. 종업원은 깜짝 놀라며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두 방은 벽 하나만 사이에 두고 있었다.돌연 들려온 인기척에 장소월은 고개를 들었다. 화장대 거울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송시아가 비쳤다. 장소월은 순간 전생에서의 송시아가 떠올라 화들짝 놀랐다. 그때에도 그녀는 똑같은 디자인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갔었다.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완벽한 한 쌍의 부부의 모습으로 말이다.“당신 누구예요?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송시아는 바로 팔을 들어올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뺨을 내리쳤다.“네가 뭔데 내 앞길을 막아!”“장소월 씨, 우리... 오랜만에 만나네요.”그녀의 등장에도 장소월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당황스러움은 감추지 못하고 다리에 올려놓은 손을 꽉 말아쥐었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장소월에게로 향했다.송시아의 기세에 눌려 아무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송시아는 장소월에게 다가가 거울 속 그녀를 보며 말했다.“소월 씨, 웨딩드레스 입어 보러 왔어요? 하지만... 이 드레스 난 왜 이렇게 낯이 익은 거죠? 아! 깜빡할 뻔했네요. 이 드레스는 연우 씨가...”말을 하다가 멈춘 그녀는 어깨를 위로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