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장소월의 눈엔 오히려 송시아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일부러 그녀를 도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순간 송시아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두 번째 삶이 주어졌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일편단심 전연우를 사랑하고 있다.하지만 이번엔 장소월은 더는 물러서거나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그녀와 똑바로 눈을 맞추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마침 전연우도 여기에 있으니 차라리 나가서 직접 묻는 게 어때요?”“지금은... 내가 전연우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전연우가 날 놓지 못하는 거예요!”“짝사랑이 힘들다는 거 나도 알아요. 때문에 갑자기 이렇게 날 찾아와도 이해할 수 있어요!”“하지만 송시아 씨가 일부러 날 도발하는 건 참을 수가 없네요.”“정신병을 부리고 싶으면 전연우한테 가세요!”장소월의 그 말을 들은 종업원들이 중얼거렸다.“뭐라고? 설마요. 비서부터 시작해 부대표 자리까지 꿰찼으면 됐지, 내연녀까지 되려고 하다니요.”“그러니까요!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예전 신문이나 TV에서 볼 때는 엄청 독립적인 커리어우먼인 줄 알았는데 다 연기였네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남의 남자를 빼앗는 내연녀예요! 정말 역겨워요! 대표님이 사모님과 함께 결혼사진 찍으러 왔는데 이런 난동을 피우다니요.”그 말들은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송시아의 귀에 꽂혔다. 순간 그녀의 얼굴이 깊게 일그러졌다.“다들 입 다물어!”“장소월 씨!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그 오만함도 얼마 가지 못할 거예요. 분명 머지않아 내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울며불며 애원하게 될 거예요!”송시아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방에서 나갔다.송시아에게 서비스하던 종업원은 장소월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워 다급히 연이어 사과했다. 송시아가 나간 이후엔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장소월의 꽉 쥐었던 주먹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마음을 짓누르던 거대한 돌멩이를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때 촬영사 조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사모
기성은이 전화를 끊자마자 장소월이 그를 확 밀치고 나갔다.“당신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아가씨!”기성은은 손에 반지를 들고 있어 돌연 나가는 그녀를 막지 못했다. 장소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전연우는 그녀를 쫓아 나온 뒤 별이를 경호원에게 넘겨주었다.“장소월은?”기성은이 말했다.“이미 나가셨습니다.”겨우 잡은 촬영 일정이 망가져 버렸다.전연우가 돌아왔을 때, 다행히 장소월도 남원 별장에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엔 불과 몇 분 밖에 차이나지 않았다.전연우가 차에서 내리자 경호원은 그와 함께 들어가 아이를 도우미에게 넘겨주었다.은경애는 연이어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오늘 두 분 웨딩 사진 찍으러 간 거 아닌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거지?’전연우가 물었다.“소월이는요?”은경애가 대답했다.“사모님은 위층에 올라가셨어요.”전연우도 위로 올라가 침실 문을 열었다. 날아온 건 베개가 아니라 화장대에 놓여있던 꽃병이었다. 그 꽃병은 저번 전연우가 자선 파티에 갔을 때 경매로 사 온 헤아릴 수 없는 값어치의 물건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 침실 안 가구와 장식품은 모두 직접 주문 제작한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었다.정면으로 꽃병을 맞은 전연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실크 잠옷을 줍고는 툭툭 털어 한쪽에 걸어놓았다.“아직도 송시아의 도발에 넘어가는 거야? 소월아... 대체 언제 좀 영리해질래.”장소월은 눈을 감고 애써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다리 위에 올려놓은 손은 얼마나 힘주어 말아쥐었는지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 고통은 온몸을 집어삼킬 듯한 심장의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송시아 외국으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언제 또 돌아온 거야?”전연우는 그녀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꽉 쥔 주먹을 풀어주고는 깊은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장소월의 내리뜨린 눈동자에서 그에
만약 정말 송시아를 싫어한다면, 지금 전연우의 권력으로 어떻게 손 놓고 당하기만 할 수 있겠는가. 분명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기에 마음대로 하도록 놔두는 것이다.드디어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는 절대 송시아가 소원을 이루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와 결혼하지 않을 테니까!마음속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드디어 해소되는 것 같았다.전연우의 그 가증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으니 너무 역겨워 토사물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그와 송시아는 역시 하늘이 내려준 한 쌍의 커플이다!“송시아가 돌아온 건... 나와...”장소월이 평온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었다.“전연우!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난 질투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야. 내가 왜 질투를 하겠어! 난 다만 송시아가 매번 날 도발하는 게 짜증 날 뿐이야! 아무 이유 없이 욕설을 듣고 화가 안 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 더는 하지 마. 아무 의미도 없잖아. 듣는 것도 질려.”장소월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신발을 신은 뒤 그의 옆을 지나갔다. 전연우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마음대로 생각하지 마. 송시아를 옆에 두는 건 단지 그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야.”“성세 그룹에 그 여자 지분도 있어. 때문에 내 뜻대로 강제로 내보낼 수도 없어!”“송시아가 성세 그룹의 목숨줄을...”장소월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럼 잘됐네. 난 네가 망했으면 좋겠어. 성세 그룹이 무너지고 길바닥 거지 신세가 되는 천벌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장소월이 작업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그림판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이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 핸드폰은 전연우가 선물한 것이다. 핸드폰 속 데이터도 모두 마음대로 이동시켰었다. 다행히 핸드폰엔 자주 쓰는 메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연락처엔 전화번호 하나만 저장되어 있었다.영원히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단 하나의 전화번호다.낡은 핸드폰은 다행히 아
장소월이 답장을 마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보도 기사 하나가 튀어나왔다.소씨 가문 사모님이 병원으로 향하던 도중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이송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차량이 칠십 퍼센트나 훼손된 큰 사고였다.후속 기사도 계속 보도될 것이라 한다!소씨 가문?장소월은 사진을 확대해 차 번호판을 확인한 순간 머리 안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그녀는 다급히 소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 시도했음에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장소월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일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낸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송시아나 전연우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그녀는 반드시 전연우를 찾아가 따져 물어야 했다.장소월은 문고리를 잡은 순간 멈춰 섰다. 그녀의 이성이 무슨 일이나 그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여 그녀는 소민아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어쩌면... 그녀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통화는 빠르게 연결되었다.“소월 언니!”“기사 봤어요. 사고 어떻게 된 거예요?”성세 그룹 기성은의 사무실 안, 소민아는 전화를 받으며 기성은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자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었다.“소월 언니, 숙모가 차 사고를 당했어요. 하지만 생명에 위험은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치료받고 계세요.”장소월이 또 물었다.“현아는요?”“언니는... 언니는 잘 지내고 있어요!”간단한 몇 마디 대화를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장소월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끊은 뒤, 소민아가 기성은에게 말했다.“기 비서님, 소월 언니한테 숨기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알면 분명 화낼 거예요.”기성은이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괜찮아요. 알려줘도 아가씨가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민아 씨는 내 말대로만 하면 돼요. 그리고 그 입 간수 좀 잘하고요.”그 경고의
장소월은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어 그녀에게 주시윤과 박원근으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스튜디오에서 올해 마지막 회의를 진행하고 회식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다.장소월이 포함되어있는 그룹 채팅방에서 다들 열정적으로 그녀를 초청하고 있었다.“소월 선배님, 꼭 오셔야 해요!”“맞아요! 저번엔 너무 급하게 가셔서 제대로 된 대화도 못 해봤잖아요.”채팅방이 너무 시끄러워 그녀는 알림을 끄고 박원근에게 문자를 보냈다.[최대한 갈게요.]장소월이 맡은 작업량이 많기 때문에 다들 그녀의 그림을 기다리고 있어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겨울의 밤은 늘 꽤나 긴 편이다. 장소월은 완성된 결과물을 의뢰인에게 보내고 문제없다는 확답을 받았다.그 후 작업실에도 보내주려 했으나 오늘 밤 회식한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안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혹시 또 야근을 할지도 모르니...날이 어두워지자 장소월은 자리에서 일어나 뻐근해진 목을 주물렀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사모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장소월이 문을 열어보니 도우미가 서 있었다.“괜찮아요. 저 오늘은 밖에서 먹을 거예요.”도우미가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대표님께서 오늘 밤 회사 파티엔 안 오셔도 되지만 밖엔 나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전에 대표님에게 허락을 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 사모님, 약 드시는 것도 잊지 마세요.”송시아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웨딩 사진 일정도 망가뜨렸고, 회사 연말 파티에도 참석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장소월은 짜증 나는 도우미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침실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차를 불렀다.아이보리색 니트 상의에 아래엔 몸매가 드러나는 검은색 치마를 입고 긴 머리는 위로 자연스럽게 묶었다. 대충 꾸며도 정교하게 치장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손목엔 붉은색 수건을 걸고 가방을 들었다.“사모님, 정말 나가시려고요?”“하지만 대표님께서 오늘 나가지 마시라고 했는데..
천하 일성.야간 업소 룸 밖, 전연우는 전화를 끊었다. 장소월이 또 이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남원 별장을 뛰쳐나갈 거라는 예상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그는 기성은에게 그녀를 찾아보라고 분부한 뒤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 송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과학 회사 대표와 사업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가 돌아오자 그녀는 상 밑에서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남자의 몸에 가져가며 도발했다.“부대표, 먼저 마시고 있어. 난 화장실 다녀올게.”그가 나가자 송시아는 뒤를 따라나섰다. 이어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웨딩 사진은 못 찍었지만 대신... 6조짜리 계약은 성사됐어요. 연우 씨... 이번엔 나한테 감사해야 하지 않아요?”“말해. 네가 원하는 게 뭐야?”전연우가 차 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송시아는 몸을 일으키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연우 씨도 알고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연우 씨 와이프 자리라는 걸. 지금은 장소월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해 줄 거예요. 이번 6조는 그저 시작일 뿐이에요...”“언젠간 분명 나야말로 당신 아내 자리에 가장 잘 아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연우 씨... 이 세상에 나보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 둘은 똑같이 이익이 무엇보다 우선인 사업가잖아요...”“이제 나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기다릴게요...”‘전연우, 넌 수차례 장소월을 사랑한다고 나한테 증명해 보이긴 했어... 하지만 결국 계약서 한 장에 녹아버렸잖아!’‘난 너와 장소월의 웨딩 사진을 망쳐버렸어. 하지만 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날 어떻게 하지 못하겠지.’‘6조... 전연우, 난 너에 대해 너무 잘 알아... 장소월에게 아무리 감정이 깊다고 해도 종이 위 이 차가운 숫자엔 비하지 못할 거야.’닫지 않은 룸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종업원이 대답했다.“아가씨, 죄송합니다. 맞은 편 룸에서 손님들이 회식을 하고 있는데 제가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드릴게요.”바로
장소월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농담이에요.”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후배님이 이제 농담하는 것까지 배웠다니.하지만 그때, 장소월의 미소가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머지않은 곳 코너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박원근과 주시윤도 깜짝 놀라며 장소월을 쳐다보았다.박원근이 재빨리 반응하고는 말했다.“전... 전 대표님, 송 부대표님!”레드 드레스를 입고 검은색 정장을 어깨에 걸친 채 걸어온 송시아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소월 씨? 여기에 온다는 말 왜 안 했어요? 했으면 나랑 연우 씨가 데리러 갔을 텐데.”“연우 씨도 참! 같이 좀 오지 그랬어요.”장소월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이어 그녀는 그들을 무시해버리고 걸어가 문을 열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정말 역겹다.박원근과 주시윤도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주시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소월아, 저 사람 네 오빠 아니야? 얼마 전에 너랑 저 사람이 결혼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진짜야?”박원근이 주시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장소월은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루머예요. 어떤 집 오빠가 자기 여동생과 결혼하겠어요?”주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저번 그들이 귀국해 전시회를 열었을 때, 성세 그룹 대표가 직접 장소월은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했으니 아마 결혼 기사는 거짓일 것이다.그 말은 룸 밖 사람들의 귀에도 똑똑히 들려왔다.전연우가 팔짱을 끼고 있던 송시아의 손을 뿌리쳤지만 그녀는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복수를 했다는 쾌감까지 들었다.장소월의 기분 한 번 잡치게 만든 것과 6조짜리 계약을 맞바꾼 것, 전혀 아깝지 않았다.하지만 장소월은 그들이 뭘 하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차라리 송시아와 전연우 두 사람을 애초부터 알지 못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룸 안 뜨거운 분위기는 장소월로 하여금 빠르게 머릿속 잡념을 떨쳐내
“4억 원짜리 와인이라고? 난 전 재산 더 털어도 4억 원 안 되는데... 어떻게 이런 비싼 와인을 마실 수가 있어!”“맞아, 맞아! 이게 다 소월 누나 덕분이지.”“와, 소월 언니, 오빠분도 여기에 계셨던 거예요? 아니면... 우리 오빠분과 같이 식사할까요? 저흰 성세 그룹 대표님을 유명한 인물을 담는 잡지에서만 봤지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어요.”“그러니까요. 소월 언니... 그분 만나게 해주면 안 돼요?”“난 그 사람과 안 친해.”장소월의 냉담한 그 한 마디가 사람들의 입을 단번에 다물게 만들었다.장소월은 다시 케이크를 자르기 시작했고, 주시윤과 박원근이 옆에서 그녀를 도왔다.박원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열심히 케이크를 자르는 그녀의 정교한 옆모습에 닿았다. 귀 옆으로 흘러내려 온 머리카락을 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귀 뒤로 넘겨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백옥같이 하얗고 투명한 그녀의 피부는 잠시만 봐도 사람을 깊게 매료되게 만들었다.장소월은 칼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박원근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다 잘랐어요. 나눠주세요!”“그리고... 이 술 돌려보내 주세요! 우리도 술은 충분히 주문했으니 남의 것은 필요 없잖아요!”오늘 비싼 술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잔뜩 들떠있던 작업실 직원들은 그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꾹 닫았다.종업원이 난처함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이건 전 대표님께서 특별히 분부하신 겁니다. 또한... 오늘 이 룸에서 소비하신 것 모두 그분이 계산하시겠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 없으십니다.”이 술을 팔기만 하면 그녀 역시 적지 않은 보너스를 받게 된다.장소월은 박원근이 건네준 휴지로 손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주며 다시 한번 예의 있게 거절했다.“그 사람의 호의 필요 없어요. 이 술은 너무 비싸 저희들에겐 과분하다고 전해주세요.”“그리고... 그 사람이 낸 돈 모두 돌려주세요. 그 정도는 저희도 낼 수 있어요. 고마워요!”“하지만...”종업원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