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대표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긴 생머리에 정장 치마를 입은 25세 정도의 여자가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기... 기 비서님... 커피...”기성은이 이마를 찌푸렸다.“거기 놔요.”이름은 소피아, 소민아가 떠난 뒤 잠시 고용한 기성은의 새 비서였다. 소피아가 불안하게 커피를 내려놓았다.“기 비서님, 다른 시키실 것 있으세요? 없으면 서류 프린트할 게 남아서 가보겠습니다.”기성은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그래요. 가봐요.”기성은은 대표님을 제외하면 가장 대면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심지어 고위급 인사들까지도 그의 낯빛을 살펴야 할 정도였다.일하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착오라도 생길 시엔 반죽음으로 욕설을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바로 해고될지도 모른다.여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을 나서는 그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기성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민아 씨 아직도 연락 안 돼요?”“기 비서님께서 소민아 씨를 출장 보내신 거 아닌가요? 저희도 오랫동안 소민아 씨 보지 못했어요. 전화해도 연결되지 않더라고요.”“그래요. 알겠어요.”사무실 문이 닫힌 뒤, 기성은은 사인펜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대표님과 약속을 잡은 몇몇 다른 회사 대표, 그리고 사무적으로 연결된 임원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만 가득했다. 소민아와 나눈 메시지는 며칠 전에 멈춰있었다.기성은은 일을 함에 있어 효율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소민아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그녀가 맡았던 일들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그는 다시 문자를 작성해 그녀에게 보냈다.[두 시간 안에 회사로 와요. 아니면 다시는 성세 그룹에 발 들일 생각하지 말아요.]멀고 먼 곳에서 소민아는 선글라스를 걸고 선텐하며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돌연 도착한 기성은의 문자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그의 연락처를 악마라고 저장해 놓았다.문자 내용을 본 순간 피식 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뻔뻔한 인간 같으니라고. 해고하려면 하라지. 내가 무서워할 줄 알
소민아 역시 강지훈이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흉악했으니 말이다.그럼에도 소민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들 앞을 막아 나섰다.“경... 경고하는데 또 우리 언니 때릴 생각하지 말아요.”엄마의 등 뒤에 서 있던 소현아가 저도 모르게 소민아를 칭찬했다.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민아는 정말 대단해.”강지훈은 소현아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강지훈은 날카롭게 이마를 찌푸리며 소현아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현아야, 이쪽으로 와!”소현아는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다가 급기야 울음까지 터뜨렸다.“난 가기 싫어요. 당신은 나쁜 사람이잖아요. 엄마한테도 말했어요. 당신은 많고 많은 여자들과 아이를 낳았다고요. 엄마가 다시는 당신과 놀지 말래요. 소월이도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했어요. 다시는 당신 보고 싶지 않아요!”저번 강지훈에게 맞은 뒤 이마에 커다란 혹까지 튀어나왔다.그는 노원우처럼 나쁜 사람이다.말을 마친 뒤, 소현아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형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강지훈은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겨우 그녀를 찾아냈다. 서울에서부터 강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건 결코 그런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명세진이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선생님, 제가 이렇게 무릎 꿇고 빌게요. 제발 제 딸을 놔주세요. 머리에 문제가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입니다. 제발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현아만 아니면 원하시는 것 모두 드리겠습니다.”소민아가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하지만 강지훈은 강압적으로 소리쳤다.“난 소현아를 데려가고 싶어. 아무도 못 막아.”“오늘 이 집안을 불태워버리는 한이 있더라고 소현아는 데려가야겠어.”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소장님.”한 무리의 남자들이 다짜고짜 문을 박차고 들어오자 소민아가 야구방망이를 쳐들었다.“내가 있는 한 절대 언니 데려갈 수 없어요!”하지만 1초도 채 되지 않아 소민아는 바
강지훈의 부하들이 올라가고 몇 초 뒤, 소현아의 비명소리가 무언가 깨지고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연이어 울려 퍼졌다.소현아가 조심하지 않아 방 안의 꽃병을 깨뜨린 것이다. 안에 꽂혀 있던 꽃들은 전에 장소월이 병문안을 왔을 때 선물해준 것이었다.지금까지 마르지 않도록 정성껏 가꿔왔던 꽃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소현아는 처참히 꺾여버린 장미꽃을 손에 들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경호원은 그 틈을 타 소현아를 안고 아래로 내려갔다.소현아는 그 시간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살려주세요! 민아야... 얼른 경찰 아저씨 불러...”“나 당신들 신고할 거예요. 흑흑흑... 내 꽃을 짓밟았어.”소민아는 어이가 없었다.“언니! 지금 상황에 꽃이 대수야?”소현아는 아래층에 내려가 강지훈을 본 순간 꽃이 망가졌던 일은 완전히 잊어버렸다.“나쁜 놈... 민아야... 나 살려줘! 나 저 나쁜 놈 보고 싶지 않단 말이야.”명세진은 자신의 딸이 잡혀가는 걸 막으려 한 걸음 앞으로 나섰으나 이내 경호원에게 밀쳐져 쓰러져버렸다.소현아가 울부짖었다.“엄마... 우리 엄마 밀지 말아요... 흑흑흑...”소현아가 강제로 강지훈의 앞에 놓였다. 그녀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엄마한테 가려고 발을 내디뎠다.“어디 가려고!”강지훈이 차갑게 소리치며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소현아는 몸을 돌려 나쁜 놈을 확 밀치고는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다.“이 나쁜 놈, 우리 엄마 밀면 안 돼요! 난 당신이 미치도록 싫다고요! 어서 내 집에서 나가요. 얼굴도 보기 싫어요!”강지훈은 그녀에게 밀렸음에도 전혀 아프지도, 심지어 가렵지도 않았다. 그저 육중한 산처럼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다만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미간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 얼굴을 보니 정말 공포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당신이에요. 아니... 소월이 오빠와 똑같이 싫어요.”소현아는 울먹거리며 명세진에게 달
강지훈의 차가운 눈동자가 소민아에게로 향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치료 가능해?”소민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생겼던 병의 뿌리가 아직 남아있는 데다 저번 강지훈 씨로부터 충격까지 받아 심리적인 병까지 가중되었다고 해요. 예전처럼 회복하려면 천천히 머리부터 치료해야 해요. 하지만 십 년이 넘게 약을 먹었어도 치료하지 못했어요. 더욱이 강도 높은 충격까지 받았으니 언제 괜찮아질지 아무도 장담 못 해요.”“치료하지 못하는 병은 없어. 하루 줄 테니까 물건 챙겨서 내일 서울로 와. 아니면 모든 후과 책임져야 할 거야.”강지훈의 시선이 소현아를 스쳐 지나갔다.그가 문을 나선 뒤에야 소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차에 돌아간 뒤 강지훈은 옷소매를 거두고 팔을 살펴보았다. 옷엔 침 자국이 흥건했고 팔엔 깊은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부관이 백미러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장님의 팔에선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소장님이 이렇게까지 여자를 참아주는 건 처음 봅니다.”다른 여자였다면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강지훈은 옷을 내려 상처를 감추고는 말했다.“운전에나 신경 써.”소씨 가문 본가에 돌아오면 평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서울만 벗어난다고 하여 되는 게 아니었다. 이제 와 또다시 돌아가야 한다니.소민아는 얼른 의약 상자를 열어 명세진에게 연고를 발라주었다.소현아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작은 입술로 중얼거렸다.“엄마, 제가 호 불어줄게요. 그럼 안 아플 거예요.”명세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현아야, 엄마는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가엾은 그녀의 딸은 어렸을 때부터 얌전하고 착해 다른 아이를 건드리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대체 그들 소씨 가문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에게 찍혔단 말인가.서울을 떠나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강지훈이 이곳까지 찾아왔다.“현아야, 엄마한테 물 떠다 줄래?
소민아가 물었다.“전부 저축이라고요? 이걸 다 저희한테 주시면 두 분은 어떻게 하시려고요?”명세진이 말했다.“나와 네 삼촌은 일이 이렇게까지 되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어. 너와 현아가 떠나 이 돈으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만 있다면 우리에겐 더 바라는 것 없어.”소민아는 가슴이 저릿해졌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숙모...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저희 소월 언니한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요? 소월 언니가 강지훈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성세 그룹 대표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분은 소월 언니의 오빠니까 틀림없이 저희들을 도와줄 거예요.”“민아야... 소월 아가씨는 이미 우리한테 많이 도와줘서. 이번엔 상황이 달라. 더는 아가씨에게 기대선 안 돼,”소현아가 물을 들고 둔탁하게 걸어왔다.“엄마, 물 마시세요. 엄마... 조금 전 실수로 컵을 깨뜨렸어요. 하지만 현아가 이미 깨끗이 청소했어요.”명세진은 걱정이 가득 실린 얼굴로 마지막으로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우리 현아 잘했네.”“민아야, 얼른 가서 짐 챙겨. 오늘 밤 비행기표 끊어서 출발해야지.”소민아가 몸을 일으켰다.“네. 지금 갈게요.”소현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명세진이 말했다.“현아야, 너 친구 만나러 해외에 나가고 싶다고 했잖아? 민아가 그 친구 찾았대. 곧 만날 수 있을 거야.”소현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반짝거렸다.“정말요?”명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환하게 웃는 그녀의 두 볼에 보조개가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그럼 바로 가서 준비할게요. 맛있는 것도 챙겨가야겠어요.”명세진은 신나게 위층으로 올라가는 소현아의 뒷모습을 아프게 바라보았다.“현아야... 엄마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명세진은 주방에 들어가 직접 저녁상을 차렸다.소현아는 털이 보송보송한 하얀색 모자를 쓰고 천진난만하게 웃음 짓고 있었다. 명세진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껴안았다.“우리 현아는 어디에 가든 행복하게 잘 살
한 명은 금융계를, 다른 한 명은 정치계를 주름잡고 있다.두 사람 모두 각자 영역의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군림하고 있다.전생에서 역시 그녀와 강지훈은 은밀한 관계를 맺었고, 그 인연으로 강지훈은 그녀 앞 수많은 걸림돌을 치워주었다.이번 생에서... 그녀는 아무도 자신의 앞길을 막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최대한 빨리 해결해요.”송시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랫배를 문지르고는 차에 올라탔다.‘전연우, 장소월과 결혼하면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할 줄 알았어?’‘저번 생에선 장소월 그 쓸모없는 년과 결혼했어도 미친 듯이 싫어했잖아.’‘또 결혼한다고? 사람은 늘 변해. 결국엔 나야말로 너랑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될 거야!’‘서울에서 최강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두 사람을 치마폭에 감싸는 건 어떤 느낌일까?’‘장소월 넌 두 평생을 살아도 절대 알 수 없을 거야.’‘넌 이번 생에서도 처참하게 내 발아래 짓밟히겠지.’차가 떠나간 뒤, 마스크를 한 남자가 빛을 등지고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씩 웃으며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는 사람을 향해 다가가 머리에 돌멩이를 내리꽂았다....소민아는 차에는 올라탔지만 엄습해오는 불길함은 감춰지지가 않았다.지금 시간은 새벽 12시 반, 비행기가 뜨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그녀에겐 충분한 시간이었다.그때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검은색 차량 몇 대가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어 차 한 대가 그의 왼쪽에서 추월했다. 하여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돌연 오른쪽에서도 차 한 대가 속도를 높여 달려왔다.“제기랄, 이 사람들 뭐 하려는 거야! 죽고 싶은 거야?”소현아는 목베개를 베고 꿀잠을 자고 있었다. 전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민아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언니! 이 와중에 잠이 와? 강지훈이 다 쫓아왔다고!”운전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몸이 앞으로 기울여졌지만 소현아는 잠깐 입술만 뻐금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그는 이미 일찌감치 그들이 도망칠 걸 예상
고요한 밤 흐릿한 달빛 아래. 하늘에서 예고도 없이 돌연 눈이 쏟아졌다. 하얀 눈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녹아내렸다.강지훈은 깊이 잠든 소현아를 안아 들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살이 더 붙은 것 같았다.강지훈 주위 다른 여자들은 모두 쭉쭉 빵빵 S 라인 몸매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만은... 돌돌 굴린 눈사람처럼 통통하기 그지없었다.그는 소현아처럼 자신의 몸매에 신경 쓰지 않는 여자는 종래로 본 적이 없다.머지않은 곳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 차 번호판을 본 순간 소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차에서 낯익은 사람이 내렸다.정말 그 사람이다!여기엔 무슨 일로 왔단 말인가?기성은이 자신을 이용했던 일이 떠오른 소민아는 곧바로 못 본 척 고개를 숙였다.기성은이 걸어왔다.“강 소장님.”강지훈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전연우가 보냈어?”기성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대표님께선 소장님과 소씨 가문의 일엔 관여하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오늘은 다른 일 때문에 왔습니다.”강지훈이 그의 옆을 지나가자 소민아를 데려가려 했던 경호원들도 그녀를 놓아주고 강지훈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떴다.살을 엘듯한 찬 바람에 소민아는 몸을 감싸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기성은 역시 효율만 중요시하는 냉정한 사람이다. 그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차에 타요.”소민아가 말했다.“쳇, 누가 비서님 차에 앉는대요?”기성은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일기예보에 따르면 두 시간 뒤에 폭설이 내린대요. 현재 비행기도 모두 결항된 상황이고요. 이곳에서 걸어가려면 다섯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길바닥에서 얼어 죽고 싶지 않으면...”“전...”소민아는 운전기사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둘러보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기성은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소민아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 안에 쏙 들어가 안전벨트까지 착용했다.“기 비서님 말씀이 맞아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그 기회를 놓치게 해서는
기성은이 눈을 내리뜨리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여자를 쳐다보다가 다시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선생님, 이 일은 잠시 비밀로 해주세요. 병원 쪽에도 제가 사람을 보낼게요.”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앞으로 치료가 더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세요.”“수고하셨어요”사람들이 떠난 뒤, 기성은이 덤덤히 입을 열었다.“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내가 이미 차 불렀으니까 사모님과 먼저 서울에 가 있어요. 그 후 치료는 내가 책임질게요”소민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숙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얘기해주지 않았어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 소씨 가문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내가 말한 대로 해요. 얼마 후 서울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텐데 오늘처럼 운이 좋을지 나도 장담 못 하니까.”“대체 누가 숙모한테 이런 짓을 한 건지 말해주셔야 해요. 또한... 기 비서님이 한 건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기성은이 눈썹을 찌푸렸다. 이성적이지 못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바보 멍청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것 같았다.“대체 어떻게 서울대를 졸업한 거예요? 내가 알려준다고 해도 소민아 씨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요?”“이렇게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빨리 짐 싸서 로즈 가든에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기성은이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날이 밝기 전 반드시 회사에 돌아가야 한다.그때 마침 명세진의 의식이 돌아왔다.“여... 여기 어디예요?”소민아가 소리쳤다.“숙모! 깨어나셨네요!”“기 비서님?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민아? 현아랑 같이 공항에 간 거 아니었어? 현아는?”“사모님 편히 쉬세요. 전 일이 있어 가보겠습니다.”소민아는 그가 정말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기성은은 집에서 나선 뒤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걸었다.“...네. 송시아 씨가 소씨 가문에 손을 썼습니다. 다음은... 회사일 겁니다.”새벽 한 시 반.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