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흔들거리는 머리 위 새하얀 천장 아래, 향긋한 향초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 소리에 장소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누군가에 의해 다리가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든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벌거벗은 남자가 그녀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 음침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예쁜아, 모르는 척하지 말고 즐겨. 이 오빠한테 잘 협조하면 400만 원 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약효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아 장소월은 힘없이 침대를 짚고 일어났다.“내... 내 몸에 손대지 마!”절반 밖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을 때 남자가 그녀의 다리를 힘껏 잡아당겨 다시 눕혀버렸다.“창녀 주제에 순진한 척은.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과 뒹굴어놓고선.”다른 한 명의 남자가 가운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다.“일단 놀고 봐야지, 쓸데없는 말 할 시간이 어딨어. 오늘 밤이 지나면 데려다줘야 해. 누님도 우리 둘이 이 여자 좀 건드렸다고 뭐라 하지 않을 거야.”“이리 와봐, 예쁜아.”가격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검은색 고급 세단이 천상인 문 앞에 정차했다.안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문지기가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섰다.“당신들 누구예요? 회원 맞아요?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내가...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온몸에 살기를 번뜩이는 남자를 본 프런트 직원이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전... 전 대표님?”이 나라 하늘 아래 전연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얼마 전까지 모든 신문에 신처럼 도배되었던 사람이 아닌가.어떻게 그를 몰라보겠는가!프런트 직원은 말도 내뱉지 못하고 곧바로 길을 비켜주었다.기성은이 사진 한 장을 꺼냈다.“이 여자 본 적 있어요?”프런트 직원이 겁을 먹고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저희 매니저님한테 물어보세요.”직원이 재빨리 매니저를 불러왔다.매니저는 사진 속 여자를 보자마자 소름이 돋아올랐다. 찾아온 사
매니저가 조명을 켰다.기성은이 빠르게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는 안 계십니다.”매니저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조금 전 이 룸에 서빙했던 종업원에게 물었다.종업원이 말했다.“그 아가씨 룸에서 나간 이후로 어디에 갔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기성은이 서늘한 한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찾아. 모든 룸, 주변 호텔 방까지 전부 하나하나 뒤져. 경찰서에 말해 도시를 봉쇄해서라도 찾아와.”“CCTV도 단 한 곳도 놓쳐선 안 돼.”매니저는 또다시 위협적인 전연우의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너희들 전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천상인이 접대하는 손님은 모두 해성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연우의 말대로 하다간 VIP의 반감을 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해성시가 아무리 전연우의 관할 밖 도시라고 할지라도, 그의 권력이라면 해성시 하나 뒤집어엎는 건 일도 아니다.해성시의 명문 세가, 지하폭력배, 모두 서울의 집권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다.천상인 모든 룸을 샅샅이 뒤졌으나 장소월은 보이지 않았다.불만을 터뜨리던 손님들은 이 소란을 피우는 자가 전연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모두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인 사람도 있었다. 필경 전연우같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니 말이다.하지만 아무도 감히 그의 눈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했다.호텔 방에서 장소월은 두 팔이 남자에게 꽉 눌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원피스 가슴 쪽이 찢겨 새하얀 피부가 바깥으로 드러났다.해성시 바깥에선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한기에 그녀의 정신이 드디어 또렷해졌다.그녀가 남자의 중요 부위를 힘껏 걷어차자 남자는 괴로움에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그 행동이 남자를 더더욱 자극했다. 그가 장소월의 긴 머리를 잡고 거칠게 바닥에서 질질 끌어당기자 그녀는 고통스럽게 몸을 움츠렸다.“더러운 년, 매를 들
이 넓은 남교시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성세 그룹 대표의 와이프를 납치해오다니.그녀와 옷깃이라도 스쳐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죄를 조금이나마 씻기 위해 매니저가 다급히 말했다.“전 대표님, 제가 사모님 위치를 알아내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겠어요?”...살을 에일 듯한 추위 속.펑펑 쏟아지는 눈송이가 장소월의 드러난 어깨에 내려앉았다.장소월은 여기저기 찢긴 옷에 몸에 상처까지 나 있어 마치 미치광이와도 같이 만신창이인 모습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설을 쇠러 집을 향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때 옆에 걸려 있는 거대 스크린에선 연예인들이 찍어둔 설 인사가 방영되고 있었다.차가운 바람이 덮쳐오니 장소월은 얼굴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모든 소지품을 그들에게 빼앗겨버려 몸엔 일 전 한 푼도 없었다.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그녀에겐 이제 돌아갈 집이 없다.장소월은 조금 전 비상구 계단으로 도망치던 도중 발목까지 접질려 절뚝거리며 걸어갔다.그 순간의 장소월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꽃잎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그때, 길 맞은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건장한 몸집의 낯익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깝지 않았던지라 또렷이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그녀가 몸에 남아 있던 마지막 힘까지 소진하고 쓰러지던 그 순간, 강력한 힘이 감도는 팔뚝이 그녀를 지탱했다. 따뜻한 품에 안기는 순간 남자의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너... 너무 추위.”“괜찮아. 곧 따뜻해질 거야.”두꺼운 남자 코트가 장소월의 몸을 꼭 감쌌다.흐릿한 정신의 장소월은 지금 이 순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전연우는 그녀가 또다시 도망이라도 칠까 봐 품에 힘주어 끌어안았다.머지않은 곳 검은색 군용차 안, 강지훈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전연우! 네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이틀 후 남원 별장.기성은이 전연우에게 조사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아가씨를 납치한 놈은 조직적으로 인신매매를 하는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경찰이 철저히 조직을 소탕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가씨가 사람을 다치게 한 일은... 법무팀에서 아가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할 것입니다.”“그 외, 병원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 소월 아가씨의 몸속에서 에틸에테르가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일부러 정신을 잃게 만든 게 분명합니다.”전연우가 쓰러져 있는 그녀를 품에 안고 체온을 측정했다.“이번 일에 발을 담근 사람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고 전해.”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법원 판결이 내려지면 그들은 아마 높은 확률로 중형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기성은이 떠난 뒤.서철용이 마침 시간 맞춰 도착했다.그가 장소월에게 알레르기 치료용 링거를 놓아주었다.“이 추운 날씨에 심리적 자극까지 받았으니 쓰러질 수밖에 없지. 발목은 며칠 쉬면 나을 거고 몸에 돋아난 알레르기도 3, 5일 정도면 완전히 회복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중요한 건 소월 씨가 깨어났을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야.”천만다행으로 그녀는 무사히 돌아왔다.젼연우의 주의력은 온통 장소월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리 말해도 그의 귀엔 들리지 않을 테니 서철용은 다시 입을 닫았다.그가 의약 상자를 들고 나간 뒤, 문밖에서 불안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배은란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철용 씨, 그냥 이곳에 남아서 소월 씨 보살펴 줘. 몸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철용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별일 없을 거야. 열이 좀 나는 것뿐이니까 곧 괜찮아져.”그가 이곳에 남아 장소월의 눈에 띄면, 그녀를 더 괴롭게 만들 것이다..그보단 그녀와 일정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그녀가 필요로 할 때 다시 나타나면 될 것이다.도우미가 서철용의 손에서 의약 상자를 받아 차 트렁크에 넣었다. 그가 우산을 펴 배은란에게 씌
장소월은 전연우의 품에 안겨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토록 만신창이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아래턱에 여드름까지 잔뜩 돋아나 있었으나 수려한 그의 외모엔 전혀 손색이 없었다. 도리어 성숙한 남자 특유의 매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이어 그녀가 시선을 떨구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목에 남아 있는 상처를 쳐다보았다.얼마 후, 전연우가 몸을 움직였다. 잠에서 깼는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감은 채 손을 그녀의 이마에 올려 체온을 체크했다.“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조금 더 자.”부드럽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전연우는 자세를 고쳐잡고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어 허리를 잡고 품 안에 꼭 끌어안고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장소월은 아무런 말 없이 그의 행동에 따랐다.그때, 침실 문이 열리고 별이가 꼬물꼬물 기어들어 왔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커다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리며 옹알이를 했다.별이는 침대 옆까지 기어가 침대 시트를 잡고 벌떡 일어서고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장소월은 무언가 자신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전연우가 고개를 들고 쳐다본 순간 별이는 흥분에 찬 얼굴로 꺄 소리를 지르고는 두 사람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별이는 전연우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침이 흥건한 입술을 장소월의 얼굴로 들이밀었다.“아... 엄... 엄마...”장소월은 힘겹게 침대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더는 잠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내려와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갔다.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가 경악하며 소리쳤다.“악!”“내 얼굴!”바깥에서 전연우가 쏜살같이 뛰어 들어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껴안았다.“괜찮아. 곧 다 나을 거야. 약 잘 챙겨 먹으면 돼.”“정말 괜찮아. 그래도 예뻐.”장소월이 울음을 터뜨렸다.“나... 어떻게 된 거야?”전연우가 차분히 말했다.“그곳 물이 너한테 안 맞았는지 알레르기가 생겼대. 이틀 정도 약 먹으
소리를 들은 은경애는 하던 일을 멈추고 침실로 들어왔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얼른 아이를 안고 옆방으로 피했다.“대표님, 이러시면 안 돼요. 차가운 물로 아가씨 몸을 닦아드려야 해요.”“물 갖고 와요.”전연우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은경애는 곧바로 아이를 내려놓고 차가운 물을 가져왔다.연고는 간지러움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적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장소월에게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손톱에 긁혀 터진 상처에서 통증이 밀려왔다.“이번 일로 내가 너한테 고마워할 거라 생각하지 마.”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면봉으로 그녀의 상처에 꼼꼼히 연고를 발라주었다.“미안해.”“너한테 성질을 부리는 게 아니었어.”장소월은 자신의 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고개 한 번 떨구지 않던 전연우가 사과를 하다니.전연우!오만하기 그지없는 그의 세계에선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 설사 그게 틀린 것일지라도 말이다.하지만 이번엔 그가 장소월을 위해 스스로 그녀에게 허리를 굽혔다.은경애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펴보다가 얼른 자리를 떴다.장소월은 경직된 몸으로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가 두 번의 삶을 살아가며 가장 듣고 싶었던 한 마디였다.지난 기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장소월은 눈시울을 붉히며 힘껏 자신의 손을 빼냈다.“어떤 일은 사과 한마디로 해결되지 않아. 네 보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 멍청이라는 거 알아.”“하지만 지하 끝까지 타락한다고 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아.”“전연우, 난 네가 만든 감옥에 갇혀 사는 인형이 되고 싶지 않아. 난 네가 싫어. 알겠어?”“제발 송시아한테 가서 네 와이프가 되어 달라고 해. 넌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잖아. 내가 사라지고 시간만 지나면 분명 날 잊어버릴 거야.”장소월은 가득 흥분하며 미친 듯이 눈앞 남자에게 쏘아붙였다.전연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머리를 가까이 붙였다.“소월아... 송시아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말했잖아. 내 와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장소월은 전연우에게 꽁꽁 묶인 채 컴퓨터에 정보가 입력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사무소 직원은 혼인 증명 서류를 전연우에게 건넸다.“대표님, 혼인신고 절차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대표님과 장소월 씨는 법적으로 부부입니다. 앞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저희를 찾아오십시오.”장소월은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다니.혼인신고서에 적힌 내용들 상당수가 거짓이었다. “전연우, 이 비겁한 자식! 이건 다 가짜잖아.”“언젠가는 해야 할 결혼이었어.”전연우가 말했다.“너무 좋지 않아? 앞으로... 넌 명실상부 내 아내야.”“소월아, 너 드디어 나만의 여자가 됐어.”장소월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전연우는 그들의 혼인신고를 축하하기 위해 그녀에게 예쁜 원피스까지 선물했다.그는 또 둔탁한 순으로 그녀의 머리를 따주었다. 장소월은 거울로 종래로 이런 일은 해본 적 없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이토록 고도로 집중하는 건 회사 일을 할 때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그가 한 가지 일에 열중할 때마다 발산되는 매력은 항상 그녀를 매료시켰었다.하지만 이번엔...장소월 그녀 역시 이 느낌이 무엇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그가 정말 변한 건가?전연우는 보석이 박힌 머리끈을 찾아 묶어주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색 원피스와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었다.전연우는 자신의 작품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며 씩 웃고는 두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피하며 그가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나 지금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돋아있어. 감염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전연우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 그는 혼인신고 후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프러포즈도, 결혼식도 없다. 하지만 그런 건 전연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목적을 이루는 것이니 말이다.전연우가 그녀의
별이가 장소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바라보니, 별이는 들고 있던 우유를 다 먹고 더 달라는 듯 우유병을 흔들었다.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은경애를 쳐다보았다.은경애가 눈치를 채고 별이를 안자 전연우가 말했다.“저한테 주세요.”은경애는 흠칫 놀라고는 아이를 넘겨주었다.시끄럽게 버둥거리던 아이가 전연우의 무릎에 앉자마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얌전해졌다.은경애는 간식거리를 찾아 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밥 먹어.”전연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장소월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 살을 발라 그녀의 그릇에 놓아주었다.그러고는 선물 상자를 그녀의 눈앞에 밀어주었다.“저녁에 뜯어봐. 내가 준비한 신혼 선물이야.”장소월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식사가 끝나자 가족사진을 찍어줄 사진사가 시간 맞춰 도착했다.장소월은 얼굴에 자라난 붉은 두드러기가 신경 쓰였다.“왜 하필 오늘이야? 시간 바꾸면 안 돼?”전연우가 얼굴을 막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포토샵 기술이면 두드러기 지우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몇 분이면 되니까 다 찍고 나서 약 먹어.”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와 거리를 두었다.“빨리해. 나 어지러워.”사진사는 이미 배경을 설정해 놓았다. 장소월은 옷은 그대로 입고 간단히 메이크업을 받은 뒤 배경 앞 의자에 앉았다.사진사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두 사람의 분위기에 촬영에 박차를 가했다.빠르게 촬영이 끝나고 사진사가 결과물을 장소월에게 건넸다.“사모님, 만족스러운지 봐주실래요?”장소월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도리어 갑자기 몰려온 메슥거림에 가슴팍을 부여잡고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구토했다.모든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이미 이마를 찌푸리고 그녀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1층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장소월이 허리를 굽히고 변기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먹었던 죽까지 모두 토해낸 것 같았다. 전연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