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아가 구영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했대. 알아보니 우리 회사와 계약했던 모델들이라 처리하려고 알아봤는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더라고.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서를 보냈는데도 미동 하나 없어.”“뭐라고요? 현아가 바깥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요? 그렇게 큰일을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소현아 엄마의 초점은 자신의 딸에게 맞춰져 있었다.소정국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당신이 걱정할까 봐 그랬지. 됐어... 이제 자자. 내일 또 회사에 회의가 있어.”엄마는 가슴이 답답했지만 분출할 데가 없어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목욕물 받아놓았어요. 씻고 주무세요.”“다른 할 일 있어?”그녀가 입을 막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내일 현아 먹일 한약을 끓여야겠어요. 한의사 선생님이 중간에 끊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그런 일은 도우미한테 시켜.”“현아에 관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마음이 안 놓여요. 집안에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쉬어요. 저도 곧 갈게요.”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새벽 3시.인형을 안고 잠든 소현아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꿈속 그녀는 온통 식인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수림 속에 갇혀 있었다. 등 뒤에서 날개 달린 이리 한 마리가 그녀를 잡아먹으려 뒤쫓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리 뛰어도 수림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안개가 자욱이 내린 수림 속, 소현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바짝 쫓아온 이리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그녀를 삼키려 했다. 그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약을 들고 올라가던 그녀의 엄마는 소리를 듣고 급히 안으로 들어가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켰다. 화려하게 꾸며진 공주방, 단정히 정리된 침대에 소현아가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 실려 있었다.엄마는 얼른 한약 그릇을 내려놓고
현관에 들어서자 군화를 신고 대리석 바닥을 내딛는 그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울려 퍼졌다.바람이 구름층을 한껏 헤집어 놓은 하늘, 반달이 빛을 내뿜는 유리창 아래, 남자의 그림자가 유난히 길게 어른거렸다.강지훈이 복고풍의 계단을 오르려고 한 순간, 2층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강지훈은 2층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걸음을 멈추고는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서 있었다.몇 초 뒤, 소현아의 모습이 그의 시선 속에 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내리뜨리고 흐릿한 정신으로 손에 토끼 인형을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천천히 내려와 마지막 계단을 밟을 때까지도 그녀는 강지훈을 발견하지 못한 듯 그의 곁에서 스쳐 지나갔다.문을 나서니 바깥에선 아직도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바람 속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정처 없이 걸어갔다.강지훈은 차분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걸음이 돌연 좁디좁은 창고 앞에서 멈춰 섰다. 그녀는 조명도 켜지 않은 어두운 창고 안에 들어가 한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강지훈은 이마를 찌푸리고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는지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고 불쾌한 냄새까지 진동했다.강지훈이 음산하게 눈을 내리뜨렸다.“일어나.”소현아가 말했다.“말 잘 들을게. 나한테 먹을 것 안 주면 안 돼.”“말 잘 들을게...”그 말에 강지훈의 이마가 더 깊게 찌푸려졌다.“현아 때리지 마. 아파...”소현아는 인형을 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강지훈은 소현아가 몽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늘 천진난만하던 소녀가 이렇게나 슬프게 울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어둠 속 그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남자가 허리를 굽혀 손으로 아직 울고 있는 소현아의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내가 널 지켜줄게. 나랑 함께 가지 않을래? 응?”“매일 약 안 먹어도 돼요? 현아 약 먹기 싫어요. 하지만 약 안 먹으면 현아는 영원히 총명해지지 않을 거예요...”“응. 먹기 싫으면 먹지
[사람은 내가 데려간다. 강지훈.]강지훈?소정국 또한 강지훈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현아가 어떻게 그런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인가?소정국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명세진은 그의 호주머니에서 심장약을 꺼내 먹였다.서울 감옥.사방이 모두 쇠줄로 둘러싸여 있는 색바랜 건물, 그 주위는 총을 들고 경호를 서고 있는 군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위험천만한 함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새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경계가 삼엄해 쥐 죽은 듯 고요하고 무시무시했다.소현아가 깨어났을 때, 머리 위엔 진한 보라색 천장이 보였고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일어나 앉았다.“여긴 어디예요?”“제 엄마아빠는요?”“소현아 씨, 좋은 아침이에요...”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도우미 유니폼을 입고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아있었다.“으악! 당신 누구예요? 왜 여기에 있어요?”돌연 나타난 낯선 사람의 얼굴에 그녀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는 품에 토끼 인형을 꼭 안고 파르르 떨었다.도우미가 말했다.“아가씨, 무서워하지 마세요. 주인님께서 아가씨를 모셔오셨어요. 제가 세수시켜드리고 옷을 갈아입혀 드릴게요.”도우미는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대야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아두고는 파란색 손수건에 물을 적셔 물기를 짜낸 다음 소현아의 얼굴을 닦아내려 했다.소현아는 깜짝 놀라 펄쩍 뛰며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문 앞까지 달려나갔다.하지만 문을 열고 나간 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끝도 보이지 않도록 아득하게 펼쳐진 기나긴 복도, 바닥엔 보라색 카펫이 깔려있었고, 벽엔 의미를 알 수 없는 흉악한 느낌의 그림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소현아는 어디로 뛰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임의로 방향을 정해 급히 뛰어갔다. 그러다 다행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찾아 한달음에 6층까지 내려갔다. 그녀는 너무 힘들어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대체 누구 집이길래 이렇게
소현아는 금방 잠에서 깨어난 탓에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손엔 토끼 인형의 귀를 잡고 있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녀가 강지훈을 향해 달려가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소현아는 그의 허리에 찬 벨트를 잡고 그의 등 뒤에 몸을 숨겼다. 강지훈이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을 뻗자, 소현아는 그의 팔 사이로 머리만 들이밀고는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꽉 잡았다.“강지훈 씨... 저 나쁜 사람들이 절 이곳에 가두었어요. 조금 전 괴롭히기도 했어요.”강지훈 등 뒤의 부관들은 모두 험악하게 굳은 얼굴로 주인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는 그녀를 보며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범인을 심문하던 사나운 눈빛이 모두 소현아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보통 여자였다면 일찌감치 겁을 먹고 잔뜩 움츠려졌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천진난만한 얼굴로 강지훈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말해봐. 누가 널 괴롭혔어?”강지훈이 눈을 내리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말에 도우미들은 염라대왕이 온다는 말이라도 들은 듯 아연실색했다.도우미가 다급히 걸어와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어르신, 아가씨께서 의관이 정제하지 못하고, 신발도 신지 않아 챙겨드리려고 하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신발을 안 신었어?”강지훈이 시선을 돌리자 소현아는 맨발을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운 듯 목을 살짝 집어넣고 그를 쳐다보았다.소현아는 그가 화를 내는 줄 알고 얼른 그의 허리 위에 올렸던 손을 내려놓고 눈치를 살폈다.강지훈은 소현아를 번쩍 안아 들고는 거실로 들어갔다.“사람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어디에 쓰겠어.”도우미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듯한 한 마디였다.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버렸다.“주인님... 제발...”“주인님...”이곳에 있는 도우미들은 모두 반반한 미모를 갖고 있었고 나이도 고작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이제 그들에겐 말할 기회도 없었다. 이미 부관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갔으니
“좋아요. 좋아요.”소현아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끌려갔던 도우미는 모두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다. 다들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에 도우미 유니폼을 입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음식 솜씨 또한 좋아 빠르게 점심상을 차렸다.소현아는 도우미가 위층에서 갖고 내려온 신발을 신고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해맑게 밥상에 앉아 와구와구 음식을 먹었다.이곳 도우미들은 모두 지하성에서 골라온 사람들이었는데, 한 달 월급이 일반인의 연봉에 버금갈 만큼 어마어마했다.집안일 외, 도우미들은 밤에 주인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녀들 또한 주인님과 함께하는 밤을 즐겼다.여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용모, 몸매, 그리고 요리 실력까지 모든 면에서 엄격한 검증을 통과해야만 한다.도우미는 은수저를 들고 강지훈의 다리에 앉아 그에게 음식을 먹여줬고, 다른 한 명의 도우미는 그에게 와인을 따라주었다.소현아는 강지훈에겐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밥을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소현아 옆에 있던 도우미가 다섯 그릇째 건네주던 순간, 사람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막고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종래로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 싶은 음식만 먹으면 되는 것이다.소현아는 마지막 그릇까지 비운 뒤 국까지 한 그릇 마시고 나서야 빙그레 웃으며 트림을 했다.이어 그녀는 동그랗게 솟아오른 배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강지훈 씨, 저 배불러요. 오늘 고마웠어요. 먼저 올라가 잘게요.”소현아는 블루베리 케이크를 들고 아이처럼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사실 옆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소현아가 올라간 뒤, 강지훈의 무릎에 앉아있던 금발의 여자가 가슴을 남자의 가슴팍에 비비며 교태를 부렸다.“주인님, 저 여자 누구예요? 약간 어리바리해 보이네요.”강지훈은 품 안 여자를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애완동물은 총명할
희미한 조명이 밝히고 있는 유럽식 인테리어의 서재 안, 예수 동상이 놓여있는 어두운색의 책상 앞에 그가 목에 십자가를 걸고 앉아있었다.부관이 맞은 편에 서서 손에 사진 한 장을 들고 말했다.“감옥장님, 이 사람을 찾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어떤 단서도 잡히지 않습니다.”“어쩌면 저희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에 찾았던 단서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강지훈은 의자에 앉아 날카롭게 번뜩이는 작은 칼을 만지작거렸다. “마지막 위치가 어디야?”“토성촌입니다. 저희가 갔을 땐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내 명령이라고 전해. 살았으면 사람을 데려오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가져와.”“네.”강지훈은 돌연 무언가 생각났는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됐어. 내가 직접 가.”“차 준비해.”...남원 별장.낮잠을 자고 있던 장소월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잠이 깨어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머릿속에 문득 무언가 떠오른 그녀는 다급히 침대에서 내려가 털 슬리퍼를 신고 옆 아기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원래 그녀가 옷방으로 사용하던 곳이었기에 대부분 장소월의 옷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간이 커 많은 물건을 이곳에 놓아두었다.강영수가 그녀에게 주었던 사진첩도 전연우가 찾아낼까 봐 두려워 이곳에 숨겼었다.그녀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이 담긴 철로 만든 박스를 꺼냈다.그녀는 국내에서 자주 사용하는 메일 아이디가 로그인되어있는 예전 사용했던 핸드폰을 꺼냈다.전원을 켜보니 아직 사용 가능한 상태였다. 다만 조금의 배터리밖에 남지 않았다.장소월은 곧바로 메일을 열었다.강용이 보내온 수많은 영상 메일이 담겨 있었다.하나씩 내려보던 장소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음속에서 저릿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몇 년이 지나도록 그는 줄곧 그녀에게 했던 약속을 꿋꿋이 이행하고 있었던 것이다...장소월의 부르르 떨리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을
방 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던 은경애가 문 앞 발걸음 소리를 듣고는 재빨리 옷방 문을 두드렸다.“아가씨, 대표님 오셨어요.”은경애의 귀띔에 장소월은 얼른 핸드폰을 박스 안에 넣고는 원래 위치에 숨겨 놓았다.전연우는 약간 어수선한 소리를 들으며 방 안에 들어섰다. 음산한 눈빛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으나 장소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은경애는 이제야 그를 발견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아! 아가씨께선 드레스룸에서 옷을 고르고 계십니다. 옷장 안에 있는 옷에 싫증이 난다며 새 옷을 입고 싶으시답니다.”전연우는 티 나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그녀를 추궁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장소월을 위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벌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전연우가 옷방 문을 열었을 때, 마침 안에서 걸어 나오는 장소월과 마주쳤다. 그녀는 손에 예전 입었던 잠옷을 들고 있었는데 전연우의 관심은 그곳에 가 있지 않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그녀의 얼굴 위 눈물이었다.전연우가 그녀의 젖은 속눈썹을 닦아주며 말했다.“울었어?”장소월은 머리를 움직여 그의 손길을 피하고는 행여 그가 무언가 눈치챌까 봐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벌레가 눈에 들어와서 그래.”“봐봐.”전연우는 자세히 살펴보려 허리를 굽혔다.“됐어. 이제 괜찮아.”장소월은 그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그때 별이가 발밑까지 기어와 그녀의 바짓자락을 잡고 꼼지락거리며 천천히 일어섰다.“엄... 엄마...”아이가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벌렸다.장소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별이를 안고 전연우가 있는 방을 떠났다.전연우 역시 그녀의 감정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간 뒤, 전연우의 날카로운 눈빛이 은경애에게 쏘아졌다. 순간 그녀는 오금이 저려왔다.“아이고, 대표님.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너무 무서워요.”전연우가 질문하기도 전에 그녀는 재빨리 대답했다.“아가씨가 집에서 늘 이러고 계신다는 거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아까도 갑자기
화려한 화장대 위, 조금의 장소월의 화장품을 제외하면 온통 액세서리들로 뒤덮여 있었다.도우미들은 그녀의 취향대로 목걸이, 귀걸이 등 보석들을 정연하게 정리해 놓았다.모두 다 보통 사람들은 가격조차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귀중한 쥬얼리였는데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귀걸이 한쪽만 해도 서울시 집 한 채에 버금가는 값어치였다.바닥에 떨어져 있다고 해도 아무도 감히 몰래 훔치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유일무이한 번호와 로고, 그리고 장소월의 이니셜까지 새겨져 있기 때문에 팔려고 내놓은 순간 사람들이 알아챌 테니 말이다.서재, 전연우는 해외 의료 투자 프로젝트에 관한 영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의료 연구 기업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의료 기업 재단을 설립해 과학자들에게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설사 그 자금들이 아무 소득 없는 휴짓조각이 될지라도 전연우에겐 크나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그의 책상 앞에는 제운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사진 속 장소월은 검고 윤기가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짧은 치마 차림에 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장소월의 제운 고등학교 첫 등교 날 전연우가 직접 그녀를 찍어준 것이었다.회의 내용은 모두 지난 몇 년간 기업 투자 진행 상황이었다.경제 불황을 겪기도 했으나 이젠 안정된 궤도에 들어섰다. 심지어 그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주식이 상한가를 치니, 가장 낮은 가격에 매입했던 회사의 주식도 한 주에 백만 달러까지 상승했다.또한 전연우는 성세 그룹의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의료 기술 특허를 냈다.때문에 어느 날 성세 그룹이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성세 그룹의 이런 폭발적인 성장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전연우가 해외 기업 투자로 인해 이룬 업적들이 각 나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국내에 소식이 전해진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각, 성세 그룹의 전화는 모두 먹통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