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은이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가자 소민아는 서류를 안고 짧은 걸음으로 총총 따라나섰다.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처음이었다.소민아는 비서팀 직원으로서 한때 송시아의 직속 아래 유일한 인턴이었다. 하지만 이후 송시아가 사라졌고, 그녀는 기성은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기성은의 부하직원으로 들어간 뒤, 소민아는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3개월 동안 일해왔다.3배의 연말 보너스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그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이 순간,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던 그 나날들이 그리워졌다.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져 눈을 뜰 수도 없었다.소민아는 겁을 먹고 기성은의 뒤에 숨어 이따금 고개를 들어 기자들의 질문에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성세 그룹 자산 총액이 세계 5위 올랐고, 성세 그룹 또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자리에 올랐습니다. 성세 그룹의 미래 계획이 어떤지 궁금합니다.”“성세 그룹 대표님께서 해외로 이민을 할 생각이 있으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성세 그룹과 인하 그룹의 혼사가 있은 뒤로 사모님께서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완전히 주부로 지내실 생각이신가요?”“...”수많은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소민아는 정신이 아찔해졌다.만약 그녀였다면 절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기성은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모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기자님들이 하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공식 기사로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사적인 문제에 관해선 죄송하지만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그가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기성은이 옆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눈짓하자 그는 재빨리 모든 기자들을 회사 문밖으로 밀어냈다.소민아는 기성은이 멀리 떠나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쫓아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소민아가 서류를 품에 안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난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어. 모두 다 전생과 같아.”‘전연우, 드디어 싫증이 났구나.’그녀는 이제 전연우가 그녀를 남원 별장에서 쫓아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전연우의 관계는 그때가 되어야만 완전히 끝난다.아니면... 죽을 때까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살아야 한다.동영상 속, 전연우는 파티장 전체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현재 서울에서 그의 지위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가 없다.심지어 예전 강씨 집안까지도 훨씬 뛰어넘었다.이럴수록 장소월은 그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얻었는지 더 선명히 떠올랐다.강씨 가문 사람들의 시체를 밟고, 한 계단 한 계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전연우...이게 네가 원했던 거야?금빛 햇살이 화실 창문 앞 장소월의 몸에 떨어졌다. 그녀의 피부는 마치 빛을 투과하기라도 하는 듯 하얗고 투명했다. 따뜻한 온실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도우미가 위층으로 올라왔다.“사모님, 저녁 식사 하세요.”“알겠어요.”전연우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장소월을 보는 도우미의 시선에 연민의 감정이 더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장소월을 그에게 버려진 가엾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여 장소월을 마주할 때마다 행여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행동에 신중을 기했다.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린 것 같았다. 그들의 사모님의 성격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심지어 대표님이 바깥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장소월은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가 텅 빈 거실을 마주한 채 아이와 함께 쓸쓸하게 밥을 먹었다.옆에선 은경애가 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장소월은 고전 신화 전설에 관한 자료를 펼쳐보았다.최근 사부님의 작업실에서 또 대형 게임 디자인 의뢰를 받았는데 그 배경이 신화라 장소월에게도 크나큰 도전이 되었다.전에는 단 한 번도 이에 관한 정보를 접한 적이 없다...전연우가 없으니 장소월은 이상하게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별장 구석구석에 그의 그림자가 드리
전연우는 이마를 찌푸리고 조수석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그러고는 송시아의 질문엔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검은색 맞춤 정장을 입은 건장한 몸집의 남자가 잠그지 않은 문을 향해 걸어갔다.현관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밥상에 앉아 졸고 있던 은경애가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어머나... 대표님?”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정장을 대충 옷걸이에 걸어놓았다.“소월이는요?”“아가씨께선 급한 작업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야식을 만들어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깜빡 잠들어버렸네요.”불현듯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 돌아섰다.“아이고, 내 갈비탕.”은경애가 갈비탕을 들고 고개를 돌렸을 땐, 거실은 텅 비어버린 상태였다.장소월은 하품을 하며 별이의 방에서 나오던 순간, 계단을 오르고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장소월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를 몇 초간 쳐다보다가 차분히 시선을 피하고 몸을 돌렸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그의 몸에 깃든 익숙한 향기를 그녀에게 보내왔다.송시아가 자주 사용하는 샤넬 향수였다.장소월이 그를 쳐다본 순간, 그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 그의 마음을 찢어발겼다.전연우는 장사꾼이다. 이 세상에 욕심이 없는 장사꾼은 없다.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는 장소월의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간절히 원했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거리는 낯선 사이와 다름없다.은경애가 갈비탕을 갖고 올라오자 전연우는 직접 받아들고 장소월의 옆에 놓아주었다. 하여 그녀가 그림판을 내려놓으려던 자리가 점령당했다.전연우가 자연스럽게 그림판을 받으며 말했다.“그림은 천천히 그려도 돼. 일단 먹어. 먹고 좀 쉬어.”장소월은 그와 말조차 섞지 않았고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전연우는 그림판을 내려놓고 창가에 가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조용히 갈비탕을 먹고 있는 그녀를 지긋이 지켜보았다.입에서 뱉어낸 연기는 바람을 타고 창밖으로 사라졌다.본래 가장 익숙하고, 침대에서도 최고의 속궁합을 맞추던 그들 사이에 숨
고급스러운 검은색 박스 안,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가 누워있었다. 반지는 520개의 다이아몬드 조각을 정교하게 이어붙여 만들었는데 한 단계 한 단계 세심하기 그지없는 기술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으면 반지 전체가 무너지고 부서지기 때문이었다.이 붉은색 보석은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것이었다.그 가치는 6천억 원에 달했다.장소월이 잠들지 못해 몽롱한 정신으로 뒤척이고 있을 때, 침대 옆쪽이 밑으로 쭉 꺼져내려갔다. 손이 누군가의 손에 살포시 끌려가더니 이어 무명지에 차가운 온도의 무언가가 느껴졌다.눈을 떠보니 전연우는 어느새 무명지에 붉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순간 정신이 든 그녀는 곧바로 손을 빼내며 몸을 일으켰다.“뭐 하는 거야?”그녀는 무명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내려 했다.전연우는 묵묵히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가 피곤함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청혼...”장소월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전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인시윤의 결혼은 마무리됐어. 내일 외부에 공표할 거야.”장소월은 몇 번 시도했으나 마음처럼 반지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그녀는 베개를 잡아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전연우, 너 정말 미쳤구나.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넌 인씨 집안을 이용했고, 인시윤을 죽이기까지 했어.”“그럼 난? 난 어떻게 이용해 먹을 생각이야? 지금 내 모든 것은 이미 네 것이 됐잖아. 장해진도 죽었고, 남천 그룹도 손에 넣었어. 대체 왜...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거야?”전연우는 손을 뻗어 흥분하고 있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장소월의 병은 아직도 채 낫지 않았다.전연우의 무거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장해진의 죽음은 나와 관련 없고, 난 남천 그룹에 손대지 않았어. 그냥 네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남천 그룹을 관리만 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돼.”“난 싫어... 그런 건 필요 없
문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이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대표님.”전연우는 문 쪽을 힐끗 보고는 아직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는 장소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나 일 처리하러 가야 해. 금방 돌아올 거야.”전연우가 몸을 일으키자 장소월은 베개를 들어 그의 등에 던져버렸다. 전연우는 등에 충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에겐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충격이었다.베개가 떨어지자 전연우는 뒤돌아 주워올린 뒤 툭툭 털고는 그녀의 등 뒤에 다시 놓아두었다. 장소월은 일부러 그와 맞서기라도 하는 듯 새빨갛게 핏줄이 선 눈으로 날카롭게 그를 쏘아보았다.“난 너랑 결혼 안 해. 절대 안 해!”전연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착하지, 응?”전연우는 방에서 나간 뒤 잊지 않고 문을 닫았다. 복도는 방음이 좋지 않아 경호원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경호원이 보고했다.“어떤 놈이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전연우의 음산한 눈빛에선 조금 전의 그 따뜻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어디 있어?”“아래에 있습니다. 대표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아래층엔 기자가 바닥에 짓눌러져 있었는데, 그 옆엔 고가의 카메라가 놓여있었다.“이거 놔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경고하는데 나랑 같이 있던 사람이 당신들 신고했어요. 날 보내주지 않으면 다 감옥에 처넣을 거예요.”전연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고하려면 해봐.”그가 고대 군왕 같은 장엄한 기세를 내뿜으며 정장을 입고 느릿하게 내려왔다.기자는 전연우를 본 순간 겁에 질려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장씨 가문의 입양아였던 전연우, 그리고 성세 그룹 대표님인 지금의 전연우... 그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장씨 가문의 개에서 시작해, 이젠 한 손으로 서울 하늘도 가릴 수 있는 거물이 되었다.전연우를 눈으로 직접 본 순간, 기자는 곧바로 겁을 먹었다.“대...
이렇듯 악랄한 날씨에 두 다리까지 잃어 기어갔다면 길에서 요절했을지도 모른다. 인적 드문 외딴곳에 있는 이 별장 구역을 벗어나려면 어두운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러다 혹시 들짐승이라도 만나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수 있다.전연우는 정말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그는 아직도 다리 뒤편이 욱신거렸다. 경호원이 얼마나 힘주어 눌렀는지 알 수 있었다.전연우는 아래층에서 담배를 피우고 냄새를 모두 없앤 뒤에야 위로 올라갔다.3층 복도 끝, 장소월의 얇은 몸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전연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장소월이 물었다.“대체 언제면 사람을 해치지 않을래?”“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꼭 손을 잘라야만 했어?”장소월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가득 담긴 냉기 그리고 실망감이 그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그가 설명했다.“처음이 있으면 두 번째도 있는 법이야.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한테도 경고한 거야. 무사히 돌려보냈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여길 기웃거렸을 거야.”전연우가 이곳의 경계를 강화한 이유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너랑 장해진은 똑같아. 죽을 때까지 손에 묻은 그 피 씻어내지 못할 거야. 넌 항상 그랬어. 절대 바뀌지 않아.”장소월이 차갑게 그를 쳐다보고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잠갔다.전연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듯 이마를 꾹꾹 눌렀다.새벽 3시, 하늘에서 조용히 눈송이가 내려오고 있었다.전연우는 창가에 서서 소복이 내려앉고 있는 하얀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또 1년이 지났다.그날 밤, 전연우는 서재에서 이불을 깔고 눈을 붙였다.남원 별장에 돌아와 그녀와 함께 자지 않은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장소월 역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방에 돌아간 뒤 반지를 빼내려 갖은 방법을 사용했다. 가는 손가락 주위는 발갛게 부어올라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바디 워시, 샴푸 등 미끌
“나...”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운 것 같은 새빨간 그녀의 눈을 본 서철용은 곧바로 마음이 녹아내렸다.“소월 씨가 아프대.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 내가 가봐야 해.”배은란이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이번엔 나도 같이 데려가면 안 돼? 절대 귀찮게 하지 않을게. 난 철용 씨 곁에만 있으면 되거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한 나랑 아기 곁에 있어 줘. 응?”아파트 주차장 안, 서철용이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있었다.“나한테 꼭 붙어있어야 해. 사람들을 봐도 긴장하거나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너한테 아무 짓 안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 사고 안 칠게.”배은란은 드디어 그와 함께 간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어젯밤 폭설이 내렸던지라 서철용은 그녀가 추워할까 봐 차에 히터를 따뜻하게 틀어주고는 목수건을 정리해주었다.“불편하면 바로 나한테 말해.”“응.”서철용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본 순간, 잠시 마음이 저릿해졌다.차가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어젯밤 내렸던 도로 위 눈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남원 별장에서 차가 멈춰서자 배은란이 먼저 서철용의 손을 잡았다. 서철용이 힐끗 쳐다보니 그녀가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미끄러울까 봐.”도우미가 의료 상자를 받아들었다.서철용은 배은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넘어지면 안 돼.”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진찰을 마치자 배은란이 그의 청진기를 의료 상자에 넣었다.서철용이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전연우에게 입을 열었다.“심각한 건 아니고 열이 좀 높아. 해열제를 놓았으니까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서철용은 조금 전 그녀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보았다. 이렇게나 빨리 손에 넣었다니.전연우와 같은 사람은 낭만이라는 걸 몰라 절대 장소월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서철용이 배은란에게 말했다.“아래로 내려가서 잠깐 나 기다려줄래. 심심하면 마당에서 산책해도 돼.”“
배은란이 한 입 삼키고는 말했다.“맛있네. 잠시만, 내가 레시피 물어보고 올게.”“그럼 우리도 직접 해먹을 수 있잖아.”서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30분 뒤, 장소월은 깨어나 전연우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병이 나 성격이 더 까칠해졌다.베개가 날아가 전연우의 얼굴을 가격할 때 서재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서철용이 말했다.“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장소월과 서철용의 관계는 친구라 할 수 없었다. 그를 대하는 장소월의 태도는 늘 그래왔듯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그의 옆에 임신한 여자가 있는 걸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전연우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베개를 맞았는지 모른다.서철용도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배은란과 함께 방을 나섰다.전연우가 뜨거운 물을 잔에 부었다.“약 먹고 나서 침대에서 내려와. 너 아직 몸 안 좋아. 작업 완성하고 싶으면 성세 그룹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 명 데려와서 시킬게.”“네 입으로 말한 거야. 약 먹으면 침대에서 내려갈 수 있다고.”“응. 약속해.”장소월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약을 잡아 입안에 넣고 물로 꿀꺽 삼켜버렸다.다음 그녀의 행동을 알고 이미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그는 그녀에게 따뜻한 양말을 신겨주었다.“집에 가만히 있었는데도 병이 나다니. 널 어떻게 하면 좋니.”그녀에게 한 겹 또 한 겹 옷을 입혔다.“이러다 더워 죽겠어.”“말 안 들으면 아무 데도 못 가.”장소월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폭군, 미친놈, 양아치.”“한 번 앓고 나니 입이 사나워졌네? 어떤 폭군이 너한테 이렇게 양말 신겨주고 옷 입혀준대? 양심도 없어.”또 한 겹의 베이지색 실모자가 그녀 머리 위에 씌워졌다. 며칠 동안 그녀의 머리카락은 꽤나 많이 자라있었다.조금 전 전연우는 이미 도우미에게 최대한 창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었다.남원 별장 마당, 서철용은 도우미에게 담요 하나를 부탁해 배은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