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하루의 시간이 그녀에겐 감옥에서 보냈던 날들보다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이미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늦은 밤, 시곗바늘은 정확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그 시각, 정신병원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복도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고요한 통로의 끝은 칠흑 같이 어두웠고 끝없는 심연과도 같이 느껴졌다. 가끔 차디찬 화장실에서는 수도꼭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아무리 봐도 어딘가 모르게 기괴한 분위기가 풍겨왔다.병실 문이 쓱 열리고 김남주는 자신의 곁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가 차 열쇠와 예리한 단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그 의문의 인물이 어떻게 병원에서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이미 원망의 감정이 김남주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그녀에게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천천히 주워들었다. 빨리 병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어딘가로 서둘러 출발하려는 기색 하나 없이 느긋했다.그녀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켰다.병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설광수는 자신을 숨기려는 의도조차 없어 보였다. 바로 침대 위에 보이는 사람한테로 달려간 그는 많이 참았다는 듯 그녀는 꼭 끌어안았다.“씻었어요? 냄새 좋네요.”그 순간, 설광수는 숨 한번 내쉬지도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가슴에 단검이 꽂혔다.김남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악의에 번뜩이는 눈빛을 내보였다.“얘기 계속하지 그래? 왜 더 안 떠들어?”그렇게 얘기를 하면서도 김남주는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더욱더 깊게 찔러넣었다. 그녀가 단검을 빼내는 순간 단검 끝에 피가 맺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 위에 비친 미소가 기괴했다. 마치 지옥의 문턱까지 기어 올라와 목숨을 구걸하는 처녀 귀신처럼.단검을 빼내는 순간, 피가 튀어 올랐다. 그 피는 그녀의 눈가로 튀어 눈앞을 붉
그 고민은 대체 누구 때문에 생긴 건지….장소월은 대충 생각해봤을 때 짚이는 것이 있긴 했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각자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학교에 도착했다.장소월은 얇은 목소리로 얘기했다.“나 갈게. 점심 꼭 챙겨 먹어.”강영수는 그런 장소월을 보며 대답했다.“응.”장소월이 차에서 내렸다. 평소였다면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있었을 차인데 오늘은 왜인지 바로 출발해버렸다.그녀는 나름 일찍 도착한 편이었다.“소월아! 소월아!”소현아가 가방끈을 손에 꼭 쥔 채 달려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소월의 곁에 다다랐을 때쯤 소현아가 물었다.“소월아, 무슨 일 있어? 내가 널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대답을 안 해? 무슨 일 있는 거야?”장소월이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소현아가 덧붙였다.“난 또, 너 이미 미술 아카데미 붙었다고 학교 안 오는 줄 알았어. 네가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 이미 합격까지 한 사람이 나보다 부지런하냐.”장소월은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뭐, 좀 더 배운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그녀가 서울 미술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 성적은 이미 엊그제 공개되어 있었다. 그녀는 수석이라는 성적으로 당당하게 합격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도리대로라면 그녀는 학교에 올 필요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학교에 오는 것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이곳에는 그녀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친구들도 있었다.“그럼 너는?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왔어?”소현아가 대답했다.“아, 오늘 부모님께서 고향으로 내려가신다고 하셨거든. 비행기 시간 맞춰드리느라 일찍 나온 거야.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널 만나게 될 줄이야, 너무 좋다.”그녀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 것인지 혼자 헤실거리며 웃어댔다.장소월은 그런 느긋한 그녀를 보는 것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민도 없어 보이고, 시험 망칠 걱정 따위 안 해도 되고, 그녀의 가정환경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생을
설마 벌써 인시윤한테 손을 댄 거야?고작 그놈의 인맥 하나 때문에?아니면 돈 때문에!이번 생의 인시윤과 저번 생의 인시윤이 다른 게 없다. 전연우의 손아귀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겠지.전연우가 갑자기 앞으로 한걸음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장소월의 이마 위에 붙어있던 머리카락을 슬쩍 떼어냈다.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녀로서도 미처 방어할 수가 없었다."아무리 오랜만에 보는 거라고 해도 그렇지,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을 생각이야?“장소월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연우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눈동자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정복욕, 소유욕과 광기의 감정들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하지만 소월의 눈에는 보였다. 그 위선적인 웃음 뒤에 감추어진 진짜 그의 모습이 어떤지 말이다.그는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가까스로 시선을 그에게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소현아가 소월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전연우의 미소는 삽시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살벌한 표정만이 소현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표정에 지레 겁을 먹은 소현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서워."소월아!“소현아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월아, 인시윤 너희 오빠랑 결혼하는 거야?“그게 그녀와 무슨 상관인가?소현아는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대며 말했다."아니, 인시윤이랑 너희 오빠가 결혼하고, 너는 또 인시윤 오빠랑 결혼하면 인시윤은 너한테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럼 너는 인시윤을 뭐라고 불러야 해? 너도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야?“"소월아! 나 진짜 어지러워!“그 천진난만하고 맑은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장소월은 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얘기했다."조용히 해.“그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을 텐데 방금 그녀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해버리는 바람에 대화 내용을 들어
말하고 보니 인시윤 본인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대체 뭐가 아쉬워서 자신보다 나이도 많은 늙은 남자를 좋아하겠나.그녀의 조건으로라면 그녀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널리고 널렸다. 그녀가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넘어올 남자들이 한 트럭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눈이 멀어버렸다.여태까지 살면서 인시윤은 원하는 것은 뭐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방금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제대로 느껴본 것이다.이런 기분이 절대 좋을 리가 없었다. 그가 눈앞에 없을 때면 머릿속이 온통 그의 생각으로 가득 들어찼다. 다른 일에 자신을 혹사하지 않는 이상 그에 관한 생각만 자꾸 커져 온몸의 모든 신경과 세포를 포함한 기관들에까지 그가 침투해버릴 지경이었다.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전연우를 잊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그가 좋아하는 게 도대체 백윤서인지 장소월인지 감도 안 잡혔다.장소월은 이미 자신의 큰오빠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니까, 만약... 백윤서라면…하지만 그가 장소월을 볼 때의 눈빛은 단 한 번도 백윤서의 앞에서 등장한 적이 없었다.전연우가 백윤서에 대한 감정도 단순히 정일 가능성이 크다.만약 장소월이 자신의 큰오빠와 결혼한다면, 그렇다면… 그녀에게도 기회는 있는 것이다!전연우는 아직 강가네를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어머니께서 허락하시든 말든 갖고 싶은 게 생겼을 때 그녀가 못 얻는 건 절대 없다.강한 그룹.진봉은 이 소식을 대표에게 전해야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대표가 마음이 약해질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지금 소월 아가씨와의 정혼을 앞두고 계시는데 이번에는 절대 저번처럼 김남주에게 그 둘을 강제로 떼어놓을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진봉은 결국 회사의 미래를 위해 이 일을 조용히 묻는 것을 택했다. 나중에 비난을 받더라도 그 홀로 감당하게 말이다.진봉은 1000자 가까이 되는 자료를 건네주러 들어가기 위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파란 셔츠에
“네가 누구 밑에서 일하는 사람인지 잊었어?”남자의 말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강영수의 눈빛에는 약간의 망설임이 비쳤지만 이내 마음속의 선택으로 눈빛이 생기를 잃어가는 게 보였다.그도 지금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그 애는 이해해줄 거야.”이 한마디를 남긴 채 강영수는 차에 시동을 걸더니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그 자리에 남겨진 진봉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부디 이번 일은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랄게요’사실 만약 소월 아가씨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그녀는 아마 대표님과의 혼인 같은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목적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단 하나였으니까. 그녀는 이미 그녀의 능력으로 중앙 미술 아카데미에 합격한 사람이다. 그녀가 더는 강영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후회의 바닷속으로 잠식되는 건 강영수일 것이다.고속도로 사고 현장은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사고가 난 것은 두 대의 은색 승용차였고 가해자는 진작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경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강 대표님, 저희가 뒤쫓아 왔을 때, 차는 이미 폭발한 상태였습니다.”강영수는 분노에 찬 손길로 경찰의 멱살을 잡았다.“누가 뒤쫓으라고 했어!”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급하게 둘을 떼어놓던 그때, 한 명이 입을 열었다.“강 대표님, 아무리 강 대표님께서 서울시에서 날고 기는 분이라고 하셔도 법은 지키면서 삽시다. 경찰 공격하는 거, 이거 중범죄예요. 전화로도 이미 설명해드리지 않았나요? 김남주는 정신병원에 있었고 살인혐의로 조사 중이었다고요. 저희는 법대로 저희가 해야 할 일 한 것뿐입니다.”“정신병원?”김남주 감옥에 있던 게 아니었어?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정신병원에 있어!“네, 구체적인 원인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김남주 사건에 대해선 저희도 예비 서류 작성할 겁니다. 수색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고요. 그러니 강 대표님도 무슨 일 생기시거나 새로운 정보 같은 걸 얻으시면 바로 저희에
김남주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정확히 한 시간 반 뒤에 별장의 대문이 열렸다.이 별장의 비밀번호는 바로 그녀의 생일이었다.이거 봐, 기억하고 있잖아.김남주를 바라보는 강영수의 온몸은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무사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얼굴과 팔에 난 상처,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정신병원 환자복까지. 그녀의 몰골을 보자마자 강영수의 화는 순식간에 누그러들었다. 그녀의 좋지 않은 안색을 주시하며 물었다.“누가 널 감옥에서 꺼내준 거야?”“이딴 재미 없는 장난에 놀아나 줄 생각 없어."그 말을 끝으로 강영수가 김남주에게서 몸을 돌려 별장을 떠나려고 할 때 김남주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다 너 때문이잖아! 넌 절대 몰라. 너의 말 한마디에 감옥에 갇혀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었는지 아느냐고! 그 사람들이 날 바닥에 눕히고 그 날카로운 칼로 내 팔을 난도질해대면서, 나한테 더러운 여자라고 욕해댄 걸 알긴 하냐고, 이 나쁜 놈아!”“내가 한마디 좀 했다고, 우리가 한때 연인 사이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대했는지 알기나 해!”“순식간에 미친 사람 취급하더니, 모두가 날 밟기 시작했어!”“나 죽을 뻔했어. 마지막 숨넘어가기 직전에 누군가가 날 발견하고 바로 다시 정신병원에 집어넣지 않았더라면 네가 지금 보고 있는 건 내 시체였을 거야!”“하나만 물어보자.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도대체 왜 이래!”“영수야, 잊었어? 예전엔…. 넌 죽어도 나 다치는 꼴은 못 봤잖아. 내가 어디서 괴롭힘당하고 있으면 항상 등장해서 막아줬잖아.”김남주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의 그녀는 정상이건 정신병이건 별 차이가 없는 상태였다.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은 비뚤어지고 깨지기 시작했다.강영수는 김남주에 대해 잘 몰랐다. 그녀가 겪은 모든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그녀에게 무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정신병원으로 끌려가서 강제로 주사 맞고, 약 먹고…. 나는
시험이 끝나고 장소월은 우산을 든 채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그녀의 긴 양말을 적셨다. 강영수는 학교에서 그녀를 픽업할 때 늦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그녀는 교문 앞에서 10분 가까이 강영수가 오기를 기다리며 전화를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휴대전화가 울리더니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경고문구가 보였다.장소월은 팔을 문지르며 고개를 숙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연속적으로 메시지를 여러 개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장은 없었다. 오늘 약혼 사진 찍는 날인데, 평소 강영수의 성격대로라면 절대 늦을 리가 없었다.무슨 일이 생긴 건가?장소월은 강영수의 비서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의 전화번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관두었다.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는 것을 보던 장소월은 근처 편의점을 찾아 급히 몸을 피했다. 창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가방에서 숙제를 꺼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시간은 한 시간, 한 시간 흘러갔고 그러다가 직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학생, 8시 다 됐어요. 가게 문 닫을 시간이에요.”“아, 죄송해요. 시간을 깜빡하고 있었어요. 지금 바로 나갈게요.”장소월은 급히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제를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풀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창밖의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해져 있었다.길가에는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나오는 서울 제2중 학교 학생들 말고는 더는 사람도 없었다.사실 장소월이 밖에서 강영수를 기다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1시간 반 정도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까.그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장소월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실망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실망의 감정도 조금을 있을 것이다.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그녀에겐 자주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지금 이 시각에 택시라도 잡아타려면 시내 광장 중심까지 어느 정도 걸어가야 했다.길가에서 갑자기 주황색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온몸이 다 빗물에 젖은 채 그녀의 발 앞까지 다가와 몸을 비비며 야옹
장소월은 일찌감치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올라갔다.장소월은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 따위 없었다. 시험이 10일도 안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번 시험만은 무조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맞이해야 했다.이미 중앙 미술 아카데미에 합격했다고 해도 말이다…이번 시험 성적도 심각할 정도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밤 11시 반, 그녀가 자기 전에 간단히 단어 암기를 하다가 잘 준비를 하기 위해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불을 끄려던 순간, 침대 밑에 있던 고양이가 침대 위로 튀어 올라왔다. 그러더니 장소월의 머리맡에 엎드리더니 앞발로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침대 맡에 무드등만 켜놓은 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만큼 컸으면서 아직도 꾹꾹이를 하네.”“잘 자, 오렌지."장소월은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얼굴 밑으로 갖다 대더니 곧장 꿈속으로 빠져들었다.강영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2시였다.“도련님.”하인은 강영수 입가의 상처를 보자마자 심장이 철렁했다. 다 살 만큼 산 사람들로서 그 입술의 상처가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강영수가 집 밖으로 나설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입술에 남사스러운 상처를 달고 나타나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생긴 상처인지 얘기를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강영수는 온몸이 피로에 절어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풍겼다.“소월이는?”하인이 대답했다.“소월 아가씨는 이미 쉬고 계십니다.”강영수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안광이 스쳐 지나갔다.“그 아이가 따로 물어본 것은 없었나요?”하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니요, 아무것도 묻지 않았어요. 그저… 소월 아가씨께선 9시가 거의 될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저녁 드시자마자 바로 올라가서 쉬셨고요. 많이 지치신 모양이에요.”“큰 도련님은 식사하셨어요? 밥 아직 안 식었는데."“됐습니다.”강영수는 별다른 표정 없이 바로 계단으로 올라가며 덧붙였다.“만약 소월이가 저에 관해 물어본다면, 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