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30분, 올림피아드 반.고건우는 마지막 문제를 강의하고 교재를 덮었다.“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더 질문 있나요?”“질문 없으면 오늘은 일찍 집에 돌아가세요. 기초 지식을 공고히 하고, 내일 시험에 영향 주지 않도록 일찍 자세요.”“마지막으로 강조하는데, 절대 지각하지 말고, 수험표도 잊지 말고 챙기세요.”고건우는 책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방을 챙기고 있었는데, 단모연이 와서 장소월의 어깨를 두드렸다.“만년 2등, 오늘 일찍 끝났는데 놀러 가지 않을래?”“난 일이 있어서 못 갈 거 같아.”“쳇, 똑같은 핑계만 벌써 몇 번째야. 집에서 단속을 엄하게 해?”장소월은 말없이 싱긋 웃었다.허이준은 단모연에게 눈빛을 보냈고, 단모연은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차, 까먹었네!’“괜찮아. 그럼 난 이준이랑 먼저 갈게.”“그래.”그들이 떠나고, 백윤서가 장소월의 앞에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소월아, 괜찮아?”“저 괜찮아요.”장소월은 별다른 표정 없이 가방을 챙겼다.강영수가 천하일성에서 안고 나온 여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강영수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모두 장소월이 곧 버림 받으리라 생각했고,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었다.“그럼 난 먼저 교실로 돌아갈게. 만약 우울하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 네가 집에 돌아오고 싶다면 연우 오빠가 반드시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네, 먼저 돌아가요. 전 책을 챙길게요.”“좋아.”교실 전체에 장소월 혼자 남았을 때,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심장을 휘감았다.장소월은 이마를 짚고 손가락을 까맣고 곱슬곱슬한 머리 사이에 넣었다. 오늘 너무 따가운 시선을 받아 머리가 좀 아팠다.귓가에 들리는 각종 시끄러운 소리가 그녀를 숨 막히게 했고, 돌아가서 어떤 방식으로 강영수를 대해야 할지 몰랐다.“어머, 이거 장소월 아니야?”“왜 아직도 안 갔어?”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복도를 지나다가 교실 안의 장
“만약 강 대표님에게 일러바치면 우리 부모님 사업에 영향 줄 거예요.”설채윤의 눈에 독기가 번뜩였다.“쓸모없는 것들. 하지만 겁먹지 마. 강영수랑 오래 못 갈 거야.”애초에 강영수가 두 사람의 사이를 만천하에 공표했지만, 지금은 밖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이 발견됐으니 장소월의 얼굴에 제대로 먹칠을 한 격이다.장소월은 학교에서 나왔다. 그녀의 전문 기사는 오늘 그녀가 일찍 하교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휴대폰 수리점으로 향했다.사장은 장소월의 휴대폰을 살펴보더니 말했다.“최신 휴대폰이 이렇게 망가졌으니 수리하는 비용이면 새 휴대폰 하나를 사겠어요. 수리하지 말고 마침 여기 새로 들어온 휴대폰이 몇 개 있는데 보시겠어요?”장소월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네, 한번 볼게요.”그녀의 휴대폰에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 없었다. 매일 스팸 메시지를 받고, 가끔 몇 통의 전화를 받는 것 외에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결국 그녀는 오래된 펠프스 모델을 골랐다. 낙상 방지와 방수 기능을 모두 갖췄지만 공능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충분했다.원래 휴대폰의 연락처를 보며 번호를 하나씩 저장하기 시작했다.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쳤고, 그녀는 놀라서 얼른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었...”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더니... 얼른 다가가 상대방을 일으켜 세웠다.“난 괜찮아요. 소월 씨는요?”심유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장소월은 놀라서 물었다.“아주머니가 어떻게 여기 계세요?”심유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강용이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어요.”“워낙 철이 없고 멋대로 행동하는 녀석이라 이제 저도 관여할 수가 없네요... 콜록콜록...”심유는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손수건을 움켜쥐고 기침을 하더니, 손수건은 어느새 피로 물들었다. “아주머니...”심유는 부드럽게 웃으며 장소월의 손을 잡고 말했다.“고질병이에요. 강용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장소월은 불안감에 휩싸인 초조한 얼굴로 수술실 문 앞을 지켰다. 수술을 시작한 지 어느덧 3, 4 시간이나 지났으나 강용에겐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았다.대체 어디에 간 걸까?그녀는 강용 주변 사람의 연락처는 아는 것이 없었다.돌연 장소월의 머릿속에 한 곳이 떠올랐다. 혹시 도원촌에서 엽시연과 함께 있는 게 아닐까?그곳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장소월은 다급히 예전 생선 구이집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뚜뚜뚜.‘빨리 받아!’그때 도원촌.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건달 몇 명이 손님을 모두 내쫓고는 현광원을 둘러싸고 있었다.“당신들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강지훈이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별거 아니야. 아주 소소한 일일 뿐이거든. 하지만 고분고분 내 말에 따르는 게 좋을 거야. 이 칼엔 눈이 달리지 않았잖아? 안 그래?”“잠시 후 누가 전화 오면 뭘 묻든 모른다고만 해. 허튼소리를 했다간 저승에 발을 들여야 할 거야.”“네... 네...”현광원은 1m 89의 건장한 몸집의 남자였지만 이렇게 많은 건달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남자의 허리 쪽이 불룩한 것으로 보아 총까지 소지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때문에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프런트 앞 전화가 울렸다.강지훈이 눈짓을 하자 현광원은 쭈뼛거리며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여... 여보세요. 누구시죠?”“아저씨, 저 소월이에요. 혹시 엽시연과 강용이 거기에 갔나요? 오늘 강용 본 적 있어요?”현광원이 말했다.“나... 난 못 봤어. 그러니까 나한테 묻지 마. 난... 아무것도 몰라.”강지훈이 현광원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착하네. 잘했어. 또다시 물어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겠지?”“네. 압니다. 압니다.”강지훈이 부하들을 데리고 문을 나서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보스, 이쪽 일은 해결했습니다.”“그래. 사람을 보내 계속 감시해.”“네.
장소월의 설명을 들은 엽시연의 손이 흔들렸다. 이에 팔에 문신을 새기던 남자가 꽥 소리를 질렀다.엽시연이 다급히 말했다.“기다려. 내가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볼게.”“그래. 부탁해.”엽시연은 재빨리 예전 강용과 친하게 지내던 몇 명의 친구들을 모았다.그중 빨간 머리가 말했다.“형은 오랫동안 우릴 보러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형이 여길 떠난 뒤엔 우리도 별로 연락하지 않았고요. 대부분은 형이 우리한테 전화했었죠. 형이 자주 가는 곳은 저희도 잘 몰라요.”“맞아요. 강용 형은 예전 우리와 썩은 채소잎을 주워 먹으며 어울려 다녔어요. 하지만... 그건 이제 오래전의 일일 뿐이에요.”썩은 채소잎을 주워 먹었다고? 장소월은 예전 강용의 삶이 그 정도로 가난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장소월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강용... 어렸을 때 고생 많이 했어?”빨간 머리가 말했다.“맞아. 하루에도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했어. 일은 어찌나 잘하는지 바다에서 잡아 온 생선들을 옮기는 일엔 강용 형을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였어.”장소월은 전혀 모르는 강용의 모습이었다.엽시연이 소리쳤다.“지금 그런 얘기를 뭣 하려 해! 빨리 흩어져서 찾아야지!”장소월이 말했다.“나도 같이 가자!”“넌 나가지 마. 저번 일을 잊으면 안 돼. 도원촌은 안전한 곳이 아닌 데다가 넌 이곳에 익숙하지 않잖아. 우리가 찾아볼게. 찾으면 즉시 너한테 알릴게.”“꼭 좀 부탁할게. 고마워.”“고맙긴 뭘. 얼마 전에 밥도 얻어먹었잖아. 이 정돈 당연히 해야지.”“알아냈어요.”13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달려 들어왔다.“형, 제가 알아봤는데 오늘 4시쯤 눈 쪽에 흉터가 있는 남자가 건달 한 무리를 데리고 현씨 아저씨네 가게에 쳐들어갔대요. 지금 가게는 문을 닫았고 집에도 찾아가 봤는데 아저씨는 없었어요.”엽시연이 말했다.“안 계신다면 아마 바다에 나가셨을 거야.”그들이 문을 나선 뒤 장소월은 생각에 잠겼다. 눈에 흉터가 있는 사람, 그리고 그 통화... 현씨 아
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장소월의 눈에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중 몇 명은 강지훈의 수하들이었다.장소월은 곧바로 커튼을 닫고 뒷문으로 나갔다.그녀는 집을 나서며 강씨 집안의 운전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가 시작된 지 1분도 되지 않아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 전원이 꺼져버렸다.전연우는 이 어촌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장소월은 다급하게 뒷문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차가운 칼날이 그녀의 목을 겨누었다. 으슥한 달빛 아래, 강지훈의 흉측한 흉터는 더더욱 공포스러웠다.“아가씨, 전 대표님께서 아가씨가 혼자 다니면 위험할 거라며 저희를 보내셨어요. 저희들과 함께 가시죠.”말도 안 되는 소리. 제일 위험한 건 바로 그들 자신이다.장소월이 겁에 질려 급히 문을 닫았다. 하지만 강지훈은 발로 문을 막고는 사납게 말했다.“아가씨, 좋은 말로 할 때 절 따라오세요! 계속 거부한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그녀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당신들... 뭐 하려는 거야! 나 아버지한테 전화할 거야!”강지훈은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어르신은 아마 아가씨의 말을 들을 기회도 없을걸요?”장소월은 강제로 낡은 건물 입구에 끌려갔다. 여긴 예전 오 아주머니의 집이 아닌가? 그녀 역시 한때 이곳에 머물렀었다.강지훈이 문을 열고 말했다.“아가씨, 들어가세요.”방안은 조명을 켜고 있지 않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소월은 안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무서운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장소월은 즉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강지훈은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곧바로 거칠게 여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안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닫아버렸다.장소월은 그렇게 바닥에 쓰러졌다. 몇 초 뒤, 그녀의 시선 속에 검은색 구두 한 쌍이 들어왔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손 하나를 그녀의 눈앞에 내밀었다. 장소월은 손으로 바닥을 짚고 힘겹게 뒤로 물러
“경고하는데 나한테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이미 영수에게 연락했어. 아마 곧 올 거야.”“소월아, 김남주가 돌아왔어. 강영수가 아직도 너한테 신경이나 쓸 것 같아?”“그럼 넌? 백윤서한테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거야? 오빠...”그 마지막 두 글자를... 장소월은 입술을 꽉 깨물고 간신히 내뱉었다. 남자의 가슴팍을 애써 밀어내던 그녀는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담배 향을 맡았다. 담배 끊었다고 하지 않았나?그 말은 전연우의 입도 다물게 했다.“내가 예전에 널 좋다고 따라다닐 땐 날 쳐다보지도 않았었잖아. 이제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어? 전연우...”장소월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너 설마 날 좋아하게 된 거야?”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장소월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녀의 목덜미에 뜨겁게 키스했다.“장소월, 네 생각 그대로야!”그의 목소리 또한 더욱 거칠어졌다.“하지만... 김남주가 돌아오고, 강영수가 날 떠난다고 해도 너와 난 절대 안 돼. 만약 날 한낱 노리개로 생각한다면 난 확 죽어버릴 거야...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너에게서 벗어날 거라고.”장소월의 목소리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녀가 내뱉은 말 한 글자 한 글자는 전연우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박혀버렸다.남자는 이어 손가락을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집어넣었다. 두 사람의 코끝이 맞닿았다.“장소월, 아직도 모르겠어? 넌 평생 날 벗어나지 못해.”전연우는 폭력적으로 그녀를 침대로 밀쳤다. 이어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얼굴을 움켜쥐고는 키스를 퍼부었다. 순간 장소월의 옷 거지들이 침대 밑으로 연이어 떨어졌다.“이거 놔, 으악. 날 놔줘...”장소월은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발길질했다. 그 틈을 타 그녀는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알몸을 감쌌다. 그녀의 속눈썹이 눈물에 젖어 흘러내렸다.아까 침대에 놓여있던 속옷도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장소월은 참혹한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그녀는 전연우의 잔인함을 얕잡아봤다. 아무리 눈물로 애원해도 전연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강제로 조금 전의 그 속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얇은 속옷은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다.전연우는 투명하고 찐득한 그 액체를 장소월에게 보여주고는 그녀의 하얀 가슴에 발라놓았다.“원해? 빌어. 그럼 해줄게.”장소월은 오늘 절대 도망치지 못할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장소월의 온몸은 바들바들 떨렸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옷을 모두 다 벗고 알몸으로 앉아있은 지 30분이 지나니 입술까지 하얗게 질렸다.전연우는 참아왔던 욕망을 거칠게 분출하며 그녀에게 한 번 또 한 번 연이어 오르가즘을 선사했다. 이와 동시에 그녀의 아랫배에서 통증이 밀려왔다.이어 그녀는 자세를 바꾸었다. 전연우는 그녀의 두 손으로 벽을 지탱하게 하고는 두 다리 사이로 자신의 물건을 밀어 넣었다.마지막 신음 소리와 함께 장소월은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풀리자 장소월은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시간은 이미 새벽 3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욕실에서 나온 뒤 단추를 잠그며 냉담한 얼굴로 널브러진 여자를 쳐다보았다.“일어나서 옷 입어!”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자 전연우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흐르는 검붉은 피에 닿았다.장소월이 신음했다.“너무 아파.”남자는 곧바로 간단히 피를 닦아낸 뒤 코트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는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잠이 깬 서철용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리며 말했다.“너 미쳤어? 이 야밤에 무슨 전화야.”전연우는 종래로 이런 공포감은 느껴본 적이 없다.그가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 걸까.그는 검사실에 들이닥쳤다. 일반적인 경우 검사실은 환자 가족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나 서철용은 전연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은밀한 곳의 검사는 전연우가 직접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전연우는 극도의 짜증이 몰려왔다.“장소월, 난 분명히 말했어. 이건 시작일 뿐이라고.”“만약 네가 그따위 동정심으로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바꾸지 못한다면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겠어?”그가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싫어! 내 몸에 손대지 마!”장소월이 분노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그때, 서철용이 문을 두드렸다.“두 사람 잠시 싸움을 멈춰요. 전연우, 할 말 있으니까 나와.”전연우는 그녀를 힐끗 보고는 병실을 나갔다. 서철용은 손에 들고 있던 장소월의 검사 기록을 보여주었다.“장소월이 예전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는 거 알고 있었어?”전연우가 말했다.“그게 뭔데?”서철용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모르는 것이 틀림없다.“우울증 환자는 약물로 마음을 안정시켜야 해. 아니면...”그때 간호사 한 명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서 선생님, 저길 보세요. 환자분 뛰어내리려고 해요.”장소월은 의자를 밟고 창가에 올라가 있었다.전연우는 곧바로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서철용은 냉담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렇게 빨리 포기할 줄은 몰랐다.'장소월... 넌 강영수를 곁에 둔다고 해도 전연우를 벗어날 수 없어.네가 경험한 건 전연우가 겪은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결정적인 순간, 전연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곳은 15층이라 떨어지면 의심의 여지 없이 목숨을 잃는다.장소월은 절망이 가득 남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 충동은 이렇듯 아무런 징조도 없이 생겨난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생각한다.자살이라는 두 글자는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악마처럼 달콤하게 유혹한다.장소월도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하고 또 통제했다. 하지만 행동은 그녀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장소월은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혼자 걷더라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