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서 벌벌 떨며 얼굴에 핏기가 없는 백윤서를 바라보며, 전연우는 그녀를 품에 끌어당겨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오빠, 너무 아파요. 연우 오빠.”“약 어딨어?”백윤서는 숨이 막힐 것 같았고, 겨우겨우 숨을 쉬었다. “가방, 가방에.”전연우는 서둘러 백윤서를 소파에 앉혔고, 하인은 백윤서의 가방을 가져왔다.남자는 가방을 열고 안에 든 약을 찾아 백윤서에게 두 알 먹였다.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백윤서는 약을 먹고 난 후 호흡이 점차 가라앉았다.마침 구급차가 도착했고, 전연우가 백윤서를 안아 들자, 인시윤이 나섰다.“저도 같이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요.”전연우가 그녀를 보는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구급차에서 백윤서는 줄곧 전연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연우 오빠, 무서워요.”“괜찮아. 이제 괜찮아. 다 나으면 다시 얘기해.”전연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사실을 알게 된 장해진은 크게 화를 냈다.인시윤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방 안의 물건들을 모두 박살 냈고, 바닥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하인들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나쁜 놈, 감히 나를 그렇게 대해? 내가 초대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번 파티에 올 자격도 없었다고! 고작 백윤서 때문에 나한테 화를 내?”“내가 백윤서를 물에 떨어뜨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 꼴을 보이냐고! 전연우! 미치겠네 정말!”하인 중 한 명이 다가가 위로하듯 말했다.“아가씨, 이런 일로 화내실 필요 없으세요. 사모님께서 분명히 잘 조사하실 겁니다.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네, 아가씨. 그분도 너무 걱정되는 마음에 잠시 말이 심하게 나왔을 거예요!”인정아가 밖에서 들어와 난장판이 된 방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고작 남자 때문에 이 난리를 쳤어? 시윤아, 너 전에는 이런 애 아니였잖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거야?”인시윤은 서둘러 물었다.“엄마, 조사한 건 어떻게 됐어요? 누가 밀었어
월요일, 장소월은 지각하지 않고 아침 자율 학습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교실에 도착했지만, 인시윤과 백윤서가 보이지 않았다.아침 자율 학습에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전 내내 백윤서가 보이지 않았다.‘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장소월은 백윤서가 사고를 당한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어 이미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았다.점심에 소현아와 점심을 먹으며 식당에서 백윤서에 관해 물었다.소현아: “나도 너희 반 애들한테 들었는데 윤서 입원했대. 인씨네 집에서 실수로 수영장에 빠졌다고 하던데? 참, 나 오늘 강용도 못 봤어. 지난주 금요일부터 수업에 나오지 않았어.”장소월은 담담하게 식사를 했다.“내 임무는 이미 완성했어. 서울대에 갈만한 성적을 받았으니, 퇴학한다고 해도 이제 나랑 상관없어. 그런데 넌 왜 강용에게 관심을 가져?”소현아는 고개를 숙였다.“너희 전엔 좋은 친구였잖아...”강용은 보나 마나 데이트를 하러 갔을 것이고, 백윤서가 수영장에 빠진 건, 과연 진짜 사고일까?장소월은 이 일이 절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소월아, 걱정되면 내가 병원에 같이 가줄까?”장소월은 소현아를 바라보았다.‘현아를 데리고 간다고? 그래. 현아가 있으면 전연우 그 인간도 나한테 허튼짓 못하겠지!’백윤서는 장가에서 십여 년을 살았다. 가문의 호적에 오르지 않았더라도, 확실히 장소월은 가야 하는 것이 맞다.“그래, 그럼 수고해줘.”“수고는 무슨. 우린 친구잖아! 네가 날 그렇게 많이 도와줬는데 이 정도 일이야 당연히 도와야지.”소현아는 가방을 집어 들고 지퍼를 열며 말했다.“참, 소월아. 넌 내가 학교에서 사귄 첫 번째 친구야. 엄마 아빠가 너한테 주라고 챙겨줬어.그리고 가방의 물건들을 하나둘씩 꺼내며 말했다.“이건 인삼, 녹용, 그리고 이 사프란... 전부 우리 집에서 직접 키운 거야.”“이렇게 비싼 물건은 받을 수 없어.”어쩐지 오늘 소현아의 가방이 불룩 튀어 나왔더라니!“아니야, 안 비싸
소현아는 장소월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분명 내가 말해줬는데?’오 아주머니는 그들의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 테이블 위에 놓았다.강한 그룹에서 회의를 하던 강영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고, 진봉은 말없이 에어컨 온도를 높였다.‘바닷바람을 쐬고 감기에 걸리시면 안 되는데.’백윤서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학교에서 이미 나에 대한 소문이 퍼졌지?”“전 금방 해성에서 돌아왔어요. 윤서 언니 별일 없으면 됐어요.”오 아주머니: “점심밥 드셨어요? 제가 뭐 좀 사 올까요?”장소월은 서둘러 말했다.“아녜요. 오기 전에 먹고 왔어요.”전연우는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고, 오 아주머니도 의자를 하나 가져왔다.“여기 앉으세요. 서 있기 힘들죠.”소현아: “괜찮아요. 안 힘들어요.”“윤서 언니 괜찮으면 됐어요. 저도 곧 학교로 돌아갈 거예요.”전연우: “마침 나도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데려다줄게.”장소월은 당연히 그와 함께 가고 싶지 않아 거절했다.“우리 택시 타고 가면 돼.”“여기 오느라 돈도 많이 썼는데 연우 오빠가 너희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도 당연해. 소월아... 거절하지 말아줘.”백윤서가 이렇게 말하니 장소월도 거절할 도리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세 사람은 오래 있지 않고 주차장으로 향했다.전연우는 조수석 문을 열었고 그의 뜻은 분명했다.“나랑 현아는 뒷좌석에 같이 앉으면 돼.”“내가 직접 앉혀줘?”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말투였다.소현아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고 입을 열었다.“괜찮아, 소월아. 나 혼자 앉아도 돼. 너 앞에 앉아.”소현아는 스스로 뒷좌석의 문을 열고 들어갔으니 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았다.가는 내내 차 안의 분위기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전연우가 풍기는 기운은 바깥 날씨처럼 차갑고 살을 에는 듯했다.장소월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그의 모습을 보니 누군가 백윤서를 해치려 했기 때문에 이토록 화가 났을 것이다.학교 문 앞에 도착하고, 장소월은 바
차는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도착했다. 주위는 산들로 이어져 있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었다.오는 길에 카메라 한 대도 없고, 차도 한 대 보이지 않았다. 차가 멈추자 장소월은 안전벨트를 잡고 몸을 움츠렸다.“뭐 하려는 거야?”남자의 하얀 손가락은 핸들에 살짝 걸치고 있었다.“윤서 언니 일은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백윤서이니, 장소월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설명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는 몸을 숙이더니 긴 손가락으로 여자의 머리를 잡고 키스를 퍼부었다.“읍!”장소월은 가볍게 소리를 내고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교복도 그에 의해 헝클어지고 말았다.단추가 열리는 것을 느낀 그녀는 힘껏 그를 밀어내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에 뺨을 한 대 때렸다. 입고 있는 옷을 꽉 움켜쥐고 속눈썹에 영롱한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진정하려고 노력했다.“전연우. 제발 이러지 마! 윤서 언니랑 사귀고 있잖아!”전연우의 눈빛은 너무 어둡고 깊어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입꼬리를 올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 입가의 액체를 닦아주었다.“그게 뭐 어때서? 너도 좋아하잖아? 네 몸이 반응하고 있어. 대체 뭐가 무서운 거야? 소월이는 오빠를 가장 좋아하잖아.”“난... 아니야!”장소월은 시선을 돌리며 그의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 했다.“거짓말.”전연우는 그녀를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만지지 마!”여자의 체향을 맡았지만 예전의 달콤한 향기는 사라지고 다른 남자의 차가운 냄새만 가득했다.남자의 눈에는 온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오직 강한 소유욕만 타올랐다.그의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가 얇은 옷감을 헤치고, 거친 손바닥이 민감한 곳으로 향하는 것을 느낀 장소월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내가 영수한테 말할까 봐 겁나지도 않아?”강영수라는 이름을 듣고, 남자는 동작을 멈추었다.장소월은 여전히 그를 밀어낼 수 없었고, 눈물 젖은 얼굴을 그의 가슴에 파묻고 흐느꼈다.“대체 왜... 전에는
백윤서를 제외하고 그는 거의 아무런 약점이 없었다.하지만 이런 이유로 백윤서는 그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다.전연우와 백윤서가 사귀게 된 것은 장소월이 예상했던 일이다.만약 백윤서가 없었다면 전연우는 반드시 인시윤과 사귀었을 것이고, 그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것이다.그의 수단은 늘 다른 사람의 상상을 초월했다.“언제부터 나에 대해 이렇게 잘 알았지? 응?”전연우는 아무 감정 없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녀의 귓가에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눈엔 여전히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가 이런 모습일수록 전연우는 더 더럽히고 싶었고, 가장 저급한 방식으로 그녀를 침대에 눕혀 죽도록 울리고 싶었다.이런 더러운 마음은 그의 꿈에 종종 나타나곤 했다.하지만 아직은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지금 전연우의 마음은 마치 하수구에 있는 도랑에서 뒤틀리는 구더기 같았다. 장미꽃 가지 위로 조금씩 기어올라 그 꽃잎을 천천히 먹어 자신의 일부로 만들려 했다.“소월아, 잊지 마.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야.”전연우의 갑작스러운 부드러운 행동에 장소월은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랐다.“강영수... 진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어? 왜 여전히 이렇게 순진해?”장소월은 단번에 반박했다.“영수는 날 해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으니까. 너만 계속 나한테 상처를 주고 있어. 내가 수술을 했을 때, 영수는 내가 아이를 못 가져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어. 나와 결혼하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어.”“그래서 흔들렸어?”“맞아!”장소월은 그를 바라보며 목소리가 떨려왔다.“지금 상황을 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난 어떤 처지에 이를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영수는 날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흔들리는 건 당연하잖아? 적어도 영수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강요하지 않아!”“넌 절대 영수랑 비교가 안 돼!”만약 전연우가 오늘 정말 여기서 그녀에게 무리한 행동을 한다면, 그녀는 높은
장소월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괜찮아. 나한테 무슨 볼일 있어?”소현아는 주위를 돌려본 후에야 장소월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강용이 6반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설채윤도 함께 갔어.”이 소식을 들은 장소월은 담담했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강용의 일은 나한테 말하지 않아도 돼. 나 화장실 갔다 올게.”...“이건 왜 찾는 건데? 아무리 찾아도 답은 똑같아.”서철용은 들고 있던 노란 서류 가방을 맞은편 남자 앞에 놓았다.맞은 편 남자의 어두운 안색을 바라보며, 서철용은 더욱 흥이 났다.타인의 고통은 곧 그의 희열이었다.그는 옆에 있는 요염한 옷을 입은 여자를 껴안고 다리를 꼬았다.“네 요구대로 십여 번을 반복 검사했어. 결과는 다 똑같아. 만약 못 믿겠다면 촬영한 영상을 보내줄까?”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류 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어두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입 조심해.”“걱정 마, 나 입 무거워. 전연우, 조심해.”전연우가 떠나고, 옆에 있던 여자가 남자의 품에서 아양을 떨었다.“자기야, 저 사람한테 뭐 준 거야?”서철용은 여인의 귀에 대고 숨 쉬며 따뜻한 온기로 말했다.“비밀!”곧 옆방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서철용을 보더니 안색이 급변하여 옆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더니 급하게 화장실로 갔다.서철용은 옆에 있던 여자를 두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따라나섰다.“자기야, 어디가?”서철용은 대답하지 않았다.배은란은 화장실에 꽤 오래 머물렀다. 지난번, 누군가 그녀의 술에 약을 탔고, 서철용과 관계를 맺었다.그녀는 서철용의 형수였으니, 당연히 허용되지 않는 관계였다.30분이 지난 후, 배은란은 그가 이미 떠났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하지만 출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남자를 보았다.배은란이 겁에 질린 듯 고개를 돌려 뛰려 하자, 남자는 빠른 속도로 그녀를 반대편 비상계단 쪽으로 끌고 갔다.남자는 그녀의 두 손을 벽에 누르고, 여자의 목덜미에 키스했다.배은란은 꼼짝도
“좋아. 어떻게 가만두지 않을 건데? 날 깨물 건가? 아니면 단단히 끼워서 나오지 못하게 할 건가? 응?”배은란은 수줍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서철용!”“형수, 또 하고 싶어?”배은란은 서씨 집안에서 늘 순한 성격이어서 시부모님이 꾸짖어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든 가방을 그대로 내려치고, 하이힐을 신은 발로 그의 발등을 힘껏 밟았다.서철용은 숨을 들이켜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배은란은 얼굴을 붉히며 가방을 들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도망갔다. 뒤에 있는 사람이 행여나 쫓아올까 봐 두려웠다.차에 앉아 거울을 통해 목에 남은 자국을 보고는 눈썹을 찡그렸다. 파운데이션을 꺼내 치욕스러운 붉은 자국을 가렸다.지난번 그날 이후로 그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심지어 거짓말을 하고 외지에 가서 진찰을 받고 일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시동생과 관계를 맺은 사실을 집안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다.‘절대 이대로는 안 돼.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깔끔하게 정리해야겠어.’남천 그룹.기성은은 서류를 전달하려고 노크를 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하지만 전연우는 보이지 않고 우연히 그 문서를 보았다.DNA 감정서.누구와 유전자 검사를 한 것일까?“뭘 보는 거죠?”전연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휴게실에서 나오더니, 휴지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아닙니다!”기성은은 바로 시선을 옮겼다.“대표님, 이건 오늘 정리한 회의 문서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사인하셔야 할 프로젝트도 있습니다.”“알겠어요.”기성은이 사무실을 떠난 후, 전연우는 그 문서를 분쇄기에 넣었다.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적어도 영수는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강요하지 않아.”“넌 절대 영수랑 비교가 안 돼!”전연우는 지금처럼 짜증 나고 마음이 심란한 적이 없었다. 저녁 8시, 그는 전화를 받고 사무실을 나왔다.기성은이 마침 문밖에 있었고, 그는 전연우의 뒤를 따라갔다.“대표님, 지금 누군가
전연우는 차가운 눈으로 황준엽의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인턴사원을 보며 다가갔다. 기획부 팀장도 바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여기 앉으시려 하잖아? 얼른 일어나지 않고!”이유미는 구세주를 만난 듯 서둘러 말했다.“네, 팀장님.”하지만 그녀가 일어나기도 전에, 황준엽은 그녀를 석 잡았다.“참, 대표님이 앉으면 앉는 거지 너는 왜 일어나? 술도 못 마시면서 앞으로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보아하니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네? 자... 내가 가르쳐줄게.”“저희 회사 직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전연우는 황준엽의 손목을 덥석 잡고 점점 힘을 주었다.갑자기 분위기는 굳어졌다.황준엽은 손목의 통증을 느꼈지만, 많은 사람들의 앞이라 체면 때문에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저 헤헤 웃으며 말했다.“방금 장난이었어요. 전 대표님 여기 와서 한 잔 받아요. 오해를 풀자고요.”이유미는 곧 기획부의 팀장에 의해 끌려나갔고, 몇 명의 고참 직원만 남았다.몇 년 전, 황준엽은 실수로 사람을 치어 죽였는데, 상대 가족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고, 장씨 가문에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장씨 가문의 일 처리 수단에 대해서 황준엽은 잘 알고 있었다.서울 지하세계의 왕이라 위에서도 개입하기 어려웠다.그는 전연우를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장씨 가문은 그저 지하세계의 통치자일 뿐이니...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황준엽은 엄청난 재벌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신만으로 전연우를 발밑에 밟을 수 있었다.전연우와 같은 신분은 평생 열심히 노력해도 그를 따라올 수 없었다.업계 협력 미팅의 절차에 따라, 그들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그다음은 천하일성의 카지노로 향했다. 이곳은 영업 허가증도 있는 정규적인 카지노였다.세 시간 후, 엘리베이터 안은 온통 황준엽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전 대표님,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요. 자그마치 2억을 잃게 했네요. 이 프로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
온몸에 토사물을 뒤집어쓴 강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머리 위에서 소현아는 계속하여 토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에도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강지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고 화장실로 데려갔다.엉망진창이 된 바닥과 자신의 몸을 확인한 강지훈의 몸에서 오싹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주... 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전화 한 통에 달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정리된 후였지만 주변을 맴도는 살기는 여전히 무시무시했다.“저녁에 대체 뭘 먹인 거야!” 강지훈이 소리쳤다.규영과 미진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냥 중국 요리 몇 가지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좋아하는 음식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드셨습니다.”강지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장 요리사 불러와. 너희 둘은 알아서 벌을 받을 준비 하고.”곧이어 요리사부터 식재료 구매 담당과 음식을 나르는 도우미까지 모두 불려왔다. 그 누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얼마 후 소현아는 마침내 구토를 멈추고 창백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너무 힘들어 눈물까지 글썽거렸고 눈가도 붉어져 있었다.“아까 규영 씨랑 미진 씨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소현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강지훈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처벌받으러 갔어.”소현아는 못마땅한 듯 그를 쏘아봤다. “왜 벌을 줘요? 제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데. 배가 불편한데도 아기가 노는 거라고 착각해서 계속 먹었던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어요!”규영과 미진은 그녀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었다. 강지훈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강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평소에도 많이 먹었잖아. 언제 이렇게 심하게 토한 적 있었어?”소현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평소에도 아주 많이 먹는다. 오
소현아는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단순히 아기가 뱃속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며 입을 크게 벌려 음식을 삼켰다.그렇게 한 술씩 떠먹다 보니 어느덧 세 사람 몫의 음식을 모두 비워냈다. 그러고는 꺼억 트림까지 내뱉었다.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사람들은 덩달아 만족감을 느꼈다.특히 직접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준 미진은 벅찬 성취감까지 느끼는 듯했다.“오늘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나왔나 봐요. 기억해뒀다가 요리사님께 말씀드려서 앞으로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어요.”소현아는 급기야 목구멍까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먹었던 음식들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애써 눌러 참으며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설명했다.“저는 뭐든지 다 잘 먹어요. 가리는 거 없어요. 다만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가고 싶어서 밥을 안 먹는 거예요.”규영과 미진이 무언가 말을 하려던 찰나 방문이 활짝 열렸다.강지훈이 제복을 입고 검은색 군화를 신은 채 매서운 냉기를 휘감으며 들어왔다.“주인님.”규영과 미진은 즉시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공손하게 인사했다.강지훈은 곧장 소현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가에 묻은 기름때를 발견하고는 휴지로 닦아주었다.“오늘 많이 먹었어?”규영과 미진이 대답했다.“네. 모두 드셨습니다.”강지훈은 텅 빈 식판을 힐끗 보고는 명령했다.“나가 봐.”곧이어 방 안에는 그들 둘만 남게 되었다.강지훈은 외투를 벗고 셔츠 차림으로 성큼성큼 침대 곁으로 걸어가 앉았다.“이리 와.”소현아는 배를 감싸 안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싫어요. 당신 손이 닿으면 너무 아프단 말이에요. 아기도 당신 싫어해요. 매번 당신이 만질 때마다 발로 찬다고요. 발로 차면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은 매일 총을 잡고 있는지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런 손이 얇고 부드러운 피부에 닿았으니 무척이나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졌을 것이다.더욱이 그는 요즘 그녀의 배를 만지는 것에 푹 빠져버렸다. 만질 때마다 너무 아파 미칠 지경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