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하인의 표정을 보고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장소월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전생에 강만옥은 확실히 요맘때 아파서 병원에 보름 넘게 입원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이번엔... 왜 집에 있지?’그녀가 다시 태어난 후, 분명히 뭔가 바뀐 것 같았지만, 또 변하지 않은 듯했다.사건의 방향은 애초에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런 상황이 장소월은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 전연우가 자신에게 약을 먹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했다. 자궁 기형 외에 또 다른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암세포 병변일까?’장소월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보름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5층으로 올라가자, 자신의 문이 이미 뜯겨 일반 방문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의 캐비닛과 욕실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침대의 위치가 바뀌었다. 다른 변화들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그녀의 침대는 강가로 옮겨 갔으니, 이 침대는 아마 새로 산 모양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그림들이었다.하인이 그녀의 물건을 옮기고 있을 때, 장소월이 서둘러 물었다.“제 그림은요? 어디 갔어요?”“아가씨, 그건 모르겠네요.”그림책!강영수가 선물한 그림책...장소월은 서둘러 드레스룸으로 달려가 캐비닛 맨 아래, 가장 깊이 숨겨져 있는 물건을 찾았다.중요한 물건을 발견한 장소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사해서 다행이야.”방안의 발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재빨리 자신의 그림을 숨겨 옷으로 덮고 서랍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전연우는 그녀의 방을 훑어보았다.“인테리어 괜찮네. 저녁에 바람이 많이 부니 감기 걸리지 않게 이불 잘 덮고 자.”장소월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감기에 걸리든 말든, 전연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책가방에 있는 문제집을 책상 위에 놓고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장소월은
“다 안다고? 그럼 어젯밤에는 왜 영수한테 물어봤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응?”전연우는 장소월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를 마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아니면, 소월이는 오빠가 가르쳐주는 게 싫어?”그는 벌을 주듯 장소월의 허리를 꼬집었다.장소월은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번에 그녀의 허리를 꼬집은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다.“오해야, 그 문제들은 수업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었어.”“그래? 그럼 한 번 봐봐.”장소월은 시선을 피하며 점점 짜증 나는 말투로 말했다.“전연우, 계속 이러면 나 진짜 피곤해. 나도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죄지은 사람처럼 날 쳐다보지 말아 줄래? 한가해? 그냥 윤서한테 가 봐.”전연우는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넌 너고, 윤서는 윤서야. 너랑 놀아주려고 왔는데 왜 화를 내?”전연우는 장소월의 거짓말을 한눈에 알아챘다.장소월은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할 때 늘 상대를 쳐다보지 못했다.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장소월은 그의 눈에 서리가 낀 것을 알아차렸다. 단둘이 있을 때 장소월이 백윤서를 언급하면, 그의 눈은 늘 이렇게 차가워졌다.지금처럼.장소월은 지금 집에 있는 이상, 전연우가 자신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확실할 수 없었다. 전연우처럼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소심한 남자를 계속 긁으면 이득이 없었다.장소월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그럼 이거 놔.”전연우는 순순히 손을 뗐고, 장소월은 책상에 앉아서 구겨진 옷을 정리했다. 고건우가 준 문제집을 꺼내어 표시했다.“이거.”장소월은 손가락으로 짚었다.전연우는 필통에서 펜 하나를 꺼내 들고 문제를 보았다.“대학교 미적분?”그는 책을 집어 들고 표지를 보았다.“이건 너무 어려워. 너한테 맞지 않아.”장소월은 전연우의 학력이 결코 높지 않은 것으로 기억했다.그는 무엇을 하든 독학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전연우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연우 오빠!”두 사람의 분위기가 굳어졌을 때 복도에서 백윤서의 목소리가 들렸다.곧 그녀의 모습은 문밖에 나타났다.전연우: “무슨 일이야?”백윤서: “아저씨가 오빠더러 서재로 오라고 하셔.”“알겠어!”장소월: ‘할렐루야!’전연우와 백윤서가 함께 떠난 후, 장소월은 즉시 방문을 잠갔다.서재.“부르셨어요?”장해진은 향을 세 개 피워 이마 앞에 놓고 경건하게 세 번 절하고는 향로에 꽂고 돌아섰다.“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 많은 일들이 생겼다며? 나한테 보고할 것 없어?”“도원촌 일은 확실히 제가 소홀했어요. 제가 소월이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요. 어떤 처벌도 기꺼이 받겠습니다.”전연우는 고개를 숙였다.“누구 짓인지 조사했어?”“모두 진열의 사람들이었어요. 전에 수단을 써서 감옥에 들여보냈더니,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 소월이를 노렸어요.”장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어떻게 들여보냈으면, 지금 같은 방법으로 다시 들여보내면 그만이다. 필요하면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 그 집안이 나서면,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네.”“서울에서 발붙이고 자리를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소월이를 도와 강가에 시집 보내야 앞으로 네가 내 자리를 인수해도 뒤탈이 없어.”“네, 알겠습니다.”전연우의 검은 눈에는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소월이 일 말고도 네 일도 잊지 말아. 인씨 가문의 일도 서둘러.”“안심하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나가 봐.”“네.”“밖에 있는 여자 잘 처리해. 절대 네 앞길을 막아서는 안 돼.”전연우가 나온 후, 입구에서 엿듣고 있던 백윤서를 만났다.남자는 무섭게 눈살을 찌푸리고, 백윤서의 손목을 덥석 잡고 2층 베란다 쪽으로 끌고 갔다.“누가 너더러 엿들으라고 했어? 아저씨가 모를 것 같아?”백윤서는 상처 입은 눈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엿듣지 않았으면, 오빠랑 인시윤 일 절대 나한테 말해주지 않을 거지? 분명 약속했잖아요. 나 혼자 내버려 두지
장소월은 그들의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 간식거리를 가지러 아래층에 간 것인데 그와 맞닥뜨릴 줄이야.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윤서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2층으로 뛰어 올라가던데.”전연우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묻지 마.”그녀는 그저 화제를 만들어 조금 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방금 밥 먹었잖아. 왜 또 배고픈 거야?”그녀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그냥 입이 좀 심심해서.”“그럼 난 올라갈게.”장소월이 한 발을 채 떼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그녀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뭘 하려는 거야?”“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싫어!”장소월이 단호히 거절했다.전연우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장소월을 보고는 그녀의 손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장소월은 손에 쥐고 있던 컵 안 위태롭게 출렁이는 우유를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이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우유를 쏟잖아!”하마터면 그녀의 손이 데일 뻔했다.“차에 타서 마셔.”장소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그녀를 조수석에 밀어 넣고는 허리를 굽혀 안전벨트를 매준 뒤 운전석에 탔다.장소월이 우유컵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 이미 서울시 모든 병원에 가봤는데 소용없었어.”“내 몸에 약을 넣을 때 고려했어야지. 후천적 자궁 결함은 치료가 안 된다는 걸.”장소월은 한 번도 그를 완전히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는 분명 여러 차례 그녀에게 지독한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녀를 걱정한단 말인가?여기에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왜 하필 오늘 급히 병원에 가자고 하는 걸까! 장해진과의 대화를 끝마친 직후인 지금 이 시간에 말이다.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원 별장을 떠났다.장소월이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손에
전연우는 총칼이 빗발치는 피로 얼룩진 어둠의 세계를 진정으로 경험해온 사람이다. 장해진에게 그동안 해온 끔찍한 일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그중 절반은 전연우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반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귀한 아가씨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왔다.그녀는 어쩌면 말싸움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변에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어 다들 그녀만 보면 멀찌감치 피해 다녔으니 말이다.그녀는 그렇게 일생을 걱정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전생에서 송시아가 그녀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라고 도발한 적이 있었다.사실 송시아의 말이 맞다. 그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전연우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제외하면, 그저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예전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수많은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송시아처럼 능력 있는 여자야말로 전연우와 어울리는 배필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가장 최선의 파트너일 테니 말이다.그들의 시선 속에서 장소월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때문에 그의 옆에 있을 때마다 늘 무력감과 비참함에 몸부림쳤었다.“5년 전.”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전연우는 심장을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만 같았다.5년 전?당시 그녀는 고작 13살이었다.그토록 어린아이를 상대로 시작했었구나...“약은 어디에 넣은 거야? 내가 먹는 음식 안에? 아니면 물 안?”“도착했어! 내려.”병원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는 서울 강남 병원이라는 여섯 글자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전연우는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죽을 때 죽더라도 왜 죽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전연우는 순간 담배 갈증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손을 창문에 걸쳤다.“그걸 안다고 한들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뭔데!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줄게. 우유에 넣었어. 그리고 그 약은 외국산
입안 가득 풍겨오는 담배 냄새에 장소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다.장소월은 검사실로 끌려들어갔다.기계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철용이 여자처럼 생긴 요염한 얼굴을 들이밀었다.“오랜만이에요! 꼬마 아가씨.”“왜 당신이 여기에!”장소월은 곧바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이 검사를 거부하려 했다.서철용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꼬마 아가씨, 내가 보는 게 싫어요?”“저 검사 안 받겠어요.”서철용이 오른쪽 주먹을 말아쥐고 입 옆에 가져가고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담당의는 내가 아니니까. 맹세할게요. 절대 보지 않겠다고.”“아가씨, 창피해하지 말아요. 의사에겐 남녀구분이 없답니다. 이번 검사를 맡은 사람은 저예요. 서 선생님, 아가씨를 놀라게 하지 말고 이제 나가세요!”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 의사였다.장소월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서철용이 나간 뒤 검사가 진행되었다. 부끄러운 자세 때문에 장소월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두 발을 m자 모양으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파란색 천이 올려졌다. 순간 무언가 들어가는 듯한 불편함에 장소월이 살짝 몸을 움직였다.안에 자리 잡고 있는 투명한 막을 발견한 의사는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세상에. 오늘 환자가 너무 많아 아직 어린 소녀라는 걸 깜빡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바꿀게요.”장소월은 초음파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병실 밖 흡연 구역.방 안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바닥엔 적지 않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다.목에 청진기를 건 서철용이 두 손을 가운 호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이미 너한테 말했잖아. 아무리 검사를 많이 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지금으로선 자궁 척출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그토록 충고했는데 지금 네 상태를 좀 봐!”전연우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넌 말이 너무 많아!”서철용은 피
“보호자분의 의견은요?”전연우가 어두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연우를 원망하며 분노하는 대신 아무 일도 아닌 듯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 아이 뜻대로 해주세요.”대답을 마친 전연우는 마음이 복잡해져 자리를 박차고 문을 나섰다.서철용은 은은한 웃음을 지은 채 분노하며 멀어져가는 전연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그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전연우는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서울 최고 미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여자아이를 옆에 두고 있는데, 속세를 떠난 스님이라고 해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그게 전연우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자를 손에 넣지는 못한 듯하다!두 사람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거의 어두워져 있었다.장소월은 점심에 갖고 나왔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약을 우유에 넣었었다니.우유와 관련된 음식이라면 죽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다.전연우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차 안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에 답답해진 장소월은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었다.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이 닫혀버렸다.“날이 추워 찬바람을 맞으면 안 돼. 감기 걸려.”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반질반질한 자신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아버지한텐 알아서 숨겨줄 거지?”“뭐 사실 큰일도 아니야. 난 결혼 생각도 없으니까.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실버타운에 가면 되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주는 사람도 있고...”돌연 전연우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그래서... 너 날 미워하는 거야? 장소월... 너한테 무슨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죽어야 마땅하다.장소월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난 이미 한 번 죽었어. 그럼에도 여전히 증오가 남아있다면... 전연우! 나도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바로 러시아의 무르만스크였다.오로라 외, 사슴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도 있었다. 그는 검은색 패딩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마에 비집고 나온 앞머리엔 하얀 서리가 덮여 있기도 했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예쁘네. 고마워.」고마워란 말엔 강용이 보내온 모든 풍경 사진을 봤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사실 이곳 무르만스크엔 강용 혼자만 온 것이었다. 그의 뒤에 세워져 있는 텐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그는 열다섯 시간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고 그 과정에서 여행객들을 만났다.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용, 밥 먹어.”(러시아 어)강용은 장소월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뒤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설 연휴.전연우와 백윤서는 유리창 곳곳에 풍선과 예쁜 전구를 달아놓았다.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서 설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허리를 다쳤던 오 아주머니는 설 연휴에 맞춰 병원에서 장씨 저택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도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이대로 빈둥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방을 메고 아래로 내려갔다.오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곧 식사 시간인데 어디에 가려고요?”장소월이 대답했다.“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가려고요.”“방학도 했는데 또 공부하려고요? 집에서 쉬어요. 만두가 곧 완성돼요.”“아가씨, 아가씨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도우미 한 명이 두꺼운 편지 봉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지금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네요. 정말 신기해요. 그것도 러시아에서 보낸 거예요.”도우미의 말을 들은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번에 강용이 떠올랐다.장소월이 편지를 받아든 순간, 물건을 사러 갔던 전연우와 백윤서가 두 손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도우미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전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은 보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이게 그의 새해 선물인가?오 아주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