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96화

Author: 차라
전연우는 책상 위의 야식 대신 아직 처리하지 않은 서류를 펼쳤다.

“이건 2학년 상학기 지식 범위 아니야? 너한테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간 네가 이런 문제조차 풀지 못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야. 혼자 어렵다면 오빠가 과외 선생님을 찾아줄까?”

백윤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빠도 내가 소월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요? 소월이보다 예쁘지 않고, 집안도, 성적도 모두 뒤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전연우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윤서야, 언제부터 너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 거야?”

“하지만 사실이 그렇잖아요. 소월이 앞에만 있으면 난 항상 열등감을 느껴요. 어디를 가든, 학교에 가면 다들 날 장가의 입양 딸로만 생각해요. 주위 친구들도 전부 장소월과 얽혀있고.”

전연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너고, 소월이는 소월이야. 소월이랑 비교할 필요 없어. 내 눈에는 우리 윤서가 최고야. 시간이 늦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돌아가서 쉬어.”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

“먼저 가서 자. 난 아직 볼 서류가 남았어.”

“오빠 이미 며칠 동안 잘 쉬지 못했어요. 장가의 일에 왜 이렇게 필사적이에요? 장가는 어차피 장소월 거잖아요.”

전연우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백윤서는 깜짝 놀랐다.

“미안, 난 그저 오빠가 걱정돼서 그랬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잖아요.”

“그만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가서 쉬어.”

“알... 알았어요.”

백윤서는 황급히 서재를 나와 문을 닫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장가? 고작 장가 때문에...’

장해진은 음력설 전에 강만옥을 데리고 돌아왔다.

장소월은 이 소식을 오부연을 통해 전달받았다.

내일 장소월은 당연히 집에 돌아가야 했다.

“집사님, 이미 충분해요. 더 이상 챙길 필요 없어요.”

“모두 도련님께서 설날 선물로 보내라고 분부하신 물건입니다. 내일 도련님은 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297화

    식탁에서 장소월은 그릇에 담긴 밥을 쿡쿡 찌르며 고개를 숙인 채 자초지종을 장해진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됐어요.”장소월의 설명을 들은 장해진은 강가의 후계자가 줄곧 옆집에 사는 줄 몰랐다.이 점에 그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식사 예절 선생님께서 널 어떻게 가르쳤어? 식탁에서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했잖아! 강가에서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면 안 돼!”“알겠어요, 아버지.”꾸중을 들은 장소월은 바로 등을 곧게 펴고 단정하게 앉았다. 장해진의 말투는 이전처럼 매섭지 않고 조금 온화했다.“집에서는 이렇게 엄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뒤에서 걸어오는 백윤서는 장소월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오랜만에 만난 백윤서는 훨씬 예뻐졌다.야윈 얼굴에는 살이 좀 올라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졌다.전연우는 손에 찻잎 두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최고급 군산 찻잎이에요.”“신경 써줘서 고맙구나.”“당연한걸요.”하인은 찻잎을 받아갔고, 전연우는 양복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장소월의 앞에 앉았다.“딱 맞춰 왔구나. 밥은 먹었냐?”“아직이요. 방금 윤서를 데리러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으려고요.”하인은 재빨리 식기 두 세트를 더 가져왔다.“잘됐구나. 그럼 함께 먹자. 집에서는 너무 예의를 갖출 필요 없어.”“네.”장소월은 전연우와 장해진이 나누는 회사의 근황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식사했다.남천 그룹은 강한 그룹의 공사를 도맡아 새로운 부지를 개발하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단지를 쇼핑몰로 건설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치를 들으며 장소월은 대략 어디쯤인지 짐작했다.그곳은 앞으로 서울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구역이 될 것이다. 바로 10년 후에...심지어 거리 전체의 가치는 20배를 뛰어넘을 것이다.강영수는 역시 안목이 있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다.적어도 전연우보다 먼저 이 땅을 선점했으니 말이다. 전생에 전연우도 이 땅을 시작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이번 생에는 강영수가 먼저 이 땅을 차지했다.“하지만, 강한 그룹과 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298화

    장소월은 하인의 표정을 보고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장소월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전생에 강만옥은 확실히 요맘때 아파서 병원에 보름 넘게 입원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이번엔... 왜 집에 있지?’그녀가 다시 태어난 후, 분명히 뭔가 바뀐 것 같았지만, 또 변하지 않은 듯했다.사건의 방향은 애초에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런 상황이 장소월은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 전연우가 자신에게 약을 먹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했다. 자궁 기형 외에 또 다른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암세포 병변일까?’장소월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보름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5층으로 올라가자, 자신의 문이 이미 뜯겨 일반 방문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의 캐비닛과 욕실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침대의 위치가 바뀌었다. 다른 변화들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그녀의 침대는 강가로 옮겨 갔으니, 이 침대는 아마 새로 산 모양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그림들이었다.하인이 그녀의 물건을 옮기고 있을 때, 장소월이 서둘러 물었다.“제 그림은요? 어디 갔어요?”“아가씨, 그건 모르겠네요.”그림책!강영수가 선물한 그림책...장소월은 서둘러 드레스룸으로 달려가 캐비닛 맨 아래, 가장 깊이 숨겨져 있는 물건을 찾았다.중요한 물건을 발견한 장소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사해서 다행이야.”방안의 발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재빨리 자신의 그림을 숨겨 옷으로 덮고 서랍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전연우는 그녀의 방을 훑어보았다.“인테리어 괜찮네. 저녁에 바람이 많이 부니 감기 걸리지 않게 이불 잘 덮고 자.”장소월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감기에 걸리든 말든, 전연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책가방에 있는 문제집을 책상 위에 놓고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장소월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299화

    “다 안다고? 그럼 어젯밤에는 왜 영수한테 물어봤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응?”전연우는 장소월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를 마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아니면, 소월이는 오빠가 가르쳐주는 게 싫어?”그는 벌을 주듯 장소월의 허리를 꼬집었다.장소월은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번에 그녀의 허리를 꼬집은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다.“오해야, 그 문제들은 수업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었어.”“그래? 그럼 한 번 봐봐.”장소월은 시선을 피하며 점점 짜증 나는 말투로 말했다.“전연우, 계속 이러면 나 진짜 피곤해. 나도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죄지은 사람처럼 날 쳐다보지 말아 줄래? 한가해? 그냥 윤서한테 가 봐.”전연우는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넌 너고, 윤서는 윤서야. 너랑 놀아주려고 왔는데 왜 화를 내?”전연우는 장소월의 거짓말을 한눈에 알아챘다.장소월은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할 때 늘 상대를 쳐다보지 못했다.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장소월은 그의 눈에 서리가 낀 것을 알아차렸다. 단둘이 있을 때 장소월이 백윤서를 언급하면, 그의 눈은 늘 이렇게 차가워졌다.지금처럼.장소월은 지금 집에 있는 이상, 전연우가 자신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확실할 수 없었다. 전연우처럼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소심한 남자를 계속 긁으면 이득이 없었다.장소월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그럼 이거 놔.”전연우는 순순히 손을 뗐고, 장소월은 책상에 앉아서 구겨진 옷을 정리했다. 고건우가 준 문제집을 꺼내어 표시했다.“이거.”장소월은 손가락으로 짚었다.전연우는 필통에서 펜 하나를 꺼내 들고 문제를 보았다.“대학교 미적분?”그는 책을 집어 들고 표지를 보았다.“이건 너무 어려워. 너한테 맞지 않아.”장소월은 전연우의 학력이 결코 높지 않은 것으로 기억했다.그는 무엇을 하든 독학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전연우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00화

    “연우 오빠!”두 사람의 분위기가 굳어졌을 때 복도에서 백윤서의 목소리가 들렸다.곧 그녀의 모습은 문밖에 나타났다.전연우: “무슨 일이야?”백윤서: “아저씨가 오빠더러 서재로 오라고 하셔.”“알겠어!”장소월: ‘할렐루야!’전연우와 백윤서가 함께 떠난 후, 장소월은 즉시 방문을 잠갔다.서재.“부르셨어요?”장해진은 향을 세 개 피워 이마 앞에 놓고 경건하게 세 번 절하고는 향로에 꽂고 돌아섰다.“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 많은 일들이 생겼다며? 나한테 보고할 것 없어?”“도원촌 일은 확실히 제가 소홀했어요. 제가 소월이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요. 어떤 처벌도 기꺼이 받겠습니다.”전연우는 고개를 숙였다.“누구 짓인지 조사했어?”“모두 진열의 사람들이었어요. 전에 수단을 써서 감옥에 들여보냈더니,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 소월이를 노렸어요.”장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어떻게 들여보냈으면, 지금 같은 방법으로 다시 들여보내면 그만이다. 필요하면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 그 집안이 나서면,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네.”“서울에서 발붙이고 자리를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소월이를 도와 강가에 시집 보내야 앞으로 네가 내 자리를 인수해도 뒤탈이 없어.”“네, 알겠습니다.”전연우의 검은 눈에는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소월이 일 말고도 네 일도 잊지 말아. 인씨 가문의 일도 서둘러.”“안심하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나가 봐.”“네.”“밖에 있는 여자 잘 처리해. 절대 네 앞길을 막아서는 안 돼.”전연우가 나온 후, 입구에서 엿듣고 있던 백윤서를 만났다.남자는 무섭게 눈살을 찌푸리고, 백윤서의 손목을 덥석 잡고 2층 베란다 쪽으로 끌고 갔다.“누가 너더러 엿들으라고 했어? 아저씨가 모를 것 같아?”백윤서는 상처 입은 눈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엿듣지 않았으면, 오빠랑 인시윤 일 절대 나한테 말해주지 않을 거지? 분명 약속했잖아요. 나 혼자 내버려 두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01화

    장소월은 그들의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 간식거리를 가지러 아래층에 간 것인데 그와 맞닥뜨릴 줄이야.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윤서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2층으로 뛰어 올라가던데.”전연우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묻지 마.”그녀는 그저 화제를 만들어 조금 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방금 밥 먹었잖아. 왜 또 배고픈 거야?”그녀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그냥 입이 좀 심심해서.”“그럼 난 올라갈게.”장소월이 한 발을 채 떼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그녀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뭘 하려는 거야?”“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싫어!”장소월이 단호히 거절했다.전연우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장소월을 보고는 그녀의 손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장소월은 손에 쥐고 있던 컵 안 위태롭게 출렁이는 우유를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이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우유를 쏟잖아!”하마터면 그녀의 손이 데일 뻔했다.“차에 타서 마셔.”장소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그녀를 조수석에 밀어 넣고는 허리를 굽혀 안전벨트를 매준 뒤 운전석에 탔다.장소월이 우유컵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 이미 서울시 모든 병원에 가봤는데 소용없었어.”“내 몸에 약을 넣을 때 고려했어야지. 후천적 자궁 결함은 치료가 안 된다는 걸.”장소월은 한 번도 그를 완전히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는 분명 여러 차례 그녀에게 지독한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녀를 걱정한단 말인가?여기에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왜 하필 오늘 급히 병원에 가자고 하는 걸까! 장해진과의 대화를 끝마친 직후인 지금 이 시간에 말이다.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원 별장을 떠났다.장소월이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손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02화

    전연우는 총칼이 빗발치는 피로 얼룩진 어둠의 세계를 진정으로 경험해온 사람이다. 장해진에게 그동안 해온 끔찍한 일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그중 절반은 전연우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반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귀한 아가씨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왔다.그녀는 어쩌면 말싸움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변에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어 다들 그녀만 보면 멀찌감치 피해 다녔으니 말이다.그녀는 그렇게 일생을 걱정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전생에서 송시아가 그녀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라고 도발한 적이 있었다.사실 송시아의 말이 맞다. 그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전연우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제외하면, 그저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예전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수많은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송시아처럼 능력 있는 여자야말로 전연우와 어울리는 배필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가장 최선의 파트너일 테니 말이다.그들의 시선 속에서 장소월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때문에 그의 옆에 있을 때마다 늘 무력감과 비참함에 몸부림쳤었다.“5년 전.”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전연우는 심장을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만 같았다.5년 전?당시 그녀는 고작 13살이었다.그토록 어린아이를 상대로 시작했었구나...“약은 어디에 넣은 거야? 내가 먹는 음식 안에? 아니면 물 안?”“도착했어! 내려.”병원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는 서울 강남 병원이라는 여섯 글자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전연우는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죽을 때 죽더라도 왜 죽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전연우는 순간 담배 갈증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손을 창문에 걸쳤다.“그걸 안다고 한들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뭔데!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줄게. 우유에 넣었어. 그리고 그 약은 외국산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03화

    입안 가득 풍겨오는 담배 냄새에 장소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다.장소월은 검사실로 끌려들어갔다.기계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철용이 여자처럼 생긴 요염한 얼굴을 들이밀었다.“오랜만이에요! 꼬마 아가씨.”“왜 당신이 여기에!”장소월은 곧바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이 검사를 거부하려 했다.서철용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꼬마 아가씨, 내가 보는 게 싫어요?”“저 검사 안 받겠어요.”서철용이 오른쪽 주먹을 말아쥐고 입 옆에 가져가고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담당의는 내가 아니니까. 맹세할게요. 절대 보지 않겠다고.”“아가씨, 창피해하지 말아요. 의사에겐 남녀구분이 없답니다. 이번 검사를 맡은 사람은 저예요. 서 선생님, 아가씨를 놀라게 하지 말고 이제 나가세요!”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 의사였다.장소월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서철용이 나간 뒤 검사가 진행되었다. 부끄러운 자세 때문에 장소월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두 발을 m자 모양으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파란색 천이 올려졌다. 순간 무언가 들어가는 듯한 불편함에 장소월이 살짝 몸을 움직였다.안에 자리 잡고 있는 투명한 막을 발견한 의사는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세상에. 오늘 환자가 너무 많아 아직 어린 소녀라는 걸 깜빡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바꿀게요.”장소월은 초음파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병실 밖 흡연 구역.방 안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바닥엔 적지 않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다.목에 청진기를 건 서철용이 두 손을 가운 호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이미 너한테 말했잖아. 아무리 검사를 많이 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지금으로선 자궁 척출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그토록 충고했는데 지금 네 상태를 좀 봐!”전연우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넌 말이 너무 많아!”서철용은 피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304화

    “보호자분의 의견은요?”전연우가 어두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연우를 원망하며 분노하는 대신 아무 일도 아닌 듯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 아이 뜻대로 해주세요.”대답을 마친 전연우는 마음이 복잡해져 자리를 박차고 문을 나섰다.서철용은 은은한 웃음을 지은 채 분노하며 멀어져가는 전연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그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전연우는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서울 최고 미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여자아이를 옆에 두고 있는데, 속세를 떠난 스님이라고 해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그게 전연우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자를 손에 넣지는 못한 듯하다!두 사람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거의 어두워져 있었다.장소월은 점심에 갖고 나왔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약을 우유에 넣었었다니.우유와 관련된 음식이라면 죽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다.전연우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차 안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에 답답해진 장소월은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었다.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이 닫혀버렸다.“날이 추워 찬바람을 맞으면 안 돼. 감기 걸려.”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반질반질한 자신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아버지한텐 알아서 숨겨줄 거지?”“뭐 사실 큰일도 아니야. 난 결혼 생각도 없으니까.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실버타운에 가면 되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주는 사람도 있고...”돌연 전연우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그래서... 너 날 미워하는 거야? 장소월... 너한테 무슨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죽어야 마땅하다.장소월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난 이미 한 번 죽었어. 그럼에도 여전히 증오가 남아있다면... 전연우! 나도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Latest chapter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90화

    서철용 또한 한때는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토록 서민용의 목숨에 집착했던 것이다.하지만 서민용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 장영우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그동안 배은란은 이미 아이들과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다.주로 서철용이 아이들을 돌보던 예전과는 달랐다. 당시의 배은란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했고 애정 또한 별로 없었다.하지만 그가 떠난 후 아이들은 배은란의 손에 맡겨졌다.그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걱정과 초조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의 모습은 거짓이 아니었다.서철용이 떠나면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없기에 배은란은 그들을 위해 남을 수밖에 없다.서철용 또한 감히 그런 위험한 모험을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장영우가 독단으로 그를 비행기에 실은 뒤에야 통보했던 것이다.지난 2년간 해외에서 그는 그녀와 아이들의 걱정에 마음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래도 다행히 장영우가 꾸준히 배은란과 아이들의 근황을 알려주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이젠 배은란 나한테 맡겨. 내가 잘 보살필게. 하지만 그 여자가 너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가끔씩 꿈에 보러 가줘. 또 그 토끼 인형처럼 눈이 새빨개지도록 우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서철용은 후련한 듯 묘비에 새겨진 얼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네가 나보다도 더 그 여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거라고 믿어.”몸을 돌려 떠나려던 찰나, 언제부터 뒤에 서 있었는지 모를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서철용은 난처한 얼굴로 내디뎠던 발을 다시 거두어들였다.“은란아, 언제 왔어?”배은란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엔 아직 당황한 기색이 남아있었지만, 이내 감정을 감추고 그를 지나쳐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민용 씨는 당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야. 다시는 오지 마.”소망이가 머리핀을 떨어뜨렸다며 다시 가지러 가겠다고 떼를 썼었다. 배은란은 아이들을 멀리서 기다리게 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9화

    3년 후.서민용의 무덤 앞.배은란은 그의 묘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었다.“미안해, 민용 씨. 나 약속 못 지켰어. 민용 씨는 이미 떠났겠지? 떠나기 전에 나 원망 안 했어?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3년 전,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민용을 따라가려고 했었다.다른 데엔 아무런 미련도 없었지만, 죄 없는 두 아이를 차마 혼자 남겨둘 수가 없었다.배은란은 처음에 아이들을 서철용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어쨌든 아이들은 서철용의 핏줄인 데다 그를 많이 따르기도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병원에 갔다가 서철용이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두 아이를 보낼 곳이 없어졌다.서철용은 서씨 집안 친자식이 아니다. 때문에 그 사람들이 아이들을 키워줄 리 만무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씨 집안은 이 두 아이를 증오하기도 모자랄 것이다.어린 두 아이가 마음에 걸린 배은란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아 하루하루 정성껏 돌봐주었다. 틈틈이 병원에 가서 서철용이 돌아왔는지도 확인했다.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흘렀지만, 서철용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점점 더 철이 들어갔다.“엄마, 아빠 옛날에 이렇게 생겼었어요?”소망이가 묘비에 붙어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배은란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저었다. “얘들아, 이분은 너희 아빠가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이란다... 너희는...”그녀는 아이들에게 서민용을 어떻게 부르라고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호칭이 무엇이든 서민용이 싫어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아저씨, 저 기억나요!”소망이의 눈이 반짝였다. “예전에 오빠랑 저와 자주 놀아주셨어요!”배은란은 목이 메었다. 아이가 서민용을 서철용과 헷갈려 하고 있는 것이다.소원이는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아저씨는 저렇게 안 생겼는데...”“아니야! 저 얼굴 맞아! 내가 분명히 봤어! 어제도 꿈에 나왔는데 엄마 잘 돌봐주라고 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8화

    “대체 무슨 일이야! 서 선생님, 미쳤어요? 손 앞으로 안 쓸 거예요?!”배은란은 복도에 서서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듣고 있었다. 간간이 서철용의 분노에 찬 고함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소리는 절망적인 흐느낌으로 변해갔다.이젠 가망이 없다는 것을 배은란도 느낄 수 있었다.그녀의 눈에서 빛이 조금씩 꺼져갔다. 그녀는 맥없이 터덜터덜 응급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민용 씨...”그녀의 눈동자엔 온통 싸늘하게 식어버린 서민용의 모습만 가득 차 있었다.저기에 누워있는 사람이 정말 서민용이란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그 사람은 분명...배은란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는 곧바로 손을 들어 서둘러 눈물을 닦아냈다.울면 안 된다. 서민용은 그녀가 우는 걸 싫어하기에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방 안에서 전해져오는 흐느낌 소리에 배은란은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았다.서철용은 장영우와 남자 간호사에게 붙들린 채 끌려 나오고 있었다.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격렬하게 몸부림치던 서철용의 몸짓이 멈추었다. 그의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서민용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먹구름이 하늘을 덮친 우중충한 날, 배은란은 두 아이를 데리고 조용히 그를 묻었다.“민용 씨, 기다려. 곧 당신 찾아갈게.”납골당에서 나오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꽃잎 하나가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배은란은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엄마, 우세요?”소원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배은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래.”소원이는 그녀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엄마는 분명 울고 있으면서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소원아, 소망아, 너희들 철용 삼촌 좋아해?”배은란은 마음속의 죄책감을 억누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두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요. 엄마 다음으로 삼촌이 제일 좋아요.”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7화

    “이미 호흡이 멈췄습니다.”장영우는 비교적 침착하게 서민용의 상태를 확인했다.전신 마비인 몸으로 손가락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었으면 자신의 목을 졸라 자살할 수 있었겠는가.어쩌면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일 수도 있다.그 말에 배은란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몸부림치며 울음을 터뜨렸다.“응급실로 옮겨서 CPR 시행해!”서철용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시했다.장영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서 선생님, 고인의 뜻도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옆에 늘어뜨린 서철용의 손에 시퍼런 핏줄이 솟아올랐다.“CPR 준비하라고 했어! 지금 바로 시작해!”그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서민용의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었다!서민용 자신조차도 안 된다!서철용은 몸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아직 깁스를 하고 있는 그의 왼손과 흐느껴 울고 있는 배은란을 번갈아 보며, 장영우는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미쳤어, 하나같이 다 미쳤어.’“장 선생님...” 간호사가 망설이며 그의 의견을 물었다.장영우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서 선생님 말씀대로 해.”시도라도 해보지 않는다면, 이 두 사람은 영원히 서민용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보호자분, 부디 힘내세요.”장영우는 병실을 나서며 배은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했다.응급실 빨간 등은 꼬박 한 시간 동안 켜져 있었다.배은란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즉시 일어나 달려갔다. 저번처럼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장영우는 난처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보호자분, 들어가서 서 선생님 좀 말려 주세요. 선생님을 말릴 수 있는 분은 보호자분밖에 없습니다.”배은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순간 절망감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너무나도 안타까운 모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6화

    장영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서철용의 깁스에 물이 닿아 흐물흐물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깁스를 해야 했다.다행히 두 사람은 모두 의사다. 장영우는 그 자리에서 직접 빠르게 서철용의 팔을 고정해 주었다.“서민용은 회복 잘하고 있어? 수술은 언제쯤 할 수 있을 것 같아?”장영우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고 싶으세요?”서철용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갑자기 죽는 것보단 죽을 날 미리 알아두는 게 낫잖아.”장영우가 대답했다.“안심하세요. 살 시간 많을 것 같아요.”서철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배은란 씨가 간병인까지 고용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는데도 서민용 씨의 수치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정말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니까 식사는 하지 않고, 영양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그 말에 서철용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장영우는 말을 이어갔다.“그 사람은 이미 살겠다는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심장을 주신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 겁니다. 다 아시면서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 계속 이러시면 선생님에게도, 배은란 씨에게도, 또 서민용 씨에게도 그저 고통만 안겨줄 뿐입니다.”정영우는 세 사람의 상황을 가장 객관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 역시 서민용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서철용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개를 들고 지시했다. “이틀 더 지켜봐. 계속 음식 거부하면 코로 주입해.”서민용의 목숨은 그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거두어갈 수 없다.서민용 본인조차도 안 되는 일이다.장영우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환자분은 의식을 갖고 계신데, 그렇게 하면...”서철용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에 장영우는 뒷말을 채 잇지 못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사무실 문 앞에서 급박한 발소리가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5화

    서철용의 몸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하반신에 간단히 수건 한 장만 두른 상태였다. 자세 때문인지 멀리서 보면 서철용이 배은란을 품에 안고 있는 것 같았다.배은란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녀는 자리에 굳어 선 채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다.그녀는 이미 서철용의 알몸을 수차례 보았었고, 심지어 더 친밀한 행동도 함께 했었다.하지만 그땐 어쩔 수 없었다.지금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제 서민용이 자신의 손바닥에 한 획 한 획 써 내려갔던 글자가 떠올랐다. 그녀의 온몸에선 서철용에 대한 경계심이 감돌고 있었다.“장영우 선생인 줄 알았어. 가져올 필요 없어. 나 다 씻었어.”아침은 남자의 성욕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간이다. 배은란의 향기를 맡으니 저도 모르게 몸이 반응했다. 그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서 휴게실로 돌아가 가운을 걸쳐 입고 나서야 다시 사무실에 나왔다.배은란은 책상 옆에 서 있었다.“무슨 일로 왔어?”서철용은 이마를 짚으며 약간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배은란은 약간 발그스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민용 씨 죽 끓일 때 겸사겸사 갈비탕도 좀 끓였어. 당신 상처에 좋을 것 같아서.”서철용은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도시락통 두 개를 발견했다.하나는 그의 갈비탕, 다른 하나는 당연히 서민용의 것이었다.“겸사겸사라...” 그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알았어. 안심해. 오해하지 않을게. 넌 그저 내가 너 때문에 다친 게 마음에 걸릴 뿐이겠지.”그 말은 오히려 배은란에게 더욱 선명하게 상기시켜 주었다.“당신 상처...”조금 전 듣기론 상처에 물이 닿은 것 같았다. 지금은 서철용이 가운을 입고 있어 확인하기 어려웠다.“안 죽어. 나 의사잖아. 내가 알아서 해.” 서철용은 아래턱을 쳐들고 말했다. “근데 움직이는 건 좀 불편해. 국 좀 따라줘.”배은란은 국을 따른 뒤, 서민용을 오랫동안 간호해왔던 습관대로 저도 모르게 숟가락을 들고 그에게 먹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곧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4화

    “민용 씨, 미안해. 내가... 오늘 좀 일이 있어서 늦었어.”배은란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죽 그릇을 들고 조심스럽게 그에게 먹여주었다.“오늘 밸런타인데이래. 이런 날 일찍 와서 당신과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전부 내 잘못이야. 몇 시간 뒤면 밸런타인데이 지나가. 나한테 말 좀 해줄래?”배은란은 그가 자신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 손을 그의 손 옆에 가져갔다.서민용은 손가락 끝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괜찮아.]배은란의 손가락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몇 초 동안 서민용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당황한 듯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민용 씨, 뭐라도 좀 먹어. 당신 몸 회복되면 내년에는 우리 같이...”서민용은 평소 같지 않게 식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죽 한 그릇이 바닥을 보이자 배은란은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민용 씨, 당신도 빨리 낫고 싶은 거지? 나도 알아.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정말이야...”배은란의 목소리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서민용의 정서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억지로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아냈다. 이후 마음이 진정되자 미소를 지으며 최근 있었던 소소한 일상들을 그에게 이야기해주었다.서민용은 따뜻하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없이 모두 들어주었다.밤이 깊어졌다. 배은란은 병실에서 그와 함께 밤을 보내고 싶었다.하지만 서민용은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했다.배은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서민용은 이제야 간신히 음식을 먹으려 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죽을 끓여주면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별장으로 돌아온 배은란은 잠이 든 지 두세 시간 만에 일어나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좁쌀에 으깬 호박을 넣고 약한 불로 천천히 끓였다.냉장고에는 며칠 전에 사놓은 갈비와 옥수수도 조금 남아 있었다. 배은란은 그것들을 모두 꺼내 갈비탕을 끓였다.자신 때문에 다친 서철용을 나 몰라라 할 수는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3화

    병원으로 향하는 길, 배은란의 시선은 줄곧 그의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서철용은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지만,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니 마음속으로 얄팍한 욕심이 피어올랐다.그녀는 그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서민용의 수술을 앞두고 있는 그의 팔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아마 후자일 것이다.그를 미워할 시간도 모자랄 테니 말이다.병원에 도착하여 치료를 마친 후, 배은란은 긴장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얼마나 지나야 회복될까요? 이 사람 의사인데, 나중에 팔을 쓰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요?”“관리만 잘하면 두 달 안에 거의 완전히 회복될 수 있고, 의사 생활에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의사가 설명했다.그 말에 배은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서철용은 팔에 깁스를 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옆에 서 있었다.병원을 나서는 길에서도 여전히 수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배은란을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안심해. 이 팔 못 쓰게 된다고 해도 서민용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야.”배은란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당신은 내 머릿속에 민용 씨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약간 화가 난 듯 물었다.서철용이 되물었다. “그럼 아니야?”서민용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서철용을 쳐다보기라도 했을까?“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지금 돌아가면 서민용이랑 저녁밥 먹을 시간은 충분하겠네. 밸런타인데이라 더욱 같이 있어 주고 싶었을 텐데 잘됐어.”서철용이 비웃음 섞인 어조로 말했다.차는 보험 회사에 견인되어 갔고, 두 사람은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배은란은 입술을 앙다문 채 그의 깁스한 왼손을 바라보았다.“난 단순히 당신 상처 걱정하면 안 되는 거야?”서철용은 분명 그녀를 구하려다 다친 것이다. 그것도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에 말이다.방금 전 그 장면을 떠올리자, 배은란은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서철용은 고개를 돌려 꿰뚫어 보듯 그녀를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482화

    배은란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끼가 왜? 귀엽기만 하잖아.”서민용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자기더러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배은란은 너무 당황해 귀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서민용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확실히 귀엽긴 해. 울지 않을 때는 토끼보다 더 귀여워.”배은란은 얼른 화제를 돌리고 싶어 새빨개진 얼굴로 인형 가격을 물었다.서민용은 잠시 생각하더니 모른다고 말했다.당시 그녀는 서민용의 다정함에 푹 빠져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하지만 방금 서철용이 했던 말...그때 그 인형 서철용이 샀었나?그렇다면 왜 서민용이 그녀에게 전해준 걸까?그녀는 서철용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결국 의미 없다는 생각에 말을 삼켰다.쇼핑몰에서 반나절을 보낸 후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서철용은 차를 몰고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서민용 이제 말은 해?”돌아가는 길, 서철용이 갑자기 물었다.그는 줄곧 배은란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서민용의 상태에도 관심을 끊고 모두 장 선생에게 일임했다.배은란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었다.“말도 못 하는 사람이 어지간히 속을 썩였나 보네. 왜, 그놈이 너 무시했어?”서철용은 제멋대로 추측하며 서민용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그놈 복에 겨웠네. 누군 아무리 원해도 같이 있지 못하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조만간 내가 그놈 옆에 누워 있으면, 너희 둘...”분명 내 염장 지르겠지?서철용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말을 삼켰다.배은란은 예민한 촉으로 무언가 감지했다.“무슨 말이야?”그가 서민용 옆에 눕는다니?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말에 배은란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서철용의 반응에 짜증이 밀려왔다.서철용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농담한 거야. 몰라서 그래? 내가 매일 서민용을 질투하느라 미칠 지경이라는 거.”그 말은 성공적으로 배은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배은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