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잘 준비를 했다.갑자기 침대 옆 캐비닛에 충전하고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장소월은 머리를 닦으며, 흰색 털 잠옷을 입고 다가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눈빛은 차가워지더니 미간을 찡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놓고 무시했다.상대방의 전화는 끊임없이 한 번 또 한 번 끈질기게 걸려왔다.다섯 번째 전화가 자동으로 끊겼다.‘띵.’메시지가 도착했다.장소월이 확인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온몸이 싸늘한 추위에 휩싸인 듯 손이 떨리고 있었다.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더러운 사진이었다.장소월은 이를 악물고, 다시 휴대폰이 울리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도대체 어쩌자는 거야?”낮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뭐 하고 있었어?”“그런 사진을 보내고 고작 한다는 말이 이거야? 전연우, 진짜 한가해?”그쪽은 아주 조용했다. 이 시간이면 아마 서재에 있을 것이다.“보고 싶어...”전연우의 쉰 목소리가 약간 애틋하게 들려왔다.장소월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전연우는 종래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네 향기가 그립고, 그리고... 네 몸도...”역시나! 전연우는 여전했다!“그만해! 나 지금 영수랑 같이 있어. 다른 사람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면 입 닥치라고!”“영수랑? 둘이 뭐해?”장소월은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나한테 과외해주는 것 빼고 뭐가 더 있겠어? 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더러운 짓만 하는 줄 알아? 영수 나왔어, 끊을게.”장소월은 말을 마치고, 전연우가 보낸 사진을 삭제하고 아예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가든 아파트.누군가 전연우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전연우는 동영상을 끄고 말했다.“들어와.”“오빠, 아주머니가 아직 아프셔서 내가 야식을 준비했어요.”백윤서는 말하면서 문제집 한 권도 들고 들어왔다.“그리고, 나 모르는 문제가 있는데 오빠가 가르쳐주면 안 돼요?”“어느 문제?”“이거. 몇 번이나 계산했는데 답이 안 나와요.”백윤서는 의자를 옆으로 끌어당겨 그의 왼쪽
전연우는 책상 위의 야식 대신 아직 처리하지 않은 서류를 펼쳤다.“이건 2학년 상학기 지식 범위 아니야? 너한테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간 네가 이런 문제조차 풀지 못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거야. 혼자 어렵다면 오빠가 과외 선생님을 찾아줄까?”백윤서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빠도 내가 소월이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요? 소월이보다 예쁘지 않고, 집안도, 성적도 모두 뒤떨어진다고 생각해요?”전연우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윤서야, 언제부터 너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한 거야?”“하지만 사실이 그렇잖아요. 소월이 앞에만 있으면 난 항상 열등감을 느껴요. 어디를 가든, 학교에 가면 다들 날 장가의 입양 딸로만 생각해요. 주위 친구들도 전부 장소월과 얽혀있고.”전연우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넌 너고, 소월이는 소월이야. 소월이랑 비교할 필요 없어. 내 눈에는 우리 윤서가 최고야. 시간이 늦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돌아가서 쉬어.”“오빠는 어떻게 생각해요?”“먼저 가서 자. 난 아직 볼 서류가 남았어.”“오빠 이미 며칠 동안 잘 쉬지 못했어요. 장가의 일에 왜 이렇게 필사적이에요? 장가는 어차피 장소월 거잖아요.”전연우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했다.“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백윤서는 깜짝 놀랐다.“미안, 난 그저 오빠가 걱정돼서 그랬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잖아요.”“그만해! 앞으로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가서 쉬어.”“알... 알았어요.”백윤서는 황급히 서재를 나와 문을 닫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장가? 고작 장가 때문에...’장해진은 음력설 전에 강만옥을 데리고 돌아왔다.장소월은 이 소식을 오부연을 통해 전달받았다.내일 장소월은 당연히 집에 돌아가야 했다.“집사님, 이미 충분해요. 더 이상 챙길 필요 없어요.”“모두 도련님께서 설날 선물로 보내라고 분부하신 물건입니다. 내일 도련님은 해
식탁에서 장소월은 그릇에 담긴 밥을 쿡쿡 찌르며 고개를 숙인 채 자초지종을 장해진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됐어요.”장소월의 설명을 들은 장해진은 강가의 후계자가 줄곧 옆집에 사는 줄 몰랐다.이 점에 그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식사 예절 선생님께서 널 어떻게 가르쳤어? 식탁에서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했잖아! 강가에서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면 안 돼!”“알겠어요, 아버지.”꾸중을 들은 장소월은 바로 등을 곧게 펴고 단정하게 앉았다. 장해진의 말투는 이전처럼 매섭지 않고 조금 온화했다.“집에서는 이렇게 엄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뒤에서 걸어오는 백윤서는 장소월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오랜만에 만난 백윤서는 훨씬 예뻐졌다.야윈 얼굴에는 살이 좀 올라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졌다.전연우는 손에 찻잎 두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최고급 군산 찻잎이에요.”“신경 써줘서 고맙구나.”“당연한걸요.”하인은 찻잎을 받아갔고, 전연우는 양복을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장소월의 앞에 앉았다.“딱 맞춰 왔구나. 밥은 먹었냐?”“아직이요. 방금 윤서를 데리러 갔다가 집에 와서 밥 먹으려고요.”하인은 재빨리 식기 두 세트를 더 가져왔다.“잘됐구나. 그럼 함께 먹자. 집에서는 너무 예의를 갖출 필요 없어.”“네.”장소월은 전연우와 장해진이 나누는 회사의 근황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식사했다.남천 그룹은 강한 그룹의 공사를 도맡아 새로운 부지를 개발하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단지를 쇼핑몰로 건설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위치를 들으며 장소월은 대략 어디쯤인지 짐작했다.그곳은 앞으로 서울 전체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구역이 될 것이다. 바로 10년 후에...심지어 거리 전체의 가치는 20배를 뛰어넘을 것이다.강영수는 역시 안목이 있고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었다.적어도 전연우보다 먼저 이 땅을 선점했으니 말이다. 전생에 전연우도 이 땅을 시작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이번 생에는 강영수가 먼저 이 땅을 차지했다.“하지만, 강한 그룹과 얘
장소월은 하인의 표정을 보고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장소월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전생에 강만옥은 확실히 요맘때 아파서 병원에 보름 넘게 입원했었다. 구체적인 이유는 그녀도 몰랐다.‘이번엔... 왜 집에 있지?’그녀가 다시 태어난 후, 분명히 뭔가 바뀐 것 같았지만, 또 변하지 않은 듯했다.사건의 방향은 애초에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런 상황이 장소월은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 전연우가 자신에게 약을 먹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알지 못했다. 자궁 기형 외에 또 다른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암세포 병변일까?’장소월도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보름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있었다.5층으로 올라가자, 자신의 문이 이미 뜯겨 일반 방문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녀의 캐비닛과 욕실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침대의 위치가 바뀌었다. 다른 변화들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그녀의 침대는 강가로 옮겨 갔으니, 이 침대는 아마 새로 산 모양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그림들이었다.하인이 그녀의 물건을 옮기고 있을 때, 장소월이 서둘러 물었다.“제 그림은요? 어디 갔어요?”“아가씨, 그건 모르겠네요.”그림책!강영수가 선물한 그림책...장소월은 서둘러 드레스룸으로 달려가 캐비닛 맨 아래, 가장 깊이 숨겨져 있는 물건을 찾았다.중요한 물건을 발견한 장소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무사해서 다행이야.”방안의 발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재빨리 자신의 그림을 숨겨 옷으로 덮고 서랍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전연우는 그녀의 방을 훑어보았다.“인테리어 괜찮네. 저녁에 바람이 많이 부니 감기 걸리지 않게 이불 잘 덮고 자.”장소월은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감기에 걸리든 말든, 전연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책가방에 있는 문제집을 책상 위에 놓고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장소월은
“다 안다고? 그럼 어젯밤에는 왜 영수한테 물어봤는데?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응?”전연우는 장소월의 턱을 움켜쥐고, 그녀를 마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아니면, 소월이는 오빠가 가르쳐주는 게 싫어?”그는 벌을 주듯 장소월의 허리를 꼬집었다.장소월은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번에 그녀의 허리를 꼬집은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다.“오해야, 그 문제들은 수업 범위를 벗어난 부분이었어.”“그래? 그럼 한 번 봐봐.”장소월은 시선을 피하며 점점 짜증 나는 말투로 말했다.“전연우, 계속 이러면 나 진짜 피곤해. 나도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죄지은 사람처럼 날 쳐다보지 말아 줄래? 한가해? 그냥 윤서한테 가 봐.”전연우는 웃는 듯 마는 듯 말했다.“넌 너고, 윤서는 윤서야. 너랑 놀아주려고 왔는데 왜 화를 내?”전연우는 장소월의 거짓말을 한눈에 알아챘다.장소월은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할 때 늘 상대를 쳐다보지 못했다.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장소월은 그의 눈에 서리가 낀 것을 알아차렸다. 단둘이 있을 때 장소월이 백윤서를 언급하면, 그의 눈은 늘 이렇게 차가워졌다.지금처럼.장소월은 지금 집에 있는 이상, 전연우가 자신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확실할 수 없었다. 전연우처럼 원한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소심한 남자를 계속 긁으면 이득이 없었다.장소월은 자신의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그럼 이거 놔.”전연우는 순순히 손을 뗐고, 장소월은 책상에 앉아서 구겨진 옷을 정리했다. 고건우가 준 문제집을 꺼내어 표시했다.“이거.”장소월은 손가락으로 짚었다.전연우는 필통에서 펜 하나를 꺼내 들고 문제를 보았다.“대학교 미적분?”그는 책을 집어 들고 표지를 보았다.“이건 너무 어려워. 너한테 맞지 않아.”장소월은 전연우의 학력이 결코 높지 않은 것으로 기억했다.그는 무엇을 하든 독학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전연우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연우 오빠!”두 사람의 분위기가 굳어졌을 때 복도에서 백윤서의 목소리가 들렸다.곧 그녀의 모습은 문밖에 나타났다.전연우: “무슨 일이야?”백윤서: “아저씨가 오빠더러 서재로 오라고 하셔.”“알겠어!”장소월: ‘할렐루야!’전연우와 백윤서가 함께 떠난 후, 장소월은 즉시 방문을 잠갔다.서재.“부르셨어요?”장해진은 향을 세 개 피워 이마 앞에 놓고 경건하게 세 번 절하고는 향로에 꽂고 돌아섰다.“내가 없는 동안 회사에 많은 일들이 생겼다며? 나한테 보고할 것 없어?”“도원촌 일은 확실히 제가 소홀했어요. 제가 소월이를 잘 보호하지 못했어요. 어떤 처벌도 기꺼이 받겠습니다.”전연우는 고개를 숙였다.“누구 짓인지 조사했어?”“모두 진열의 사람들이었어요. 전에 수단을 써서 감옥에 들여보냈더니, 2년간 옥살이를 하고 나와 소월이를 노렸어요.”장해진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어떻게 들여보냈으면, 지금 같은 방법으로 다시 들여보내면 그만이다. 필요하면 강씨 집안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 그 집안이 나서면, 우리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야.”“네.”“서울에서 발붙이고 자리를 잡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소월이를 도와 강가에 시집 보내야 앞으로 네가 내 자리를 인수해도 뒤탈이 없어.”“네, 알겠습니다.”전연우의 검은 눈에는 한 줄기 빛이 스쳐 지나갔다.“소월이 일 말고도 네 일도 잊지 말아. 인씨 가문의 일도 서둘러.”“안심하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나가 봐.”“네.”“밖에 있는 여자 잘 처리해. 절대 네 앞길을 막아서는 안 돼.”전연우가 나온 후, 입구에서 엿듣고 있던 백윤서를 만났다.남자는 무섭게 눈살을 찌푸리고, 백윤서의 손목을 덥석 잡고 2층 베란다 쪽으로 끌고 갔다.“누가 너더러 엿들으라고 했어? 아저씨가 모를 것 같아?”백윤서는 상처 입은 눈으로 바라보았다.“내가 엿듣지 않았으면, 오빠랑 인시윤 일 절대 나한테 말해주지 않을 거지? 분명 약속했잖아요. 나 혼자 내버려 두지
장소월은 그들의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 간식거리를 가지러 아래층에 간 것인데 그와 맞닥뜨릴 줄이야.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윤서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2층으로 뛰어 올라가던데.”전연우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묻지 마.”그녀는 그저 화제를 만들어 조금 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방금 밥 먹었잖아. 왜 또 배고픈 거야?”그녀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그냥 입이 좀 심심해서.”“그럼 난 올라갈게.”장소월이 한 발을 채 떼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그녀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뭘 하려는 거야?”“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싫어!”장소월이 단호히 거절했다.전연우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장소월을 보고는 그녀의 손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장소월은 손에 쥐고 있던 컵 안 위태롭게 출렁이는 우유를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이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우유를 쏟잖아!”하마터면 그녀의 손이 데일 뻔했다.“차에 타서 마셔.”장소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그녀를 조수석에 밀어 넣고는 허리를 굽혀 안전벨트를 매준 뒤 운전석에 탔다.장소월이 우유컵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 이미 서울시 모든 병원에 가봤는데 소용없었어.”“내 몸에 약을 넣을 때 고려했어야지. 후천적 자궁 결함은 치료가 안 된다는 걸.”장소월은 한 번도 그를 완전히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는 분명 여러 차례 그녀에게 지독한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녀를 걱정한단 말인가?여기에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왜 하필 오늘 급히 병원에 가자고 하는 걸까! 장해진과의 대화를 끝마친 직후인 지금 이 시간에 말이다.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원 별장을 떠났다.장소월이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손에
전연우는 총칼이 빗발치는 피로 얼룩진 어둠의 세계를 진정으로 경험해온 사람이다. 장해진에게 그동안 해온 끔찍한 일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그중 절반은 전연우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반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귀한 아가씨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왔다.그녀는 어쩌면 말싸움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변에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어 다들 그녀만 보면 멀찌감치 피해 다녔으니 말이다.그녀는 그렇게 일생을 걱정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전생에서 송시아가 그녀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라고 도발한 적이 있었다.사실 송시아의 말이 맞다. 그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전연우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제외하면, 그저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예전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수많은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송시아처럼 능력 있는 여자야말로 전연우와 어울리는 배필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가장 최선의 파트너일 테니 말이다.그들의 시선 속에서 장소월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때문에 그의 옆에 있을 때마다 늘 무력감과 비참함에 몸부림쳤었다.“5년 전.”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전연우는 심장을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만 같았다.5년 전?당시 그녀는 고작 13살이었다.그토록 어린아이를 상대로 시작했었구나...“약은 어디에 넣은 거야? 내가 먹는 음식 안에? 아니면 물 안?”“도착했어! 내려.”병원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는 서울 강남 병원이라는 여섯 글자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전연우는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죽을 때 죽더라도 왜 죽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전연우는 순간 담배 갈증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손을 창문에 걸쳤다.“그걸 안다고 한들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뭔데!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줄게. 우유에 넣었어. 그리고 그 약은 외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