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도 도착했다.역시 그 말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나 보다.강용은 오자마자 책가방을 책상에 내던졌다.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장소월이 잡아 옆 의자에 놓아두었다.“이왕 왔으니까 시작하자.”강용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먼저 수업할래, 아니면 얘기할래?”“네 생각엔?”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엔 아마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도서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책가방에서 화첩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이 화첩을 본 사람은 날 제외하고 네가 처음이야.”강용은 한장 한장 펼쳐보았다. 모두 연필로 그린 풍경화였고 그림마다 장소가 표기되어 있었다.“어때?”“꽤 볼만 하네.”“뭐 부족하다가 생각되는 거 없어?”“너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이 장소들은 모두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야. 또한 내가 서울대에 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 그림에 색을 입히지 않은 건 언젠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조금씩 칠하기 위함이야.”“나 정말 가 보고 싶어.”“강용, 이 세상엔 내가 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 나한테 있어 감정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야. 난 혼자라도 외롭지 않아. 오히려 곁에 아무도 없는 자유로움이 좋아.”“그게 우정이든 아니면... 사랑이든!”“강용, 내 말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바라보는 건 앞으로의 먼 미래이지, 지금 눈앞의 것이 아니야!”“네가 말한 강씨 집안... 확실히 보통 사람은 닿을 수도 없는 곳이야. 또한 네 형은 정말 좋은 사람이지.”“하지만 나한텐 그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있어. 난 지금 천천히 내 미래와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고.”“강용, 사실 너와 난 똑같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있어... 우린 이러면 안 돼...”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살아간다. 아무런 목표도, 영혼도 없는 미라가 아니다.“지금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장소월이 수학 문제집을 펴 그의
강용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결정을 존중한다고 얘기했잖아. 이건 나와 강용 사이의 일이니까 너랑은 상관없어.”장소월은 그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강용이든 강영수든 말이다.그녀는 오직 자신만 사랑할 것이다!“고마워!”강영수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뭐가 고맙다는 거야?”장소월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알면서.”강영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가자!”“그래.”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니 찬 공기가 금세 사라졌다.“나 오 집사한테 야식을 준비해두라고 할 거야. 너 뭐 먹고 싶어?”“오 아주머니가 준 만두가 좋겠어. 오랫동안 냉동해두면 맛없어져.”“그래. 다른 건?”“충분해. 저녁에 너무 많이 먹으면 살쪄.”강영수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 대로 할게.”시간은 빠르게 흘러 정신을 차려보니 강씨 저택에서 머문 지 어느덧 2주나 지나갔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나날이었다.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나청하의 일이었다.지금까지 부러진 팔 하나를 찾았는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나청하, 그녀의 신분을 확정했다.장소월의 예상대로 나청하는 죽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살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죽다니.그녀는 전연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그런 독한 짓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소월아?”기사를 찾아보고 있던 장소월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백윤서가 핸드폰을 주워 그녀에게 돌려주었다.“뭘 그렇게 집중해서 본 거야? 소월아, 곧 겨울 방학이야. 이번 겨울 캠프에 갈 거야? 선생님이 의향이 있으면 빨리 신청하래.”“난... 아직 고민 중이야.”그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나 화장실에 다녀올게.”장소월은 문을 나서는 순간 한 사람과 부딪혔다.“으악!”통증에 이마를 어루만졌다.“아직도 앞을 안 보고 다녀?”이 목소리!
장소월이 그의 뒤를 따라 학교 문을 나설 때, 강영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뒷모습을 힐끗 보고는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오늘 방학했지? 진봉한테 널 데리러 가라고 했어. 우리 같이 점심 먹을까?”장소월이 말했다.“나... 오 아주머니가 아프셔서 오빠 집에 가봐야 해.”“그래? 알았어. 조심해서 가. 저녁에 데리러 갈게.”“응. 그래.”장소월이 전화를 끊고 차 옆에 걸어가 뒷좌석 문을 열려고 한 순간, 전연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앞에 앉아.”장소월은 그제야 쭈뼛거리며 조수석에 앉았다.돌연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몸을 기울여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장소월은 긴장감에 호흡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그에게는 뼛속까지 깃든 두려움을 품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나청하의 죽음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집으로 가는 동안 그 누구도 나청하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가든 아파트에 도착한 뒤, 전연우는 건물 아래 슈퍼 문 앞에 차를 세웠다.“내려. 마트 가야 해.”“난 안 갈래. 차에서 기다릴게.”“부탁이라도 해야 해?”장소월은 더는 말하지 못하고 결국 차에서 내렸다.예전 그녀가 마트에 가자고 전연우를 졸랐을 땐 종래로 와준 적이 없다. 반면 백윤서와는 백화점 쇼핑도 종종 함께하곤 했었다.이제 그녀는 전연우에게 조금의 바람도 없었다.전연우는 해산물 구역으로 가 해산물을 가득 담은 뒤 채소와 과일도 꽤나 집었다.장소월은 옆에 서 있는 해산물 구역 책임자에게 양념장과 마늘을 요구했다. 이곳 해산물은 값이 많이 나가는 것이니 당연히 서비스를 조금은 넣어줄 수 있다. 처음으로 그와 함께 마트에 온 오늘, 장소월은 그는 정말 장을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변질된 것들, 시든 것들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하여 대부분은 모두 장소월이 고른 것이었다.이어 전연우는 그녀를 데리고 간식 구역으로 걸어갔다.“뭐 먹고 싶어?”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난... 이런 거 먹으면 안 돼.”장소월의 몸
“아니에요. 영수는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매일 등교, 하교 때마다 절 데려다준다니까요.”“그럼 마음을 놓을 수 있겠네요.”오 아주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도련님과 함께 온 거예요?”“네.”“밥 먹었어요? 내가 지금 만들어줄게요.”오 아주머니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장소월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제가 하면 돼요. 강씨 저택에서 심심할 때 저도 음식을 해봤어요.”“그럼 안 되죠. 아가씨가 도우미한테 밥상을 차려주는 법이 어디에 있어요.”“장씨 집안에서만 아가씨예요. 지금은 오빠 집에 있으니까 그저 장소월일 뿐이에요. 금방 할 수 있으니까 기다려요.”장소월은 방을 나선 뒤 잊지 않고 문을 닫았다.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입고는 냉장고에서 식자재를 꺼냈다. 시간이 늦었으니 간단한 국수 요리를 할 생각이었다.청경채와 고기를 썰었다.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온 전연우의 눈에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장소월의 모습이 들어왔다.그는 몇 번이나 이 광경을 꿈속에서 마주했다.매번 몸을 돌릴 때마다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가 아른거렸다.하지만 그날 병원에서 나왔을 때부터 그 소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남자는 마음속의 복잡함을 감추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윽...”장소월의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칼에 베인 것이다.순간 남자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수도꼭지에 가져갔다.차가운 물이 상처에 닿으니 배로 더해지는 통증에 그녀가 손을 움츠렸다.전연우가 이마를 찌푸렸다.“칼질도 못 하면서 사람을 보살피겠다고?”그는 힘이 너무 강했다. 장소월이 몇 번이고 손을 빼내려 했으나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영수가 날 주방에 가지 못하게 했어.”장소월이 말했다.“그래서 집에 오지 않은 거야?”전연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내가 왜 그 집에 갔는지 알아? 영수는 종래로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기 때문이야.”날 해치는 건 전연우 당신뿐이거든.전연우는 돌연 무슨 생각이
한 시간이 지나서야 국수가 오 아주머니 앞에 차려졌다.전연우는 방에 들어와 침대 위에서 교복이 처참하게 찢긴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도가 지나쳤다. 단추는 어디에 떨어졌는지 모두 뜯겨 있었다.얼굴엔 눈물 자국이 가득해 너무나도 가엾은 모습이었다.전연우를 본 장소월은 옆에 있던 베개를 그에게 던져버렸다.“전연우, 넌 짐승이야!”전연우는 단번에 베개를 손에 잡고는 말했다.“넌 내가 짐승이라도 좋아하잖아?”“지금은 아니야! 전연우! 이제 널 좋아하지 않아!”장소월이 울부짖었다.“좋아하고 안 하고는 네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강씨 집안에 들어갔다고 내가 널 어떻게 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전연우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눈물에 젖어 얼굴에 눌어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말했다.“강씨 집안? 계속 거기에 머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장소월, 네 성이 무엇인지 잊지 마!”장소월이 힘껏 그의 손을 밀쳐냈다. 목에 나 있는 붉은 상처는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전연우, 너 벌 받을 거야!”남자의 눈에 어둡고 위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고집스럽고 완강한 그녀의 모습 때문에 더더욱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의 말은 전연우로 하여금 그 일을 떠올리게 했다.그녀가 다 알았을까?그럴 리가 없다.정말 알고 있다면 그와 한없이 멀어졌을 것이다.그 일은 죽을 때까지 깊은 땅속에 묻고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그녀는 장씨 집안 아가씨이고, 그는 장씨 집안에서 기른 입양아다.처음부터 그녀를 해치지 않고 평생 곁에 둔 채 자신을 의지하며 살게 했다면 좋았을 텐데. “지옥에 가게 된다면 반드시 널 데리고 갈 거야. 장소월... 넌 날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어. 아니야?”그의 말은 마치 저주처럼 그녀의 귀를 휘감았다.“소월이가 고분고분 말만 잘 듣는다면 이 오빠도... 널 좋아할 거야.”장소월이 반항했다.“네 사랑 따위 필요 없어! 더러워!”그녀가 이 공간에서 벗어나려
장소월은 의식을 상실한 낡은 인형처럼 공허한 눈으로 멍하니 한 곳만 응시하고 있었다.남자는 옷장에서 검은색 셔츠를 꺼내 침대에 던졌다.“옷을 벗어서 세탁해. 더러워진 침대 시트도 함께.”전연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하얀색 양말을 의자에 걸쳐놓고는 방에서 나간 뒤 문을 닫았다.장소월은 더는 그의 방에 머무르지 않고 백윤서와 함께 썼던 방에 들어가 입고 있던 교복을 모두 벗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는 욕실에 들어가 더러워진 다리를 끊임없이 씻어냈다.절망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자꾸만 머릿속에서 남자가 성욕을 분출하는 도구가 되어버렸던 광경이 떠울랐다.다행히 그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오늘 전연우가 그녀에게 했던 모든 건 그녀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악몽으로 자리 잡았다.만약 그가 정말... 그녀를 범했다면!그녀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은 샤워를 마친 뒤 예전 이곳에서 입었던 옷을 입었다. 그의 물건이라면 손을 대는 것조차 역겨웠다.그녀가 욕실에서 나오자 전연우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한 얼굴로 국수를 밥상에 내려놓았다.“빨리 와서 밥 먹어.”“먹고 싶지 않아. 난 갈 거야.”장소월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전연우는 같은 말을 두 번 중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반항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목소리가 무거워졌다.장소월은 이제 그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몸에서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장소월은 천천히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전연우가 젓가락을 건네주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손만 뻗어 젓가락을 받았다.국수 그릇엔 계란 후라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노른자를 좋아하지 않는다.전연우는 냄비 안에 남은 모든 국수를 그릇에 담았다. 두 사람이 밥상에 마주 앉아 처음으로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었다.장소월은 아주 느린 속도로 먹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해오는 그의 터치를 모두 참아내야만 했다.“다 먹고 내가 데려다줄게. 가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옷도 사자. 그렇게 얇은
그들은 차에 앉아 백화점에 갔다.장소월은 전연우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곧바로 위층에 올라가는 줄 알았으나 전연우가 향한 곳은 1층 보석 구역이었다.전연우가 매장 앞에 도착하자 직원은 전연우를 아는 듯 말을 걸었다.“전 선생님, 저번 주에 예약했던 Cartier가 이미 도착했습니다. 마음에 드는지 보시죠.”이어 그녀의 시선이 장소월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바로 선생님의 여자친구군요! 이 보석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장소월이 다급히 부인했다.“오해예요. 전 동생이에요.”여자친구?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오빠, 나 먼저 올라갈게.”한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그녀의 손목이 전연우에게 잡혀버렸다.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해봐.”“싫어!”장소월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가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미안해요. 요즘 투정을 부리고 있어서 그래요.”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는 항상 이런 식이다. 누구에게든 겸손한 모습으로 미소를 띠고 말한다.그가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목걸이를 걸어주었다.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목걸이였다. 장소월은 이 브랜드를 패션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세계 10대 보석 회사에서 만든 신상 아이템이었는데 한정판이라 돈이 있어도 구매하기 어렵다. 지금 가격은 6천만 원 정도인데 10년 뒤면 그 가치가 몇억까지 치솟을 것이다.장소월은 그가 어디에서 이런 큰돈이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설사 그에게 더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전혀 갖고 싶지 않았다.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이었다.조금 전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해놓고선 이제 이토록 값비싼 목걸이를 선물하려 하다니!대체 그녀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눈꼴이 시리게 이미 걸려있는 목걸이를 본 순간 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직원이 곧바로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전 선생님의 눈은 정말 정확하네요. 아
이 돈... 그녀는 반드시 잊지 않고 그에게 돌려줄 것이다.그에게 조금의 빚도 지고 싶지 않았다.전연우가 쇼핑백을 들고 걸어갔다. 두 사람은 조금 전의 일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장소월의 눈에 옆 가게의 스카프가 들어왔다. 부드러운 촉감에 정교한 바느질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가격표를 보니 이것 또한 몇십만 원이었다.전연우가 말했다.“사고 싶으면 사.”“됐어. 아주머니가 이 가격을 안다면 아까워 하고 다니지도 못할 거야.”장소월은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지 않는 오 아주머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장갑 두 개를 사기로 결정했다.하나는 빨간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검은색이었다. 도합 십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이라 별로 비싸지 않았다.쇼핑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장소월은 30분도 되지 않아 커다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백화점에서 나가려 했다.자신의 것은 부족한 것이 없었기에 사지 않았다.“연우 아저씨?”“소월아.”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인시윤이 뒤에 네 명의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걸어왔다.인시윤은 부잣집 아가씨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발엔 하이힐을 신고 몸엔 올해 가장 유행하는 샤넬 원피스를 입고서 말이다.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발산되는 고급스러움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이런 우연이! 두 사람도 쇼핑하러 왔어요?”전연우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아가씨.”인시윤이 자연스럽게 전연우의 팔짱을 꼈다.“내가 나오자고 할 땐 거절하더니 지금 딱 걸렸죠? 아직 식사 시간 전이니 같이 쇼핑이나 더 할래요? 잠깐 쇼핑하다가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소월아, 네 생각은 어때?”장소월은 인시윤이 더욱 끈질기게 전연우를 조르기를 바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난 다른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 두 사람이 같이 쇼핑해! 오빠... 검은색 장갑을 나한테 줘.”인시윤은 장소월의 거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말했다.“가지 마! 너 우리 오빠를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