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자신의 가장 못생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찾아올 줄 생각도 못 했다.“나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지도 않아.”말이 끝나자마자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장소월의 배가 철없이 소리를 냈다.오 아주머니는 피식 웃었다.“아가씨는 못생겨서 도련님을 보기 민망한 거예요.”“소월이 얼굴이 왜요? 전혀 이상하지 않던데요?”강영수는 일부러 속였다.오 아주머니는 강영수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그러게요. 아가씨 얼굴 괜찮아졌어요. 붓기가 다 가라앉았다고요.”장소월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확실히 전만큼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는 그제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확실히 얼굴이 부어있었지만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목에 있던 붉은 반점도 옅어졌다.장소월은 진작 배가 고팠다.“내가 먹을게.”“아직 링거를 맞고 있잖아. 내가 먹여줄게.”강영수는 숟가락을 들어 장소월에게 건넸다.장소월은 계속 거절하기 민망했다.“그럼 신세 좀 질게.”강영수는 덤덤하게 웃었다.“괜찮아.”만약 가능하다면, 강영수는 매일 장소월에게 먹여 줄 수 있었다.장소월은 이 인정을 앞으로 꼭 갚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장소월은 호호 불더니 반쯤 깨물고 물었다.“이모, 맛이 좀 변한 것 같아요.”“윤서 씨가 안에 후추를 넣으면 더 고소하다고 해서 넣었는데, 아가씨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왜요, 맛없어요?”장소월은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원래의 맛을 더 좋아했다.강영수는 장소월의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명쾌하게 말했다.“너 만둣국 좋아해? 다음에 갖다 줄게. 후추가 싫으면 빼서 준비할게.”“진짜?”장소월이 만둣국에 집착하는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오 아주머니가 장소월의 어머니는 기차역 옆의 노점상이 파는 만둣국을 좋아해, 오 아주머니가 특별히 가서 가르침을 청했다고 했다.하지만 맛은 기차역에서 먹었던 만둣국만큼 맛있지 않았다. 오 아주머니가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지만 뭔가 빠진듯했다.“당연하지.
그때부터 그녀와 인시윤의 사이는 틀어졌다.사실 처음부터 인시윤은 전연우에게 접근하기 위해 장소월에게 다가갔다. 지금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연히 친구로 지낼 필요가 없었다.두 사람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었다.“시윤이 일은 내가 시윤이 데리고 와서 직접 사과할게.”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등에 얹은 남자의 손을 보았다. 그의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에 주사를 꽂고 있는 손이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시윤이가 그렇게 한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이야.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알고 있거든. 시윤이가 성급했어. 그리고 강용이 너에게 진 빚은 내가 대신 갚을게. 너희들 사이의 왕래를 막지 않을 생각이야. 나랑 강용의 문제는 절대 단순하지 않아. 넌 아직 어리니까, 이 일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알려줄게. 그냥 다른 사람보다 나를 조금만 더 신경 써주면 돼.”한 병의 물이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이루어지듯, 매일 매일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 가득 채워질 것이다.장소월은 그윽한 강영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너무 많은 갈망과 소유욕이 있었지만, 그는 절제하고 있었다.그는 전연우와 같지만, 또 조금 다르다.전생에 전연우는 장소월을 거의 감금하여 점유했다. 그는 어둡고, 고집스러웠다.강영수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면, 장소월은 가슴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 같았다.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강영수가 자신을 핍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의 계획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다른 사람에게 통제되는 자유가 아니었다.강영수의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누구도 그녀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강영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난...’장소월은 고개를 숙였다.“나한테는 다 똑같아. 영수야... 난 그 누구에게도 속하고 싶지 않아. 난 장소월이지 그 누구의 부속품도 아니야. 나만의 목표와 생각이 있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어. 지금 하고 싶은
저녁 7시 반쯤, 강영수는 병원을 떠났다.진봉은 강영수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기가 번진 것을 보고 장소월과 얘기를 잘 나눈 것으로 짐작했다.강영수가 먹고 있는 약보다 오히려 장소월이 말 한마디가 더 효과가 좋았다.도련님이 이렇게 그 여자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쩌면 좋았다.강영수는 주머니에서 진통제 몇 알을 꺼내 먹었다. 요 며칠 날씨가 추워서 그의 두 다리는 때때로 발작을 일으켰다.“오 집사한테 말해서 가문의 본가에 방 한 칸을 준비하라고 해. 모든 디자인은 소월이 취향대로 하고.”진봉은 화들짝 놀랐다.“아가씨 본가로 들어오세요? 그럼 사모님한테는 어떻게 말씀드릴까요?”“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 회사로 돌아가.”“네, 대표님.”장소월이 장가에서 나오는 건, 강영수에게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자신의 친여동생이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도, 나서서 구해주기는커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 망신을 주다니.전연우는 아주 독한 사람이었다.장해진은 늑대 한 마리를 키운 격이었다.하지만, 장해진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안다면, 오랫동안 키운 양아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까?병원에서.장소월은 침대에 조용히 앉아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불빛이 눈 밑을 비추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자신이 맞는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가고 있는 길은 자칫 잘못하면 몸이 부서질 수도 있었다.전연우, 내가 떠나면, 당신은 마침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겠네!10시가 다 되어서야 장소월은 잠이 들었다.어두컴컴하고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안에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고, 그윽한 눈으로 침대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보았다.“오늘 성은이 말고 또 누가 왔다 갔죠?”오 아주머니가 대답했다.“강 씨 성을 가진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보러 오셨어요. 두 분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떠나고 아가씨가 침대에 앉아 계속 멍하니 있었어요. 그리고 학교 일은 이미 다 해결했다고, 다음 주에 아가씨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고
“퇴원이요?”오 아주머니와 백윤서는 모두 어리둥절하여 오부연을 보고 있었다. 전연우를 제외하고...장소월은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그녀는 전연우의 깊은 눈동자를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윤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소월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오부연이 설명했다.“저희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만든 음식을 좋아해서, 특별히 아가씨를 강가에 모셔 도련님을 돌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일은 사전에 장해진 어르신과 얘기를 마쳤고, 어르신도 동의한 일입니다.”오 아주머니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누구를 돌봐요? 아가씨 몸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어르신께서 동의하실 수 있어요?”장해진이 어찌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씨 집안이 아니라 다른 집안이었어도 동의했을 것이다.장소월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며 자란 건, 장해진이 그녀를 거래의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강씨 가문은 서울의 권력자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진정한 명문 가문이었다.장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장해진이 강씨 가문의 신발을 닦아주는 것도 가당치 않은데, 강영수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사람을 달라고 하니, 장해진은 어찌 안 줄 수 있겠는가?강씨 집안이 말 한마디만 해도 장해진은 당장 딸을 내어줄 수 있었다.“장씨 집안의 일에 언제부터 하인이 나섰죠?”오부연은 차갑게 말했다.장소월은 오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조만간 돌아갈게요.”오 아주머니는 전연우를 힐끗 쳐다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휠체어를 준비해드릴까요?”장소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옷만 갈아입고 나갈게요.”“네, 도련님은 밖에서 통화 중이십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부연이 나가고 나서야 백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가문의 집사는 역시나 기질이 남달랐다.시종일관 전연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장소월은 그를 보지 않고도 그의 얼굴이 이미 잔뜩 일그
둘째 어르신은 평소 시간이 나면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해, 큰 정원을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꽃과 식물을 심었다.집 옆에는 5~6백 년 된 은행나무도 있었다.100년 전부터 강씨 가문은 상인이었고, 그 후 난세,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백 년 동안 집안이 쇠퇴하지 않았다.강가는 항상 규칙을 중시했고, 집안의 사람들은 반드시 본가에 함께 살아야 했다.유독 강영수만 많은 규칙을 어기며 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강씨 집안의 둘째 어르신이 강영수를 아끼기 때문이다.강영수는 가문의 종손이고, 지금은 가업을 잇고 있으니 둘째 어르신은 늘 강영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핏줄인 것 외에도 강영수는 가문을 지탱할 수 있는 후계자였기 때문이다.강영수는 저택의 본채에서 가장 가까운 별채에 머물렀다.둘째 어르신은 조용하고 아늑한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자신을 남원별장으로 데려가리라 생각했다.뜻밖에도 도착해보니 강가의 본가였다.장소월은 속으로 감탄했다. 강가의 본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다니. 산과 물을 끼고 있어 환경이 좋고 주변에 많은 보안 요원이 24시간 수시로 지키고 있었다.장소월은 놀라는 한편, 또 안타깝기도 했다.전생에 전연우가 강용을 이용해 강가를 얻은 후, 강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어쩌면 이곳도...당시 그녀는 수백 년의 사업을 가진 명문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큰 화재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전연우는 불과 3년 만에 강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이번 생에는 전생의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전연우는 잔인한 사람이었다.지금 장소월이 집안에서 도망쳤으니, 전연우는 또 어떤 수단으로 그녀에게 복수할까?“여기... 맘에 들어?”장소월은 사방을 훑어보았다. 이곳은 천하 일성 열 개를 합쳐놓은 듯했다.그러고 보니, 그녀가 사는 곳은 강영수의 눈에 그저 낡은 벽돌집에 불과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예뻐.”그녀도 한때 이 집에 버금갈 정도로 호화로운 집에 살
그때 진봉이 다가갔다.“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장소월의 목에 걸려있는 달 모양의 목걸이를 본 강영수의 입꼬리가 만족스러운 듯 씩 올라갔다.“알았어. 그럼 난 먼저 회사에 갈 테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푹 쉬고 있어.”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강영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부연은 생각에 잠겼다.그는 장소월이 집에 남게 된 것이 내심 기뻤다. 도련님의 병은 완치되기 힘든 병이다. 강씨 집안에서 갖은 방법을 써보았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들 몇 개월도 살지 못할 거라 여겼었다.몸의 병을 치료한다고 해도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 수 없다.도련님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장소월 밖에 없을 것이다.오부연은 도련님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그 여자가 아닌 장소월이길 바랐다!오부연이 말했다.“도련님께서 아가씨에게 방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절 따라오시죠!”장소월이 오부연과 함께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이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은 열려있었다.“이곳이 바로 소월 아가씨의 방입니다. 도련님의 방은 바로 옆이고요.”“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지 않을까 봐 걱정돼 방안 모든 물건을 장씨 집안 그래도 배치해 두었습니다.”장소월이 한 바퀴 훑어보니 확실히 오부연의 말대로였다. 그림을 건 위치까지도 완전히 일치했다.그녀가 장씨 저택에서 쓰던 물건을 모두 가져온 건가?저 침대도...?“드레스룸도 있어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바꿔드릴게요.”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편히 쉬세요. 무슨 일 있으면 분부하시고요.”“네.”오부연이 자리를 떠난 뒤, 장소월은 방으로 들어가 한 바퀴 훑어보았다. 장씨 집안에서의 방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지만 그 풍경을 즐길 기분이 나지 않았다.장씨 집안을 떠날 때부터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그분 봤어요? 전에 도련님과 사귀었던 분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했다.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방으로 돌아갔다.핸드폰을 켜고 살펴보니 강용의 문자메시지는 저번 주에 멈춰있었다.제대로 공부는 하고 있을지...백윤서는 저번 기말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1반에 오게 되었다. 강용의 성적은 어땠을까?장소월은 그의 시험 성적이 궁금해 문자를 보냈지만 몇 분을 기다렸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그녀가 포기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꺼졌던 화면에 불이 밝혀졌다. 강용의 답장인 줄로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소녀 한 명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도착해 있었다.오늘 대명산에 눈사태가 일어나 스키를 즐기러 갔던 사람들이 안에 갇혀버렸다고 한다.32명의 손님은 다쳤고, 8명은 불행하게도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한 명은 행방불명이라 아직까지도 경찰에서 총력을 다해 찾고 있다.그 사람은 20세 연극영화과 학생 나청하였다. 누군가 그녀를 찾는다면 그 즉시 경찰에게 연락하라는 기사였다.나청하?장소월은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사진을 살펴보았다.순간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틀림없이 저번에 스키장에서 만난 전연우의 여자친구였다.갑자기 죽었다고?장소월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아올랐다.장소월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녀는 더이상 생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저녁 10시.강영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로 들어왔다. 하인 아주머니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도련님.”“소월이는요?”“소월 아가씨는 약을 드시고 잠드셨습니다.”강영수가 손을 휘저으며 하인을 보냈다.밤이 늦었으니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그는 주방에 들어가 2000만 원짜리 위스키 마개를 따고 술잔에 절반 정도 부었다. 요즘은 수면제를 먹지 않으니 알코올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열한 시 반이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갔다.그는 굳게 닫혀있는 장소월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녀가 항상 그의 곁에 머무를 수 있으니 말이다
강한 그룹 대표는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학교 문 앞은 전문 운전기사를 대동하고 아이를 데려다주는 학부모와 차들로 붐비었다. 강한 그룹의 차를 알아본 순간, 모두 양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주었다.장소월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제운 고등학교 학생들 중 장소월이 강씨 집안 사생아와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강씨 집안 후계자와도 인연이 있었을 줄이야.강한 그룹 대표가 친히 장소월을 학교에 데려다줬으니, 이는 그녀는 이미 강씨 집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감히 그녀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장소월은 불편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나 먼저 들어갈게.”강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저녁 수업이 끝나면 데리러 올게.”“그래.”장소월은 야간자습을 해야 했기에 학교를 마치는 시간과 그의 퇴근 시간이 거의 비슷해졌다. 때문에 마땅히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마침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본 인시윤은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지만 못마땅함을 감출 순 없었다.저번 그녀와의 일 때문에 장소월이 자신과 인연을 끊을까 봐 두려워진 강영수는 인씨 집안으로 찾아가 그녀에게 단단히 경고했다.그녀는 한 번 혼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강용은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다.어머니는 그녀더러 오빠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저번 오빠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장소월 덕분이었다.그녀는 이미 강용 때문에 장소월과 얼굴을 붉혔다.인시윤은 이제 와 어떻게 장소월에게 입을 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오빠, 소월이가 강가네에 갔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학교에 올 거예요?”전연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건 시윤 씨가 걱정할 만한 일이 아니에요. 얼른 들어가요. 지각하면 안 되잖아요.”“알겠어요. 오빠.”장소월은 6반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강용은 여느 때처럼 반팔 티셔츠를 입고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책
“내가 그렇게 흉측해 보여?”“난...”여자의 몸이든, 남자의 몸이든 서철용에겐 똑같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배은란은 다르기 때문에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 혼자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서철용의 배은란에 대한 감정은 그녀와 서민용이 결혼했을 때부터 시작되었고, 줄곧 그녀를 빼앗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었다.하여 갖은 방법을 대어 서민용을 폐인으로 만들었다. 그 후... 자신을 서민용으로 여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 심지어 최면을 한 뒤에도 서민용을 놓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서철용은 완전히 패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이제 도저히 그녀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모두가 인정하는 실력 있는 의사인 서철용이었지만, 지금 배은란의 상황은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괴로웠다.그가 계속 몸을 돌리지 않자 배은란은 슬픔에 눈물까지 흘리기 시작했다.등 뒤에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에 서철용은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위로했다.“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어.”그녀는 눈물을 닦고는 서철용의 손을 툭 쳐냈다.“내 몸에 더러운 게 자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피하는 건데!”“아기는 보면서 왜 나한테는 눈길도 안 주는 거야.”“민용 씨, 우리 얼마나 오랫동안 관계를 하지 않았는지 알기나 해?”서철용이 말했다.“알았어. 오늘 밤엔 아무 데도 안 가고 너랑 같이 있을게. 응?”그가 배은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그럼 연구원은?”“몇 개월 휴가 냈어. 그동안 계속 너랑 집에만 있을 거야.”배은란의 감정은 그제야 천천히 안정되었다.서철용이 이런 결정을 한 건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했다.“아까 누가 민용 씨 앞으로 왔다면서 택배 가져왔어. 상세한 주소도 안 쓰여있고, 이름도 없었어. 내가 책상 위에 놓아뒀어.”배은란은 안에 중요한 물건이 들어있을까 봐 열어 보지 않았다.서철용이 열어보니 지극히 일반적인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가 들어있었다.배은란이 물었다.“진짜 예뻐. 이거 어디에서 보내온 거야?”서철용은 조개껍데기
송시아가 분노가 가득 실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참혹했던 기억이 모두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한, 아무도 내가 예전에 어땠는지 상관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집중돼 있거든요.”“이 큰 서울을 뒤엎는 것도 내 한 마디면 충분해요.”서철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요염한 얼굴에 송시아에 대한 가소로움이 가득 찼다.“정말 자신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송시아 씨... 당신이든 전연우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어요. 그 어디에도 계속 한쪽으로만 기우는 저울추는 없거든요.”송시아는 그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고 떨어진 낙엽을 툭툭 걷어찼다.“됐어요. 그 말은 연우 씨도 듣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난 말할 것도 없죠.”“오늘 여기에 온 건 서 선생님한테 경고하기 위함이에요. 숨고 싶으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최대한 깊이 숨는 게 좋을 거예요. 장소월을 제외하면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거든요.”“아, 참! 그리고 당신 와이프... 당신도 와이프가 진실을 알게 되는 건 원하지 않죠?”“서민용은 이미 죽었잖아요. 만약 내가 사실을 알려준다면 당신 와이프는 미쳐버리지 않을까요?”서철용의 눈동자에 독기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송시아 씨,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면 일이 다 해결될 것 같아요?”그의 손에 들려있는 핸드폰 화면을 본 순간 송시아의 얼굴이 경직되었다.“여기엔 송시아 씨가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했던 말들이 다 녹음되어 있어요.”“이것도 다 송시아 씨한테서 배운 거예요. 만약... 은란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누가 저지른 일이든 모두 당신부터 의심할 거예요.”“은란이나 아이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치면 난 당신이 예전 업소에서 나체로 춤을 추던 영상, 그리고 소민아와의 관계까지 모두 세상에 퍼뜨리고 서울 한복판 전광판에 생중계할 거예
하지만 서철용은 그녀가 보낸 문자에 답장을 별로 하지 않았다. 특별히 급한 일이 있을 때에만 짧게 몇 마디 보내곤 했다.수술이 끝난 지도 어느덧 2주가 지났다.군병원.아래층 정원, 도우미가 남자아이를, 서철용이 여자아이를 안고 있고, 배은란은 휠체어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답장 안 해?”최근 서철용의 호주머니 속 핸드폰의 진동 빈도가 현저히 높아졌다. 그는 연구원의 소식을 놓칠까 봐 핸드폰 알림을 꺼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속 며칠 동안 연락을 해온 건 연구원이 아니라 소민아였다.서철용은 핸드폰을 꺼내 소민아의 번호를 차단해버렸다.“이 귀찮은 여자한테 일일이 대답해줄 필요 없어.”성세 그룹.사무실 안, 소민아가 또 그에게 보낼 문자를 작성하고 있었다.[서 선생님, 저 이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저 좀 구해주세요!]하지만 전송 버튼을 누른 순간 차단 표식이 떴다.배은란 역시 서철용이 다른 일 때문에 바삐 돌아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자신의 옆에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저번 수술을 마치고 온 날 배은란은 깜짝 놀랐었다. 그가 너무 피곤해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으니 말이다.그렇게 하루가 지나도록 잠들어 있었다. 배은란은 자신도 수술 회복기였지만, 줄곧 그의 옆을 지키며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그때, 간호사가 다급히 달려와 말했다.“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누군가 선생님을 만나러 왔는데 막지 못했어요.”그 불청객을 봤음에도 서철용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송시아가 어느새 나타나 도우미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아이가 아빠와 엄청 닮았네요. 서 선생님 생각은 어때요?”송시아의 불순한 눈빛을 본 서철용은 간호사에게 배은란과 아이를 데리고 올라가라고 말했다.“오랜만이에요. 꽤 많이 변한 것 같네요.”송시아가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사람은 원래 다 변해요. 왜 그렇게 아내분을 급히 보내는 거예요? 제가 쓸데없는 말이라도 할까 봐요?”“걱정하지 말아요. 그 정도 선은
소민아는 송시아의 말에 반박할 방법이 없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송시아의 말은 점점 더 그녀를 다그치고 있었다.“민아야...”“장소월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언니랑 같이 회사 운영하자. 응? 언니는 대표, 넌 부대표 자리에 앉는 거야. 우리 둘이 성세 그룹을 차지하는 거지.”허무맹랑한 상상 속에 빠져있는 송시아를 보며 소민아는 자신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날 세뇌시키지 말아요. 아무리 화려한 말로 포장해도 난 당신이 무슨 속셈을 갖고 있는지 다 알거든요. 오늘도 그냥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러 온 거예요.”경호원이 깨끗이 씻은 과일을 들고 와 소민아 앞 탁자 위에 놓아주었다.하지만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체 이곳에 뭘 기대하며 왔단 말인가? 송시아가 착해졌을 거라 기대했었나?송시아의 욕심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악마로 변해 소월 언니까지 해치려 하고 있다.“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완전히 답이 없네요.”“과일은 혼자 천천히 드세요. 전 독약이 들어있을까 봐 못 먹겠네요.”“민아야!”소민아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해버리고 분노하며 자리를 떴다. 송시아는 그녀를 쫓아가려 침대에서 내려갔지만,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옆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를 부축했다.“대표님, 조심하십시오.”“여자 하나 잡아 세우지 못하고 뭐 하는 거야!”송시아는 힘껏 그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뱃속 아이를 떠올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마음을 가라앉혔다.소민아가 병원을 나와 차 조수석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던 신이랑이 물었다.“왜 그래요? 일이 잘 안 됐어요?”소민아가 말했다.“돌아가요. 말하고 싶지 않아요.”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신이랑은 더는 묻지 않고 최대한 그녀를 위로했다.“민아 씨, 결혼 결정 못 하는 거 혹시 대표님 와이프분 때문이에요?”“그분이 걱정된다면... 내가 이미 사람을 보
한의준이 떠난 뒤, 소민아는 해바라기 꽃을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오는 길에서 송시아의 병실에서 나온 듯한 남자와 마주쳤다. 왠지 낯이 익었지만, 어디에서 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소민아는 시선을 거두고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얼굴 곳곳에 멍 자국이 가득했고 목과 손목에 나 있는 선명한 상처들도 눈에 들어왔다. 소민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왔다. 뒤죽박죽인 머릿속처럼 마음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강지훈의 죽이지는 않는다는 말은 이 정도로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뜻인가 보다.“큰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소민아는 꽃을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송시아는 소민아를 보자 너무 기뻐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녀가 껍질을 깎아놓은 과일을 소민아에게 건넸다.“방금 내온 과일이야. 먹어봐...”“참, 딸기랑 체리도 있어. 내가 가져다줄게.”송시아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소민아는 바로 링거 바늘을 꽂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세웠다.“이 꼴로 어디에 가려고요?”“잠깐만 있다가 갈 거예요.”송시아는 그녀를 잡고 싶었다.“나... 아직 밥 못 먹었어. 언니랑 같이 밥 먹고 가면 안 돼? 민아야, 네가 와줘서 언니는 너무 행복해.”“이봐요.”송시아가 문밖 경호원을 불러 말했다.“이 과일 다 씻어와요.”소민아가 말했다.“난 필요 없어요.”송시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먹어야 해. 힘들게 마음먹고 온 거잖아. 여기까지 왔다는 건 너도 이 언니를 놓지 못한다는 걸 의미해. 그래서 언니는 정말 기뻐.”“네 얼굴을 본 순간 그놈에게 당해 생겼던 상처가 깨끗이 나아지는 것 같았어.”소민아는 고개를 떨구고 링거 바늘을 꽂고 있는 송시아의 손을 쳐다보았다. 손목에도 뚜렷한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 사람이 이렇게 만든 거예요?”송시아는 덤덤히 손을 거두고 동생을 바라보았다.“민아도 다 알게 된 거야? 강지훈이 나한테 독약을 먹이고 짐승 같은 놈들한테 짓밟히게 했어. 만약 그 사람이 나타나 날 구해주지 않았다면, 네
송시아에게 약을 발라주려 병실에 들어가려던 간호사는 안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겁을 먹고 문 앞에 멈춰 섰다.여자의 저주를 퍼붓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왜! 대체 왜 다들 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데!”한의준은 이마를 조금 찌푸릴 뿐 별다른 기분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맺어왔지만 송시아는 여전히 한의준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한의준은 무슨 일이 생기든 항상 자신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한의준은 완전히 미쳐버린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는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내가 말했잖아. 넌 편히 쉬면서 우리 아이를 낳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고.”송시아의 눈엔 시뻘건 핏줄이 가득 서려 있었다.“우리 첫 아이도 그놈 손에 죽었다는 거 잊으면 안 돼요.”그녀는 남자의 손을 자신의 아랫배에 올려놓았다.“나도 당신만큼 아이를 원한다는 거 알고 있죠?”송시아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전생에서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고,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남자의 과거는 알아낼 수 없었다.그는 단순히 그녀와 아이를 낳기 위해 찾아왔다. 송시아는 그의 일 처리 방식을 목격한 뒤에야 그가 그리 간단한 사람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면북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그 어떤 지하 조직과도 마음대로 왕래한다.그토록 신비롭고 은밀한 곳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있다...“그건... 내가 하나씩 모두 갚아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더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병원에서 치료나 잘 받고 있어.”“언제까지 듣고 있을 거야! 들어와!”간호사는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고는 천천히 병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죄송합니다... 환자분이 흥분하신 것 같아서... 들어올 수가 없었어요. 환자분, 지금 임신 2개월 째예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치료하셨어요. 안정을 취하기만 하면 곧 퇴원할 수 있으실 거예요.”“뭐라고요? 임신했다고요?”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송시아의 눈동자가
향기로운 갈비찜 냄새에 소민아는 흐릿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누워있는 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보고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신이랑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대충 슬리퍼를 신고 식탁 의자에 앉아서는 갈비를 들고 입에 넣기 시작했다.신이랑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씩 웃으며 다가갔다.“천천히 먹어요. 다 민아 씨 것이에요. 아무도 빼어가지 않아요.”“이랑 씨, 저 밥 먹고 싶어요.”“그래요. 내가 밥 가져다줄게요.”신이랑은 그녀에게 밥이 가득 담긴 그릇과 숟가락을 가져다주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니 그는 소민아의 습관까지 발견하게 되었다.그녀는 세 그릇을 먹어서야 공허했던 배를 채웠다.마지막으로 국 한 그릇까지 마시고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트림을 했다.신이랑이 그녀에게 휴지를 가져다주었다.“더 먹을래요?”“이제 배불러요.”“너무 고마워요. 이랑 씨가 없었다면, 쓰러져 죽었거나 배고파 죽었을 거예요.”“어젯밤 내가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어디에 갔었어요?”“병원에 갔었어요. 대표님께서 수술을 하셨는데 가족 사인이 필요해서요. 참, 집에 돌아왔을 때 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신이랑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민아 씨 기다리고 싶었어요. 밤새 안 들어오길래 찾으러 나갈 생각이었어요.”소민아는 입술을 뻐금거리다가 다시 침묵했다.자신에게 너무 잘해주지 말라는 말을 하려다 다시 삼켜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그 말을 꺼내면 미안함에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신이랑이 해준 밥도 먹었고, 쓰러졌을 때 신이랑의 보살핌도 받았으니 말이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화제를 돌렸다.“참, 송시아 최근 뭐 하고 있는지 알아요? 대표님에게 그런 큰일이 있었는데도 왜 병원에 안 나타난 거예요?”신이랑이 말했다.“나도 민아 씨한테 그 얘기 하고 싶었어요. 송시아는 독약을 먹고 병원에 실려 갔대요.”소민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독약이라고요? 누가 감
간호사가 소리쳤다.“됐어요. 됐어요. 서 선생님, 환자 심장이 다시 뛰고 있어요.”서철용은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 그저 조금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전연우! 전연우!넌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장소월을 놓지 못하는구나.서철용이 말했다.“조각은 이미 꺼냈으니까 마지막 봉합 수술만 하면 돼. 마지막까지 집중해야 해.”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네.”수술은 장장 6, 7시간이 걸려 오전 9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수술실 밖.부관이 눈을 감고 앉아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소장님, 현아 아가씨가 깨어나셨다고 합니다. 지금 돌아갈까요?”소현아의 이름이 들리니 옅은 잠을 자고 있던 소민아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강지훈이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녀도 급히 일어섰다.“강지훈 씨, 아니, 형부, 혹시 송시아 잡고 있어요? 송시아는 지금... 어떻게 됐어요?”강지훈은 음산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안 죽어.”그 짧은 세 글자에 소민아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송시아를 잡아둘 사람은 강지훈 말고는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강지훈은 잠시 눈을 붙이며 북경 감옥으로 돌아갔다. 도착했을 때, 부관이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고는 그에게 보고했다.“전연우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합니다. 의식도 곧 회복할 거라고 했습니다.”강지훈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실력 쓸만하긴 하네.”전연우는 중환자실에서 한동안 치료받아야 했다. 서철용은 피로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수술실에서 걸어 나왔다. 장시간 고강도의 수술을 마친 그가 걱정되는 마음에 소민아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서철용이 말했다.“전연우를 계속 여기에 둘 순 없어요.”소민아는 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는 걱정스레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서 선생님, 송시아가 대표님이 깨어나시는 걸 방해할까 봐 그러시는 거예요?”“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송시아의 야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송시아는 전연우뿐만 아니라 성세 그룹의 주인 자리까지 탐내고 있어요.”“신씨
엘리베이터를 나선 뒤 서철용이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송시아가 저렇게 날뛰는 것도 한때일 뿐이에요. 전연우의 개인적인 일일 뿐이니 부디 송시아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라요.”강지훈이 말했다.“그런 거 나한테 말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그냥 전연우의 목숨만 살리면 돼요.”“당연하죠.”서철용은 익숙한 길을 따라 수술준비실로 향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던 심장외과 과장이 서철용을 보고는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 달려나갔다.“서 원장님!”서철용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내가 없는 동안 수고 많았어요. 시간이 급박해서 수술 끝나면 바로 다시 돌아가 봐야 해요. 들어와서 어시스턴트 해요.”“네.”서철용은 무균 수술복을 입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흡기 단 채 수술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본 그의 입꼬리가 위로 씩 올라갔다.“오랜만이야, 전연우!”전연우의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소민아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실 앞에 가보니 한 사람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소민아는 바로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이... 이런 우연이! 형부도... 여기 계셨어요?”강지훈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강지훈은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소민아는 강지훈이 앞에 있으니 사나운 호랑이 앞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토끼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는지 핸드폰을 들고 기성은에게 문자를 보냈다.[서 선생님이 대표님의 수술을 하고 계세요. 대표님 곧 깨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기성은 씨도 돌아오는 거 맞죠!]소민아는 이번에도 기성은의 답장을 받지 못했다.그녀는 송시아와 임정희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대표님의 수술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나타나지 않다니.시간이 점차 흐르고 다섯 시간 뒤, 바깥에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수술 어시스턴트가 땀을 훔쳤다.“서 선생님, 호흡 가다듬으세요. 모든 수치 이상 없습니다.”그때, 상처를 잡고 있던 다른 어시스턴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