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아는 마지막 5분을 남겨두고 사무실에 도착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신이랑에게 문자를 보냈다.[맞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우린 여전히 친구예요. 저 같은 사람도 남자친구 생겼으니, 이랑 씨는 더 좋은 여자친구 찾을 수 있을 거예요.][그리고 오늘 점심 고마웠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하지만 앞으론 만들어줄 필요 없어요.]대화창에 곧바로 답장이 나타났다.[남자친구 좋은 사람이에요?]소민아는 고개를 숙이고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점심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완벽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원래 차갑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에요. 머릿속에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오늘 점심 제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그 사람 자리에 앉았다고 벌컥 화를 내더라고요.][그럼 그 사람이 왜 좋은 거예요?][감정이라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결점은 많지만, 한 번 좋아하게 되면 그 결점들이 모두 보이지 않게 되거든요.]소민아는 길을 걷다가 돌연 누군가와 부딪혔다. 이마가 남자의 딱딱한 가슴팍에 닿아 얼얼했다.핸드폰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소피아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소민아 씨, 지금은 근무 시간이에요. 오전엔 잠만 자더니, 오후엔 핸드폰 들고 산책이나 하는 거예요?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막 나가세요?”소민아는 태연한 얼굴로 핸드폰을 주워 먼지를 툭툭 털었다.“그 말 왠지 소피아 씨가 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거로 들리네요?소민아의 시선이 기성은에서 소피아로 향했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붙였다.“소피아 씨가 부대표 자리에 앉으면 다시 얘기해요.”그 말을 끝으로 소민아는 자신의 자리에 걸어가 앉았다. 사무실에서 싸움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얼른 시선을 거둔 뒤 고개를 숙이고 일하는 척했다.소피아가 말했다.“기 비서님, 소민아 씨 좀 보세요.”기성은은 차갑게 그녀에게 말했다.“자기 일이나 똑바로 해요.”백혜진은 조용히 소민아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소민아는 송시아와 같은 층에서 근무하
소민아가 물었다.“그런 일이 있었어요? 전 왜 몰랐죠?”“민아 씨가 출장 갔을 때였을 거예요. 당시 민아 씨는 없었어요.”“소피아 씨가 기 비서님에게 얘기하면...”그때 소민아는 확실히 회사에 없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줄로만 알았던 남자가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니. 정말이지 해가 서쪽에서 솟아오를 일이다.소민아가 흐뭇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걱정 말아요. 기 비서님은 저한테 해코지 못 해요... 할 수 없죠.”“왜요? 설마 기 비서님이 민아 씨를 계속 비서로 두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소민아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건 알 필요 없어요.”소민아는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변기에 앉아 한참을 망설인 뒤에야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소피아 씨 좀 제대로 관리할 수 없어요? 눈 달린 사람이라면 다 알 거예요. 소피아 씨가 심심하면 날 건드린다는 걸.]2분 뒤.긴 기다림 끝에 기성은의 문자가 도착했다.[소피아 씨 말이 틀렸어요? 근무 시간에 뭐 하는 거예요? 심심한 건 민아 씨였죠.]소민아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올라 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지금 이게 무슨 태도예요? 난 기 비서님 여자친구라고요! 어떻게 날 두고 그 여자 편을 들 수가 있어요? 나쁜 사람.][됐어요! 참 대단하시네요. 전 이제 여자친구 안 할래요. 다른 여자 찾아보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그 문자를 끝으로 소민아는 기성은의 연락처를 차단해버렸다.사무실에 발을 들였을 때 마침 회의하러 나가던 기성은과 마주쳤다.그녀는 대놓고 흥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홱 돌리고 자리를 떴다.퇴근 시간, 기성은은 회의를 끝마쳤고, 소민아는 물건을 모두 챙겨 시곗바늘이 정각을 가리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소민아는 가장 일찍 회사를 나서는 직원이었다. 얼마 전부터 30분 연장 근무를 하게 된 프런트 직원들은 그녀의 칼퇴근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회사를 나간 뒤, 소민아는 가방을 메고 확연히 축 처진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무슨
신이랑은 소민아에게 눈길을 고정한 채 빙그레 웃어 보였다.“아는 사이 맞아요.”“퇴근했어요? 내가 데려다줄게요.”“그건...”그럴 필요 없어요.소민아는 말을 채 마치기 전 회사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그럼 부탁할게요.”옆에 있던 편집부 직원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저기, 작가님, 제가 이미 차 불러뒀어요. 곧 올 거예요.”“네.”갑자기 이런 행운이?택시가 도착하자 소민아는 신이랑과 함께 차에 올라탄 뒤 편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퇴근할 때마다 버스 탔었는데 오늘은 이랑 씨 덕분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네요. 헤헤헤... 고마워요.”신이랑은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소민아가 물었다.“이랑 씨, 저희 회사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왔으면서 왜 저한텐 아무 말 안 했어요. 말했으면 마중 나갔을 텐데.”“그냥 인터뷰 좀 했어요. 별거 아니에요.”“인터뷰요? 인터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이랑 씨는 신비주의라던데...”신이랑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3일 뒤에 경시 도서관에서 사인회를 열 예정인데, 그날... 같이 가줄 수 있어요?”소민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되죠! 저 정말 같이 가도 돼요?”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가 덜컹거리는 바람에 손끝이 잘못 스쳐 통화가 연결되었다. 그 순간에도 소민아는 쉴 새 없이 차 안에서 신이랑에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택시 운전기사까지도 귀가 얼얼해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신이랑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 없이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7시 반, 신이랑과 그녀는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그들은 한 중식당에 들어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컵에 물을 따라주자 그녀는 바로 목을 적시고는 말했다.“제가 말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랑 씨가 처음이에요. 제 말을 끊지 않는 사람도 이랑 씨가 처음이고요. 친구들도 제가 말이 많다며 짜증 내거든요.”신이랑
그와 회사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상관없다. 여전히 다른 동료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그때 편집부 직원이 스태프 증 하나를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민아 씨... 신이랑 작가님과 무슨 사이예요? 오늘 사인회에 반드시 민아 씨를 들여보내 달라고 신신당부하시던데, 정말 너무 부러워요. 끝나면 사인받은 새 책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소민아는 흐뭇한 얼굴로 스태프 증을 목에 걸고는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걱정 말아요. 그것 하나 못 해주겠어요?”“그리고 하나 부탁할 게 더 있는데...”‘말해요.”“신이랑 씨 카톡에 친구추가 신청을 보냈는데 지금까지 계속 받지 않았어요. 신청 수락하게 도와줄 수 있어요?”“말해볼게요. 하지만... 그분이 정말 수락할지는 저도 장담 못 해요.”“괜찮아요. 제 느낌에 작가님은 민아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민아 씨 말은 분명 효과적일 거예요.”“차가 밑에서 대기하고 있어요. 어서 가봐요. 작가님이 기다리고 계세요.”사인회는 9시 반 시작이라 아직 30분이 남아 있었다.사무실 사람들 모두 그녀가 신이랑의 사인을 받은 책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경시 도서관, 그들은 조용한 직원 전용 통로를 통해 사인회장으로 향했다.2층까지 올라간 뒤, 소민아는 창가에서 잔뜩 흥분한 얼굴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이랑 씨, 진짜 톱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네요. 이랑 씨 진짜 얼굴을 보면 더 깊게 빠지겠어요.”동행하고 있던 편집부 직원이 말했다.“사인만 하시면 돼요. 누가 사진 찍자고 하시면 거절하세요.”소민아가 뒤를 돌아보니 신이랑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편집부 여우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리고 닮은 것 같아 보였다.정장을 갖춰 입은 여우림이 자리에서 일어서 말했다.“소민아 씨, 2분 뒤면 시작할 거예요. 사인회 동안 팬분들 잘 지켜봐 주세요. 전 다른 일이 있어요. 곧 중요한 손님이 도착하
차가 도착한 뒤, 여우림은 차 문을 열고 고개를 돌려 신이랑을 쳐다보았다.“왜 그래요?”“잠깐만 기다려요.”신이랑이 말하는 기다림의 대상은 다름 아닌 소민아였다. 머지않은 곳에서부터 소민아가 버블티 네 잔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 숨을 헉헉 몰아쉬며 말이다.“버블티 드세요. 제가 사는 거예요.”여우림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절했다.“죄송해요. 민아 씨. 저와 작가님은 다 버블티 안 마셔요. 마음만 받을게요.”신이랑은 소민아가 들고 있는 버블티를 가져갔다.“괜찮아요. 마실 수 있어요.”신이랑은 뒷좌석 차 문을 열어주었다.“타요.”소민아가 대답했다.“고마워요.”지금까지 바깥에서 이동할 때 신이랑은 늘 그녀와 함께 앉았었다. 그의 편집 어시스트라기보단 개인 비서에 더 가깝다 할 수 있었다. 예전 그들의 플랫폼은 그저 소수의 인원들이 드나드는 변방 문학 사이트에 불과했었다. 신이랑이 ‘풍신’이라는 이름으로 첫 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방대한 이윤을 얻어 국내 유명 플랫폼들을 가뿐히 앞섰다.점점 커져가는 사이트의 영향력과 몸집 덕분에 이제 자신만의 판매 루트도 생겼다. 업계 가장 높은 위치까지 성장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그를 만난 건 여우림에겐 가장 큰 행운이었다.그녀의 엄마가 암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병원 벤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신이랑을 만났다.그녀는 신이랑이 그저 작은 출판사 직원인 줄로 알았다.무협 소설 분야를 신설하려던 그때, 마침 신이랑도 비슷한 유형의 글을 쓰고 있었다.그렇게 여우림은 신이랑의 첫 독자가 되었다.신이랑의 소설은 세상에 얼굴을 내민 뒤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여우림도 적잖은 보너스를 받아 그 돈으로 자신의 소설 사이트를 개설했다.그녀가 신이랑의 손을 잡고 만든 사이트는 하루가 다르게 승승장구했다.단 두 명으로 시작해 점점 규모를 확장했다. 여우림의 뛰어난 사업가 기질과 신이랑의 현란한 글솜씨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다만... 그 과정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여우림이 조수석에 앉아
매니저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오늘 귀한 세 분과의 약속을 위해 전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식당 전체를 빌리셨습니다.”소민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역시 부자는 다르네요. 부러워 죽겠어요. 저에게도 그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신이랑이 그를 바라보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분명 올 거예요.”룸 문 앞, 여우림이 걸음을 멈추었다.“사모님이 만나고 싶어 하시는 사람은 이랑 씨예요. 민아 씨, 우린 들어가지 말고 로비에서 기다리죠.”소민아가 배시시 웃어 보였다.“미안해서 어쩌죠? 저 이미 오는 길에 소월 언니한테 문자 보냈어요.”그녀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신이랑도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아는 사이든 아니든 상관없으니까 나랑 같이 가요.”“우림 씨는 먼저 돌아가요. 식사 끝나면 내가 민아 씨 집에 데려다줄게요.”여우림은 잠깐 이마를 찌푸렸다가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잘됐네요. 마침 저도 책 출간에 관한 일 때문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이번 달 원고료 확인해봐요. 서프라이즈가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들어가요.”신이랑은 그녀의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소민아는 그를 보고 피식 웃고는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룸 안에선 장소월이 아이를 안고 젖병을 물리고 있었고 은경애는 뒤에서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조용히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세상에, 족발 먹음직스러운 것 좀 봐. 한 입 삼키면... 얼마나 맛있을까.’“소월 언니...”소민아가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달려와 장소월의 옆에 앉았다.“어머나, 아기 너무 예뻐요.”“왔어요?”“네. 오늘 길이 막혀서 좀 늦었어요. 저 빨리 아기 안아보고 싶어요.”장소월은 별이를 그녀에게 안겨준 뒤 신이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풍신 작가님?”신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장소월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이렇게까지 젊은 분일 줄은 몰랐네요. 얼른 앉아서 식사하세요.”소민아는 룸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그 사람이 보
신이랑은 자리에 앉아있었다.“사 온 버블티 왜 안 드렸어요.”소민아는 바닥에서 버블티 석 잔을 들어 올렸다.“소월 언니는 얼마 전에 수술받아서 아직 몸을 채 회복되지 못한 상태예요. 이런 음료 마시면 안 돼요. 그리고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상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만에 하나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대표님은 절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이랑 씨는 몰라요... 그분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소민아는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역시 제가 나서서 다 먹어치워야겠네요.”신형 벤틀리 하이브리드 벤, 바로 전연우가 최근 새로 뽑은 자동차였다. 요즘 전연우는 결혼식 준비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의 곁에서 보냈다.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 훌륭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차 안, 거대한 공간에 술과 음료, 대량의 아기용품... 그리고 각종 간식들도 들어있었다.전연우가 물었다.“만났어?”“응. 되게 젊더라고. 내가 보기에 민아 씨랑 이랑 씨 사귀는 것 같아. 엄청 잘 어울려.”전연우의 얼굴 표정은 변덕스러운 오늘의 날씨와도 같았다. 첫 마디에 확연히 어두워졌다가 마지막까지 들으니 바로 정상으로 회복됐다.“넌 이미 결혼한 몸이니까 다른 생각 하면 안 돼.”강렬한 소유욕이 가득 담겨 있는 한 마디였다.하지만 장소월은 바로 전연우의 숨통을 옥죄었다.“현실은 인정해야지. 신이랑 씨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16살에 을 쓰기 시작해 17살에 출간했어. 18살엔 완전한 유명세를 탔고. 중요한 건 너보다 젊다는 거야.”전연우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 듯했다. 그는 느릿하게 입고 있던 정장을 벗고 셔츠 손목 단추를 풀고는 소매를 걷어 올려 건장한 팔뚝을 드러냈다.“혼나고 싶은가 보네.”“기획팀에서 신이랑 작품 편집권을 손에 넣었어. 지금쯤 스카이 스튜디오에 계약서가 갔을 거야. 곧 네 남신의 작품을 직접 그리게 될 텐데 만족해?”장소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휴가 내겠다고 작업실에 얘기했어.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일 받지 않고
소민아가 말했다.“안 탈 거예요. 이미 퇴근했어요.”“오늘 내가 했던 말 잊었어요? 안 타면 그 후과 책임져야 할 거예요.”흑흑... 또 협박하고 있다.소민아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헤어졌는데 왜 날 찾아왔어요! 퇴근했는데도 시간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못 써요? 정말 양심도 없는 사람이야!”그녀는 일부러 상처받은 모습으로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인내심이 바닥난 기성은은 차에서 내렸다.“닦기 전에 먼저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려 왔는지나 확인하는 게 어때요?”“기 비서님.”더없이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가 머지않은 곳에서 들려왔다.소민아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주가은 씨.”“이런 우연이! 또 만나네요.”“민아 씨, 오늘 바람이 너무 거세네요. 우리 얼른 집에 들어가요.”주가은은 하얀색 털 외투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긴 머리는 깔끔하게 위로 올려 묶었고, 온몸에선 단아하고 부드러운 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몸매는 바람이라도 불면 흔들려 나갈 것처럼 여리여리했다.“전 괜찮아요. 나온 김에 좀 걷고 싶어요.”주가은은 무슨 병에라도 걸린 사람같이 얼굴이 창백했다. 하지만 핑크색을 띄는 입술만큼은 반짝반짝 아주 예뻤다.“기 비서님, 다친 데는 좀 어때요? 당분간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돼요.”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전 다른 일이 있어 먼저 가볼게요. 가은 씨, 몸조심해요.”주가은의 입꼬리가 빙그레 말려 올라갔다.“네.”소민아는 기성은이 누군가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마음속에서 순간 살벌한 불길이 밀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여자의 직감이 두 사람은 예사로운 관계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그녀는 주가은을 아래위로 살펴보고는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했다.가슴도 그녀보다 크지 않고, 엉덩이도 그녀보다 탱탱하지 않으며 허리 역시 그녀보다 가늘지 않았다.또한 그녀는 목소리도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입만 열면 쩌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