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민도준에게 온다는 사실을 강아련에게 말한 민승현은 권하윤의 설명에 납득했다.“그래도 전화라도 하고 왔어야지.”민도준 쪽을 바라보며 하윤은 치솟는 화를 참고 말했다.“당신과 형님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까 봐 음식을 준비해 온 거예요. 만약 일에 방해가 된다면 지금 바로 갈게요.”“잠깐.”민도준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그가 입을 떼자 민승현은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방만한 포즈로 소파에 기대어 있던 민도준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이왕 제수씨가 가져 왔으니 그냥 계세요.”두 쌍의 눈이 서로 부딪혔다. 화가 치미는 한 쌍과 흥미진진한 눈빛의 한 쌍이.“하하하, 형님이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두 사람 사이의 어두운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한 민승현이 민도준을 향해서 아부하듯이 웃었다. 그리고 하윤을 향해 돌아서서는 다시 큰 소리로 지시했다.“너 아직도 거기서 뭐해. 빨리 음식 차리지 않고.”하윤이 가져온 도시락에는 탕 하나에 요리 4개가 담겨 있었다. 포장을 열자마자 오전 내내 굶었던 민승현은 즉시 입에서 침이 흐르기 시작했다.그러나 채소 위주의 요리들을 본 그의 얼굴이 또 다시 찌푸려졌다.그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들일 뿐만 아니라 아예 먹지도 않는 것도 두 가지나 있었다.“아니 도대체 음식을 어떻게 고른 거야? 내가…….”“맛이 괜찮네요.”민도준의 한 마디는 민승현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는 더 이상 평도 못하고 목을 움츠린 채 도시락을 들었다.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하윤은 민도준만 있는 줄 알고 자신의 것과 2 인분을 주문해 온 터였다.민승현이 의심할까 봐 자신의 몫이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한쪽 소파에 앉아서 사무실이라고 하는 곳을 살폈다.이 방의 인테리어는 블랙썬의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늘어난 사무용 데스크와 컴퓨터로 겨우 사무 공간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콜록콜록…….”밥을 먹다 고추에 사레가 들린 민승현이 계속된 기침에 입을 가리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권하윤! 휴지 줘!”식탁이 없어 사무
권하윤이 자리에 돌아와 앉자마자 밖에서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오빠, 도준 오빠, 바쁘시죠?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문밖에서 들리는 애교를 띤 여자 목소리에 민승현이 순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민정인 것 같아요.”마침 물티슈로 손을 닦고 있던 민도준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는 하윤을 쳐다보았다.“오늘 정말 번잡하네.”민승현이 억지웃음을 웃었다.“하하, 방금 민정이가 근처에 있는데 먹을 것들 좀 갖다 주겠다고 해서, 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지금 바로 돌아가라고 할게요.”문밖에서 손에 보온 도시락 몇 개를 들고 서있는 강민정은 스커트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볼에 흘러내려와 있었다.“오빠.”그녀의 민망한 모습을 본 민승현은 문을 열고 가라고 하려는 원래 생각을 잊어버린 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된 거야, 왜 온몸이 다 젖어 있어?”강민정이 보온 도시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오빠가 도준 오빠와 밥을 못 먹고 있다고 해서, 제가 몇 가지 음식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급하게 나오다 우산을 못 챙겼어요.”“너는 어째 항상 이렇게 잘 빠트리니?”나무라는 듯하지는 애정이 가득한 말투였다.민승현은 젖은 옷을 입고 돌아가야 할 강민정이 안타까우면서도 또 마음대로 남아있게 할 수도 없었다.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쳐다봤다.“형, 봐, 민정이 옷이 다 젖었어. 이렇게 돌아가면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 잠시 들어와서 옷 좀 말리고 가라고 하자.”강민정은 보온 도시락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민도준이 거절할까 봐 겁이 났다.그런데 뜻밖에도 민도준이 생각지도 못한 친절을 베풀었다.“그래, 밖에 비가 많이 오는데 감기에 걸리면 안 되지. 들어와.”말을 하면서 민도준의 시선이 있는 듯 없는 듯 앉아있는 하윤을 스쳐 지나갔다.그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하윤은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떤 반응도 하고 싶지 않았다.실내의 상황을 보지 못한 강민정은 자신의 계략이 성
“아.”강민정은 자신의 옷이 그대로 다 비치는 걸 인제 발견한 것처럼 가슴을 감싼 채 울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옷이 왜 이렇지. 방금 도시락 안 젖게 하는 것만 생각하고 옷이 젖는 것 생각도 못했어. 아이 정말, 창피해서…….”“괜찮아, 형과 내 어디 남이야? 모두 한 가족인데 뭐. 괜찮아.”민승현은 민정을 달래면서 또 권하윤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말이 너무 듣기 싫었던 거였다.“너는 생각이 왜 그 모양이야? 민정인 내 사촌 여동생이고, 자연히 형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한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아, 당신이 말하지 않았으면 정말 잊고 있을 뻔했어요. 맞아요. 민정 씨는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죠.”뒤의 세 글자를 하윤이 또박또박 말하자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굳었다.“권하윤! 너 이상한 소리하지 마!” 하윤이 비웃으며 말했다.“나와 여기서 싸우는 시간에 얼른 당신 사촌 여동생을 집에 데려다 주는 게 여기서 말리는 것보다 빠르지 않겠어요?”하윤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단지 민도준의 지시가 없어 가겠다고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그가 말하지 못할 거란 것을 알고 있는 하윤이 연극을 보는 듯한 민도준을 향해 돌아섰다. 미소 띤 얼굴 아래 이를 갈면서 말이다.“도준 오빠?”강민정 역시 민도준을 쳐다봤다. 정말 어렵게 그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았는데 권하윤의 말 몇 마디에 놓치게 생겼다.입술을 깨문 채 민도준을 쳐다보는 그녀는 남아 있어라고 그가 말해 주길 간절히 바랬다.애석하게도 민도준은 그녀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눈에 흥미로운 빛을 담고 자신을 죽이지 못해 분해하는 권하윤의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나도 피곤해. 오늘은 여기까지.”민승현은 한숨을 돌렸지만 강민정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민승현을 따라 밖으로 몇 걸음 걷다가 권하윤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언니는 같이 안 가요?”민승현이 뒤의 상황을 알아채고 짜증을 냈다.“너 왜 아직 버티고 있어? 형이 바쁜 거
이 자세는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어젯밤 한참을 시달린 하윤은 감히 더 이상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속에서 또 화가 치밀었지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참았다.“꽤 성깔이 있네요.”민도준은 기분이 좋은 듯 그녀와 따지지도 않았다. 단지 손에 힘이 좀 더 세어졌다.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편하게 움직였다.“또 나랑 하고 싶은 거예요?” 낮은 웃음소리가 다소 경박하게 들렸다.하윤이 그가 한 말에 반응하며 팔걸이를 짚고 일어섰다.몸을 조금 들어 올리자마자, 어깨가 눌러져 도로 주저앉았다.“뭐에요?”이 말은 분명 참을 수 없었다.오늘의 목적을 생각한 하윤이 다시 앉았다.테이블을 마주 보도록 앉아있던 의자를 반 바퀴 돌렸다.“밥 안 먹은 거 아니에요? 먹어요.”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내가 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어?’“남은 밥은 잘 안 먹어요.”“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에요.”민도준이 말하는 것은 강민정이 가져온 도시락이었다.보온통에 담겨 있어서 그런지 음식은 아직도 따뜻하다.몇 가지 음식이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있었다. 꽃 모양의 당근을 보니 여간 신경을 쓴 게 아닌 것 같았다.한참을 바쁘게 만든 음식이 결국 하윤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을 강민정이 알게 된다면 아마 화가 나 뒤로 넘어갈 것이다.여기까지 실랑이하던 하윤도 배가 고파서 앞의 남자를 무시한 채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음식 맛이 달짝지근하고 좀 느끼해서 몇 입 먹던 하윤이 물병으로 손을 뻗었다 중간에 컷 되었다.그녀의 가슴 앞을 가로지른 손이 생수 병 뚜껑을 비틀어 그녀 입술 앞까지 내밀었다.“마셔.”이런 친절에 적응이 안 된 하윤이 물병을 건네 받으려 했다. “내가 마실게요.”손목이 내려가고 물이 가슴으로 쏟아지며 커다란 물자국이 옷에 번졌다.“당신…….”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병 입구가 또 다시 그녀의 입술에 대어졌다.“자, 마셔.”거절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민도준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을 먹여줬다.몇 모금 마신
민도준이 씨익하고 웃었다.큰 손으로 하윤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한민혁에게 당신 데리고 옷을 사러 가라고 하지요.”이때의 그는 사나운 기운을 벗고 다정한 애인처럼 군다.그가 기분이 좋은 것을 본 하윤은 돈을 빌리는 얘기를 꺼낼까 생각했다.그가 손을 뗐을 때, 하윤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뼈마디가 굵은 그의 손목은 그녀의 작은 손으로는 제대로 잡을 수도 없었다.눈동자를 아래로 내려 뜨며 물었다. “왜? 잘못 알았어?”아무렇게 대답한 하윤은 내친 김에 그의 팔을 끌어안고서 고개 들어 간절히 바라보았다.“한민혁에게 나하고 같이 가라고 하면, 그럼 당신은요?”‘이 여자가 또 내 기분을 맞추려고 하네.’하윤이 그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또 그에게 부탁할 게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소파에 앉아 다리를 치켜들었다.“나는 아직 일이 남았어요.”“아.”그의 옆에 앉은 하윤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머릿속 주판알이 그대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민도준이 그녀의 코를 잡고 흔들었다.“뭘 궁리하는 거예요?”“어?”하윤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다.“아무 생각 안했는데요.”민도준이 피식 웃었다.“꼬리도 제대로 숨길 줄 모르면서 무슨 여우가 된다고, 응?”하윤은 좀 민망했다. 하지만 기왕에 이렇게 된 이상 지금 말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입을 열기가 어려울 것이다.그녀는 어투를 고르며 말했다.“사장님, 요즘 사업은 어때요?”이것은 쓸데없는 말이었다.민도준은 경성의 거의 모든 지하 사업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민씨 집안도 어느 정도는 그를 두려워할 정도였다.장사가 잘 되느냐고 묻는 것은 해가 밝으냐고 묻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마침 그녀의 머리카락을 꼬고 있던 민도준이 그녀의 말을 듣더니 손을 멈추고 놀리듯이 웃었다.“돈이 필요해요?”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데, 그 부드러운 음성에 하윤은 그만 목이 메어왔다.잠자코 등을 곧게 펴고 앉았다. 표정도 진지해졌다.“만약 당신에게
한민혁이 말한 상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까닭에 몇 분 안 되어 도착했다.가는 내내 한민혁은 백미러를 쳐다보며 수시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권하윤이 주차를 하려고 할 때 한민혁은 먼저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걸었고, 그녀가 주차를 마치자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우리는 LV에 가는 거예요, 아니면 샤넬에 가는 거예요? 그것도 아니면 당신이 좋아하는 미니어처 커스터마이징 브랜드가 따로 있나요?”회전문으로 들어가니 백화점 특유의 향기가 ‘어서 오세요'라는 글자와 함께 불쑥 다가왔다.하윤은 직원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한민혁을 바라봤다.“이곳이 익숙한 것을 보니 민 사장님 여자 친구들을 데리고 자주 오시나 보죠?”한민혁은 그녀의 말 속에 뼈가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웃었다.“아닙니다. 제 어린 여자 친구에게 배운 거예요. 우리 도준 형은 아무리 주변에서 유혹해도 순결을 지키는 분이시죠.”하윤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았다.민도준은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남자였다. 명문가 딸 중에서도 민도준의 이야기는 많이 떠돌고 있었다.그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의 소식을 알아보곤 하는 것이었다.이야기 속의 그는 결코 일편단심인 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았다.하지만 하윤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신분과 지위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은 단지 하룻밤의 인연을 맺을 운명밖에는 되지 않았다.좋게 말하면,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기 위해서 만난 것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민도준이 권하윤의 몸에 관심이 있는 틈을 타 얻고자 하는 것을 교환하는 수준의 관계였다. 하지만 최근 그와의 거래를 들여다보면 왠지 밑지는 장사 같았다. 심지어 매우 위험하기도 했다.조심하지 않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다.매장에 들어간 그녀는 치마 한 벌을 골랐다. 하지만 한민혁의 강력한 권유로 한 벌의 슈트를 더 추가했다.본래 그녀는 활동적인 캐주얼 스타일이 잘 어울렸지
르네시떼.이곳은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보물 가게’였다. 대형 경매회사의 고가의 예술품이나 골동품 등은 대부분 이곳에서 흘러나갔다.권하윤은 이곳에 처음 방문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것만큼 고급스러운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헌책방 같은 레트로 분위기였다.가게 입구에는 사람 키 반 정도 높이의 카운터가 있었고,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서 졸고 있었다.“안녕하세요. 사장님 계세요?”하윤이 여러 번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건 코 고는 소리뿐이었다.‘이런!’그녀는 좀 더 큰 소리로 불렀다.“할아버지!”그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계단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요. 그는 귀가 어둡거든요.”가게의 낡은 나무틀을 돌자 발밑 마루에서 ‘끼익’ 소리가 났다.계단 뒤에는 베란다가 있었다.꽃무늬 옷을 입은 남자가 흔들의자에 앉아 얼굴을 책으로 덮고 손에 든 부채를 제멋대로 흔들고 있었다.골동품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남자가 들고 있는 부채와 그가 얼굴에 덮어둔 책 모두 확실한 골동품이기 때문이었다.심지어 모두 가보가 될 만한 수준의 것들이었다.그러나 남자는 그것들을 그냥 평범한 물건과 다를 바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책을 치우자 지나치게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남자는 하품을 하며 권하윤을 흘겨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팔 겁니까, 살 겁니까?”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 권하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사장님께 보여드릴 물건이 있는데 보시고 견적 좀 부탁드려요.”그녀는 핸드폰에서 ‘한매도’의 사진을 찾아 남자에게 내밀었다. 그는 비스듬히 보더니 3초 만에 대답했다.“정상 가격은 260억이고, 암거래 가격은 160억입니다.”권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정상 가격과 암거래 가격은 또 뭐예요?”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찻주전자를 들고 입에 부었다.그는 권하윤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은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지요?”그녀는 멍해졌다.
민도준은 최수인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런 뜻이 있긴 했지.”최수인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그러고도 네가 내 친구야? 말을 그렇게 해야겠어?”“어떤 친구? 만화 캐릭터에 빠진 친구? 난 그런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만화 캐릭터라니! 동정이지!”“여자에게 세일러문으로 분장하라고 하고, 너랑 같이 자게 해도?”최수인은 짜증이 났다.“됐어, 그만 얘기해. 어차피 내일 권씨 집안 아가씨가 나와 함께 갈 거니까. 너 한 명 빠져도 상관없어.”“권씨 집안?”“그래.” 최수인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가풍이 엄격한 권씨 집안 말이야. 넌 생각지도 못했지?”“권씨 집안의 누구?”최수인은 민도준의 말투에서 서늘한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랑을 계속했다.“알려주지. 넌 절대 생각하지도 못할…….”“권하윤?”최수인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아니 네가 어떻게 한번에 정확하게 맞췄지?”“내 어린 제수씨였구나?”최수인은 그의 말투에 소름이 돋았다.“너 말투가 왜 이렇게 메스꺼워?”민도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든 라이터를 가지고 놀면서 불을 켰다 껐다 했다. “그녀가 너와 함께 자겠다고 약속했어?”최수인은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기세를 꺾이기 싫어 일부러 뜸을 들였다.“말하면 재미없잖아.”“그렇구나.”손에 든 불꽃이 튀며 민도준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즐겁게 놀기를 바랍니다.”최수인은 그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내기에서 져서 기분이 안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난 수인은 판소리를 흥얼거리며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왔다.“안녕하세요, 여기 아무도 안 계십니까?”……‘권하윤이 ‘한매도’를 판다고?'소식을 들은 강민정은 매우 놀랐다.‘권하윤도 어쨌든 명문가 아가씨이니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어떻게 할아버지가 직접 주신 ‘한매도’를 팔 생각을 했지?’‘할아버지가 주신 그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