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는 순간 굶주린 듯 권하윤을 덮친 문태훈은 기대와 달리 허탕을 치고 말았다. 손에 잡히는 것 없어 당황한 나머지 마구잡이로 허우적대던 그때 머리카락의 감촉이 그의 손등을 스쳤지만 손을 움켜쥐기도 전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권하윤!”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룰 때문에 문태훈은 한껏 내리깐 소리로 권하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권하윤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미리 계획했던 코스로 천천히 소파 뒤로 기어갔다.앞에서 들려오는 헐떡이는 숨소리와 나지막한 욕지거리를 듣자 권하윤은 아무 말 없이 전에 출구 쪽으로 몸을 이동했다.하지만 자기의 방향 감각을 너무 과대평가했는지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구석으로 숨어들기는커녕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사방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에 순간 소름이 돋아 뒷걸음을 치려던 그때 등 뒤에 있던 웬 남자의 가슴에 등이 부딪히고 말았다.어둠 속에서 원래도 안정감이 없던 그녀였는지라 낯선 사람의 감촉이 느껴지자 감전이라도 된 듯 곧바로 옆으로 도망쳤지만 몇 발작 떼지도 못한 그때, 남자의 힘 있는 손이 허리를 두르며 도망치려는 그녀를 다시 끌어왔다.두 사람의 몸은 순간 밀착되어 남자의 체온마저 생생하게 느껴졌다. 낯선 남자와의 접촉에 권하윤은 순간 소름이 돋아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경고했다.“놔요!”하지만 남자는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자기 쪽으로 그녀의 몸을 돌리더니 힘 있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두르는 바람에 권하윤의 가슴이 남자의 몸에 바짝 붙었다.얇은 옷감 때문에 살결이 직접 느껴지는 듯해 권하윤은 순간 당황했고 당장이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하지만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손가락 두 개가 그녀의 입안으로 쑥 들어왔고 손목을 휙 돌리더니 권하윤의 턱이 남자의 손에 잡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한껏 억누른 듯 가늘게 새어 나오는 비명은 조금 불쌍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문태훈의 주의를 끌까 봐 두려웠
제48화 저 자식이 만졌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민도준 품에 안겨 있던 권하윤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하지만 수치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던 권하윤은 민도준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바싹 다가가더니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가슴을 느긋하게 만져댔다.“그러는 민도준 씨는 지금 제 모습이 싫어요?”솔직히 수치스러웠지만 문태훈에게 범해지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수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공기는 몇 초간 고요해졌고 그 고요함은 권하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어둠에 가려진 시야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할 노릇이었다.어둠이 주어진 10분 중 지금 몇 분이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이 다시 켜지는 순간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문태훈이 책임을 물을 거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불안과 초조감이 순간 밀려왔다.그녀는 민도준이 자기한테 이미 싫증을 느끼고 자기를 버리고 떠나갈까 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일일수록 일어난다고 그녀를 꽉 잡고 있던 힘이 사라지더니 뜨겁게 달아올랐던 주위의 온도마저 한순간에 식어버렸다.권하윤은 순간 오한을 느꼈다.하지만 민도준이 떠나려나 싶던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저 자식이 만졌어?”“아니요.”너무 다급하게 대답한 나머지 상대가 듣지 못했을까 봐 권하윤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안 만졌어요.”“그럼 강요당한 건가?”“어…….”권하윤은 꾸물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그래도 재벌가 자녀에 민씨 집안 며느리인데 문태훈한테 강요당했다는 건 너무 말이 안 됐다.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민도준은 반드시 그 이유를 물어올 거고, 그녀와 공씨 가문 사이를 의심할 수도 있었다.“강요당한 게 아니면 원했다는 거군. 재밌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랄게.”“잠시만요.”권하윤은 상대를 붙잡으려 했지만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주위가 캄캄해 심지어 방향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그러던
문태훈은 민도준이 갑자기 쳐들어온 게 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고 방 안에 있는 여자가 제수씨라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몰랐기에 두려움을 숨길 수 없었다.이윽고 권하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 놀리지 마세요. 그저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뿐입니다.”“그래요?”민도준은 잔뜩 얼어붙은 문태훈을 가볍게 무시한 채 소파로 걸어가 상대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계속해요. 나 없는 사람 치고.”“저, 그게…….”멍한 채 버벅거리는 문태훈을 민도준은 힐끗 스쳐봤다.“어려운가?”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위압감에 문태훈은 “싫다”라는 말을 끝내 내뱉지 못했다.‘설마 민도준한테 특별한 취미가 있나? 다른 사람이 관계를 가지는 걸 보는 걸 좋아한다거나.’황당해 보이는 추측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가능성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문태훈을 다그쳤다.“사람 말 못 알아듣나?”“아니요, 알아들었습니다.”민도준이 괴팍하고 변덕스럽다는 소문은 해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문태훈은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자 방금 전의 충동과 흥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문태훈은 굳은 몸을 움직으며 권하윤 쪽으로 다가가더니 상대를 아래에 누르면 동작이 너무 크고 요란할 것 같다는 판단에 그저 옆에 앉았다.한편, 흰 깃털 장식이 달린 가면 아래 권하윤은 복잡한 눈으로 민도준을 바라봤다.그녀도 문태훈과 마찬가지로 민도준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만약 그녀를 돕고 싶다면 상대를 직접 제지하지 않을 리 없는데 또 반대로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그러던 그때 어깨가 문태훈의 손에 꽉 붙잡히더니 얼굴이 점점 그녀에게 다가왔다.문태훈은 대충 입 맞추고 끝낼 생각이었지만 권하윤이 버둥대다가 가면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갑자기 전해져오는 고통에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것보
“재미도 보지 않고 가려 하다니 아쉽네.”민도준은 손을 뻗어 소파 위에 놓인 가죽 채찍을 손에 들고 반으로 접더니 툭툭 자기 손바닥을 쳤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극도로 긴장한 문태훈은 흠칫 놀라더니 벌벌 떨었다.그는 민도준이 자기를 이대로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때문에 테이블 위에 놓인 양주를 보는 순간 이를 악물며 말을 꺼냈다.“오늘 제가 민 사장님 흥을 깨트렸으니 벌주 한잔 마실게요.”50도가 넘는 독한 양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위를 지날 때 마치 타들어가든 듯 뜨거웠고 이윽고 장에서 항의라도 하듯 경련이 일어났다.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의 양주가 바닥을 보이자 민도준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어요. 오늘은 이만하죠.”문태훈은 허리를 꾸벅거리며 도망치듯 룸을 빠져나가더니 문이 닫히는 순간 복도 벽을 짚고 토했다.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벌을 받지 않았다면 민도준 손에 죽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마신 술을 토해내고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난 문태훈은 굳게 닫힌 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솔직히 이대로 포기하기 너무 아쉬웠다.‘권하윤한테 이렇게 대단한 뒷배가 있을 줄이야. 민도준이 동생을 위해 화를 푸는 건지 아니면 권하윤한테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네.’…….문태훈이 떠난 뒤 룸 안의 분위기는 순간 이상해졌다.권하윤은 아직도 손이 묶인 채 앉아 있었고 그녀 맞은 켠 걸상에는 채찍을 든 민도준이 앉아있었다.하지만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대를 보니 권하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민도준이 그녀의 신분에 대해 뭔가 눈치라도 챌까 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기도 했고 이 순간 손에 채찍을 든 민도준이 무서운 것도 한몫했다.VIP 룸에 있는 도구들은 모두 최상품들인지라 진짜 가죽이 방안 불빛 아래에서 반짝거리며 빛을 내고 있었다.반으로 접힌 채찍이 민도준의 손바닥을 치며 소리를 낼 때마다 권하윤의 심장은 덩달아 움찔움찔 떨렸다.그리고 큰 손이 채찍을 꽉 움켜쥐는
남자의 다그침에 권하윤은 마지못해 손이 묶인 자세로 일어섰다.하지만 손을 움직이지 못하자 동작도 따라서 굼떠졌다.일어나려는 순간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하자 곧바로 남자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약간 높은 끝음은 마치 그녀를 비웃는 듯했다.이에 난처하고 쪽팔렸는지 권하윤은 마치 자신을 증명하려는 듯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끝내 일어서는 데 성공했지만 스텝이 꼬여 민도준 쪽으로 몸이 기울었다.다음 순간 힘 있는 팔이 그녀를 붙잡더니 자연스레 그녀의 엉덩이를 한대 때렸다.“전희가 너무 형편없네.”권하윤은 귀밑까지 빨개진 채 아예 그 자세 그대로 민도준의 다리 위에 앉더니 꽉 묶은 손을 남자의 목에 걸쳤다.남자를 꽉 잡는 동시에 자기 자신도 묶어놓는 동작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바싹 가까워졌다.그 동작에 민도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렇게 꼭 붙어있으면 어떻게 움직이려고? 응?”비음이 살짝 담긴 마지막 한마디에서 약간의 애정을 느낀 권하윤은 심장 박동이 흐트러졌고 호흡이 가빠졌다.민도준의 얼굴은 사람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가 기분이 좋을 때 눈에 걸리는 웃음기는 사람을 현혹했다.코끗을 자극하는 옅은 담배 냄새와 허리에 걸친 남자의 큰 손이 느껴지자 방금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상황이 실감이 나면서 저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이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자 갑자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하마터면 민도준에게 빠질 뻔하다니.’문태훈이라는 위험 요소를 아직 제거하지 못했기에 그녀는 민도준을 잘 구슬려 그가 자기를 보호해 주는 듯한 모습을 문태훈한테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그가 조금이라도 자기한테 손대기 두려워 할 테니.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자기 입술을 민도준의 입술 위에 포개더니 살살 문질렀다.“민 사장님이 움직일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가벼웠지만 무엇을 암시하는지 명확했다.꼭
“다음엔 뭐가 좋을까?”벽을 한참 훑던 민도준의 눈은 어느 한 곳에 고정되더니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찾았다.”권하윤은 민도준 손에 들린 들린 딜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손에 묶여 있던 나일론 끈은 어느새 수갑으로 교체된 채 권하윤의 등 뒤에 고정되었고 얼굴이 소파에 파묻힌 채 등 뒤의 상황을 볼 수 없자 권하윤은 순간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흐릿한 불빛은 예쁜 곡선으로 휜 그녀의 등에 고스란히 떨어졌고 빨간 치마와 흰 피부가 대조되면서 시각을 자극했다.게다가 공기 속에 훤히 드러난 그녀의 등은 미세하게 떨렸고 선명한 날개뼈마저 움찔거렸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민도준의 눈에는 점점 욕망이 끓어올랐다.순간 손에 든 장난감을 보더니 불쾌한 듯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도 아직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이딴 장난감에게 그 기회를 먼저 내어줄 수는 없었다.권하린의 허리는 남자의 손에 의해 들리는 순간 매혹적인 곡선으로 휘었다.“아.”고통과 흥분이 섞인 낮은 신음이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민도준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지만 권하윤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어졌다.민도준의 체력과 주체할 수 없는 힘 때문에 그딴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권하윤은 죽을 것만 같았다.게다가 오늘 그는 마치 권하윤을 일부러 괴롭히기라도 하려는 듯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밀어붙였다.그제야 권하윤은 예전에 민도준이 자기를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런 행위가 약 두 번 정도 지속되자 권하윤은 몸속에 누적되었던 피로감에 눈앞이 점차 점등되었고 끝내 의식을 잃었다.민도준은 축 늘어진 권하윤을 끌어안더니 긁는듯한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툭 뱉었다.“이젠 쓰러진 척하시겠다?”그의 큰 손은 권하윤의 목을 받쳐 들었다.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코로 미약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하, 정말 쓰러졌네.”그의 품에 안긴 사람은 대
잠시 뒤, 그 사진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다.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훑어보던 강민정은 흐뭇해하는 동시에 사진 속 인물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하하하, 권씨 집안 아가씨가 이런 망나니랑 놀아나다니.”강민정은 그 외투가 한민혁 것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사립탐정을 고용해 권하윤의 뒤를 캤다.그리고 역시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오늘 끝내 그 증거를 잡았다.하지만 사진 속 권하윤은 그저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친밀한 행동은 조금도 없었다.‘이러면 설득력이 없을 텐데.’“계속 뒤를 밟아요. 수위가 높은 사진만 찍을 수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자신이 어느새 상간남이 되었다는 걸 알리 없는 한민혁은 아침밥을 들고 블랙썬 펜트하우스로 올라가 민도준을 찾았다.그 과정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의 손에 들린 아침밥을 보자 그를 놀려대기까지 했다.“민혁 도련님은 점점 더 현모양처로 변해간다니까요.”“꺼져, 이게 진짜. 나도 부탁 받은 거거든.”밖에서 발톱을 드러내며 유세를 떨던 한민혁은 민도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다시 얌전해졌다.“도준 형, 사람은 이미 돌려보냈어요.”“응.”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은 채로 잠을 보충하는 민도준을 보자 한민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침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따뜻한 음식의 냄새와 포장은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않았다.민도준은 냄새가 흘러나온 곳을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그렇게 건강한 음식은 어디서 났어?”“권하윤 씨가 저더러 형한테 주라고 부탁했어요.”“하.”‘사람 달랠 줄도 다 알고. 이런다고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나?’그저 피식 웃기만 하고 반대를 하지 않는 민도준을 보자 한민혁은 아예 포장을 뜯으며 음식들을 상 위에 펼쳐놨다.하지만 절반도 채 열지 않았을 때, 민도준이 손을 저었다.“열지 마. 나 안 먹어.”한민혁은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아침 식사 대접을 받았으니
[분발해서 다음번엔 꼭 민도준 씨 만족시킬게요.]분명 순종적인 말투였지만 민도준은 액정을 통해 권하윤의 시큰둥한 표정과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액정을 타고 위로 올라가자 전에 나눈 대화가 눈에 들어왔다.[민 사장님, 어제 고생하셨어요. 그런데 아침 안 드시면 몸에 안 좋아요. 특히 신장에.][죽고 싶어?][농담이에요. 너덜너덜한 몸을 이끌고 줄 서서 아침을 구매한 저를 봐서라도 조금만 드셔주세요.]…….민도준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꽤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너무 순종적이어도 안 되고 방항적이어도 안되며 한상 적당한 선을 지키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때문에 권하윤은 손에 쥔 열쇠를 보는 순간 오늘 그 선을 잘 지켰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자꾸만 감기는 눈을 겨우 부릅뜬 채 샤워를 하더니 침대에 등이 닿기 바쁘게 기절하듯 잠들었다.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는 벌써 오후였다.한숨 푹 자고 나니 오히려 몸 이곳저곳이 아파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켠 순간 문태훈이 보내온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권하윤 씨, 어제 너무 급하게 가는 바람에 얘기 채 나누지 못했는데 오늘 시간 돼요?]다시 공손하게 변한 그의 말투에 어제 그녀를 협박하던 일이 꿈이었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오후 4시.권하윤은 경성에 있는 유명한 가정 요리 전문점에 도착했다.“오래 기다렸죠?”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가방을 옆자리에 놓고는 맞은편에 앉은 문태훈에게 싱긋 미소지었다.하지만 그녀와 달리 문태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눈에 빨간 핏발이 서 있는 걸 보니 간밤에 잠을 설친 게 틀림없었다.믿는 구석이 있는 듯 두려워하지 않는 권하윤의 모습을 본 순간 문태훈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어젯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가 반나절 동안 링거를 맞았는데 상대방은 오히려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니 화가 날 만도 했다.그의 시선을 의식한 권하윤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