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 거예요!”“잘 됐네요. 같이 가요.”성연신의 뻔뻔함에 숨을 크게 들이마신 심지안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지금 제 앞길을 막는 이유가 설마 제 몸을 탐내서는 아니겠죠?”“허허, 이 말을 지안 씨에게 똑같이 써도 되는 거 아닌가요? 어쨌든 저를 거절하지 않고 본인도 즐겼잖아요.”너무 창피한 탓에 되려 용감해진 심지안은 이까지 보이며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럼요. 이번에는 연신 씨가 더 적극적이었잖아요.”그녀의 말에 여유롭던 성연신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 채,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당신이 바라던 바잖아요.”이 말싸움에 두 사람은 그 누구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안은 성연신을 힐끔 노려보다가 사무실 화장실에 숨어 옷차림새를 정리했다.거울 속의 심지안은 맑고 고운 눈망울에 살짝 흐트러진 옷깃과 지워진 립스틱이 어우러져 왠지 모르게 야릇해 보였다.창피하고 화가 난 심지안은 서둘러 휴지를 꺼내 입가에 묻은 립스틱을 지워냈고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다가 겨우 화장실을 나섰다.창가에 서있던 성연신은 그녀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다가 서서히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화장실에 살림이라도 차린 줄 알았네요.”“말을 되게 기분 나쁘게 한다는 거 알아요?”심지안이 눈을 뒤집으며 대꾸하자 흠칫하던 성연신이 비꼬듯이 웃으며 되물었다.“그럼 진현수 그 사람은 지안 씨 마음에 들게 말을 해요?”심지안은 그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나서려고 했고 문 앞에는 디저트가 놓여 있었으며 포장지로 봐서는 1층 카페에서 산 것 같았기에 정욱이 사 온 게 분명했다.“정욱 씨는 어디 갔어요?”심지안이 돌아서서 성연신을 보며 묻자 성연신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우리를 방해할까 봐 자리를 피했어요.”심지안은 그의 대답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한편, 어둠이 깃든 강 씨 가문 저택에서.“삼촌, 왜 전혀 상관이 없는 심지안을 믿으면서 저를 안 믿는 거예요? 연아는 이제 저에게 혼수까지 맡길 거란 말이에요. 연아는 삼촌이 생각하는 그런
”난 그렇게 얘기한 적 없어.”“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맞잖아.”“그래, 그렇게 색안경 끼고 날 보는 거라면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그냥 돌아가.”심연아가 말을 끝내자 심 씨 가문의 하인이 달려와 강우석을 저택 밖으로 쫓아냈고 이 모든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발생한 탓에 강우석은 멍하니 자리에 굳어 있다가 투자 자금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전화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아버지, 저에게 상황이 조금 생겨서 그러는데 며칠만 시간을 더 주세요. 차질이 안 생기게 잘 처리하겠습니다.”“기회를 만들어줬는데도 잡지 못하는 거야? 1년 더 주면 시간이 충분하겠어? 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지 마.”아버지의 말에 손을 부르르 떨던 강우석은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며칠 뒤, 심연아가 인터넷으로 폭발적인 발언을 발표했다. 그녀는 장편 글을 작성하여 두 가지 일을 전했는데 한 가지는 강우석과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와 다른 한 가지는 심지안이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그녀를 모함하고 그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었다.뿐만 아니라 주원재와의 관계를 해명하면서 주원재가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절대 대화 내용을 인터넷에 유출시킬 리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으며 마지막에 심지안이 보낸 대화 내용 캡처까지 같이 올렸다.주원재의 프로필 사진은 모자이크를 하지 않았지만 캡처한 대화 내용을 살짝 바꿨는데 내용이 더욱 적나라하고 야릇했을 뿐만 아니라 합성한 티가 팍팍 났다.SNS에 몇만 명 넘는 팬을 소유한 심연아는 평소에 티타임 사진이나 셀카를 올려 부잣집 공주님 이미지를 잘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번에도 긴 내용 밑에 서글픈 표정의 셀카까지 함께 올리자 네티즌들이 수군거리며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대화 내용 기록이 한눈에 봐도 합성한 거네.”“약혼식 당일에도 여동생이 난동을 부렸는데 그때 엄청 드라마틱 했다고 들었어.”“내가 주원재랑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주원재는 어릴 때부터 곁에 여자가 매일 바뀌었어. 내가 보기엔 대화 내용이 진짜일 수도 있을
”제가 왜 무서워해야 해요?”“계속 시비를 걸 거 같으니까요.”“그럼 안 도와줄 거예요?”심지안의 질문에 성연신이 조용하게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심지안은 잘생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눈을 뒤집었다.심지안이 아무리 강해도 상대방은 기세가 등등한 공주님이기에 아무래도 역부족일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가 아니라 일행까지 있으면 절대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심지안은 괜히 겁먹는 것보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결심했다.두 사람은 이내 파티 장소로 출발했고 거리가 꽤 멀었기에 심지안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으며 다시 눈을 떠보니 어느새 파티 장소에 도착한 뒤였다.심지안은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성연신을 따라 차에서 내렸고 파티 장소 입구에는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는데 다들 옷차림부터 손에 든 가방들은 전부 한정판 명품이었다.심지안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와 목에 차고 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힐끔 쳐다보았고 명품이 하나도 없었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기에 허리를 쫙 편 채, 성연신의 팔짱을 덥석 잡았다.곁에 서있는 성연신이 바로 그녀에게 최고의 명품이었으며 빛이 날 정도로 수려한 외모는 그 어떤 명품보다 더 명품 같았다.성연신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짱을 끼고 있는 섬섬옥수를 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소유권을 자랑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왠지 너무 사랑스러웠다.입구에 서있던 사람들은 성연신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지만 성연신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기에 다들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전시회장에 들어서니 수많은 도자기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유리 보호막에 적힌 어마어마한 가격표를 보자 깜짝 놀란 심지안이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한편, 휴식처에 앉아있던 홍교은은 단 번에 성연신과 심지안을 발견했다. 아리따운 바이에른 원피스에 목에는 유명 디자이너가 맞춤 제작한 목걸이를 차고 있는 심지안과 검은 정장에 백마 탄
”괜찮습니다. 전 당신에게 관심 없어서 당신의 사인도 필요 없어요. 전 그쪽보다 나운석 씨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고요.”심지안은 그제야 홍성준이 자신을 비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이내 아름답고 환한 미소로 일부러 그의 경쟁 상대의 이름을 언급했고 그녀의 말에 눈빛이 싸늘해진 홍성준이 잡고 있던 손을 확 뿌리치며 비꼬듯이 말했다.“사람 보는 안목이 별로네요.”심지안은 예의가 없는 사람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 성연신이 그녀에게 다가왔으며 성연신 뒤에는 표정이 어두운 홍교은도 따라오고 있었다.홍교은은 불쾌한 일이 있었던 듯,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심지안은 이내 표정을 풀고 성연신에게 물었다.“연회는 언제부터 시작해요?”“이제 시작할 거예요.”대답을 한 성연신은 심지안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에 서있던 홍성준을 힐끔 쳐다본 뒤, 말을 이어갔다.“괴롭힘당했어요?”“아니요.”자신도 모르게 순간 대답한 심지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말을 바꿨다.“괴롭힘 당했어요! 저 사람이 저를 만만하게 봐요!”“제가 복수해 주길 바라는 거예요?”성연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심지안을 쳐다보며 물었다.“네!”“꿈도 꾸지 마요.”심지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흔들리는 동공으로 왠지 실망한 듯했고 다음 순간, 성연신이 말을 이어갔다.“대신 혼내 줄 사람이 따로 있을 거예요.”“누가요?”흠칫하던 심지안이 고개를 들며 묻자 성연신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국가요.”세금 도피는 국가에서 엄하게 다스리는 부분이었기에 홍성준은 꽤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성연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선 파티의 진행자가 무대로 올라와 경매를 시작하였고 성연신도 상징적으로 책상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를 하나 구매했는데 액세서리가 예쁘진 않았지만 경악할 만큼 가격이 어마어마했다.“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다음 경매품은 저희 이번 경매의 마지막 제품으로 앞선 제품들과는 조금 다릅니다.”무대 위의 진행자가 의
성연신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방법이 많았다.“자존심 하나로 사는 거죠. 제 질문에 대답이나 해요.”심지안이 눈을 깜빡이면서 말하자 성연신이 웃으며 대답했다.“창피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요. 창피를 당해도 지안 씨가 당하는 거죠.”성연신의 말에 심지안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지만 그의 확답을 받은 지금, 더 이상 걱정될 것도 없었기에 진행자가 이 순서를 넘기고 경매를 마치려고 하던 순간, 심지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저에게 준비할 시간을 5분만 주실 수 있나요?”심지안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경매장에 울려 퍼지자 흠칫하던 진행자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그럼요.”그녀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익숙한 듯 피아노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허세는 무슨, 저러다가 창피를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홍교은은 사람들에게 규수의 우아함을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심지안이 창피를 당하기만 기대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홍교은은 피아노 상급 자격증까지 따냈기에 심지안이 창피를 당하는 순간, 무대로 올라가서 연주를 이어갈 계획이었다.홍성준도 심지안이 무리할 줄 예상하고 있었던 듯 곁에서 피식 웃었다. 보통 가정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이런 큰 무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성연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또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자는 홍교은이라는 걸 깨닫게 만들고 싶었다.5분이 지나자 진행자가 심지안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고 심지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준비됐습니다.”“그럼 나머지 시간은 심지안 씨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한껏 긴장한 심지안은 손가락을 살짝 풀더니 머릿속으로 선율을 떠올리며 선반에 손을 올려놓은 채,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피아노에서는 이내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기 시작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연주는 귀를 정화시키면서 마음까지 치유하고 있었다.심지안의 연주에 표정이 확
”아니요.”“그런데 왜 저 사람들이…”“지안 씨가 제 아내잖아요. 지안 씨 체면을 고려하지 않아도 성 씨 가문의 체면은 고려하겠죠.”성연신이 덤덤하게 대답했고 이 경매는 결국 성연신이 부른 40억에 낙찰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보느라 더 높이 부를 수가 없었다. 성연신의 아내가 연주한 곡에 그들은 들러리만 설 뿐, 감히 경매에 진짜로 참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연신이 심지안에게 물었다.“근데 왜 한 곡만 연주할 줄 아는 거예요?”그의 질문에 흠칫하던 심지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제 아버지가 심연아만 피아노 학원에 보냈거든요. 저에게는 그런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거죠. 전 저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매일 점심 피아노가 있는 친구 집에 찾아가 피아노 연습을 했어요. 피아노를 접한 시간이 길지 않아서 이 한 곡 밖에 칠 줄 몰라요. 근데 그래도 제 아버지는 피아노 공부를 못하게 했어요. 심연아를 애지중지 키우는 게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한 거죠.”가정 형편이 꽤 좋았지만 그녀에게는 한 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지금은 더 배우고 싶어요?”성연신의 물음에 심지안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아니요. 이미 다 지난 일이에요.”성연신은 덤덤한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씻고 침대에 누운 심지안이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심연아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네가 대화 기록을 삭제하면 내가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가게 해줄게.」문자를 빤히 쳐다보던 심지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줘. 그럼 네 체면만큼은 지켜줄게.」이튿날, 심연아 발언은 검색어 순위 3위로 올라갔고 심연아는 더 이상 심지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죽을 끓이던 심지안은 주원재와 통화를 마친 뒤, 그날 레스토랑에서 찍었던 사진과 대화 기록을 SNS에 올렸다. 대화 기록 속의 주원재 프로필 사진은 모자이크를 했고 상
심지안은 자신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뭣 하러 서인수에게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단 말인가. 이제 설명할 길이 없다. 진현수는 분명 그와 성연신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아니, 그녀와 성연신의 계약 결혼은 확실히 떳떳이 밝힐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심지안은 순간 난감함이 가시는 것 같았다. 심지어 성연신이 내려와 그들과 마주쳤을 때도 먼저 그에게 다가가 함께 식사하자고 청하기까지 했다.먼 곳에서 일부러 자신을 보러 온 친구에게 섭섭지 않게 대접해 주어야 한다.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 집에 돌아간다면 성연신은 필시 그녀에게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함께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심지안의 요청에 성연신은 이 여자의 어리석음이 이제야 좀 개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저번 일 이후 그녀는 더는 다른 남자와 단둘이 만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성연신도 불렀다는 건 진현수에 대한 완곡한 거절일 것이다.성연신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반면 진현수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중국 요릿집에 가고 싶다는 서인수의 말에 심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현수는 복잡해진 마음에 입맛까지 떨어져 버려 그저 무심히 응 한마디만 내뱉을 뿐이었다.기대에 찬 초롱초롱한 두 여자의 눈을 마주한 성연신도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식당에 간 뒤 진현수는 착잡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한동안 고민한 뒤 서인수에게 문자를 보냈다.한창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있던 서인수가 핸드폰을 확인했다.「계획을 바꿔야겠어요. 오늘은 고백하지 않을 거예요.」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서인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진현수와 시선을 맞추었다.「왜 그래요? 왜 갑자기 고백하지 않겠다는 거예요?」진현수는 심지안의 옆에 앉은 성연신을 흘끗 보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마침 새우 철이라 심지안은 매운 새우볶음을 주문했다.성연신이 건강 때문에 자극적인 음식을 꺼리는 바람에 심지안은
심지안은 그제야 그의 이상함을 감지했다. 자세히 쳐다보니 이마와 콧등 모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그녀는 곧바로 가장 가까운 약국에 달려가 약을 구해왔다.성연신은 약을 먹고 30분이 지나자 얼굴색이 많이 편안해졌다.중정원에 돌아온 뒤.심지안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매운 걸 못 먹으면 먹지 말아야지 왜 굳이...”이럴 줄 알았다면 그와 함께 가지 않았을 것이다.성연신이 땀에 흥건해진 얼굴로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지안 씨는 다른 남자와 어울리느라 바빴잖아요. 그거라도 먹지 않았다면 난 굶어 죽었을 지도 몰라요.”순간 심지안은 조금 전 피어올랐던 죄책감이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계약서엔 친구와 함께 나가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내용은 없었어요.”“계약서에 없다고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내일 장학수한테 추가하라고 해야겠어요.”“성연신 씨, 사람을 너무 괴롭히지 말아요!”“내가 정말 지안 씨를 괴롭혔다면 지금 위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건 지안 씨였겠죠.”심지안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답답함과 억울함 때문에 미칠 것 같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할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대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놓는 지독한 말만 골라 한단 말인가?“내일 점심 도시락을 싸 와요. 난 밖에서 파는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아요.”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날 정말 도우미 아줌마로 생각하는 거예요? 나도 힘들어요. 오늘 일을 하나 맡아 내일 외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시간 없어요.”“월급을 더 받고 싶지 않아요?”성연신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순간 심지안의 얼굴에 실렸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고 그 대신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자리 잡았다.“그래도 돼요?”성연신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여자다.“연신 씨, 월급 얼마나 올려줄 거예요?”뾰족한 날이 잔뜩 선 살쾡이로부터 온순한 강아지의 모습으로 바뀐 심지안이 조심스레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하루빨리 돈을 모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