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집에서 며칠을 쉬며 생리 기간을 보냈고, 내일은 휴가 마지막 날이다.그녀는 진유진과 같이 쇼핑도 하고 밥도 먹을 계획이었다.외출하기 전에 성연신에게 저녁을 혼자 해결하라고 당부했다.성연신은 심지안이 보낸 문자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몸이 회복하자마자 참지 못하고 밖에 나가려고 하다니, 조금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니까.장학수는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성연신 앞에 놓으며 물었다.“추가할 게 있는지 확인해 봐.”성연신은 서류를 들고 한눈에 스캔했다.이때 정욱이 두 박스의 결혼식 사탕을 들고 들어왔고 장학수도 있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성 대표님, 데이터 팀의 유영재 씨와 번역팀의 전지혜 씨가 결혼식을 올리면서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그 말을 듣고 성연신의 시선이 사탕 박스로 향했고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한 가지 조항 더 추가해. 사내 연애 금지.”장학수는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안 씨가 이 조항을 거절하면 어떡해?”“지안 씨는 거절할 자격이 없어.”장학수는 말문이 막혔다.“...”그는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왜 이렇게 융통성 없고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으려고 하냐고 말하고 싶었다....도심의 쇼핑몰에서.심지안과 진유진은 쇼핑하고 있었는데 집에 입을 만한 옷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그녀는 옷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성연신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넥타이를 발견했다.가격을 보니 4만 원밖에 하지 않았다. 성연신은 무조건 그것을 싫어할 것이다.그녀는 판매원의 추천을 사양했다.진유진은 그 넥타이가 꽤 마음에 들어서 그것을 구매했다.“남자친구 주려고?”“응, 요즘에 일자리를 구해야 해서 넥타이가 필요하거든.”심지안은 멈칫했다.“무슨 일자리인데?”“프로그래머. 전에도 해봤어.”심지안은 더 질문하지 않았고 진유진과 함께 인터넷에서 유명한 가게로 가서 줄을 섰다.줄은 길었고 대부분은 압도적인 온라인 프로모션에 이끌려 찾아온 손님들이었다. 종업원은 그들에게 한 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
쫓아 온 심연아는 ‘누나’라는 말을 듣고 심지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충격으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방금 뭐라고 불렀어요?”“누나라고 불렀어.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존댓말을 쓰는 게 뭐가 잘못됐어?”주원재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레게머리를 하고 있어 불량 학생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그가 공손히 심지안을 누나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스릴 넘치는 일인가.심지안은 눈을 까뒤집어 떴다. 며칠 전 그가 그녀를 놀릴 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었다.“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주원재는 눈알을 굴렸다.“우리 아버지 회사에서 만났지.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해?”심연아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하면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간신히 진정하고 말했다.“아직 모르죠? 나 지안이 언니예요.”“알아.”너희들이 심지안을 괴롭힌 것도 알아.물론 이것은 주혁재가 주원재와 심연아가 연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알려준 것이다.그 말을 듣고 심연아는 더는 미소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주원재와 심지안을 같이 있게 놔둘 수 없어서 주원재에게 말했다.“학교에 가야 하지 않아요?”“날 보내려고? 방금까지 날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어?”주원재가 솔직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그냥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그 말에 심지안은 살짝 웃으면서 팔짱을 끼고 드라마를 보듯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긴장한 심연아는 입술을 깨물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그건 내가 장난친 거죠. 빨리 가요. 시간 끌지 말고.”주원재는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 외에 농구도 즐겼는데 이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기자 마세라티를 타고 떠났다.심연아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긴장했던 것이 살짝 풀렸다. 자기와 주원재의 일을 알고 있는지 심지안을 떠보려고 했는데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을 때 심지안은 진유진을 끌고 떠나갔다.쇼가 끝났으니 당연히 자리를 떠야 했다.심연아가 가슴에 품고 있던 의문은 알아서 잘 추측하도록 내버
심지안은 목뒤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왠지 두렵기까지 했다.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배를 잡았다.“먼저 들어가요. 난 화장실 가고 싶어요.”“침실에도 화장실이 있어.”“됐어요. 난 습관이...”심지안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녀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나왔다. 그녀는 성연신에게 안기어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어 무의식적으로 두 손으로 성연신의 목을 감쌌다.성연신의 잘생긴 눈썹에는 사악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고 입술이 그녀의 귓가 가까이에 있었는데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도발하는 게 좋으면 오늘 원하는 대로 해 줄게요. 내가 어떤지 봐요.”남자가 풍기는 기운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따뜻하고 촉촉한 입김이 심지안의 귀로 불어와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귓불도 연분홍색으로 물들었다.그녀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그가 농담하는 것인지 아니면 겁을 주는 것인지 보아낼 수 없었다.오랫동안 그녀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유혹했다.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이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녀는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였다!심지안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성연신은 이미 그녀를 안고 침실로 들어왔다.성연신의 침실이었다.성수광은 제자리에 서서 2층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을 하고 있었다.“역시 성씨 가문의 훌륭한 사내야. 실행력이 뛰어나네. 한다면 곧바로 하네.”서백호는 그 장면을 보고 의아해했다.도련님께서 이번에 진짜로 하시려고 그러나?...침실에서.성연신의 침실은 집에서 가장 큰 침실이었고 블랙 앤 화이트 톤으로 되어 있었다. 침대와 옷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나치게 간단했다.심지안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저기... 이제 나를 내려놓아도 돼요.”조명 아래서 성연신의 눈썹과 눈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지안 씨 나한테 붙어 있는 거 좋아하잖아요?”“그건 맞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요?”“난 빨리 하고 빨리 끝내는 거 좋아해요.”심
두 사람이 깊이 빠져들려고 할 때 침대 옆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성연신은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왔고 자신에게 옷을 찢긴 여자를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곧바로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쿵’하는 큰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벽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는데 분노와 당혹감이 느껴졌다.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침대 위의 심지안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자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봤다.뭐야!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녀에게 만족하지 않은 것일까?그녀가 그 정도로 별로였나?방금 전 자신의 적극적인 행동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속에서 엄청난 수치심과 좌절감이 넘쳐났다. 그녀는 눈이 붉어졌고 옷을 단정히 하고 나가면서 문을 쾅 닫았다.아래층에는 성수광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아마 갔을 것이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좋지 않아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하지만 아무리 뒤척여도 잠들 수가 없었다.심지안은 눈을 크게 뜨고 창밖의 밤경치를 바라보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 쓰레기 같은 남자와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정말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을까?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고 해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그녀는 손으로 눈물을 깨끗이 닦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천천히 깊은 잠에 빠졌다.하지만 성연신은 욕실에서 한 시간 동안 찬물로 샤워하며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심지안을 생각하자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그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차 키를 챙기고 드라이브하러 나갔다.30분 후.손남영은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귀를 파고는 참지 못하고 성연신에게 말했다.“다시 말해 봐. 잘 못 들었어.”“여자 몇 명 데리고 오라고.”“여자는 왜 찾아?”그의 눈빛은 차가웠다.“네가 말해 봐. 왜 찾겠어?”손남영은 몸을 떨었다. 그는 당연히 여자를 데려와서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정신이 흐리멍덩한 심지안은 버스를 타고 부용으로 갔다.아직 출근 시간이 안 되었기에 1층의 경비 아저씨와 청소부 아주머니는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친척분은 이혼하셨어요?”“이혼했어요. 지금 힘들게 살고 있어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데다가 홀로 두 아이를 키우게 됐는데, 내가 처음부터 이혼은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내 말을 안 듣고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지.”“어이쿠, 내가 보기에는요, 남자가 연봉 2억을 벌어오는데 성격이 아무리 나빠도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혼을 하지 않고 먹고 입을 걱정 없었겠는데. 지금은 이혼했으니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이겠죠.”“할 수 없어요. 젊은 사람이라 충동적이어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아요.”그 후에도 두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심지안은 그것을 더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축 늘어뜨린 두 손을 꽉 쥐었는데 너무 세게 힘을 주어서 관절 부분이 하얗게 되었다.제자리에 서서 한참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포기하려는 생각을 떨쳐 버렸다.성연신의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은 아마도 성연신 곁에 머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심지안은 상사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상사는 여러 번 그녀를 붙잡았지만 그녀는 정중히 거절했다.그녀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한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심지안은 부용에 몇 달만 있었을 뿐이지만, 그녀가 창출한 가치는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다.그녀의 퇴사 소식은 서인수와 진찬우에게 빠르게 퍼졌다. 점심시간에.세 사람은 탕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서인수의 반응이 너무 컸고 두 눈이 빨개진 모습이 토끼 같았다.“지안 언니, 안 가면 안 돼요? 언니 가면 나랑 같이 있어 줄 사람이 없어요. 회사에 친구가 없어요.”“내가 안정되면 그쪽에 사람 필요한지 다시 연락할게요. 그렇게 되면 제가 데려갈게요.”심지안은 장난을 치면서 말했다.이별의 아픔은 잠시 뿐이다. 그녀와 서인수는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아니에요. 저 이미 직장 찾았어요.”심지안은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말했다.“이렇게 빨리요? 어느 회사에요?”진현수는 놀랐다.“작은 회사예요...”“너 능력도 좋은데 왜 작은 회사로 갈 생각을 했어?”진찬우가 끼어들었다.“내가 소개해 줄 수 있으니까 네 아까운 청춘을 낭비하지 마.”“맞아요. 발판으로 삼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발전하고 싶다면 큰 회사에 가야 해요.”“그래요, 지안 언니.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심지안은 그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지만,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연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물론 감사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네,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니 충동적으로 결정하진 않을 거예요.”심지안은 빙그레 웃었고 그녀의 눈은 별이 담겨 있는 듯 반짝였다.“저 엄청 고민해보고 가는 거예요. 이 회사에서 부용보다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해서 가는 거예요.”진현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그럼 다행이네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진짜요? 만약 강우석이 저희 둘이 친하다는 걸 알게 되면 두 사람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요?”그녀는 입 밖으로는 시시덕거렸지만 마음속으로는 강우석이 그녀와 성연신의 관계를 알고 화가 나 팔짝 뛰는 모습이 떠올라 너무 통쾌했다.진현수는 깜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서열을 따지면 내가 연장자라 강우석이 나를 통제할 자격이 없어요.”“그렇군요.”심지안은 진현수와 친구 사이였을 뿐이기에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강우석에게 연장자가 얼마나 많은지 석 달 사이에 벌써 그의 친척을 두 명이나 만났다.이때 진찬우가 다가와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만약 진현수가 강우석의 삼촌이라면 너 혹시 다시는 진현수와 연락 안 하는 거 아니야?”심지안은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 그럴 거예요.”“왜?”“왜냐하면 저는 강우석의 숙모가 되고 싶으니까요!”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서인
그는 자기가 눈이 흐릿해서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프런트 데스크로 발걸음을 옮겼다.“안녕하세요. 8번 테이블에서 방금 결제를 마쳤습니다.”진현수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계산한 사람이 심지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자리로 돌아와 보니 심지안은 자리에 없었다.“지안 씨는 어디 갔어?”진찬우는 두 손을 벌리며 모른다는 듯이 말했다.“인수가 물어보고 있어.”“인수도 아까 여기 있지 않았어?”“너무 더워서 옆 가게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돌아왔는데 지안 언니가 사라졌어요.”서인수는 휴대폰을 꺼내면서 말했다.“전화해서 물어볼게요. 지안 언니도 화장실에 갔을지 모르니까요.” 진현수는 살짝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지안 씨도 술을 많이 마셨으니 이제 술기운이 올라올 시간이야.”...고속도로에서.차 뒷좌석에 앉은 심지안은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머릿속이 윙윙거렸고 창밖의 교통 상황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우면서도 서인수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 “지안 언니, 혹시 화장실 갔어요?”“아니요.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집에 갈게요...”옆에 있는 성연신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 멍청한 여자는 술에 취해도 여전히 진지하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그럼 지안 언니 집에 도착하면 한마디 해줘요.”“알았어요...”전화를 끊은 심지안은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잠시 잠을 청하고 싶어서 눈을 감았다.“거짓말쟁이.”성연신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괘씸하게 들렸다.심지안은 이를 갈며 말했다.“연신 씨가 말도 없이 와서 내가 거짓말한 거잖아요.”오늘 식사를 한 가게는 골목 안에 있었는데 차가 들어올 길이 없었고 밖은 큰 도로여서 주차를 오래 할 수 없었다.심지안은 어쩔 수 없이 먼저 갈 수밖에 없었다.“데리러 간다고 했잖아요.”“그럼 내가 항상 당신이 데리러 오는 걸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요?”“그건
심지안은 위장이 가져온 불편함을 참으면서 계약서를 보기 위해 몸을 곧게 폈지만 밤에는 차가 많고 속도가 빠른 탓에 정욱이 급브레이크를 밟아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할 뻔했다.심지안이 불을 켜려던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였다. 한 손은 입을 가리고 한 손은 계약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다음 어두운 시야로 서명할 곳을 간신히 찾은 후 재빨리 사인했다.그녀는 혼자여서 탐낼 것이 없었고 성연신은 위압적인 조건을 요구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연봉은 협상되었기 때문이다.심지안은 계약서를 건네고 바로 다시 눈을 감고 메스꺼움을 억지로 참았다. 성연신과 접촉하고 싶지 않은 듯 아주 빠른 속도로 일련의 움직임이 진행되었다.성연신의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금 그를 꺼리고 있는 것인가?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6월이었지만 차 안의 분위기는 매우 차가웠다.정욱은 너무 추워서 떨었다.흑흑, 당신들이 싸웠는데 왜 내가 추워야 하는 거야.그리고 곧.중정원에 도착했다.심지안은 길에서 몸이 불편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그녀는 오늘이 원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날임을 잊지 않았지만 잠이 너무 쏟아졌다.할 수 없이 원이를 데리고 빠른 속도로 나가야 했다. 성연신의 옆을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됐어. 미움을 사지 말자.성연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전에는 이 여자가 그렇게 성격이 센지 몰랐다.그녀가 다음날 일어나서 출근했을 때 회사가 보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히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그때 가서 그녀에게 몇 가지 교훈을 가르쳐도 늦지 않을 것이다....20분 후.심지안은 원이와 함께 돌아왔고 침실로 들어와 물 한 컵을 마시고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일찍.잠이 덜 깬 심지안은 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자 이불을 머리 위로 덮었다.퇴사를 했는데 늦잠을 자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했다.“똑똑똑---”“15분 안에 준비해요.”3초 후,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