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B, 그녀의 남자를 훔쳐라

플랜 B, 그녀의 남자를 훔쳐라

By:  도도한 냉미녀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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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한 아버지와 우울증으로 자살한 어머니, 두 자녀를 데리고 뻔뻔스럽게 집에 나타난 내연녀. 결국 엄마 친구의 손에서 자란 오서린은 강지후와 소꿉친구로서 허물없이 지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사이가 점점 돈독해졌지만 22번째 생일에 혼사까지 운운하던 죽마고우가 제일 친한 친구와 연애를 선언할 줄이야. 반면, 그녀는 여동생이라는 낙인이 찍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신세가 되었다. 강지후에게는 단지 불쌍한 기생충이자 뿌리칠 수 없는 찰거머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친구들의 무시도 한 몸에 받았다. 다들 철이 좀 들라는 둥, 마지막 정까지 저버리지 말라는 둥 한 소리 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남자까지 소개해줬다. 하지만 진정한 타깃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 진태하였다. 또한 배신을 한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이기도 했기에 마침 잘 되었다. 게다가 의학계에서 유명한 흉부외과 교수일 뿐만 아니라 하성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진씨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그는 오서린의 또 다른 소꿉친구로서 이복 언니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했다. ... 진태하는 건방지고 제멋대로인 오서린이 싫었다. 스스로 아낄 줄도 모르고 속셈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하필이면 미모가 뛰어나고 매력이 넘쳤다. 어쨌거나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달콤한 맛을 보고 나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기꺼이 충성을 다하는 ‘노예’로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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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오서린은 어렸을 때부터 예쁘장한 외모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녀가 연두색 나비 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자마자 시끌벅적하던 룸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주변에 모여들어 아부하기 급급했고,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기대했던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보고 농담을 건넸다.

“강지후 찾아?”

오서린이 부인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지금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을 거야.”

“서프라이즈?”

상대방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다.

오서린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서프라이즈?”

“몰랐어?”

인형처럼 정교한 이목구비와 생기발랄한 느낌의 원피스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똑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도 분위기만큼은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속으로 뻔했다.

비록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뗐다.

“이따 강지후가 와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오늘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했거든. 서린아, 혹시 무슨 얘기인지 알아?”

오서린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서린이 생일인데 뻔하지 않겠어? 프러포즈하려고 준비하는 거겠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서린은 깜짝 놀라더니 심장이 점점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생일 파티도 강지후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심지어 오늘 오후 전화까지 와서 저녁에 예쁘게 꾸미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서프라이즈가 곧 프러포즈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다.

소꿉친구인 두 사람은 철이 들어서 서로 알고 지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며 오랜 시간 함께해온 만큼 인생의 동반자로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강지후의 어머니께서 얼른 혼인신고 하라고 했더니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었다.

오서린은 그가 아직 결혼이 부담스러워서 거절한 줄 알았다.

그런데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니?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신이 나서 휴대폰을 꺼냈다. 절친인 임다정에게 희소식을 전하며 언제 오냐고 물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던 찰나.

[곧 도착해.]

문자를 보고 나서 오서린은 한시름 놓았고, 임다정이 제대로 찾아오지 못할까 봐 다시 물었다.

[내가 데리러 갈까?]

하지만 상대방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오서린은 마중하러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문이 열리면서 강지후와 임다정이 차례로 들어섰다.

임다정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가방에서 꺼냈다.

“서린아, 생일 축하해.”

“고마워.”

오서린은 옆에 내려놓고 강지후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옷이 왜 그 모양이지?”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다름 아닌 주은채가 선택한 의상이었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제일 잘 살리는 옷이 원피스라서 남자의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강지후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믿었다.

“별로야?”

오서린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발견한 강지후는 왠지 모르게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앞으로 그런 옷 입지 마.”

오서린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지후야, 오늘 서린이 생일인데 선물 준비 안 했어?”

강지후가 낙찰받은 팔찌를 꺼내려는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제 프러포즈하는 거야?”

“청혼해! 청혼해!”

사람들이 둘러싸서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연이어 울려 퍼지는 외침에 룸 안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오서린은 심장이 쿵쾅거렸고 쑥스러운 나머지 얼굴이 빨개졌다.

반면, 강지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내가 프러포즈한다고 누가 그랬어?”

이내 불쾌한 눈빛으로 주위를 훑어보다가 오서린의 얼굴에 고정했다. 분노와 짜증이 묻어난 눈동자를 마주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번에도 봤던 모습이었다.

“할 말이 있다며?”

“그렇긴 한데 프러포즈는 아니야.”

오서린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강지후는 대뜸 임다정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소개할게. 내 여자 친구야.”

순간, 룸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오서린은 제 자리에 얼어붙어 눈앞에 있는 두 남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 서린이랑 사귀는 거 아니야? 언제 헤어졌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정 씨는 서린이 친구잖아. 어떻게 둘이 만날 수 있지?”

강지후는 오서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내가 언제 너랑 사귀자고 했어?”

오서린의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졌다.

“넌 그냥 여동생과 다름없으니까 착각하지 마.”

오서린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잠자리만 제외하고 연인끼리 할 법한 스킨십은 다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남자친구도 사귀지 못하게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건네는 남학생을 보고 품에 덥석 끌어안더니 자기 여자라며, 감히 눈독 들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여동생으로 생각한다니?

오서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린아, 왜 가만히 있어? 지후랑 진짜 사귀는 사이 아니야?”

“그동안 지후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잖아. 둘이 진작에 커플인 줄 알았는데? 게다가 방금 너한테 프러포즈한다고 하지 않았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지라 오서린은 어딘가 왜곡된 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강지후의 안색이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오서린은 목이 메었고 고개를 들어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날 여동생으로 여긴 거야?”

강지후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만약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으면 소개해줄 수는 있어. 다만 나는 제외시켰으면 좋겠어. 정말 역겨우니까. 여동생이랑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결국 마지막 희망조차 웃음거리로 전락되었다.

“아니면 나랑 만날래? 지후 형이랑 친구이기도 하고 집안 내막도 잘 알고 있으니 겹사돈 한 번 맺어보는 거지. 형, 안 그래?”

강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양도준도 꽤 괜찮은 녀석이야. 둘이 잘해 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오서린은 눈물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잠시 후, 새빨간 입술로 호를 그리며 비아냥거렸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하잖아. 너 같은 놈이랑 친구인 걸 보면 거기서 거기이지 않을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룸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공기마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임다정을 바라보았다.

임다정은 시선을 피하며 그녀를 외면했다.

오서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둘이 참 잘 어울리네.”

이내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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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오서린은 어렸을 때부터 예쁘장한 외모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그녀가 연두색 나비 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자마자 시끌벅적하던 룸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다들 주변에 모여들어 아부하기 급급했고,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기대했던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누군가 이를 보고 농담을 건넸다.“강지후 찾아?”오서린이 부인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마도 지금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을 거야.”“서프라이즈?”상대방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다.오서린은 어리둥절했다.“무슨 서프라이즈?”“몰랐어?”인형처럼 정교한 이목구비와 생기발랄한 느낌의 원피스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똑같은 옷을 입는다고 해도 분위기만큼은 흉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속으로 뻔했다.비록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시치미를 뗐다.“이따 강지후가 와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오늘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했거든. 서린아, 혹시 무슨 얘기인지 알아?”오서린이 고개를 저었다.“오늘 서린이 생일인데 뻔하지 않겠어? 프러포즈하려고 준비하는 거겠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서린은 깜짝 놀라더니 심장이 점점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사실 이번 생일 파티도 강지후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심지어 오늘 오후 전화까지 와서 저녁에 예쁘게 꾸미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서프라이즈가 곧 프러포즈일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 했다.소꿉친구인 두 사람은 철이 들어서 서로 알고 지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살며 오랜 시간 함께해온 만큼 인생의 동반자로 굳게 믿고 있었다.그런데 며칠 전 강지후의 어머니께서 얼른 혼인신고 하라고 했더니 노발대발하며 화를 냈었다.오서린은 그가 아직 결혼이 부담스러워서 거절한 줄 알았다.그런데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니?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신이 나서 휴대폰을 꺼냈다. 절친인 임다정에게 희소식을 전하며 언제 오냐고 물었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혹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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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늦은 밤.사람들이 모여서 포커를 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이번에도 망한 패가 걸린 강지후는 미간을 찌푸렸고, 옆에서 담뱃갑을 집어 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하도윤이 힐긋 쳐다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금연한다더니, 왜 다시 피우기 시작했어?”강지후는 묵묵부답했고, 누군가 농담을 건넸다.“그러니까, 금연한다고 하지 않았어? 담배 냄새가 잔뜩 배어서 집에 갔다가 서린한테 문전 박대당하면 어떡해?”“젠장! 조용히 있으면 어디 덧나냐?”버럭 외치는 소리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하도윤이 발로 농담한 친구를 걷어차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지후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 여자 친구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 속상해할지도 모르니까 앞으로 입 조심해.”다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사이가 돈독한 편이었다. 평소에 허물이 없을 정도로 친했기에 서로를 비웃는 일이 잦아도 대개 농담으로 여기고 그냥 넘기곤 했다.강지후가 이토록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남자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상황인지 속으로 뻔한 하도윤은 게임을 재개하며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오늘 단톡방에서 한 말이 너무 심하지 않았어?”강지후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내 일에 신경 꺼.”“어차피 얘기해줘도 안 듣잖아. 가까운 사이일수록 선을 지켜야지, 설령 여자 친구를 만난다고 해도 어떻게 임다정과 사귀냐? 서린의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가다가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면 어떡하려고?”“닥치고 포커나 해. 왜 이렇게 말이 많지?”강지후는 카드를 내동댕이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떠나기 전에 옆에 있는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는데 누구랑 사귀든 내 맘이야. 걔가 뭐라고 동의까지 받아야 해?”“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잖아.”하도윤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그나저나 서린이 진짜 남자친구 생겼어?”강지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언제까지 지껄일래?”하도윤이 양도준을 힐긋 쳐다보며 말했다.“도준이가 서린을 좋아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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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오전 진료 마지막 환자를 보낸 후 진태하는 가운을 벗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금방 갈게.”이내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고 정혁수가 목청을 높였다.“형, 전 이미 식당에서 밥 먹고 있어요. 조카가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데 모처럼 왔으니 맛있는 거나 사줘요.”휴대폰을 들고 걸어가 손잡이를 잡는 순간 진태하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조카?”“네, 그저께 밤에 클럽에서 만난 예쁜 여자요. 형을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정혁수는 밀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형한테 알려주려고 했는데 괜찮다네요. 일하는 데 방해될까 봐 밖에서 기다린다며, 어찌나 철이 들었는지.”“이제 제 차례가 왔으니 이만 끊어요. 얼른 조카 데리고 밥 먹으러 가요. 점심때 식당들이 대기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서둘러요.”그러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진태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살을 찌푸렸다.문을 열자 휴게실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오서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인스타를 다시 다운 받아서 한창 눈팅하던 중이었다. 오전에 파파라치가 임다정과 강지후의 연애 소식을 폭로하고 당사자가 직접 인정까지 하자 네티즌들은 두 사람의 과거를 파헤치며 지지글을 올리기 시작했다.소꿉친구, 찰떡궁합, 천생연분...오서린은 목격담을 보고 나서야 작년 크리스마스에 강지후가 임다정과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출장 간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광고 촬영이 있다고 해서 당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임다정이 올린 로맨틱한 저녁 식사 사진 속 남자는 손목에 그녀가 선물한 아르마니 시계를 차고 있었다.오서린은 화가 나서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이때, 늘씬한 다리가 시야에 들어왔고 고개를 들자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를 발견했다.그는 오늘 검은색 셔츠를 입고 바지도 같은 계열의 색상을 매치했으며 단추는 목 끝까지 채웠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자체만으로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진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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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남자의 얼굴에 짜증과 무관심이 고스란히 묻어났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오서린은 괜스레 기가 죽었다. 누가 봐도 단물만 빨아먹고 안면박대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자칫 그녀가 들러붙을까 봐 선을 긋기 급급했다.자존심 때문이라도 매달리지 말아야 했지만 강지후와 임다정이 작년에 몰래 만났던 일을 떠올리면 도무지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진태하는 임다정이 4년 동안 좋아했지만 끝내 이어지지 못한 사람이었다.게다가 모든 면에서 강지후를 능가했다. 친구들은 그녀가 밀당한다고, 더 좋은 남자친구를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따라서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태하와 꼭 사귀어야만 했다.“연락처 알려줘요.”오서린이 휴대폰을 건네주었고, 싸늘한 눈빛으로 가만히 서서 쳐다보는 진태하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핑계를 댔다.“나한테 옷 사줬잖아요. 카톡으로 돈 보내줄게요.”진태하는 그제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송금하려면 친구를 추가해야 하거든요.”이내 휴대폰을 내밀자 오서린은 재빨리 추가했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는 식사 자리인지라 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태하의 말을 듣고 의기소침해졌다.“160만이야.”“네?”오서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영수증.”진태하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오서린에게 보여줬다.그녀는 평소에 브랜드 제품은 사지 않았다. 특히 옷이나 신발 같은 소모품은 오랫동안 방치하면 색이 바래거나 유행이 지나기에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물론 경제력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었다.하지만 모임에 나가면 귀동냥으로 비싼 브랜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강지후도 꼭 집어 얘기했었다.“돈 갚는다며?”남자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오서린은 울컥했지만 이를 악물고 송금해주었다.옷값에 밥값까지 더하면 이번 달 월급을 탕진했고, 심지어 비상금까지 탈탈 털렸다.상대방이 잽싸게 수락하자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다.“볼일 끝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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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제 뭐라고 대답했는지 벌써 까먹었어?”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어찌 잊겠는가?다만 그녀도 이렇게 빨리 후회할 줄은 몰랐다.당시에 동의했더라면 이제 와서 난처할 일이 없었을 텐데.“단순히 책임감 때문에 마지못해 저랑 있겠다고 하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오서린은 말을 이어가면서 무릎 위에 놓은 가방을 꼭 움켜쥐었다. 비록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진태하는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잠시 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래서 책임지지 말라는 거야?”만약 수긍한다면 어물쩍 넘어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게 뻔했다.이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금 여자 친구가 없다고 들었어요. 마침 저도 솔로라서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때요?”“됐어. 아직은 혼자가 좋아.”진태하는 휴대폰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힐긋 쳐다보았다.“문 닫을 거야.”이만 가보라는 뜻이었다.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대시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고 찰거머리처럼 매달리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수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오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꼬리를 올렸다.“물론 거절할 수는 있어도 나를 막을 자격은 없죠. 태하 씨한테 대시하는 건 내 마음이자 자유이기도 해요.”진태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었다.“뜻인즉슨 나도 거절할 자격은 있다는 거네?”희미한 미소에 씁쓸함이 묻어났다.오서린이 입을 삐죽거렸다.“지금은 거절할지언정 나중에 받아줄지도 모르잖아요? 어차피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게다가 그건 제 첫 경험이란 말이에요. 워낙 보수적인 성격이라 시작과 끝을...”“처음이라고?”진태하의 눈빛이 의미심장했고 당최 속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비아냥거렸다.“예상외로 남자 꼬시는 데 도가 텄군.”오서린의 볼이 후끈거리더니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내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녀를 바라보던 진태하는 입가에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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