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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작가: 일설연우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29 14:22:05
뭇 비빈들이 달려 나갔을 때 황제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그녀들은 후회막급이었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 황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그녀들이 황제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적어도 너무 적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오직 귀비만이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들처럼 사랑에 목마르지 않았다.

황제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었다.

가빈은 입이 근질거려 하루빨리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이윽고 소문은 퍼지고 퍼져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황제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뭇 비빈들의 질투심만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독수공방할 바엔 차라리 승마장에서 기회를 엿보는 게 낫지.

이튿날, 연습이 시작되기도 전에 뭇 비빈들은 승마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뒤로 며칠 동안 황제는 승마장에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또다시 힘이 빠졌다.

“가빈은 그냥 운이 좋았던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처럼 폐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누가 그래요?”

“맞아요. 폐하께서 매일 승마장에 찾아오시는 것도 아닌데. 그냥 평소처럼 수다나 떨죠.”

인파를 뚫고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폐하께서 승마장을 찾는 횟수는 그래도 궁을 찾는 횟수보다 많겠죠.”

그 말에 사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긴. 전에 폐하께서 궁을 찾으신 것도 황후마마께서 협박하신 탓이잖아요. 그뒤로 단 한 번도... 휴, 그냥 연습에 집중하죠. 그럼 언젠가 폐하께서 찾아오실 겁니다.”

갑자기 그들 뒤로 누군가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지금 다들 승마를 쉬운 일로 여기는 겁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내내 태후의 뒤를 따르는 녕비였다.

그녀가 이곳엔 무슨 일로?

녕비는 그녀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우선 훈련복부터 누구나 잘 소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빈은 훈련복을 입게 되면 가슴이 작은 게 들통날 테니 폐하께선 곧바로 흥미를 잃게 되실 겁니다.”

놀림을 당한 장빈은 자격지심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뒤로 물러났다.

녕비가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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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2. 22. AM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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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상이 내전을 들어섰을 때, 넘어져 있는 병풍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마마, 정말로 떠나실 건가요?”봉구안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그래. 진 씨 가문의 사건은 내 마음에 새길 것이다.”그 검은 옷은 진 대인마저 해쳤다.연상은 얼굴에 걱정을 띠며 물었다.“마마, 저는 폐하께서…”“폐하께서도 결국 납득할 것이다.” 봉구안의 눈빛은 깊은 어둠에 잠긴 듯했다.만약 필요하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그날 밤, 소욱은 밤새 잠들지 못했다.그의 마음속은 불타오르는 듯했다.그는 1년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몰래 그것을 반년으로 바꿔놓았다!온 마음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천천히 다가가려 했건만, 그녀는 이미 떠날 계획을 세워놓은 것이다!세상에 어찌 그녀만큼 무정한 여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다음 날.소욱은 조정 일을 마친 후, 영화궁으로 향했다.호위들은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이 황후의 처소가 아닌 감옥과도 같았다.내전 안.그는 장자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얼굴에는 억제된 감정이 서려 있었다.봉구안을 보자, 그녀는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어떤 비녀나 장식도 없이 나무 비녀 하나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그녀는 공손히 절을 올렸다. 신하의 예법이었다.소욱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어젯밤보다 훨씬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아침상은 들었느냐?”봉구안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예.”“짐은 이미 사람을 보내 그 검은 옷을 추적하게 했다. 머지않아 소식이 올 것이다.”말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그녀는 살짝 물러나 피했다.소욱의 목이 탁 막히는 듯했다. 그는 억지로 감정을 억눌렀다.“궁에서 이 오랜 시간동안 그대는 짐에게 아무런…”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단호히 대답했다.“없었사옵니다.”감정이란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 법.비록 그녀의 마음속에 망설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는 철석같은 마음을 가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1화

    소욱의 호흡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곧장 봉구안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궁에서 나가 그 검은 옷을 쫓겠다는 거지? 좋아, 허락하마.”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어떻게 조사하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라.”봉구안은 흔들림 없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히 말했다.“검은 옷을 쫓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폐하, 이번에 떠나면 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소욱의 가늘고 긴 눈이 살짝 감기더니, 약간의 분노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 차분한 척하며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계약서에 분명 1년이라고 적지 않았느냐...”“폐하가 기억을 잘못하셨사옵니다. 6개월입니다.”봉구안은 손에 든 계약서를 그에게 건넸다.소욱은 즉시 계약서를 펼쳐 보았고, 냉정한 얼굴에는 놀람과 충격, 그리고 후회가 서렸다.계약서에는 정말 6개월이라고 적혀 있었다!하지만 그는 분명히 기억했다. 처음 약속했던 것은 1년이었다.그렇다면 가능한 설명은 하나뿐이었다.그녀가 ‘1년’을 ‘6개월’로 고쳐 쓴 것이다…소욱은 눈을 떨구고 감정을 억누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차가운 물에 담긴 옥처럼 묵직하고 서늘했다.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은 어두워졌고 미세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억지 웃음이 떠올랐다.“황후, 이런 농담은 하지 마라.”“1년이면 1년이다. 네가 멋대로 고친 것은 인정할 수 없다.”봉구안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녀의 태도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저는 계약서를 믿사옵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소욱이 계약서를 바로 찢어버린 것이다.봉구안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소욱은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고 제왕의 위엄을 드러내며 불가항력적인 어조로 말했다.“내가 말했듯이 1년이다. 단 하루도, 단 한 시간도 줄일 수 없다!”봉구안은 바닥의 찢어진 종이를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잊으셨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90화

    장락궁 안.영비는 진왕과 그의 동조자들 간의 내밀한 서신과 증거를 소상히 황제 앞에 올렸다.“이 모든 증거는 아버지께서 찾아내신 것이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진왕의 속셈을 의심하시어, 겉으로는 그와 친분을 쌓는 척하며 이 명단을 입수하셨사옵니다.”영비가 제출한 증거들은 소욱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그는 서류를 검토한 뒤, 정색하며 말했다.“그대의 부친에게 큰 공이 있다.”영비의 눈에는 결연한 충성과 확신이 담겨 있었다.“충신은 제 부친의 본분이옵니다.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옵니다.”“폐하께서는 요 며칠 진왕 일로 매일 늦은 밤까지 고생하셨는데, 이제 조금이나마 쉴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사실 소욱이 오늘 장락궁에 온 이유는 영비가 손에 넣은 이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는 예전부터 전조를 관리하고, 영비는 온 가문을 동원하여 그를 도왔다.영비는 평범한 여인들과 달랐다. 겉보기엔 연약해 보였지만, 실은 단호하고 남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그는 그녀를 첩이 아닌 참모로 여겼고, ‘후궁은 정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예외로 여겼다.그러나 지금, 그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이제는 황후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떠나기 전, 소욱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이런 증거는 앞으로 그대 부친이 직접 올리도록 하라. 전조와 후궁이 서로 얽히지 않는 것이 낫다.”영비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으나, 곧 평온을 되찾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알겠사옵니다. 폐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그녀는 황제 앞에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때, 밖에서 진한길이 문을 두드렸다.“폐하, 소신이 아뢸 일이 있습니다!”…“감옥에서 실종되었다고? 아니면 탈옥한 것이냐?”소욱의 이마는 잔뜩 찌푸려졌고, 그의 눈빛은 어둡고 날카로웠다.진한길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아마도… 탈옥한 것 같사옵니다.”어쨌든 사람이 갑자기 사라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소욱의 눈은 더욱 차가워졌다.“이 일은 당분간 황후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9화

    소욱은 확신하고 있었다.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면 절대로 잊지 않는다.그는 결코 영비를 건드린 적이 없었다!아무리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할 리 없었다.하지만, 영비에게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같은 스승 밑에서 배웠다.그가 황위에 오를 때 그녀는 전력을 다해 그를 도왔다.그런 그녀가 어찌 이런 어마어마한 거짓을 꾸며낼 수 있겠는가?영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눈 속엔 깨진 슬픔이 가득했다.“폐하께서 기억 못 하셔도 괜찮사옵니다.”“그날 밤의 일은 본디 하나의 실수였사옵니다.”“소첩은 그것을 잊을 것이옵고, 폐하께서도 잊으시어 그것이 황후마마와 폐하 사이의 가시가 되지 않도록 하소서.”소욱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며, 좁아진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모용란, 그간의 십 수 년의 정을 봐서라도, 거짓으로 나를 속이지 마라. 그 아이가 정말로 나의 아이란 말이냐?”영비는 입술 안쪽을 꽉 깨물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욱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기분이었다.주먹을 꽉 쥐었다.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한참 침묵 끝에, 그는 단 한 마디를 내뱉었다.“이 일은, 절대 황후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영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랐다.“소첩은 비록 황후마마와 오래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마마께서 폐하와 소첩 사이에 무언가 있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사실 그날 밤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저희 사이는 깨끗하고 명백하옵니다.”소욱은 턱을 단단히 다물고, 얼굴에는 엄한 표정이 가득했다.그날 밤의 일이라면, 그는 단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았다.그는 영비를 물리고 난 뒤, 말없이 앉아 있었다.책상 위의 상소문 속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술이 사람을 망치는구나!’“여봐라 거기 있느냐.”“신 진한길, 여기 있사옵니다!”비록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조사해 보면 반드시 무언가 드러날 것이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8화

    소욱은 검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방금 태황태후의 말은 그조차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영비가 유산을 했다니!? 그것이 언제 있었던 일이란 말인가?’그때 가빈이 입이 간지러웠던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태황태후마마, 영비마마께서 유산을 하셨던 적이 있사옵니까? 왜 첩은 그런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까?”그 외의 후궁들 또한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태황태후는 영비의 손을 붙잡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일이야 황상이 출정한 후에 벌어진 일이니라.”“그때 영비는 병중에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자신이 잉태한 줄도 몰랐었지.”“그저….”그 말을 하며 태황태후는 일부러 태후를 흘깃 쳐다보았다.태후는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며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그녀는 태황태후의 책망 어린 눈길을 피하며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번졌다.영비가 임신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알고 있는 극소수 중 하나였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바로 간접적으로 그 아이를 해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었다.당시 태후가 어의들을 막아 세우지만 않았다면, 영비가 유산이라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이 일은 태후가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다.황제가 이를 알게 되면, 그가 이 어미를 더욱 미워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결국 종이는 불을 덮지 못하는 법. 이 비밀도 드러나기 시작했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 있었다.그 틈을 타 봉구안은 그의 손을 놓았다.봉구안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한 표정으로 멀리 연극무대를 바라보았다.지금 펼쳐지는 이 장면이 무대 위의 연극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였다.이 자리에서 소욱이 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적절치 않았다.괜히 말을 덧붙이다가는 자신이 영비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사실을 둘러싼 비밀까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소욱은 늘 그랬듯, 오늘 일은 오늘 해결하는 법이라 믿었다.만수궁의 연극이 끝나자마자, 그는 봉구안을 강제로 끌어내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7화

    만수궁.태황태후는 영비에 대한 애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그녀는 의도적으로 영비를 자신 곁 자리에 앉히고, 온갖 말을 다 하며 그녀를 챙겼다.“어젯밤은 잘 잤느냐?”영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단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세월이 고요히 흐르는 듯한 은은한 우아함을 풍겼다.다른 후궁들은 그 광경을 보며 시기와 질투의 눈길을 보내며, 더 이상 연극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태후 역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대극이 시작되기 전, 태황태후는 조용히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영비가 궁에 돌아온 일, 모두 알겠지만... 오늘 나는 옛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그 말에, 그녀는 태후를 바라보았다.“옛날, 영비가 병이 깊어 치료를 받지 못해 급히 장례를 치르다 죽음에 이를 뻔하였다.”“나는 영비가 누군가의 계략에 빠졌다고 의심하였고, 그 시체를 바꿔서 확인하였다.”“다행히 하늘의 은혜로 영비는 살아있었지… 다만 숨결이 너무 약해 죽었다 판단한 것이었어.”모든 후궁들은 놀라긴 했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래서 ‘시체는 최소한 3일을 두고 확인한다’는 규칙이 생긴 것이었다.태황태후는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어의에게 진찰을 받았을 때, 비록 살아있긴 했으나, 숨이 약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네. 그래서 나는 그때 의심했던 것이었어. 궁 안에 영비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숨기고, 영비를 옥양산에 있는 절로 보내 회복될 때까지 지내게 했던 것이었어.”모두 서로를 보며 눈치를 챘다.태황태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몇 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황제가 영비를 너무 아끼고 있었으니, 그런 사실을 바로 황제에게 알릴 수 있었을 텐데...하지만 궁 안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위에 있는 이가 하는 말에 따라, 그저 따라 말할 뿐이었다.그래서 모두 영비의 귀궁을 축하하였다.태후는 속으로 마음이 불편했다.태황태후가 말한 ‘영비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6화

    영비는 서왕에게 목을 졸렸지만, 여전히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비록 전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하신다 해도, 저는 여전히 전하를 용서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폐하께 전하께서 저를 궁에서 데리고 나갔고, 이렇게 오랜 세월 저를 가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이지 않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전하는 저를 정말로 해칠 수 없으십니다.”결국 서왕은 손을 풀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모용란, 너는 후회하게 될 것이야.”영비는 여전히 여린 모습을 보였다.“그 말은 제가 전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입니다.”“저희는 모두 폐하를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까?”“어떤 수단을 쓰느냐는 그저 저희의 선택일 뿐입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서왕의 앞에 다가가 그의 허리띠에서 옥패를 살짝 빼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기억하십니까? 저희 셋은 서로를 지키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로 했지 않습니까.”서왕은 갑자기 기분 나쁜 한기를 느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모용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야.”그는 단호히 말을 마친 후, 거침없이 돌담을 빠져나갔다.영비는 어두운 바위 속에 혼자 남아, 서왕의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그녀는 소리 없이 속삭였다.“나는 널 용서했어, 정말로.”…자녕궁.영비가 궁에 돌아온 이후, 태후는 한 번도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영비가 궁으로 돌아온 그날, 태후에게 와서는 여러 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그중에는 과거의 행동을 용서할 것이며, 황제가 태후에게 처벌을 내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태후는 영비의 말 속에서, 언젠가 복수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태후마마, 약을 드셔야 하옵니다. 어의께서 말씀하시길, 약을 드시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으실 거라 하였사옵니다.”태후는 깊은 갈색 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약을 밀쳐내며 말했다.“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5화

    검은 옷을 입은 자는 감옥에 갇혀 철저히 감시를 받고 있었다.혀를 깨물어 자결하거나 독을 먹어 목숨을 끊을까 염려해, 그의 입에는 철제 입막이가 씌워져 있었다.봉구안이 감옥에 들어서자, 검은 옷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마치 웃고 있는 듯 보였다.입막이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가면이 벗겨진 그의 얼굴이 봉구안의 눈에 들어왔다.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두 눈은 끝이 위로 치켜올라가 날카롭고 사납게 보였다.봉구안은 머릿속으로 무수히 그려보았던 원수의 얼굴을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그녀는 옥졸에게 명령했다.“그 입막이를 벗겨라.”쇠사슬이 풀리자, 검은 옷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소장군, 요즘은 평안한가?”그는 마치 죄인이 아닌 듯,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듯 가벼운 어조였다.감옥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봉구안은 서두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단회욱은 대체 어떻게 죽였지?”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그 속에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검은 옷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이미 알고 있지 않소? 그는 그대에게 날아든 천수지독을 대신 막아내고, 독이 퍼져 죽었소.”봉구안의 눈빛은 점점 살기가 어려워졌다.“왜 그가 내 목숨으로 5년을 바꾸었다고 말한 거지?”검은 옷은 일부러 기억을 더듬는 척하며 눈을 위로 굴렸다.그리고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그런 일이 있었나? 대체 어디서 들은 이야기요?”봉구안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그의 얼굴을 냉혹하게 내려다보며 단호히 외쳤다.“당장 말하거라!”검은 옷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태연히 답했다.“북대영의 전신의 손에 죽는다면, 영광일 뿐이오.”그 말을 끝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봉구안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네가 죽음을 원한다면, 내가 네 바람을 절대 들어줄 리 없다.”검은 옷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가 천옥이란 걸 알고 있소. 심문이든 고문이든, 하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484화

    궁중에는 영비와 비슷한 모습의 여인들이 많았다.이 순간, 소욱은 몹시 혼란스러워 보였다.봉구안은 그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다.다른 비빈들에게는 늘 냉담했던 그의 눈에, 눈앞의 여인을 향한 복잡한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영비…”소욱의 미간에는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그 순간, 그 여인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곧장 그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폐하, 소첩입니다. 소첩은 죽지 않았사옵니다. 소첩이 돌아왔나이다!”옆에 있던 녕비는 이를 보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반면, 현비는 품위 있게 말을 보탰다.“폐하께서 대승을 거두셨고, 영비마마께서도 돌아오셨으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소욱은 어색한 듯 품에 안긴 여인을 살짝 밀쳐내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곁에 서 있는 황후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영비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황후를 바라보며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의식한 듯했다.“황후마마.”봉구안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대꾸했다.“예를 생략하거라.”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본디 불가능한 일이었다.이로 보아 영비의 죽음에는 분명 감춰진 진실이 있는 듯했다.하지만, 봉구안에게는 이 모든 것이 무관한 일이었다.영비보다 그녀가 더 마음에 두고 있는 이는 바로 그 검은 옷을 입은 독인이었다.그녀는 반드시 단회욱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영화궁.봉구안이 돌아오자마자, 최 상궁은 급히 그녀를 따라와 영비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마마, 오늘 영비마마를 보셨사옵니까?”“정말 놀라운 일이 아니겠사옵니까!”“며칠 전부터 영비마마의 소식으로 궁중이 온통 뒤집혔다 하옵니다.”“듣자 하니, 그녀께서 과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태황태후마마의 비밀스러운 보살핌을 받아왔고, 이제야 완쾌되어 돌아오셨다 하옵니다….”봉구안은 마음에 짙은 불쾌함이 스쳤다.“물러가라.”연상은 그녀의 심중을 눈치챘으나, 감히 더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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