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인이 난감한 기색으로 말했다.“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그 층에 다른 손님들도 있고 다른 분들이 사생활 침해라고 문제 삼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요. 상부에 한번 요청은 드려보겠습니다.”“그건 지배인님이 알아서 하세요. 다만 제가 언제든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는 것만 명심해요. 어쨌든 저는 스토킹으로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형사들이 수사에 착수하면 당연히 CCTV를 조사하려 하겠죠?”지배인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건 없잖아요. 그리고 미행도 고객님 추측일 뿐이지 증거도 없고요. 경찰에 신고해도 사건 접수가 힘들 수 있어요.”“그래요? 하지만 어제 그 시간에 19층에 투숙 중이신 연 대표님이 17층에 오셨다가 스토커로 오해 받고 하마터면 피해를 당할 뻔했는데 이래도 상관 없나요?”연재준 이름이 나오자 지배인의 표정이 바뀌더니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눈짓했다.직원이 다가와서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 하자, 지배인은 유월영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지배인은 노현재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재준이까지 거기 엮였단 말이지?”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드린 거지요. 영상을 보여줘야 할까요?”“그 여자 이름이 뭐야?”“유씨 성을 가진 손님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가서 성함을 물어볼까요?”곧이어 남자의 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유씨? 유월영? 그 여자였네.”지배인은 갑자기 미묘하게 바뀐 그의 말투에 고개를 갸웃했다.“그 여자라면 보여줘도 돼.”“알겠습니다.”통화를 마친 노현재는 기분 좋게 노천 수영장에 뛰어들어 신나게 수영을 즐겼다.한편, 로비로 돌아간 지배인은 유월영에게 소식을 전했다.“저희 대표님께 여쭤봤는데 손님의 요구는 무조건 들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랑 함께 보안실로 가시죠.”유월영은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지배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현재가 대답했다.“아직.”“그럼 그 인터넷전화 위치는 추적해 봤어?”“그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다는 얘기에 연재준이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CCTV 영상 쳐다보고 있을 시간에 조사를 했으면 벌써 끝났겠다.”수화기 너머로 노현재의 억울한 고함소리가 들려왔지만 연재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유월영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언니, 무슨 일이야?”“월영아, 지금 시간 괜찮아?”그래도 큰언니의 목소리가 편안해 보여서 그녀는 한시름을 놓았다.“시간 괜찮아. 무슨 일이야?”“엄마가 너 줄 목도리 다 완성하셨어. 모자도 만들어 주신다고 굳이 지금 너한테 좋아하는 색상 물어보라느니 거야.”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엄마는 옆에 계시지?”“응. 엄마 바꿔줄게. 둘이 얘기해. 우리 엄마 요즘 따라 성격이 급해지셨어. 저녁 때 물어본다니까 굳이 지금 물어보라잖아.”큰언니는 투덜거리며 엄마를 바꿔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간이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는데 컨디션 괜찮을 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그러지.”유월영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쓰렸다.“엄마.”이영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월영아.”“엄마, 얘기해. 듣고 있어.”“목도리 완성했어. 모자도 떠주고 싶은데 넌 어떤 색상이 좋아?”“다 좋아. 목도리랑 같은 색상이면 돼.”유월영이 말했다.“엄마, 앞으로 시간은 많아. 급할 거 없어. 뜨개질한다고 밤 새고 그러면 안 돼.”“아니야. 오후에 좀 하고 지금은 쉬고 있어. 모자 하나 뜨는 건 빨라.”이영화가 말했다.“이웃집 혜민이 아빠가 올해 메밀 수확이 괜찮다고 메밀가루를 보내왔더라고. 그거로 나중에 냉면 만들어서 먹자.”여름에 먹는 냉면을 겨울에 얘기하시는 걸 보면 엄마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유월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좋아. 냉면탕은 좀 달게 해줘. 나 신맛보다는
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지욱이 여기 특색 메뉴랍시고 매운 것만 시켰던데 그 상태로 매운 게 입에 들어가겠어?”유월영은 뭔 상관이냐는 듯이 눈을 매섭게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연재준은 그러거나 말거나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다.“10분 줄 테니까 간이 약하고 담백한 음식 8번 방으로 좀 올려줘.”유월영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갑작스러운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참 기분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어제 그렇게 다투고 이제 와서 아파한다고 음식을 챙겨주는 꼴이라니.연재준은 싸늘하게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그렇게 놀랄 거 없어. 먹으면서 내 질문에나 대답해.”‘목적이 있었구나.’유월영은 어차피 피할 수도 없는 거 도망가기를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연재준은 메뉴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유산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지겨운 질문에 유월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안 믿는다면서요?”“내 질문에만 대답해.”강압적인 태도에 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애매모호한 말투로 말했다.“납치당했어요.”연재준이 인상을 확 구겼다.“뭐라고?”“납치범들이 돈을 요구하길래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대표님은 제 전화를 끊어버렸고요. 그래서 화가 난 녀석들이 저를 차들이 오가는 길바닥에 떠밀었어요. 그래서 사고를 당했고요.”잠자코 듣고 있던 연재준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 없어. 난 네 전화 끊은 적이 없거든.”유월영은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대표님한테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잖아요.”“전화를 끊은 적 없으니까 하는 소리야.”연재준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유월영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가시 돋친 말에 연재준이 똥 씹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유월영, 지금 나 놀리는 거지?”그는 그녀의 말을 믿지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유월영이 패드로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소은혜가 뒤에서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말했다.“여기 수치가 좀 틀린 것 같아요.”유월영은 그 말을 진짜로 믿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그래요? 어디가 문제 있어요?”소은혜는 그 기회를 틈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제 연 대표님 귀뺨 친 거 월영 씨가 했죠?”유월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자 소은혜는 더 소리를 낮춰서 말했다.“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분에게 그런 짓을 한 거예요?”유월영은 그쪽이 먼저 술 마시고 진상을 부렸다고 쏘아주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았다.소은혜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주제를 알아야지.”유월영은 고개를 들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룻밤이 지나서 그런지 얼굴의 붓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검은색 정장에 늠름한 풍채를 풍기는 모습과 어젯밤 술 마시고 진상을 부리던 모습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시선을 느낀 연재준이 고개를 돌리자 유월영은 급히 시선을 패드로 돌렸다.방대한 사업이었기에 각자 맡은 바 업무가 막중했다.유월영은 검측과 데이터 기록을 맡고 처음 프로젝트를 가동할 때 정부의 핵심 인력인 설 의원을 만났다.그 외에는 전문가의 영역이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연재준의 일정에 동행하지 않았다.밤이 되어 호텔로 돌아온 유월영은 데이터를 정리해서 연구팀 단톡방에 전송했다.신연우에게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문자가 왔고 유월영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실험실 상황을 물었다.“화재 때문에 대량의 데이터가 유실되었어요. 지금은 복구 중이고요.”유월영은 이번 일의 주모자인 연재준을 생각하면 짜증이 치밀었다.신연우가 물었다.“연 대표가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죠?”유월영은 전에 연재준이 했던 말이 떠올라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신 교수님, 혹시 약혼했어요?”만약 연재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는 건 자제하는 게 좋았다.신연우는 한참을 답이 없다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물었다.“약혼이요?
유월영은 다급히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뜻이 아니라….”“안 들을래요.”신연우가 억지를 부렸다.“어쨌든 월영 씨가 날 조금은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할래요. 다른 일 없으면 실험실 일 처리하고 영안에 내려가서 다시 얘기해요.”억지스러운 그의 발언에 유월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쉬어요. 이만 끊을게요.”그 말을 끝으로 신연우는 정말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베란다로 가서 화분에 물을 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갑자기 며칠 전 강의실에서 남학생들이 싸우던 대화가 떠올랐다.“주영아, 너 어떻게 친구 여자친구를 빼앗을 수 있어?”신연우는 쓴웃음을 지었다.‘너 계속 질질 끌면 정말 내가 빼앗을지도 몰라.’다음 날 아침, 유월영은 신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젯밤 일 때문에 따지려고 아침부터 전화한 거예요?”유월영이 말이 없자 신연우가 속상한 듯이 말했다.“정말 그런 거라면 나 너무 서운한데요?”유월영은 다급히 말했다.“그게 아니에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그런데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지?’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조금은 나를 신경 쓴다는 거죠?”연애 경험이 없는 유월영은 그제야 자신이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겉으로는 진중해 보이는 신연우는 사실 상 이런 쪽으로는 고수가 따로 없었다.유월영은 대놓고 화제를 돌렸다.“급한 일이에요.”신연우도 장난을 멈추고 진지 모드로 돌아왔다.“알았어요. 무슨 일인데요?”“어제 일하다가 직원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설 의원님이 신주시로 가신대요.”“알았어요.”“신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설 의원님 한번 만나보라고 하세요.”“그게 다예요?”두 사람은 이 일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화를 끊기 전, 신연우가 말했다.“이 일이 성공하면 형한테 부탁해서 월영 씨한테 제대로 감사를 표하라고 할게요.”유월영은 기분
상대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사내였다.유월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괜찮…아요?”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같았다.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괜찮으세요?”“저는 괜찮아요. 어디 다친데 없어요?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정신을 차린 유월영이 인부에게 물었다.철근이 무너지며 그는 어깨를 다쳤기에 그는 곧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로 향했다.사람들이 달려와서 유월영의 안부를 물었다.연재준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철근이 무너진 순간 뛰어가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그때 보트 공장에서 있었던 사고가 떠올랐다.그때 그는 유월영이 그를 구해주려고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백유진에게 달려갔다.그때는 딱히 문제삼지 않았는데 지금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니 그녀는 그 사고에서 충분히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구하려다가 다친 것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도 먼저 소은혜를 위기의 현장에서 밀어냈다.이번에는 인부가 달려들어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때 당시 유월영은 다리 부상 때문에 한 달을 바깥 출입을 하지 못했다.연재준은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치솟았지만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멍청하긴.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자기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소은혜에게 다가갔다. 소은혜는 하이힐 때문에 발목이 삐어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연재준은 다가가서 소은혜를 안아올렸다.고개를 돌린 유월영은 소은혜를 안고 현장을 떠나는 연재준의 모습을 발견했다.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연 대표님이 소 팀장한테 유난히 신경 써주는 것 같지 않아요?”“처음부터 그랬어요. 다친 사람이 소 팀장님 말고도 더 있는데 소 팀장님만 챙기는 것 좀 봐요.”이번 사고로 오늘 일정은 하루 연기되었다.유월영은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빨리 데이터 기록을 마치면 신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유월영은 카메라를 켜고 안에 있는 사진첩을 확인했다. 수백 장의 사진 속에 전부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뒤로가기를 했더니 보트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사진도 찍혀 있었다.유월영은 그제야 왜 카메라가 눈에 익었는지 알아채고 남자에게 말했다.“몇 달 전에 선박 공장에서 나한테 카메라를 빌려준 사람도 너지?”처음 백유진이 그녀에게 선박 추락 사고를 뒤집어씌웠던 때였다.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녀는 카메라를 공장장에게 맡겨서 원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나중에 연락해 봤더니 이미 카메라는 원주인에게 돌아갔다고 하여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그런데 그는 블로거로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일찍 전부터 그녀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유월영이 카메라를 흔들며 그에게 물었다.“너 대체 누구야?”남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싸며 대답을 아꼈다.“오늘 공사 현장에서 날 구해준 사람도 너지? 나 그 눈매 기억해. 대체 누구 사주를 받고 날 미행하고 다니는 거야?”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시우 오빠? 현시우?”그 말에 남자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반응으로부터 유월영은 자신의 추측이 정확했다는 것을 직감했다.입안이 쓰고 착잡한 감정이 목구멍을 통해 일렁였다.“그날 커피숍 입구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었어. 귀국한 거야? 돌아왔으면서 왜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대?”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만나러 오지 않을 거면 왜 사람을 시켜서 날 미행하게 한 거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대?”“보러 오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왜 궁금하대?”울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카메라를 힘껏 밖으로 던졌다.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유월영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현시우 그 사람한테 가서 배상해 달라고 해.”그 말을 끝으로 유월영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남자는 바닥에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난 카메라
병원에서 소은혜와 얘기를 나누던 연재준은 짤막하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끊어버렸다.소은혜는 발신자가 백은혜인 것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오빠는 정말 나쁜 남자인 것 같아요.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를 보내 유월영 씨 상태를 살피고 백유진 씨랑 문자를 하다니요.”연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혼자 병원에 있든가.”소은혜는 다급히 그의 옷깃을 잡았다.“난 나쁜 남자가 더 좋아요. 매력적이잖아요.”연재준이 짜증스럽게 말했다.“별것도 아닌 일로 왜 굳이 병실에서 밍기적거리는 거야?”소은혜는 조용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기다리는 전화가 여태 조용하잖아요. 여기 있다가 그 사람이 전화오면 오빠도 나 도와줘야 한단 말이에요.”연재준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참 가지가지 하네.”“사랑에 빠진 여자는 다 그래요. 다치거나 아플 때 사랑하는 남자한테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거죠.”연재준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유산하고 홀로 병원에서 3일이나 입원해 있었을 유월영을 떠올렸다.그때 그녀는 그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에게 애정이 있었더라면 왜 그 일을 비밀로 했을까? 그때 그의 신변에는 백유진이 나타나기 전이었고 둘 사이가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수도 없었다.소은혜가 한술 더 떠서 이야기했다.“여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떠나기로 했을 때예요.”연재준이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갈게.”어제 사고 직후로 소은혜가 병원에 실려온지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쪽에서 소식을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 연락이 없다는 건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소은혜는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퇴원할래요. 그러니까 오빠가 안아줘요.”오늘은 일이 없었기에 유월영은 여가를 즐기기로 했다. 서지욱의 비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