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다급히 해명했다.“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뜻이 아니라….”“안 들을래요.”신연우가 억지를 부렸다.“어쨌든 월영 씨가 날 조금은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할래요. 다른 일 없으면 실험실 일 처리하고 영안에 내려가서 다시 얘기해요.”억지스러운 그의 발언에 유월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시간도 늦었으니 어서 쉬어요. 이만 끊을게요.”그 말을 끝으로 신연우는 정말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는 베란다로 가서 화분에 물을 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갑자기 며칠 전 강의실에서 남학생들이 싸우던 대화가 떠올랐다.“주영아, 너 어떻게 친구 여자친구를 빼앗을 수 있어?”신연우는 쓴웃음을 지었다.‘너 계속 질질 끌면 정말 내가 빼앗을지도 몰라.’다음 날 아침, 유월영은 신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젯밤 일 때문에 따지려고 아침부터 전화한 거예요?”유월영이 말이 없자 신연우가 속상한 듯이 말했다.“정말 그런 거라면 나 너무 서운한데요?”유월영은 다급히 말했다.“그게 아니에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다른 일 때문에….”‘그런데 내가 왜 이걸 설명하고 있지?’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러니까 조금은 나를 신경 쓴다는 거죠?”연애 경험이 없는 유월영은 그제야 자신이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겉으로는 진중해 보이는 신연우는 사실 상 이런 쪽으로는 고수가 따로 없었다.유월영은 대놓고 화제를 돌렸다.“급한 일이에요.”신연우도 장난을 멈추고 진지 모드로 돌아왔다.“알았어요. 무슨 일인데요?”“어제 일하다가 직원들이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설 의원님이 신주시로 가신대요.”“알았어요.”“신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설 의원님 한번 만나보라고 하세요.”“그게 다예요?”두 사람은 이 일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화를 끊기 전, 신연우가 말했다.“이 일이 성공하면 형한테 부탁해서 월영 씨한테 제대로 감사를 표하라고 할게요.”유월영은 기분
상대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사내였다.유월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괜찮…아요?”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같았다.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괜찮으세요?”“저는 괜찮아요. 어디 다친데 없어요?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정신을 차린 유월영이 인부에게 물었다.철근이 무너지며 그는 어깨를 다쳤기에 그는 곧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로 향했다.사람들이 달려와서 유월영의 안부를 물었다.연재준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철근이 무너진 순간 뛰어가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그때 보트 공장에서 있었던 사고가 떠올랐다.그때 그는 유월영이 그를 구해주려고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백유진에게 달려갔다.그때는 딱히 문제삼지 않았는데 지금 방관자의 입장에서 보니 그녀는 그 사고에서 충분히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구하려다가 다친 것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는데도 먼저 소은혜를 위기의 현장에서 밀어냈다.이번에는 인부가 달려들어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때 당시 유월영은 다리 부상 때문에 한 달을 바깥 출입을 하지 못했다.연재준은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치솟았지만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멍청하긴. 다른 사람을 구하다가 자기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소은혜에게 다가갔다. 소은혜는 하이힐 때문에 발목이 삐어서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연재준은 다가가서 소은혜를 안아올렸다.고개를 돌린 유월영은 소은혜를 안고 현장을 떠나는 연재준의 모습을 발견했다.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연 대표님이 소 팀장한테 유난히 신경 써주는 것 같지 않아요?”“처음부터 그랬어요. 다친 사람이 소 팀장님 말고도 더 있는데 소 팀장님만 챙기는 것 좀 봐요.”이번 사고로 오늘 일정은 하루 연기되었다.유월영은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빨리 데이터 기록을 마치면 신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유월영은 카메라를 켜고 안에 있는 사진첩을 확인했다. 수백 장의 사진 속에 전부 그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리고 뒤로가기를 했더니 보트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사진도 찍혀 있었다.유월영은 그제야 왜 카메라가 눈에 익었는지 알아채고 남자에게 말했다.“몇 달 전에 선박 공장에서 나한테 카메라를 빌려준 사람도 너지?”처음 백유진이 그녀에게 선박 추락 사고를 뒤집어씌웠던 때였다.사건이 마무리된 후 그녀는 카메라를 공장장에게 맡겨서 원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나중에 연락해 봤더니 이미 카메라는 원주인에게 돌아갔다고 하여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그런데 그는 블로거로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일찍 전부터 그녀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유월영이 카메라를 흔들며 그에게 물었다.“너 대체 누구야?”남자는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감싸며 대답을 아꼈다.“오늘 공사 현장에서 날 구해준 사람도 너지? 나 그 눈매 기억해. 대체 누구 사주를 받고 날 미행하고 다니는 거야?”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시우 오빠? 현시우?”그 말에 남자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 반응으로부터 유월영은 자신의 추측이 정확했다는 것을 직감했다.입안이 쓰고 착잡한 감정이 목구멍을 통해 일렁였다.“그날 커피숍 입구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었어. 귀국한 거야? 돌아왔으면서 왜 바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대?”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만나러 오지 않을 거면 왜 사람을 시켜서 날 미행하게 한 거야?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대?”“보러 오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왜 궁금하대?”울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카메라를 힘껏 밖으로 던졌다.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유월영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현시우 그 사람한테 가서 배상해 달라고 해.”그 말을 끝으로 유월영은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남자는 바닥에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난 카메라
병원에서 소은혜와 얘기를 나누던 연재준은 짤막하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문자를 보내자마자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끊어버렸다.소은혜는 발신자가 백은혜인 것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오빠는 정말 나쁜 남자인 것 같아요.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를 보내 유월영 씨 상태를 살피고 백유진 씨랑 문자를 하다니요.”연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혼자 병원에 있든가.”소은혜는 다급히 그의 옷깃을 잡았다.“난 나쁜 남자가 더 좋아요. 매력적이잖아요.”연재준이 짜증스럽게 말했다.“별것도 아닌 일로 왜 굳이 병실에서 밍기적거리는 거야?”소은혜는 조용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기다리는 전화가 여태 조용하잖아요. 여기 있다가 그 사람이 전화오면 오빠도 나 도와줘야 한단 말이에요.”연재준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참 가지가지 하네.”“사랑에 빠진 여자는 다 그래요. 다치거나 아플 때 사랑하는 남자한테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거죠.”연재준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유산하고 홀로 병원에서 3일이나 입원해 있었을 유월영을 떠올렸다.그때 그녀는 그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에게 애정이 있었더라면 왜 그 일을 비밀로 했을까? 그때 그의 신변에는 백유진이 나타나기 전이었고 둘 사이가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수도 없었다.소은혜가 한술 더 떠서 이야기했다.“여자가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떠나기로 했을 때예요.”연재준이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갈게.”어제 사고 직후로 소은혜가 병원에 실려온지도 하루가 지나갔다. 그쪽에서 소식을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 연락이 없다는 건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였다.소은혜는 더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을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퇴원할래요. 그러니까 오빠가 안아줘요.”오늘은 일이 없었기에 유월영은 여가를 즐기기로 했다. 서지욱의 비서와 함께
유월영은 우울한 기분을 안고 호텔 로비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때, 격정적인 피아노소리가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고개를 돌려 보니 로비 중앙에 비치된 피아노 앞에서 누군가가 격정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소리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연주자의 주변을 에워싸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유월영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갔다.그가 연주하는 곡은 인셉션 OST 중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유월영도 무척 좋아하는 곡이었다.중학교 때 어느 날 현시우를 보러 그의 학교에 찾아갔다가 음악교실을 지나며 우연히 들은 곡이었다.그때는 현시우한테 정신이 팔려서 연주자가 누군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음악교실을 지나쳤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 그 곡을 다시 들으니 연주자의 얼굴이 궁금해졌다.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피아노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연주 중인 사람은 다름 아닌 연재준이었다.그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람들이 다 보는 공간에서 혼신의 힘을 담아 연주하고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건반을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하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본 유월영은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연주자가 그라면 아무리 좋은 멜로디라도 감상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를 발견한 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이리 와, 유월영.”유월영은 기분이 나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연재준이 말했다.“일 때문에 불렀어.”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자리였기에 유월영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네, 대표님.”유월영은 연주를 멈추고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구경하던 사람들도 연주가 멈추자 뿔뿔이 흩어졌다.연재준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설 의원이 그제 신주로 가자마자 신 회장이 식사 요청을 보냈다더라고? 둘이 식사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SK의 지분이 갑자기 20%에서 35%로 늘어서 지금은 해운이랑 동등한 위치에 있게 됐어.”유월영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그랬군요.”“설 의원의 일정은 항상
잠시 뜸을 들이던 유월영이 물었다.“예를 들자면요?”그는 여전히 건반을 두드리며 느긋하게 말했다.“수석비서 자리, 여전히 네 거야.”유월영이 다시 물었다.“또 있나요?”연재준이 답했다.“연봉도 올려줄 거고 연말 보너스도 두둑하게 나갈 거야.”“그리고요?”연재준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가 기억하는 유월영은 욕심이 지나친 사람은 아니었다.그는 건반을 두드리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아직 자차 없지? 출퇴근하기 불편했을 거야.”유월영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의 사람으로 일해온 3년, 집이나 차는 고사하고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선물한 적 없던 그였다.그녀가 계속해서 물었다.“그리고 또요?”“네 엄마 수술비, 그거 내가 책임질게.”연재준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부드럽게 말했다.“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엄마의 수술비는 그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는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유월영이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술을 마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죠? 그 전에 대표님이 저한테 어떻게 했는데 왜 제가 그곳에 돌아갈 거라고 자신하나요?”연재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선박 파티 때, 저를 팔아서 프로젝트를 입찰한 것도 대표님이죠? 제가 새 직장을 찾는 걸 방해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저를 비참하게 만드셨어요. 그런데 돌아오라는 한 마디에 제가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가야 하나요? 대표님은 대체 저를 뭐로 생각하나요?”처음에는 담담히 응대하고 싶었다.하지만 산책하다가 현시우를 만난 탓인지, 2개월 사이에 쌓은 감정이 한 순간에 폭발해 버렸다.유월영은 냉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대표님은 저를 집에 키우는 애완견 정도로 생각하셨죠. 한 번도 저를 인간 취급을 안 해주셨는데 제가 왜 거기로 돌아가야 하나요?”한참이나 그녀를 노려보던 연재준은 결국 피아노 건반으로 시선을 돌리고 연주를 마무리했다.“그냥 해본 말이야. 오기 싫으면 어쩔 수 없는
전화를 끊은 소은혜는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옆방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녀는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연재준은 소파에 앉아 독한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설마 술친구나 해달라고 저 부른 거예요? 그럴 줄 알았으면 화장 안 하고 오는 건데. 에이, 아깝게. 로맨틱한 데이트 기대하고 열심히 화장했더니 이게 다 뭐예요.”연재준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잔에 술을 따랐다.소은혜와 그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조금 복잡했다.그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며 그에게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요? 유 비서가 또 대표님 화나게 했어요? 안 그래도 뭐 좀 사러 내려갔다가 둘이 하는 대화를 들었어요.”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러자 소은혜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태연하게 말했다.“유 비서는 아니겠죠. 그 여자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대표님 기분에 영향을 주겠어요? 백유진 씨랑 뭔가 문제가 생겼나요?”술 기운 때문인지, 연재준은 차갑게 비웃음을 터뜨렸다.“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백유진이지.”소은혜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예전에 그가 백유진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하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항상 연애가 처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백유진이 남자랑 키스하는 사진을 봐서 자존심이 상한 게 분명했다.연락처를 차단하고 출장을 나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소은혜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느긋하게 말했다.“하지만 지금 백유진 씨랑 헤어지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연 회장님이겠군요. 어쩌면 이게 기회다 싶어서 대표님과 유 비서의 재결합을 추진하실지도 몰라요.”연재준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물론 소은혜는 유월영이 다시 그에게 돌아올 리 없다고 확신했다.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대표님도 저한테 큰 도움을 주셨으니까 보답할 겸, 제가 도와드릴게요.”말을 마친 그는 호텔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다.“여기 1901호실인
유월영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일정은 어떡한대요? 나 혼자 가요? 아니면 여기서 계속 기다려요?”이 비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알아서 하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월영은 또 소은혜에게 전화를 걸며 이번에도 안 받으면 혼자 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그런데 그때, 뒤에서 소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 씨, 미안해요. 내가 많이 늦었죠?”그녀는 유월영의 앞에 다가가더니 웃으며 말했다.“며칠 병원에 있다 보니 약간 절제가 안 됐나 봐요.”유월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출발해요. 오늘 할 일이 많아요.”업무량이 많고 소은혜가 30분이나 지각하면서 시간이 급박했기에 유월영은 차에 오르자마자 노트북을 펼쳤다.소은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허리를 기대고는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소 팀장님, 제가 설명드린 거 다 들으셨죠?”“그럼요. 몸이 피곤해서 그렇지 귀는 열려 있다고요.”소은혜가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만 찢어지는 것보다는 같이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이 힘을 합쳐서 하나씩 공략하는 게 효율적인 것 같네요.”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담당자와 소통하는 건 전부 유월영의 몫이 되었다.소은혜는 방관자처럼 편히 앉아서 대화에 끼지도 않고 듣기만 했다.‘하, 어젯밤 무리했으니 피곤해서 정신이 없겠지.’유월영은 이런 생각을 하며 차라리 혼자 오는 게 나았겠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한참 농땡이나 부리던 소은혜가 담당자에게 갑자기 물었다.“근처에 약국 있어요? 근육통이 심해서 파스 좀 사야겠네요.”유월영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담당자도 난감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다가 약국이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소은혜는 그대로 업무를 유월영에게 맡긴 채, 가버렸다.담당자가 유월영에게 물었다.“저분 진짜 경영사업팀 팀장 맞아요?”유월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네.”담당자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