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바라본 진서준은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온몸의 피가 아래로 뭉치기 시작했다.너무도 이상했다.허사연과 단둘이 있을 때도 진서준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하지만 낯선 여자를 보고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진서준이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고 문 앞의 여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내 여인은 가볍게 뛰어올라 3미터가 넘는 담장을 뛰어넘어 마당으로 들어섰다.그녀는 진서준에게 다가가 섬섬옥수로 진서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저 예뻐요?”진서준은 꼭두각시처럼 어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뻐요!”“나랑 야한 짓 하고 싶지 않아요?”여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하지만 그녀의 눈 밑에는 보통 사람이 알아채기 힘든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네...”진서준이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손은 여자의 가슴으로 향했다.여자의 안색이 변하며 싫증 나는 표정으로 진서준의 손길을 피하며 비수를 꺼내 진서준의 가슴을 찔렀다.챙!비수가 진서준의 가슴을 찌르자 뜻밖에도 맑은소리가 났다.금속과 금속이 부딪칠 때 나는 소리 같았다.표정이 돌변한 여인이 섬나라 말로 욕설을 퍼부었다.“횡련 대종사? 빌어먹을 남조인! 감히 나를 속여?”진서준은 여자한테 비수로 찔린 후, 순간 정신을 차리고 여자를 경계했다.“누구냐!”‘이상하다. 아까는 왜 그랬지? 왜 통제 불능처럼 변했을까?’진서준은 눈앞의 여자에게 홀린 것만 기억났다.다른 일은 완전히 잊은 채였다.“자기야, 당신 아내잖아.”여인은 재빨리 비수를 뒤로 감추고 다시 진서준의 혼을 빼놓으려고 했다.그때 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나왔다.그들은 진서준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진서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걱정되어 나온 것이었다.나오면서 마침 여자가 한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여자는 얇은 시스루 스커트 하나만 입었는데 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지금은 12월 말, 엄동설한이었다. 수련을 한 허사연도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껴입어야
매혹술로 진서준을 꼬시는 여인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혼자서 그렇게 많은 여자를 곁에 두다니 역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고 나쁘다.“저 이 여자 몰라요! 이 여자는 날 죽이러 온 거예요!”진서준은 서둘러 설명했다.“형부를 죽이러 왔다고요? 장난해요?”허윤진은 아무리 봐도 이 여자가 여우 같다고 생각했다.몸매도 좋고 허윤진보다 더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보기만 해도 허약한데 어떻게 진서준을 죽일 수 있겠는가.“여보, 날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죽인다고 하면 안 되잖아.”여자는 억울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진서준은 뒤로 물러서서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당신 도대체 누구야! 말 안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네 마누라 서현이잖아!”여자는 애교를 부리며 이어 말했다.“잊었구나. 그날 밤 우리 둘 다 술에 취해서 호텔로 갔었잖아.”“난 거절했었는데 네가 나중에 나랑 결혼한다고 해서 받아드렸는데...”그녀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이 여자 뭐지? 원래 이렇게 사람을 잘 꼬시는 건가?’어쩐지 진서준이 그렇게 쉽게 유혹에 빠지더라니.진서준은 누가 이 여자를 보내왔는지, 무슨 정체인지 알고 싶었다.그러자 진서준은 그녀의 말을 따라 이어 말했다.“아!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난 거 같기도 하고.”“그날 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었어.”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이 웃는 얼굴을 보고 여자는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퍼부었다.‘개자식. 이따가 기절시켜서 제일 먼저 네 눈을 뽑아버릴 거야!”“형부! 정말 이런 여자랑 만난 적이 있다고요?”허윤진은 화가 났다.딱 봐도 요염하고 노는 여자 같은데 벌써 다른 남자랑 했을지도 모른다.게다가 두 달 동안 진서준은 거의 허사연과 함께 있었다.아마 다른 남자에게 버림받아서 진서준에 온 것 같다.모르는 곳에서 어떻게 해도 상관없지만 절대 집에 데려오면 안 된다.“여보, 오늘 밤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윤진아, 진서준이랑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니?”허사연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진서준이 그렇게 쉽게 그 여자한테 홀릴 거 같아?”허사연이 이렇게 말하자 허윤진도 마음이 놓였다.방금 그 여자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극혐했다.마치 동성끼리 상극인 것 같았다.“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형부가 일부러 홀린 척하는 거야?”허윤진이 궁금해서 물었다.“아마 그럴 거야. 아까 네가 가려고 했을 때, 진서준이 아주 단호하게 가지 못하게 했잖아.”“그리고 그 여자가 진서준을 죽이러 왔을 거로 생각해.”하사연이 말했다.“뭐? 그럼 형부가 그 여자랑 같이 있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니야?”허윤진은 또 진서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진서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진 언니, 우리 오빠 믿어봐요. 괜찮을 거예요.”방금 서지은과 같이 있던 사람들도 진서준이 그 여자에게 홀리는 걸 보고 모두 허윤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모두 진서준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더없이 믿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절대 자기 여친을 두고 다른 여자한테 가는 사람이 아니다.“그럼 진서준이 돌아오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죠.”...진서준은 여자를 따라 별장을 떠나자마자 그녀에게 밀렸다.“나쁜 놈, 만지지 마!”여자는 진서준을 보며 큰소리로 꾸짖었다.“자기야, 아까는 나랑 같이 자자며.”진서준은 되려 질척였다.“경고하는데 여기 가만히 서 있어.”여자는 얼굴을 찌푸리고 눈에 매서움이 가득했다.진서준은 두 눈을 멍하니 뜨고 바보처럼 서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진서준이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걸 보고 여자는 만족스럽게 핸드폰을 꺼냈다.누군가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팀장님, 이놈은 횡련의 대종사입이다. 제 칼로는 이놈 살갗도 뚫지 못합니다!”여자는 섬나라의 언어로 통화했다.진서준은 대학생일 때 섬나라의 영화를 즐겨 봤었다.그래서 섬나라의 언어에 매우 익숙하고, 다만 잘 알아듣지 못한다.진서준은 섬나라 사람들이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진서준은 자신을 죽이러 온 사람이 이 여자뿐이 아닐 거로 추측했다.“나미, 방금 이놈이 횡련 대종사라고 했지?”중년 남자가 이가 나미를 보며 물었다.“맞아요. 아까 별장에서 제가 매혹술을 써서 비수로 가슴을 찔렀는데 찌르기는커녕 제 팔이 저렸어요.”이가 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녀는 일품 대종사여서 몸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건 동경의 횡련 대종사 외에 다른 보통 횡련 종사로는 막을 수 없다.이가 나미는 깜짝 놀랐다.섬나라에서 동갑내기 중 횡련 대종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횡련 대종사?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이가 겐은 허리에서 독을 바른 칼을 꺼냈다.그들은 도덕 따윈 신경 쓰지 않는 킬러여서 단도직입적으로 행동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을 죽일 수만 있다면 된다.“저번 팀장님처럼 혼자 칼을 핥지 마세요.”이가 나미가 한 마디 충고했다.전임 팀장이 자살로 사망했다.독이 든 칼을 꺼낸 뒤 스스로 한 입 핥고는 숨을 죽였다.이가 나미의 말을 듣고서야 이가 겐은 자신이 칼에 독을 발랐다는 것을 깨달았다.“나 그런 바보짓 안 하거든!”이가 겐은 기침을 하며 민망함을 감추었다.진서준은 섬나라 사람이 왜 한국어로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설마 진서준이 못 알아들을까 봐 그런가?이가 겐이 아직 1 미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멍해 있던 진서준이 갑자기 움직였다.진서준은 이가 겐과 이가 나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응도 하지 못하는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이가 겐은 진서준의 한 방에 바로 땅속에 1 미터 깊이까지 묻혀버렸다.상체만 노출되어 있어 움직이지도 못한다.“아!”이가 겐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냈다.순간 안색이 나빠지면서 지옥 불에 타는 듯했다.진서준은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손가락을 살짝 튕기는데 이가 겐의 목을 막았다.이가 겐은 더욱 괴로워했다.양쪽 다리 모두 뼈가 부러지고 뼈와 뼈 사이가 서로 끼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게다가 이제 소리도 내지 못한다.물에 빠져
그는 이가 가문 사람들에게 천재라고 불린다.얼굴은 좀 늙어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마흔여섯 살에 불과하다.또 이가 나미는 타고난 아첨하는 체질이기 때문에 수련 속도가 남들보다 훨씬 빠르다.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날 죽이러 오기 전에 내가 누군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어?”신원 조사는 킬러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사실 이가 나미는 평소에 조심성이 아주 강하다.매번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암살 대상자의 신원을 철저히 조사한다.이번에 경계를 늦추는 이유는 진서준이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다.서울시에 살고 있고, 실력과 가문 배경이 조금 대단했을 뿐이다.이런 사람은 섬나라에 두어도 손쉽게 볼 수 있다.그래서 이가 나미와 이가 겐 두 사람은 긴장의 끈을 놓았다.그러나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그냥 지방에 있는 작은 맹주잖아. 조사할 게 뭐가 있다고.”이가 나미가 말했다.“쯧쯧... 날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이 나에 대해서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구나.”진서준이 차갑게 웃었다.“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어. 나를 죽이라고 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면 괴롭지 않게 죽여줄게.”킬러, 심지어 해외에 있는 킬러이다. 진서준은 절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찾아내는 것이다.그 사람을 찾아 죽여야만 모든 게 끝난다.진서준도 머릿속으로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했다.“절대 안 알려줄 거야.”이가 나미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럼 너희 둘 얘기 좀 하자. 너희 섬나라 사람이지?”진서준이 이가 나미를 보며 물었다.이가 나미는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 아예 진서준의 말을 씹었다.진서준의 눈에 한기가 맴돌았다.순간, 이가 나미의 마음속에는 위기가 찾아왔다.그녀가 반응도 하지 못한 사이에 진서준이 손을 들어 뺨을 한 대 때렸다.짝!쟁쟁한 따귀 소리가 울렸다.이가 나미의 고운 얼굴에 새빨간 손자국이
진서준은 이번에 이가 나미를 때리지 않고 고개를 돌려 이가 겐을 향해 손을 댔다.이가 나미에게 동료가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지 먼저 보라고 했다.그리고 진서준이 그녀를 공격하려고 할 때, 이가 나미는 결국 마음이 괴로워서 참지 못할 것이다.그때 진서준이 뭘 알고 싶으면 이가 나미가 먼저 얘기를 꺼낼 것이다.진서준도 그렇게 호되게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이가 겐에게 침형을 체험하게 하려고 했다.몸에 수많은 혈 자리가 있는데, 그중 어떤 혈 자리를 찌르고 나면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괴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뼈를 칼로 긁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고통스럽다.이가 겐의 몸에 은침 다섯 개를 꽂히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목 전체가 굵어지고 이마의 핏줄, 목구멍의 혈관까지 모두 부풀어 올랐다.그리고 순간, 핏줄과 혈관이 모두 몸에서 빠져나올 것 같았다.가장 괴로운 건 이가 겐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것이다.혀를 깨물어 자살하고 싶을 정도이다.그러나 지금 혀를 깨물어 자살할 힘조차 없다.옆에 있던 이가 나미는 이 광경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정말 악마가 따로 없다.자신도 이따가 같은 형벌을 당할 생각을 하면서 다리에 힘이 다 풀렸다.“그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니 기회를 한 번 더 주겠어.”진서준은 이가 겐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가 날 죽이라고 보냈는지 말해! 내가 괴롭지 않게 한 번에 보내줄게.”이가 겐은 이 말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이가 겐 몸의 통증을 가라앉힌 후 그의 목을 풀었다.목이 풀린 이가 겐은 한참을 큰소리로 외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남... 남조의 박씨 가문이 돈을 줘서 왔어.”박씨 가문?진서준은 박만년이 찾은 사람인 줄 알았다.하지만, 두 사람을 보낸 사람은 박만년이 아닌 박시윤이다.박시윤은 지금 경성에 있어 진서준과 같은 수준 미달의 사람과 만날 시간이 없다.진서준은 또 이가 나미를 쳐다보더니 물었다.“박씨 가문 사람이야?”“응, 박씨 가문 맞아!”이가 나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가 가문의 내막을 진서준은 이미 알고 있다.섬나라에 이름을 날리는 가문이 총 세 개 뿐이다.이가, 미야모토, 오다 가문이 3대 가문이다.이 중 이가 가문은 닌자, 킬러를 주로 배양한다.미야모토 가문의 사람들은 모두 검도 고수이다.오다 가문은 주로 섬나라의 음양술을 수련하는데, 대한민국의 술법과 비슷하다.섬나라의 3대 가문 중에서도 지선급의 강자가 존재한다.그러나 실력을 통틀어서 보면 생각보다 강하지만은 않다.지선을 제외하면 서씨 집안과 대종사인 사람이 비슷하다.경성의 4대 가문과는 비교도 안 된다.이 외에 진서준의 관심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용의 안식 계획?”진서준은 혼자 중얼거렸다.이가 나미의 말에 의하면, 한 달 전에 몇몇 서양인들이 섬나라에 왔다고 한다.섬나라의 3대 가문을 모여 용의 안식 계획을 상의했다는 것이다.용의 안식 계획은 대한민국의 무도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이다.대한민국의 무도로 하여금 영원히 출세할 날이 없게 하려고 한다.“우리에게 연락했을 뿐만 아니라 남조, 유럽, 그리고 남북미에도 사람들을 보냈어!”“동남아 쪽에서도 사람이 올 거야!”“내년 4월이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이가 나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지금 사방이 적이다.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내년에 최대한 빨리 신농산에 오래 머물지 않고 나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은 혼자만으로 이번 재앙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사람이 많을수록 힘도 커지는 법이다.“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건 너희 가문이 꽤 대단한 집안일 텐데.”진서준은 이가 나미를 노려보며 말했다.“어... 난 이가 가문의 정통 후계자이고 가주의 손녀야.”“체질이 남과 좀 달라서 나를 좀 중요시했어.”이가 나미는 사실대로 말했다.“그럼 내가 너를 죽이면 너희 이가 가문이 나를 가만두지 않겠네, 그렇지?”진서준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이가 나미는 놀라서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그녀는 진서준
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그녀가 살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하지만 그녀가 타고난 체질이어서 자신의 수련에 확실히 유익하다는 것은 사실이다.진서준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설사 정말로 내공을 올릴 수 있다고 해도, 원칙을 생각해서라도 진서준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일단 두고 좀 볼게. 대신 용의 안식 계획에 대해 잘 알아봐 줘야 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살 수 있다는 말에 이가 나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주인님 안심하세요. 나미가 잘 알아봐 줄게요!”이가 나미는 이가 가문에서 꽤 높은 지위에 서 있다.서양인들이 다시 와서 내년 용의 안식 계획에 대해 알리면 이가 나미는 반드시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곧이어 진서준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영기가 이가 나미의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이가 나미는 그 영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좋았어. 이제 네가 죽는지 사는지는 나한테 달려있어.”“내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만 하고, 무도 재앙이 지나가면 널 풀려줄게.”진서준이 이가 나미에게 말했다.“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일편단심 주인님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이가 나미는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은 그녀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비주얼이면 비주얼, 몸매면 몸매, 이가 나미는 톱 중의 톱이다.게다가 타고난 체질이라서 허사연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이런 여자가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하면 성인 남자 중 구 할이 설레서 심장이 빨리 뛸 것이다.“주인님, 밤도 깊었는데 오늘 밤은 나미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많이 해보지 않아서 좀 서툰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이가 나미는 매혹적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만약 진서준이 충분한 정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이가 나미에게 홀려 쓰러졌을 것이다.“필요 없어. 먼저 돌아가라. 나도 집에 돌아가 봐야 해.”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이가 나미를 쳐다보지 않았다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