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말을 다 믿지 않았다.그녀가 살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인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하지만 그녀가 타고난 체질이어서 자신의 수련에 확실히 유익하다는 것은 사실이다.진서준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설사 정말로 내공을 올릴 수 있다고 해도, 원칙을 생각해서라도 진서준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일단 두고 좀 볼게. 대신 용의 안식 계획에 대해 잘 알아봐 줘야 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살 수 있다는 말에 이가 나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주인님 안심하세요. 나미가 잘 알아봐 줄게요!”이가 나미는 이가 가문에서 꽤 높은 지위에 서 있다.서양인들이 다시 와서 내년 용의 안식 계획에 대해 알리면 이가 나미는 반드시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곧이어 진서준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영기가 이가 나미의 단전 안으로 들어갔다.이가 나미는 그 영기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좋았어. 이제 네가 죽는지 사는지는 나한테 달려있어.”“내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만 하고, 무도 재앙이 지나가면 널 풀려줄게.”진서준이 이가 나미에게 말했다.“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일편단심 주인님만을 위해 일하겠습니다.”이가 나미는 경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은 그녀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비주얼이면 비주얼, 몸매면 몸매, 이가 나미는 톱 중의 톱이다.게다가 타고난 체질이라서 허사연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이런 여자가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하면 성인 남자 중 구 할이 설레서 심장이 빨리 뛸 것이다.“주인님, 밤도 깊었는데 오늘 밤은 나미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많이 해보지 않아서 좀 서툰 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이가 나미는 매혹적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만약 진서준이 충분한 정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이가 나미에게 홀려 쓰러졌을 것이다.“필요 없어. 먼저 돌아가라. 나도 집에 돌아가 봐야 해.”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이가 나미를 쳐다보지 않았다
용의 안식 계획이라 이건 대한민국 무도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 계획에 대해 알고 싶으면 반드시 스파이가 있어야 한다.지금 이가 나미가 진서준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다.“용의 안식 계획은 국안부 사람들도 저한테 말한 적이 있어요.”“한 달 전에 서양인들이 섬나라의 3대 가문을 찾아가 용의 안식 계획을 알려줬다고 이가 나미가 말해줬어요.”“내년 4월에 해외 강자들이 손을 잡고 대한민국 무도계를 공격할 거예요.”진서준이 진지하게 말했다.“대한민국 무도계를 공격한다고?”이 소식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턱이 빠질 정도로 놀라웠다.진서준을 따라오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천하태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용의 안식 계획이 4월에 열린다는 건 이미 확정이지만 어느 날인지는 잘 몰라요.”문제는 진서준이 3월에 신농산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4월이 되기 전에 신농산에서 나와야 한다.신농이라는 은세 문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그 네 개의 은세 문파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진서준이 그들을 위로해줬다.“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서 그 해외 강자들은 우리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너야.”진서준의 신분이 너무 널리 알려졌다.해외 강자들은 그때 가서 분명 진서준을 찾을 것이다.“괜찮아. 아직 석 달 남았으니까 그 기간 수련해서 실력을 키워야지.”진서준이 말했다.“됐어, 가서 자. 내일 또 경성에 가야 하는데.”이튿날 아침, 진서준, 진서라, 허사연 자매, 그리고 서지은이 같이 공항을 향해 달려갔다.김연아는 따라가지 않았다.아직 수련자가 아니어서 괜히 따라가서 폐만 끼칠 수 있다.차라리 집에서 편안하게 진서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진서준과 권해철은 공항에서 합류했다.두 달 만에 보는데 권해철의 기운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진 상경님, 보운산에 올리신 공법 너무
진서준 남매는 차를 타고 임준을 따라 국립 공원 쪽으로 갔다.공원 뒤편에는 산을 끼고 세워진 캐슬이 있었다.끝이 안 보일 정도로 컸다.서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집도 임씨 가문의 집과 비교할 수 없다.경치가 아름다운 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진서준은 부자들의 삶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 다시 한번 느꼈다.“조금만 더 가면 도착합니다. 큰 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임준은 웃으며 진서준과 진서라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은 멍했다.임준의 큰 형이면 현재 임씨 가문의 가주지 않은가?진서준은 임씨 가문의 다른 가족분들이 자기네를 만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이 임씨 가문의 가주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오빠...”진서라는 진서준의 손을 잡고 약간 불안해했다.사실 예전에 진서준의 어머니 조희선이 진서라에게 어떤 말을 한 적이 있다.그때 진서라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다.그러나 지난번 유지수에게 잡혀간 뒤 진서라도 마음속에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특히 임준을 보고 난 뒤 진서라의 추측은 더욱 확실해졌다.“서라야 괜찮아. 어찌 됐건 넌 내 동생이야!”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했다.“응!”진서라도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차는 곳 화려한 어느 장원으로 들어갔다.장원으로 들어가 좀 더 가고 나면 호화로운 큰 별장이 보였다.“도착했습니다.”임준이 말했다.진서준 남매는 차에서 내려 임준을 따라 큰 별장으로 들어갔다.거실에는 임준과 비슷하게 생긴 어르신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형님, 데려왔어요!”임준은 소파에 있던 어르신을 향해 말했다.그는 얼른 손에 쥐고 있던 신문지를 내려놓고 진서준과 진서라를 바라보았다.진서라를 보자 어르신은 감격에 겨워 일어섰다. 몸에 있는 모공 하나하나가 다 솟아오르는 듯했다.진서라는 임훈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강한 내적 친밀감이 느꼈다.“솔아!”“내 손녀 솔아!”임훈은 달려가 진서라의 손을 감격에 겨워 잡았다.임훈이 진서라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진서준 남매는 이전의 추측을 확신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공이 매우 낮은 수선자들이야.”“수선자도 생로병사를 겪어. 4천여 년이 지난 지금 벌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그런데 네 아버지가 수선법문을 어디서 구하셨는지 몰라.”“그 수선법문을 가진 게 죄지...” “그 수선법문 때문에 모든 가문을 질투하게 했어.”진서준은 임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임씨 가문도 수선법문을 빼앗아요?”“오빠...”진서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진서라는 매우 무서웠다.“네 어머니 진짜 이름을 알아?”임훈은 진서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려 질문을 던졌다.“조희선 아니에요?”진서준은 멍했다.임훈은 고개를 저었다.“당연히 아니지. 둘째의 딸이자 내 조카 임수련이야!”“너랑 솔이가 친남매는 아니지만 사촌지간이야.”“네 아버지가 수련이랑 결혼하고 나서야 수선법문을 얻었지.”“그러고 나서 임씨 가문과 은씨 일가가 손을 잡고 네 아버지 손에 있는 수선법문을 빼앗으려 했지!”“심지어 장백과 곤륜사람들까지 찾아왔어.”진서준의 안색이 갑작스레 변했다.“그럼 우리 아버지가 이미...”“죽지는 않았어. 다만 죽은 것과 다름없지. 신농 사람들에게 끌려가 신농에 갇혀서 영원히 나올 수 없게 됐어.”“해외 사람들도 선법 이야기를 듣고, 네 아버지가 수감되기 전 대한민국 무도계를 공격했었어.”“수련이가 너를 낳고 네 아버지가 너랑 네 어머니가 무슨 일 생길까 봐 나와 상의해서 수련이 보고 이름 바꾸고 경성을 멀리하라고 결정했어!”“솔이 같은 경우에는 부모가 모두 그 재앙에서 숨죽였어. 수련이가 솔이도 데려가면 너희 모자 신분을 더 잘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서.”임훈은 말을 마친 후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서준, 너도 선법을 수련했지?”“맞아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가르쳐 주셨어요.”“역시나... 너네 진씨 가문이 수백 년 전에 한 선인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아마 네 아버지의 선법도 그분이 가
이 사실을 아는 사람 외에는 진서준이 경성 진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는다.어느 가문도 직계를 감옥에 3년이나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천교들에게 있어서 3년이라는 시간은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무인에게는 시간이 곧 생명이다.그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정말 돈만 쓰고 생명도 잃게 되는 것과 같다.다만 진서준이 감옥에서 구창욱을 따라 선법을 3년 동안 수련했을 거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진서준도 지금 모든 걸 깨달았다. 어쩐지 진씨 가문의 외척들이 그를 보고 진씨 가문의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아직은 진씨 가문에 돌아갈 수 없어.”임훈이 말했다.“왜요?”진서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그는 아직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어했다.이 모든 걸 계획한 사람!“네 아버지가 선법을 얻은 일을 말한 게 바로 진씨 가문에서 전해진 거야.”임훈이 말했다.순간 진서준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진씨 가문에 스파이가 있는 건가요?”진씨 가문에 스파이가 없다면 진서준 아버지가 선법을 얻은 일도 밖으로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진씨 가문 안의 모든 사람이 수선자가 되면 대한민국에 진씨 가문과 맞싸울 수 있는 가문이 몇 개 있을까?“진씨 가문뿐 아니라 임씨 가문에도 있는 걸 우리가 찾아냈어.”임훈이 설명했다.“4대 가문의 전쟁은 끝이 없어.”“그때 네 아버지와 수련이가 결혼했을 때도 은씨 일가와 양씨 가문에서 둘의 결혼식을 방해했었지.”“근데 결국 실패해서 두 가문이 손을 잡고 우리와 맞싸웠어.”경성의 4대 가문은 보기에는 평화로운데 실제로는 사방이 적이다.실제로도 그들 사이에는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국안부가 있음에 더욱 그렇다.“그럼 제 외할아버지는요?”진서준이 물었다.임훈과 임준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두 사람이 말을 하지 않은 걸 보고 진서준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그 내부자가 바로 외할아버지인가요?”“응...”임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우리도 그가 그런 사람일 줄은
임훈은 미안해하며 말했다.할아버지로서 해야 할 책임도 한 적이 없다.“괜찮아요. 오빠가 저를 지키고 보호해줬어요.”진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네가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어.”임훈이 사실을 알려줬다.진서라는 임훈의 손녀딸이다.그리고 진서준은 임훈 둘째 동생의 외손자다.게다가 진서라는 진서준보다 몇 달 일찍 태어났다.진서준과 진서라는 이 사실을 듣고 그대로 얼었다.아직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상관없긴 해. 누나든 오빠든 둘은 한 가족이야.”임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먼저 돌아가겠습니다.”진서준이 일어서서 말했다.“준아, 얘네 좀 데려다줘라.”임훈은 나가면 임씨 가문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살까 봐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둘은 인사를 나누고 차를 타고 떠났다.“솔아, 경성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나한테 전화해라!”임준은 사랑이 듬뿍 담은 얼굴로 진서라를 보았다.임준과 임훈 두 사람 모두 진서라에게 미안함 뿐이다.“넷째 할아버지, 그냥 진서라라고 부르세요.”진서라는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 서라라고 부를게.”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반쯤 달리다가 앞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길을 막고 있었다.“넷째 어르신, 진씨 가문의 차입니다.”운전기사가 번호판을 보고 임준에게 말했다.임준은 그 차를 보고 나서 진서준에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오셨다.”진서준은 얼떨떨하니 그 롤스로이스 차를 바라보았다.뒷좌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진서준의 눈앞에 한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진서준은 노인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서라야, 너희들 먼저 돌아가라. 내가 가서 볼게.”진서준은 차에서 내려 그 롤스로이스로 향했다.뒷좌석에 들어서자 진서준이 노인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마찬가지로 노인도 미간에 자상함과 죄책감이 가득하며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서준아...”“당신이 바로 제 할아버지입니까?”진서준이 물었다.“그래!”진혁이 힘껏 고개를
진혁의 말을 듣고 진서준은 완전히 멍해졌다.그는 원래 자신이 경성의 진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진씨 가문이 주워온 자식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진서준은 도대체 어느 가문 사람이고, 혈용체는 또 무엇인가?설마 진서준이 혈용권을 쓸 수 있는 것도 혈용체 때문인 건가?“네 아버지가 내 핏줄은 아니지만, 항상 친자식처럼 대했어!”진혁이 진서준을 보며 말했다.“서준이 너도 내 친손자로 대했고.”“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넌 벌써 진씨 가문의 도련님이 되었을 거야. 사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좋을 거고.”진혁의 말은 사실이다.진혁은 진서준의 아버지에게 늘 잘 해주고, 다섯 아이 중 진서준의 아버지를 가장 예뻐했다.게다가 진서준의 아버지도 무도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20대 초반에 벌써 대종사이다.그러고 구창욱한테 선법을 수련하고 나서 그의 실력은 놀라운 속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당시 진서준의 아버지를 통제하기 위해 은씨 일가, 양씨 가문, 곤륜 그리고 장백이 수많은 고수를 동원했었다.그러나 그중 절반이 진서준 아버지의 손에 잡혀 희생했다.“저희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죠?”진서준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요한.”진서준은 이 이름을 마음속에 깊이 기억해 두었다. 이어서 물었다.“그해 우리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 나 누구였어요?”“뭐 하려고?”진혁은 진서준의 눈에 살기가 가득한 걸 보고 가슴이 철렁거렸다.‘설마 진요한을 위해 복수라도 하려고 하는 건가?’“복수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복수 두 글자를 말했지만, 그 안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은씨 일가와 양씨 가문은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곤륜과 장백은 더더욱 넘사벽의 존재이다.심지어 신농과 남사 이 두 개의 은세종문도 그 당시에 참여했었다.진서준 혼자서 복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구창욱처럼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복수의 길이 곧 죽음의 길이다.“서준아, 네가 속상하고 화난 건 알지만, 그렇게 많은 상대를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
심지어 당시 해외의 용의 안식 계획도 특별히 진요한을 위해 세워졌다.“그래, 먼저 돌아가. 이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면 돼.”진혁은 진서준에 전화번호 하나를 주었다.아는 사람이 불과 5명뿐인 진혁의 개인 번호이다.진서준은 번호를 메모한 후 바로 영화로 태웠다.“할아버지, 꼭 진씨 가문의 스파이를 찾아내야 합니다.”진서준이 떠나기 전에 정중하게 말했다.“20년 넘게 찾았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여.”“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 낼거야. 어떻게 된 건지 꼭 알아내야지.”진씨 가문 안의 스파이에 대해 진혁은 항상 신경이 쓰였다.20여 년 동안 진혁은 스파이의 단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았다.그러나 마치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진혁이 여러 방법을 통해 스파이를 찾아내려고 했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차에서 내린 진서준은 망연자실한 듯 혼자 천천히 별장을 향해 걸어갔다.‘내 신분이 이미 확실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주워 온 자식이라니...’‘혈용체는 또 뭐고...’빵빵...진서준이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을 때, 한 대의 슈퍼카가 진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빵빵거렸다.진서준이 뒤를 돌아보는데 패셔너블하게 차려입고 잘생긴 한 젊은이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눈멀었어?”젊은이는 진서준에 욕설을 퍼부었다.“됐어요. 이런 촌놈이랑 따져서 뭐해요.”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진서준은 정신을 딴 데 팔았지만, 길 한가운데가 아닌 길가에서 걷고 있었다.옆에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말 똑바로 해!”진서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젊은이는 어리둥절하더니 스포츠카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야! 너나 똑바로 말해. 한 방에 천국 가게 할 수 있어!”그러고 주먹을 들어 진서준의 가슴에 대고 한 대 쳤다.진서준은 아까 들은 얘기들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 젊은이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을 보고, 진서준도 참지 않고 주먹으로 상대했다.진서준이 감히 자기와 맞싸우려고 하는 것을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