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허윤진 등은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진서준, 그가 왔다!진서준만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유문기는 말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버럭 화를 질렀다.“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내 일에 참견해?”진서준과 유정은 천천히 걸어왔다. 진서준의 몸에서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유문기 일행은 저도 모르게 두 사람에게 길을 내주었다.“예쁜이들 앞에서 잘난 척하겠다는 거지? 그럴 실력이나 돼?”마른 진서준을 보며 유문기는 큰소리로 비아냥거렸다.“유문기, 우리 아버지한테 대신 전화해 줄까?”유정이 차갑게 말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유문기는 유정을 보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유문기는 유정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유정아, 넌 우리 큰아버지의 실수로 태어난 생명체일 뿐이야 정말 자기를 유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해? 솔직하게 말하면 넌 쓰레기 같은 년의 딸이잖아.”유문기의 말을 듣자 다들 안색이 어두워졌다.쿵...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물건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다.유문기는 겁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싸면서 하얀 바지를 노란색으로 물들였다.털썩!강력한 기운 앞에서 유문기는 저도 모르게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의 눈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한번 살려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절망 속에서 천천히 죽게 할 거야.”진서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유정은 진서준의 수양동생이기에 진서준의 가족과 같았다. 유문기가 유정을 이렇게 모욕하니 진서준은 당연히 참을 수 없었다.“넌... 나를 죽일 수 없어. 나는 유기철의 아들이야. 나를 죽이면 우리 가문에서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유문기는 얼른 유기철을 내세우면 진서준에게 겁을 줬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유기철이 너를 구하기 위해 나와 맞서 싸울 것 같아?
유문기는 아픈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핸드폰 가져와!”유문기는 방금 전화하려다가 허윤진에게 차여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행히 핸드폰은 망가지지 않았다.진서준은 바닥에 있는 핸드폰을 유문기 쪽으로 걷어찼다. 유문기는 핸드폰을 주운 후 이내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때 유기철은 마침 사장로를 돌려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문기의 전화를 받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유문기는 늘 사고뭉치였기에 또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왜?”“아버지, 가든 호텔 바로 와주세요. 저 지금 맞아 죽게 생겼어요.”유문기는 불쌍한 연기를 하며 말했다.“누군데? 그 자식들이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을 몰라?”“알죠. 아버지한테 전화하라고 협박했어요. 아버지가 와도 저를 지킬 수 없다고 그랬어요.”유문기는 울먹이며 말했다.“어떤 미친 자식이야? 지금 당장 갈게.”유기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기다려. 가서 다 죽일 거야.”전화를 끊은 후 유문기는 속으로 무척 흥분되었다.“너희들은 다 죽었어. 우리 아버지가 곧 오실 거야.”진서준은 시큰둥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돌아갔다.“야! 인마!”유문이기는 진서준이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자 화가 나서 손으로 바닥을 내리쳤다.“어떻게 된 일이야? 왜 저 자식과 싸움이 일어났어?”방으로 들어서면서 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물었다.허사연은 방금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형부, 죄송해요. 사고 쳐서...”허윤진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아니에요. 잘했어요. 다음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아예 발로 가랑이를 걷어차세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자 다들 깔깔 웃었다.쌓여있던 답답함과 우울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유정아, 방금 저 자식이 한 말은 무슨 뜻이야? 네가 유씨 가문 사람이야?”허사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저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그리고 유정은 자신의 출생 비밀에 대해 간단히 말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많이들 먹어.”진서준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말 안 해도 많이 먹을 거예요.”허윤진은 눈을 희번덕거리더니 이내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어제 내내 차로 이동하면서 먹은 것이 별로 없었다. 지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허윤진은 당연히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그들의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유기철은 이미 호텔 일 층 로비에 도착했다.“아버지! 드디어 오셨네요.”유문기는 유기철을 보자 너무 기뻤다.“문기야, 얼굴이 이게 뭐야? 누가 그랬어?”유기철은 유문기의 상태를 보자 깜짝 놀랐다.손은 힘없이 툭 처져 있었고 얼굴과 몸은 온통 피투성이며 심지어 오줌 냄새까지 났다. 방금 전화했을 때 유기철은 유문기가 그를 속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속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진실이었다.“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어요. 저 방에서 밥 먹는 저 자식이에요.”유문기는 울먹이며 말했다.“아예 우리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네!”유기철은 진서준이 사람을 때리고 태연하게 밥을 먹는다는 소리를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유씨 가문은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없었다.“어느 방이야?”“가운데 저 방입니다.”유기철은 쏜살겉이 걸어가서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쿵...기척을 들은 진서준은 여전히 여유롭게 음식을 먹었다.하지만 허사연 등은 긴장한 표정으로 문 쪽을 쳐다봤다.유정은 유기철임을 확인하고 가슴이 뜨끔했다. 방금 유씨 저택에서 유기철은 유정을 있는 내내 불편하게 만들었기에 지금 그들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밥을 먹는다고? 개자식들이 죽고 싶어 X랄이야?”유기철이 버럭 화를 내자 식탁 위의 유리잔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되었다.진서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때렸어요. 근데 왜요? 복수하려고요?”진서준의 목소리를 듣자 유기철은 흠칫 놀랐다.“또 너야?”그는 진서준의 뒷모습을 자세히 훑어본 후 진서준 임을 확인했다.유기철은 진서준이 그의 계획을 모두 망가뜨렸다고 생
진서준은 천천히 일어나 차분하게 유기철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철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진서준! 꼭 이럴 거야?”유문기를 이토록 때렸는데도 놓아 주지 않는다니.진서준은 과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왜요? 이대로 보내 주면 저 자식이 이제 우리를 가만둘 것 같나요? 제가 말했죠. 누구든 내 가족을 건드리면 다 죽을 거라고!”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기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그의 주먹에서 뼈마디가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도대체 어쩔 건데?”유기철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죽여야죠.”“미쳤어?”유기철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기철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무술을 배우러 갔고 몇 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유문기는 유기철의 유일한 삶의 쾌락이고 희망이다.만약 진서준이 유문기를 죽인다면 유문기는 완전히 미쳐버릴 것이다.“그럼 당신이 대신 저와 싸우면 되겠네요. 과연 아들을 살릴 수 있을지 궁금한데요.”진서준은 그렇게 말하고 복도로 향해 걸어갔다. 유기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선천의 힘을 모으더니 손을 들고 진서준을 향해 공격했다. 그러자 진서준은 유기철을 차갑게 째려봤다.그 눈빛은 마치 얇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사람을 베일 듯했다.“꺼져!”쿵...진서준은 주먹으로 유기철의 손을 내리쳤다. 그러자 유기철의 손바닥에 뭉쳐진 선천강기는 산산조각이 되었다.유기철은 그 충격에 거꾸로 날아가 벽에 세게 부딪히면서 벽에 큰 구멍을 냈다.“서준 씨가 정말 저 사람을 죽일 건가요?”변희영이 물었다.“글쎄요?”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내 가족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순간 결과는 이미 정해졌죠.”변희영은 진서준의 진지한 모습을 보자 다급하게 달려가 말렸다.“충동하지 마세요. 유기철을 잘못 건드리면 정말 큰 화를 불러올 거예요. 어쨌든 유기철은 유기명의 친동생이에요. 유기명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요.”변희영은 진서준을 말렸다.“서준 씨, 그냥 가볍게 혼내주세요. 우리도 다친 데
“문기야!”유문기의 참상을 본 유기철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그는 자기 아들이 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죽이지 않았어요. 폐인이 되었을 뿐이에요.”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기철은 빨갛게 충혈된 두 눈으로 진서준을 째려봤다.“진서준, 두고 봐! 꼭 복수할 거야!”유기철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래요. 기다릴게요.”진서준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복수할 때 성약당 장로들도 함께 데리고 와요. 그러면 제가 굳이 다시 찾아갈 필요 없으니깐.”유기철은 대답하지 않고 기절한 유문기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 진서준은 박수를 치며 싱글벙글 웃으며 방으로 돌아갔다.“서준 오빠, 셋째 삼촌이 뒤끝이 제일 심해요. 조심하세요.”유정은 걱정스레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유문기를 저렇게 만들어놨으니 유기철이 어떻게 복수할지 다 알아.”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됐어. 계속 밥 먹자.”다들 밥 맛이 떨어졌지만 진서준은 맛있게 먹었다. 유기철은 호텔을 떠나자마자 차를 몰고 성약곡으로 향했다.성약곡은 성약당의 본거지이다. 아무나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유기철은 차를 산 밑에 세우고 유문기를 안고 질주했다.“사장로님,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다시 돌아온 유기철을 보며 사장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왜 다시 돌아왔어? 무슨 일이야?유기철은 유문기를 소파에 내려놓고 다급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진서준 그 자식에게 맞아서 사지가 부러졌어요. 제발 구해주세요.”사장로는 얼른 다가와 유문기의 상의를 벗겼다. 하지만 그는 유문기의 상처를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너무 지독하게 손을 쓴 게 아니야? 이건 분쇄성 골절인 데다 경맥까지 끊어졌잖아. 회복은커녕 의족도 씌우지 못해.”사장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유기철은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진서준이 이렇게 지독하게 손을 쓸 줄은 몰랐다. 순간 유기철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몸을 벌벌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어요. 경매에 정말 제가 필요한 약재만 있으면 돼요.”“약재는 다 진짜일 거예요. 성약당은 가짜 약재를 판매하지는 않아요. 권력가들과 재벌가들만 왔는데 그랬다가는 큰 일이죠.”유기태가 말했다.성약당이 약재까지 조작한다면 경매에 참석한 권력가와 재벌가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다.“그럼 모레 봅시다.”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시간을 보았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서남쪽 일을 해결하고 어머니를 찾아야 해.”진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는 그동안 조희선이 누구에게 납치되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출생의 비밀마저도 풀지 못했다.“내년 3월 신농산에 가서 알아볼 수밖에 없겠네.”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음날 진서준은 방에서 수련하고 외출하지 않았다.허사연 등도 밖에 나갔다가 괜히 또 일이 생길까 봐 집에 있었다.“심심한데 고스톱이나 칠 가?”허윤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서준 씨는 방에서 수련 중이야. 방해하지 마. 놀고 싶으면 우리가 같이 놀아줄게.”허사연이 말했다.사실 고스톱은 뒷전이고 허윤진은 주로 진서준을 보고 싶었다. 중독된 것처럼 하루라도 진서준을 안 보면 괴로웠다.“그래. 우리끼리 놀지 뭐.”허윤진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는 놀 줄 몰라요. 옆에서 구경할게요.”진서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언니 엄청 쉬워요. 한 번 보면 배울 수 있어요.”허윤진이 말했다.“맞아요. 서라 씨는 한 번 보면 다 알 것 같은데요.”허사연도 진서라에게 같이 놀자고 권했다.“그래요.”진서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오후 진서준 일행은 유씨 가문이 마련한 별장으로 왔다. 별장에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고 오락실도 몇 개 있었다.위층에서 조용히 수련하던 진서준은 갑자기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미간을 구겼다.“무슨 소리지? 설마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진서준은 얼른 내려갔다. 하지만 내려가 확인했더니 허사연 등이
허사연이 그렇게 말하자 진서준은 살짝 난감했다. 만약 그녀들이 정말로 발가벗으면 진서준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그는 아직 숫총각이다. 야릇한 장면을 보면 주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허사연이 너무 솔직하게 말했기에 진서준은 다소 자기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변희영은 금방 알게 된 지 며칠밖에 안 되는 외부인이다.“쳐다볼 수 있어.”진서준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허사연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옷 벗는 거로 합시다. 정말 쳐다볼 수 있는지 확인할 거예요.”허윤진과 한보영은 애써 못 이기는 척 말하면서 테이블 앞에 앉았다.“서준 씨, 이따가 함부로 쳐다보면 저 정말 화낼 거예요.”“왜 질 거라고 확신해요?”진서준은 피식 웃었다. 시작도 안 했는데 허윤진은 져주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됐어요. 헛소리 그만하고 시작합시다.”허사연이 재촉했다.고스톱에서 이기려면 운이 필요하지만 또 모든 것을 운에 맡기는 것은 아니다. 패를 쓸 줄 알면 빨리 이길 수 있다. 진서준이 마지막으로 고스톱을 놀 때는 대학 다닐 때였다. 그는 규칙과 요령을 모두 잊었고 그녀들이 진서준을 일부러 겨냥하더니 두 판이 끝날 때쯤에 진서준의 몸에는 팬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허사연과 김연아를 제외한 여자들은 모두 수줍은 얼굴로 진서준의 근육을 몰래 훔쳐보았다.“형부, 옷 입었을 때는 말라 보였는데 근육이 많네요.”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어떻게 놀아야 할지 이젠 알겠어요. 다들 준비하세요.”진서준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운이 그렇게도 없는데 어떻게 이기겠어요?”하지만 이번 판은 진서준의 승리로 끝났다.“자, 다들 벗으세요.”진서준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변태!”진서준이 야릇하게 웃자 허윤진은 욕설을 퍼부었다. 서남쪽은 아직 더워서 다들 옷을 얇게 입었다. 한 벌 벗으면 반팔 티셔츠와 속옷밖에 남지 않는다.얇은 반팔 티셔츠 사이로 진서준은 세 사람의 속옷 실루엣까
깊게 파인 가슴골 안에는 과연 뭐가 있을지 진서준은 넋을 놓고 쳐다봤다. 비록 그는 멀리서 허사연의 가슴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은 처음이었다.“그만 봐요. 사람 부끄럽게 왜 그래요.”진서준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허사연은 온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이 간지러웠다.“다 봤어요. 충분해요. 그럼 저는 이만!”진서준은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코피가 터질 것 같아 이내 자리를 떠났다.‘왜 이러지?’허사연이 속옷 입은 모습만 봤는데 코피가 나다니.진서준은 얼른 방으로 돌아가 욕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하면서 애써 진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한참 후에야 욕실에서 나와 침대에서 수련을 계속했다.그녀들은 아래층에서 이미 옷을 다 입었다.“언니, 형부가 그렇게 급하게 방에 들어갔는데 뭐 하고 있을까요? 설마...”허윤진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말도 안 돼. 서준 씨가 어떻게 그런 일을...”허사연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까지 빨개졌다.“내가 한 번 올라가 볼게.”허사연은 진서준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민망한 장면을 볼까 봐 허사연은 미리 노크까지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설마 정말...”그 장면을 상상하자 허사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서준 씨... 서준 씨..”허사연은 나지막이 진서준을 불렀다.“만약 제가 필요하다면... 도와줄게요.”두 사람은 커플이다. 만약 성적 욕구가 있으면 여자 친구인 허사연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사이이다.이때 침대에 앉아서 수련하던 진서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뭘? 도와준다고?’진서준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뭐라고? 아까 뭘 도와준다고?”허사연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진서준을 쳐다봤다.“왜... 옷을 안 입었어요?”진서준을 샤워를 한 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침대 위에 올라갔다. 그래서 그는 윗몸이 알몸인 상태이다. 그러자 그녀들의 추측이 더 진짜 같았다.진서준이 방에서 그런 일을
“저년 운이 정말 좋네. 열 명이 넘는 총잡이가 덤벼도 못 죽이다니.”임동식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동식 형님, 이번에 저 여자를 못 처리했으니 다음엔 더 어려워질 겁니다...”“저 여자가 데려온 그 경호원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요. 박진강조차 그 경호원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요.”“그래서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어. 어제 이미 동남아 킬러 업계에서 유명한 킬러인 독룡에게 연락했어. 이틀 후면 명주에 도착할 거야.”임동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룡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혹시 그 국제적으로 돈 많은 부자 열댓 명을 죽인 적 있는 부자 킬러 말씀입니까?”“맞아.”임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킬러를 고용하는 건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꼴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과거 그 킬러가 단지 고용주가 심기를 건드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용주까지 죽인 적도 있다던데요?”자리에 있던 한 노인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살인마와 협력하는 건 사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임동식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큰 파도를 헤쳐야 큰 물고기를 얻는 법이야. 위험이 없다면 내가 굳이 그 킬러를 부를 이유도 없었겠지.”임동식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끌끌 찼지만 속으로는 두려움도 컸다.독룡이 폭주해 임동식까지 죽여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임동식이 죽는다면 그들에겐 대표이사 자리를 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그러나 다들 방금 나눈 대화가 이미 황예은의 사무실에서 황예은이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황예은은 회의실에 미리 설치해 둔 감시 장비 덕분에 대화를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젠장! 어젯밤 총잡이들이 이놈들 짓이었다니!”황현호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이놈들 전부 죽여버릴게요.”“앉아.”황예은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만약 임동식 일당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황현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황예은
진서준의 말에 박진강은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오해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날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우리 아버지는 박서명이란 말이야!”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박진강은 자기 아버지를 들먹이며 진서준을 겁주려 했다.진서준은 냉랭하게 박진강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언제 널 죽인다고 했어?”“그럼 무슨 뜻이야?”박진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그야 당연히 말 그대로 네가 다시는 말을 못 하게 하겠다는 뜻이지.”말이 끝나자마자 진서준은 손가락을 뻗어 박진강의 목을 가볍게 찔렀다.그 순간, 공포스러운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박진강의 목을 꿰뚫었다.진서준의 이 손짓은 어떤 실수도 없이 정확히 박진강의 성대를 끊어버렸다.피가 상처에서 조금씩 흘러나왔고 극심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박진강의 뇌를 맹렬히 뒤흔들었다.박진강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고 입을 크게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으며 그 모습은 심각하게 다친 벙어리 같았다.이 광경에 임동식을 비롯한 이사회 구성원들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이 남자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박서명에게 아들이 많긴 하지만 박진강은 어쨌든 그의 아들 중 하나였다.그런데 진서준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박진강의 성대를 잘라버렸다.이런 치욕을 박씨 가문이 어떻게 그냥 참아 넘기겠는가?“꺼져.”황예은이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황예은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박진강은 아픔을 참고 비틀거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박진강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 박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연결되었지만 박진강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전화 너머에서는 박서명의 목소리만 들려왔다.“진강아, 이른 아침에 전화하다니, 좋은 소식이라도 전하려는 거야?”그러나 박진강은 아무리 입을 열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박서명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의아해했다.“진강아, 말하지 않고 뭐 해?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이 녀석. 계속 장난치면
박진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황예은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누님, 어젯밤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내가 명주시 전역을 샅샅이 뒤지게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어요.”황현호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황예은이 멍청한 남동생을 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러웠다.“어젯밤 일은 더 이상 묻지 마. 넌 먼저 내 사무실로 가서 기다려. 할 말이 있어.”“알았어요.”황현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진서준 옆을 지날 때 황예은에게 물었다.“누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선을 돌려 진서준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박진강 역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년의 정체를 탐색했다.“새로 고용한 경호원이야.”황예은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이 사람이 경호원이라고요? 농담하지 마세요.”황현호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겉모습만 봐도 이 청년은 경호원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었다.“누님, 이 녀석은 나보다도 더 약한 것 같은데요? 누님이 경호원을 원한다면 내가 직접 찾아줄게요.”황현호가 급히 말했다.“내 말을 못 알아듣겠어?”황예은이 얼굴을 굳히며 화내자 황현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황급히 회의실에서 달아났다.박진강은 앞으로 다가와 황예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예은 누님이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저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말을 마친 박진강은 발걸음을 옮겨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황예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뜻이죠?”박진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내 멍청한 남동생을 이용해 내게 독을 탄 짓, 내가 모를 줄 알았어?”그 말에 박진강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예은 누님,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박진강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저 녀석 잡아!”황예은도 더 이상 쓸데없는 한담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사회 구성원은 많지 않았고 황씨 가문을 제외하면 총 여덟 명이었다.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이 여덟 명은 모두 노련한 여우였다.황예은이 처음 자리에 올랐을 때도 이 여우들에게 꽤나 당했었지만 나중에 배로 되갚아주었다.다들 황예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는 섣불리 황예은과 정면으로 충돌하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황예은이 사라지고 남은 건 황경영의 어리석고 멍청한 아들 황현호뿐이었다.그러니 이 노련한 여우들은 당연히 이런 멍청이가 자기 머리 위에 올라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황현호는 한눈에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동식 삼촌, 이렇게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황현호는 의장석으로 걸어가 왼쪽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에게 공손하게 물었다.임동식은 황씨 그룹의 두 번째 주주이자 회사의 원로였다.“현호야, 너희 아버지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너희 누나도 어젯밤 큰 일을 당해 생사가 불분명하구나.”임동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우리 그룹은 작은 회사가 아니야. 하루도 주인이 없을 수 없어.”이 말을 듣자 황현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기를 몰아붙이려는 것 같았다.사실 임동식은 황현호 같은 멍청이와 쓸데없이 말싸움하고 싶지도 않았다.긴말은 필요 없고, 어차피 말해봐야 황현호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러니 차라리 명확하고 간결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동식 삼촌, 제가 아직 여기 있잖아요?”황현호가 모르는 척하며 말하자 임동식은 미소를 지었다.“현호야, 네가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는 걸 동식 삼촌은 다 지켜봤어. 네 사업 감각은 솔직히 평범하잖아.”“그럼 동식 삼촌의 의도는 무엇인가요?”“넌 우선 전력을 다해 너희 누나를 찾아. 회사는 일단 내가 관리하고 네 누나를 찾으면 다시 네 누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줄게.”황현호는 어리석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만약 이 자리를 지금 넘겨주기만 하면 임동식은 즉시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