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씨가 허영심 때문에 김씨 가문에 들어갔다고?”“절대 그럴 리 없어요. 연아 씨는 서준 씨가 자기 때문에 위험에 빠질까 봐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허사연의 한마디가 정곡을 찔렀다.허사연의 말대로 김연아는 확실히 진서준이 자기 때문에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 냉담하게 행동하며, 일부러 오해하게 만든 것이었다.“언니 말이 맞아. 연아 언니는 오빠가 위험할까 봐 그런 거야.”진서라도 말했다.“내가 만일 연아 언니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 오빠, 생각해 봐. 만일 우리가 없었더라면 오빠는 내일 연아 언니 말에 상처받아 결혼식장에 가지 않을 거 아니야? 이게 바로 연아 언니가 바라는 바야.”진서준은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인 것 같았다.김연아가 눈을 뜨고 진서준을 봤을 때 희열과 놀라움이 가득 찬 눈빛은 진심이 확실했다.“내가...내가 정말 바보야.”진서준은 화가 나서 무릎을 마구 때렸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빨리 준비해서 내일 연아 씨 구해내고 서준 씨도 안전하게 돌아와야 해요. 아니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일 반드시 연아를 안전하게 구해서 올게.”진서준이 이어서 말했다.“내일은 아무도 밖에 나가지 말고, 가능하다면 장소를 바꿔 잘 숨어있어. 내가 연아 구해내면 당장 강남을 떠.”“어디로 가요?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이 바로 쫓아올 게 뻔해요.”한보영이 말했다.“서남 국경 강주로 가요.”진서준이 강경한 눈빛으로 말했다.“거기 가서 뭐 할 건데요?”허사연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성약당이 그곳에 있어. 전에 들은 건데 성약당에 은영과가 있다고 했어.”진서준이 설명했다.“첫 번째는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1차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두 번째는 은영과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수사가 될 수 있게 해줄 거야.”진서준은 김연아만 구조하면 강주로 갈 계획을 일찍부터 하고 있었다.강주시는 강남에서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씨
새벽녘 쥐 죽은 듯 고요해야 할 금운시가 지금은 불빛으로 가득해 마치 대낮과 같았다.길 양측에 채색 띠가 걸려있고 길옆의 모든 점포에는 빨간 비단이 걸려있었다.억이 넘는 고급 승용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용히 금운시에 도착해 이곳에서 제일 호화로운 6성급 호텔 앞에 멈췄다.차에서 내려온 사람은 유명 인사가 아니면 권력가들이었다.전부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결혼식을 위해 온 하객들이다.심지어 경성의 명문가에서도 사람을 파견하여 축하 선물을 보내왔다.금운성 절반을 가로지르는 사양호 중앙에도 사람들이 밤낮으로 서둘러 준비한 무대가 설치되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무대 저쪽 편은 바로 김씨 가문과 직결되어 수많은 사람이 김씨 가문에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아침 6시가 되자 밤새 도착한 유명 인사들이 일찍부터 호텔 문 앞에 서서 신랑과 함께 신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서씨 가문의 바보 아들 서동현은 매끈하게 다림질된 양복을 입고 얼굴에는 바보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주변의 유명 인사들이 속으로는 비웃느라 정신없었지만 얼굴에는 아부의 웃음을 지으며 서씨 가문에 축복을 전했다.“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이 혼약을 맺은 건 우리 금운시의 최대 경사예요.”“서씨 도련님과 김씨 아가씨가 정말 잘 어울려요. 선남선녀가 따로 없어요.”“이건 우리 마씨 가문에서 선물하는 여의옥 한 쌍입니다. 보잘것없지만 기꺼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건 우리 장씨 가문의 축하 선물입니다.”“그리고 우리 황씨 가문의...”각 가문에서 보내온 선물이 서씨 장원의 앞마당을 채우고 있었다.서광철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난 적 없지만 눈빛 속에는 한 가닥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그의 또 다른 아들 서경재가 죽었기때문이다.범인과 그의 조카딸 서지은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하지만 서광문이 이틀 전 자신에게 확실하게 설명해 주겠으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만일 바보 아들 서동현의 결혼식이 아니면 서광철은 절대 진서준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한편 김씨 가문도 많은
이 말이 나오자, 주변 모든 사람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가마가 이렇게나 귀한 것인 줄 몰랐다! 이 가마는 원래 서광문이 딸을 시집보낼 때 꺼내 쓰려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성대하게 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아들딸도 아닌 김씨 가문의 사생이 어떻게 이 호화로운 가마에 탈 수 있겠는가? 이 호화로운 가마 뒤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혼수 행렬이 이어졌다! 십 리에 도달하는 길이의 혼수였다! 이것이 바로 강남 제일 세가의 위엄이었다! 구경하러 온 여자들은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결혼 행렬은 그렇게 천천히 나아갔다. 무려 한 시간이나 걸어서야 김씨 가문의 저택 앞에 도착했다. 김형섭은 이미 김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서씨 가문의 도련님, 십리혼수로 청혼합니다!” “김씨 가문의 아가씨, 좋은 날 받아들이고 예를 받습니다!” 서동현은 말에서 내려 김연아 앞에 무릎을 꿇고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김연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전에 서동현은 김연아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화려한 예복을 입은 김연아를 보니 다시 한번 넋이 나갔다! “폭죽을 쏴라!” 이 말이 떨어지자, 온 금운성에서 수많은 축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아 태양 빛마저도 가려버렸다! “서 도련님, 이제 김 아가씨를 가마에 태우셔야 합니다!” 사교가 옆에서 일깨워주었다. “가마... 가마를 타세요!” 서동현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말했다. 서동현은 김연아를 건드리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이 선녀 같은 여인을 더럽히게 될까 봐서였다.서동현은 머리가 나쁘다고 해서 모든 걸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김연아는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호화로운 가마에 올랐다. 십리혼수가 김씨 집안으로 들어간 후, 결혼 행렬은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길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부 삼성의 진서준이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결혼을 축하하며, 특별한 선물을 하나 보냅니다!” 진서준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천지를 울릴 듯했다. 모두가 진서준을 바라보았고 정확히 말하면 진서준이 들고 있는 그 커다란 종을 바라보았다! 결혼식에 종을 선물한다고? 이건 분명 문제를 일으키려는 것 아닌가!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은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직계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을 동시에 도발하는 것은 명백히 목숨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저 녀석 미쳤나? 이런 때에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을 도발하다니!” “중부 삼성의 진서준? 혹시 전에 떠들썩했던 그 진 마스터님인가?” “진 마스터라고? 저렇게 젊은데? 내가 보기엔 겨우 20대 초반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중부 삼성의 사람이 강남의 용수와 갈등이 있는 거지?”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웅성거리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도윤과 장조인 부자도 멍하니 바라보며 계속해서 침을 삼켰다. “진... 진 마스터님이 정말 미쳤군, 감히 큰 종을 들고 오다니!” “이 원한, 끝까지 가겠다는 거야!” 김형섭과 서광문 등은 진서준이 들고 있는 큰 종을 보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나 오만했다, 그야말로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진서준, 여기는 강남이야, 남주성이 아니다!” “전에 서울시에서 너에게 충분히 체면을 지켜주었으니, 더 이상 몰상식하게 굴지 마라!” 김형섭은 가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서광문 역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서광문은 원래 진서준을 사위로 삼을 생각까지 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서광문은 단지 진서준을 죽이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서씨 가문의 위엄이 결코 도전받을 수 없음을 알리고 싶었다! “이 바보... 바보!” 결혼식 무대 위에서 김연아는 진서준의 결연한 모
김현성은 얼굴이 굳어지고 손에 힘줄이 솟아오르며, 강한 기운이 서서히 발산되려 했다! 김현성을 언급한 후, 진서준은 다시 서광철을 바라보았다. “너는 아들이 제멋대로 악행을 저지르도록 방치했으니, 이는 첫 번째 죄다!” “서씨 가문의 세력을 이용해 김연아를 협박해 강제로 시집가게 했으니, 이는 두 번째 죄다!” “외부 인사와 결탁해 자신의 조카딸을 납치했으니, 이는 세 번째 죄다!” “이 세 가지 죄를 인정하겠느냐?!” 우르르르…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서광철의 가슴에 깊이 꽂혔다. 그가… 그가 어떻게 자신이 외부 인사와 결탁해 서지은을 납치한 것을 알았을까? 서광문 역시 자신의 친동생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광철아, 저 말이 사실이냐?” 서광문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에요. 진서준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예요!” 서광철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일이 탄로 난 후, 서광철은 모든 관계자를 죽였기 때문에 진서준이 증거를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진서준이 아무리 사실을 말하더라도, 증거가 없는 한 서광철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서광철이 서지은을 납치하도록 지시한 이유는 바로 자기 아들을 위해 길을 닦으려는 것이었다! 서광문이 서지은을 너무 아꼈기 때문에, 서광철은 서광문이 서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서지은에게 물려줄 것으로 생각했다. 서씨 가문이 설립된 이래로 여성이 가주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서광철은 서지은을 불구로 만들어 서지은이 서씨 가문의 가주가 될 수 없도록 하려 했다. 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인정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네가 실제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입 닥쳐라, 이 개같은 놈아!” 서광철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너 같은 결혼식 방해하는 놈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느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서광철의 말이 맞
진서준이 몇 걸음도 걷지 못했을 때 서씨 가문의 또 다른 대종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진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또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나 그 대종사와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이 두 사람은 탁현수의 제자로, 어젯밤 금운에 도착한 자들이다. 진서준은 어제 운대산에 갔을 때, 천문검을 단련하는 것 외에도 열여섯 개의 잠수단을 연마했다. 진서준은 운대산속의 귀중한 약재들은 거의 모두 사용하였다. 잠수단 덕분에 이 몇 명의 종사 단계 무사들은 서씨 가문의 대종사들과 잠깐 겨룰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잠수단의부작용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약효가 떨어진 후, 그들은 몸 전체에 힘이 빠질 뿐이고 한잠 자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잠수단이 계속 있는 한, 계속해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잠수단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고 약재 또한 매우 까다로웠다. 진서준이 열여섯 개의 잠수단을 연마한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진서준이 앞으로 나아가자 또다시 서씨 가문에서는 두 명의 대종사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진서준은 요지부동이었고, 탁현수의 다른 두 제자와 우진영이 함께 나타났다! “우진영이 이렇게 일찍 나타나다니?” 우진영을 본 장조인은 벌떡 일어났다. 아직 우진영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이 자식이 스스로 나타나다니!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 사람들도 우진영을 알아보고는 장조인을 노려보았다. “장조인, 이게 무슨 뜻이냐? 우리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적이 되겠다는 거냐?” 서광문은 장조인을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물론 아니야. 나도 우진영이 왜 갑자기 움직였는지 모르겠어.” 장조인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씨 가문에 여덟 명의 대종사가 있다는 것을 보고 이미 마음속으로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진서준이 아무리 강해도 여덟 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설령 누군가 도와준다고 해도 진서준은 혼자서
“아니, 아빠! 저는 이미 진서준의 여자가 되었어요!” 진서준을 보호하기 위해 서지은은 이 사실을 직접 고백했다. “뭐라고?” 서광문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지은을 바라봤다. “운대산에서 제가 독에 걸렸을 때, 진서준이 저를 구하기 위해 저희 둘이 관계를 맺었어요.” 서지은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했다. “너... 너는 나를 미치게 하려고 하는구나!” 서광문은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딸이 그렇게 간절히 자신을 설득하며 서동현을 김연아와 결혼시키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지만 딸아, 너는 그 진서준에게 이미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모르니? “아빠, 일은 이미 벌어졌어요. 이제 이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서지은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오늘 진서준이 죽으면 저도 진서준과 함께 죽을 거예요!” “저는 진서준의 사람이 되었고 죽어서도 진서준의 영혼이 될 거예요!” 김형섭과 서광문은 모두 침묵했다. 그들의 딸이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 차례 고민한 끝에, 두 사람은 가문의 명예를 선택했다.“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절대로 죽지 못하게 막아라!” 서광문은 분노에 차서 외쳤다. 두 명의 여성 종사가 다가와 강제로 서지은을 데리고 갔다. “놓아줘! 놓아달라고!” 서지은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이때 진서준은 결혼식 무대까지 절반의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절반의 거리는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진서준의 앞에는 아홉 명의 대종사가 서 있었다.서씨 가문의 네 명, 긴씨 가문의 다섯 명! “젊은이, 나는 너의 용기를 흔상하지만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모한 용기로 인해 목숨을 잃었는지 아느냐?” 한 백발의 노인이 천천히 말했다. “세상에! 왕 대종사다! 그가 서씨 가문의 공양인이라니!” “왕안석? 그는 20년 전에 이미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 모든 사람이
아무도 더 이상 금성 등인의 싸움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모두 진서준과 왕안석의 싸움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천재로 불리는 젊은 대종사가 강남 제일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두 사람은 고요한 호수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 기복이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만약 지나가던 행인이 이 모습을 봤더라면 친한 친구 둘이 서로 마주 보는 것뿐이라고 착각할 것이다.“기회는 한 번 뿐이야.”왕안석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한 번이면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내뻗자 천문검은 휙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 들어왔다.왕안석은 진서준의 검을 보자 피식 웃었다.“법보가 있다니. 하지만 이런 구품 법보로 내 공격을 막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직접 만든 잠수단을 입에 넣었다. 강남 제일의 고수를 상대하려 하니 진서준은 당연히 방심할 수 없었다.왕안석의 일격은 어쩌면 뒤에 있는 4백 층 높이의 7성급 호텔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잠수단을 먹자 진서준 체내의 영해는 들끓기 시작했다.강한 기운이 소리 없이 그의 주변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마루에서 구경하던 대종사는 이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무도 대종사 같지 않은데? 기운이 우리랑 달라!”“그러게요. 술법을 연마하는 도사도 같지 않은데요.”“이 세상에는 수선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설마...”한 대종사가 수전자라는 단어를 말하자 사람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대종사는 아무리 대단해도 사람이기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다.지선자라고 해도 자연을 정복할 힘을 지니지 못했다.하지만 수선자는 달랐다. 수선자는 정말 영화에서나 볼법한 신기한 능력들이 있다.“대한민국에는 수선자가 있었어요. 고서를 보면 2천여 년 전 수선자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서 지구의 영기가 급속히 고갈되었다고 합니다. 많은 수선자들이 그 싸움에서 죽었고 수선의 법문은 역대 왕조가 바뀌면서 사라졌어요. 우리가 수련하는 무도는 법문들에서 남긴 잔본에 근거하여 추출한 것이기에 진정한 법문 수
“저년 운이 정말 좋네. 열 명이 넘는 총잡이가 덤벼도 못 죽이다니.”임동식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동식 형님, 이번에 저 여자를 못 처리했으니 다음엔 더 어려워질 겁니다...”“저 여자가 데려온 그 경호원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요. 박진강조차 그 경호원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요.”“그래서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어. 어제 이미 동남아 킬러 업계에서 유명한 킬러인 독룡에게 연락했어. 이틀 후면 명주에 도착할 거야.”임동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룡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혹시 그 국제적으로 돈 많은 부자 열댓 명을 죽인 적 있는 부자 킬러 말씀입니까?”“맞아.”임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킬러를 고용하는 건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꼴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과거 그 킬러가 단지 고용주가 심기를 건드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용주까지 죽인 적도 있다던데요?”자리에 있던 한 노인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살인마와 협력하는 건 사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임동식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큰 파도를 헤쳐야 큰 물고기를 얻는 법이야. 위험이 없다면 내가 굳이 그 킬러를 부를 이유도 없었겠지.”임동식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끌끌 찼지만 속으로는 두려움도 컸다.독룡이 폭주해 임동식까지 죽여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임동식이 죽는다면 그들에겐 대표이사 자리를 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그러나 다들 방금 나눈 대화가 이미 황예은의 사무실에서 황예은이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황예은은 회의실에 미리 설치해 둔 감시 장비 덕분에 대화를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젠장! 어젯밤 총잡이들이 이놈들 짓이었다니!”황현호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이놈들 전부 죽여버릴게요.”“앉아.”황예은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만약 임동식 일당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황현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황예은
진서준의 말에 박진강은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오해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날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우리 아버지는 박서명이란 말이야!”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박진강은 자기 아버지를 들먹이며 진서준을 겁주려 했다.진서준은 냉랭하게 박진강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언제 널 죽인다고 했어?”“그럼 무슨 뜻이야?”박진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그야 당연히 말 그대로 네가 다시는 말을 못 하게 하겠다는 뜻이지.”말이 끝나자마자 진서준은 손가락을 뻗어 박진강의 목을 가볍게 찔렀다.그 순간, 공포스러운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박진강의 목을 꿰뚫었다.진서준의 이 손짓은 어떤 실수도 없이 정확히 박진강의 성대를 끊어버렸다.피가 상처에서 조금씩 흘러나왔고 극심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박진강의 뇌를 맹렬히 뒤흔들었다.박진강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고 입을 크게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으며 그 모습은 심각하게 다친 벙어리 같았다.이 광경에 임동식을 비롯한 이사회 구성원들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이 남자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박서명에게 아들이 많긴 하지만 박진강은 어쨌든 그의 아들 중 하나였다.그런데 진서준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박진강의 성대를 잘라버렸다.이런 치욕을 박씨 가문이 어떻게 그냥 참아 넘기겠는가?“꺼져.”황예은이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황예은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박진강은 아픔을 참고 비틀거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박진강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 박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연결되었지만 박진강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전화 너머에서는 박서명의 목소리만 들려왔다.“진강아, 이른 아침에 전화하다니, 좋은 소식이라도 전하려는 거야?”그러나 박진강은 아무리 입을 열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박서명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의아해했다.“진강아, 말하지 않고 뭐 해?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이 녀석. 계속 장난치면
박진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황예은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누님, 어젯밤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내가 명주시 전역을 샅샅이 뒤지게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어요.”황현호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황예은이 멍청한 남동생을 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러웠다.“어젯밤 일은 더 이상 묻지 마. 넌 먼저 내 사무실로 가서 기다려. 할 말이 있어.”“알았어요.”황현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진서준 옆을 지날 때 황예은에게 물었다.“누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선을 돌려 진서준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박진강 역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년의 정체를 탐색했다.“새로 고용한 경호원이야.”황예은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이 사람이 경호원이라고요? 농담하지 마세요.”황현호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겉모습만 봐도 이 청년은 경호원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었다.“누님, 이 녀석은 나보다도 더 약한 것 같은데요? 누님이 경호원을 원한다면 내가 직접 찾아줄게요.”황현호가 급히 말했다.“내 말을 못 알아듣겠어?”황예은이 얼굴을 굳히며 화내자 황현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황급히 회의실에서 달아났다.박진강은 앞으로 다가와 황예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예은 누님이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저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말을 마친 박진강은 발걸음을 옮겨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황예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뜻이죠?”박진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내 멍청한 남동생을 이용해 내게 독을 탄 짓, 내가 모를 줄 알았어?”그 말에 박진강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예은 누님,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박진강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저 녀석 잡아!”황예은도 더 이상 쓸데없는 한담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사회 구성원은 많지 않았고 황씨 가문을 제외하면 총 여덟 명이었다.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이 여덟 명은 모두 노련한 여우였다.황예은이 처음 자리에 올랐을 때도 이 여우들에게 꽤나 당했었지만 나중에 배로 되갚아주었다.다들 황예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는 섣불리 황예은과 정면으로 충돌하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황예은이 사라지고 남은 건 황경영의 어리석고 멍청한 아들 황현호뿐이었다.그러니 이 노련한 여우들은 당연히 이런 멍청이가 자기 머리 위에 올라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황현호는 한눈에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동식 삼촌, 이렇게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황현호는 의장석으로 걸어가 왼쪽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에게 공손하게 물었다.임동식은 황씨 그룹의 두 번째 주주이자 회사의 원로였다.“현호야, 너희 아버지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너희 누나도 어젯밤 큰 일을 당해 생사가 불분명하구나.”임동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우리 그룹은 작은 회사가 아니야. 하루도 주인이 없을 수 없어.”이 말을 듣자 황현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기를 몰아붙이려는 것 같았다.사실 임동식은 황현호 같은 멍청이와 쓸데없이 말싸움하고 싶지도 않았다.긴말은 필요 없고, 어차피 말해봐야 황현호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러니 차라리 명확하고 간결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동식 삼촌, 제가 아직 여기 있잖아요?”황현호가 모르는 척하며 말하자 임동식은 미소를 지었다.“현호야, 네가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는 걸 동식 삼촌은 다 지켜봤어. 네 사업 감각은 솔직히 평범하잖아.”“그럼 동식 삼촌의 의도는 무엇인가요?”“넌 우선 전력을 다해 너희 누나를 찾아. 회사는 일단 내가 관리하고 네 누나를 찾으면 다시 네 누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줄게.”황현호는 어리석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만약 이 자리를 지금 넘겨주기만 하면 임동식은 즉시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