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이 한보영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 허사연은 감동해서 울 뻔했다.허사연은 여동생이 자기를 도와주려는 것을 눈치챘다.“서준 씨, 다친 데는 없어요?”아무도 없자 그제야 허사연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다쳤어.”진서준이 기침하며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어딜 다쳤어요? 봐봐요.”허사연이 깜짝 놀라면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방금 김문호와 싸우면서 거의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서 지금 양기가 너무 왕성해. 양기를 꺼버리지 않으면 심한 내상을 입을 수 있어. 손 만져봐. 뜨겁지?”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으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었다.“어머, 왜 이렇게 뜨거워요?”허사연은 진서준의 말을 의심했으나 불같이 뜨거운 체온에 깜짝 놀라 삽시간에 의심이 사라졌다.사실 이건 진서준의 계략이었고 영기를 이용해 자신의 체온을 순간적으로 높이는 수법이었다.“서준 씨,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돼요.”허사연이 놀라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음기를 흡수하면 좋아질 수 있긴 한데...”진서준은 아픈 척하며 무기력하게 말했다.“네?”허사연이 움찔하더니 바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잘 익은 사과와 같았다.“조...조금만 기다리면 안 돼요? 윤진이와 보영 씨가 잠들면 우리가...일을 치르면...”여기까지 말한 허사연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진서준의 품에 묻으며 귀뿌리까지 빨개졌다.진서준은 오해가 커진 걸 느끼고 깜짝 놀랐다.그저 허사연이 키스해 주길 바란 건데 그 일을 생각할 줄 몰랐다.“사연아, 그렇게 복잡할 건 없고 입으로 음기만 불어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진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래도 돼요?”허사연이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행여 진서준의 몸에 이상이 생길까 봐 그녀는 자기 한 몸 바쳐서라도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되지. 한번 해봐.”“그럼 해볼게요.”허사연은 진서준의 목을 안고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두 사람은 키스 삼매경에 빠졌고 진서준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사연의
2층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허윤진의 눈빛에는 분노와 부러움과 질투가 섞여 있었다....이튿날 아침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은 기차역으로 진서라를 마중하러 왔다.“오빠.”진서준을 발견한 진서라는 달려오면서 진서준의 품에 와락 안겼다.주위의 여객들이 진서준을 향해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곁에 세 명의 미인이 서 있었고 그중 두 명은 자매였고 품에 또 한 명의 미인을 안고 있으니 마냥 부럽기만 했다.“서라야. 오빠가 있잖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진서준은 진서라의 등을 다독이며 작은 소리로 달랬다.“오빠만 믿을게.”진서라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새언니, 윤진 씨, 보영 언니.”진서라는 허사연 일행에게 인사를 건넸다.새언니라는 호칭에 허사연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요즘 더 야윈 거 아니에요? 집에 가서 맛있는 보양식을 해줄게요.빨리 가요.”“새언니, 고마워요.”진서라가 웃으며 말했다.“고맙긴요.”진서준은 네 명의 미인과 함께 별장으로 돌아왔다.네 사람을 별장에 내려놓고 진서준이 말했다.“잠깐 나갔다 올게. 늦게나 들어올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밥 먹어.”“조심해서 다녀와요.”허사연이 걱정스레 말했다.“걱정하지 마.”진서준은 차를 운전해 바로 운대산으로 가지 않고 김씨 가문으로 향했다.요즘 김연아가 어떻게 지내는지 만나러 갔다....결혼식 때문에 배수정은 김씨 가문에 반 달 남짓 더 머물렀다.의식주행은 신경 쓸 것 없으나 유일한 고민이라면 김씨 가문의 한 도련님이 매일 배수정을 보러왔다.이 도련님은 하필 김씨 가문의 직계 후손이라 화도 내지 못하고 마냥 참고만 있었다.띵똥...벨소리가 울렸다.배수정은 잔뜩 귀찮은 얼굴로 문을 열었다.문을 열어보니 멋진 청년이 꽃다발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배수정을 바라보고 있었다.“수정 씨, 이건 방금 호숫가에서 꺾어온 장미예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김태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고마워요. 그런데 저는 꽃을 좋아
갑자기 나타난 남자는 바로 어제저녁 배수정과 연락했던 진서준이었다.진서준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주방에 있는 김태영이 생각나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손으로 주방을 가리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진서준은 배수정의 손짓을 알아채고 2층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태영 씨, 밥해서 먹고 있어요. 전 머리가 아파 방에 올라가 쉴게요.”말하고 나서 김태영의 답을 듣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가 진서준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왜 이 시간에 왔어요?”배수정이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언제 와요? 밤에 오면 간통하는 것 같잖아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간통이라는 말에 배수정의 예쁜 얼굴이 빨개지면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해요?”“장난이에요. 화내지 마요.”진서준이 허허 웃더니 이내 정색해서 말했다.“연아는요? 어느 별장에 있어요?”“전에는 제 옆 별장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저도 몰라요. 나중에 김태영한테 물어보면 어디 있는지 알 거예요.”배수정이 말했다.“서준 씨, 한 가지 일을 서준 씨는 아마 모를 거예요.”“무슨 일요?”진서준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배수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서준이 모르는 일이 아직도 남아있단 말인가?“전에 고양시에서 탁씨 성을 가진 사람과 결투한 적 있죠?”배수정이 물었다.“맞아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탁현수, 남주성 일위 일품 대종사!“사실 서준 씨가 탁현수와 결투한 날 연아 씨도 있었어요. 서준 씨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김씨 가문의 종사님도 모시고 갔어요.배수정이 감개무량하게 말했다.“뭐라고요?”진서준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이 일을 진서준은 정말 모르고 있었다.“그럼 연아가 날 보호하려고 김형섭의 요구대로 김씨 가문으로 돌아갔단 말인가요?”“맞아요. 전에 연아 씨가 말해줬어요. 연아 씨는 서준 씨가 알기 원하지 않더라고요.”배수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연아 씨는 착한 여자인데 아쉽네요...”진서준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나 때문에 연아
김태영은 배수정이 눈앞의 양아치한테 꼬투리라도 잡힌 줄로 생각했다.진서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김태영을 바라봤다.김씨 가문의 모든 이에 대해 아무런 호감이 없었다.“3초 동안 시간 주겠으니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른다고?”김태영이 웃었다.“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긴 김씨 가문이고 나는 김씨 가문 직계 후손이야. 감히 날 건드려?”김태영이 다가가더니 손가락으로 진서준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너야말로 수정 씨 꼬투리 잡은 거 있으면 당장 내놔. 아니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할 거야.”배수정은 당황해하며 결코 진서준과 김태영이 충돌이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만일 김씨 가문 종사들이 알고 달려오면 진서준은 영락없이 잡히고 만다.“셋.”진서준은 김태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냉랭하게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김태영이 잠깐 멍해 있더니 미친 듯이 웃어댔다.“대단한 자식이네. 내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네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볼 거야.”김태영은 진서준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이곳은 김씨 가문 구역이기에 외부인은 절대 이곳에서 김씨 가족을 건드릴 수 없었다.“둘.”진서준의 눈빛이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워지면서 마치 김태영을 반으로 쪼개버릴 것만 같았다.김태영은 진서준의 눈빛에 깜짝 놀라며 발밑으로 찬 기운이 올라왔다.“하나.”“안 돼요.”배수정이 갑자기 진서준을 끌어안으며 진서준의 입술을 깨물었다.진서준은 순간 멍해지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배수정을 바라보았다.한쪽에 서 있던 김태영도 바보처럼 멍해 있었다.반 달 동안이나 대시했던 여신이 갑자기 자기가 보는 앞에서 강제적으로 다른 남자에게 키스하고 있다.김태영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활활 타오르면서 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질렀다.“대체 뭐 하는 짓이야?”진서준은 그제야 배수정을 급히 뿌리쳤다.“수정 씨...”“키스해달라면서요? 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배수정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기더니
진서준의 추측대로 김연아는 장원 제일 안쪽에 자리 잡은 별장에 있었다.두 가문의 혼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김형섭의 아내 서혜련은 두 명의 종사를 파견해 김연아를 감시하게 했고 한 발짝도 별장 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마치 새장에 갇힌 가여운 새와도 같았다.“사랑하는 언니. 이제 곧 시집가겠는데 기분이 어때? 설레고 행복해?”김혜민이 별장에 들어서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김연아를 바라보았다.저번에 서울에서 받은 굴욕을 배로 갚아줄 기회가 생겼다.김연아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서씨 가문의 바보와 결혼한다니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김혜민의 도발에도 김연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흔들림이 없었다.화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예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김연아가 아무 말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자 김혜민은 울화가 치밀었다.“김연아, 넌 화 안 나?”김연아가 왜 이렇게 태연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도리대로라면 불같이 화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만일 자기가 이런 일을 당한다면 상대와 목숨 걸고 싸웠을 것이다.“왜 화내야 해?”김연아는 전혀 흥분하지 않고 되물었다.“나 때문에 바보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나를 원망하지 않아?”김혜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섭게 노려보았다.김연아가 울분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라도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김연아의 표정은 물론 심지어 눈빛도 전혀 흔들림이 없어 김혜민은 좌절감을 느꼈다.“왜 원망해야 해? 올 건 언제라도 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인데 누굴 원망해?”김연아가 담담하게 말했다.김씨 가문으로 돌아올 때 김연아는 자신이 정략결혼의 피해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었다.전에 김형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딸 김연아와 아내를 포기했다면 지금 가족의 이익을 위해 똑같이 김연아를 희생할 수 있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린 결정이기에 김연아는 후회하지 않았다.“이제 와서 무슨 잘난 척이야? 분명히 화가 나면서 왜 숨겨?”김혜민은 히스테리를 부리며 김연아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이 년
“왜 왔어요?”180도로 변한 김연아의 태도에 진서준은 멍하니 서 있었다.‘갑자기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냉랭해졌지? 늦게 왔다고 화가 났나?’“연아 씨 구하러 왔어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연아 씨가 나 때문에 김씨 가문에 온 줄 몰랐어요. 만일 알았더라면 일찍 왔을 텐데.”진서준은 사과하는 한편 설명하면서 얼굴에는 온통 후회로 가득했다.“구한다고요?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난 내 발로 걸어왔어요.”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뼛속까지 꽁꽁 얼려버릴 듯 차가워 흠칫 놀랐다.“뭐라고요? 자발적으로 왔다고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진서준은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수정 씨가 나한테 말해줬어요. 연아 씨가 나를 위해...”“어디서 생긴 자신감이죠? 내가 왜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겠어요?”김연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김씨 가문으로 온 건 나의 장래성과 미래를 위한 것이지 서준 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김연아의 모진 말은 비수처럼 진서준의 마음을 후벼팠다.그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었다.‘왜 이렇게 됐지? 나를 보호하려고 김씨 가문으로 온 거 아니였어?’멍한 건 진서준뿐만 아니라 김혜민도 마찬가지였다.그때 김연아가 얼마나 저항했는지 김혜민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지금 이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고?김연아의 겉모습은 냉랭했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진서준에게 사과했다.‘미안해요. 나 때문에 김씨 가문, 서씨 가문과 대적하는 게 싫어요. 제발 용서해줘요. 나는 서준 씨가 무사하길 바래요. 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지 말아요. 서준 씨는 가족도 있고 사연 씨도 있고 그리고 서준 씨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요.’소파를 손으로 힘껏 잡고 내색을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이 얼마나 강대한지 김연아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동시에 두 거물과 싸운다면 진서준은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지금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진서준이 무사하게 사는 것이다.“아니야. 연아 씨 지금 나를 속이고 있는 거
김씨 가문에서 나와 진서준은 차를 운전해 교외의 한 호숫가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진서준은 호숫가에 서서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아...”그 소리는 귀청이 째질 듯 굉장했고 무서운 기운이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우르릉 쾅...조용하던 호수의 수면이 갑자기 물결이 일렁이면서 마치 수백 개의 수류탄을 던진 듯 들끓기 시작했다.주위에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지 진서준의 고함을 들은 일반인은 아마 고막이 터져 귀머거리가 됐을 것이다.가슴속의 울분을 한바탕 쏟아낸 진서준은 그제야 좀 진정이 됐다.호수의 수면 위에 죽은 물고기와 새우가 둥둥 떠다녀 마치 폭격 맞은 것 같았다.‘연아가 왜 저렇게 변했지? 김씨 가문 사람들이 세뇌라도 시켰나?’진서준이 주먹으로 옆에 있는 나무를 쾅 하고 내리쳤다.그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허리가 잘리면서 산산조각이 났다.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김연아같이 강인한 여자가 정말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자발적으로 김씨 가문으로 돌아갔을까?’사랑에 있어 진서준은 여자보다 심지어 그 어떤 남자보다도 더 미련했다.이때까지 딱 두 명과 사귀어봤는데 전의 유지수는 진서준을 장난감 취급했지만 그는 끝까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김연아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진서준도 계속 노력할 의미가 없었다.심지어 운대산도 가기 싫어져 바로 별장으로 운전해서 돌아왔다.“늦어서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어요?”갑자기 돌아온 진서준을 보고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진서준은 아무 말 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오빠 무슨 일 있어?”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진서라가 다가오면서 물었다.“오빠 울었어?”진서준의 눈가의 눈물 흔적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허사연과 나머지 세 사람도 다가와 진서준을 둘러쌌다.“서준 씨, 무슨 일이 생겼어요? 왜 울었어요?”“빨리 말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속에 담아두지 말고 꺼내야 덜 답답해요”“서준 씨 빨리 말해요 대체 무슨 일이 생겼어요?”그녀들은
“연아 씨가 허영심 때문에 김씨 가문에 들어갔다고?”“절대 그럴 리 없어요. 연아 씨는 서준 씨가 자기 때문에 위험에 빠질까 봐 그렇게 말했을 거예요.”허사연의 한마디가 정곡을 찔렀다.허사연의 말대로 김연아는 확실히 진서준이 자기 때문에 위험해질까 봐 두려워 냉담하게 행동하며, 일부러 오해하게 만든 것이었다.“언니 말이 맞아. 연아 언니는 오빠가 위험할까 봐 그런 거야.”진서라도 말했다.“내가 만일 연아 언니였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아. 오빠, 생각해 봐. 만일 우리가 없었더라면 오빠는 내일 연아 언니 말에 상처받아 결혼식장에 가지 않을 거 아니야? 이게 바로 연아 언니가 바라는 바야.”진서준은 들으면 들을수록 맞는 말인 것 같았다.김연아가 눈을 뜨고 진서준을 봤을 때 희열과 놀라움이 가득 찬 눈빛은 진심이 확실했다.“내가...내가 정말 바보야.”진서준은 화가 나서 무릎을 마구 때렸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빨리 준비해서 내일 연아 씨 구해내고 서준 씨도 안전하게 돌아와야 해요. 아니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일 반드시 연아를 안전하게 구해서 올게.”진서준이 이어서 말했다.“내일은 아무도 밖에 나가지 말고, 가능하다면 장소를 바꿔 잘 숨어있어. 내가 연아 구해내면 당장 강남을 떠.”“어디로 가요?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이 바로 쫓아올 게 뻔해요.”한보영이 말했다.“서남 국경 강주로 가요.”진서준이 강경한 눈빛으로 말했다.“거기 가서 뭐 할 건데요?”허사연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물었다.“성약당이 그곳에 있어. 전에 들은 건데 성약당에 은영과가 있다고 했어.”진서준이 설명했다.“첫 번째는 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의 1차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두 번째는 은영과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수사가 될 수 있게 해줄 거야.”진서준은 김연아만 구조하면 강주로 갈 계획을 일찍부터 하고 있었다.강주시는 강남에서 몇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씨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