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냉동고를 열었다.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나왔고, 그와 함께 신선한 고깃덩어리들이 진서준 앞에 나타났다.진서준은 이급 대종사 수준으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체내의 혈기와 정력을 대량으로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체내의 영기만으로는 이를 보충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이제 50톤의 고기가 생겼으니,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 만약 이 고기를 누렁이 같은 요괴의 고기로 대체할 수 있었다면 진서준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처음 누렁이를 굴복시킬 때, 누렁이가 제때 굴복하지 않았다면 진서준은 그를 죽여서 먹으려고 했을 것이다.누렁이도 진서준의 생각을 알았다면 겁에 질려 떨었을 것이다. 누렁이는 요괴가 사람을 먹는 것은 익숙했지만, 사람이 요괴를 먹는 것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상도 다.“진 마스터님, 이 고기를 혼자 다 먹을 수 있겠어요?”권해철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대식가 백 명이 와도 몇 달은 먹어야 할 양인데...’권해철은 전에 진서준과 함께 식사한 적이 있었기에 그의 평소 식사량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서준이 열흘 만에 이 고기를 다 먹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물론 먹을 수 있죠. 안 그랬으면 이렇게 많이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은 말하고 나서 다시 보냉백 하나를 꺼냈다.“이건 장씨 가문에서 두 사람을 위해 준비한 음식입니다.”서지은과 권해철을 위한 음식은 고기와 채소가 잘 조합된 도시락들이었다.“이제부터 저는 수련을 시작할 거예요.”진서준은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어 수천 개의 나뭇가지를 깎아내어 고기를 꼬챙이에 꿰었다.서지은은 호기심에 고기를 한 조각 먹어보았는데 평소 먹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새에 진서준은 이미 20개의 꼬치구이를 먹어 치웠다.‘이게 가능한 일이야?’서지은은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진서준은 꼬치를 먹으면서 장철결을 운행했다.장철결이 운행되자 부풀었던 배는 금방 평평해졌다. 구운 고기에 포함된 정력은
서지은은 깡충깡충 뛰며 연못가로 달려가 손으로 물을 만져보았다.“와, 차가워!”서지은은 재빨리 손을 움츠렸다.지금은 날씨도 예전처럼 덥지 않았고 운대산 위도 안개에 휩싸여 있던 탓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연못의 물도 따뜻하지 않았다.진서준이 연못가에 걸어오더니 말했다.“잠깐만 기다려.”“뭐 하려고?”서지은이 물었다.“곧 알게 될 거야.”말을 마친 진서준은 두 손을 연못에 담갔다.곧이어 진서준의 몸에서 장청의 힘이 흘러나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연못 위에 뜨거운 김이 피어올랐다!서지은은 그 자리에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서준, 넌 못 하는 게 뭐야?”“애 낳는 거.”진서준이 서지은의 물음에 답했다.서지은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차가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농담도 할 줄 아네.”진서준과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진서준은 말수가 적었다. 그 때문에 서지은은 진서준이 엄청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진서준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리며 연못에서 손을 빼냈다.“됐어, 얼른 씻어. 하지만 절대 중간 쪽으로는 가지 마. 거긴 너무 깊으니까.”“맞다, 그리고 근처에 동물들도 있으니까 그것도 조심하고.”말을 마친 진서준은 다시 수련을 위해 자리를 돌아가려 했다.“가지 마,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돼? 나 금방 씻을 수 있어!”서지은은 이런 곳에 혼자 있기 무서웠다.특히 진서준에게서 주위에 동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공포감은 배가 되었다.진서준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그럼 빨리 씻어.”서지은은 다급히 옷을 벗으며 진서준이 혹시라도 자신을 훔쳐볼까 봐 흘끔흘끔 그를 쳐다보았다.옷을 모두 벗은 서지은은 연못에 뛰어들었다.“아, 시원해!”5일 동안이나 씻지 못한 서지은은 몸을 물에 담그자마자 온몸의 모공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서지은은 혹시라도 자신이 진서준의 수련에 방해가 될까 봐 최대한 적당히 몸을 담그고 일어나려 했다.그녀가 몸을
십여 분이 지났다.옷을 다시 챙겨 입은 서지은의 얼굴에서도 홍조가 점차 사라져갔다.“방금 일은...”진서준이 해명을 위해 입을 열었지만 서지은이 그의 말을 끊었다.“나도 알아. 그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 다 내 탓이니까 네가 자책할 필요는 없어.”서지은이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다음부터 이 일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말자.”서지은은 겉으로는 냉정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온몸이 화끈거렸다.24년 동안 꽁꽁 숨겨왔던 몸을 고작 며칠만 같이 지낸 남자에게 다 보여줘 버리다니!서지은의 말에 진서준은 더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야겠어. 내가 여자친구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널 책임 졌을 거야.”진서준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서지은의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씁쓸하고도 시큼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울컥 밀려왔다.서지은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진서준이 자신의 불편한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숨겼다.“괜찮아, 네가 여자친구가 없다고 해도 날 책임 지라는 말은 안 할 테니까. 어쨌든 넌 이미 내 목숨을 구해줬었잖아!”말을 마친 서지은이 산골짜기로 걸어갔다.진서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서지은의 뒤를 따랐다.산골짜기로 돌아오자 권해철이 곧장 달려와 둘을 맞이했다.“진 상경님, 방금 무슨 일 있었나요? 사람 비명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진서준이 기분 나쁜 티를 내며 퉁명스레 대답했다.“마스터님 연습이나 더 하시죠, 쓸데없는 질문이 많으시네요.”권해철은 진서준의 대답에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진서준도 바로 자리에 앉아 수련을 시작했지만 조금 전의 그 장면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진서준 그 자식은 이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 한 번을 안 하네.”허사연이 진서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적힌 인형을 두어 번 쥐어박으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진서준이 금운에 가서 해야 할 일을 떠올리자 허사연은 다시금 걱정되기 시작했다.“무
자매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누렁이를 데리고 차를 몰아 금운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번갈아 운전해가며 거의 꼬박 하루를 달려 밤이 되어서야 금운에 도착했다.“일단 간단히 묵을 곳부터 찾자. 내일 장씨 가문 찾아가서 상황 물어보기로 하고!”밤이 깊어졌다.수련 중이던 진서준은 옆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그는 바로 눈을 뜨고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서지은이 이를 딱딱 부딪치며 창백한 얼굴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발견한 진서준이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지은아, 무슨 일이야?”“나... 서준아, 나 너무 추워...”서지은은 진서준이 다가온 것을 발견하자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오후부터 서지은은 자신의 체온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서지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겼지만 밤이 깊어지자 서지은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진서준이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서지은은 아마 아침에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진서준은 곧바로 서지은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얼음장처럼 차가웠다.만약 열이 나는 것이라면 이 정도로 차갑지 않았을 것이다.“너 점심에 목욕할 때, 혹시 무슨 벌레한테 물린 적 있어?”진서준이 다급하게 물었다.“아... 아니, 없... 없는 것 같은데.”서지은은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일단 잠깐만 참아봐, 내가 맥 짚어볼 테니까!”서지은의 맥을 짚어본 진서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너 중독 됐어. 독이 온몸에 퍼진 것 같아. 치료하려면 물론 곳을 찾아서 독을 빼내야 해.”서지은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진서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그냥... 그냥 네가 알아서 치료 해줘.”서지은이 대답했다.“그럼 실례할게.”진서준은 서지은을 끌어안고 점심에 둘이 함께 있었던 연못으로 갔다.연못가에 도착하니 서지은은 이미 잠에 빠져있었다.진서준은 그녀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 속옷만 남겨두었다.진서준이 속옷만 입은 서지은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서지은의 마음이 한순간에 복잡해졌다.그녀는 단 하루 만에 인생에서 엄청난 일이라고 여겨질 사건을 두 번씩이나 겪을 줄은 몰랐다.비록 이 두 사건 모두 진서준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어쩐지 계속해서 마음이 아파왔다.특히 진서준에게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더욱 서글퍼졌다.“됐어, 다 내 잘못이야. 진서준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다 날 구하기 위해서 했던 일이니까.”서지은은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산골짜기로 돌아갔다.진서준이 만약 서지은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지금쯤 서지은보다 더 답답해 했을 것이다.그는 실수로 서지은의 맨몸을 봤을 뿐, 절대 그런 짓은 한 적이 없다.“진서준, 밥 먹자.”서지은의 목소리는 며칠 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이제 진서준은 그녀에게 단순한 생명의 은인이 아니었다.그녀의 인생에 나타난 첫 남자였다.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서지은은 진서준과 이미 그런 일이 생겨버린 이상, 다른 남자에게는 시집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진서준이 그녀를 받아주든 말든 딱히 상관없었다.“갈게.”진서준이 감았던 눈을 떠 서지은이 이미 구워놓은 열댓 개의 고기 꼬치를 발견했다.이건 뭐지? 설마 어젯밤에 내가 구해줬던 것 때문에 고마워서 이러는 걸까?진서준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뜨거우니까 조심해, 내가 불어줄게.”서지은은 진서준에게 꼬치를 건네주기 전, 입김을 불어 고기를 식혀주었다.“맞다, 고기만 먹지 말고 가끔은 채소도 먹어야 해. 이건 내가 근처에서 따온 채소들이야.”서지은은 다른 한 손에 꼬치에 꿴 채 불에 구운 채소를 들고 있었다.곁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권해철은 몰래 진서준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역시 진 상경님인가, 여자 꼬시는 데는 도가 트셨어.고작 며칠 만에 서광문 딸을 홀려버리다니.진서준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너무 정성 들이지 않아도 돼, 어젯밤 너를 구했던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서지은이 손길을 멈추고 얼굴을 붉히며
장조인이 말했다.“네? 50톤이요? 서준 씨는 본인이 무슨 누렁이인 줄 안대요?”허윤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설마 그 산속에 누렁이 여러 마리 있는 건가?장조인은 허허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가씨께서 진 상경님이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저희 아들놈과 함께 운대산 밑은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마침 운대산 별장 안에 있는 별채에 두 분이 머무실 만한 공간도 있으니까요.”“좋아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허사연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바로 제안을 수락했다.장도윤은 곧바로 허사연과 허윤진, 그리고 누렁이까지 데리고 운대산 별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진서준이 귀군을 처리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별장 쪽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했다.게다가 적잖은 사람들이 운대산의 신선이 내려오길 학수고대하며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있었다.“서준 씨가 정말 이 산 위에 있다는 말인가요?”허사연은 흰 구름에 둘러싸인 운대산을 가리키며 물었다.“네, 원래 운대산은 붉은 안개로만 뒤덮여 있었는데, 진 선생님께서 이 괴현상을 바로 없애주셨습니다.”장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곧이어 장도윤이 계속해서 덧붙였다,“맞다, 진 선생님께서 산으로 올라가실 때 저흰 용의 울음소리도 들었어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서준이 고양시에서 탁현수와 벌이던 정면 대결을 떠올렸다.그 싸움에서도 진서준은 용을 소환했었고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었다.그렇다면 진서준은 무사한 게 맞았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용대산 위에서 수련 중이었다.별장에 도착하자 장도윤이 말했다.“두 분께서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장도윤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장도윤이 자리를 뜨자 허사연이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진서준한테 아무 일 없으면 된 거야. 하지만 김연아가 머지않아 곧 결혼할 거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문제인데. 마지막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진서준이 만
운대산 위.장씨 가문에서 보낸 50톤의 정육은 정말 진서준이 혼자 다 먹어버렸다.첫날, 진서준 혼자서 반 박스의 정육을 다 먹어버리는 광경을 본 권해철과 서지은은 진서준의 말이 허세만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이 모든 고기를 다 먹어버리다니!이 순간, 진서준 체내의 영해는 한 길 높이로 상승했고 혈해 또한 훨씬 짙어졌다.진서준이 팔을 휘두르면 그의 팔에서는 뼈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권 마스터님, 아직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그동안 진서준은 밤낮없이 수련만 해왔다.휴대폰 배터리도 이미 다 소진되었다.김연아의 결혼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서준은 산에 오르기 전, 권해철에게 옛날 폰 하나를 갖고 올 것을 부탁했다.역시 옛날 폰이 내구성도 강하고 배터리 수명도 길었다.“아직 이틀 남았습니다.”권해철이 대답했다.“갑시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네요!”진서준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진서준은 남은 이틀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실패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권해철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진 상경님, 지금 상경님 실력은 어느 정도이신가요?”진서준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해진 것 같네요.”권해철이 깊은 찬 숨을 들이켰다.적어도 두 배는 강해졌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진서준이 산에서 수련한 지는 고작 열흘 남짓이었다.열흘 만에 실력이 두 배나 상승해버리다니, 그의 수련 속도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서지은은 뭔가 하산하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그녀는 하산하고 나면 진서준과의 연락이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서지은의 아쉬운 표정을 보던 진서준은 단지 그녀가 이 세속에서 벗어난 환경을 떠나기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나중에 산에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와도 돼.”진서준은 말을 마치고 서지은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손등에 부적 하나를 남겨주었다.“이 부적만 갖고 있으면 이 호산대진이 너에게만큼은 통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건 너만 가
한서강이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 한보영 씨가 누구한테 납치됐는데요?”허사연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질문했다.“정월문의 장문인, 김문호한테요!”전에 고양시 전투에서 진서준에게 패배했던 문희수와 경두진 모두 정월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정월문의 두 장로를 순식간에 폐위시켜 김문호의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그 날의 복수를 위해 김문호는 산에서 나오자마자 고양시로 온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금운의 운대산 위로 올라가 수련 중이었다.진서준을 나오게 하려면 김문호는 어쩔 수 없이 한보영을 납치해 진서준이 제 발로 본인을 직접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하지만 저는 지금 진서준 씨랑 연락이 안 되는걸요!”허사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진 상경님께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거죠?”한서강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너무 조급해 하지는 마세요. 진서준 씨는 분명 이틀 내로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돌아오면 바로 진서준 씨에게 이 소식을 알려서 하루빨리 아가씨부터 구할게요.”허사연이 한 마디 덧붙였다.“김문호에게 금운으로 오라고 전하세요. 진서준 씨가 지금 금운에 있거든요. 지금은 산에서 수련 중이지만요. 김문호가 정말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진서준 씨가 만든 진법도 어디 한 번 뚫어보라고 하세요!”“네, 지금 당장 김문호에게 전화해서 전하죠.”전화 통화가 끊기자 허윤진이 서둘러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 한보영 씨가 납치됐다니?”“응, 한씨 가문의 한보영 씨가 김문호한테 납치당했대. 김문호는 정월문의 장문인인데 전에 전서준이 폐위시켰던 정월문의 두 장로 중 한 명이야.”허사연이 설명해 주었다.허윤진은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새어 나오는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김문호 그것참 나쁜 녀석이네. 감히 여자를 납치하다니, 그런 놈도 장로라는 게 부끄럽다!”“답답하네...”어이가 없긴 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지금으로서는 진서준이 하루빨리 하산하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보영도 위험해질
장조인은 그 말에 심기가 불편했다.“진 선생님, 당시 제가 반드시 도와드리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협력 관계인 건 맞지만 저도 우리 장씨 가문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움직여야 했습니다.”장조인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뀐 걸 눈치채자 신민준과 우진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둘은 장조인 앞에 서서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어제 진서준이 참격 하나로 고성운과 육위준을 베었다는 소식은 이미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의 실력으로 진서준을 막는 건 어림없는 일임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조인에게 그들이 장씨 가문에 대한 충성을 보여줘야 했다.진서준은 장조인의 해명을 못 들은 듯, 권해철의 등을 만지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치료가 끝났습니다. 이제 권 마스터님은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권해철도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권해철의 심각하게 부러진 뼈들이 기적처럼 모두 이어진 것이다.“진 상경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권해철은 흥분한 나머지 병상에서 벌떡 일어서 옷도 챙기지 않고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으려 했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권해철을 붙들어 무릎을 꿇지 못하게 했다.“권 마스터님, 이럴 필요 없습니다. 권 마스터님이 구지범에게 당한 것도 저 때문이니 말입니다.”진서준은 권해철을 일으켜 세우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권 마스터님, 일단 옷을 갈아입으세요. 저는 저 사람들과 밖에서 좀 더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네...”권해철은 그제야 자기가 알몸이란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진서준은 돌아서서 장조인을 힐끗 보고는 병실을 떠났다.장조인은 지금 진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든, 장조인은 지금 진서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병실을 나선 진서준은 공원 뒤쪽 정원으로 걸어갔다.정원에는 작은 화원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이미 많은 환자와 가족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장주호와 신민준은 이 청년이 왜 그런 허세 가득한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즉시 깨달았다.진서준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진서준은 강남 서열 3위 가문 따위가 안 중에 있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진서준 한 사람만으로도 장씨 가문 내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장조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하고 나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진 선생님, 제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대신해 사과드립니다.”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던 장문주는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자기 시력에 문제가 생겨 헛것을 본 걸까, 아니면 아직 잠이 덜 깬 채 꿈을 꾸고 있는 걸까?.장씨 가문 가주가 한 청년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다니,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더 끔찍한 건 장문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장조인이 진서준에게 사과한 걸 보고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들의 눈에는 장조인의 사과가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이미 숨이 끊어질 듯했던 장문주는 이 충격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고 결국 고개를 떨군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허나 장문주의 죽음은 방 안의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그들의 눈에 장문주는 있으나 마나 한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개미 한 마리의 생사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장조인의 사과에도 진서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진서준은 고개를 푹 숙인 장조인을 차갑게 쓱 훑어본 뒤, 더 이상 장조인을 신경 쓰지 않고 권해철의 치료에만 집중했다.장조인은 허리를 굽힌 채, 진서준이 대꾸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진서준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장조인은 내심 의아해졌다.결국 장조인이 고개를 들어보니 진서준은 자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권해철의 치료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장조인의 마음속에는 순간 분노가 피어올랐다.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본인은 당당한 장씨 가문의 가주 장조인이었다.진서준이 아무리
칼처럼 날카로운 그 기운이 순식간에 신민준의 강기를 찢어버렸다.이어 그 기운이 신민준을 지나쳐 장주호의 오른쪽 귀를 스쳐 지나갔다.푹!장주호의 한 쪽 귀가 시뻘건 피를 튀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파도가 일어날 때의 물보라처럼 대량의 피가 장주호의 귀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실의 하얀 벽은 순간 섬뜩한 빨간색으로 물들었다.“아악!”장주호의 입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신민준은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즉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한쪽 귀밖에 남지 않은 장주호의 모습을 발견했다.난생처음 보는 광경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다.자기 강기가 이 청년 앞에서 힘없는 종이처럼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넌 도대체 누구야? 왜 우리 장씨 가문을 이 정도로 물고 늘어지는 거야?”상황 파악이 빠른 신민준은 즉시 이 청년이 자기가 도무지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란 걸 깨달았다.오직 장씨 가문 내 지의방에 오른 높은 인물만이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아까 분명 말했지? 장조인을 부르라고.”진서준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대응했다.신민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바로 가주에게 알리겠어. 기다려 봐.”바닥에 누워있는 장문주 역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해졌다.장주호와 신민준이 자기를 도와 복수해 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복수는커녕 장주호가 오히려 한쪽 귀를 잃게 되었다.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장씨 가문 가주가 직접 오게 된다니, 상황은 이미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이 청년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신민준은 장주호를 데리고 병실에서 나가 의사를 불러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는 이내 장조인에게 전화해 장씨 가문의 대종사도 데려오라고 요청했다.장조인은 이 일을 듣고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그 사람이 국안부 사람은 아닐까? 혹시 국안부가 우리 계획을 눈치챈 건가?”신민준은 머리를 저으며 대답했다.“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우리 장씨 가문 계획을 모르는 것 같
장주호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사람의 복장으로 보아 청년인 것 같았다.요즘 청년들은 언제부터 장씨 가문을 하찮게 여길 정도로 이렇게 대담해진 건가?이제 장씨 가문의 강남 내 위치를 반드시 높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최근 형님이 연락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장주호의 눈에는 한 줄기 빛이 스쳤다.그 사람들과 협력해 작전에 성공한다면 장씨 가문은 서씨 가문을 제치고 강남에서 으뜸가는 가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길 리스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장주호는 머리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을 접고 진서준을 바라보며 살짝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죽인 건가?”진서준은 권해철의 치료를 도와주고 있어 장주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장주호가 이 일을 해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장주호는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버럭 냈다.“내 말 들리지 않아? 귀먹었어?”장주호의 고함이 떨어지자 방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언성 높여 시끄럽게 떠들 거면 당장 꺼져.”진서준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감히 장주호가 너무 시끄럽다고 하다니, 장주호는 그 말에 멈칫하다가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야? 감히 내게 시끄럽다고 호통쳐? 오늘 네가 우리 장씨 가문을 건드린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이 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건방졌다.장주호는 여태껏 장씨 가문을 이토록 이렇게 무시하는 청년을 만난 적이 없었다.옆에 있던 신민준은 이 청년의 목소리가 다소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들으면 들을수록 이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고 이상하게도 친숙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민준아, 네가 먼저 저놈 좀 혼내고 와.”장주호는 신민준에게 명령하며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싸늘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신민준은 즉시 체내의 강기를 손가락 끝에 모으고 가볍게 튕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젊은 종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종사는 함부로 모욕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 여자는 내 여동생이고 우리는 장씨 가문 사람이야. 너희가 정말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 장씨 가문과 적대할 작정이야? 나중에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잃지나 말라고!”장문주는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냉정하게 말했다.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는 말을 장문주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본인이 장씨 가문 사람인 이상, 종사라고 해서 그들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었다.심지어 대종사라고 해도 장씨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치기를 꺼렸다.“그렇다면 네 여동생이 여기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 돼.”진서준은 눈을 살짝 감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사과하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진서준의 말은 언제나 실행에 옮겨졌다.“오빠... 제발 날 살려줘...”장문주의 여동생은 말할 기력조차 거의 다해 두 눈이 금방이라도 감길 듯했다.“조금만 버텨, 주호가 곧 올 거야!”장문주는 이제 말로 여동생을 격려하며 억지로 버티게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간호사의 통통했던 얼굴이 공기가 빠진 농구공처럼 말라버렸다.여동생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갑자기 눈을 감았고 입을 살짝 벌렸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영자야! 눈 떠 봐!”그 모습을 본 장문주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급히 이름을 외쳤다.아무 반응도 없는 여동생을 보자 이미 숨을 거뒀음을 알 수 있었다.“이 망할 놈아! 감히 내 여동생을 죽여? 네 피로 이 빚을 갚아야 할 거야!”장문주는 머리를 들고 광기에 찬 맹견처럼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진서준을 쏘아보며 울부짖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눈조차 뜨지 않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푹!순식간에 장문주도 여동생처럼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허벅지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생겼다.“아까 분명 경고했지? 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말했다.장문주는 온몸을 떨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을 보였다.
진서준은 배신과 약속을 어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증오했다.그동안 바빠서 장씨 가문에 대한 복수를 미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이 제 발로 진서준을 찾아왔다.이번 기회에 장씨 가문과 그때 일을 철저히 결산할 작정이었다.“네가 장씨 가문 사람이었어? 참 잘됐네. 너희 가주 장조인을 여기로 당장 불러.”진서준의 냉담한 목소리에 장문주는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다시 문지르고 믿기 힘들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봤다.“뭐라고? 우리 가주를 여기로 부르라고?”장문주는 이 녀석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장씨 가문은 비록 강남에서 세 번째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지만 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어느 세력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그런데 이 애송이가 감히 그런 오만한 말을 내뱉다니, 장씨 가문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진서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장문주를 향한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 시선에 장문주는 소름이 끼쳐 심장이 멎을 뻔했다.이렇게 살기를 띤 눈빛은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좋아! 네가 죽고 싶다면 내가 기꺼이 들어주지.”장문주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장씨 가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장문주는 장씨 가문의 외척일 뿐, 직계가 아니었다.장문주의 신분과 지위로는 장조인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었지만 장씨 가문의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무인을 데려올 수는 있었다.곧이어 장문주는 휴대폰에 대고 병실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게 세 글자를 던졌다.“기다려!”전화를 끊은 후, 장문주는 진서준을 향해 오만한 눈빛을 보냈다.“곧 우리 장씨 가문 사람들이 올 거야. 네 놈이 어떻게 비참하게 끝장날지 두고 보겠어.”장조인이 아닌 다른 장씨 가문 사람이라는 말에 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자식이 멍청해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의심스러웠다.장씨 가문에서 진서준과 마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다음 순간, 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수간호사를 바라보았다.“1분 줄 테니 얼른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게 네 장례 준비하라고 전화해야 할 거야.”장례 준비라니, 수간호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단지 이 영감에게 몇 마디 욕설을 날렸을 뿐인데 장례 준비하라고 하다니, 이 남자는 너무 뻔뻔했다.수간호사 오빠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과연 누가 장례 준비를 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야. 우리 오빠가 곧 올 거야. 네가 끝장나는 건 시간문제야.”수간호사의 눈빛은 독기를 품고 있었고 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따가 진서준을 어떻게 괴롭힐지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수간호사가 자기 말을 믿지 않자 진서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수간호사가 부른 사람을 기다렸다.약 30초 후, 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수간호사와 살짝 닮은 중년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여동생의 참담한 모습을 본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빠, 드디어 왔어?”중년 남자를 본 수간호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수간호사는 병원 교수인 오빠가 자기를 위해 복수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장문주는 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와 피가 멈추지 않는 여동생의 다리를 보다가 마침내 시선을 진서준에게 고정했다.병실 안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이 청년뿐이었다.“이 사람이 병원 경호원을 때려 다치게 했고 그것도 모자라 무슨 수를 써서 내 다리를 이렇게 뚫었어. 오빠, 얼른 복수해 줘.”장문주가 침묵을 지키자 수간호사는 또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다들 영자를 옆방으로 옮겨서 상처를 먼저 지혈해.”장문주는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경호원들이 수간호사를 들고 나갈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아직 사과를 안 했어. 못 나가.”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 평온한 목소
경호원 대장은 말하면서 고무 막대기로 진서준의 머리를 톡톡 치려고 했다.그러나 대장의 고무 막대기가 진서준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대장의 배에서 엄청난 힘이 전해졌다.다음 순간, 경호원 대장은 고속으로 달리는 화물차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날아갔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 대장의 몸은 병실 벽에 박혀버렸다.대장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고 온몸의 뼈 역시 모두 부러졌다.수간호사와 나머지 경호원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남자가 정말 사람이 맞은가?단 한 번의 발차기로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저렇게 쉽게 날려버리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진서준과 권해철은 이 상황에 익숙한 사람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하게 치료를 계속했다.모두가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방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10초 안에 내 눈앞에서 사라져.”진서준은 권해철에게 약을 바르면서 경호원들에게 경고했다.진서준의 말을 듣고서야 경호원들은 정신을 차렸다.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몇몇 경호원은 곧바로 대장을 들어 올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병실을 나갔다.순식간에 병실에 남겨진 건 멍하니 서 있는 수간호사뿐이었다.수간호사는 오랫동안 멍해 있다가 겨우 공포를 이겨내고 이성을 되찾았다.“건방진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무도 쪽 사람인가 보네?”수간호사는 이를 악물고 흉측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이건 마지막 경고야, 얼른 사과해.”진서준은 수간호사를 바라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사과하라고? 꿈 깨. 이따가 너희 둘 다 무릎 꿇고 내게 사과해야 할 거야.”수간호사는 돌아서서 다시 사람을 부르려고 했다.하지만 이번엔 진서준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조금 전 진서준은 이미 수간호사에게 기회를 줬지만 수간호사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진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수간호사의 허벅지에 닿았고 한순간에 수간호사의 허리보다 더 두툼한 허
철썩!중년 여자는 따귀를 맞고 제자리에서 거의 여덟 바퀴 돌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그리고 동시에 입안의 이가 시뻘건 피와 함께 입 밖으로 튕겨 나갔다.진서준의 이 귀싸대기는 중년 여자를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여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병원에서 여자에게 대들거나 소리친 사람은 한 번도 없었고 여자의 얼굴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감히 날 때려? 오늘 넌 이 폐인이랑 함께 끝장날 거야!”중년 여자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고 미친 사자처럼 화를 버럭 내며 고함을 질렀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쌀쌀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한 번 더 강조했다.“사과해.”“죽어도 안 할 거야.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지금 당장 사람을 부르러 갈 거니까.”중년 여자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병실을 나갔다.진서준은 그 여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작은 수간호사가 과연 어떤 엄청난 배경이 있는지 지켜보려고 했다.“진 상경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사실 저 여자가 말한 것도 틀린 건 아니에요. 전 죽음을 앞둔 사람이에요...”눈에 서글픈 감정이 넘쳐나는 권해철은 자기 인생을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웠다.여태껏 유명세를 누리며 살아온 자기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런 우울한 말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전에 권 마스터님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습으로 치료해 드릴게요. 그리고 권 마스터님의 끊어진 경맥과 단전도 제가 해결해 드릴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경맥과 단전은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진서준이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수간호사가 오지 않자 진서준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나이 많은 간호사 두 명에게 권해철의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권해철이 노인이란 사실을 알고 두 중년 간호사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권해철의 옷을 벗겨주었다.권해철의 옷이 벗겨진 후, 진서준은 어젯밤에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고약을 꺼냈다.이 검은색 고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