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인이 말했다.“네? 50톤이요? 서준 씨는 본인이 무슨 누렁이인 줄 안대요?”허윤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설마 그 산속에 누렁이 여러 마리 있는 건가?장조인은 허허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가씨께서 진 상경님이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저희 아들놈과 함께 운대산 밑은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마침 운대산 별장 안에 있는 별채에 두 분이 머무실 만한 공간도 있으니까요.”“좋아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허사연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바로 제안을 수락했다.장도윤은 곧바로 허사연과 허윤진, 그리고 누렁이까지 데리고 운대산 별장 쪽으로 차를 몰았다.진서준이 귀군을 처리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별장 쪽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했다.게다가 적잖은 사람들이 운대산의 신선이 내려오길 학수고대하며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있었다.“서준 씨가 정말 이 산 위에 있다는 말인가요?”허사연은 흰 구름에 둘러싸인 운대산을 가리키며 물었다.“네, 원래 운대산은 붉은 안개로만 뒤덮여 있었는데, 진 선생님께서 이 괴현상을 바로 없애주셨습니다.”장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곧이어 장도윤이 계속해서 덧붙였다,“맞다, 진 선생님께서 산으로 올라가실 때 저흰 용의 울음소리도 들었어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서준이 고양시에서 탁현수와 벌이던 정면 대결을 떠올렸다.그 싸움에서도 진서준은 용을 소환했었고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었다.그렇다면 진서준은 무사한 게 맞았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용대산 위에서 수련 중이었다.별장에 도착하자 장도윤이 말했다.“두 분께서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장도윤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장도윤이 자리를 뜨자 허사연이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진서준한테 아무 일 없으면 된 거야. 하지만 김연아가 머지않아 곧 결혼할 거라는 게 지금으로서는 문제인데. 마지막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진서준이 만
운대산 위.장씨 가문에서 보낸 50톤의 정육은 정말 진서준이 혼자 다 먹어버렸다.첫날, 진서준 혼자서 반 박스의 정육을 다 먹어버리는 광경을 본 권해철과 서지은은 진서준의 말이 허세만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이 모든 고기를 다 먹어버리다니!이 순간, 진서준 체내의 영해는 한 길 높이로 상승했고 혈해 또한 훨씬 짙어졌다.진서준이 팔을 휘두르면 그의 팔에서는 뼈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권 마스터님, 아직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그동안 진서준은 밤낮없이 수련만 해왔다.휴대폰 배터리도 이미 다 소진되었다.김연아의 결혼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서준은 산에 오르기 전, 권해철에게 옛날 폰 하나를 갖고 올 것을 부탁했다.역시 옛날 폰이 내구성도 강하고 배터리 수명도 길었다.“아직 이틀 남았습니다.”권해철이 대답했다.“갑시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네요!”진서준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진서준은 남은 이틀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실패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권해철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진 상경님, 지금 상경님 실력은 어느 정도이신가요?”진서준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해진 것 같네요.”권해철이 깊은 찬 숨을 들이켰다.적어도 두 배는 강해졌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진서준이 산에서 수련한 지는 고작 열흘 남짓이었다.열흘 만에 실력이 두 배나 상승해버리다니, 그의 수련 속도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서지은은 뭔가 하산하는 것이 내심 아쉬웠다. 그녀는 하산하고 나면 진서준과의 연락이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서지은의 아쉬운 표정을 보던 진서준은 단지 그녀가 이 세속에서 벗어난 환경을 떠나기 싫어한다고만 생각했다.“나중에 산에 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와도 돼.”진서준은 말을 마치고 서지은의 손을 잡더니 그녀의 손등에 부적 하나를 남겨주었다.“이 부적만 갖고 있으면 이 호산대진이 너에게만큼은 통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건 너만 가
한서강이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 한보영 씨가 누구한테 납치됐는데요?”허사연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질문했다.“정월문의 장문인, 김문호한테요!”전에 고양시 전투에서 진서준에게 패배했던 문희수와 경두진 모두 정월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정월문의 두 장로를 순식간에 폐위시켜 김문호의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그 날의 복수를 위해 김문호는 산에서 나오자마자 고양시로 온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금운의 운대산 위로 올라가 수련 중이었다.진서준을 나오게 하려면 김문호는 어쩔 수 없이 한보영을 납치해 진서준이 제 발로 본인을 직접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하지만 저는 지금 진서준 씨랑 연락이 안 되는걸요!”허사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진 상경님께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거죠?”한서강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너무 조급해 하지는 마세요. 진서준 씨는 분명 이틀 내로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돌아오면 바로 진서준 씨에게 이 소식을 알려서 하루빨리 아가씨부터 구할게요.”허사연이 한 마디 덧붙였다.“김문호에게 금운으로 오라고 전하세요. 진서준 씨가 지금 금운에 있거든요. 지금은 산에서 수련 중이지만요. 김문호가 정말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진서준 씨가 만든 진법도 어디 한 번 뚫어보라고 하세요!”“네, 지금 당장 김문호에게 전화해서 전하죠.”전화 통화가 끊기자 허윤진이 서둘러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 한보영 씨가 납치됐다니?”“응, 한씨 가문의 한보영 씨가 김문호한테 납치당했대. 김문호는 정월문의 장문인인데 전에 전서준이 폐위시켰던 정월문의 두 장로 중 한 명이야.”허사연이 설명해 주었다.허윤진은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새어 나오는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김문호 그것참 나쁜 녀석이네. 감히 여자를 납치하다니, 그런 놈도 장로라는 게 부끄럽다!”“답답하네...”어이가 없긴 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지금으로서는 진서준이 하루빨리 하산하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보영도 위험해질
진서라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자책했다.만약 어제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서라 씨 잘못이 아니에요. 서라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꼭 이모를 찾을 거예요.” 한편, 허사연은 진서라를 위로하며 살이 파일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얀 손바닥에는 이미 선명하게 핏줄이 튀어 올랐다.진서라 혼자 자책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허사연 역시 후회했다. 진서준은 그녀에게 진서라와 조회선을 부탁했는데 결국 조회선을 잃어버렸다.마치 전에 진서준이 보운산에 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진서라가 아닌 조회선을 잃어버렸다. 조회선은 진서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당시 진서라가 사라졌을 때도 진서준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어머니를 잃어버렸으니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허사연은 진서라와 통화를 마치고 즉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성태는 사돈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즉시 허씨 가문의 모든 직원을 동원해 찾아 나섰다.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소파에 누운 채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짚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반드시 찾을 거야. 그리고 한보영도 구해낼 수 있을 거고.”허윤진은 곁에서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어.”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열게!” 허윤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녕, 아가씨.”서씨 가문의 서경재였다. 그는 전에 김연아의 생일 파티에서 진서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그 일이 있은 후 김형섭이 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서경재가 진서준에게 따로 복수하지 않았다. 다만 그 원한은 서경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최근 그는 부하들로부터 별장에 젊은 자매 둘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시켜 허윤진과 허사연
누렁이는 몸을 날려 가볍게 피하더니 곧바로 서경재의 종아리를 물어버렸다.삐꺽-서경재의 종아리뼈는 누렁이에 의해 그대로 뚫려버렸다.“아!”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서경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피는 누렁이의 입을 따라 흘러내려 순식간에 서경재의 바지를 새빨갛게 물들였다.서경재의 처참한 모습에 허사연은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누렁이가 서경재를 물어 죽이는 상황은 허사연도 물론 막아야 했다. 아무래도 서씨 가문의 사람이 이곳에서 죽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누렁아, 그만해. 저런 쓰레기를 먹었다가 배탈 날 거야.” 누렁이는 그제야 입을 떼고는 역겨운 듯 피를 뱉어내자 서경재의 온몸에 튀었다.서경재는 바닥에 누운 채 뒹굴며 울부짖었다.“꺼져! 아니면 누렁이가 어디를 물게 될지 나도 장담 못 하니까.” 허사연은 사늘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서경재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애써 고통을 억누르며 일어섰다. 그는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두고 봐.”서경재는 협박에 가까운 한마디를 남기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떠난 후, 허윤진은 즉시 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언니,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 허윤진은 정리하고 나서 허사연에게 말했다. 누렁이가 서경재를 물어버렸고 게다가 여기는 서씨 가문의 영역이니 분명 위험해질지도 모른다.조회선과 한보영까지 이미 곤경에 빠졌는데 진서준에게 더 이상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되었다. “그래, 바로 떠나자.” 허사연과 허윤진은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결국 한 발짝 느렸는지 서경재는 이미 서씨 가문의 대종사를 데리고 찾아왔다. 서씨 가문의 서광문은 자기 딸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듣기 위해 대종사 상림을 이곳에 배치했다.상림은 20년 전부터 이미 일급 대종사로, 강남에는 그의 상대가 없었다. 그 후 서씨 가문에서 상빈으로 모셔지며 서씨 가문의 안전을 책임졌다. 그
누렁이의 생사 확인이 불가했다.게다가 서씨 가문의 대종사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두 자매는 거의 죽음의 상황에 처해있었다.“너 오지 마!”허사연은 마음을 굳게 먹은 채 바닥에 있던 유리를 깨뜨리더니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목에 갖다 댔다.그녀는 차라리 죽더라도 서경재한테 더럽혀질 수는 없었다.“뭐해? 자살이라도 하려고?”서경재는 비웃으며 말했다. “상 아저씨가 여기 있는 한 죽는 것도 네 맘대로 할 수 없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상림은 손가락을 튕겨 허사연의 손에 있던 유리 조각을 산산조각 냈다.서경재의 말 대로 허사연은 자신의 목숨마저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너… 우리 언니 건들지 마!”허윤진은 허사연의 앞을 막아서며 서경재에게 소리쳤다.“너흰 나랑 협상할 자격조차 없어. 당장 옷 벗고 날 모셔. 혹시 알아? 만족하면 진서준의 목숨쯤이야 살려줄 수도 있지.”서경재는 냉소하며 음흉한 눈빛으로 허사연 자매를 바라보았다.그녀 같은 타입은 서경재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꿈 깨.” 허사연은 분노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꿈 깨? 확실해?” 서경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너희가 내 손에 있는 한 진서준 그 새끼도 분명히 올 거야. 그의 생사는 이젠 나한테 달린 거지.”“진서준이 죽지 않길 원한다면 당장 옷 벗고 날 모시는 게 좋을걸?”서경재가 말한 대로 진서준은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서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서는 진서준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놈.”허사연은 화가 잔뜩 난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예전에 이렇게 역겨웠던 사람은 손승호뿐이었는데 그보다 더 한 놈이 있다니.“X발, 네까짓 게 나를 욕해?”서경재는 허사연의 얼굴을 향해 뺨을 내리쳤다.철썩-허사연의 새하얀 얼굴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았다.이어 서경재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허윤진의 턱을 잡고 말했다.“당장 바지에 묻은 피를 깨끗이 핥아, 아니면 네 동생을 죽일 거야.”허사연
“비켜!”상림은 서경재를 향해 한마디 하며 몸을 날려 그를 구하려고 했다.하지만 한 줄기 무지개 같은 광채가 상림보다 더 빨랐다. 상림이 서경재를 구하기 전에 그 광채는 번쩍이며 지나갔다. 푸슥-서경재의 팔이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피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서경재는 고통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그 광채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쪼갤 수 있는 날카로운 검이었다.검의가 뿜어져 나오며 그 기세에 상림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검도 대종사?”상림은 한기를 뿜어내는 검을 바라보며 놀라움에 가득 찼다. 그는 지의방 76위의 사급 대종사로서 한 자루의 검때문에 물러서다니.상림은 분노에 가득 찬 채 선천의 힘을 모아 검을 향해 내리쳤다.펑-선천강기와 검신이 부딪치며 별장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소리가 났다.천문검의 검의는 사라지더니 곧바로 물러나며 누군가 별장으로 뛰어들어왔다.“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죽고싶어 환장했네.”천문검은 다시 진서준의 손으로 돌아왔다. 진서준은 살기로 둘러싸인 채 서늘한 눈빛으로 서경재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 서경재는 이미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였다.“혼자 뿐인가?”상림은 자신을 물러서게 한 사람이 젊은이인 것을 보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무도를 수련한 지 거의 70년이 되어 가는데 일생 동안 적수라고 없었다.그런데 지금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에게 밀리고 있다니 면목이 없었다.“상 아저씨, 쟤가 바로 진서준이에요! 당장 죽이세요.”서경재는 진서준을 보자마자 혼이 나갈 정도로 두려워하며 허둥지둥 외쳤다. 상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네가 진서준이란 말인가?”푸슥- 진서준은 대답 대신 천문검을 휘둘러 서경재의 오른손 손가락 다섯개를 잘라버렸다.그 자리에서 기절한 서경재를 보고 허사연 자매는 아연실색했다. 이렇게 살기 어린 진서준을 본적은 그녀들도 처음이었다. 다만 그녀들은 서경재가 그녀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상림은 살기로 둘러싸였다.그는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소년이 자기와 대등하게 싸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약 진서준이 앞으로 더 수련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그를 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지금이 바로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 진서준의 싹을 잘라야 할 최적의 시기일지도 모른다.진서준이 검을 들고 있는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방금 그 한 방으로 몸 안의 모든 영기가 거의 소진되었다. 요 며칠 사이 진서준은 확실히 많이 성장했지만 지의방 76위인 괴물 상림을 상대하는 건 여전히 버거운 일이었다. 만약 계속 싸우게 된다면 진서준은 허사연 자매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밖에 상책일지도 모른다.상림한테 둘러싸인 살기를 감지한 진서준은 마지막 남은 영기를 천문검에 모으는 동시에 몸 안의 혈기를 왼손에 집중시켰다.“상 아저씨, 그만 싸워요!”순간, 서지은이 달려와 크게 외쳤다. 서지은의 목소리에 상림은 즉시 살기를 감추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림은 원래 서광문의 명령을 받고 서지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원래 서지은이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아가씨, 다치진 않으셨나요?” 상림은 다급히 물었다. “전 괜찮아요. 서준 씨 덕분이에요. 저를 봐서라도 서준 씨와 싸우지 말아 주세요.”서지은은 가냘픈 몸으로 진서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행동에 진서준은 크게 감동했다. 서씨 가문의 사람들과 달리 서지은은 괜찮은 사람이었다.상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땅에 누워 있는 서경재를 가리켰다. “하지만 경재를 죽였잖아.”서지은 잠시 멈칫하더니 진서준을 한 번 보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버지께 부탁할 테니 경재의 시체를 갖고 가세요.”상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다만 아가씨도 저와 함께 가야 해요.” “네, 서준 씨에게 인사하고 갈게요.”상림은 진서준에게 경고의 눈빛을 던지고 나서 서경재의 시체를 어깨에 메고 별장을 떠났다. “내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