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대문 쪽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 순간 잠금장치가 마치 마술처럼 덜컥 열렸다.진서준은 서둘러 문을 열고 노인의 뒤를 따랐다.“제 동생은요?”진서준이 물었다.노인은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시주님에게 곧 재앙이 닥쳐오겠군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랐다.‘재앙이 닥쳐오다니? 설마 유강을 죽여서? 아니면 서진 사람들을 죽여서?’유지수가 이때 입을 열었다.“도사님은 관상을 볼 줄 아셔. 게다가 아주 잘 맞추시지.”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너랑 같은 편일 텐데 내가 이 말을 믿으면 바보지.”도사는 그 말을 듣더니 화를 내지도 않고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관상이 아주 희한하시네요.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대충 예상은 갑니다. 더 자세히 보려면 당신의 정혈 한 방울이 필요합니다.”“필요 없습니다. 전 운명 같은 걸 믿지 않거든요.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여동생을 데려가기 위해서예요.”진서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빠!”이때 진서준이 꿈에도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그리고 곧 나무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몸을 돌린 진서준은 진서라가 방문 앞에 서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물이 가득 담긴 나무통이 있었다.“서라야, 서라야!”진서준은 미친 사람처럼 진서라의 앞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꼭 안았다.“오빠...”진서라는 두 눈이 촉촉해져서 진서준을 꽉 끌어안았다.두 남매는 보름 만에 만나는 것이었다.진서라가 유지수에게 잡혀간 뒤로 진서준은 항상 안절부절못했고 매일 밤 악몽을 꾸었다.진서라가 무사한 걸 본 진서준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아니지... 서라의 몸에는 독이 있어!’“서라야, 맥 좀 짚어 보자!”진서준은 곧바로 진서라의 맥을 짚어 보았다.“소용없어, 진서준. 넌 이 독을 해독할 수 없어. 나한테만 해독약이 있거든.”유지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유지수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서준은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영
진서라는 불안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서라야, 일단 둘이 나가 있어. 난 괜찮을 거야.”진서준은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달랬다.“응, 그러면 밖에서 기다릴게.”진서라와 유지수는 방에서 나간 뒤 방문을 닫았다.유지수와 진서라가 떠난 뒤 왕우림은 진서준이 허리춤에 찬 옥패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옥패를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진서준은 구창욱이 그에게 줬던 옥패를 왕우림에게 건넸다.왕우림은 그것을 자세히 살피더니 곧 폭발적인 살기를 내뿜었다.“이런! 감히 우리 각주님의 옥패를 훔친 겁니까?”왕우림이 갑자기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질렀다.진서준은 멈칫하더니 서둘러 말했다.“이 옥패는 제 사부님이 주신 겁니다!”“사부님이요?”“네. 저와 사부님은 감옥에서 알게 된 사이입니다. 제가 출소하기 직전에 사부님께서 이 옥패를 주셨습니다.”진서준이 설명했다.“말도 안 돼요! 전 반년 전에 이 옥패를 본 적이 있어요!”왕우림은 곧바로 부정했고 진서준은 당황했다.그는 감옥에서 나온 지 겨우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누구에게서 이 옥패를 본 겁니까?”진서준이 서둘러 물었다.“당연히 현임 각주님이시죠!”“현임 각주요?”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구창욱 어르신이요?”진서준은 미간을 찡그렸다.“당연히 아닙니다. 구창욱 어르신은 전대 각주님이시죠. 그는 이 옥패를 한 중년 남성에게 주었습니다.”왕우림이 말했다.진서준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구창욱은 이 옥패가 하나뿐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천기각 각주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이 옥패를 가진 사람이 바로 천기각의 각주였다.그러므로 이 옥패가 하나 더 존재할 리는 없었다.구창욱이 정말로 중년 남성에게 준 적이 있거나 누군가 이 옥패를 모방해서 하나를 만들었을 것이다.“당신이 말한 중년 남성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옥패는 확실히 구창욱 어르신께서 주신 겁니다. 구창욱 어르신은 제 사부님이에요.”진서준은 말을 마친 뒤 체내의 영기를 운용했고 그 순간 엄청난 힘이 진서준의 몸
“다시 사부님을 만났을 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구창욱 어르신 몸은 어떠십니까?”왕우림이 물었다.“아주 정정하십니다. 저보다 더 건강하실 겁니다.”진서준은 호탕하게 웃었다.그는 곧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왜 유지수를 도와서 이런 일을 하는 겁니까?”진서준은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왕우림처럼 대단한 사람은 유지수의 명령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전에 옥패를 지니고 절 찾아왔던 사람이 제게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왕우림이 말했다.“네? 또 만난 적이 있는 겁니까?”“아뇨. 그 사람은 제게 편지로 연락했습니다. 편지 내용은 전에 저희가 얘기했던 암호로 적혀 있었습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깨달았다.“그 사람은 확실히 가짜군요. 분명 대단한 장인을 찾아가서 똑같은 옥패를 만난 게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유지수가 진서라를 이곳까지 데려왔으니, 어쩌면 유지수는 그 사칭범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진서준은 잠시 뒤 유지수를 찾아가서 물어볼 생각이었다.“각주님, 제가 조금 전에 재앙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왕우림이 입을 열었다.왕우림이 천기각의 사람이란 걸 알고 난 뒤 진서준은 그의 말을 조금은 믿었다.“또 다른 걸 보아냈습니까?”진서준은 서둘러 물었다.“각주님께서 정혈 한 방울을 주시지 않는 이상 더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각주님의 신분은 워낙 베일에 감싸여져 있어 제 능력으로만 알아보기에는 역부족입니다.”왕우림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은 사실 구창욱이 했던 말들을 별로 믿지 않았다.구창욱은 그에게 용의 혈맥을 타고났고 왕이 될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했었다.그때 진서준은 구창욱이 농담하는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보니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좋아요. 우선 정혈을 드리겠습니다.”진서준은 손가락을 깨물더니 정혈 한 방울을 짜냈다.왕우림은 곧바로 술법을 시전하였다. 그는 진서준의 정혈을 감싸서
진서준은 사원 대청에서 나온 뒤 사원 밖에 진서라 혼자만 남아있고 유지수는 감쪽같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내가 사칭범에 관한 일을 물을 걸 예상하고 먼저 도망쳤나 보네. 하지만 또 만날 테니 상관없어. 일단 급선무는 돌아가는 거야.”진서준은 빠르게 진서라에게 다가갔다.“서라야, 유지수는? 그냥 간 거야?”“응. 볼일 있다면서 먼저 가보겠다고 했어.”진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서라야, 그동안 유지수 그 여자가 널 괴롭히지는 않았어?”진서준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서라를 바라보았다.그는 유지수가 그동안 진서라를 학대했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아니. 난 며칠 전 이곳으로 보내졌고 그 뒤로 줄곧 이곳에서 지냈어. 도사님은 내게 아주 잘해주셨고 날 때리거나 욕한 적은 한 번도 없어.”진서라가 말했다.“그러면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진서준은 진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자. 우리 산에서 내려가자!”“응!”진서라는 얌전히 진서준을 따라서 하산할 준비를 했다.이때 사람 한 명이 사원 문 앞에 도착했다.평소 사원을 찾는 사람은 없었기에 갑자기 누군가 찾아오자 진서준은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진서준은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았고 상대방의 체내에 진기가 있는 걸 발견했다.그 사람도 술법을 수련한 도사였다.“왕우림 그 노친네 여기 있어?”원재경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왕우림을 노친네라고 부르자 진서준은 미간을 찡그렸다.“당신은 누구야?”“이 자식, 내가 먼저 물었잖아. 얼른 대답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원재경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딱 봐도 악의를 품고 찾아온 사람이 분명했다.왕우림은 조금 전 진서준의 관상을 보느라 중상을 입어서 지금 원재경과 싸운다면 틀림없이 질 것이다.진서준은 천기각의 각주였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이 자기 부하를 다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서라야, 물러서!”진서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응, 오빠 조심해.”진서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서준
“각주님, 조심하세요!”왕우림은 서둘러 외쳤다.“전 괜찮으니까 우리 동생 좀 지켜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네!”왕우림은 황급히 진서라의 앞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지켰다.안개가 아주 자욱해서 50cm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진서준이 영기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반경 3m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주위가 아주 고요해졌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그리고 몇 초 뒤 진서준의 앞에 있던 흰색 안개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무언가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진서준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체내의 영기를 조금씩 사용했다.다음 순간,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진서준의 앞에 나타나서 20cm는 될 법한 치아를 드러내며 진서준을 덮쳤다.“같잖은 수작질이네.”진서준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의 멸시를 느낀 건지 호랑이는 크게 울부짖었다.소리가 아주 쩌렁쩌렁해서 근처의 흰 안개가 흩어질 정도였다.“파괴!”자줏빛 번개가 진서준의 손바닥에서 쏘아져서 호랑이를 공격했다.호랑이는 번개에 공격당하는 순간 몸이 갈기갈기 찢기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몸을 숨기고 있던 원재경은 그 광경에 동공이 떨렸다.“이 자식, 꽤 실력이 있네. 하지만 네가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오늘은 여기서 죽어야 해!”말을 마치자마자 원재경은 체내의 진기를 모두 발산했다.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총 8마리의 맹수가 원재경의 앞에 나타났다.곧 8명의 맹수는 진서준을 노리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순간 땅이 은근히 흔들렸다.“당신만 소환할 줄 알아?”장청의 힘과 혈기가 진서준의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저번에 탁현수와 싸울 때 푸른색과 붉은색의 거대한 용이 진서준의 앞에 나타났었다.용의 울부짖음과 함께 사원을 뒤덮었던 흰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크릉!”귀청을 찢는 듯한 용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진서준을 향해 달려들던 8마리의 맹수는 허공에 떠 있는 용을 보더니 뒷걸음질 쳤다. 맹수들은 겁에 질린 듯 보였다.“용
원재경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당황했다.인의방 1위면 실력이 완전히 다른 차원일 것이다.전에 제마 법왕은 실력으로 진서준을 압도했었다. 그런 그조차도 겨우 인의방 3위였고 1위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만약 정말로 원재경을 죽인다면 원재경의 아버지가 복수하러 찾아올지도 몰랐다.그렇게 되면 국안부조차 진서준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자식을 죽인 원한은 그 어떤 원한보다도 컸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자 원재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난 널 이길 수 없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있어!’“이 자식, 지금 당장 비켜.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에게 이를 줄 알아!”원재경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감히 인의방 1위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지의방에서 거꾸로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도 감히 원재경의 아버지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소문에 따르면 원재경의 아버지가 지의방에 들지 않은 이유는 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일 때문에 원재경의 아버지는 직접 국안부에 찾아가기까지 했었다.그래서 많은 무인들이 원재경의 아버지를 인의방의 수문장이라고 불렀다.“내가 정말로 당신을 어쩌지 못할 것 같아?”진서준은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재경을 바라보았다.원재경은 그의 눈빛에 겁을 먹고 연달아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 순간, 그는 얼음 동굴에 갇힌 듯 몸이 서늘했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진서준은 마치 눈동자에 칼날을 숨겨 놓고 있는 듯했고, 그 칼날이 그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금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줄 알아.”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원재경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저놈 눈빛에 겁을 먹은 건가?’원재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셋!”진서준은 이미 카운트를 시작했다.원재경은 정신을 차린 뒤 화를 냈다.“날 위협하려고? 그럴 실력
지금의 진서준은 국안부의 상경이었다.만약 정말 생명이 위험하다면 호국장군의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비록 소문이 나면 창피하지만 적어도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살아 있는 한 기회는 있는 법이다. 체면을 잃는다고 해도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다.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각주님, 제가 가서 죽었는지 보고 올게요.”왕우림이 말했다.“볼 필요가 없어요. 무조건 아직 살아 있을 거예요. 방금 한방에는 단지 그의 오른팔을 부러뜨렸을 뿐이죠.”진서준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구급차를 불러줘요. 서라를 데리고 먼저 갈게요.”“네!”왕우림은 다급히 휴대 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서라야, 가자!”진서라는 즉시 진서준을 따라 산 아래로 향해 걸어갔다.산에서 내려올 때 진서준이 물었다.“방금 많이 놀랐지?”“아니야.”진서라가 고개를 내저었다.“서라야, 내가 어떻게 이런 강한 힘을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진서준이 물었다.아까부터 지금까지 진서라는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줄곧 평온한 표정이었다.진서준은 심지어 진서라에게 어떻게 말할지 이미 다 생각했다.예전에 진서준은 진서라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좀 궁금해. 하지만 오빠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있겠지.”진서라가 얌전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의 말에 감동했고 손을 내밀어 진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너 같은 동생이 있다는 게 나의 행운이야.”“그건 나도 그래.”진서라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참. 엄마는 어떻게 되셨어?”진서라는 갑자기 조희선이 생각났다.지금 진서준이 돌아왔으니 아마 조희선의 다리는 이미 나았을지도 몰랐다.“어머니는 이미 일어나셨어. 며칠 뒤에 어머니를 뵈러 집으로 가자.”지금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허윤진이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건강에 문제가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서라를 데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알겠어.”진서라는 여전히
진서준은 한제성이 진서라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한제성은 인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전에 자기 누나를 구하기 위해 보운산에 직접 사람을 이끌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영약을 찾으러 갔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한제성을 잘 다듬어 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독보적인 큰 인물이 될 것이다.한제성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실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진서준이 충분히 그를 도와줄 수 있었다.앞으로 한제성이 진서라의 곁을 지키더라도 진서준은 안심할 수 있었다.“서준 씨가 산 위에서 진서라 씨를 구한 거예요?”한제성은 운전하며 가끔 룸미러 쪽으로 눈을 흘기며 진서라를 훔쳐보았다.“그렇죠. 서라가 요 며칠은 산에서 보냈고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어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렇군요. 진서라 씨... 그 나쁜 자식들이 서라 씨를 괴롭히지 않았어요?”한제성은 용기를 내어 진서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니요. 누구도 저를 괴롭히지 않았어요.”진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저를 편하게 불러 주세요. 한제성 씨와 제 오빠는 친구 사이니, 나중에 우리도 친구가 될 거예요.”한제성은 그 말을 듣고 너무 흥분해서 기절할 뻔했고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끼익!차가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져 하나터면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운전 열심히 하고 딴생각하지 마세요.”진서준은 한제성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네. 열심히 운전할게요.”한제성은 그제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한씨 저택에 거의 도착했을 때야 한제성은 긴장이 풀렸다.“서준 씨, 서라랑 언제 돌아갈 계획이에요?”“며칠 후에 윤진 씨의 몸 상태가 좋아지면 돌아가려고요.”진서준이 말했다.진서준의 집은 서울시에 있었고 조희선도 진서준과 진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허윤진이 아니라면 진서준은 오늘 밤에 바로 진서라를 데리고 집에 갔을 것이다.며칠 후면 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에 한제성의 얼굴에는 서
“저 녀석이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명주시를 떠날 생각인가?”황예은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대표님, 계속 따라갈까요?”비서의 질문에 황예은은 바보를 쳐다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곳 사람이 이렇게 적은데 굳이 진서준에게 들킬 일 있어?”비서는 그제야 자기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차 안에서 기다려.”진서준은 공항에서 거의 세 시간을 기다렸고 오랜 기다림의 끝에 마침내 바이올렛의 비행기가 도착했다.“넌 왜 따라왔어?”진서준은 검은 선글라스를 쓴 허윤진을 보고 의아해했다.“내가 왜 못 오지?”허윤진은 눈을 굴리며 말을 이었다.“혹시 내가 오면 네 계획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래?”진서준은 어이없어 말문이 막혔다.“전에 말했잖아, 명주시는 안전하지 않다고.”“괜찮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윤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서준의 팔을 끌어안으며 자기 품에 밀어 넣었다.진서준은 얼굴색이 살짝 변하며 급히 벗어나려 하자 허윤진은 오히려 더 꽉 안았다.어쩔 수 없이 진서준은 허윤진의 팔을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바이올렛은 주위를 경계하며 살폈다.“다른 곳에서 얘기하자. 여기 사람 많아.”“따라와.”진서준은 두 사람을 주차장으로 안내했다.차 안에서 잠시 졸고 있던 황예은은 진서준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벌떡 자세를 고쳐 앉았다.“세상에, 저 남자가 여자 두 명 데리고 왔네요.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서양 여자네요.”비서는 이 장면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그래서 아까 대표님이 물어봤을 때 저 남자가 제대로 대답을 안 했던 거구나.’비서는 진서준과 함께 온 두 여자가 분명히 진서준과 그렇고 그런 관계일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서준이 양쪽에 여자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황예은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더 큰 감정은 서글픔이었다.황예은도 자기 솔직한 감정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황 대표님, 불륜 현장을 잡으러 가시는 건가요?”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말을 듣자 황예은
한바탕 소동 끝에 황예은의 얼굴 양옆이 홍조로 물들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온몸에 진한 향기와 땀이 배어 침대 시트엔 큰 자국이 남았다.항상 도도하고 차가운 모습만 보이던 황예은이 지금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원망과 수줍음이 섞여 있었다.진서준조차도 조금은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다.어젯밤에 약 바를 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왜 지금은 이런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런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보니 마치 진서준이 황예은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가장 중요한 건 옆에 있는 비서가 사냥감을 보는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정확히 말하면 비서는 진서준이 아니라 진서준의 손에 들고 있는 약을 보고 있었다.이 세상에 더 예쁘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걸 원하지 않는 여자는 있을 수 없었다.그런 마치 남자라면 누구나 다 자기 소중한 부위 사이즈가 늘어나길 원하는 것과 똑같은 도리였다.“왜 아직도 안 나가?”황예은은 돌아누우며 이불을 당겨 몸을 가렸다.이번에 약을 발라줄 때, 진서준은 모든 것을 다 본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이유는 단순했다. 상처 두 곳 중, 하나는 가슴 아래쪽에 있었고 또 한 곳은 허벅지 안쪽에 있었다.진서준이 이 약은 내가 발라야 효과가 있다고 단언하지 않았다면 황예은은 절대로 진서준에게 이런 일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어젯밤, 진서준이 자기 알몸을 만졌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황예은의 얼굴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진서준도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살짝 죄책감을 느끼며 방을 나갔다.10분쯤 지나자 황예은이 방에서 나왔다.황예은은 새로운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었지만 한 가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황예은의 눈부신 가슴 라인은 절대 새 정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그리고 아까와는 달리 황예은의 얼굴에는 더 이상 수줍은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고 차갑고 도도한 표정만 남았다.“네 상처는 이제 다 치료했어. 다른 일이 없으면 난 이만 가볼게.”황예은이 사무실에
“네, 알겠습니다.”비서는 벗은 옷을 다시 주워 입기 시작했다.비서가 옷을 다 입자 황예은은 진서준을 방으로 불렀다.가운은 황예은의 풍만하고 매혹적인 몸매를 전혀 감출 수 없었다.그 몸매를 슬쩍 본 진서준은 아랫도리에서 불타는 느낌이 솟기 시작했다.“젠장,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지?”진서준은 속으로 자기를 욕하고 곧바로 청심주를 속으로 읊었다.다행히 그 불타오르는 욕망이 곧바로 내려가기 시작했다.“먼저 등 쪽부터 처리하자.”진서준은 평온하게 말했다.황예은은 침대에 엎드려서 수건을 천천히 허리까지 내리며 그녀의 부드럽고 윤기 나는 등을 드러냈다.황예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서준은 이전에 목욕탕에서 목욕할 때, 그곳 직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이렇게 좋은 등을 보면 컵 마사지를 해주지 않으면 아쉽죠.”비서는 세 가지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봤다.긴장함과 호기심 그리고 부끄러운 세 가지 감정이었다.비서는 진서준과 황예은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이런 방식으로 즐기는 건 비서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진서준은 손가락에 약을 묻혀서 황예은의 상처 부위에 가볍게 눌렀다.“으윽!”황예은은 순간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며 신음을 냈다.약이 아픈 게 아니라 너무나 차가워서였다.마치 한겨울 눈이 내리는 날, 갑자기 누군가 목에 눈 뭉치를 던져 넣은 것처럼 너무나 차가웠다.이건 혹시 특별한 애무 방식인가?비서는 여전히 의심을 가득 품고 또 엉뚱한 생각을 했다.황예은의 등에는 상처가 두 군데 있었다. 진서준은 약을 발라준 뒤, 손바닥으로 고르게 그녀의 등을 문지르며 약을 완전히 흡수시켰다.그러자 황예은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진서준이 이 틈을 타 자기를 추행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생겼다.“다른 곳엔 상처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그러자 진서준이 천천히 설명했다.“이 약은 네 몸에 좋은 거야. 피부가 더 부드럽고 매끄러워질 거야.”어떤 여자도 피부가 더 하얗고 탄력 있게 변하는 걸 원하지 않을 수
“진! 서! 준!”황예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빨개졌고 그녀의 눈에서는 화가 치솟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만약 사무실에 두 사람만 있을 때 진서준이 이런 말을 했다면 황예은은 이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비서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다.진서준이 갑자기 옷을 벗으라는 건 일부러 자기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 아니겠는가?황예은은 자존심이 극도로 강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급하게 해명을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비서에게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으면 아마 다음 날에는 회사뿐만 아니라 명주시 전역에서 황예은이 남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분노가 가득한 황예은을 보자 진서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황예은의 예상대로 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왜 소리쳐? 등 뒤의 상처를 치료하지 않겠다면 난 그냥 가겠어.”진서준은 말을 마친 후, 황예은이 망설일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바로 나가려 했다.옆에 있던 비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두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자극적으로 놀았기에 등 뒤에 상처까지 생긴 거지?평소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황 대표가 이렇게 야생마처럼 열정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황예은은 비서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것이다.“기다려!”황예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날 따라와.”황예은은 차갑게 말한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무실을 나가려던 순간, 황예은은 다시 돌아서서 비서에게 말했다.“너도 함께 와.”황예은은 굳이 구구절절 해명하고 싶지 않았고 설령 해명한다고 해도 비서가 믿을지 의문이었다.그래서 황예은은 비서가 직접 보고 알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또한, 비서가 함께 있으면 진서준도 도가 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비서는 그 말에 당황해하더니 급히 말했다.“황 대표님, 저도 같이 가는 게 적절할까요?”비서는 이곳에 일하러 온 것이지 그런 일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비서가 황예은이라는 여성 상사와 함께
그리고 왜 굳이 대한민국으로 도망쳤는지 그 이유는 단순했다.대한민국에는 국안부가 존재해 그 사람들이 함부로 소란을 일으킬 수 없었다.게다가 대한민국에는 진서준이 있었다.“용란 혈수사들이 재난을 겪었다고?”진서준은 멈칫하더니 눈빛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전에 바이올렛은 용란 혈수사 집단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실력은 매우 강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게다가 그들 중에는 지선 급의 존재도 하나 있었다.이렇게 강력한 혈수사 집단이라면 해외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조직은 별로 없을 것이다.“맞아, 넌 어디 있어?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난 지금 명주시에 있어. 도착하면 전화해, 마중 나갈게.”진서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휴대폰을 허사연에게 돌려준 후 바이올렛은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기다려요, 옷 좀 갈아입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허사연이 바이올렛을 말렸다.처음에는 바이올렛의 신원을 확신하지 못했으나 이제 바이올렛이 진서준의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허사연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고마워요.”바이올렛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탈출하는 길에 실제로 많은 현지 경찰들이 바이올렛을 추적했지만 다행히 바이올렛의 속도가 빨라 도망칠 수 있었다.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바이올렛은 허사연과 작별을 고하고 떠날 준비를 마쳤다.“기다려요, 나도 같이 갈 거예요.”허윤진이 작은 가방을 메고 나왔다.“너 뭐 하러 가는 거야?”허사연은 허윤진을 제지하려고 했다.“당연히 이분한테 길을 알려줘야지, 길이라도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허윤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길을 안내하는 것은 그저 구실일 뿐, 사실은 바이올렛을 감시하려는 목적이었다.비록 바이올렛이 47세였지만 외모만 봤을 때 그녀의 성적 매력은 이 여자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다.아까 속옷을 갈아입을 때, 허사연은 본인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를 꺼내야 겨우 바이올렛이 입을 수 있었다.이런 여자라면 나이가 47이든 57이든 여전히 예쁘고
이 여성은 온몸에 피가 묻은 서양인이었다.시퍼런 대낮에 피범벅이 된 사람이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나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게다가 별장 안에는 평범한 일반인인 진서라와 조희선도 있었다.만약 그 둘이 사고라도 당한다면 허사연은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 것이다.“멈춰요!”상대방이 들어오려 하자허사연은 큰 소리로 외치며 제지했다.누렁이와 하얀이도 즉시 달려와 허사연 앞에 서서 이 서양 여성에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그 여자는 이 두 작은 동물을 보자 발끝에서 알 수 없는 냉기가 솟구쳐 올랐다.여자는 눈앞에 있는 이 온순해 보이는 동물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난 진서준을 찾으러 왔어요.”여자가 서둘러 이곳에 온 이유를 털어놨다.“당신은 누구예요? 왜 진서준을 찾으려 하죠?”허사연은 전혀 긴장을 풀지 않고 경각심을 높이며 물었다.이때 집 안에서 김연아와 허윤진이 별장 밖 소리를 듣고 나왔다.“내 이름은 바이올렛이고요, 진서준과 친한 친구예요.”이 서양 여성은 바로 얼마 전에 대한민국을 떠난 바이올렛이었다.바이올렛이 피범벅이 되어 여기 나타난 건 용란의 혈수사들이 전멸당했기 때문이었다.“왜 진서준이 당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죠?”허사연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믿지 않는다는 말투로 물었다.김연아와 허윤진도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진서준이 바이올렛을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혹시 진서준이 외국에서 찾은 애인 아닐까?”허윤진이 갑자기 합리적인 추측을 꺼냈다.“요즘 남자들은 전부 어디서나 제멋대로 씨앗을 뿌리는 놈들이잖아.”허사연은 그 말을 듣자 허윤진의 머리를 툭 쳤다.“서준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바이올렛도 재빨리 해명했다.“난 진서준의 애인이 아니에요.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에요. 이번에 진서준을 찾은 이유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알리려고요.”“잠깐만요, 전화해서 확인할게요.”허사연은 휴대폰을 꺼내어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가 내게 부탁할 준비가 됐거나, 아니면 네 동생이 부탁할 준비가 되면 그때 내가 도와줄게.”“부탁할 준비는 안 됐지만 네가 원하는 것 하나는 들어줄 수 있어.”황예은의 말은 남자에게 충분히 상상할 여지를 주는 말이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황예은을 바라보았다.“내가 뭘 원하든 다 들어준다고?”“물론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말이야.”황예은의 시선은 차갑게 변했다.황예은은 동생을 구하려고 굳이 몸을 팔 정도까진 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딱 과한 걸 원한다면 어쩌려고?”진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진서준은 항상 도도한 모습만 보여주는 여자의 성격을 고쳐주고 싶었다.적어도 진서준 앞에서 이렇게 거만한 자태를 유지하는 꼴은 용납할 수 없었다.그러자 황예은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서지은 알게 돼도 괜찮다면 난 받아들일 수 있어.”그 말에 진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불쾌한 목소리로 따졌다.“날 협박하는 거야?”“아니, 그냥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황예은의 눈에는 작게나마 승리감이 어려 있었다.황예은은 이 방식으로 진서준이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짝!갑자기 조용한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울렸다.황예은의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고 당혹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이 그녀의 눈동자를 지배했다.황예은은 진서준이 갑자기 자기 엉덩이를 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진서준은 손을 거두지 않고 여전히 황예은의 엉덩이 위에 놓았다.“난 협박당하는 걸 가장 싫어하거든.”황예은은 이를 악물며 분노를 삼켰다.“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하지만 대답 대신 진서준의 손은 다시 한번 내려쳤다.짝!귀에 익은 소리가 또 울려 퍼졌다.“당연히 알지. 네 엉덩이를 또 치고 있잖아.”진서준은 엉덩이를 치고 나서 태연하게 한 마디 던졌다.황예은의 얼굴은 이제 빨간색을 넘어 거의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인간쓰레기!”황예은의 욕설에 진서준은 다시 한번 손을 올렸고 이번엔 더욱 강하게
황현호는 자기가 이번 일을 정말 어리석게 처리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이 하찮은 경호원 따위가 자기를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한낱 경호원 따위가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감히 날 욕해?”황현호는 진서준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지금 당장 사과해. 아니면 너 그냥 자를 테니까!”그때 황예은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진서준 말이 맞아.”“누님, 왜 이 경호원 편을 드는 겁니까?”황현호는 이 상황이 정말 억울했다.황예은 친동생인 자기가 정말 한낱 경호원보다도 더 못한 존재란 말인가?황현호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그때, 진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박진강이 너한테 가르쳐준 그 무도는 더 이상 배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며칠 지나면 네가 죽을 거니까.”진서준이 자기가 죽는다고 저주하자 황현호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뭐라고? 뭔 개소리야?”황현호는 진서준에게 다가가서 그의 옷깃을 움켜잡으려 했다.하지만 손목이 반쯤 닿자마자 진서준은 손으로 황현호의 손목을 단번에 잡았다.“아야, 아야! 놔, 이거 놔!”황현호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믿든 안 믿든 네 맘대로 해, 어차피 죽는 건 너니까 나랑 상관없어.”진서준은 손목을 툭 치며 그를 밀쳐냈다.강력한 힘에 황현호는 휘청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결국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황현호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황예은은 진서준이 진지하다는 걸 알아챘다.진서준의 용존 봉호는 가짜가 아니었고 어젯밤 진서준은 그의 뛰어난 의술을 보여주기도 했다.“진서준, 내 동생 살릴 수 있어?”황예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진서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살릴 수 있어.”“그럼 살려줘.”황예은이 짧고 단호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너 지금 그게 사람에게 부탁하는 태도야?”거만한 태도로 자기에게 누군가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보기는 진서준도 처음인 것 같았다.“누님, 부탁하지 마세요. 저 녀석 분명 헛소리하는 거예요.”황현호도 사실
“저년 운이 정말 좋네. 열 명이 넘는 총잡이가 덤벼도 못 죽이다니.”임동식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동식 형님, 이번에 저 여자를 못 처리했으니 다음엔 더 어려워질 겁니다...”“저 여자가 데려온 그 경호원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요. 박진강조차 그 경호원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요.”“그래서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어. 어제 이미 동남아 킬러 업계에서 유명한 킬러인 독룡에게 연락했어. 이틀 후면 명주에 도착할 거야.”임동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룡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혹시 그 국제적으로 돈 많은 부자 열댓 명을 죽인 적 있는 부자 킬러 말씀입니까?”“맞아.”임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킬러를 고용하는 건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꼴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과거 그 킬러가 단지 고용주가 심기를 건드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용주까지 죽인 적도 있다던데요?”자리에 있던 한 노인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살인마와 협력하는 건 사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임동식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큰 파도를 헤쳐야 큰 물고기를 얻는 법이야. 위험이 없다면 내가 굳이 그 킬러를 부를 이유도 없었겠지.”임동식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끌끌 찼지만 속으로는 두려움도 컸다.독룡이 폭주해 임동식까지 죽여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임동식이 죽는다면 그들에겐 대표이사 자리를 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그러나 다들 방금 나눈 대화가 이미 황예은의 사무실에서 황예은이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황예은은 회의실에 미리 설치해 둔 감시 장비 덕분에 대화를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젠장! 어젯밤 총잡이들이 이놈들 짓이었다니!”황현호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이놈들 전부 죽여버릴게요.”“앉아.”황예은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만약 임동식 일당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황현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황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