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뜻이 같은 동맹 관계이기도 하다.만약 진서준이 김연아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한다면 그는 김씨 가문뿐만 아니라 서씨 가문까지 상대해야 한다.서씨 가문은 김씨 가문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로 선천 대종사가 무려 5명이나 된다.한 명은 5품 대종사, 다른 3명은 7품이다.그리고 남은 한 명은 10품으로 전설 속의 지선경과 단 한 단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그러한 인물을 진서준 혼자서 마주하기엔 너무 버겁고 불가능하다.김연아는 자기로 인해 진서준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그럼, 전화라도 직접 하실래요?”배수정은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저...”김연아 역시 진서준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잠시 망설이더니 핸드폰을 건네받아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방에서 쉬고 있던 진서준은 벨 소리가 울리는 걸 듣고 바로 받았다.“수정 씨, 연아 씨 만났어요?”다급한 목소리로 진서준이 물었다.“서준 씨, 저예요.”김연아가 말했다.김연아의 목소리를 듣고 진서준은 무척이나 기뻐했다.“연아 씨, 지금 김씨 가문에 있는 거예요?”진서준이 물었다.“네, 수정 씨한테서 들었어요. 저 데리고 가고 싶어 하신다면서요?”웃으면서 김연아가 물었다.“그러고 싶은 게 아니라 꼭 그렇게 할 거예요.”진서준은 제법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 다 알고 있어요.”“그만해요. 김씨 가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한숨을 내쉬고 있는 김연아.“김씨 가문을 이길 수 없어요. 대종사만 무려 3명이나 있고 다들 지의방이에요.”그 말을 듣고서 진서준 역시 마음이 가라앉았다.탁혁수는 그저 인의방 대종사일 뿐인데, 그 실력은 공포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지의방 대종사라고 한다면 그 실력은 한 수 위일 것이 분명하다.한 명도 아니고 3명이나 되는 지의방 종사과 일 대 삼으로 싸운다는 건 대낮에 꾸는 꿈과 다름없는 일이다.“서준 씨, 괜찮아요. 나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서울로 찾아가서 놀수도 있어요.”김연아는 웃
서씨 가문에서는 처음에 김연아가 김형섭의 사생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무척이나 업신여겼었다.하지만 서주희의 간청하에 서씨 가문에서는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바보를 내세웠다.바보에 사생아라, 환상의 커플이 아닐 수 없다면서.서주희는 그 말을 듣고 바로 흔쾌히 승낙했다.만약 김형섭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면, 서씨 가문에서 김씨 가문을 상대로 공격을 더 할 것이다.김씨 가문의 세력이 강한 건 사실이나 서씨 가문 앞에서 약하기 그지없다.김혜민은 그 좋은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김연아에게 알려주려 온 것이다.“이건 너무 하잖아요!”배수정은 김혜민의 기고만장한 태도에 이를 갈았다.하지만 김연아는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포기한 모습을 보였다.“이게 제 팔자겠죠.”자기 엄마를 죽인 원수 집으로 시집을 가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그러나 애초부터 김연아 앞에는 그 어떠한 선택지도 없었다.만약 김형섭에게 부탁하여 김씨 가문에서 대종사를 보내 진서준을 보호하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김연아는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진서준이 구궁한증을 치료해 주었고 웃는 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서준 씨한테 알릴까요?”배수정이 물었다.“아니요! 절대 서준 씨한테 말하지 마세요.”김연아는 다급히 말렸다.연혼의 도구로 김연아가 서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진서준이 알게 된다면 그는 그 어떠한 대가도 마다한 채 김씨 가문으로 찾아와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할 것이다.그때가 되면 진서준은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 사이에서 충돌이 생길 것이 뻔하다.1, 2위에 드는 가문과 맞서게 되면 그 결과는 이미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진서준은 뼈마디 하나 온전하게 남기지 못한 채 처참하게 당할 것이다.지금 마음이 무척이나 복잡한 배수정이다.만약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는다면, 김연아는 소씨 가문으로 시집을 갈 것인데, 김연아의 인생은 그로써 끝나게 되어 있다.그렇다고 만약 입을 열게 되면, 진서준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는 길에 오르게 될 것이다.“김씨
한보영은 웃으며 말했다.“만약 서준 씨도 참가한다면 우승은 반드시 서준 씨 몫이 될 거예요.”나이 제한이 있고 35살 이하의 무자만 참가할 수 있으니 말이다.무도계에서 종사급 무자가 된 그들은 거의 99% 정도가 쉰을 넘겼다.진서준처럼 20대 청년은 대다수가 암경 무자이고 실력이 있다고 해도 내공 무자일 뿐이다.30살의 대종사도 3성 모두를 합쳐도 손에 꼽힐 정도일 것이다.“해야죠. 공짜로 얻는 약재일 것 같은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네요.”진서준은 웃으며 대답했다.“내일 시작하는 거예요?”“아니요. 모레 시작하는데, 장소는 고양시 외곽에 있는 지하 링이에요.”한보영이 말했다.“알았어요. 그때 저 좀 데리고 가주세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쉬고 있어요.”웃으며 말하고서 한보영은 자리를 떠났다.진서준은 침대로 돌아와 누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었다....박인성이 갑자기 목적지를 바꾼 이유도 실은 3성 무도 대회 때문이다.그때 그에게 전화를 건 이가 바로 경기도의 이희양이다.경기도 이씨 가문은 으뜸으로 가문 대가문으로서 지위는 한씨 가문과 비슷하다.이씨 가문이 대가문으로 될 수 있었던 건 박인성의 해외 무자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그러나 해외 무자를 들인 이유로 이씨 가문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씨 가문을 업신여기기까지 했다.하지만 이희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로지 돈만 벌고 땅만 먹으려고 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갈 길만 걸었다.이번에 이희양이 박인성에게 전화를 건 이유도 바로 박인성이 나서줬으면 해서이다.박인성은 인의방 10위 고수이다.3성을 내다보아도 박인성을 이길만한 무자가 없단 말이다.5성급 호텔 안에서 이희양이 박인성을 정중하게 초대하고 있다.“이번 무도 대회에서 잘 부탁드립니다.”이희양은 박인성에게 술을 따라주었다.“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있는 한 3성의 보스는 이희양 씨가 될 것입니다.”박인성은 덤덤하게 말했다.이희
동성에서도 많은 명문 세가들이 왔다.그중에는 동성 제일 가문이라고 하는 허씨 가문이 있는데, 극히 흔한 성 씨는 아니다.흔한 성 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성에서 허씨 가문의 허준희를 모르는 이가 없다.허씨 가문은 부동산 산업에 전념하고 있다.동성 태반의 아파트를 허씨 가문에서 세운 거라고 보면 될 정도로.동성에서 허준희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킹’으로 불리고 있다.허씨 가문의 종사는 모두 허준희가 많은 돈으로 어렵게 초대해 온 것이다.그중 대단한 인물이 한 명 있는데, 조정수라고 한다.다리 쪽의 무술이 뛰어난 조정수는 발차기 하나로 동성에 있는 모든 무관과 종사를 제압했다.1년 전에 조정수는 이미 선천 대종 사경에 들어섰고 인의방 11위의 거물로 거듭났다.연세가 있으셔서 참가자로 무도 대회에 온 것이 아니라 특별 게스트로 허준희에게 초대받은 것이다.허준희는 이희양이 이번 무도 대회에서 무엇인가 꾸밀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바가 있었다.그는 외력의 힘을 빌려 3성의 세력을 통일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그리고 탁혁수 살해에 관한 일도 조정수를 초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탁혁수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아 다들 좋아하고 있었는데, 20살 남짓한 청년 손에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만약 그 청년도 이번 무도 대회에 참가한다면 우승은 반드시 그 청년의 몫이 될 것이니 말이다.이는 이희양도 허준희도 보고 싶지 않은 결과이다.전에 무도 대회에서 남주성은 단 한 번도 우승을 거머쥔 적이 없다.황씨 가문, 한씨 가문,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조씨 가문까지 꼴찌를 차지했다.지금 남주성에서 진 마스터님을 내세우고 있어 이씨 가문과 허씨 가문에서는 당황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허준희와 조정수를 비롯한 허씨 가문의 일행이 고양시에 들어섰다.그들이 묶게 될 호텔은 이희양이 지내고 있는 호텔과 불과 1킬로미터 차이밖에 안 된다....병원으로 다녀오고 난 양재성은 바로 KTX를 타고 명주로 왔다.그의 스승이자 국안부 7위
양재성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 현천수는 설우빈을 바라보았다.“이번엔 아주 잘했어.”“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설우빈은 고개를 숙인 채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좋아했다.현천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니 말이다.“내 제자는 마음이 바르지 않아. 제자로 들일 때부터 이미 알아냈었어.”“만약 네가 곁에서 바로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미 남주에서 죽었을 거야.”현천수는 덤덤하게 말했다.설우빈의 두 눈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는데.“설마요... 양 종사는 스승님의 제자이신데, 진서준이 아무리 미치고 날뛰어도 감히 스승님의 제자를 죽일 수 있겠어요?”개를 때리기 전에 그 개 주인부터 보고 결정하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기고만장한 양재성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현천수의 제자이다.양재성을 죽인다는 건 현천수에게 도발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대한민국에서 감히 그 누구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그놈을 너 쉽게 봤어.감히 종사의 힘으로 선천 종사와 싸우다니... 이는 이미 일반인을 넘어선 능력이다. 그러니 일반인을 대하는 시선으로 그놈을 보면 안 된다.”“양재성을 죽인다고 한들 난 그놈한테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것이다.”현천수는 덤덤하게 덧붙였다.“지금껏 살아온 내가 그깟 체면을 중요하게 여길 것 같으냐?”“진 씨 성을 가진 그놈은 대한민국 무도 미래의 희망이었다.”해와의 용잡이 계획을 잊은 이가 너무 많으나 국안부 8위인 호국 장군인 그는 단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전란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자기가 짊어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됐다. 그만 돌아가 보거라. 3성 무도 대회에서 큰일이 나지 않은 이상 절대 끼어들지 말고.”현천수는 손을 흔들었다.“네.”설우빈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는데.“혹시 진 마스터님께서 또 오시는 건 아니겠죠?”“온다고 한들 그가 죽이려는 자는 이씨 가문 사람들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알겠습니다.”국안부는 이씨 가문과 같은 앞잡이 가문에 대해
많은 이들 앞에서 감히 한보영을 비아냥거릴 수 있다는 건 이소준의 신분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사실 또한 그러하다.이소준은 이희양의 큰아들로 경기도에서 가장 악질이다.남녀를 불문하고 괴롭히며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다.무도 대회 시작 전에 이소준은 한보영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한보영의 미모에 첫눈에 반했었다.하지만 이미 이소준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던 한보영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이씨 가문의 매국 행위가 역겨웠다.이소준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세차게 모욕까지 해주었었다.그때 그 응어리가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던 이소준은 기회를 찾아 복수하려고 했었다.어젯밤 이희양이 초대해 온 인의방 10위 고수 박인성을 보고서 희망이 보인 것이다.인의방 10위 고수 박인성이 있으니 한씨 가문은 달갑지 않더라도 참아야 하니 말이다.이로써 복수를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한제성, 네 누나랑 담소 나누고 있잖아. 어딜 어린놈이 끼어들고 지랄이야!”한제성 그들이 경호원도 없이 온 것을 보고 이소준의 말투는 더욱 강렬해졌다.이소준 뒤에는 온통 내공 후기 무자로 또래들 가운데서도 적이 극히 적은 편이다.“입단속 잘해! 말 가려가면서 하라고!”한제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야 할 사람은 너야.”말하면서 이소준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한제성의 얼굴을 때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제압당하고 말았다.한제성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반짝였는데.“뭐 하려고?”“너 때리려고!”말을 마치고 이소준은 다른 한 손으로 한제성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탁.귀를 찌른 듯한 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순식간에 거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뺨을 맞은 한제성에게 눈길을 돌렸다.“한씨 가문 도련님 아니야? 왜 뺨을 맞고 있는 거지?”“조용히 해. 때린 사람이 이소준이야. 한씨 가문 못지않게 날뛴다고 들은 바가 있어.”“이소준? 저놈이 내공 절정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이제 곧 종사가 될 실력이라던데...”많은 이들이 이소준과 한제성
“이쁜이, 혹시 그거 알아? 날 욕했던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허사연은 이소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당장 보영이한테 사과해!”“허허,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 가 보네.”말을 마치고 이소준은 눈빛이 돌변하더니 바로 허사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려고 했다.허사연의 얼굴을 땅으로 힘껏 박을 생각이었다.이소준의 비위를 맞춰 놀아주던 여자들은 그에게 특수한 애호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여자를 노는 것 보다 괴롭히는 걸 더 좋아하는 그러한 애호.이소준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던 여자들은 모두 비극을 맞이했다.얼굴이 망가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끝내거나...이소준의 손아귀로 들어간 여자라면 그게 누구라도 해피 엔딩은 없었다.허사연은 이소준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진서준의 품으로 급히 도망갔다.탁.진서준은 이소준의 손을 꽉 잡았다.힘이 느껴지면서 이소준은 안색이 좀 달라졌고 펜치에 손이 꽉 끼인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만만하지 않은 녀석임을 단번에 느꼈다.“이거 놔.”이소준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지만 두 눈에서 레이저가 쏘아 나오는 듯했다.온몸을 떨고 있는 허사연을 안고서 진서준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감히 내 여자한테 손을 대? 그 손 인제 그만 버려.”말을 마치고 진서준은 갑자기 손에 힘을 들이더니 이소준의 손을 바로 부러뜨렸다.“아!”오장육부가 뒤집혀 지는 듯한 비참한 소리가 거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두 눈에 핏발이 가득 서려진 이소준은 밀려오는 통증에 눈물까지 흘렸다.손목이 완전히 부러졌음을, 절대 원상 복귀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꺼져!”호되게 욕하면서 이소준을 걷어차 버렸는데, 그는 7, 8미터 되는 곳에서 처참하게 떨어졌다.이소준이 넘어진 곳에 거미줄처럼 균열이 생겨나면서 사방으로 퍼지기까지 했다.한제성이 그에게 맞았을 때, 진서준은 나서지 않았다.남자 사이의 결투이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한제성은 이소준의 상대가 되지 못하며
미친 거 아니야?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일 것이다.이소준의 손목을 부러뜨린 것으로 부족하여 감히 허씨 가문의 도령에게 이리 말하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으로 보였다.동성, 남주성, 경기도.3성 가운데서 남주성의 무대 세가가 가장 약하다.탁현수가 죽었고 지금 유일하게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자가 바로 전설 속의 진 마스터님이다.다른 성 사람들은 거의 진 마스터님을 본 적이 없다.하여 지금 감히 허준석 그리고 이소준과 맞서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 마스터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허준석의 눈 밑에 차가운 빛이 번쩍였는데, 속으로는 무척이나 불쾌했다.“평범하지 않은 분이었네요. 그러하니 감히 이소준 저 병신한테 손을 대겠죠.”허준석은 바로 불평을 토해낸 것이 아니라 진서준에게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덤덤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번 무도 대회에서 허씨 가문과 이씨 가문이 갑자기 일정을 함께 앞당긴 걸 보면 무엇인가 일으키기 위함이 분명하다.진서준의 추측에 따르면, 두 가문에서는 남주성이 크게 다친 틈을 타서 무엇인가 꾸미려는 것으로 보였다.하여 진서준은 허준석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없었을뿐더러 심지어 적대시하는 느낌도 있었다.“허준석! 날뛰지 마. 이번 무도 대회에서 내가 제대로 보여줄게!”이소준은 이를 악문 채 허준석을 바라보았다.가능하다면 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너 같은 병신이? 몸도 성치 않은 네가 날?”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였으나 이소준의 손이 부러진 관계로 그는 링 위에서 허준석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내가 링 위에 설 수 없다고 한들 우리 가문에 또 다른 이가 없는 건 아니야.”이소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사형이 왔거든.”이소준의 사형도 함께 왔다는 소식을 듣고 허준석은 안색이 변했다.“너 겨우 그것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너 혼자서 버거우니 도우미를 부른 거야?”“그럼 뭐? 어차피 이기면 되는 거잖아.”이소준은 입을 삐죽거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