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조천무 종사가 그냥 이렇게 죽었다고?”“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지? 인의방 제76위인 조천무 종사를 단번에 죽였어!”그 광경에 모든 무인은 머리털이 쭈뼛 솟고 소름이 돋았다.엄재욱은 두 눈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그는 당시 인천에서 했던 자신의 언행을 떠올렸다.당시 그가 진서준을 화나게 했더라면 아마 그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엄재욱은 진서준을 절대 살려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정신을 차린 엄재욱은 진서준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진서준, 감히 우리 국안부의 호국사를 죽여? 이건 우리 국안부와 싸우겠다는 거야!”사람들은 그제야 조천무가 국안부 호국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진서준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조천무를 죽였다. 이것은 국안부를 자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국안부는 화진의 가장 큰 무도 조직으로 국가 기관이었다.국안부에는 종사가 200명쯤 있었고 대종사도 30명쯤 있었다.게다가 8명의 호국장군 천의방에 이름을 올린 대단한 사람들이었다.경성의 대단한 가문들도 감히 국안부와 척질 수 없었다.“호국사들은 할 줄 아는 게 일반인을 납치하는 것밖에 없나?”진서준은 엄재욱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따져 물었다.“당신들은 날 찾지 못하자 내 가족들로 날 위협했지. 그게 호국사들이 할 일이야? 당신들이 납치범들과 뭐가 다른데?”다른 이들은 조천무가 진서준의 가족을 납치했다는 말에 경악했다.“조천무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그래서 진 마스터가 그를 죽인 거였구나. 하지만 조천무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뭐가 어쩔 수 없었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조천무가 진 마스터의 가족들로 진 마스터를 협박한 게 틀림없어.”“탁현수 어르신이 진 마스터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진 마스터는 아마 조천무의 비열한 수단 때문에 죽었을 거야.”누군가는 진서준을 응원하면서 조천무는 죽어 마땅하다고 했다.또 어떤 이들은 조천무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진서준이 조씨 일가를
“어떤 사람들은 실력이 좀 있다고 해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지. 자기가 천하무적인 줄 알아.”탁현수는 아주 작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탁현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엄청난 대종사의 위세가 그의 몸에서 뿜어졌다.탁현수의 발밑에 있던 호숫물이 끓기 시작했다.파문이 점차 주변으로 퍼져나갔다.겨우 몇 초 사이 반경 50m 내외의 호숫물이 전부 끓기 시작했고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호숫가에 서 있던 사람들 역시 열기를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세상에, 저게 바로 대종사의 실력인가? 강기를 이용해 이렇게 많은 물을 끓어오르게 한다니.”“탁현수 종사의 강기는 불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어...”“저것 봐. 호숫물이 불타오르고 있어!”호수 위에 불로 만들어진 벽이 진서준과 탁현수를 에워싸고 있었다.그 화염은 탁현수 체내의 선천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강기로 다른 뭔가를 만들어내다니.’진서준은 그 광경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화염은 비록 진서준이 영기로 만든 영화보다 못했지만 위력은 약하지 않았다.대성 종사라고 해도 감히 그 벽을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조금 골치 아파다.“이 명인 호수가 네 무덤이 될 것이다.”말을 마친 뒤 탁현수의 손에 불이 타올랐다.다음 순간, 탁현수가 손바닥을 펴 보였다.화염이 뿜어지면서 허공에 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뱀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진서준을 향해 덤벼들었다.뱀이 지난 곳마다 아래 호숫물이 지글거리면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호숫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진서준이 탁현수의 공격을 막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수십 미터 떨어진 곳인데도 델 듯한 온도가 느껴져. 종사의 강기로는 절대 저 뱀을 막지 못할 거야!”“진 마스터가 탁현수 어르신 손에 단숨에 죽는 건 아니겠지?”“그렇진 않을 거야. 진 마스터는 조금 전에 조천무를 단번에 죽였잖아. 실력자라고.”허사연과 김연아 등은 그 광경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내가 눈이 잘못됐나? 조금 전에 진 마스터 앞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나지 않았어?”누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맞아, 잘못 본 게 아니야. 확실히 용이 있었어!”“하지만 강기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대종사만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설마 진 마스터도 대종사인가?”강기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종사의 상징이었다.조금 전 진서준이 보여준 용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진서준을 대종사라고 착각했다.성씨 일가의 성진형이 차갑게 말했다.“저 자식은 대종사가 아니에요. 저 자식은 종사일 뿐만 아니라 술법 마스터예요.”술법 마스터?현장은 발칵 뒤집혔다.화진에서 수련은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었다.무도, 술법, 그리고 횡련까지.동시에 무도와 술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지만, 무도와 술법 모두 높은 수준까지 수련하는 천재들은 극히 드물었다.특히 대성 종사와 술법 마스터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다.그리고 그런 대단한 천재들은 대부분 50세 이상이었고 큰 가문의 실력자들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은 겨우 20대였다.진서준을 조사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에게 배후 세력이 없다는 걸 다 알고 있었다.그래서 진서준이 술법 마스터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진 마스터님은 술법 마스터가 아니라 술법 천사예요.”권해철은 경외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진 마스터의 술법 실력은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권해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또 한 번 안색이 달라졌다.술법 천사이자 무도 종사라니, 화진에 대단한 인재가 나타난 것이 틀림없었다.만약 진서준이 오늘 죽지 않는다면 그는 앞으로 분명 천의방 20위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다.이때 호수 위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고 곧 물보라가 전부 사라졌다.호수 위는 거친 기세로 불타오르는 불길 외에 모든 것이 고요했다.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명인 호수 수위가 3cm 정도 내려간 것을 알 수 있었다.명인 호수는 그 크기가 거의 200만 평에 달했다.200만 평인 호수의 수위가 3cm 하강한 것을 보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네.”탁현수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그의 주먹에는 선천의 힘이 8할 이상 포함되어 있었기에 종사의 강기로는 전혀 막을 수 없었다.주먹을 채 뻗기도 전에 용은 이미 진서준의 손에 닿았다.쿵...호수는 마치 미사일의 폭격을 당한 것처럼 30m 높이의 물기둥이 생겼다.활활 불타오르던 불길조차 그 기세가 한풀 꺾였다.사람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두 사람의 전투로 인한 여파로 다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물기둥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서둘러 전투 상황을 살폈다.탁현수의 눈동자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청색 빛이 반짝이는 손이 그의 공격을 막았다.그의 선천의 힘은 진서준의 영기에 완전히 둘러싸여 앞으로 조금도 나아갈 수 없었다.마치 공격이 아주 거대한 산에 가로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진 마스터가 막아냈어. 진 마스터, 정말 대성 종사가 맞는 걸까?”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그들이 이 주먹을 막았더라면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이때 탁현수가 다시 움직였다.그는 다른 손을 뻗어 진서준의 머리를 노렸다.쫘악.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진서준은 당황하지 않고 체내의 영기를 곧바로 다른 손에 집중시켜 덤덤히 다시 한번 그의 공격을 막았다.탁현수는 화가 났다.사람이 개미를 죽이려면 보통 한 번 밟으면 끝난다. 그러나 몇 번이나 밟아도 개미가 죽지 않는다면 화가 날 것이다.탁현수가 보기에 진서준이 바로 그 개미였다.“몇 번이나 막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어!”탁현수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불타오르는 주먹을 끊임없이 내뻗었고 용들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현장에 있던 종사 강자들은 탁현수가 대체 몇 번이나 공격을 퍼부었는지 보지 못했다.심지어 민영신 같은 3품 대종사도 미간을 찌푸린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진서준의 공격은 마치 바람 같았고, 그의 손바닥은 마치 청색의 장
호수 위에서 불길이 치솟았다.조금 전보다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호숫가의 온도는 이미 40도에 달했다. 종사들은 자신의 강기를 이용해 고온을 막아냈다.진서준은 그 광경을 보자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탁현수 어르신은 장도로 종사가 되셨지만 종사가 된 이후로는 장도를 쓴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탁현수 어르신이 다시 장도를 든 걸 보니 아마도 전력을 다하려는 것 같네요.”우소영은 차갑게 웃었다.“제 사부님은 오랫동안 장도를 쓰지 않으셨지만 사부님의 도법은 전혀 퇴보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대종사가 되면서 도법이 더욱 발전했죠. 도강의 위력으로 산과 강을 벨 수 있는 정도예요.”우소영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켰다.허사연은 무척 긴장했다. 그녀는 주먹을 너무 꽉 쥐어서 손가락 관절이 희게 변했다.“이 자식, 내 장도에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탁현수가 말했다.“난 지금까지 내 장도로 사람을 딱 한 명 죽였어. 그 사람은 내 원수였지. 그도 종사였어. 난 내 내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를 죽였어.”내력 무인이 종사를 죽이다니!그때 탁현수는 이미 자기보다 더 높은 경지의 사람과 싸울 수 있었다.말을 마친 뒤 탁현수는 곧바로 움직였다.그의 장도와 발밑의 호숫물이 만나는 순간, 흰 김이 모락모락 나서 탁현수의 몸을 전부 가릴 듯했다.“열염분천!”치직!공기가 찢기고 안개가 갈라졌다. 하늘가의 노을 같기도 한 붉은 도강은 호수를 갈라서 10m 정도 깊이의 길을 만들었다.탁현수는 온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선천의 힘은 거의 극치에 달했다.기세가 어마어마했다.탁현수는 자신의 모든 선천의 힘을 그 일격에 쏟아부었다.일생의 수행이 전부 그 일격에 담긴 것이다.그것은 탁현수의 일생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조금 전 진서준이 보여준 실력은 이미 탁현수의 예상을 벗어났다.그래서 그는 반드시 진서준을 일격에 참살해야 했다.다들 탁현수의 일격에 매우 놀랐다.3품
부서진 도강은 천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있던 용은 서서히 사라지면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아래 호수는 미친 듯이 사방으로 헤쳐지고 있었다.하늘의 구름 또한 사방으로 흩어져서 감쪽같이 사라졌다.“죽어!”탁현수의 호통 한 번에 용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진서준의 몸은 완전히 도강 앞에 드러나게 되었다.진서준은 물러나지 않고 두 손으로 도강을 꽉 쥐었다.강철마저 녹일 수 있는 온도가 자신의 두 손을 태우게 놔둔 것이다.피가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이 순간, 두 사람은 모든 힘을 다 썼다.“내 여동생, 내 어머니, 내 친구들, 내 애인이 날 기다리고 있어. 난 절대 죽을 수 없어!”진서준의 옷이 갑자기 찢겼고 그의 등에 용의 문양이 은은히 나타났다.다음 순간, 빛이 번쩍이면서 파괴력 넘치는 힘이 진서준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졌다.탁현수는 순간 동공이 떨렸다.“이럴 수가! 용의 핏줄이라니, 넌...”탁현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힘이 그를 집어삼켰다.쿠구궁...엄청난 물보라로 인해 진서준과 탁현수 두 사람이 물에 잠겼다.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이 일격으로 진서준과 탁현수의 승부가 갈릴 것이다.종사가 과연 대종사를 죽일 수 있을까?잠시 뒤, 호수는 다시 고요해졌다.오직 진서준만이 산처럼 꿈쩍하지 않고 호수 위에 서 있었다.그 순간, 사람들은 숨 쉬는 법마저 잊었고 생각 또한 할 수 없었다.민영신은 어느샌가 호숫가에 서 있었다. 표정 변화가 적은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허사연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보이며 입이 귀에 걸린 채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다들 진서준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우소영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호숫물이 끊임없이 끓고 있었다.호숫가.엄재욱과 다른 호국사, 성진형 일행, 황씨 일가의 두 종사까지, 총 8명의 종사가 살기등등하게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진서준, 난
천문검이 모습을 드러냈다.검 소리가 들리자 3품 대종사인 민영신마저 살짝 눈빛이 달라졌다.“아직 자기 패를 다 보여주지 않았네!”이때 민영신은 더 이상 약자를 보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지 않았다.동일한 경지였다면 민영신은 심지어 자신이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무도와 술법을 동시에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보검까지 소유하고 있으니, 진서준은 참으로 대담했다.그 광경을 본 조해영은 눈에 핏발이 섰다. 그녀는 진서준이 이곳에서 죽기를 바랐다.‘진서준, 죽어. 이곳에서 죽으라고!’진서준이 죽지 않는다면 조해영은 자신이 평생 노력해도 복수를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허사연은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정말 도덕이라고는 없네요. 같이 손을 잡고 진서준 씨 한 명을 괴롭히려고 해요?”“승리하는 자가 정의로운 법이지.”엄재욱은 차갑게 말했다.권해철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다들 날 잊은 것 같군!”“우리도 있어요!”한씨 일가의 세 종사도 나섰다.“우리 한씨 일가는 진 마스터님과 생사를 함께할 겁니다!”한서강은 자기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엄재욱과 성진형은 순간 고민이 됐다.그들은 진서준이 기진맥진한 상태라 종사 9명이 연합하면 진서준을 죽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니 꼭 이길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구경하던 사람들은 들떴다.정말로 우여곡절이 많은 전투였다.처음에는 다들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을 거로 생각했지만 진서준은 탁현수의 공격을 막았다.그리고 탁현수가 전력을 공격했건만 진서준은 그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탁현수를 죽였다.그런데 이젠 9명의 종사가 나섰다. 그중 세 명은 심지어 인의방에 이름을 올린 자들이었다.그러나 진서준 쪽에도 도우려는 자가 있었다.세 명의 종사와 혼자서 두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술법 천사 권해철.어느 쪽이 이길 지 짐작할 수 없었다.엄재욱은 안색이 한없이 어두웠다. 그는 권해철 등 사람들을 노려보았다.“권해철 씨, 이건 국안부를 적으로 돌리는
“우리 사부님을 죽인 놈, 너도 죽어!”우소영은 표정이 일그러졌고 눈빛은 원망으로 가득했다.진서준이 고개를 돌려 우소영을 바라봤을 때 우소영은 이미 진서준의 앞에 서 있었다.퍽...진서준은 우소영의 손바닥에 맞았다.허사연은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서준 씨!”다른 사람들도 매우 긴장했다.우소영은 엄청난 분노를 품고 있었으니 분명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우소영은 원래도 약한 편이 아니었으니 진서준은 틀림없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진서준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그는 우소영의 위력을 확실히 느꼈다.조금 아프긴 했지만 내상을 입지는 않았다.전에 보운산에서 용혈과로 몸을 단련한 덕분이었다.그러지 않았더라면 우소영의 공격에 크게 다쳤을 것이다.“이럴 수가. 왜 멀쩡한 거야?”우소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몸에서 혈기가 들끓고 있었다.붉은색의 혈기가 진서준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진서준은 천문검을 휘둘렀다.천문검은 마치 횃불처럼 공기를 베었다.검기로 인해 발아래 호수에 수 미터 깊이의 좁은 골짜기가 생겼다.우소영은 서둘러 피했다. 그녀는 뒤로 수십 미터 물러났다.“진 마스터 멀쩡한데?”“아냐, 멀쩡할 리가 없어. 분명 억지로 버티는 걸 거야.”“혹시 저 진 마스터 횡련 종사인 건 아닐까?”그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의논이 분분해졌다.“뭔 소리를 하는 거야? 횡련 종사라면 수련 난도가 술법이랑 비슷하다고!”“우리 화진에서 술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횡련을 수련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아!”가장 중요한 건 진서준이 이미 무도와 술법을 모두 익혔다는 것이다.만약 그가 횡련 종사라면 아마도 역사상 첫 인물일 것이다.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사이 엄재욱 등 8인이 진서준에게로 돌진했다.8명의 종사가 함께 공격하니 그 힘이 금방 대종사 경지에 이른 사람의 힘과 엇비슷했다.엄청난 공세를 마주하게 된 진서준은 체내의 마지막 남은 영기를 천문검에 모으기 시작했다.“난 검 하나만 있으면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