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찰관이 떠난 뒤 조천무는 성수민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명운 아저씨, 저희 형과 형수님이 누군가에게 죽임당했습니다...”조천무가 한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수민이가 죽었다고? 그럴 리가. 오늘 아침 우리 큰형과 작은형이 조씨 일가로 갔는데?”성명운은 믿을 수 없었다.그의 큰형과 작은형은 대성 종사이다. 그런데 남주성에서 죽었다니?“뭐라고요? 두 분이 오셨었다고요?”조천무는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성씨 일가의 성규영과 성재흥은 그보다도 실력이 더 강했다.그런데 두 사람 다 죽었으니 범인은 아마도 선천 대종사일 것이다.그러나 조천무는 조재찬에게서 조씨 일가가 선천 대종사와 척을 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내가 지금 당장 고양시로 갈 테니 기다려!”성명운은 전화를 끊은 뒤 자신의 아버지 성진형에게 연락했다.성진형은 올해 90세였다. 그러나 무도를 수련한 덕에 아주 정정했다.동성 종사 경지의 사람 중 그의 적수가 될 사람은 몇 없었다.성진형은 두 아들이 고양시에서 죽었다는 걸 알고 단단히 화가 났다.그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고, 동성의 몇몇 고수와 함께 곧장 고양시로 향했다.성명운과 성진형이 고양시에 도착해서 조씨 일가의 상태를 봤을 때, 두 사람은 곧바로 눈시울을 붉혔다.한 명은 딸이 죽고 한 명은 두 아들이 죽었다.“누가 한 짓이지? 대체 누가? 그놈의 일가족을 전부 죽여버릴 거야!”성진형은 몸을 덜덜 떨면서 우레와도 같은 소리로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조씨 일가의 상공을 뒤덮었던 살기가 그의 목소리에 흩어질 정도였다.“어르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범인이 누군지 조사하는 중이니 이제 곧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조천무가 서둘러 나서서 말했다.“아직도 조사하고 있다고? 고양시의 순찰관과 순찰사는 왜 이렇게 무능해? 이렇게 큰 사건의 범인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성진형은 화를 내며 말했다.옆에 있던 노진명은 비록 불쾌했지만 감히 불쾌한 기색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어르신, 범인은 아주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잠시 뒤에 제가 직접 가야겠네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더니 서둘러 말했다.“서준 씨, 절대 충동적으로 굴어서는 안 돼요!”“걱정하지 말아요. 충동적으로 굴지 않을게요. 전 그저 그들에게 황씨 일가의 젊은 사모님이 대체 누군지 물을 생각이에요.”말을 마치자마자 진서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진서준은 전화를 받았다.“누구세요?”“진서준, 내 목소리 기억해?”전화 건너편에서 유지수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진서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서 콰득 소리가 났다.“유지수!”진서준은 이를 악물었다. ‘유지수’ 세 글자가 그의 잇새에서 흘러나왔다.옆에 있던 허사연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난 네가 날 잊은 줄 알았는데.”유지수는 웃으며 말했다.“내 여동생을 납치한 사람이 너지?”진서준은 화를 내며 소리쳤다.“알고 싶어? 내가 위치를 보내줄 테니까 날 만나러 와.”유지수가 말했다.“그래, 지금 갈게.”전화를 끊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문자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진서준은 곧바로 한제성에게 차를 준비해달라고 했다.“서준 씨, 유지수는 분명 함정을 파놓았을 거예요!”허사연이 서둘러 진서준을 막았다.“하지만 서라가 유지수 손아귀에 있는데 안 갈 수가 없잖아요. 난 그곳이 불바다라도 갈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작게 말했다.“사연 씨, 약속할게요. 나 꼭 무사히 돌아올게요.”허사연은 진서준의 손을 꽉 잡았다.“서준 씨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릴게요!”“네.”진서준은 곧바로 차를 타고 유지수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곧 진서준은 차를 타고 오래된 아파트에 도착했고, 문자 내용에 따라 5층으로 향했다.“들어와.”방 안에서 유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서준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의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내뿜어졌다.그는 유지수를 죽어라 노려보면서 화가 난 얼굴로 따져 물었다.“내
진서준은 충격받은 얼굴로 유지수를 바라보았다.허사연과 헤어지고 방탕하기 그지없는 그녀와 다시 만나자니.“유지수, 너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거야?”진서준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진서준, 우리 학창 시절에 연애할 때 네가 그랬잖아. 날 평생 사랑할 거라고.”유지수는 손을 뻗어 진서준의 손을 잡았다.진서준은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차갑게 소리쳤다.“만지자 마! 무슨 낯짝으로 예전 일을 들먹이는 거야? 난 널 위해 술병으로 이지성의 머리를 내려치기까지 했어. 그런데 넌 내게 어떻게 했어?”3년 전 일이 거론되자 진서준은 화가 났다.“내가 감옥으로 간 뒤 넌 이지성 그 자식과 만났어. 심지어 이지성과 함께 내 어머니를 해쳤고, 어머니의 두 다리를 부러뜨리기까지 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뻔뻔하게 내 앞에서 옛날 일을 들먹여? 나랑 다시 만나고 싶다고? 꿈 깨! 그딴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진서준은 두 눈이 벌게졌다. 분노 때문에 그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다시 한번 얘기할게. 서라를 내놔!”유지수는 진서준이 옛정을 생각하지 않고 단호히 굴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 무정하게 나오겠다 이거지? 그러면 날 탓하지 마!”진서준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살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유지수는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세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네가 날 죽인다면 진서라도 죽을 거야. 네 동생을 구하고 싶다면 날 대신해 세 가지 일을 해줘야 해.”유지수는 서둘러 자신의 진짜 목적을 얘기했다.조금 전 진서준과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은 진서준의 마음속에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지금 보니 진서준은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었다.“꿈 깨! 내 동생을 납치하고 내 어머니를 해쳤으면서 나한테 일을 부탁해?”진서준은 화를 냈다.“안 그러면 넌 평생 서라를 보지 못할 거야!”유지수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진서라는 그녀가 가진 비장의 무기였다.진서라만 있다면 진서준은 절대 그녀를 죽
“이거 놔. 내 말은 사실이야!”유지수는 진서준의 어깨를 힘껏 때렸다. 하지만 힘이 너무 약해서 진서준은 간지러울 뿐이었다.진서준의 힘은 더욱더 강해졌다. 유지수는 숨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유지수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고 사지를 끊임없이 버둥거렸다.잠깐이지만 유지수는 죽을 것만 같았다.극도로 분노한 진서준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유지수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콜록콜록...유지수는 한참을 기침했다.“너 방금 진서라를 죽일 뻔한 거 알아?”유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보였다.진서준이 정신을 차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지수는 오늘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유지수, 그건 누구한테서 들은 소리야?”“안 알려줄 거야!”유지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진서라의 머리카락이 있어. 믿기지 않는다면 이걸 가져가서 친자확인을 해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겠지.”유지수는 긴 머리카락 한 올을 꺼내서 탁자 위에 놓았다.진서준은 그것을 챙기지 않았다. 진실을 알려면 어머니에게 전화 한 번 하면 되니 말이다.“유지수, 네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어떻게 감추고 산 거야? 아니면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거야?”진서준은 유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앞의 여자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대학 시절 연애할 때도 약삭빠른 구석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지독하지는 않았다.“사람은 원래 변해. 너도 3년 전이랑은 달라졌잖아.”유지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지난 3년간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지. 우리가 변한 것도 정상이야.”진서준은 오랫동안 침묵했다.“무슨 일을 해주길 바라는 거야?”진서준은 진서라를 위해 결국 타협을 선택했다.유지수를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서라는 반드시 무사해야 했다.“첫 번째 일은 아주 간단해. 황씨 일가를 없애버려.”유지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동공이 떨렸다.“너 황씨 일가의 사모님이 아니
진서준은 자신이 일찌감치 유지수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유지수는 황씨 일가에 시집온 순간부터 오늘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정말로 무시무시한 여자였다.진서준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해줄게. 두 번째 일은 뭐야?”“급해하지 마. 첫 번째 일을 끝내면 두 번째 일이 뭔지 알려줄게.”유지수는 탁자 위 물을 마신 뒤 느긋하게 말했다.“서라와 통화하게 해줘.”진서준이 말했다.“좋아. 난 처음부터 네가 서라와 통화할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어. 그래야 네가 안심하고 날 위해 움직일 테니 말이야.”유지수는 아주 오래된 휴대전화를 꺼내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서라에게 전화를 넘겨.”진서라는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진서준은 유지수가 건넨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서둘러 말했다.“서라야? 너 맞아?”“오빠, 나야!”진서준의 목소리를 들은 진서라는 무척 흥분했다.“너 괜찮아? 유지수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어?”진서준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니, 아무 짓도 안 했어.”진서라가 대답했다.진서라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진서준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서라야,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최대한 빨리 널 구해줄게.”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약속했다.“응, 난 오빠를 믿어. 오빠도 무사해야 해.”유지수는 전화를 끊을 때가 된 것 같자 손을 뻗으며 말했다.“시간 됐으니까 전화 나한테 넘겨.”진서준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유지수에게 휴대전화를 넘겼다. 그는 유지수를 바라보며 경고했다.“유지수, 내 동생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랑 네 주변 사람들 다 죽여버릴 거야.”유지수는 진서준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진서준이 경고하지 않아도 유지수는 진서라를 터치하지 않을 것이었다.“3일 줄게. 3일 안에 황씨 일가 사람들을 없애버려. 그 뒤에 서라랑 영상 통화 할 수 있게 해줄게.”유지수는 말을 마친 뒤 문을 가리켰다.“이제 가봐.”진서준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몸을 돌려 아파트를 나섰다.그러나 진서준은 바로 떠
“유지수가 맞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지수가 이렇게 치밀할 줄은 몰랐네요. 황씨 일가의 사모님 자리를 꿰차기까지 하다니!”허사연은 유지수의 치밀함에 다시금 놀랐다.“유지수는 내게 세 가지 일을 시켰어요. 그 세 가지 일을 완수하면 서라를 풀어주겠대요.”진서준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뭘 요구한 거죠?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줄게요!”허사연이 서둘러 말했다.“유지수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에요. 유지수의 첫 번째 요구는 황씨 일가를 없애는 거예요.”그 말에 방금 도착한 한씨 일가 남매는 깜짝 놀랐다.한보영이 서둘러 말했다.“진서준 씨,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 조씨 일가를 처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안부 사람들이 당신을 노리고 있을 거예요. 이때 황씨 일가를 없앤다면 국안부에서는 틀림없이 진서준 씨를 죽이기 위해 호국장군을 보낼 거예요!”진서준은 한보영의 은인이었다. 그래서 한보영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알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곧 진서준은 유지수가 수집한 황씨 일가의 범죄 증거를 꺼냈다.“이건 유지수가 준 거예요. 그들을 죽일 때 제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요.”허사연 등 사람들은 범죄 증거를 보더니 눈동자에 불길이 타올랐다.“황씨 일가 사람들은 정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네요!”허사연이 말했다.“하지만 그들을 죽일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테니 말이에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진서준은 황씨 일가와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진서라를 구하기 위해 황씨 일가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는 유지수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유지수, 그 여자 참 괘씸하네요. 유지수는 진서준 씨가 나쁜 놈이 되기를 바라는 게 틀림없어요!”허사연이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처음부터 이런 역겨운 일을 시키는 걸 보면 두 번째, 세 번째 일은 더욱더 악랄할 거예요!”“하지만 서라가 유지수의 손아귀에 있어요.”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서라
순찰사 노진명은 하루 종일 조사한 끝에 조씨 일가의 조규범이 서울의 진서준과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그 뒤로 조씨 일가에서 서울에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보낸 사람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설마 진서준이라는 젊은이가 한 짓일까?”노진명은 잠깐 고민한 뒤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는 진서준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 황보식에게 연락했다.황보식은 전라도에서 간부를 맡은 적이 있었기에 노진명의 옛 상사라고 할 수 있었다.“진명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야?”황보식이 물었다.“황보식 어르신, 서울에 있는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아시나요?”노진명이 물었다.“진 마스터님은 당연히 알지. 그건 왜 묻는 거야?”황보식은 아직 조씨 일가가 처단당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황보식이 진서준을 존대하자 노진명은 화들짝 놀랐다.황보식은 곧 70대가 되는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진서준을 진 마스터님이라고 존대한다는 건 진서준이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어르신, 전라도에 오늘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조씨 일가가 멸문당했습니다. 아마도 원한 때문인 듯합니다.”노진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뭐라고?”황보식은 화들짝 놀랐다.전라도에서 일한 적이 있는 황보식은 조씨 일가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조씨 일가가 갑자기 멸문당했다니, 충격적이었다.황보식은 노진명이 왜 갑자기 진서준에 관한 일을 묻는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진명아, 진서준 씨는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황보식은 진서준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히 진서준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네, 알겠습니다.”노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전화를 끊은 뒤 노진명은 더욱더 진서준을 의심했다.노진명은 곧바로 진서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알면 알수록 놀라웠고 점점 더 진서준이 한 짓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진서준과 황보식의 관계는 남달랐다. 노진명이 진서준을 건드린다면 황보식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것이다.결국 노진명은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돼요.”한보영은 진서준에게 웃으며 말했다.이내 진서준 일행은 도시에서 가장 큰 샤부샤부 가게에 도착했다.한제성은 그 가게의 단골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샤부샤부 가게 매니저가 곧바로 그들을 맞이했다.“안녕하세요, 한제성 씨. 몇 명이세요?”“네 명이요. 룸으로 부탁해요. 그리고 가장 비싼 세트와 술을 주세요.”한제성은 손을 휘저으며 호쾌하게 말했다.“네, 이쪽으로 오세요.”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 일행을 안내했다.이내 매니저는 그들을 1번 룸으로 안내했다.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넓은 공간이 훌륭했다.자리에 앉은 뒤 네 사람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아무도 진서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곧 직원이 한제성이 주문한 음식들을 내왔다.진서준 일행이 한창 식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한제성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황씨 일가 도련님이 꼭 이 룸을 써야겠다고 하셔서요...”매니저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황씨 일가요? 황서진 그 자식 말인가요?”한제성은 미간을 구겼다.“네, 황서진 씨입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황서진이라는 말에 진서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진서준은 유지수가 준 자료를 보았었다.황서진은 아주 악랄한 놈이었다. 그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었다.반년 전, 그는 남자의 앞에서 그의 아내를 강간했고, 일을 마치고는 두 부부를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켰다.황씨 일가의 세력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일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이 룸은 제가 먼저 예약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한제성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매니저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제성, 내가 그동안 가만히 놔뒀더니 몸이 근질거리나 봐?”7, 8명의 사람이 문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남자는 눈이 움푹 파여들어갔고 얼굴은 창백한 것이 술과 여색에 찌들어 산 모습이었다.그 청년은 다름 아닌 황서진이었다.
허윤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사실 혈연관계라고 해도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우리 아빠의 사촌 형 아들이거든.”진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허윤진의 설명을 들으니 그다지 끈끈한 혈연관계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친척인데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는 법이었다.“가자, 들어가서 보자.”진서준은 허윤진과 함께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거실에 들어오자마자 허윤진은 슬며시 진서준의 손목을 놓고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다.“서준아,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먼 친척 오빠 허준서야. 그리고 이쪽은 오빠 여자친구 이청아야.”허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에게 그 둘을 소개했다.진서준은 허준서를 쓱 훑어보았다. 외모는 잘생긴 편이었고 차려입은 옷도 꽤 비싼 편이어서 왠지 평범한 가정 출신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리고 허준서의 여자친구 이청아는 화려하게 꾸민 모습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끌 만한 스타일이었다.“이쪽은 진서준이라고 해, 내 남자친구야.”“이 사람이 네 남자친구라고?”허준서의 눈빛에는 은근히 깔보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물론 잘 숨겨져 있었지만 그 미묘한 눈빛을 진서준은 눈치챌 수 있었다.진서준의 평범한 옷차림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허준서의 태도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좀 너무 평범하지 않나? 물론 평범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네가 그래도 고귀한 신분이잖아. 내가 보건대 너희 둘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엔 분명 그쪽으로 문제가 생길 거야.”허준서가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속내는 진서준의 평범한 신분을 깔보고 있었다.허준서의 생각은 단순했다. 돈 있는 사람은 당연히 돈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지 가난하지만 잘생긴 남자와 사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허준서는 허사연이 진서준의 외모만 보고 반한 거라고 생각했다.허준서의 말에 진서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방금 배수정이 떠나간 터라 진서준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하지만 허성태의 체면을 생각해 속에 올라오
떠나는 순간, 온 하늘이 흐릿해졌다.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씩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진서준은 홀로 떠나가는 배수정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릿하게 아팠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떠나는 게 나을지도...”진서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래 끌 바엔 차라리 단칼에 끝내는 게 낫다.배수정과의 연을 확실히 끊어내지 않으면 진서준에게도 배수정에게도 지속적인 고통만 남을 뿐이다.“주인님,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 같네요...”언제 다가왔는지 모르는 이가 나미가 우산을 받쳐 들고 진서준 옆에 서 있었다.유령처럼 불쑥 나타난 이가 나미를 보고 진서준은 순간 놀라 멈칫했다.“방금 그 모든 걸 보고 있었어?”“네, 다 보았습니다...”이가 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네가 여러 사건에서 내게 도움을 많이 줬어. 이제 네 몸속의 독을 완전히 제거해 줄 거니까 넌 이제 그만 가봐도 돼.”진서준의 말은 다소 차가웠다.자기를 보내려는 진서준의 말에 이가 나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인님, 전 절대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를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그냥 하인 정도로 여겨주세요.”진서준을 떠나면 이가 나미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세상은 이토록 넓지만 이가 나미가 설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집에 가지 않았으니 이가 집안에서 의심을 품었을 게 분명했다.이가 집안 사람에게 붙잡혀 가면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발끝으로도 알 수 있었다.이제 이가 나미한테 진서준 곁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되었다.“하인이라니?”진서준은 이가 나미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진서준이 어릴 적부터 대가족에서 자랐다면 하인의 시중을 받는 생활이 익숙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서준의 성장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것 자체가 어색할 뿐이었고 그런 행복을 누릴 욕심도 없었다.“주인님,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곁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이가
두 시간 남짓이 지나고 비행기는 서울시 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릴 때 배수정이 허사연에게 말했다.“사연아, 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작은 절에서 진서준을 기다릴게.”“우리랑 같이 진서준을 만나러 가는 건 어때?”허사연은 배수정이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배수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난 절에서 기다릴 거야.”말을 마친 배수정은 조용하게 공항을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 일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솔직히 말해봐요, 진서준 씨 수정한테 무슨 몹쓸 짓 한 거예요? 갑자기 왜 진서준 씨랑 작별하려는 건가요?”허사연은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흘기며 따졌다.김연아와 허윤진 역시 진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옆에서 진서라와 조희선은 조용히 이 상황을 지켜볼 뿐, 허사연을 말리지 않았다.“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진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수정이 진서준 씨랑 작별하고 싶다는 거예요? 뭔가 일어난 게 분명해요.”허사연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궁했다.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그만 물어봐, 나도 진짜 몰라. 내가 가서 직접 만나고 오겠어.”진서준은 인피면구를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타고 작은 절에 가려고 했다.“잠깐만요. 아까 아빠가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같이 저녁 먹자고 하셨어요. 수정 만나고 나서 바로 우리 집 별장으로 오세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붙잡고 말했다.아까 진서준이 옷을 갈아입을 때, 허사연은 허성태에게 무사하다는 전화를 걸었다.허성태는 허사연이 돌아온 소식을 접하고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아버지가 신나서 어쩔 바를 모르는 목소리를 듣고 허사연은 조희선과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진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진서준은 차를 몰고 그와 배수정이 처음 만났던 절로 향했다.절에 도착했을
“경성에 뭐 볼 거 있다고 그래요? 여기서 진서준 씨가 인피면구를 쓰고 다니는 모습, 별로 익숙하지도 않아요. 차라리 우리 동네로 돌아가서 구경하죠.”허사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경성이라는 대도시에 대해 허사연은 전혀 애착이 없었다.허사연뿐만이 아니라 조희선 역시 마찬가지였다.경성은 조희선에게 아픈 기억만 남긴 도시였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서울로 돌아가자.”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허사연과 함께 곧바로 짐을 싸고 서울시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호창정은 본래 진서준을 축하연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진서준이 바로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내심 아쉬워했다.“김평안 씨, 산과 물은 이어져 있습니다. 나중에 북쪽 변경으로 오시면 꼭 제게 연락하십시오.”호창정은 북쪽 변경 아름시의 호국사였다.이번 무도 교류 대회가 끝난 후 호창정은 다시 아름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아름시도 대한민국의 국경 지역이라 이미 대량의 국안부 고수들이 그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좋아요. 기회가 되면 꼭 연락드리죠.”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호창정은 비록 천재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노력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진서준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무도 고수가 약간의 지도를 해준다면 호창정도 60세 이전에 대종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전화를 끊은 후, 진서준과 일행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진서준 일행에게는 서울시가 진정한 고향이었다.비행기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 일행에게 다가오는 익숙한 모습이 있었다.“사연아, 연아야...”그 사람은 바로 배수정이었다.며칠 만에 만난 배수정은 이전보다 많이 초췌해 보였다.지친 얼굴의 배수정을 본 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양지천 그놈이 또 배수정에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건가?“수정아, 너도 서울에 가는 거야?”허사연 일행은 진산에서 진서준과 배수정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혀 몰랐다.그래서 다들 여전히 배수정을 좋은 친구로 여겼다.“응.”배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