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돼요.”한보영은 진서준에게 웃으며 말했다.이내 진서준 일행은 도시에서 가장 큰 샤부샤부 가게에 도착했다.한제성은 그 가게의 단골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샤부샤부 가게 매니저가 곧바로 그들을 맞이했다.“안녕하세요, 한제성 씨. 몇 명이세요?”“네 명이요. 룸으로 부탁해요. 그리고 가장 비싼 세트와 술을 주세요.”한제성은 손을 휘저으며 호쾌하게 말했다.“네, 이쪽으로 오세요.”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 일행을 안내했다.이내 매니저는 그들을 1번 룸으로 안내했다.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넓은 공간이 훌륭했다.자리에 앉은 뒤 네 사람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아무도 진서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곧 직원이 한제성이 주문한 음식들을 내왔다.진서준 일행이 한창 식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한제성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황씨 일가 도련님이 꼭 이 룸을 써야겠다고 하셔서요...”매니저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황씨 일가요? 황서진 그 자식 말인가요?”한제성은 미간을 구겼다.“네, 황서진 씨입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황서진이라는 말에 진서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진서준은 유지수가 준 자료를 보았었다.황서진은 아주 악랄한 놈이었다. 그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었다.반년 전, 그는 남자의 앞에서 그의 아내를 강간했고, 일을 마치고는 두 부부를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켰다.황씨 일가의 세력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일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이 룸은 제가 먼저 예약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한제성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매니저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제성, 내가 그동안 가만히 놔뒀더니 몸이 근질거리나 봐?”7, 8명의 사람이 문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남자는 눈이 움푹 파여들어갔고 얼굴은 창백한 것이 술과 여색에 찌들어 산 모습이었다.그 청년은 다름 아닌 황서진이었다.
한제성은 깡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보영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용혈과를 구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한제성은 황서진처럼 먹고 노는 것밖에 모르는 쓰레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게다가 진서준이 바로 그의 뒤에 서 있었다.진짜로 싸우게 된다면 진서준이 도와줄지도 몰랐다.“한제성, 너 정말 맞고 싶은가 보네!”황서진은 차갑게 웃더니 한보영에게 말했다.“한보영, 오늘 내가 한씨 집안을 대신해 한제성 이 자식을 혼내줄게.”말을 마친 뒤 황서진은 바로 한제성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따귀 때문에 한제성의 안색이 달라졌다.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다짜고짜 뺨을 때리다니. 게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잘나가는 집안 자제들이었다.오늘 한제성이 황서진에게 따귀를 맞는다면 한제성은 앞으로 고양에서 얼굴을 다닐 수 없을 것이다.“안 돼!”한보영의 안색이 달라졌다.짝!누군가 더 빨리 움직여서 황서진의 뺨을 때렸고 황서진은 그 자리에서 몇 바퀴를 회전했다.황서진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서준 씨!”진서준이 나서자 한제성은 무척 기뻐했다.그는 진서준이 가만히 있지 않을 줄 알았다.“네 사람들 데리고 당장 꺼져!”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황서진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진서준은 법의 집행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유지수가 임무를 내렸다고 해서 일부러 황씨 집안에 시비를 걸 생각도 없었다.그렇게 하면 오히려 유지수의 음모가 실현되는 것을 도와주게 되기 때문이다.황서진이 가만히 있었다면 진서준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감히 내 뺨을 때려? 죽어!”황서진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한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의 앞에 섰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황서진, 경고하는데 진서준 씨는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야. 우리 집안과 너희 집안이 싸우는 걸 원한다면 어디 한 번 해봐!”황서진은 한보영의 말을
한제성의 조롱에 황서진은 더욱 화가 났다.“입 닥쳐. 그렇지 않으면 잠시 뒤에 강은우 형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너까지 해치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황서진이 강은우를 부르겠다고 하자 한제성과 한보영은 안색이 확 달라졌다.강은우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 고양시 음지의 왕이었다.한씨 일가도 강은우의 체면을 봐줘야 했다.한제성과 한보영은 강은우와 접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황서진은 강은우와 사이가 좋았다.잠시 뒤 강은우가 온다면 한씨 일가 따위 상관하지 않고 진서준을 죽이려 들 수 있었다.강은우를 부르겠다는 황서진의 말에 진서준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부르라고 해요. 우리는 앉아서 밥이나 먹죠.”진서준은 한보영을 데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진서준 씨, 강은우는 고양시 음지의 왕이에요. 부하들만 해도 수천 명이고 강은우 본인은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무자비한 사람이에요.”한보영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허사연과 진서준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전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데 탁월하거든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이때 황서진은 강은우에게 전화를 했다.그는 그곳에서 있은 일을 말했고 강은우는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장담했다.“서진아, 그곳에서 기다려. 지금 당장 부하 수백 명을 데리고 갈게. 그 자식 잘 싸워? 그 자식이 혼자서 삼백 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 어디 한 번 봐야겠어!”전화를 끊은 뒤 황서진은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많이 먹어. 그게 네 마지막 식사가 될 테니까 말이야!”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말없이 덤덤한 눈길로 황서진을 힐끗 보았다.잠시 뒤 누가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진서준과 허사연은 아주 마음 편히 식사했지만 반대로 한보영과 한제성은 안절부절못했다.“진서준 씨, 허사연 씨랑 먼저 가볼래요? 저랑 제성이는 한씨 일가 사람이니까 강은우는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예요!”한보영이 말했다.“보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강은우의 표정을 보지 못한 황서진은 진서준을 도발했다.“이 자식, 아까는 거만했잖아? 어디 지금도 한 번 거만 떨어보지 그래?”황서진은 험악한 표정으로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이쪽은 네 여자 친구지? 네 여자 친구가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네! 걱정하지 마. 네 여자는 내가 챙겨줄 테니까.”진서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강은우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황서진은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다.한보영은 곧바로 강은우의 앞으로 걸어가서 정중히 말했다.“강은우 씨, 진서준 씨는 저희 한씨 일가의 귀한 손님입니다. 저희 한씨 일가 체면을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주시죠. 대신 저희 한씨 일가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두둑이 챙겨드리겠습니다.”강은우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늘 황서진을 단단히 혼쭐내줘야 했다.황서진은 강은우가 진서준을 혼쭐내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되었는데, 강은우가 고개를 젓자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한보영, 한씨 일가도 강은우 형님 앞에서는 쪽도 못 쓰네.”한보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진서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강은우를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저 자식이 내 사지를 부러뜨리겠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진서준은 강은우에게 묻고 있었다.“이 자식, 버르장머리가 없네! 감히 은우 형님에게 그딴 식으로 얘기해? 죽고 싶어?”강은우가 있어서 황서진은 더욱 거만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이번에 진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대신 다른 사람이 움직였다.강은우는 황서진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은우 형님, 왜... 왜 저를 공격하는 거예요?”걷어차인 황서진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한보영이 먼저 반응했다.진서준의 태연자약한 표정을 본 한보영은 곧바로 깨달았다.“입 다물어. 넌 잠시 뒤에 처리해 줄게.”강은우는 그렇게 말한 뒤 허리를 숙인 채로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갔다.“진서준 씨, 전... 전 황서진이
“진서준 씨, 그냥 혼쭐만 내면 될 것 같은데요? 죽이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황서진은 황씨 일가 가주의 조카라 황서진을 죽인다면 황씨 일가 가주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현재 진서준은 비교적 위험한 상황이었다.국안부와 황씨 일가가 모두 그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은우 씨, 사지를 부러뜨리는 걸로 해요.”진서준이 말했다.사지를 부러뜨리는 건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욱 잔인한 일이었다.“뭐라고요?”황서진은 곧바로 전화를 꺼냈다.“경고하는데 우리 황씨 일가는 정월문과 인연이 있어. 정월문의 대장로와 둘째 장로가 지금 고양시에 있다고!”정월문?진서준은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한보영은 정월문이라는 말에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그녀는 황씨 일가가 정월문과 연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진서준 씨, 정월문은 고양시 근처에 있는 문파예요. 종사가 적지 않고 실력이 아주 뛰어나요.”강은우도 정월문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정월문에 고수가 많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순간 난처해졌다.진서준도 그제야 누구 입에서 정월문을 들어봤었는지를 떠올렸다.정민식은 자기가 정월문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정월문 사람이 밖으로 나온 건 아마도 진서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일 것이다.황서진은 한보영 일행의 표정이 살짝 달라지자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그러면 이제 나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두 장로를 이곳으로 부르겠어! 그 두 사람은 종사야. 그들이 도착하게 된다면 강은우의 부하가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어!”황서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일반인은 종사 앞에서 맥도 못 췄다.강은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꼼짝하지 못했다. 그는 진서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난 저 자식 사지를 부러뜨리라고 했어요.”진서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내 여자를 농락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저렇게 건방을 떨고 있잖아요.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봐준 거예요.”“장난해?”황서진은 진서준이 농담하는 것 같지 않자 곧
이곳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단한 집안의 사람들이었다.레스토랑 사장이 손님들을 내보내자 다들 두고 보자면서 소란을 일으켰다.그러나 강은우와 그의 수많은 부하를 본 순간, 그들은 조용히 레스토랑을 떠났다.곧 레스토랑에 있던 손님들이 전부 내쫓겼고, 진서준은 로비 안에 앉아서 덤덤히 차를 마셨다.황서진은 강은우가 데려온 사람들로 인해 사지가 부러진 채 로비에 던져져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이때 황서진에게서는 조금 전의 거만함과 분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진서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원망이 가득했다.황서진은 속으로 정월문의 둘째 장로가 온다면 진서준에게로 그대로 갚아줄 거로 생각했다.그는 진서준의 사지를 부러뜨려서 그를 죽을 만큼 괴롭게 만들 생각이었다.곧 노인 한 명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했다.노인은 백발이 성성했고 수염도 아주 길어서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그는 선인 같아 보였다.그 노인은 정월문의 둘째 장로 경두진이었다.그는 정민식의 사형이었다.경두진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황서진과 의자에 앉아 있는 진서준을 보자 눈빛이 살짝 변했다.“당신이 바로 정월문의 둘째 장로야?”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그래. 넌 누구야? 왜 이렇게 잔인하지? 사람의 사지를 부러뜨리다니!”경두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진서준의 실력을 짐작할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꽤 놀랐다.“장로님, 절 구해주세요!”황서진은 엉엉 울면서 말했다.“오늘 장로님이 절 구하지 못하면 절 죽이겠다고 이 자식이 그랬어요.”진서준은 웃었다.“내가 잔인하다고? 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바닥에 누워있는 건 내가 됐을 텐데? 그리고 내 여자 친구는 이 쓰레기 같은 놈에게 농락당했겠지. 이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걸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으니 우리도 참고 있을 이유가 없지.”경두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래도 이렇게 무자비할 것 까진 없지!”“그건 다른 사람일 때고.”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난 다른 사람과 달라. 상대가 날 공격하려 한다면
그 뒤 강씨 일가에서는 사람을 시켜 정민식을 정월문으로 돌려보냈다.경두진과 대장로 두 사람은 정민식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곧바로 산에서 내려왔다.그런데 이곳에서 진서준을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맞아. 내가 그랬어.”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난 인자한 편이라 기회를 한 번 주겠어. 지금 당장 꺼진다면 그냥 보내줄게.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정민식처럼 폐인이 될 거야!”진서준의 목소리는 아주 평온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건방진 놈!”경두진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러나 그는 충동적으로 굴지 않았다. 진서준이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렸다면 그도 종사일 것이다.결국 경두진은 대장로에게 전화를 했다.“사형,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린 놈을 찾았습니다. 지금 바로 오세요!”경두진은 대장로 문희수에게 연락했다.문희수는 그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저 자식이 바로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린 청년이야?”진서준이 젊은 청년인 걸 본 문희수는 당황했다.“맞아요. 저 자식이 인정했습니다.”경두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게다가 이 자식은 황씨 일가 아들의 사지를 부러뜨렸습니다.”문희수는 그 말을 듣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이 자식,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우리를 탓하지 마!”문희수와 경두진 두 사람은 종사가 된 지 오래였고, 이제 곧 선천 대종사가 될 수 있었다.실력만 따지자면 그들은 혈운 조직의 종사들보다 더 강했다.두 사람이 종사의 위엄을 내뿜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다. 문희수와 경두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두려움이 가득했다.로비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이 그들의 위엄 때문에 부서졌다.“공격하자!”문희수와 경두진은 동시에 발을 구르면서 뛰어나갔다.내공을 동원하자 그들은 10m 넘는 거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들은 마치 흉맹한 호랑이처럼 진서준을 향해 돌진했다.자줏빛의 강기가 두 주먹에 모였다. 문희수의 주먹에서는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고 엄청난 온도 때문에 공기가 일그러졌다.경두진의
정월문의 두 대성 종사가 청년의 일격조차 견디지 못하다니.대체 진서준은 정체가 뭘까?황서진은 머리가 울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황씨 일가의 종사라고 해도 정월문의 두 장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남주성에서 정월문은 아주 뛰어난 문파였다.정월문에는 사람도 많았고 종사만 해도 6명이 있었으며 대장로 문희수와 둘째 장로 경두진는 실력이 아주 막강했다.그런데 두 사람은 오늘 진서준 앞에서 맥도 못 췄다.바닥에 쓰러진 문희수의 두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의 두 주먹은 파워가 엄청났고 그 온도는 철도 녹일 수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진서준의 앞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사형, 저 자식 인간이 아니에요!”경두진의 말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젊은이를 처음 보았다.두 사람은 진서준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문희수는 이제야 진서준이 정민식의 단전을 파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계속 싸울 거야?”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문희수와 경두진을 바라보았다.문희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당신은 대체 누구야? 이렇게 막강한 실력이라면 절대 예사 인물이 아닐 텐데. 천의방? 지의방? 아니면 인의방이야?”문희수는 미간을 찡그렸다.“난 그런 거 들어본 적 없어.”진서준이 말했다.“말도 안 돼!”문희수가 화를 내며 반박했다.천의방, 지의방, 인의방은 전 세계의 강자를 기록하는 리스트였다.그중에서 천의방이 가장 강했고 인의방이 가장 약했다.하지만 가장 약한 인의방이라고 해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엄청난 강자였다.문희수는 과거 인의방의 꼴찌인 대성 종사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지만 상대의 공격을 겨우 세 번만 막았다.그런데 진서준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러니 진서준의 실력이라면 인의방에서도 50위 안에 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문희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조
허윤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사실 혈연관계라고 해도 거의 없다고 보면 돼. 우리 아빠의 사촌 형 아들이거든.”진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허윤진의 설명을 들으니 그다지 끈끈한 혈연관계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친척인데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는 법이었다.“가자, 들어가서 보자.”진서준은 허윤진과 함께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거실에 들어오자마자 허윤진은 슬며시 진서준의 손목을 놓고 자연스레 거리를 두었다.“서준아, 내가 소개할게. 이쪽은 먼 친척 오빠 허준서야. 그리고 이쪽은 오빠 여자친구 이청아야.”허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에게 그 둘을 소개했다.진서준은 허준서를 쓱 훑어보았다. 외모는 잘생긴 편이었고 차려입은 옷도 꽤 비싼 편이어서 왠지 평범한 가정 출신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리고 허준서의 여자친구 이청아는 화려하게 꾸민 모습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끌 만한 스타일이었다.“이쪽은 진서준이라고 해, 내 남자친구야.”“이 사람이 네 남자친구라고?”허준서의 눈빛에는 은근히 깔보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물론 잘 숨겨져 있었지만 그 미묘한 눈빛을 진서준은 눈치챌 수 있었다.진서준의 평범한 옷차림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허준서의 태도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좀 너무 평범하지 않나? 물론 평범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네가 그래도 고귀한 신분이잖아. 내가 보건대 너희 둘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지금은 괜찮더라도 나중엔 분명 그쪽으로 문제가 생길 거야.”허준서가 빙빙 돌려서 말했지만 속내는 진서준의 평범한 신분을 깔보고 있었다.허준서의 생각은 단순했다. 돈 있는 사람은 당연히 돈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지 가난하지만 잘생긴 남자와 사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허준서는 허사연이 진서준의 외모만 보고 반한 거라고 생각했다.허준서의 말에 진서준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방금 배수정이 떠나간 터라 진서준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하지만 허성태의 체면을 생각해 속에 올라오
떠나는 순간, 온 하늘이 흐릿해졌다.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씩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진서준은 홀로 떠나가는 배수정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릿하게 아팠다.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떠나는 게 나을지도...”진서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오래 끌 바엔 차라리 단칼에 끝내는 게 낫다.배수정과의 연을 확실히 끊어내지 않으면 진서준에게도 배수정에게도 지속적인 고통만 남을 뿐이다.“주인님, 마음이 편치 않으신 것 같네요...”언제 다가왔는지 모르는 이가 나미가 우산을 받쳐 들고 진서준 옆에 서 있었다.유령처럼 불쑥 나타난 이가 나미를 보고 진서준은 순간 놀라 멈칫했다.“방금 그 모든 걸 보고 있었어?”“네, 다 보았습니다...”이가 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네가 여러 사건에서 내게 도움을 많이 줬어. 이제 네 몸속의 독을 완전히 제거해 줄 거니까 넌 이제 그만 가봐도 돼.”진서준의 말은 다소 차가웠다.자기를 보내려는 진서준의 말에 이가 나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주인님, 전 절대 떠나지 않겠습니다. 저를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그냥 하인 정도로 여겨주세요.”진서준을 떠나면 이가 나미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세상은 이토록 넓지만 이가 나미가 설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집에 가지 않았으니 이가 집안에서 의심을 품었을 게 분명했다.이가 집안 사람에게 붙잡혀 가면 자기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발끝으로도 알 수 있었다.이제 이가 나미한테 진서준 곁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되었다.“하인이라니?”진서준은 이가 나미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진서준이 어릴 적부터 대가족에서 자랐다면 하인의 시중을 받는 생활이 익숙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진서준의 성장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시중을 받는 것 자체가 어색할 뿐이었고 그런 행복을 누릴 욕심도 없었다.“주인님,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 주인님 곁을 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이가
두 시간 남짓이 지나고 비행기는 서울시 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릴 때 배수정이 허사연에게 말했다.“사연아, 난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작은 절에서 진서준을 기다릴게.”“우리랑 같이 진서준을 만나러 가는 건 어때?”허사연은 배수정이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배수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난 절에서 기다릴 거야.”말을 마친 배수정은 조용하게 공항을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 일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솔직히 말해봐요, 진서준 씨 수정한테 무슨 몹쓸 짓 한 거예요? 갑자기 왜 진서준 씨랑 작별하려는 건가요?”허사연은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흘기며 따졌다.김연아와 허윤진 역시 진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옆에서 진서라와 조희선은 조용히 이 상황을 지켜볼 뿐, 허사연을 말리지 않았다.“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진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수정이 진서준 씨랑 작별하고 싶다는 거예요? 뭔가 일어난 게 분명해요.”허사연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궁했다.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그만 물어봐, 나도 진짜 몰라. 내가 가서 직접 만나고 오겠어.”진서준은 인피면구를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차를 타고 작은 절에 가려고 했다.“잠깐만요. 아까 아빠가 오늘 저녁에 집에 와서 같이 저녁 먹자고 하셨어요. 수정 만나고 나서 바로 우리 집 별장으로 오세요.”허사연이 진서준을 붙잡고 말했다.아까 진서준이 옷을 갈아입을 때, 허사연은 허성태에게 무사하다는 전화를 걸었다.허성태는 허사연이 돌아온 소식을 접하고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아버지가 신나서 어쩔 바를 모르는 목소리를 듣고 허사연은 조희선과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진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진서준은 차를 몰고 그와 배수정이 처음 만났던 절로 향했다.절에 도착했을
“경성에 뭐 볼 거 있다고 그래요? 여기서 진서준 씨가 인피면구를 쓰고 다니는 모습, 별로 익숙하지도 않아요. 차라리 우리 동네로 돌아가서 구경하죠.”허사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경성이라는 대도시에 대해 허사연은 전혀 애착이 없었다.허사연뿐만이 아니라 조희선 역시 마찬가지였다.경성은 조희선에게 아픈 기억만 남긴 도시였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서울로 돌아가자.”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허사연과 함께 곧바로 짐을 싸고 서울시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예약했다.호창정은 본래 진서준을 축하연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진서준이 바로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내심 아쉬워했다.“김평안 씨, 산과 물은 이어져 있습니다. 나중에 북쪽 변경으로 오시면 꼭 제게 연락하십시오.”호창정은 북쪽 변경 아름시의 호국사였다.이번 무도 교류 대회가 끝난 후 호창정은 다시 아름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아름시도 대한민국의 국경 지역이라 이미 대량의 국안부 고수들이 그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좋아요. 기회가 되면 꼭 연락드리죠.”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호창정은 비록 천재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노력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진서준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무도 고수가 약간의 지도를 해준다면 호창정도 60세 이전에 대종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전화를 끊은 후, 진서준과 일행은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진서준 일행에게는 서울시가 진정한 고향이었다.비행기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 일행에게 다가오는 익숙한 모습이 있었다.“사연아, 연아야...”그 사람은 바로 배수정이었다.며칠 만에 만난 배수정은 이전보다 많이 초췌해 보였다.지친 얼굴의 배수정을 본 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양지천 그놈이 또 배수정에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건가?“수정아, 너도 서울에 가는 거야?”허사연 일행은 진산에서 진서준과 배수정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혀 몰랐다.그래서 다들 여전히 배수정을 좋은 친구로 여겼다.“응.”배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