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 강씨 일가에서는 사람을 시켜 정민식을 정월문으로 돌려보냈다.경두진과 대장로 두 사람은 정민식의 복수를 하기 위해 곧바로 산에서 내려왔다.그런데 이곳에서 진서준을 마주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맞아. 내가 그랬어.”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난 인자한 편이라 기회를 한 번 주겠어. 지금 당장 꺼진다면 그냥 보내줄게.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정민식처럼 폐인이 될 거야!”진서준의 목소리는 아주 평온했다.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건방진 놈!”경두진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러나 그는 충동적으로 굴지 않았다. 진서준이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렸다면 그도 종사일 것이다.결국 경두진은 대장로에게 전화를 했다.“사형,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린 놈을 찾았습니다. 지금 바로 오세요!”경두진은 대장로 문희수에게 연락했다.문희수는 그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다.“저 자식이 바로 정민식의 단전을 망가뜨린 청년이야?”진서준이 젊은 청년인 걸 본 문희수는 당황했다.“맞아요. 저 자식이 인정했습니다.”경두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게다가 이 자식은 황씨 일가 아들의 사지를 부러뜨렸습니다.”문희수는 그 말을 듣자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이 자식,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우리를 탓하지 마!”문희수와 경두진 두 사람은 종사가 된 지 오래였고, 이제 곧 선천 대종사가 될 수 있었다.실력만 따지자면 그들은 혈운 조직의 종사들보다 더 강했다.두 사람이 종사의 위엄을 내뿜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다. 문희수와 경두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두려움이 가득했다.로비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이 그들의 위엄 때문에 부서졌다.“공격하자!”문희수와 경두진은 동시에 발을 구르면서 뛰어나갔다.내공을 동원하자 그들은 10m 넘는 거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들은 마치 흉맹한 호랑이처럼 진서준을 향해 돌진했다.자줏빛의 강기가 두 주먹에 모였다. 문희수의 주먹에서는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고 엄청난 온도 때문에 공기가 일그러졌다.경두진의
정월문의 두 대성 종사가 청년의 일격조차 견디지 못하다니.대체 진서준은 정체가 뭘까?황서진은 머리가 울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황씨 일가의 종사라고 해도 정월문의 두 장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남주성에서 정월문은 아주 뛰어난 문파였다.정월문에는 사람도 많았고 종사만 해도 6명이 있었으며 대장로 문희수와 둘째 장로 경두진는 실력이 아주 막강했다.그런데 두 사람은 오늘 진서준 앞에서 맥도 못 췄다.바닥에 쓰러진 문희수의 두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의 두 주먹은 파워가 엄청났고 그 온도는 철도 녹일 수 있을 정도였다.그러나 진서준의 앞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사형, 저 자식 인간이 아니에요!”경두진의 말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젊은이를 처음 보았다.두 사람은 진서준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문희수는 이제야 진서준이 정민식의 단전을 파괴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계속 싸울 거야?”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문희수와 경두진을 바라보았다.문희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당신은 대체 누구야? 이렇게 막강한 실력이라면 절대 예사 인물이 아닐 텐데. 천의방? 지의방? 아니면 인의방이야?”문희수는 미간을 찡그렸다.“난 그런 거 들어본 적 없어.”진서준이 말했다.“말도 안 돼!”문희수가 화를 내며 반박했다.천의방, 지의방, 인의방은 전 세계의 강자를 기록하는 리스트였다.그중에서 천의방이 가장 강했고 인의방이 가장 약했다.하지만 가장 약한 인의방이라고 해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모두 엄청난 강자였다.문희수는 과거 인의방의 꼴찌인 대성 종사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지만 상대의 공격을 겨우 세 번만 막았다.그런데 진서준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러니 진서준의 실력이라면 인의방에서도 50위 안에 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문희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조
“적당히 해. 네가 인의방의 강자라고 해도 우리를 이렇게 모욕하고 괴롭힐 수는 없어! 미리 말해두는데 우리 사부님은 인의방 39위였던 강자야.”인의방 5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같은 경지의 사람 중 상위 5%라고 할 수 있었다.게다가 그건 몇 년 전이었기에 현재 문희수의 사부님은 더욱 강해졌다.같은 경지 사람 중 그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당신 사부님이 인의방이든 뭐든 상관없어. 당신들은 오늘 내 심기를 건드렸고 난 내 규칙에 따라 당신들을 처리할 거야.”진서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카리스마 넘치게 말했다.“우리 정월문과 척지겠다는 뜻이야?”문희수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와 척지려고 한 건 당신들이야. 내가 아니라! 난 아까 분명 기회를 줬어.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건 당신들이야. 이젠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서 도망치려고?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어?”문희수와 경두진은 더욱 난감해졌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하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정말로 두 사람을 죽일지도 몰랐다.하지만 단전을 파괴한다면 죽는 것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문희수와 경두진의 표정은 계속해 변화했고 로비는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어. 당장 선택하지 않는다면 손 쓸 줄 알아.”오늘 진서준은 절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정민식의 복수를 하려고 온 것이었기에 이렇게 두 사람을 돌려보낸다면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그를 찾아올 것이다.수가 더 많아진다면 그들을 상대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상의할 여지가 없는 거야?”문희수는 갑자기 자신의 품 안에 손을 넣었다.“나한테 귀한 옥이 하나 있어. 이걸로 내 목숨을 맞바꿀 수는 없을까?!”진서준은 문희수가 꺼낸 옥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눈을 빛냈다.그것은 확실히 아주 귀한 옥이었다. 그 옥에는 방어 진법을 설치할 수 있었다.진서준이 고민하는 것 같자 경두진도 서둘러 자신의
진서준은 옥과 운석을 쥐고서 미소를 지었다.운석으로는 그의 천문검을 담금질할 수 있었고 옥은 반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 방어 진법을 설치하여 어머니와 허사연에게 줄 생각이었다.이 옥에 진법을 설치한다면 전력을 다한 대성 종사의 일격을 한 번 막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위험이 생겼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들을 구하러 갈 수 있었다.“서준 씨, 이 두 물건이 그렇게 귀한 거예요?”허사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당연하죠. 이 옥은 돌아간 뒤에 사연 씨에게 줄게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걸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요. 이걸로 종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사연 씨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도 바로 알 수 있어서 빠르게 사연 씨를 구하러 갈 수 있어요.”허사연은 그 말을 듣자 눈을 빛냈다.종사의 일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녀에게 있어 아주 귀한 보물이었다.진서준은 삶의 의욕이 사라진 황서진을 바라보았다.“네가 불러온 사람들 다 도망쳤는데, 뭐 더 하고 싶은 말 있어?”황서진은 공허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난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난 널 죽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 영혼까지 파괴할 수 있어.”황서진은 악귀가 되어 복수하겠다고 했지만 진서준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진서준은 영결 하나를 손에 쥐고 황서진의 미간을 내리쳤다.곧 황서진은 바닥에 쓰러진 채 창백한 얼굴로 경련을 일으켰다.“가서 처리해요. 바로 태워버려요.”진서준이 강은우에게 분부했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서 처리하겠습니다.”강은우는 부하들과 함께 황서진을 데리고 레스토랑을 떠났다.강은우 일행이 떠난 뒤 진서준 일행도 떠났다. 그들은 한씨 일가로 돌아갔다.가는 길에 진서준은 한보영을 바라보았다.“보영 씨, 아까 그 노인이 말한 천의방과 지의방, 인의방에 대해 알아요?”진서준은 처음 천의방과 지의방, 인의방을 알게 되어
“그 사람은 수십 년 전부터 유명했어요. 서른에 종사 경지가 되었고 겨우 5년 사이에 대성 종사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그가 선천 1품 대종사가 되었을 때는 이미 종사 10명을 죽인 뒤였어요. 국안부에서 그를 죽이려고 호국사 여러 명을 파견했었는데 결국 도망쳤어요.”진서준은 깜짝 놀랐다.그는 보운산에서 죽였던 종사들이 인의방 50위 안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겨우 90위권이었다.인의방에 천재들이 많은 듯했다.그렇다면 지의방과 천의방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더 보기 드문 천재들일 것이다.허사연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진서준의 팔을 잡았다.“호국장군 사람들도 천의방이라니. 만약 그들이 서준 씨를 잡으러 온다면...”인의방의 강자들도 이렇게나 강한데 천의방에 이름을 올린 호국장군은 더 막강할 것이다.한보영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전 진서준 씨가 황씨 일가와 완전히 척지는 걸 바라지 않았어요. 만약 정말로 호국장군이 찾아온다면 진서준 씨는 아마...”한보영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호국장군은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다.그동안 해외 강자들이 감히 화진 무도계에 침입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8명의 호국장군 때문이었다.그들이 있기 때문에 해외 악인들은 감히 화진을 건드리지 못했다.진서준의 표정이 어느샌가 엄숙해졌다.높은 곳에 서면 더 멀리 내다보게 된다. 그러면 알게 되는 것도 더욱 많아진다.전에 혈운 조직의 네 종사를 쓰러뜨렸을 때 진서준은 매우 기뻤다. 당시 자신이 종사 경지에서는 무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보니 갈 길이 아주 먼 듯했다.“참, 고양시의 탁현수라는 사람도 인의방이라고 하던데, 그 사람은 몇 위인가요?”진서준은 문득 그가 떠올랐다.당시 진서준은 그의 제자 우소영을 혼쭐냈었다.그러니 상대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탁현수 씨요?”한보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했다.“5년 전 탁현수 씨는 인의방 64위였어요. 그런데 소문에 따르면 지금은 대종사 경지에 거의 다다른 수준이라고 해요. 대종사
“넌 여기서 열심히 수련해. 난 그 네 사람을 찾으러 가야겠어.”어쨌든 예준섭도 혈운 조직 사람이었기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만약 그 네 명이 정말로 죽임당했다면 권시준은 그 네 사람을 위해 복수해야 했다.“네, 사부님!”강성준은 서둘러 대답했다.혈운 조직의 전투 인원은 10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조직에는 다른 인원들도 있었고, 그들만의 정보 부문도 있었다.권시준은 정보 부문을 통해 예준섭 등 네 명이 마지막에 나타났던 곳이 보운산이라는 걸 알아냈다.“설마 그 네 명, 보운산의 그 늙은이들 손에 죽은 건가?”권시준이 추측했다.권시준은 우선 보운산에 가서 그들이 정말로 그곳에서 죽었는지 알아볼 셈이었다.다행히 노정명 등 사람들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권시준을 만났더라면 그들 모두 죽었을 것이다....이때 서울에 도착한 조천무 일행은 곧장 진서준의 별장으로 향했다.조희선은 허씨 일가의 별장에 있었기에 조천무 일행은 조희선을 찾지 못했다.그러나 그들은 옆 건물에서 고한영과 유정을 발견했다.“당신들은 누구죠?”고한영과 유정 두 사람은 불청객을 보고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그릇이 바닥에 떨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너희 진서준의 여자야?”조천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한영과 유정을 바라보았다.그는 유정과 고한영이 진서준의 여자인 줄 알았다.“아니에요!”고한영은 곧바로 부정했다.그녀는 그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아냈다.만약 두 사람이 진서준과 아는 사이라는 걸 들키게 된다면 그들은 분명 인질로 잡혀 진서준을 위협하는 데 이용당할 것이었다.고한영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두려운 건 진서준이 두 사람 때문에 다치는 것이었다.“참나, 여긴 진서준의 별장이야. 너희가 진서준의 여자가 아니라면 왜 여기 있겠어?”조천무는 차갑게 웃었다.“데려가. 난 너희를 인질로 잡아둘 거야. 진서준 그 자식이 인정할지 안 할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이거 놔요!”고한영과 유정은 겁을 먹고 소리를 질렀다.“입
조천무가 유정을 납치했는데 어떻게 화가 나지 않겠는가?“하하, 네 여자를 구하고 싶다면 내일 아침 8시에 조씨 일가로 찾아와! 명심해. 시간 맞춰 와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장담 못 해!”조천무가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에게 지금 당장 오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진서준을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이번에는 반드시 진서준에게 제대로 복수할 생각이었다.전화를 끊은 뒤 진서준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진서라가 납치당했고 이젠 유정도 납치당했다. 진서준은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졌다.진서준이 뒤척거리고 있을 때 그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그것은 인천에서 일어난 스무 번째 살인 사건이었다.그러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민심이 흉흉했다.인천의 순찰사가 몇 번이나 오씨 일가를 찾아와 오윤산에게 범인을 잡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오윤산은 보운산 대장로의 도움을 받기 위해 보운산으로 사람을 보냈으나 천경문은 지금까지도 오지 않았다.그건 천경문이 하산할 때 마침 진서준을 만나서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그 뒤 사문을 떠났을 때 천경문은 오씨 일가의 일을 잊었다.“할아버지, 진서준 씨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떨까요?”오세정이 오윤산에게 말했다.“지금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어.”오윤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오윤산은 사실 진서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진서준의 도움 덕분에 종사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아직 그 은혜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아침 연락하자.”오윤산은 오세정에게 말했다.“세정아, 너도 요 며칠 피곤했을 텐데 어서 돌아가서 쉬어.”“네, 할아버지도 일찍 쉬세요.”오세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방으로 돌아가 쉬려고 했다.이때 오윤산은 별장 앞마당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밖에 누구야?”몇 초 뒤,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그의 검은 옷에는
창격이 그렇게 많은 여성을 죽인 이유는 노정을 찾기 위해서였다.창격은 마수였다. 마수가 음살 마스터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좋은 노정을 찾는 것이었다.오세정은 지음지체라서 창격이 필요로 하는 노정의 조건에 부합되었다.오세정을 자신의 밀실에 가둬둔 뒤 창격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내일이면 만월이라 이번 달 중에서 음기가 가장 충만할 때였다.내일 오세정의 음기를 전부 흡수한다면 창격은 음살 마스터가 될 수 있었다.마수가 수련하는 자들의 미움을 받는 이유는 반드시 일반인들의 목숨을 수행에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내일 밤이 지나면 남주성이 아니라 강남 전체를 아울러봐도 날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야.”창격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마귀처럼 비열하게 웃었다....오세정은 오윤산이 가장 아끼는 손녀였다.오세정이 창격에게 납치당하자 오윤산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기절해 버렸다.다행히 집안 도우미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나와서 오윤산이 기절한 걸 발견해 그를 곧바로 오씨 일가의 개인 병원으로 보냈다.오윤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침 6시였다.오윤산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진서준에게 연락했다.오윤산의 전화를 받은 진서준은 당황했다.“어르신, 무슨 일이세요?”진서준이 물었다.“진서준 씨, 인천으로 한 번 와주세요. 제 손녀가 납치당했어요!”오윤산은 울먹거리면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안색이 달라졌다.“어르신, 조급해 하지 마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먼저 설명해 주시겠어요?”“최근 인천에 살인마가 나타났어요. 젊은 여성들만 골라서 죽이는데 수단이 아주 잔인해요. 전 순찰관과 순찰사와 함께 오랫동안 조사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바로 어젯밤 범인이 절 찾아왔어요. 전 그와 싸웠지만 그의 일격에 바로 쓰러져 버렸고 범인은 제 손녀를 납치했어요.”오윤산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70대 노인이 우는 걸 듣게 된 진서준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하지만 진서준은 잠시 뒤 조씨 일가로 가서 조천무를 만나 유정과 고한영을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