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놔. 내 말은 사실이야!”유지수는 진서준의 어깨를 힘껏 때렸다. 하지만 힘이 너무 약해서 진서준은 간지러울 뿐이었다.진서준의 힘은 더욱더 강해졌다. 유지수는 숨쉬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유지수는 얼굴이 빨갛게 되었고 사지를 끊임없이 버둥거렸다.잠깐이지만 유지수는 죽을 것만 같았다.극도로 분노한 진서준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유지수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콜록콜록...유지수는 한참을 기침했다.“너 방금 진서라를 죽일 뻔한 거 알아?”유지수는 고개를 들었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보였다.진서준이 정신을 차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지수는 오늘 이곳에서 죽었을 것이다.“유지수, 그건 누구한테서 들은 소리야?”“안 알려줄 거야!”유지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나한테 진서라의 머리카락이 있어. 믿기지 않는다면 이걸 가져가서 친자확인을 해봐. 검사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겠지.”유지수는 긴 머리카락 한 올을 꺼내서 탁자 위에 놓았다.진서준은 그것을 챙기지 않았다. 진실을 알려면 어머니에게 전화 한 번 하면 되니 말이다.“유지수, 네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어떻게 감추고 산 거야? 아니면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한 거야?”진서준은 유지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앞의 여자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대학 시절 연애할 때도 약삭빠른 구석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지독하지는 않았다.“사람은 원래 변해. 너도 3년 전이랑은 달라졌잖아.”유지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지난 3년간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지. 우리가 변한 것도 정상이야.”진서준은 오랫동안 침묵했다.“무슨 일을 해주길 바라는 거야?”진서준은 진서라를 위해 결국 타협을 선택했다.유지수를 죽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진서라는 반드시 무사해야 했다.“첫 번째 일은 아주 간단해. 황씨 일가를 없애버려.”유지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동공이 떨렸다.“너 황씨 일가의 사모님이 아니
진서준은 자신이 일찌감치 유지수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유지수는 황씨 일가에 시집온 순간부터 오늘을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정말로 무시무시한 여자였다.진서준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일은 해줄게. 두 번째 일은 뭐야?”“급해하지 마. 첫 번째 일을 끝내면 두 번째 일이 뭔지 알려줄게.”유지수는 탁자 위 물을 마신 뒤 느긋하게 말했다.“서라와 통화하게 해줘.”진서준이 말했다.“좋아. 난 처음부터 네가 서라와 통화할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어. 그래야 네가 안심하고 날 위해 움직일 테니 말이야.”유지수는 아주 오래된 휴대전화를 꺼내 부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서라에게 전화를 넘겨.”진서라는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진서준은 유지수가 건넨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서둘러 말했다.“서라야? 너 맞아?”“오빠, 나야!”진서준의 목소리를 들은 진서라는 무척 흥분했다.“너 괜찮아? 유지수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하지는 않았어?”진서준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아니, 아무 짓도 안 했어.”진서라가 대답했다.진서라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진서준은 그제야 안심이 됐다.“서라야,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최대한 빨리 널 구해줄게.”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약속했다.“응, 난 오빠를 믿어. 오빠도 무사해야 해.”유지수는 전화를 끊을 때가 된 것 같자 손을 뻗으며 말했다.“시간 됐으니까 전화 나한테 넘겨.”진서준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유지수에게 휴대전화를 넘겼다. 그는 유지수를 바라보며 경고했다.“유지수, 내 동생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랑 네 주변 사람들 다 죽여버릴 거야.”유지수는 진서준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진서준이 경고하지 않아도 유지수는 진서라를 터치하지 않을 것이었다.“3일 줄게. 3일 안에 황씨 일가 사람들을 없애버려. 그 뒤에 서라랑 영상 통화 할 수 있게 해줄게.”유지수는 말을 마친 뒤 문을 가리켰다.“이제 가봐.”진서준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몸을 돌려 아파트를 나섰다.그러나 진서준은 바로 떠
“유지수가 맞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유지수가 이렇게 치밀할 줄은 몰랐네요. 황씨 일가의 사모님 자리를 꿰차기까지 하다니!”허사연은 유지수의 치밀함에 다시금 놀랐다.“유지수는 내게 세 가지 일을 시켰어요. 그 세 가지 일을 완수하면 서라를 풀어주겠대요.”진서준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뭘 요구한 거죠?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줄게요!”허사연이 서둘러 말했다.“유지수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에요. 유지수의 첫 번째 요구는 황씨 일가를 없애는 거예요.”그 말에 방금 도착한 한씨 일가 남매는 깜짝 놀랐다.한보영이 서둘러 말했다.“진서준 씨, 충동적으로 굴지 마세요. 조씨 일가를 처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안부 사람들이 당신을 노리고 있을 거예요. 이때 황씨 일가를 없앤다면 국안부에서는 틀림없이 진서준 씨를 죽이기 위해 호국장군을 보낼 거예요!”진서준은 한보영의 은인이었다. 그래서 한보영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알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곧 진서준은 유지수가 수집한 황씨 일가의 범죄 증거를 꺼냈다.“이건 유지수가 준 거예요. 그들을 죽일 때 제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요.”허사연 등 사람들은 범죄 증거를 보더니 눈동자에 불길이 타올랐다.“황씨 일가 사람들은 정말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네요!”허사연이 말했다.“하지만 그들을 죽일 수는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될 테니 말이에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진서준은 황씨 일가와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진서라를 구하기 위해 황씨 일가 사람들을 죽인다면 그는 유지수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유지수, 그 여자 참 괘씸하네요. 유지수는 진서준 씨가 나쁜 놈이 되기를 바라는 게 틀림없어요!”허사연이 화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처음부터 이런 역겨운 일을 시키는 걸 보면 두 번째, 세 번째 일은 더욱더 악랄할 거예요!”“하지만 서라가 유지수의 손아귀에 있어요.”진서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진서라
순찰사 노진명은 하루 종일 조사한 끝에 조씨 일가의 조규범이 서울의 진서준과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그 뒤로 조씨 일가에서 서울에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보낸 사람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설마 진서준이라는 젊은이가 한 짓일까?”노진명은 잠깐 고민한 뒤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는 진서준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 황보식에게 연락했다.황보식은 전라도에서 간부를 맡은 적이 있었기에 노진명의 옛 상사라고 할 수 있었다.“진명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야?”황보식이 물었다.“황보식 어르신, 서울에 있는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아시나요?”노진명이 물었다.“진 마스터님은 당연히 알지. 그건 왜 묻는 거야?”황보식은 아직 조씨 일가가 처단당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황보식이 진서준을 존대하자 노진명은 화들짝 놀랐다.황보식은 곧 70대가 되는 노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진서준을 진 마스터님이라고 존대한다는 건 진서준이 예사 인물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어르신, 전라도에 오늘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조씨 일가가 멸문당했습니다. 아마도 원한 때문인 듯합니다.”노진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뭐라고?”황보식은 화들짝 놀랐다.전라도에서 일한 적이 있는 황보식은 조씨 일가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조씨 일가가 갑자기 멸문당했다니, 충격적이었다.황보식은 노진명이 왜 갑자기 진서준에 관한 일을 묻는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진명아, 진서준 씨는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황보식은 진서준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히 진서준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네, 알겠습니다.”노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전화를 끊은 뒤 노진명은 더욱더 진서준을 의심했다.노진명은 곧바로 진서준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알면 알수록 놀라웠고 점점 더 진서준이 한 짓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진서준과 황보식의 관계는 남달랐다. 노진명이 진서준을 건드린다면 황보식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 것이다.결국 노진명은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돼요.”한보영은 진서준에게 웃으며 말했다.이내 진서준 일행은 도시에서 가장 큰 샤부샤부 가게에 도착했다.한제성은 그 가게의 단골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샤부샤부 가게 매니저가 곧바로 그들을 맞이했다.“안녕하세요, 한제성 씨. 몇 명이세요?”“네 명이요. 룸으로 부탁해요. 그리고 가장 비싼 세트와 술을 주세요.”한제성은 손을 휘저으며 호쾌하게 말했다.“네, 이쪽으로 오세요.”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 일행을 안내했다.이내 매니저는 그들을 1번 룸으로 안내했다.아름다운 인테리어와 넓은 공간이 훌륭했다.자리에 앉은 뒤 네 사람은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아무도 진서라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곧 직원이 한제성이 주문한 음식들을 내왔다.진서준 일행이 한창 식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한제성이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합니다, 황씨 일가 도련님이 꼭 이 룸을 써야겠다고 하셔서요...”매니저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황씨 일가요? 황서진 그 자식 말인가요?”한제성은 미간을 구겼다.“네, 황서진 씨입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황서진이라는 말에 진서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진서준은 유지수가 준 자료를 보았었다.황서진은 아주 악랄한 놈이었다. 그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었다.반년 전, 그는 남자의 앞에서 그의 아내를 강간했고, 일을 마치고는 두 부부를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켰다.황씨 일가의 세력이 워낙 크다 보니 그 일은 흐지부지 끝나게 되었다.“이 룸은 제가 먼저 예약했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예요!”한제성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매니저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건방진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제성, 내가 그동안 가만히 놔뒀더니 몸이 근질거리나 봐?”7, 8명의 사람이 문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남자는 눈이 움푹 파여들어갔고 얼굴은 창백한 것이 술과 여색에 찌들어 산 모습이었다.그 청년은 다름 아닌 황서진이었다.
한제성은 깡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보영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용혈과를 구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한제성은 황서진처럼 먹고 노는 것밖에 모르는 쓰레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게다가 진서준이 바로 그의 뒤에 서 있었다.진짜로 싸우게 된다면 진서준이 도와줄지도 몰랐다.“한제성, 너 정말 맞고 싶은가 보네!”황서진은 차갑게 웃더니 한보영에게 말했다.“한보영, 오늘 내가 한씨 집안을 대신해 한제성 이 자식을 혼내줄게.”말을 마친 뒤 황서진은 바로 한제성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따귀 때문에 한제성의 안색이 달라졌다.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다짜고짜 뺨을 때리다니. 게다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잘나가는 집안 자제들이었다.오늘 한제성이 황서진에게 따귀를 맞는다면 한제성은 앞으로 고양에서 얼굴을 다닐 수 없을 것이다.“안 돼!”한보영의 안색이 달라졌다.짝!누군가 더 빨리 움직여서 황서진의 뺨을 때렸고 황서진은 그 자리에서 몇 바퀴를 회전했다.황서진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서준 씨!”진서준이 나서자 한제성은 무척 기뻐했다.그는 진서준이 가만히 있지 않을 줄 알았다.“네 사람들 데리고 당장 꺼져!”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황서진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진서준은 법의 집행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유지수가 임무를 내렸다고 해서 일부러 황씨 집안에 시비를 걸 생각도 없었다.그렇게 하면 오히려 유지수의 음모가 실현되는 것을 도와주게 되기 때문이다.황서진이 가만히 있었다면 진서준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감히 내 뺨을 때려? 죽어!”황서진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한보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의 앞에 섰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황서진, 경고하는데 진서준 씨는 우리 집의 귀한 손님이야. 우리 집안과 너희 집안이 싸우는 걸 원한다면 어디 한 번 해봐!”황서진은 한보영의 말을
한제성의 조롱에 황서진은 더욱 화가 났다.“입 닥쳐. 그렇지 않으면 잠시 뒤에 강은우 형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너까지 해치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황서진이 강은우를 부르겠다고 하자 한제성과 한보영은 안색이 확 달라졌다.강은우는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하지 않는 고양시 음지의 왕이었다.한씨 일가도 강은우의 체면을 봐줘야 했다.한제성과 한보영은 강은우와 접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황서진은 강은우와 사이가 좋았다.잠시 뒤 강은우가 온다면 한씨 일가 따위 상관하지 않고 진서준을 죽이려 들 수 있었다.강은우를 부르겠다는 황서진의 말에 진서준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부르라고 해요. 우리는 앉아서 밥이나 먹죠.”진서준은 한보영을 데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진서준 씨, 강은우는 고양시 음지의 왕이에요. 부하들만 해도 수천 명이고 강은우 본인은 사람을 죽일 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무자비한 사람이에요.”한보영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허사연과 진서준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전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데 탁월하거든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이때 황서진은 강은우에게 전화를 했다.그는 그곳에서 있은 일을 말했고 강은우는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장담했다.“서진아, 그곳에서 기다려. 지금 당장 부하 수백 명을 데리고 갈게. 그 자식 잘 싸워? 그 자식이 혼자서 삼백 명을 상대할 수 있을지 어디 한 번 봐야겠어!”전화를 끊은 뒤 황서진은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많이 먹어. 그게 네 마지막 식사가 될 테니까 말이야!”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말없이 덤덤한 눈길로 황서진을 힐끗 보았다.잠시 뒤 누가 죽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진서준과 허사연은 아주 마음 편히 식사했지만 반대로 한보영과 한제성은 안절부절못했다.“진서준 씨, 허사연 씨랑 먼저 가볼래요? 저랑 제성이는 한씨 일가 사람이니까 강은우는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예요!”한보영이 말했다.“보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강은우의 표정을 보지 못한 황서진은 진서준을 도발했다.“이 자식, 아까는 거만했잖아? 어디 지금도 한 번 거만 떨어보지 그래?”황서진은 험악한 표정으로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이쪽은 네 여자 친구지? 네 여자 친구가 이렇게 예쁠 줄은 몰랐네! 걱정하지 마. 네 여자는 내가 챙겨줄 테니까.”진서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강은우는 그 말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황서진은 죽음을 자초하고 있었다.한보영은 곧바로 강은우의 앞으로 걸어가서 정중히 말했다.“강은우 씨, 진서준 씨는 저희 한씨 일가의 귀한 손님입니다. 저희 한씨 일가 체면을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주시죠. 대신 저희 한씨 일가가 감사의 의미로 선물을 두둑이 챙겨드리겠습니다.”강은우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늘 황서진을 단단히 혼쭐내줘야 했다.황서진은 강은우가 진서준을 혼쭐내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되었는데, 강은우가 고개를 젓자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한보영, 한씨 일가도 강은우 형님 앞에서는 쪽도 못 쓰네.”한보영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진서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강은우를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저 자식이 내 사지를 부러뜨리겠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진서준은 강은우에게 묻고 있었다.“이 자식, 버르장머리가 없네! 감히 은우 형님에게 그딴 식으로 얘기해? 죽고 싶어?”강은우가 있어서 황서진은 더욱 거만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이번에 진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대신 다른 사람이 움직였다.강은우는 황서진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뜨렸다.“은우 형님, 왜... 왜 저를 공격하는 거예요?”걷어차인 황서진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한보영이 먼저 반응했다.진서준의 태연자약한 표정을 본 한보영은 곧바로 깨달았다.“입 다물어. 넌 잠시 뒤에 처리해 줄게.”강은우는 그렇게 말한 뒤 허리를 숙인 채로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갔다.“진서준 씨, 전... 전 황서진이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