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장로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둘째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대사형께서 금방 하산하셨는데 설마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과 마주친 건 아니겠지?”그의 말에 삼장로가 자조하듯 웃었다.“사형, 장난하십니까? 이 세상에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짐승이 우연한 기회로 우리 진법을 파괴한 거겠죠!”이 호산대진은 장로인 그들과 화령문 장문인이 협력한다고 해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장로들은 호산대진을 파괴한 것이 그 산 아래의 맹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그 맹수는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실력도 인간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큰일이군요.”사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평소 화령문 사람들은 누렁이의 약을 많이 올렸었다.적지 않은 제자들이 도망치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누렁이의 심기를 건드린 뒤 호산대진 안으로 도망쳤었다.그래서 누렁이는 호산대진을 아주 싫어했다.물론 누렁이는 화령문의 모든 도사도 싫어했다.그런데 지금 호산대진이 파괴되었으니, 네 장로들은 그 사자가 분명 산으로 올라와서 복수할 거라고 생각했다.“얼른 사부님을 찾아가죠. 사부님께서 결정하게 합시다.”마지막에 오장로가 입을 열었다.현재 천경문이 자리에 없으니 결정을 할 수가 없어 폐관한 장문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다섯째야, 넌 뒷산으로 가서 사부님을 찾아. 난 세 사람을 데리고 입구로 가서 기다리겠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우리 셋이 잠깐은 막을 수 있을 거다.”이장로가 낮게 말했다.“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오장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뒷산으로 달려갔다.“우리도 움직이자.”대전에서 나온 세 사람은 사문의 모든 제자가 대전 문 앞에 모여 있는 걸 보았다.이장로가 차가운 얼굴로 호통을 쳤다.“다들 여기 모여서 뭐 하는 거냐? 얼른 가서 연습하지 않고?”“이장로님,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보운산 전체가 뒤흔들렸는데요.”
“조금 전에 하산할 때 권해철을 만났다.”천경문이 또 말했다.“뭐라고요? 권해철이요? 걔가 사문에는 왜 왔대요?”권해철이라는 말에 다른 세 사람은 의아했다.권해철은 이미 화령문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오늘 갑자기 찾아온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모르겠어. 게다가 자기가 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왔대.”“말도 안 돼요. 이 세상에 우리 호산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삼장로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나도 큰소리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천경문은 자신의 추측을 전부 얘기했다.“나와 권해철이 싸우려고 할 때 산 아래 짐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와 형석이는 감히 그곳에 남아있지 못하고 곧바로 산 위로 도망쳤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짐승 위에 사람 두 명이 올라타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천경문의 세 사형제는 경악했다.“대사형, 눈이 안 좋으십니까? 그 짐승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사부님의 사부님 실력이라도 그 짐승과 엇비슷한 수준인데요!”천경문은 계속해 말했다.“그 짐승은 실력이 강하긴 하지만 호산대진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진법 안의 수백 개 되는 진법의 진안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 짐승은 비록 영리하지만 그래도 결국 짐승이지 인간은 아니다.”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천경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사형, 사형 말대로라면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 권해철 그 자식이 데려온 사람일지도 모른단 말입니까?”“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문을 떠난 지가 언젠데 왜 갑자기 돌아왔답니까?”“설마 사부님을 찾아서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걸까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천경문은 고개를 저었다.“권해철은 내게 사문으로 돌아온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복수는 아닐 거다. 사부님은 영선 경지와 반보 차이이기 때문이니 말이다.”영선 경지는 무도의 선천 대종사와 같
진서준과 허사연은 누렁이 등에 앉아서 보운산이 지어진 널따란 도관을 바라보았다.도관 입구에는 사람 네 명이 서 있었다. 화령문 사람 같았다.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권해철을 힐끗 본 뒤 말했다.“권해철 씨, 앞에 있는 곳이 바로 권해철 씨 사문이죠?”권해철은 빠르게 걸어서 누렁이 앞에 섰다.오랜만에 보는 도관 앞에 서자 기분이 씁쓸했다.“맞아요, 저곳이 바로 제 예전 사문이에요.”권해철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동시에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보았다.“저 사람들은 제 형제들이에요!”권해철은 네 사람을 짚으며 말했다.“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거였으면 좋겠네요.”권해철은 안색이 살짝 달라져서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잠시 뒤에 제가 얘기 나눠볼 테니까 절대 손 쓰지 말아주세요.”권해철은 자신의 형제들이 진서준과 싸우기를 바라지 않았다.만약 진서준이 자칫해서 힘을 과하게 쓰면 그들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알아요. 전 멋대로 나서지 않을 거예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허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그렇게 무서운가요?”허윤진은 먼저 고개를 젓더니 이내 또 고개를 끄덕였다.“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허윤진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귀여워요!”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귀엽다는 말에 진서준은 웃음이 터졌다.“잘생기고 멋진 거겠죠.”진서준이 웃으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칭찬 좀 해줬더니 바로 거만해지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아까 확실히 잘생겼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 검의 신과도 같았던 진서준의 모습을 허윤진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진서준과 허윤진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권해철은 이미 사문 문 앞에 도착했다.“오랜만이에요, 다들.”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내던 사람들을 보게 되자 권해철은 눈물을 글썽였다.“권해철, 네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호산대진을 파괴한 거야?”천경
서울은 들어봤지만 진서준의 이름은 그들에게 아주 낯설었다.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진서준이 말한 영골은 그들 문파에 확실히 하나가 있었다.그러나 그 영골은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진서준 씨, 진서준 씨가 원하는 영골은 우리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시죠.”천경문은 고개를 저으면서 진서준의 요구를 거절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반드시 이 영골을 챙겨야 합니다. 영골이 있어야만 제 어머니의 두 다리가 완전히 나을 수 있거든요.”이번에 진서준은 반드시 영골을 얻어야 했다.영골을 얻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었다.“진서준 씨, 사문의 금지 구역은 저희도 멋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서준 씨를 들여보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천경문의 태도도 아주 확고했다.진서준이 입을 떼기도 전에 뒤에 들던 누렁이가 갑자기 화를 내듯 으르렁거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누렁이의 울부짖음을 들은 천경문 등 사람은 뒤늦게 반응했다.그들의 앞에 서 있는 청년은 맹수를 길들이고 그들의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었다.만약 그들이 계속해 고집을 부린다면, 화가 난 진서준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가는 큰일이었다.천경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말투도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누그러졌다.“진서준 씨, 우리 사부님은 지금 폐관 중이라서요. 사부님이 나오신 뒤에 얘기를 나눠보심이 어떨까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폐관하신답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기다릴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전 영골을 그냥 가져갈 생각이 없어요. 제가 공법 하나를 드릴게요.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진서준이 공법을 주겠다고 하자 천경문 등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진서준의 실력은 무시무시했다.만약 진서준이 수련한 공법을 수련할 수 있다면 분명 실력이 급성장할 것이다.천경문 등 사람들은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할
화령문의 제자 중 일부는 그 맹수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매번 누렁이를 마주칠 때면 황급히 도망갔고, 누렁이와 눈빛을 마주할 배짱도 없었다.그런데 젊은 청년 진서준이 누렁이를 애완동물이라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도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서준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안 들려요?”우레와도 같은 목소리에 도관 속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들었어요, 들었어요...”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진서준과 누렁이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뒤를 따르던 천경문 등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현재 사부님이 없으니 아무도 감히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들은 진서준의 말에 따라야 했다.“진서준 씨, 여기 객방이 있으니 저희를 따라오시죠.”천경문은 서둘러 진서준을 객방으로 안내했다.진서준 등 네 사람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뒤 천경문이 말했다.“진서준 씨, 또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최대한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그쪽 사부님이 빨리 출관하기만 하면 됩니다.”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네, 제가 지금 사람을 뒷산으로 보내겠습니다.”천경문은 정중하게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잠시만요!”진서준이 천경문을 불러세워서 물었다.“여기 목욕할 때 쓸 나무 욕조가 있나요?”천경문은 흠칫했다. 그는 진서준이 왜 갑자기 나무 욕조를 찾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네, 저희 목욕실에 나무 욕조가 있습니다.”“지금 당장 그곳에로 안내해 주시죠.”진서준은 용혈과가 담긴 박스를 들고 천경문을 따라 목욕실로 향했다.목욕실 안에는 나무 욕조 십여 개가 있었다.화령문 사람들은 평소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깨끗한 나무 욕조는 없습니까?”진서준은 미간을 구기면서 물었다.그는 잠시 뒤 용혈과로 몸을 씻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깨끗한 나무 욕조가 필요했다.“네, 그 나무 욕조는
액체는 마치 붉은색의 작은 뱀처럼 진서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그 액체는 진서준의 체내로 흘러든 뒤 장철결의 궤적을 따라서 진서준의 온몸에 있는 경맥을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에는 혈액에 모여들었다.모든 과정에서 진서준의 몸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진서준은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마치 커다란 산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눌러서 언제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욕조 안에 액체가 반쯤 남았을 때 진서준은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용혈과를 들어서 한입에 삼켰다.용혈과가 배에 들어가자 체내에서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배 속에 불을 지른 것처럼, 오장육부가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몸을 단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쉬웠다면 화진에는 무도 종사가 아니라 횡련 종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수련 과정에서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었다.진서준이 목욕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보운산의 산허리 쪽에 네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네 명은 줄곧 진서준의 뒤를 밟았던 혈운 조직의 네 명의 대성 종사였다.“이 산에 숨어 사는 화령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예준섭은 고개를 들어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덤덤히 말했다.“그래요, 그런 문파가 있었던 거를 기억해요. 형님 말을 들어 보니 수백 년 전까지는 인재가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았어요.”변정선이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 길 하나뿐이니, 오늘 그 자식은 절대 도망치지 못하겠네.”대화하는 사이 하신우가 손을 움직이자 채찍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렸다.팍 소리와 함께 하신우가 갑자기 채찍을 휘둘러 등 뒤에 있는 나무를 때렸다.채찍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그를 공격하려던 독사의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나머지 세 명은 보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산 위로 걸음을 옮겼다.호산대진은 이미 파괴되었기에 네 사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예준섭 등 네 명이 화령문에 들어온 뒤 화령문의 제자들은 불청객인 그들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당신들은 누구죠? 누굴 찾으러 온 거예요?”한 제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경계가 보였다.화령문의 제자들은 네 사람에게서 살기를 느꼈다.“서울에서 온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함영식은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심지어 대전 안에서 의논하고 있던 천경문 등 네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네 사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에서 나갔다.예준섭 등 네 명을 본 천경문은 미간을 구겼다.“당신들은 누구예요? 왜 우리 화령문에 온 거죠?”함영식 등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어봤다.“술법 마스터네. 선영경에 도달하지도 못하다니, 화령문도 정말 몰락하긴 했어.”예준섭이 불쌍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상대방이 자신의 실력을 바로 알아보자 천경문 등 사람들은 안색이 달라졌다.그들은 분명 악의적이었다.“딱 한 번 더 말하죠. 지금 당장 우리 화령문을 떠나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천경문이 총채를 꺼내면서 차갑게 그들을 보았다.“나도 한 번 더 말하지. 화령문 안에 숨어있는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마지막 몇 글자에서 변정선은 갑자기 목청을 돋우었다.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에 적지 않은 제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심지어 천경문의 사형제들도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그는 무려 대성 종사였다.방 안에서 짐을 정리하던 권해철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서 대전 앞에 섰다.그동안 권해철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변정선 등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었다.그는 그 네 명이 혈운 조직의 종사라는 걸 곧바로 알아봤다.예전에 진서준이 만월호에서 유혁수를 죽였을 때, 권해철은 진서준이 분명 혈운 조직에 노려질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혈운 조직이 이때 복수하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한 번에 네 명이나
조금 전 진서준이 목욕하러 갔을 때, 권해철이 그를 한 번 찾아갔었다.천경문이 권해철에게 진서준이 수련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무도 방해하게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이대 혈운 조직의 네 종사가 진서준의 위치를 찾았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원래 당신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들이 너무 멋모르고 날뛰네.”함영식이 등 뒤에서 반짝이는 은빛 검 두 개를 꺼냈다.그것은 갈혈도였다.갈혈도에는 두 개의 긴 용이 새겨져 있었다.갈혈도는 피를 묻힌 뒤 며칠 지나면 그 위의 피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긴 용의 무늬를 전부 채워서야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제자가 네 명에게 죽임당하자 천경문은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함영식이 먼저 검 두 개를 꺼내니 천경문도 더는 참고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천경문은 자신의 총채를 꺼냈다. 그는 본인이 함영식의 상대가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함영식에게로 달려들었다.“죽으려고!”다가온 천경문을 본 함영식은 차갑게 웃었다.함영식은 내력을 운용하였고 붉은색 강기가 그의 두 검을 감쌌다.그는 검 두 개를 휘두르면서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공기까지 찢어버릴 듯했다.천경문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며 체내의 진기를 미친 듯이 운용했다. 곧 그의 옆에 12개의 자줏빛 번개가 나타났다.번개는 순식간에 함영식을 공격했다.그와 동시에 천경문은 함영식의 두 검을 향해 들고 있던 총채를 휘둘렀다.천경문응 이를 악물었다. 이 순간 그는 사력을 다했다.맹렬한 공세를 퍼붓는 천경문의 모습에 함영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검 두 개를 든 그는 한 검으로는 천경문의 육중한 총채를 막아냈고 다른 한 검으로는 12개의 자줏빛 번개를 베었다.쿠구궁...총채와 칼날이 부딪히자 두 사람의 발밑에서 바닥이 갈라지면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이와 동시에 12개의 번개 또한 코앞까지 왔다.함영식이 든 긴 검이 공중에서 움직이며 1초 사이에 12번 휘둘러졌다.공기 속의 천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 모든 흐름이 한순간에 멈춘 듯했다.피가 졸졸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눈을 휘둥그레 뜬 엘리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엘리사의 친위대 대장이 한낱 섬나라 검객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패하다니, 너무나 경악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문이 막혔다.육급 대종사인 해리스도 고필두의 광자 참격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했다니, 이 고필두의 실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칠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호창정은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을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김평안 씨, 차라리 이 대결을 포기합시다. 산을 남겨두면 언젠가 땔감을 얻을 기회는 또 있어요.”해리스도 이렇게 깔끔하게 당했는데 사급 대종사 경지에 불과한 김평안은 상대가 되기엔 턱도 없이 부족했다.대표팀 사람들은 김평안이 링에 올라가 봤자 고필두의 참격을 한 방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걱정 마세요, 난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고필두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한 건 맞지만 지금 그는 온몸의 힘을 거의 다 고갈한 상태였다.아까 열세 번의 검광은 고필두 체내의 모든 강기를 거의 다 소모했다.지금 진서준이 이런 상태의 고필두를 이기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서둘러 주세요. 해리스 씨를 구해야죠.”엘리사도 정신을 차리고 즉시 자기 황실 친위대에게 해리스를 구하라고 지시했다.고필두는 해리스를 죽이진 않았다. 해리스가 용란 황실의 친위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필두가 진짜 해리스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용란의 적대감을 살 게 분명했다.누가 섬나라의 진정한 적인지 고필두는 구분할 줄 알았다.하지만 고필두는 자기가 이 필살기를 보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권할 것 같아서 내심 두려웠다.이런 밥맛 떨어지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고 싶
“해리스도 만만치 않네. 강기를 사용해 고필두 요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걸 보니 해리스도 대단한 실력이야.”“누가 이기든지 간에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질 게 뻔하구나.”누군가 한숨을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해리스와 고필두가 이렇게 강력한 모습을 보이자 아무도 자국 팀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주로 대한민국 대표팀 안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대표팀 팀원들의 실력을 보니 솔직히 대종사 경지에도 못 미칠 것 같았다.대종사도 아닌 무인이 링에 올라가 저 두 사람과 대결하면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엘리사는 해리스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을 보자 드디어 안심하며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긴장이 풀린 엘리사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김평안 씨, 해리스 씨가 무조건 진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해리스 씨가 지금 이 섬나라 검객과 절대 밀리지 않는 상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잖아요.”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꾸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곧 알게 된다니, 엘리사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엘리사의 눈에 지금 기세가 절정 상태인 해리스가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쿵!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필두와 해리스가 각각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어느새 단단한 강철로 만든 링 위에는 검에 베인 자국이 수백 개 생겼다.이 검에 베인 자국들은 전부 고필두의 검기가 스쳐 지나간 후 생긴 것이었다.“애들 소꿉장난은 여기까지야.”말을 마친 고필두는 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그 후 링 위에는 고필두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고 마치 수많은 고필두가 링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 장면을 본 해리스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해리스의 근육이 갑자기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매끈한 정장을 단번에 찢어버렸다.한 줄기 강기가 해리스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 아래서 해리스는 금빛으로 보호받고 있는 듯했다.“고필두가 광자 참격을 쓸 것 같군.”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링 위에 서 있는 해리스와 고필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두 사람의 대결 중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김평안 씨, 해리스가 정말 고필두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건가요?”호창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해리스는 육급 대종사였고 반면에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에 불과했다.검수는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단계 대종사라는 큰 격차가 있었다.이 두 단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은 추가 설명 없이 해리스와 고필두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사회자가 시작 신호를 알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선공이 강하다는 말은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수 사이의 대결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자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일단 빈틈이 보이면 패배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관중들이 슬슬 지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위의 몇몇 검을 지닌 무인들은 자기 검이 방금 그 검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고필두가 쥐고 있는 장검은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차갑고 섬뜩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고필두는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겼다.“삼촌, 삼촌이 이 섬나라 사람과 대결한다면 누구 검술이 더 강할까요?”관중석에서 조민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조기강을 바라보며 물었다.조태희와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야 했던 조민영은 조기강에게 국제 무도 교류 대회를 보러 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했다.조태희는 결국 조민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신 대회가 끝난 후 조기강과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고필두 실력은 내 아래야.”조기강은 고필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조기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민영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대한민국, 섬나라, 그리고 용란의 대표팀 팀장들은 올라와서 마지막 추첨을 진행해 주세요.”나머지 세 팀 중 두 팀이 대결하니 나머지 한 팀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판이었다.호창정은 마음속으로 공석에 걸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동시에 해리스가 고필두를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진서준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다.추첨을 받은 순간, 호창정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음? 또 부전승이네.”3번을 뽑았을 때, 호창정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섬나라의 그 팔자수염 남자가 호창정의 3번 추첨을 보고 비웃었다.“너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런 더러운 짓밖에 못 하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희가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팔자수염의 말에 호창정은 얼굴이 화끈해졌고 목이 바짝 말랐다.“당신들 대한민국 운이 참 좋군요.”해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한판 대결도 안 치르고 그대로 결승에 진출하다니, 하늘이 선택한 운명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어찌 됐든 해리스의 목표는 달성됐다.섬나라의 이 검존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정식으로 대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경성에는 10명 이상의 용란 황실 경호원이 지금 주둔하고 있다.해리스가 심하게 다치더라도 엘리사를 혈수사의 손에서 지킬 수 있었다.“김평안 씨, 또 부전승이에요, 대박이에요.”호창정이 자리로 돌아와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해리스가 대결을 위해 링에 올라가려 할 때 진서준은 몸을 돌려 한마디 했다.“투항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투항해. 괜히 버티다가 목숨 잃는 짓 하지 마.”해리스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고필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똑똑히 잘 들어, 나 해리스 사전엔 투항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용란 황실 경호대 명예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