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너한테는 호산대진의 낙인이 없을 텐데 어떻게 화령문에 들어갈 수 있겠어?”천경문이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호산대진을 자유롭게 드나들려면 반드시 장문이 남긴 호산대진의 낙인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없다면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진법에 공격을 당하게 된다.호산대진은 위력이 엄청났다. 진서준이 조금 전 굴복시킨 누렁이마저 멋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실력이 아주 막강한 분과 함께 왔습니다. 그분이라면 절 데리고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권해철이 말했다.“우습구나. 네가 말한 그 고수가 설마 우리 사부님보다 더 강하단 말이야?”천경문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경멸에 차서 말했다.“얼른 산에서 내려가.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사부님이 널 본다면 절대 쉽게 용서하지 않으시려고 할 거야!”“전 가지 않을래요.”권해철이 다시 말했다.“이 자식, 내가 직접 손을 쓰길 바라는 거냐?”천경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체내에서 진기가 서서히 모여들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말이다.권해철은 감히 방심할 수 없어서 곧바로 진기를 동원했다.두 사람이 손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귀청을 찢는 듯한 울부짖음이 옆에서 들려왔다.그 소리에 천경문과 차형석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큰일이네. 그 짐승이야!”천경문은 권해철을 향해 소리쳤다.“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산에서 내려가.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저 짐승에게 잡아먹힐 거야!”말을 마친 뒤 천경문은 곧바로 차형석과 함께 몸을 돌려 산 위로 달렸다.떠나기 전 천경문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그들의 뒤에 2미터가량 되는 사자가 있었다.그러나 놀랍게도 사자의 등에 사람 두 명이 올라타 있는 것 같았다.“내 눈이 잘못된 걸까?”천경문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사자가 얼마나 강한지 천경문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사자를 이길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사자를 굴복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천경문과 차형석이 도망친 뒤 누렁이에 올라탄 진서준이 권해철을 바라
백여 가지 진법이라니, 듣기에는 무시무시했지만 사실 진법마다 약점이 있었다.진법의 약점을 찾아낸다면, 꽃밭 속을 지나가도 몸에 꽃잎 하나 붙지 않는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진서준은 그 경지에 다다랐지만 누렁이와 권해철은 불가능했다.그래서 진서준은 반드시 이 백여 가지 진법을 파괴해야 했다.“진서준 씨, 제가 먼저 들어가서 시도해 보고 진서준 씨는 밖에서 보고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권해철이 제의했다.권해철은 예전에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어 경험이 조금 있었다.그는 자신이 직접 시험해서 진서준이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를 바랐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러면 부탁할게요.”권해철은 곧바로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꺼냈다.도사검, 칠성의, 성운 나침반... 권해철은 자신의 보물들을 전부 꺼냈다.이번에 사문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권해철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그 보물들을 전부 몸에 지닌 뒤 권해철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갔다.권해철이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휘감았다.진법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고 1킬로미터밖에 진법 문양이 하나 나타나며 소용돌이 같은 것이 생겼다. 그것은 호산대진의 출구 같아 보였다.진법들은 마치 별과 같았다. 그중에는 사람을 죽이거나, 환상을 보여주거나, 사람을 가두거나 하는 흔한 진법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취영진도 많았다.취영진의 도움 아래 사람 목숨을 빼앗는 진법들의 위력은 더욱 무시무시했다.백여 개의 진법들은 마치 수백 개의 물길로 이루어진 강 같았다.큰 강 속에서 수백 개의 물줄기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권해철은 세 걸음 걷자마자 갑자기 멈춰 섰다. 그의 두 눈은 마치 환상에 빠진 듯 멍했다.그러나 곧 성운 나침반 중앙에서 빛이 한 줄기 나왔고, 그의 눈빛이 다시금 맑아졌다.그러나 권해철이 환상에 빠졌을 때 다른 진법들이 이미 그를 향해 공격을 발동했다.쿠구궁...진법 속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검들이 쏟아져 내리고, 야수가 출몰했다.
“당연하죠. 밖에서 기다리면 돼요.”“진서준 씨, 조심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부했다.“네!”이와 동시에 호산대진의 다른 쪽.천경문과 차형석 두 사람은 진법 안에 서 있었다.조금 전 권해철이 진법 안으로 들어간 뒤 진법의 각종 공격이 발동된 걸 두 사람은 똑똑히 보았다.하지만 두 사람은 누가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다.만약 그 사자라면 천경문은 걱정되지 않았다.하지만 권해철이라면 지금쯤 살아있을지 의문이었다.“사부님, 저희 가서 볼까요?”차형석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다.”천경문은 고개를 저었다.“1시간쯤 뒤면 권해철이든, 그 짐승이든 알아서 떠날 거다.”호산대진이 얼마나 대단한가?화령문 초대 장문인과 장로 몇 명이 협력하여 만든 이 진법은 화령문의 평화를 오랫동안 지켰다.진법의 위력이 예전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사람의 힘으로 파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호산대진에 있어 화령문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쳤다.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진법 안의 공격이 다시 발동되었다.“사부님, 또 누군가 진법 안으로 들어온 걸까요?”차형석은 깜짝 놀랐다.천경문은 이번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그 짐승이 틀림없다. 그 짐승은 진법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친 적이 있는데, 몹시 화가 났을 때면 다시 진법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된통 당하고 나서야 알아서 떠날 거다.”...진서준은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체내의 장청의 힘을 운용했다.검이 울기 시작했고, 천문검이 갑자기 나타났다. 진서준은 그것을 손에 쥐었다.환상 진법이 발동되었지만 진서준의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진서준은 순식간에 환상 진법의 진안을 찾아낸 뒤 그곳을 발로 힘껏 굴렀다.쿵...폭발음과 함께 환상 진법이 하나 사라졌다.그와 동시에 기타 진법이 공격을 발동했다. 진서준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진서준 씨, 꼭 무사해야 해요!”허윤진은 이어지는 광경을 보기가 두려워져서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엄청난 공격에도
천경문과 차형석은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렇게 5분간 넋 놓고 있다가 두 사람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사부님, 저...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차형석은 이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모든 게 가짜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심지어 자신의 손등을 힘껏 꼬집어 봤다. 강렬한 통증이 그에게 이 모든 것이 진짜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호산대진이 정말로 파괴되었다.조금 전 천경문은 자신만만하게 아무도 호산대진을 파괴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2분도 되지 않아 호산대진이 파괴되었다.“이럴 리가 없는데?”천경문은 믿기지 않는 건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댔다.“설마 그 짐승이 한 짓인가? 그놈이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천경문을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는 옆에 있던 차형석을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사문으로 달려갔다.그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장문인에게 알릴 생각이었다.사실 천경문이 얘기해 줄 필요는 없었다. 화령문 사람들 모두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다.조금 전 보운산의 최고봉도 흔들렸는데 화령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조금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죠.”진서준은 천문검을 거두어들인 뒤 약간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권해철과 이승재는 멍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했다.권해철은 자신의 모든 보물을 동원해서야 호산대진에서 겨우 십여 초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은 검 하나로 호산대진을 파괴했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진 마스터님...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아니십니까?”권해철은 말할 때 입술이 덜덜 떨렸다.“제가 신이었다면 왜 권해철 씨를 따라서 이 보운산에 왔겠어요?”진서준은 살짝 창백한 얼굴로 덤덤히 웃어 보였다.조금 전 진서준은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그러나 그 한 번에 진서준 체내의 영기는 이제 1/10도 남지 않았다.이 호산대진은 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아주 견고했다. 심지어 안에는 취영진
그 위세는 조금 전보다 더 강했다.“진 마스터님, 경지를 돌파하신 겁니까?”권해철이 당황해하면서 물었다.“아뇨. 그저 조금 전 그 공격으로 제 실력이 조금 더 증진된 것뿐이에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예전에 진서준은 전력을 다한 적이 없었고, 체내의 영기가 거의 바닥난 적도 없었다.이번에 단 한 번 전력을 다했는데 체내의 영해가 또 한 단계 발전했다.진서준은 그제야 장청결의 전투로 경지를 돌파한다는 말이 조금 이해되었다.당시 감옥에 있을 때 구창욱은 거의 매일 진서준을 때렸고, 진서준은 매번 그에게 맞아 상처투성이가 됐다가 저녁이면 구창욱에게서 치료를 받았다.그리고 다음 날, 구창욱은 또다시 그를 때렸다.그렇게 밤낮 가리지 않고 맞다 보니 진서준의 실력은 마치 로켓처럼 빠르게 발전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겨우 3년 사이에 종사와 엇비슷한 실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권해철 씨 사문으로 가서 권해철 씨 사형제들을 만나야겠어요.”진서준은 싱긋 웃더니 허윤진을 데리고 누렁이의 등에 올라탔다.권해철은 쓴웃음을 지었다.“진 마스터님, 제 사형제들은 분명 절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충동이 있을지도 몰라요.”조금 전 천경문의 태도에 권해철은 괴로웠다.그들은 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을 정도로 친했었다.심지어 사문에서 쫓겨날 때도 다들 권해철을 보내고 싶지 않아 했다.그러나 지금 다시 만나니 서로 적대시해야 했다. 권해철은 그 점을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괜찮아요. 제가 있으니 아무도 권해철 씨를 다치게 못 할 겁니다.”진서준이 평온하게 말했다.“진 마스터님, 제 사형제들을 다치지 않게 해주셨으면 해요. 그들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권해철은 90도로 허리를 숙이면서 애원했고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이 꼭 죽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이번에 이곳을 찾은 건 단지 영골 때문이었기에 괜히 화령문 사람들과 갈등이 빚어지고 싶지는
네 명의 장로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둘째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대사형께서 금방 하산하셨는데 설마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과 마주친 건 아니겠지?”그의 말에 삼장로가 자조하듯 웃었다.“사형, 장난하십니까? 이 세상에 우리 호산대진을 파괴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짐승이 우연한 기회로 우리 진법을 파괴한 거겠죠!”이 호산대진은 장로인 그들과 화령문 장문인이 협력한다고 해도 파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장로들은 호산대진을 파괴한 것이 그 산 아래의 맹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그 맹수는 그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실력도 인간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큰일이군요.”사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평소 화령문 사람들은 누렁이의 약을 많이 올렸었다.적지 않은 제자들이 도망치는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누렁이의 심기를 건드린 뒤 호산대진 안으로 도망쳤었다.그래서 누렁이는 호산대진을 아주 싫어했다.물론 누렁이는 화령문의 모든 도사도 싫어했다.그런데 지금 호산대진이 파괴되었으니, 네 장로들은 그 사자가 분명 산으로 올라와서 복수할 거라고 생각했다.“얼른 사부님을 찾아가죠. 사부님께서 결정하게 합시다.”마지막에 오장로가 입을 열었다.현재 천경문이 자리에 없으니 결정을 할 수가 없어 폐관한 장문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다섯째야, 넌 뒷산으로 가서 사부님을 찾아. 난 세 사람을 데리고 입구로 가서 기다리겠다. 만약 정말 그 짐승이라면 우리 셋이 잠깐은 막을 수 있을 거다.”이장로가 낮게 말했다.“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오장로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뒷산으로 달려갔다.“우리도 움직이자.”대전에서 나온 세 사람은 사문의 모든 제자가 대전 문 앞에 모여 있는 걸 보았다.이장로가 차가운 얼굴로 호통을 쳤다.“다들 여기 모여서 뭐 하는 거냐? 얼른 가서 연습하지 않고?”“이장로님,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보운산 전체가 뒤흔들렸는데요.”
“조금 전에 하산할 때 권해철을 만났다.”천경문이 또 말했다.“뭐라고요? 권해철이요? 걔가 사문에는 왜 왔대요?”권해철이라는 말에 다른 세 사람은 의아했다.권해철은 이미 화령문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 오늘 갑자기 찾아온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모르겠어. 게다가 자기가 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왔대.”“말도 안 돼요. 이 세상에 우리 호산진법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삼장로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나도 큰소리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천경문은 자신의 추측을 전부 얘기했다.“나와 권해철이 싸우려고 할 때 산 아래 짐승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와 형석이는 감히 그곳에 남아있지 못하고 곧바로 산 위로 도망쳤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그 짐승 위에 사람 두 명이 올라타 있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천경문의 세 사형제는 경악했다.“대사형, 눈이 안 좋으십니까? 그 짐승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사부님의 사부님 실력이라도 그 짐승과 엇비슷한 수준인데요!”천경문은 계속해 말했다.“그 짐승은 실력이 강하긴 하지만 호산대진을 파괴하려면 반드시 진법 안의 수백 개 되는 진법의 진안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 짐승은 비록 영리하지만 그래도 결국 짐승이지 인간은 아니다.”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천경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사형, 사형 말대로라면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 권해철 그 자식이 데려온 사람일지도 모른단 말입니까?”“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사문을 떠난 지가 언젠데 왜 갑자기 돌아왔답니까?”“설마 사부님을 찾아서 복수라도 할 생각인 걸까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천경문은 고개를 저었다.“권해철은 내게 사문으로 돌아온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복수는 아닐 거다. 사부님은 영선 경지와 반보 차이이기 때문이니 말이다.”영선 경지는 무도의 선천 대종사와 같
진서준과 허사연은 누렁이 등에 앉아서 보운산이 지어진 널따란 도관을 바라보았다.도관 입구에는 사람 네 명이 서 있었다. 화령문 사람 같았다.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권해철을 힐끗 본 뒤 말했다.“권해철 씨, 앞에 있는 곳이 바로 권해철 씨 사문이죠?”권해철은 빠르게 걸어서 누렁이 앞에 섰다.오랜만에 보는 도관 앞에 서자 기분이 씁쓸했다.“맞아요, 저곳이 바로 제 예전 사문이에요.”권해철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동시에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보았다.“저 사람들은 제 형제들이에요!”권해철은 네 사람을 짚으며 말했다.“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거였으면 좋겠네요.”권해철은 안색이 살짝 달라져서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잠시 뒤에 제가 얘기 나눠볼 테니까 절대 손 쓰지 말아주세요.”권해철은 자신의 형제들이 진서준과 싸우기를 바라지 않았다.만약 진서준이 자칫해서 힘을 과하게 쓰면 그들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알아요. 전 멋대로 나서지 않을 거예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허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그렇게 무서운가요?”허윤진은 먼저 고개를 젓더니 이내 또 고개를 끄덕였다.“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허윤진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귀여워요!”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귀엽다는 말에 진서준은 웃음이 터졌다.“잘생기고 멋진 거겠죠.”진서준이 웃으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칭찬 좀 해줬더니 바로 거만해지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아까 확실히 잘생겼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 검의 신과도 같았던 진서준의 모습을 허윤진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진서준과 허윤진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권해철은 이미 사문 문 앞에 도착했다.“오랜만이에요, 다들.”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내던 사람들을 보게 되자 권해철은 눈물을 글썽였다.“권해철, 네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호산대진을 파괴한 거야?”천경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