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한 시간 후, 차가 한 고성 앞에 멈춰 섰다.진서준 일행은 차에서 내려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멀리 흰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이어지는 산맥이 한눈에 들어왔다.“진 마스터님, 저기가 바로 보운산이에요!”권해철은 앞에 있는 큰 산을 가리켰고 그의 눈에는 약간의 존경이 스쳤다.이 끊임없이 펼쳐진 산맥은 권해철이 30여 년 전에 걸어 내려온 이후로 다시 돌아간 적이 없었다.지금 진서준이 본 보운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권해철의 사문에 들어가려면 이곳에서 산속으로 80킬로미터를 더 들어가야만 사문의 변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이 산이 아주 높네요.”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허윤진은 포기하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이렇게 높은 산을 언제 다 올라가?’허윤진은 이렇게 격렬한 운동을 오랫동안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절반쯤 가서 힘이 빠질까 봐 걱정했다.“갑시다.”진서준은 마음이 설렜다.그는 산속으로부터 많은 영기를 느꼈다.진서준의 생각이 맞는다면 이 보운산에는 반드시 영맥이 있을 것이다.권해철 사문의 호산대진은 영맥에 의지하여 세웠다.영맥이 있으면 산속에 용혈과나 은영과가 있을 수도 있다.무엇이든 있기만 하면 진서준은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권해철이 다급히 말했다.“진 마스터님, 잠깐만요. 제가 준비를 마치면 바로 출발하시죠.”그러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갑자기 그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향했다.대략 10여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앞장을 선 사람은 20대 초반인 한 청년이었다. 옷차림과 기품으로 볼 때 일반 사람이 아니었다.진서준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청년 옆에 있는 중년 남자였다.건장한 체구에 온몸에 무서운 기운이 감돌았다.무도 종사였다.중년 남자의 실력을 느낀 진서준은 은근히 놀랐다.뜻밖에도 안영 시에도 종사가 있을 줄은 몰랐다.중년 남자도 진서준의 시선을 느꼈는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하지만 중년 남자
이번에 한제성이 먼곳으로 부터 보운산에 온 원인은 바로 누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성약당의 장로님의 말에 따르면 그의 누나를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용혈과뿐이라 했다.용혈과만이 누나 몸속의 한기를 누를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반년도 안 되어 누나는 곧 죽게 된다고 했다.목적을 물어보기로 결정을 내린 한제성은 인승민 등 사람들과 함께 진서준을 향해 걸어갔다.그때 권해철도 한제성과 인승민을 발견했다.“한씨 가문 사람들이네요.”권해철은 인승민을 알아보았다. 그는 인승민이 한씨 가문에서 높게 모시는 종사임을 알고 있었다.“한씨 가문이라고요?”진서준이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맞아요. 고양시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한씨 가문이에요. 가장 실력이 있는 가문은 황씨 가문이고, 둘째가 바로 한씨 가문이에요.”권해철이 진서준에게 설명했다.상대방이 고양시 3대 가문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진서준은 이미 고양시의 3대 가문 중에 조씨 가문과 철천지원수를 맺었다.황씨 가문에 대해 진서준은 아직 유지수가 실제로 황씨 가문의 권력을 사로잡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만약 그렇다면 진서준은 앞으로 황씨 가문도 공격해야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고양시 전체 가문에서 아직 진서준과 원수를 맺지 않은 건 한씨 가문밖에 없었다.“권 천사님,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뜻밖이네요. 저는 한제성이라고 해요. 한서강의 손자입니다.”한제성은 권해철의 앞에 다가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상대방이 한서강의 손자라는 말을 듣고 권해철은 살짝 놀랐다.한서강은 지금 한씨 가문의 가주였지만 곧 가주의 자리에서 은퇴할 거라고 들었다.인승민도 입을 열었다.“권 천사님, 오랜만이네요.”두 사람은 진서준과 허윤진의 존재를 아예 무시했다.그들은 이 두 사람이 권해철이 새로 받아들인 제자라고 생각했다.“인 종사님, 도련님, 오랜만이네요.”권해철은 껄껄 웃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상대방은 한씨 가문의 사람이고 게다가 종사도 있으니 권해철은
잇닿아 있는 산맥, 그리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산봉우리는 아름다운 미인처럼 흰 안개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했다.깊은 산속에서 진서준 일행 4명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허윤진은 처음에 산속의 오솔길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허윤진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과 이런 원시적인 산속을 걸어서 오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허윤진은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몇 번 소리를 지르기도 하자 온 산속에서 그녀의 메아리가 들렸다.하지만 흥분도 잠시뿐이었고 허윤진은 곧바로 체력이 떨어져서 큰 바위 위에 앉아 숨을 헐떡였다.“아까부터 천천히 가라고 했잖아요. 힘들죠?”진서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형부가 있잖아요. 제가 걷지 못하면 업어 줘야 해요.”허윤진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사실 마음속으로 이미 정했다. 자기가 힘들어서 걷지 못하면 진서준에게 업혀서 가려고 했다.허윤진이 웃고 있는 얼굴을 보고 진서준은 갈수록 그녀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전에는 분명 바보 같았는데 지금은 갑자기 똑똑해진 것 같았다.“진 마스터님, 속도를 높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날이 저물어도 사문 산기슭까지 갈 수 없어요.”권해철이 말했다.사문이 있는 주산맥은 진서준이 있는 곳에서 아직 5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마라톤보다 더 먼 거리였다.만약 허윤진의 속도로 계속 걸어간다면 날이 어두워질 때 도착하기는커녕 내일 날이 밝을 때도 도착할 수 없었다.그래서 진서준은 허윤진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올라와요. 업고 갈게요. 우리 빨리 움직여야 해요.”허윤진은 빙그레 웃으며 일어서더니 진서준의 등에 뛰어올랐다. 허윤진은 떨어질까 봐 진서준을 꼭 껴안았다.진서준 일행은 산속에 있었기에 길이 울붕불퉁했다. 어떤 곳에는 아예 길이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허윤진을 업고 있었다. 비록 허윤진은 무겁지 않았지만 산길을 걷자 하니 어려움이 배가 되었다.하지만 진서준의 발걸음은 평지를 걷는 것처럼 여전히 빠르고 평온했다.진서준의 등에 엎드린
한제성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인승민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고 긴장하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용혈과 맞아.”용혈과를 얻으면 그들은 보운산을 떠나 고양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한씨 가문은 분명히 인승민에게 보수를 톡톡히 챙겨줄 것이다.“빨리, 빨리 용혈과를 따서 상자 안에 넣어.”그러자 한 무인이 용혈과 앞으로 달려가 미리 준비한 상자를 꺼내서 용혈과를 넣으려고 했다.바로 그때 대지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모두가 앞을 향해 바라보니 2미터에 가까운 그림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저... 저게 뭐야?”한제성은 살짝 놀랐고 눈에는 두려움이 스쳤다.“조심해!”인승민도 약간 두려웠기에 정신을 가다듬었다.그림자가 흰 안개 속에서 뛰어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2미터가 되는 사자 한 마리가 사람들을 향해 덮치자 그들은 마치 큰 산이 자신의 몸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사자는 흉폭한 맹수였기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사자는 원래 사나운 동물인데 사람보다도 더 큰 사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빨리 용혈과를 챙기고 도망쳐.”한제성은 맨 앞의 무인을 향해 소리쳤다.정신을 차린 무인은 재빨리 용혈과를 상자에 넣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맹수는 그들이 용혈과를 따가는 것을 보고 하늘을 찌를 듯한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러자 사람들의 마음이 뜨끔해졌다.‘설마 이 용혈과가 저 괴물의 것일까?’한제성도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필사적으로 도망갔다.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이 맹수의 속도를 과소평가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2미터가 되는 사자는 이미 무인 한 명을 따라잡았다.그리고 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무인을 통째로 삼켜버렸다.잠시 후 사자의 입이 다물어지자 비명이 울려 퍼졌다.“으악!”피가 사방으로 튕겼다.비명을 들은 한제성은 두려워서 몸이 떨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얼마 안 지나서 또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한제성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이 무인들은 모두
진서준도 멀리서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권해철 씨 사문의 사람일까요?”진서준이 물었다.보운산에는 권해철 사문의 사람 외에는 거의 다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저도 모르겠어요. 사문 사람들은 보통 밤에 활동하죠.”권해철이 대답했다.“네? 왜 그러시는 거죠? 밤이 되면 산길은 더욱 걷기 힘들 텐데.”진서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게다가 밤이면 여러 가지 독사와 맹수가 있어서 더욱 무섭지 않나요?”진서준의 등에 엎드리고 있던 허윤진도 맞장구를 쳤다.그런 간단한 이치는 허윤진도 다 알고 있는데 권해철 사문의 사람들은 모를 리가 더욱 없었다.“우리도 그걸 알고 있죠.”권해철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이 산속에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 있어요.”그 괴물을 떠올리자 권해철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이승재도 사부님이 이러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마음속으로 몹시 놀랐다.“얼마나 무서운 거죠?”진서준이 궁금해서 물었다.“진 마스터님, 사자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권해철이 물었다.“사자라면 동물원에서 본 적이 있죠.”진서준은 웃으면서 대답했다.“혹시 그 괴물이라는 게 사자예요?”진서준은 단지 사자 한 마리 때문에 권해철 사문의 사람들이 대낮에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꼭 그렇지도 않아요.”권해철은 한숨을 내쉬었다.“말하면 못 믿을 수도 있어요. 그 사자는 몸집이 2미터가 넘어요. 몸에 자란 털까지 합치면 거의 2층짜리 건물 정도죠.”“헐...”이승재와 허윤진은 무서워서 숨을 들이마셨다.사자와 같은 맹수는 아무리 튼튼하게 잘 자라도 팔다리를 합쳐도 겨우 1미터 정도였다.하지만 바로 1미터 정도 몸집의 사자를 동물원에서 본다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이층집만 한 사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허윤진은 자신이 아마 사자를 만나면 도망갈 용기조차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환해졌다.2미터 높이의 사자가 있다는 건 이 산
“형부, 가지 마세요. 혹시...”허윤진은 진서준이 사나운 짐승을 상대하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걱정하지 마세요. 싸우지 않고 용혈과만 가지고 갈 거예요.”진서준이 웃으며 위로했다. 그리고 그와 일행은 계속 걸었고 앞쪽의 발소리도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진서준은 8.9 명일 거라고 짐작이 갔다.“혹시 한씨 집안 사람들일까요?”진서준이 묻자 권해철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그들이겠죠. 제 사제들은 3명 이상 함께 산을 내려가지는 않거든요.”잠시 후, 진서준은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정말 한제성이네요.”권해철이 말하자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서준은 한제성 일행에게서 은은한 피비린내를 맡았다.인승민 종사도 없으니 분명 그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권 천사님!”한제성은 권해철을 보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어떻게 된 일입니까? 인 종사님은요? 왜 같이 오지 않았어요?”권해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인 종사님은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어서 구해주세요.”한제성은 간절한 눈빛으로 권해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제성 씨가 말한 괴물이 혹시 키카 2미터나 되는 수컷 사자입니까?”권해철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네! 바로 그 괴물입니다. 보신 적이 있어요?”한제성은 흠칫 놀라면서 되물었다.“얼른 도망가세요. 인 종사님은 아마 그 괴물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권해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럴 리가요... 그래도 종사 실력인데...”말로는 못 믿겠다고 하지만 한제성도 자신이 없었다. 그 괴물 앞에서 선천 대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말이다.“종사도 괴물 앞에서는 안 되죠. 우리 장문인도 그 괴물을 이길 수 없습니다.”권해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서준은 인승민의 생사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용혈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이때 진서준은 갑자기 상자를 안고 있는 무인을 보고 물었다.“그 상자에는 무엇이
괴물은 서 있기만 했는데도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마치 이 사자 앞에서 어떤 사람, 어떤 물건도 모두 보잘것없다는 경멸의 느낌을 받게 만든다.허윤진이 이 수컷 사지를 본 순간 예쁜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두 다리로 진서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안 종사님!”한제성은 피투성이가 된 채 마치 시체 더미에서 기어 나오는듯한 인승민을 보더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인승민은 한씨 가문의 종사이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한씨 가문의 실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비록 한씨 가문에는 종사가 한 명뿐이 아니지만 이렇게 큰 손실을 감수할 수 없었다.“진 마스터, 얼른 도망갑시다. 이 괴물이 떠나면 그때 다시 산으로 올라가죠.”권해철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는 이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총알도 그의 가죽을 꿰뚫을 수 없었다.“도망가! 얼른!”인승민은 한제성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보이게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손을 써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지금 뿔뿔이 흩어져야 어쩌면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권해철은 한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용혈과를 여기에 두면 우리는 도망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 죽을 거예요.”용혈과는 괴물의 물건인데 지금 한제성 일행이 가져갔으니 괴물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보운산에서 도망칠 수 있더라도 그들을 끝까지 찾아가 모조리 죽일 것이다.“안 됩니다. 이 용혈과는 제 누나의 목숨을 살려줄 물건입니다. 절대 여기에 두고 갈 수 없어요.”한제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가 이번에 산을 오른 이유도 이 용혈과를 얻어 그의 누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오늘 한제성이 여기서 죽더라도 그는 반드시 사람을 시켜 용혈과를 한씨 집안 사람에게 전달할 것이다.진서준은 한제성의 말을 듣자 담담하게 물었다.“용혈과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요?”그러자 한제성은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무슨 뜻이죠?”진서준은 용혈과의 효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권해철은 영법을 쓰더니 구름과 안개 사이로 하얀색 뱀이 생겨났다. 그 뱀은 권해철과 그의 제자를 데리고 다른 고지로 올라갔다.한제성은 권해철이 정말 그들을 내버려두려고 하자 화가 치밀어올랐다.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그저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그들 뒤에 있던 수컷 사자는 인내심을 잃었다. 그는 더 이상 술래잡기 놀이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제성 일행을 죽이고 용혈과를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인승민은 이 괴물이 방금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아!아악!아무런 예고도 없이 처량한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불과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한씨 가문의 무인 두 명이 괴물의 거대한 발톱에 찍혀 죽었다. 그 괴물 사자의 발톱은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이 거대한 짐승 앞에서 종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종사가 아닌 무사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순식간에 죽었다.허윤진은 비명을 듣고 손으로 귀를 막았고 두 눈도 꼭 감았다. 진서준에게 업혀 있던 허윤진은 다리로 진서준을 꽉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진서준은 이 모습을 보자 한 손을 허윤진의 어깨에 올려놓고 몸 안의 영기를 움직여 그녀에게 전해줬다.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말이다.“형부, 좀 있다가 내려가면 안 돼요. 그 사자가 돌아가면 그때 내려갑시다...”허윤진이 몸을 떨며 말했다.“알았어요.”진서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어렵게 용혈과를 찾았는데 이렇게 놓칠 리가 없었다. 이 수컷 사자는 매우 무서워 보이지만 진서준은 그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늦었어. 그냥 한번 덤벼보자!”인승민은 더 도망쳐봤자 이 괴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해철 씨, 도와주세요. 혼자 감당 못 할 것 같습니다.”인승민은 권해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권해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이 괴물의 상대가 안 됩니다. 부디 조심하세요.”권해철이 내려오려고 하지 않자 인승민은 욕설을 퍼부었다.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