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광경에 허윤진과 진서준의 뒤를 밟던 사람들 모두 넋이 나갔다.이승재가 속도를 좀 늦추긴 했지만 그래도 시속 90킬로미터였다.이렇게 빠른 속도라면 종사라고 해도 안전히 착지하기 힘들었다.그런데 진서준은 아주 가뿐히 고속도로 중간에 내렸다.“이제 어떡하죠? 저 자식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아요.”조수석에 앉아 있던 무인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차로 치어서 죽여버리면 되지. 우리는 시체를 가지고 돌아가면 돼.”운전하고 있는 무인은 액셀을 힘껏 밟았고, 그 순간 시속 160킬로미터에 달했다.그 차가 진서준을 치려고 하자 허윤진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두 손에서는 식은땀이 났다.이승재와 권해철도 그가 걱정되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주제 파악을 못 하네.”다음 순간 진서준의 체내에서 장청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진서준의 두 손에는 옅은 파란색 빛이 감돌았다.쿵...차는 통제를 잃고 진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하지만 날아간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서준이 두 손으로 차 앞부분을 잡자 차 보닛이 박살 났다. 심지어 엔진 소리까지 똑똑히 들렸다.마치 부딪힌 게 사람이 아니라 벽 같았다.차 뒷부분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차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에어백에 감싸인 조씨 일가 무인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곧 헛숨을 들이켰다.그들은 진서준이 날아갈 줄 알았으나 진서준은 그들의 앞에 멀쩡히 서 있었다.가장 무시무시한 점은 진서준이 두 손으로 그들의 차를 꽉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진서준은 맨손으로 빠르게 달리던 차를 멈춰 세웠다.앞에 있던 권해철과 이승재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동시에 그들은 진서준이 진짜 인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인간의 육신이 정말로 그렇게 강할 수 있는 걸까?오직 진서준의 눈빛만이 평온했다. 그는 덤덤한 눈길로 차 안에 있는 네 명의 조씨 일가 무인을 바라봤다.“나와!”네 사람은 곧바로 차에서 나와서 경계 어린 눈빛으로 사납게 물었다.“왜 우리 차를 가로막는 거야?”진서준은 차갑게 웃더니 그 말을
동료의 비참한 죽음에 세 무인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공기 속에서 피비린내가 나자 머리털이 쭈뼛 솟았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오줌을 지렸다.동료의 머리가 다른 사람에게 밟혀서 터지는 광경을 목격했으니 앞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릴지도 몰랐다.“우리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저희는 사실만 말했습니다.”세 사람은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이마가 피로 물들었다.살기 위해서 다른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말해!”진서준이 싸늘하게 세 사람을 바라봤다.“저희는 조씨 일가 무인입니다. 당신이 서울을 떠나게 되면 그때 손을 쓰라고 조재찬이 명령을 내렸습니다.”“살아있으면 살아있는 채로 잡아 오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앞에는 CCTV가 너무 많아서 CCTV가 없는 이곳에서 차를 들이박으려고 했는데...”그들이 조금 전 손을 쓰지 않은 이유는 CCTV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곳에서 진서준의 차를 들이박았더라면 골치 아프게 됐을 것이다.그런데 진서준이 먼저 손을 쓸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의 눈동자에 동정심이라고는 없었다.어젯밤 그는 조재찬에게 경고했었다.복수를 할 수는 있지만 기회는 단 한 번뿐이라고.이 무인들은 조씨 일가 사람들이라 진서준은 그들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냥 이렇게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시체까지 완벽히 없애야 했다.“이 자식 시체를 차에 실어.”세 사람은 진서준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다.세 사람은 두려움을 참으면서 동료의 시체를 차로 옮긴 뒤 자신의 옷을 이용해 길에 남은 핏자국을 깨끗이 치웠다.그런 뒤 세 사람이 물었다.“형님, 저희 이제 가봐도 될까요?”“차에 타.”진서준은 거의 폐차 지경에 이른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세 사람은 걸어서 그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차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차가 망가졌는데...”그중 한 명이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입 닥치고 빨리 타.”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이 화를 내자
“윤진 씨, 얼른 놔요...”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는 최대한 조절했다.하지만 허윤진이 계속해 그를 이렇게 끌어안는다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몰랐다.“앞으로 이렇게 위험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면 놔줄게요.”허윤진은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입을 비죽였다.“약속할게요. 앞으로는 절대 위험한 짓을 하지 않을게요.”진서준은 서둘러 승낙했다.“안 돼요. 성의가 없잖아요. 좀 더 성의 있게 말해요!”허윤진은 끈질기게 진서준에게 다시 말하라고 했다.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말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허윤진은 그제야 진서준을 놓아주면서 다시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미소는 곧 사라지고 허윤진의 얼굴은 확 불타올랐다.진서준은 이때 허리를 살짝 숙이고 있었는데 그곳이 조금씩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허윤진은 마침 진서준의 허리 쪽에 있어서 진서준의 변화를 단번에 알아봤다.비록 허윤진은 아직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관계를 가져본 적도 없었다.그러나 이런 것쯤은 알고 있었다.“이, 이, 이...”진서준은 조금 뻘쭘했다. 그는 통제하려고 최대한 노력해 보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이승재와 권해철은 이러한 상황을 몰라서 그저 그들이 장난치는 건 줄로 알았다.허윤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권해철은 존경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 씨, 맨몸으로 빠르게 달리던 차를 막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맞아요. 조금 전에 맨손으로 막으셨잖아요. 남주성에 진서준 씨 상대가 될 사람은 없을 겁니다!”이승재도 곧바로 맞장구를 치면서 진서준을 칭찬했다.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별거 아니에요. 차 한 대일 뿐인걸요.”사실 진서준은 맨몸으로 맞선 건 아니었다. 영기를 이용해 차를 막은 것이었다.만약 영기 없이 맨몸으로 차를 막았다면 차 때문에 밀려났을 것이다.진서준은 자신의 약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그의 육체가 아직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는 점이었다.만약 체내의 영기를 전부 소모한다면 큰일이었다.그러나 몸을
이번에 허윤진이 몰래 차에 탔으니 다음번에 진서준은 더욱 조심할 것이다. 일단 차에 탄 뒤에 숨을만한 곳을 다 확인해서 절대 허윤진이 몰래 따라오게 하지 못하게 할 생강이었다.“다리 내놔요. 난 잘 거예요.”진서준이 한 말 때문에 허윤지은 화가 나서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진서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뻗어 허윤진이 벨 수 있게 해줬다....고양의 어느 풍경 좋은 별장.아름다운 몸매의 여자가 화려한 별장에 딸린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그녀의 곁에는 아이 침대가 놓여 있었다.진서준이 그 여자를 봤다면 틀림없이 놀랐을 것이다.그 여자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실종되었던 유지수였기 때문이다.유지수는 서울을 떠난 뒤 고양으로 향했다.사람은 항상 더 좋은 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유지수는 그 점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서준과 이지성도 두려워하는 곳으로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반드시 전라도의 높은 사람과 연을 맺어야 했다.전라도의 부자들에게 기대어야만 유지수는 편히 살 수 있었고, 앞으로 진서준을 마주친다고 해도 그와 맞설 힘이 있었다.그리고 마침 고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지수는 파티에서 황민혁의 눈에 들었다.황민혁은 고양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황씨 가문의 자제, 황씨 가주의 친손자로서 신분이 높았다.노력 끝에 유지수는 황민혁의 마음을 얻었고 현재 황민혁은 그녀의 요구라면 뭐든 들어줬다.저번에 허사연이 납치당한 것도 그녀가 계획한 일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황민혁이 찾은 사람들은 프로페셔널하지 못해서 허사연을 잡은 뒤 그녀를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유지수의 친한 친구 장혜윤이 농락을 당했다.그때 실패한 뒤로 허사연 곁의 경호 인력이 몇 배 더 늘어났다.다시 허사연을 납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유지수는 진서준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진서준에게 복수해서 자신이 서울에서 잃었던 체면을 다시 찾아올 생각이었다.“사모님, 도련님께서 저녁 식사 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먼저 식사
오후 네 시, 진서준 일행은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안영에 도착했다.보운산은 안영과 한 시간 거리 정도 떨어져 있었고 고속도로가 없어서 간선으로만 가야 했다.권해철은 창문을 통해 안영의 높은 건물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내뱉었다.“30년, 제가 사문에 있었을 때, 전 매번 여기 안영 시내로 와서 필요한 걸 샀습니다.”“그때 안영은 후진 곳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네요!”사문을 떠난 뒤로 권해철은 안영에 거의 오지 않았었다.비록 얼마 전 한 번 와봤었지만 시내에 가지는 않고 보운산으로 곧장 갔었다.“진서준 씨, 오늘 밤은 안영 시내에서 묵고 내일 보운산으로 향하죠.”허윤진도 안영에 관심이 많았기에 진서준과 함께 그곳을 둘러보고 싶었다.진서준의 계획은 보운산 근처의 호텔에 투숙했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산에 오르는 것이었다.권해철도 보기 드물게 말했다.“진서준 씨, 시내에서 보운산으로 가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시내에서 묵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예요.”권해철의 말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시내에서 묵죠.”“좋아요!”허윤진이 신나서 말했다.오늘 밤 진서준고 단둘이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오늘 어렵게 단둘이 있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는 이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허윤진이 매우 기뻐하자 진서준은 역시 애라고 생각했다.이승재는 5성급 호텔로 향했다.네 사람은 차에서 내린 뒤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예약했다.“스위트룸 네 개요.”룸 키를 들고 네 사람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진서준은 자기 방을 확인한 뒤 바로 진서준을 찾아갔다. 그녀는 진서준의 다리를 베고 하루 종일 잤기에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진서준은 하루 종일 차를 탔어서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욕실로 가서 씻을 생각이었다.물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자 순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피로함도 물에 따라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편안히 샤워한 뒤 진서준은 타월로 몸과 머리의 물기를 닦은 뒤 흥얼거리면서 맨몸으로 나왔다.어차피 방
“점잖은 것처럼 보였는데, 몸이 저렇게 좋을 줄이야. 군살도 전혀 없고 말이야.”허윤진은 뜨거운 얼굴을 만지작거리면서 작게 중얼댔다.조금 전 그저 힐끗 보았지만 진서준에게서 아주 강한 양기가 느껴졌다.“아니지, 나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정말 변태야! 노출증! 샤워하면서 문을 잠그지 않는다니, 나 망신 주려고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어!”허윤진은 갑자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면서 고개를 젓더니 이를 악물면서 욕했다.그러나 허윤진이 아무리 그를 욕해도, 아무리 고개를 저어봐도, 진서준의 근육질 몸매는 계속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지금 당장 찾아가서 따져야겠어!”크게 망신당했다고 생각한 허윤진은 진서준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그녀는 문을 열고 노기등등하게 진서준의 방을 찾아갔다.이번에 그녀는 교훈을 얻고 우선 진서준의 문을 두드렸다.“진서준 씨, 진서준 씨!”허윤진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옷을 다 입은 진서준이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방문을 열자 허윤진이 노기등등하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일단 들어와요.”진서준이 무안하게 말했다.“비켜요!”허윤진은 그를 밀치더니 굳은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진서준은 한숨을 쉬면서 방문을 닫았다.“아까는 무슨 일로 날 찾아왔던 거예요?”진서준은 의자에 앉아서 허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조금 전 허윤진이 진서준을 찾은 이유는 그와 같이 밖에 나가서 쇼핑하고 싶어서였다.그러나 이제는 쇼핑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허윤진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이 샤워한 뒤 맨몸으로 나온 광경뿐이었다.“아까는 볼일이 있었는데 진서준 씨가...”조금 전 일을 거론하게 되자 허윤진은 곧바로 얼굴이 빨개졌다.거기에 화가 난 표정까지 더해져서 아주 귀엽고 웃겼다.“나도 허윤진 씨가 문도 안 두드리고 들어올 줄은 몰랐죠.”진서준이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맨몸을 보이게 된 사람은 자신이고, 손해를 본 사람도 자신인데 왜 허윤진이 오히려 화를 내는 걸까?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허윤진의 앞에서
...진서준이 허윤진과 함께 쇼핑하고 있을 때 전라도의 조재찬은 더 기다릴 수 없었다.온종일 기다렸지만 진서준을 따라갔던 네 명의 무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조재찬은 네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당시 조재찬은 네 명이 이미 손을 써서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제 곧 하루가 되는데 아직도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어르신, 이건 오늘 오전 서울시 기사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차 한 대가 폭발했대요.”조씨 일가 집사가 휴대전화를 들고 빠르게 걸어왔다.그 소식을 들은 조재찬은 마음이 가라앉았다.“언제 적 일이야?”조재찬이 곧바로 물었다.“오늘 오전 8시 넘어서 있은 일이에요. 우리 전라도 번호판인 듯했어요.”집사가 대답했다.그 말에 조재찬은 확신이 생겼다.“젠장, 왜 연락이 닿지 않나 싶었는데 다 죽은 거였어!”조재찬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때 성수민이 다가와서 어두운 표정으로 조재찬을 바라보았다.“오늘이면 끝난다면서? 그래서 결과가 뭔데? 우리 아들 다리 부러뜨린 놈은 죽었어?”조재찬이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아직 살아있어.”“무능하긴. 당신이 실패할 줄 알았어. 역시 우리 큰아버지가 와야 했어.”성수민은 조재찬을 나무라며 말했다.“조씨 일가 사람들은 어쩜 그림 무능해? 청년 한 명 처리하지 못해?”집사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내 체면 좀 생각해 주면 안 돼?”집사가 떠난 뒤 조재찬은 화가 나고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체면은 당신 스스로 챙겨야지.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당신이 조금만 유능했어도 내가 이렇게 당신을 나무랐겠어?”성수민은 조재찬의 콧대를 가리키면서 욕했다.조재찬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단단히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무능하긴. 병원에 가서 우리 아들이나 보살펴. 복수는 내가 할 테니까.”성수민은 욕을 마친 뒤 몸을 돌려 방을 떠났다.성수민이 떠난 뒤 조재찬은 방 안에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방 안에 깨뜨
탁현수도 진서준을 죽이려 한다는 말에 조재찬은 매우 기뻤다.그는 가격을 얼마나 높게 불러야 탁현수가 나서줄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참, 우 선생님. 진서준 그 자식 지금 서울에 없습니다.”조재찬이 한마디 했다.“그래요? 어디 갔대요?”우소영은 그 자식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모릅니다 아침에 뒤를 밟으라고 네 명의 부하를 보냈는데 발각당했습니다.”조재찬이 뻘쭘한 표정으로 말했다.“됐어요, 어차피 서울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말이에요.”우소영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가족과 여자 친구 모두 서울에 있으니 우소영은 그가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진서준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면 바로 얘기해줘요.”“그럼요!’전화를 끊은 뒤 조재찬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면서 음험한 미소가 걸렸다.“진서준, 네가 진 마스터면 뭐 어때? 네가 서울로 돌아오는 날이 네 제삿날이 될 거야.”...백화점에서 쇼핑하던 진서준은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치솟았다.“왜 그래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안색이 좋지 않자 바로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불안해져서요. 집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네요.”진서준은 마음이 무거웠다.“집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우리 언니 매일 퇴근하면 아주머니랑 서라 씨 보러 가잖아요. 걱정하지 말아요.”허윤진이 제안했다.“정 마음이 쓰이면 아주머니랑 서라 씨 우리 집에서 지내면 되잖아요. 우리 집에는 경호원도 있으니 말이에요.”진서준은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 말했다.“좋아요. 지금 당장 사연 씨에게 연락해서 오늘 저녁 서라와 어머니를 사연 씨네 집으로 데려가라고 해야겠어요.”진서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허사연에게 연락했다.“무슨 일이에요? 안영에 도착했어요?”허사연이 걱정스레 물었다.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방해가 될까 봐 연락을 하지 못했다.“이미 도착했어요. 지금 윤진 씨랑 쇼핑하는 중이에요.”“다행이네요. 혹시
“저년 운이 정말 좋네. 열 명이 넘는 총잡이가 덤벼도 못 죽이다니.”임동식의 눈에는 깊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동식 형님, 이번에 저 여자를 못 처리했으니 다음엔 더 어려워질 겁니다...”“저 여자가 데려온 그 경호원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요. 박진강조차 그 경호원 상대가 되지 않았잖아요.”“그래서 이번엔 철저히 준비했어. 어제 이미 동남아 킬러 업계에서 유명한 킬러인 독룡에게 연락했어. 이틀 후면 명주에 도착할 거야.”임동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독룡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혹시 그 국제적으로 돈 많은 부자 열댓 명을 죽인 적 있는 부자 킬러 말씀입니까?”“맞아.”임동식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킬러를 고용하는 건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꼴 아닙니까? 제가 듣기로는 과거 그 킬러가 단지 고용주가 심기를 건드린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고용주까지 죽인 적도 있다던데요?”자리에 있던 한 노인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이런 살인마와 협력하는 건 사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임동식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큰 파도를 헤쳐야 큰 물고기를 얻는 법이야. 위험이 없다면 내가 굳이 그 킬러를 부를 이유도 없었겠지.”임동식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혀를 끌끌 찼지만 속으로는 두려움도 컸다.독룡이 폭주해 임동식까지 죽여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물론, 임동식이 죽는다면 그들에겐 대표이사 자리를 노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그러나 다들 방금 나눈 대화가 이미 황예은의 사무실에서 황예은이 전부 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황예은은 회의실에 미리 설치해 둔 감시 장비 덕분에 대화를 전부 녹음하고 있었다.“젠장! 어젯밤 총잡이들이 이놈들 짓이었다니!”황현호는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누님, 지금 당장 가서 이놈들 전부 죽여버릴게요.”“앉아.”황예은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지금 만약 임동식 일당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황현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황예은
진서준의 말에 박진강은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오해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날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우리 아버지는 박서명이란 말이야!”지금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박진강은 자기 아버지를 들먹이며 진서준을 겁주려 했다.진서준은 냉랭하게 박진강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언제 널 죽인다고 했어?”“그럼 무슨 뜻이야?”박진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그야 당연히 말 그대로 네가 다시는 말을 못 하게 하겠다는 뜻이지.”말이 끝나자마자 진서준은 손가락을 뻗어 박진강의 목을 가볍게 찔렀다.그 순간, 공포스러운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박진강의 목을 꿰뚫었다.진서준의 이 손짓은 어떤 실수도 없이 정확히 박진강의 성대를 끊어버렸다.피가 상처에서 조금씩 흘러나왔고 극심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박진강의 뇌를 맹렬히 뒤흔들었다.박진강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고 입을 크게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으며 그 모습은 심각하게 다친 벙어리 같았다.이 광경에 임동식을 비롯한 이사회 구성원들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이 남자는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박서명에게 아들이 많긴 하지만 박진강은 어쨌든 그의 아들 중 하나였다.그런데 진서준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박진강의 성대를 잘라버렸다.이런 치욕을 박씨 가문이 어떻게 그냥 참아 넘기겠는가?“꺼져.”황예은이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황예은의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박진강은 아픔을 참고 비틀거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박진강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 박서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연결되었지만 박진강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전화 너머에서는 박서명의 목소리만 들려왔다.“진강아, 이른 아침에 전화하다니, 좋은 소식이라도 전하려는 거야?”그러나 박진강은 아무리 입을 열어도 소리를 낼 수 없었다.박서명은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여전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의아해했다.“진강아, 말하지 않고 뭐 해?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이 녀석. 계속 장난치면
박진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황예은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누님, 어젯밤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내가 명주시 전역을 샅샅이 뒤지게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어요.”황현호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황예은이 멍청한 남동생을 보는 시선은 어느 때보다 더 부드러웠다.“어젯밤 일은 더 이상 묻지 마. 넌 먼저 내 사무실로 가서 기다려. 할 말이 있어.”“알았어요.”황현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고 진서준 옆을 지날 때 황예은에게 물었다.“누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요?”다른 사람들도 모두 시선을 돌려 진서준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박진강 역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청년의 정체를 탐색했다.“새로 고용한 경호원이야.”황예은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이 사람이 경호원이라고요? 농담하지 마세요.”황현호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겉모습만 봐도 이 청년은 경호원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허약한 모습이었다.“누님, 이 녀석은 나보다도 더 약한 것 같은데요? 누님이 경호원을 원한다면 내가 직접 찾아줄게요.”황현호가 급히 말했다.“내 말을 못 알아듣겠어?”황예은이 얼굴을 굳히며 화내자 황현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황급히 회의실에서 달아났다.박진강은 앞으로 다가와 황예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예은 누님이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저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말을 마친 박진강은 발걸음을 옮겨 회의실에서 나가려고 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황예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뜻이죠?”박진강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내 멍청한 남동생을 이용해 내게 독을 탄 짓, 내가 모를 줄 알았어?”그 말에 박진강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예은 누님,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박진강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저 녀석 잡아!”황예은도 더 이상 쓸데없는 한담을 하지 않고 간단하게 명령을 내렸다.
이사회 구성원은 많지 않았고 황씨 가문을 제외하면 총 여덟 명이었다.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이 여덟 명은 모두 노련한 여우였다.황예은이 처음 자리에 올랐을 때도 이 여우들에게 꽤나 당했었지만 나중에 배로 되갚아주었다.다들 황예은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는 섣불리 황예은과 정면으로 충돌하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황예은이 사라지고 남은 건 황경영의 어리석고 멍청한 아들 황현호뿐이었다.그러니 이 노련한 여우들은 당연히 이런 멍청이가 자기 머리 위에 올라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황현호는 한눈에 이사들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동식 삼촌, 이렇게 급하게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황현호는 의장석으로 걸어가 왼쪽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에게 공손하게 물었다.임동식은 황씨 그룹의 두 번째 주주이자 회사의 원로였다.“현호야, 너희 아버지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너희 누나도 어젯밤 큰 일을 당해 생사가 불분명하구나.”임동식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우리 그룹은 작은 회사가 아니야. 하루도 주인이 없을 수 없어.”이 말을 듣자 황현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아무래도 처음부터 자기를 몰아붙이려는 것 같았다.사실 임동식은 황현호 같은 멍청이와 쓸데없이 말싸움하고 싶지도 않았다.긴말은 필요 없고, 어차피 말해봐야 황현호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그러니 차라리 명확하고 간결하게 하는 편이 나았다.“동식 삼촌, 제가 아직 여기 있잖아요?”황현호가 모르는 척하며 말하자 임동식은 미소를 지었다.“현호야, 네가 이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는 걸 동식 삼촌은 다 지켜봤어. 네 사업 감각은 솔직히 평범하잖아.”“그럼 동식 삼촌의 의도는 무엇인가요?”“넌 우선 전력을 다해 너희 누나를 찾아. 회사는 일단 내가 관리하고 네 누나를 찾으면 다시 네 누나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내줄게.”황현호는 어리석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만약 이 자리를 지금 넘겨주기만 하면 임동식은 즉시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