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눈치만 보는 정란 일가 중에서 그래도 정태호의 눈치가 가장 빨랐다.“마음대로 시켜. 얼마 나오든 상관없으니까.”“정말요?”진서준이 물었다.“미리 말씀드리는데 이렇게 하신다고 해도 도와드릴 마음이 없어요.”정태호가 웃으면서 말했다.“오늘은 밥 먹자고 부른 거야. 친척 사이에 도와주고 말고가 어디 있어!”말은 이렇게 했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정태호는 진서준이 그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래요. 다른 말 하기 없기예요!”진서준은 메뉴판을 보면서 가장 비싼 페이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이 페이지에 있는 요리들 다 주세요!”정태호 일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한 페이지를 다 시켰다고? 그러면 얼마야? 천만 원도 모자라겠는데?’더욱이 정란 일가는 이미 배부른 상태라 다 못 먹으면 낭비였다.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내뱉은 말이라 되돌릴 수가 없었다.“이렇게 많이 시켜도 괜찮죠?”진서준이 정태호를 보면서 물었다.“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정태호가 이를 악물면서 대답했다.한 페이지만 주문했기 다행이지 다른 페이지도 주문했다면 정말 감당이 안 됐을 뻔했다.진서준이 또 한마디 했다.“버거우시면 제가 계산해도 됩니다.”정태호는 그가 심해윤을 안다고 해도 밥값을 계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정말 돈이 많았다면 조희선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하는 대신 좋은 의사한테 부탁해서 치료했을 것이다.하지만 정태호는 조희선의 다리가 분쇄성 골절이라 신경이 이미 죽은 상태라는 것을 몰랐다. 영골이 없으면 아무리 대단한 의사라고 해도 조희선의 다리를 치료할 수 없었다.권해철과 함께 스승님을 만나러 가기까지 두 날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만 지나면 진서준은 권해철과 출발해야 했다.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나가자 정태호가 웃으면서 말했다.“서준아, 내년이면 정민이도 곧 졸업인데 너 심 처장님이랑 친해? 혹시 우리 정민이 일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하면 안 될까? 돈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모부한테 말해. 2천만 원
정란 일가의 입에서 혈육 간의 정을 들으니 역겹기만 했다.만약 정말 이 관계를 중히 여겼다면 조희선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 병문안 정도는 와야 했다.심지어 조희선이 직접 찾아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 무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진서준은 이런 냉혈 인간들에게 마음이 약해지지 않으려고 했다.가는 정 오는 정이라고 했다.진서준은 그 정도로 마음이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저는 도와드리지 않을 거라고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이 한 끼는 제가 살게요.”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들의 체면을 깎아내렸다.이에 정태호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서준아, 정말 우리를 모른척할 거야?”“친척이라고 할 자격이나 있으세요?”진서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먼 친척보다 이웃이 낫다는 말이 맞는가 보네요.”조희선이 진서준을 급히 말리면서 난처한 표정으로 정태호에게 말했다.“마음에 두지 마. 서준이도 어려운 점이 있어서 그럴 거야.”“됐어. 도와주기 싫으면 말라고 해. 그따위 도움 필요 없어! 처장님과 친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네.”정란은 진서준에게 삿대질하면서 말했다.“내가 말하는데, 넌 우리가 없었으면 이런 밥 한 끼도 먹지 못했어!”허사연이 듣고서 피식 웃고 말았다.그녀는 이 호텔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먹고싶은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왜 웃는데?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고 서준이를 따라다녀!”정란은 허사연을 향해 소리쳤다.여자는 자기보다 예쁜 여자를 보면 질투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정란은 자기보다 예쁜 허사연을 보자마자 질투심이 폭발하고 말았다.허사연은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이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내가 웃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그 입 좀 닥쳐. 아니면 이 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거니까.”“웃겨. 네가 뭔데 우리를 이 호텔에 잡아두겠다고 하는 거야?”정란은 가소롭기만 했다.“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았네. 전과자 주제에 어떤 여자친구를 사귀겠어. 유흥업소에서 몸이나 파는 창년이겠지.”진서준은 순간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조희선이 다급하게 설명했다.“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먼저 사연이를 때리려고 해서 제 아들이 손댔을 뿐이에요.”정란이 허사연을 창년이라고 욕했을 때 조희선도 많이 화났다.허사연을 며느릿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괴롭힘을 받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그래서 아까 진서준이 사람을 때릴 때 별로 말리지도 않았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들 우리 내쫓지 못해요.”진서준이 허허 웃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뒤이어 정란 일가가 지켜보는 앞에서 경호원들이 허사연에게 허리숙여 인사했다.“사장님!”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정란 일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이 년이 이 호텔 사장이었다니!’“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부르면 들어와.”허사연이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네!”경호원들은 그대로 뒤돌아 밖으로 나가서 방문을 닫아버렸다.방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정태호는 이 호텔이 허씨 가문의 소유인 것을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서준이 여자친구가 바로 허씨 가문의 따님?’건드린 사람이 허씨 가문의 따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태호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오해... 오해야...”정태호는 휴지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고 더는 진서준 앞에서 잘난 척할 수가 없었다.돈과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진서준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은 죽으려고 작정한 거나 다름없었다.“오해요? 방금 저보고 이 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거라고 하신 거 아니에요?”진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장난친 거였어. 친척끼리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정태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저는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연기 그만하세요.”진서준이 냉랭하게 말했다.“앞으로 더는 연락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만 가보셔도 좋아요.”진서준은 더는 이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오늘 조희선과 진서라를 데려온 것은 조정연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정란 일가에게 자신이 더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진서준의 단호한 모
정란 일가는 후회막심했다. 조희선을 매정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진서준의 도움을 받아 잘 나갔을지도 몰랐다.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정란 일가가 떠나자 조희선이 말했다.“서준아, 우리도 이만 가자꾸나.”“네.”진서준은 조희선의 휠체어를 밀면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어머님, 저는 아직 출근해야 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요.”허사연이 말했다.“괜찮아. 저녁에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조희선이 웃으면서 말했다.그녀는 허사연을 볼수록 마음에 들어 했다.“아, 서준 씨. 저녁에 윤진이랑 일 끝마치고 같이 밥 먹으러 와요.”허사연이 한마디 타일렀다.한집안 식구가 될 거기 때문에 허윤진이 진서준 가족과 친해졌으면 했다.“네. 윤진 씨랑 일찍 가볼게요.”진서준이 웃으면서 약속했다.차에 앉은 조희선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서준아, 사연이랑 언제 결혼할 거야? 엄마는 빨리 손주 보고 싶어!”진서준의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엄마. 저랑 사연 씨는 고작 20대 초반이에요. 올해 결혼한다고 해도 일찍 아이 가질 생각이 없어요.”“너도 이제 스물다섯이야. 엄마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조희선이 한숨을 내쉬었다.“엄마 평생소원이 네가 사연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거야. 그래야 우리 진씨 가문이 대를 이어갈 수 있지 않겠니?”“엄마, 그런 말 좀 하지 마세요. 제가 곁에 있으니 꼭 장수하실 거예요.”진서준이 진지하게 말했다.기사회생 침으로 엄마랑 여동생이 장수할 수 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그런 효심만으로도 족해. 그런데 엄마는 그래도 손주를 보고 싶어.”조희선이 말했다.“그러면 저녁에 사연 씨한테 물어보세요. 사연 씨가 올해 아이를 갖겠다고 하면 저는 상관없어요.”진서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네가 물어봐야지.”조희선이 고개를 흔들었다.“재촉 안 하는 게 낫겠어. 네가 알아서 해.”진서준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옆에 있는 별장에서 수련하기 시작했다....용행 무관.지
이 노인은 태양혈이 울끈불끈한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이 사람은 바로 강성준의 사부인 정민식이었다.“정 선생님!”강옥산은 황급히 달려와 예의 갖춰 인사했다.무관 수강생들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강옥산은 용행 무관의 관장으로서 실력이 만만찮은 사람이었다. 분명 그가 직접 주먹으로 20cm나 되는 나무판을 부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정민식은 강옥산을 힐끔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강 관장님, 너무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강옥산은 강성준을 정민식한테서 무술을 배우게 하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다.강성준은 비록 돈을 들여 정민식의 제자가 되었지만 명실상부 정민식의 제자가 맞았다.정민식은 제자가 맞았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그는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왔다.상대방과 단체전을 하든 1:1 대결을 하든 전혀 두렵지 않았다.“성준이한테서 들었는데 정 선생님께서 종사 레벨로 업그레이드되셨다면서요?”강옥산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종사라 하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강옥산은 아직 내공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 종사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과 충돌이 없었더라면 용행 무관 하나만으로도 평생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종사는 그저 무인의 밑거름일 뿐입니다. 이 외에도 더 높은 경지가 많습니다.”하지만 그래도 정민식은 우쭐거리면서 말했다.백만 명 중에서 한 명이 나타날 법한 종사는 실력이 막강한 존재였다.많은 무인들은 내공을 아무리 쌓아도 평생 종사 급에 달할 수 없었다.“정 선생님 실력은 저희가 평생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정민식은 손을 저었다.“아닙니다. 제 제자를 위해 복수하러 왔는데 그놈이 어디 있는 것입니까?”강옥산이 멈칫하고 말았다.“정 선생님, 급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곧 저녁 시간도 되고 해서, 식사부터 하시고 푹 쉬시고 내일 움직이는 건 어떠신지요?”“그래요, 사부님.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강성준이 한마디 했다.정민식 역시 잠깐 생각
진서준은 가소롭다는 듯이 도전장을 쳐다보았다.‘패잔병 주제에 도전장을 내밀다니!’진서준은 강씨 부자가 도전장을 내민 것을 보고 분명 무슨 고수를 모셔 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좋게 말할 때 그만할 것이지. 굳이 내가 본때를 보여줘야겠어?’진서준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한영은 방으로 들어가려는 진서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이글거리는 눈빛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었다.이때 진서준이 마른기침을 하면서 말했다.“저녁은 밖에서 먹을게요.”그제야 정신 차린 고한영은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고개를 숙였다.“그래요. 야식은 드실 거예요? 요즘 새로운 요리를 배웠는데 드셔보실래요?”진서준이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요, 말로만으로도 고마워요.”고한영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그러면 내일 아침에 해드릴게요. 요리 솜씨가 많이 늘었으니까 먹을만할 거예요.”고한영의 열정에 진서준은 더는 거절 할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러면 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 먼저 일 보세요. 저는 이만 내려가 볼게요.”고한영은 기쁜 표정으로 1층으로 내려가 자신을 위한 저녁밥을 준비했다.진서준은 방으로 들어가 오늘 쇼핑몰에서 샀던 새로운 정장으로 갈아입었다.정장을 입은 진서준은 여느 때보다도 더욱 멀끔하고 잘생겨 보였다.고한영은 마침 계단에서 내려오는 진서준을 보게 된다.‘너무 잘생겼잖아!’진서준보다 두 살 많은 고한영은 헤벌쭉한 표정을 지었다.“서준 씨, 이렇게 멋있게 입고 데이트하러 가는 거예요?”고한영이 물었다.“아니요. 친구 도와주러 가는 거예요.”진서준이 급히 설명했다.허윤진의 형부로서 그녀와 데이트할 수는 없었다.“아, 그러면 조심해서 다녀오세요.”고한영이 웃으면서 말했다.“왜 조심해야 하죠?”진서준이 이해되지 않는지 물었다.“밖에 여우가 많거든요!”고한영이 입을 틀어막으면서 웃었다.“날이 어두워지면 여우가 많이 나타날 거예요.”고한영의 농담에 진서준은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다
그것도 모자라 잘생기기까지 했다.“죄송해요. 파트너 있습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기 바랍니다.”진서준은 예의 갖춰 인사했다.“괜찮아요. 파트너분이 힘들어하시면 저랑 바꾸셔도 돼요.”“이거 제 연락처니까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저녁에 드라이브하실 때 심심하면 연락해 주셔도 되고요!”몇몇 담 큰 여학생들은 자신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를 아예 진서준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진서준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서서히 학교 입구로 걸어갈 뿐이다.“형부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블랙 드레스를 입은 허윤진은 학교 입구에서 조마조마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 진서준의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설마 약속 시간을 어기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허윤진은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진서준을 보게 된다.허윤진은 그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다 비키세요!”허윤진이 다가와 소리쳤다.여학생들은 허윤진의 쌀쌀한 포스에 무의식적으로 길을 내주었다.진서준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쳐다보았다가 오늘 한껏 꾸민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블랙 드레스는 허윤진의 섹시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고 원래는 풀었던 머리마저도 포니테일로 꽉 묶여있었다.게다가 3센티미터 정도의 하이힐을 신어 키가 더 커 보였다.오늘의 허윤진은 마치 동화 속 공주와도 같았다.진서준은 이렇게 잘 꾸민 허윤진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허윤진은 그가 놀라는 것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꾸몄는데!’이렇게 꾸며도 진서준을 놀래킬 수가 없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어때요? 예뻐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예쁘네요.”진서준이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형부도 오늘 잘 꾸미셨네요. 창피할 일은 없겠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자신과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인 사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가시죠. 파티가 시
커플의 성지인 교내에서 혼자 걸어 다니는 학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허윤진은 그렇게 진서준의 팔짱을 낀 채 대강당으로 향했다.진서준은 대강당 내부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천 평 가까이 되는 크기에 센터에 있는 30cm짜리 계단에는 2천만 원짜리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서 마이크가 세워져 있었다.인테리어 역시 으리으리한 것이 5성급 호텔 못지않았다.“학교에 돈이 많은가 봐요.”모교 대강당과 비교해 보니 그곳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좋은 대학이라 많은 분이 기부를 해주셔서요.”허윤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긋하게 말했다.평소 말괄량이와 다름없는 허윤진이 갑자기 이러니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윤진 씨가 오늘 갑자기 왜 이러지?’“이따 댄스 한 곡만 추고 가도 되는 거죠?”진서준이 물었다.“왜 가지 못해서 안달이세요?”허윤진이 불쾌한 표정으로 째려보았다.“얼마만의 댄스파티인데요. 한 곡으로 되겠어요? 그리고, 남자친구인 척 저를 보호해 주려고 온 거 아니에요?”진서준은 멈칫하고 말았다.“춤만 추면 된다면서요? 왜 남자친구인 척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진서준이 당황해하자 허윤진은 더욱 화내면서 말했다.“왜요? 남자친구인 척 하는 게 싫어요?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제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인 줄 아세요?”파트너가 있는 남학생들은 힐끔힐끔 허윤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늘 정말 예뻤다.심지어 어떤 남학생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째려보기까지 했다.허윤진한테 당한 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잠시 후, 한 사회자가 대강당 센터에 나타나 인사했다.뒤이어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일부 남녀들은 손잡고 센터로 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저희도 가시죠.”허윤진 역시 진서준을 이끌고 센터로 향했다.“저 춤출 줄 몰라요.”두 날 전에 이미 했던 말이다.“괜찮아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우리 언니도 제가 가르쳐 드렸어요. 저희가 출 춤은 아주 간단한 왈츠예요. 배우기 쉬워요.”허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