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모자라 잘생기기까지 했다.“죄송해요. 파트너 있습니다. 잠시만 비켜주시기 바랍니다.”진서준은 예의 갖춰 인사했다.“괜찮아요. 파트너분이 힘들어하시면 저랑 바꾸셔도 돼요.”“이거 제 연락처니까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저녁에 드라이브하실 때 심심하면 연락해 주셔도 되고요!”몇몇 담 큰 여학생들은 자신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를 아예 진서준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진서준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 서서히 학교 입구로 걸어갈 뿐이다.“형부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블랙 드레스를 입은 허윤진은 학교 입구에서 조마조마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아직 진서준의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설마 약속 시간을 어기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허윤진은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진서준을 보게 된다.허윤진은 그가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다 비키세요!”허윤진이 다가와 소리쳤다.여학생들은 허윤진의 쌀쌀한 포스에 무의식적으로 길을 내주었다.진서준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쳐다보았다가 오늘 한껏 꾸민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블랙 드레스는 허윤진의 섹시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고 원래는 풀었던 머리마저도 포니테일로 꽉 묶여있었다.게다가 3센티미터 정도의 하이힐을 신어 키가 더 커 보였다.오늘의 허윤진은 마치 동화 속 공주와도 같았다.진서준은 이렇게 잘 꾸민 허윤진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허윤진은 그가 놀라는 것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꾸몄는데!’이렇게 꾸며도 진서준을 놀래킬 수가 없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어때요? 예뻐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었다.“예쁘네요.”진서준이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형부도 오늘 잘 꾸미셨네요. 창피할 일은 없겠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자신과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인 사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가시죠. 파티가 시
커플의 성지인 교내에서 혼자 걸어 다니는 학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허윤진은 그렇게 진서준의 팔짱을 낀 채 대강당으로 향했다.진서준은 대강당 내부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천 평 가까이 되는 크기에 센터에 있는 30cm짜리 계단에는 2천만 원짜리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서 마이크가 세워져 있었다.인테리어 역시 으리으리한 것이 5성급 호텔 못지않았다.“학교에 돈이 많은가 봐요.”모교 대강당과 비교해 보니 그곳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좋은 대학이라 많은 분이 기부를 해주셔서요.”허윤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긋하게 말했다.평소 말괄량이와 다름없는 허윤진이 갑자기 이러니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윤진 씨가 오늘 갑자기 왜 이러지?’“이따 댄스 한 곡만 추고 가도 되는 거죠?”진서준이 물었다.“왜 가지 못해서 안달이세요?”허윤진이 불쾌한 표정으로 째려보았다.“얼마만의 댄스파티인데요. 한 곡으로 되겠어요? 그리고, 남자친구인 척 저를 보호해 주려고 온 거 아니에요?”진서준은 멈칫하고 말았다.“춤만 추면 된다면서요? 왜 남자친구인 척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진서준이 당황해하자 허윤진은 더욱 화내면서 말했다.“왜요? 남자친구인 척 하는 게 싫어요?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제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인 줄 아세요?”파트너가 있는 남학생들은 힐끔힐끔 허윤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늘 정말 예뻤다.심지어 어떤 남학생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째려보기까지 했다.허윤진한테 당한 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잠시 후, 한 사회자가 대강당 센터에 나타나 인사했다.뒤이어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일부 남녀들은 손잡고 센터로 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저희도 가시죠.”허윤진 역시 진서준을 이끌고 센터로 향했다.“저 춤출 줄 몰라요.”두 날 전에 이미 했던 말이다.“괜찮아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우리 언니도 제가 가르쳐 드렸어요. 저희가 출 춤은 아주 간단한 왈츠예요. 배우기 쉬워요.”허윤
허윤진은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했다.“제 발을 보세요. 제가 앞으로 가면 뒤로 가주시고, 제가 뒤로 가면 앞으로 다가와 주세요.”“그래요.”습득력이 빠른 진서준은 1분도 지나지 않아 가장 기본적인 왈츠를 섭렵하게 되었다.허윤진도 부끄러워하던 것이 점차 평정심을 되찾았다.“다른 곳 말고 제 눈을 바라보세요.”허윤진은 진서준이 자꾸 시선을 피하자 일부러 말했다.진서준은 둘 사이가 어색해질까 봐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비록 춤 때문에 붙어있긴 하지만 눈까지 마주쳤다간 허사연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빨리요!”허윤진은 그가 그래도 눈을 마주치지 않자 그의 허리를 꽉 꼬집었다.진서준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허윤진의 두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눈이 마주친 순간, 허윤진의 얼굴은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진서준 역시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장생결을 수련했다지만 사람인지라 허윤진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보니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음악이 멈추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저희 이만 돌아갈까요?”진서준이 말했다.“사연 씨가 오늘 우리 집에서 밥 먹기로 했는데 파티가 끝나면 같이 오라고 했거든요.”허윤진은 허사연이 진서준의 집에서 밥 먹기로 했다는 말에 경계심을 품었다.“한 곡 더 추고 가시죠!”허윤진이 말했다.“그래요.”진서준은 허윤진의 성격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린 결정은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만약 춤을 한 곡 더 추지 않으면 자신을 평생 미워할지도 모른다.“잠깐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허윤진은 화장실로 종종 걸어갔다.진서준이 이 틈을 타 물이나 한잔 마시려고 했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잠깐 보시죠!”진서준은 누군지 뒤돌아보게 된다.2미터 가까이 되는 웅장한 체격에 근육이 빵빵해서 입고있는 흰색 정장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진서준은 상대방이 시비 걸러 온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허윤진
덩치 큰 자의 이름은 임표였다. 그의 옆에는 7, 8명의 2미터 가까이 되는 남학생들이 함께했다.이들은 학교 농구팀 멤버로서 덩치가 일반사람보다 컸다.다른 학교 농구팀과 경기했을 때 시비가 붙어 상대방 선수들을 20 몇 명이나 때려눕힌 적이 있다.임표가 조규범의 귓가에 속삭였다.“조 도련님, 이놈 심상치 않습니다.”“왜 겁먹은 거야? 너희 8명이 쟤 하나 해결 못 해?”조규범은 임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가 보기엔 진서준이 아무리 무술을 배웠다고 해도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리 하나 부러뜨리면 오늘 클럽 쏠게!”조규범이 시원하게 말했다.이 말에 농구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눈이 반짝거렸다.한창 피가 들끓는 나이라 클럽에서 술 마시고 여자 만나는 것이 좋았다.이런 유혹으로 꾀면 안 넘어올 자가 없었다.농구팀 리더인 임표가 명령하기도 전에 이들은 진서준을 포위했다.“이봐. 가만히 다리를 내놓으면 고통받지 않게 해줄게!”진서준은 이들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지금 꺼지면 없었던 일로 해줄게. 아니면 뒷감당하지도 못할 거야...”그는 대학생을 상대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그래도 눈치 없이 계속 달려든다면 혼쭐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뒷감당하지 못해? 허세는. 설마 혼자서 우리 8명을 때려눕히기라도 하겠다는 거야?”그중 한 선수가 진서준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키를 보든 체중을 보든 진서준이 열세였다.더군다나 일손도 많아 진서준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때 한 선수가 먼저 1m 20cm 가까이 되는 긴 다리를 뻗어 진서준의 배를 걷어차려고 했다.이대로 맞았다간 일반사람이라면 전치 2주를 받았을 수도 있다.진서준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상대방은 진서준에게 닿기도 전에 발에 걷어차여 십 미터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이 모습에 조규범 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진서준이 무술을 배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방에 2백 근 가까이 되는
“오면 어쩔 건데?”진서준은 심지어 발걸음을 더 빨리 움직여 조규범 앞에 나타나 그의 목을 졸랐다.“으윽...”조규범은 얼굴이 빨개진 채 숨 쉬어 보려고 힘껏 발버둥 쳤다.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진서준 앞에서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였다.“서준 씨, 그만 하세요!”대강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허윤진이 갑자기 달려왔다.진서준은 살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조규범을 쓰레기 취급하듯이 한쪽으로 내팽개쳤다.바닥에 버려진 조규범은 오장육부가 찢기는 듯이 아파져 와 비명을 질렀다.허윤진 역시 그를 보고선 발로 한 매 걷어찼다.워낙 앞이 뾰족한 하이힐이라 조규범은 아파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허윤진은 진서준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진서준이 피식 웃으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농구부 선수들을 가리켰다.“제가 쟤들처럼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겠어요.”진서준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허윤진은 뒤돌아 조규범을 향해 소리쳤다.“조규범, 내가 어제 말했지? 나한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그리고 내 남자친구한테 손대지도 마. 왜 말을 안 들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허윤진은 전에는 그래도 조규범의 체면을 지켜주었다면 오늘에 한 짓을 봐서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조규범은 아무 말 없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과 허윤진을 쳐다보면서 속으로는 꼭 복수하리라 마음먹었다.어릴때부터 그는 이렇게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없었다.진서준과 허윤진에게 복수하지 않고서는 고개를 쳐들고 살 수가 없었다.진서준은 조규범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는 다가가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복수할 거면 언제든지 환영해. 그런데 한 가지만은 기억해. 윤진 씨한테는 손대지 마. 아무리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똑같이 죽여버릴 거니까!”이 말을 들은 허윤진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게 된다.이 순간만큼은 언니의 남자를 빼앗아 자기 남자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조규범이 대답하지 않자 진서준은 그
조규범의 아버지는 아들이 머리가 밟혔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애지중지 키운 외동아들을 짐승처럼 대했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내일 바로 사람을 보낼게.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 봐.”조규범은 전화를 끊자마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미 마음속으로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계획한 모양이었다.진서준이 보는 앞에서 허윤진의 몸에 손대고, 또 허윤진이 보는 앞에서 진서준을 갈가리 찢어놓으려고 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대강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가버렸다.방금 있었던 일로 춤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죄송해요. 저는 조규범이 그런 놈일 줄 몰랐어요.”차에 올라탄 허윤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진서준은 그녀의 사과가 적응되지 않았지만 웃으면서 말했다.“괜찮아요. 마음에 두지도 않았는데요, 뭘.”“그런데 조규범은 전라도 3대 가문의 사람이라 분명 사람을 보낼 거란 말이에요.”허윤진이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말했다.허씨 가문은 아무리 서울에서 손꼽히는 가문이라지만 전라도 3대 가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농담을 쳤다.“잊었어요? 저는 남주에서 이름난 진서준이라고요!”만월호 사건으로 진서준은 남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도 3대 가문도 이 소식을 듣고 그와 손을 잡고 싶어 했다.실례가 갈까 봐 직접 만나러 오지 않고 몰래 사람을 보내 진서준의 신분을 조사했다.조사가 끝나고, 진서준같이 실력이 강한 사람이 왜 감옥에 갔는지 의아했다.“그런데 혼자잖아요. 한 가문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요?”허윤진은 여전히 진서준이 걱정되었다.“한 가문이면 뭐 어때서요? 결국엔 티끌 모아 티끌인 거예요.”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억지 좀 부리지 마세요!”허윤진이 화난 듯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녀가 지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렇게 말했다.“조씨 가문이 대단하다는 걸 알아요. 만약 누가 찾아오면 숨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겠어요?”
허사연은 허윤진이 말한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진서준은 어차피 들킬 바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어떤 남자가 처제한테 치근덕거려서 내가 손 좀 봐주고 왔어요.”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둘이 몰래 나쁜 짓을 한 줄 알았던 것이다.“그래요? 난 또...”진서준이 웃으면서 질문했다.“무슨 생각을 했던 거예요?”허사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팔을 꼬집었다.“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요.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요. 집에서 온종일 기다렸잖아요.”허사연이 이곳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진서준은 기쁘기만 했다.“그래요. 먼저 옷부터 갈아입고 올게요.”이 별장에도 진서준의 방이 있었다. 진서준은 냉큼 방으로 들어가 정장을 벗었다.진서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입고있는 허윤진을 보면서 말했다.“윤진 씨도 얼른 옷 갈아입으세요. 식사하기 불편하겠어요.”“그런데 갈아입을 옷이 없네요...”허윤진이 뻘쭘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제 옷 입으면 돼요. 옷장에 새로 산 옷들이 많거든요.”그날 진서준이 사준 옷들을 아직 입어보지도 못했다.“그래요. 고마워요.”허윤진은 진서라 따라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모두 식탁 앞에 모이자, 유정과 진서라가 주방에서 요리를 꺼내왔다.진서진은 조희선을 가장 상석에 앉혔다.조희선은 밥상 앞에 모인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진서진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 오직 진서라와 둘뿐이었다.심지어 진서라가 일 때문에 바쁠 때는 혼자 밥 먹을 때도 있었다.“엄마, 왜 그래요?”이상함을 감지한 진서준이 물었다.“아니야. 그냥 기뻐서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게 얼마 만이야. 네가 감옥에 갔을 때 맨날 네가 배를 곯지 않을까, 잠은 잘 자고 있을까 걱정했거든. 다리만 부러지지 않았다면 매주 보러 가는 건데...”옛 생각에 조희선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엄마, 이미 지나간 일은 잊으세요. 같이 밥 먹는 날이 오늘만이겠
조희선은 아주 즐겁게 식사를 했다.아들은 사업이 성공했고 현모양처 같은 여자 친구도 있었다.지금 유일하게 마음 놓이지 않는 것이 바로 진서라였다.진서라는 지금까지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기에 조희선은 진서라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줄로 알았다.조희선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라와 단둘이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그렇게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식사가 끝났다.“서준아, 사연이랑 윤진이 집으로 데려다주도록 해.”조희선이 진서준에게 말했다.10시 넘는 시각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밤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이다.그러나 조희선은 아주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진서준이 운전하는 와중에 또 위험이 생길까 봐 걱정됐다.“알겠어요. 그러면 설거지는 서라에게 맡겨야겠어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별장을 나섰다. 허윤진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차에 오른 뒤 허사연은 기지개를 켜더니 고개를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서준 시, 나 오늘 꽤 잘했지?”조금 전 밥을 먹을 때 허사연은 계속 저희선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줬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허사연을 조희선의 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꽤 괜찮은 정도가 아니던데요. 우리 엄마 당장 사연 씨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허사연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그녀는 진작에 진서준과 결혼하고 싶었다. 비록 겉으로는 연적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꽤 있었다.그중 한 명이 김연아였다.김연아는 집안이 허사연보다 못하긴 하지만 몸매와 외모는 허사연과 엇비슷했다.“그러면 우리 아빠한테 결혼 얘기 꺼내봐요. 아빠가 동의한다면 저도 좋아요.”허사연은 술을 조금 마셔서 배짱이 커졌다.평소였다면 그녀는 절대 이런 말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결혼은 연애와 전혀 달랐다.양가 어른들은 반드시 한 번 만나야 했고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 했다.그러나 진서준은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