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의 성지인 교내에서 혼자 걸어 다니는 학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허윤진은 그렇게 진서준의 팔짱을 낀 채 대강당으로 향했다.진서준은 대강당 내부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천 평 가까이 되는 크기에 센터에 있는 30cm짜리 계단에는 2천만 원짜리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서 마이크가 세워져 있었다.인테리어 역시 으리으리한 것이 5성급 호텔 못지않았다.“학교에 돈이 많은가 봐요.”모교 대강당과 비교해 보니 그곳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좋은 대학이라 많은 분이 기부를 해주셔서요.”허윤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나긋하게 말했다.평소 말괄량이와 다름없는 허윤진이 갑자기 이러니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윤진 씨가 오늘 갑자기 왜 이러지?’“이따 댄스 한 곡만 추고 가도 되는 거죠?”진서준이 물었다.“왜 가지 못해서 안달이세요?”허윤진이 불쾌한 표정으로 째려보았다.“얼마만의 댄스파티인데요. 한 곡으로 되겠어요? 그리고, 남자친구인 척 저를 보호해 주려고 온 거 아니에요?”진서준은 멈칫하고 말았다.“춤만 추면 된다면서요? 왜 남자친구인 척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진서준이 당황해하자 허윤진은 더욱 화내면서 말했다.“왜요? 남자친구인 척 하는 게 싫어요?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제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안달인 줄 아세요?”파트너가 있는 남학생들은 힐끔힐끔 허윤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늘 정말 예뻤다.심지어 어떤 남학생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째려보기까지 했다.허윤진한테 당한 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잠시 후, 한 사회자가 대강당 센터에 나타나 인사했다.뒤이어 음악이 울려 퍼지고, 불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일부 남녀들은 손잡고 센터로 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저희도 가시죠.”허윤진 역시 진서준을 이끌고 센터로 향했다.“저 춤출 줄 몰라요.”두 날 전에 이미 했던 말이다.“괜찮아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우리 언니도 제가 가르쳐 드렸어요. 저희가 출 춤은 아주 간단한 왈츠예요. 배우기 쉬워요.”허윤
허윤진은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했다.“제 발을 보세요. 제가 앞으로 가면 뒤로 가주시고, 제가 뒤로 가면 앞으로 다가와 주세요.”“그래요.”습득력이 빠른 진서준은 1분도 지나지 않아 가장 기본적인 왈츠를 섭렵하게 되었다.허윤진도 부끄러워하던 것이 점차 평정심을 되찾았다.“다른 곳 말고 제 눈을 바라보세요.”허윤진은 진서준이 자꾸 시선을 피하자 일부러 말했다.진서준은 둘 사이가 어색해질까 봐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비록 춤 때문에 붙어있긴 하지만 눈까지 마주쳤다간 허사연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빨리요!”허윤진은 그가 그래도 눈을 마주치지 않자 그의 허리를 꽉 꼬집었다.진서준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허윤진의 두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눈이 마주친 순간, 허윤진의 얼굴은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진서준 역시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장생결을 수련했다지만 사람인지라 허윤진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보니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음악이 멈추자마자 두 사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저희 이만 돌아갈까요?”진서준이 말했다.“사연 씨가 오늘 우리 집에서 밥 먹기로 했는데 파티가 끝나면 같이 오라고 했거든요.”허윤진은 허사연이 진서준의 집에서 밥 먹기로 했다는 말에 경계심을 품었다.“한 곡 더 추고 가시죠!”허윤진이 말했다.“그래요.”진서준은 허윤진의 성격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린 결정은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만약 춤을 한 곡 더 추지 않으면 자신을 평생 미워할지도 모른다.“잠깐만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허윤진은 화장실로 종종 걸어갔다.진서준이 이 틈을 타 물이나 한잔 마시려고 했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잠깐 보시죠!”진서준은 누군지 뒤돌아보게 된다.2미터 가까이 되는 웅장한 체격에 근육이 빵빵해서 입고있는 흰색 정장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진서준은 상대방이 시비 걸러 온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허윤진
덩치 큰 자의 이름은 임표였다. 그의 옆에는 7, 8명의 2미터 가까이 되는 남학생들이 함께했다.이들은 학교 농구팀 멤버로서 덩치가 일반사람보다 컸다.다른 학교 농구팀과 경기했을 때 시비가 붙어 상대방 선수들을 20 몇 명이나 때려눕힌 적이 있다.임표가 조규범의 귓가에 속삭였다.“조 도련님, 이놈 심상치 않습니다.”“왜 겁먹은 거야? 너희 8명이 쟤 하나 해결 못 해?”조규범은 임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가 보기엔 진서준이 아무리 무술을 배웠다고 해도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다리 하나 부러뜨리면 오늘 클럽 쏠게!”조규범이 시원하게 말했다.이 말에 농구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눈이 반짝거렸다.한창 피가 들끓는 나이라 클럽에서 술 마시고 여자 만나는 것이 좋았다.이런 유혹으로 꾀면 안 넘어올 자가 없었다.농구팀 리더인 임표가 명령하기도 전에 이들은 진서준을 포위했다.“이봐. 가만히 다리를 내놓으면 고통받지 않게 해줄게!”진서준은 이들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지금 꺼지면 없었던 일로 해줄게. 아니면 뒷감당하지도 못할 거야...”그는 대학생을 상대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그래도 눈치 없이 계속 달려든다면 혼쭐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뒷감당하지 못해? 허세는. 설마 혼자서 우리 8명을 때려눕히기라도 하겠다는 거야?”그중 한 선수가 진서준을 가소롭게 쳐다보았다.키를 보든 체중을 보든 진서준이 열세였다.더군다나 일손도 많아 진서준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이때 한 선수가 먼저 1m 20cm 가까이 되는 긴 다리를 뻗어 진서준의 배를 걷어차려고 했다.이대로 맞았다간 일반사람이라면 전치 2주를 받았을 수도 있다.진서준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상대방은 진서준에게 닿기도 전에 발에 걷어차여 십 미터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이 모습에 조규범 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진서준이 무술을 배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방에 2백 근 가까이 되는
“오면 어쩔 건데?”진서준은 심지어 발걸음을 더 빨리 움직여 조규범 앞에 나타나 그의 목을 졸랐다.“으윽...”조규범은 얼굴이 빨개진 채 숨 쉬어 보려고 힘껏 발버둥 쳤다.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는 진서준 앞에서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였다.“서준 씨, 그만 하세요!”대강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허윤진이 갑자기 달려왔다.진서준은 살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조규범을 쓰레기 취급하듯이 한쪽으로 내팽개쳤다.바닥에 버려진 조규범은 오장육부가 찢기는 듯이 아파져 와 비명을 질렀다.허윤진 역시 그를 보고선 발로 한 매 걷어찼다.워낙 앞이 뾰족한 하이힐이라 조규범은 아파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허윤진은 진서준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요?”진서준이 피식 웃으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농구부 선수들을 가리켰다.“제가 쟤들처럼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겠어요.”진서준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허윤진은 뒤돌아 조규범을 향해 소리쳤다.“조규범, 내가 어제 말했지? 나한테 치근덕거리지 말라고. 그리고 내 남자친구한테 손대지도 마. 왜 말을 안 들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허윤진은 전에는 그래도 조규범의 체면을 지켜주었다면 오늘에 한 짓을 봐서는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조규범은 아무 말 없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과 허윤진을 쳐다보면서 속으로는 꼭 복수하리라 마음먹었다.어릴때부터 그는 이렇게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없었다.진서준과 허윤진에게 복수하지 않고서는 고개를 쳐들고 살 수가 없었다.진서준은 조규범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는 다가가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복수할 거면 언제든지 환영해. 그런데 한 가지만은 기억해. 윤진 씨한테는 손대지 마. 아무리 네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똑같이 죽여버릴 거니까!”이 말을 들은 허윤진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게 된다.이 순간만큼은 언니의 남자를 빼앗아 자기 남자로 만들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조규범이 대답하지 않자 진서준은 그
조규범의 아버지는 아들이 머리가 밟혔다는 사실을 듣고 화가 치밀었다.애지중지 키운 외동아들을 짐승처럼 대했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내일 바로 사람을 보낼게.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 봐.”조규범은 전화를 끊자마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이미 마음속으로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계획한 모양이었다.진서준이 보는 앞에서 허윤진의 몸에 손대고, 또 허윤진이 보는 앞에서 진서준을 갈가리 찢어놓으려고 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대강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학교 밖으로 나가버렸다.방금 있었던 일로 춤에 흥미를 잃은 것이다.“죄송해요. 저는 조규범이 그런 놈일 줄 몰랐어요.”차에 올라탄 허윤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진서준은 그녀의 사과가 적응되지 않았지만 웃으면서 말했다.“괜찮아요. 마음에 두지도 않았는데요, 뭘.”“그런데 조규범은 전라도 3대 가문의 사람이라 분명 사람을 보낼 거란 말이에요.”허윤진이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말했다.허씨 가문은 아무리 서울에서 손꼽히는 가문이라지만 전라도 3대 가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농담을 쳤다.“잊었어요? 저는 남주에서 이름난 진서준이라고요!”만월호 사건으로 진서준은 남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도 3대 가문도 이 소식을 듣고 그와 손을 잡고 싶어 했다.실례가 갈까 봐 직접 만나러 오지 않고 몰래 사람을 보내 진서준의 신분을 조사했다.조사가 끝나고, 진서준같이 실력이 강한 사람이 왜 감옥에 갔는지 의아했다.“그런데 혼자잖아요. 한 가문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요?”허윤진은 여전히 진서준이 걱정되었다.“한 가문이면 뭐 어때서요? 결국엔 티끌 모아 티끌인 거예요.”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했다.“억지 좀 부리지 마세요!”허윤진이 화난 듯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녀가 지금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렇게 말했다.“조씨 가문이 대단하다는 걸 알아요. 만약 누가 찾아오면 숨어버리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겠어요?”
허사연은 허윤진이 말한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진서준은 어차피 들킬 바에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어떤 남자가 처제한테 치근덕거려서 내가 손 좀 봐주고 왔어요.”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둘이 몰래 나쁜 짓을 한 줄 알았던 것이다.“그래요? 난 또...”진서준이 웃으면서 질문했다.“무슨 생각을 했던 거예요?”허사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팔을 꼬집었다.“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요.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요. 집에서 온종일 기다렸잖아요.”허사연이 이곳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진서준은 기쁘기만 했다.“그래요. 먼저 옷부터 갈아입고 올게요.”이 별장에도 진서준의 방이 있었다. 진서준은 냉큼 방으로 들어가 정장을 벗었다.진서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입고있는 허윤진을 보면서 말했다.“윤진 씨도 얼른 옷 갈아입으세요. 식사하기 불편하겠어요.”“그런데 갈아입을 옷이 없네요...”허윤진이 뻘쭘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제 옷 입으면 돼요. 옷장에 새로 산 옷들이 많거든요.”그날 진서준이 사준 옷들을 아직 입어보지도 못했다.“그래요. 고마워요.”허윤진은 진서라 따라 방으로 들어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모두 식탁 앞에 모이자, 유정과 진서라가 주방에서 요리를 꺼내왔다.진서진은 조희선을 가장 상석에 앉혔다.조희선은 밥상 앞에 모인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진서진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을 때, 오직 진서라와 둘뿐이었다.심지어 진서라가 일 때문에 바쁠 때는 혼자 밥 먹을 때도 있었다.“엄마, 왜 그래요?”이상함을 감지한 진서준이 물었다.“아니야. 그냥 기뻐서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게 얼마 만이야. 네가 감옥에 갔을 때 맨날 네가 배를 곯지 않을까, 잠은 잘 자고 있을까 걱정했거든. 다리만 부러지지 않았다면 매주 보러 가는 건데...”옛 생각에 조희선의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엄마, 이미 지나간 일은 잊으세요. 같이 밥 먹는 날이 오늘만이겠
조희선은 아주 즐겁게 식사를 했다.아들은 사업이 성공했고 현모양처 같은 여자 친구도 있었다.지금 유일하게 마음 놓이지 않는 것이 바로 진서라였다.진서라는 지금까지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기에 조희선은 진서라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줄로 알았다.조희선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라와 단둘이 얘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그렇게 저녁 열 시가 되어서야 식사가 끝났다.“서준아, 사연이랑 윤진이 집으로 데려다주도록 해.”조희선이 진서준에게 말했다.10시 넘는 시각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밤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이다.그러나 조희선은 아주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진서준이 운전하는 와중에 또 위험이 생길까 봐 걱정됐다.“알겠어요. 그러면 설거지는 서라에게 맡겨야겠어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그녀와 함께 별장을 나섰다. 허윤진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차에 오른 뒤 허사연은 기지개를 켜더니 고개를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서준 시, 나 오늘 꽤 잘했지?”조금 전 밥을 먹을 때 허사연은 계속 저희선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줬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허사연을 조희선의 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꽤 괜찮은 정도가 아니던데요. 우리 엄마 당장 사연 씨를 며느리로 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허사연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올랐다.그녀는 진작에 진서준과 결혼하고 싶었다. 비록 겉으로는 연적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꽤 있었다.그중 한 명이 김연아였다.김연아는 집안이 허사연보다 못하긴 하지만 몸매와 외모는 허사연과 엇비슷했다.“그러면 우리 아빠한테 결혼 얘기 꺼내봐요. 아빠가 동의한다면 저도 좋아요.”허사연은 술을 조금 마셔서 배짱이 커졌다.평소였다면 그녀는 절대 이런 말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결혼은 연애와 전혀 달랐다.양가 어른들은 반드시 한 번 만나야 했고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눠봐야 했다.그러나 진서준은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몰라요. 어쨌든 만족스럽지 않아요.”허윤진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겼다.억지를 부리는 허윤진을 상대로 허사연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다.그러나 아직 결혼 얘기를 꺼내기는 일렀다.이내 차는 허씨 일가 별장 앞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릴 때 허사연은 몰래 진서준에게 뽀뽀한 뒤 미련 가득한 얼굴로 떠났다.진서준의 집, 유정 등은 설거지를 마친 뒤 떠났고 조희선과 진서라만이 남았다.“서라야, 여기 와봐.”조희선이 진서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왜요, 엄마?”진서라는 조희선의 앞으로 다가가서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보았다.“서라야, 너도 이제 어리지 않아. 남자 친구 사귀어야지.”조희선은 진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희선이 갑자기 연애 얘기를 꺼내자 진서라는 조금 짜증이 났다.“엄마, 저 아직 어려요!”“안 어려. 벌써 23살이잖아. 엄마는 네 나이 때 서준이를 낳았어!”조희선은 진지한 얼굴로 진서라를 바라보았다.“엄마한테 얘기해 봐. 지금 마음에 둔 남자 있어?”질문을 들은 진서라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비록 등이 넓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를 대신해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었다.경험이 있는 조희선은 단번에 진서라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엄마한테 얘기해 봐. 누구야?”조희선이 작게 물었다.“엄마, 그만 물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진서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진서라가 말하려고 하지 않자 조희선은 한숨을 쉬었다.“됐다. 엄마도 강요할 생각은 없어. 내가 죽어도 네 오빠가 널 보살펴 줄 거야.”“퉤, 퉤, 퉤. 엄마, 자꾸 죽는다는 말 좀 하지 마세요.”진서라는 입을 비죽이며 짜증 난 듯 말했다.조희선은 이제 곧 50살이었기에 그렇게 늙지 않았다.이때 집으로 돌아온 진서준은 진서라와 조희선이 뭔가 얘기하고 있자 웃는 얼굴로 물었다.“무슨 얘기하는 거예요?”“아무것도 아냐. 오빠는 얼른 쉬어!”진서라는 말을 마친 뒤 곧바로 일어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