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환과 반재윤은 심해윤이 화를 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우성환은 곧바로 앞으로 나서면서 심해윤에게 말했다.“심해윤 씨, 화를 푸세요. 진 선생님 인품은 제가 장담합니다. 진 선생님은 절대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닙니다.”최문혁 조수는 그 말을 듣고 냉소했다.“그 말은 제가 거짓말했다는 건가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구경하던 그 사람이 우리의 수술을 방해했다는 걸 증언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자꾸만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환자를 치료했을 겁니다.”수술하러 들어간 사람들은 전부 최문혁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그의 편을 들었다.다들 진서준이 문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반재윤 씨, 뭐 더 할 말 있어요?”심해윤은 반재윤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20대 청년을 데려와서 신의라고 하다니, 내가 바보 같아 보였나요? 오늘 제 남편의 죽음은 안에 있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당신도 책임져야 해요!”옆에 이던 공윤석은 그 말을 듣자 무척 기뻤다. 동시에 그는 자기 친구 최문혁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공윤석은 심해윤이 혹시라도 잘못을 따질까 봐 걱정했었는데 이제 심해윤의 이목은 전부 반재윤에로 향했다.반재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수술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그 사람은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최문혁은 곧바로 사람을 데리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최문혁 등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그들은 진서준이 은침을 들고 서정훈의 몸을 찌르는 걸 보았다.“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최문혁은 정신을 차린 뒤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더니 곧바로 부하에게 진서준을 끌어내라고 했다.그런데 진서준에게 가까워지자마자 다들 진서준의 영기에 부딪혀 날아갔다.밖에 있던 심해윤 등 사람들은 수술실에서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심해윤이 화가 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심해윤 씨, 저 사람이 지금 은침으로 죽은 부시장님의 몸
진서준의 가뿐한 두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반박할 용기조차 없었다.특히 최문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반평생 의사 노릇을 해왔지만 심장에 문제가 있는 데다 심장이 이미 박동을 멈춘 환자를 살려내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제일 놀라운 것은, 사람을 살린 것이 20대 초반의 청년이다.그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예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심해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방금까지 진서준을 잡아가라고 떠들었는데 결국 서정훈을 살린 사람이 진서준이었으니까!“진 신의님, 서 부시장님은 괜찮으신가요?”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반재윤이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이 30분 동안 반재윤은 자신의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의 최저점에서 지금 최고점에 도달했으니까!“괜찮습니다.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오십 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서정훈의 나이가 곧 50세인데, 사오십 년 더 산다면 100세까지 산다는 것이다.“심 처장님, 제가 진 선생님의 의술과 인품을 믿으라고 했잖아요.”반재윤의 말에 심해윤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진서준에게 다가갔다.“죄송합니다, 진 선생님. 아까는 너무 조급해서 그랬습니다. 저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 주십시오.”부시장의 부인인 심해윤이 진서준이라는 청년에게 직접 사과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진서준도 심해윤이 사람들 앞에서 사과할 만큼 패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아까 제가 사람을 구할 때 누군가가 저를 모함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방금 그에게 책임을 떠넘긴 최문혁의 조수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한 조수는 놀라서 덜덜 떨었다.“그게... 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조수는 거짓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문혁을 불고 말았다.“너 헛소리하지 마! 나는 그렇게 시킨 적이 없어.”최문혁이 난처한 나머지 얼굴이 벌게지며 화를 벌컥 냈다.
최문혁이 끌려간 후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간호사한테 환자가 반나절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하니 병실로 옮기라고 하세요.”우성환은 즉시 간호사를 불러 서정훈을 중환자실로 옮겼다.“진 선생님, 제 남편이 언제 깨어날 수 있어요?”심해윤이 진서준을 따라다니며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잠시 후면 깨어나실 겁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해서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진서준이 당부했다.그가 장청의 힘과 기사회생침으로 서정훈을 살려내긴 했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서 많은 휴식과 영양 보충이 필요하다.“네네, 진 선생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현재의 심해윤은 진서준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받아들였고,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심해윤이 초등학생처럼 진서준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공윤석은 앞길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현재로서는 자기 아들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놓아달라고 진서준에게 빌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공수철은 10년 이상 안에서 썩어야 할 것이다.아들이라고는 공수철 하나뿐인 공윤석은 그가 공씨 가문의 대를 잇기를 바라고 있다.“사람을 살려냈으니 별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진서준이 심해윤에게 말했다.“진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남편이 깨어나면 직접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심해윤은 진서준이 이렇게 빨리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서정훈에게 생명의 은인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지만 진서준이 떠난 후 서정훈에게 또 무슨 상황이 나타날까 봐 걱정됐다.“감사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진서준은 손을 내젓더니, 뒤이어 한마디 보탰다.“아드님이 여기저기서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잘 단속하기만 하면 됩니다.”진서준의 말에 심해윤은 깜짝 놀라며 급히 물었다.“그 망나니 자식이 진 선생님을 건드렸나요?”“어제 한 번 봤습니다.”진서준이 말끝을 흐렸지만, 심해윤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았다.“그 자식, 제가 지금 당장 전화해서 기어와 사과하라고 할게요.”화가 잔뜩 난 심해윤은 즉시 휴대폰을
얘기를 다 들은 후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진 심해윤은 오가는 의료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현욱을 발로 걷어찼다.평소에 자기를 애지중지하던 어머니가 자기를 발로 걷어찰 줄 몰랐던 서현욱은 순간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이놈 자식이 아빠가 요즘 편찮으신 줄 뻔히 알면서 계속 말썽을 피워!”심해윤은 때리고 욕하고, 마치 분노의 폭주 기관차 같았다.심해윤의 성격을 잘 아는 비서도 깜짝 놀랐다. 심해윤의 곁에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화내는 것은 처음 본다.그녀의 아들이었으니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끝장났을 것이다.“어머니, 왜 때려요? 제가 아들이 맞긴 맞아요? 어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저였다고요.”서현욱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심해윤에게 발로 차이고 두들겨 맞고 했으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다면 열 번도 더 죽었을 거야!”심해윤은 치를 떨며 말했다.“그동안 네가 한 짓들은 모두 눈감아 줬지만, 진 선생님은 더 이상 건드리지 마.”“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너는 네 아빠를 다시 보지 못할 뻔했어.”심해윤의 말에 서현욱은 어리둥절했다.“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못 알아듣겠어요.”서현욱은 자기 나이 또래의 그 청년이 뭐가 무섭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오늘 아침 진서준이 네 아빠 목숨을 살렸어.”“말도 안 돼요. 스무 살 남짓한 애송이가 어떻게 아빠를 살릴 수 있어요?”서현욱은 생각도 안 하고 직접 반박했다.진서준의 나이는 서현욱과 비슷했다. 서현욱은 자기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이 진짜 실력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서현욱의 친구들도 모두 20대지만 거의 다 먹고 마시고 놀 줄만 아는 부잣집 자제들이기 때문이다.진서준같이 젊고 유능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서현욱은 아예 믿지 않았다.“내가 직접 봤는데, 거짓말이겠니?”심해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말 명심해. 다시는 진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만나면
서현욱은 코웃음을 쳤다.“나한테 대도시 친구가 없는 줄 알아요?”“그럼, 도련님께서 누굴 찾으실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요?”강성철이 또 한 마디 물었다.“고양시에 사는 강은우라고 들어보셨어요?”서현욱이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고양시는 도청 소재지로, 규모가 대단히 큰 도시다.강은우는 얼마 전 진서준에게 혼나고 기가 죽어 서울시를 떠난 사람이다.강성철은 강은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당연히 들어봤죠. 근데 강은우는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강성철이 궁금해하며 물었다.고양시가 본진인 강은우는 서현욱과 교집합이 있을 수 없다.“그의 아들 강백산이 내 동창인데, 내 한마디면 그 자식은 물불을 안 가려요.”서현욱이 허풍을 떨었다.어쨌든 그와 강백산의 관계가 실제로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럼, 도련님의 성공을 빕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염탐이 끝났으니 강성철은 서현욱과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할 생각이 없었다.“쳇, 잘난 척은. 내가 경찰서에 들어가면 당신부터 잡을 거야.”서현욱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주소록을 열어 연적이라고 표시된 번호를 찾은 후 전화를 걸었다.사실 서현욱과 강백산은 연적의 관계였다.대학 시절 서현욱과 강백산은 모두 허사연을 쫓아다녔지만 허사연은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강백산이 졸업한 후, 그의 아버지 강은우는 그의 신변을 걱정하여 무조건 고양시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지금 심해윤이 진서준을 보호하고 있으니 서현욱은 진서준을 혼내는 데에 감히 부모의 공직을 이용하지 못한다.“얼씨구, 서현욱 도련님 아니신가? 어쩐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강백산은 전화를 받자마자 빈정거렸다.“잔말 말고, 나랑 함께 누군가를 혼내지 않을래?”강백산과 입씨름할 기분이 아닌 서현욱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나랑 손잡는다고? 어디 보자.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전화기 저편의 강백산도 놀랐다.두 사람은 대학교에서 4년 동안 싸웠지만 서로 승복한 적이 없다.그
“진서준, 네가 왜 여기 있어?”그녀는 놀라움에 약간의 경멸과 무시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마치 진서준은 이 쇼핑몰에 나타나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체면을 깎지 않으려고 특별히 국제 유명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여기 옷들은 모두 명품이라 코트를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가격이 수백만원대다.이 가격이 일반인에게는 영락없는 사치품이고, 과거의 진서준에게도 근처도 못 갈 물건들이었다.고개를 돌린 진서준은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잠시 멍해 있었다.그가 아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친척이었기 때문이다.여인의 이름은 정란, 진서준의 둘째 이모 딸이다. 촌수를 따지면 그의 외사촌 여동생일 것이다.놀라긴 했지만 진서준은 이 둘째 이모에게 아무런 호감도 없다.둘째 이모는 조희선과 친자매였지만 조희선 일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한 번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 정도로 낯선 사람보다 더 냉혹했다.“란아, 이분은 누구야?”정란 곁에 있던 청년이 웃으며 물었다.“우리 큰이모 아들이에요. 감옥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나온 줄 몰랐네요.”정란이 웃으며 설명했다.감옥 갔었다는 소리에 청년의 눈빛도 호기심과 경멸로 바뀌었다.“진서준, 나왔으면 취직해서 새출발해.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 말고.”정란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잘난 체했다.진서준은 뼛속까지 우월감으로 뭉친 정란의 모습이 역겨웠다.“너랑 상관없어!”진서준이 쌀쌀맞게 말했다.“너 사람이 왜 그래?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 남의 호의도 몰라주고.”정란은 진서준이 반격하자 즉시 화를 냈다.“란아, 그만해. 요즘 젊은이들은 성격이 다 이래.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도 나쁘게 해석해서 듣지.”정란 곁에 있던 청년이 웃으며 그녀를 말렸다.이어서 청년은 진서준에게 자신을 소개했다.“저는 공민찬이라고 해요. 란이 남자친구이고 지금 인사처에서 근무하고 있어요.”인사처는 내부 부서 중 가장 핫한 부서로, 많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쓴다.공민찬은 나이가 진서준
오션호텔은 서울시의 오래된 5성급 호텔로, 허씨 가문이 기업주다.“알았어. 점심에 꼭 갈게.”진서준도 마침 자기 가족이 그들의 도움 없이도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그럼 여기서 부자들이 입는 옷을 구경하고 있어.”말을 마친 정란은 공민찬의 팔짱을 끼고 좀 저렴한 매장으로 향했다.공민찬은 인사처에 들어가긴 했지만 집에 돈이 많지 않아 명품 매장은 반년에 한 번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정란은 얼굴이 좀 반반한 것을 빼면 아무 실력도 없었고, 지금 60만 원 좀 넘는 월급을 받으면서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그녀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 고급 모조품 가방을 들고 다녔다.진서준은 신사복 코너에서 몇 벌을 고른 후 판매원에게 짙은 회색 양복을 가져오라고 했다.“고객님, 이 양복은 가격이 좀 비싼데, 다른 것도 좀 보실래요?”판매원은 진서준이 부자로 보이지 않아 친절하게 귀띔했다.“가격은 문제가 아니고, 맞으면 됩니다.”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네, 그럼 이쪽으로 와서 입어보세요.”판매원이 진서준을 탈의실로 안내했다.진서준은 값비싼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 더 멋있어졌다.판매원도 홀딱 빠진 듯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이 옷이 고객님의 얼굴이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립니다.”진서준은 거울을 본 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걸로 할게요.”평소에 진서준은 정장을 입기 싫어하고, 캐주얼하고 편안한 옷을 좋아한다.이런 정장을 입은 횟수는 손꼽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이 양복의 가격은 3,000만 원입니다. 카드로 하시겠습니까?”여자 판매원이 물었다.“카드로 할게요.”진서준이 은행카드를 꺼내 판매원에게 건넸다.“잠시만요.”잠시 후 여자 판매원이 카드와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고 끌리는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이렇게 돈이 많고 잘생긴 청년은 지금 이 사회에서 보기 드물다.그녀와 같은 여자 판매원은 돈 많은 남자를 하나만 꼬셔도 평생 돈 걱정 없을 것이다.“어머
자기 여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조희선은 너무 잘 알고 있다.진서준이 감옥에 있을 때, 조희선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조정연을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조정연은 그녀를 만나지도 않고 문전박대했다.조정연은 조희선과 친자매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심지어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친구보다도 못했다.정이 싹 떨어진 조희선은 부자가 된 지금도 조정연을 찾아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이제 와서 정란이 그들 일가를 가족 회식에 초대한 것은 틀림없이 이 기회를 빌려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다.“괜찮아요, 어머니. 어차피 그 집에서 초대하는 거니까 우리는 가서 먹기만 하면 돼요.”진서준이 허허 웃었다.“나는 참을 수 있는데, 걔들이 험한 말을 하면 네가 걔들과 싸울까 봐서 걱정이지.”조희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걔네와 싸우지 않을 것을 약속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진서준이 다짐하자, 옆에 있던 진서라도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엄마, 오빠가 절대 손을 쓰지 않을 거예요.”진서라와 조희선 앞에서 진서준은 웬만한 일은 참고 넘어갔다.하지만 상대방이 눈치 없이 진서라와 조희선에게 손을 대면 그는 절대 참을 수 없다.가족은 진서준에게 건드리면 안 되는 역린이다.아들과 딸이 그렇게 말하자 조희선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알았어. 너희 뜻대로 해.”거의 점심이 됐을 때 서정훈이 깨어났다.곁을 지키고 있던 심해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서정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여보, 드디어 깨어났군요.”서정훈은 여전히 허약했고, 종잇장처럼 창백하던 얼굴에 핏기가 조금 돌아왔다.“수술은 잘됐어?”그는 힘없이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그러자 심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진 선생님이 당신을 살렸어요.”서정훈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침에 최문혁 등 의료진을 만났을 때 그중 진씨 성을 가진 의사는 없었다.심해윤은 그가 듣고 화를 낼까 봐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진 선생님이 당신을 살렸다는 것만 알면 돼요.”말을 마친 심해윤은 즉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