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다 들은 후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진 심해윤은 오가는 의료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현욱을 발로 걷어찼다.평소에 자기를 애지중지하던 어머니가 자기를 발로 걷어찰 줄 몰랐던 서현욱은 순간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이놈 자식이 아빠가 요즘 편찮으신 줄 뻔히 알면서 계속 말썽을 피워!”심해윤은 때리고 욕하고, 마치 분노의 폭주 기관차 같았다.심해윤의 성격을 잘 아는 비서도 깜짝 놀랐다. 심해윤의 곁에 오래 있었지만 이렇게 화내는 것은 처음 본다.그녀의 아들이었으니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끝장났을 것이다.“어머니, 왜 때려요? 제가 아들이 맞긴 맞아요? 어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저였다고요.”서현욱도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심해윤에게 발로 차이고 두들겨 맞고 했으니,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네가 내 아들이 아니었다면 열 번도 더 죽었을 거야!”심해윤은 치를 떨며 말했다.“그동안 네가 한 짓들은 모두 눈감아 줬지만, 진 선생님은 더 이상 건드리지 마.”“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너는 네 아빠를 다시 보지 못할 뻔했어.”심해윤의 말에 서현욱은 어리둥절했다.“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못 알아듣겠어요.”서현욱은 자기 나이 또래의 그 청년이 뭐가 무섭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오늘 아침 진서준이 네 아빠 목숨을 살렸어.”“말도 안 돼요. 스무 살 남짓한 애송이가 어떻게 아빠를 살릴 수 있어요?”서현욱은 생각도 안 하고 직접 반박했다.진서준의 나이는 서현욱과 비슷했다. 서현욱은 자기와 같은 연령대의 사람이 진짜 실력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서현욱의 친구들도 모두 20대지만 거의 다 먹고 마시고 놀 줄만 아는 부잣집 자제들이기 때문이다.진서준같이 젊고 유능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서현욱은 아예 믿지 않았다.“내가 직접 봤는데, 거짓말이겠니?”심해윤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 말 명심해. 다시는 진 선생님을 귀찮게 하지 말고, 만나면
서현욱은 코웃음을 쳤다.“나한테 대도시 친구가 없는 줄 알아요?”“그럼, 도련님께서 누굴 찾으실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요?”강성철이 또 한 마디 물었다.“고양시에 사는 강은우라고 들어보셨어요?”서현욱이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고양시는 도청 소재지로, 규모가 대단히 큰 도시다.강은우는 얼마 전 진서준에게 혼나고 기가 죽어 서울시를 떠난 사람이다.강성철은 강은우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당연히 들어봤죠. 근데 강은우는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강성철이 궁금해하며 물었다.고양시가 본진인 강은우는 서현욱과 교집합이 있을 수 없다.“그의 아들 강백산이 내 동창인데, 내 한마디면 그 자식은 물불을 안 가려요.”서현욱이 허풍을 떨었다.어쨌든 그와 강백산의 관계가 실제로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럼, 도련님의 성공을 빕니다.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염탐이 끝났으니 강성철은 서현욱과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할 생각이 없었다.“쳇, 잘난 척은. 내가 경찰서에 들어가면 당신부터 잡을 거야.”서현욱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주소록을 열어 연적이라고 표시된 번호를 찾은 후 전화를 걸었다.사실 서현욱과 강백산은 연적의 관계였다.대학 시절 서현욱과 강백산은 모두 허사연을 쫓아다녔지만 허사연은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강백산이 졸업한 후, 그의 아버지 강은우는 그의 신변을 걱정하여 무조건 고양시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지금 심해윤이 진서준을 보호하고 있으니 서현욱은 진서준을 혼내는 데에 감히 부모의 공직을 이용하지 못한다.“얼씨구, 서현욱 도련님 아니신가? 어쩐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하고?”강백산은 전화를 받자마자 빈정거렸다.“잔말 말고, 나랑 함께 누군가를 혼내지 않을래?”강백산과 입씨름할 기분이 아닌 서현욱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나랑 손잡는다고? 어디 보자.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전화기 저편의 강백산도 놀랐다.두 사람은 대학교에서 4년 동안 싸웠지만 서로 승복한 적이 없다.그
“진서준, 네가 왜 여기 있어?”그녀는 놀라움에 약간의 경멸과 무시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마치 진서준은 이 쇼핑몰에 나타나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체면을 깎지 않으려고 특별히 국제 유명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여기 옷들은 모두 명품이라 코트를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가격이 수백만원대다.이 가격이 일반인에게는 영락없는 사치품이고, 과거의 진서준에게도 근처도 못 갈 물건들이었다.고개를 돌린 진서준은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잠시 멍해 있었다.그가 아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친척이었기 때문이다.여인의 이름은 정란, 진서준의 둘째 이모 딸이다. 촌수를 따지면 그의 외사촌 여동생일 것이다.놀라긴 했지만 진서준은 이 둘째 이모에게 아무런 호감도 없다.둘째 이모는 조희선과 친자매였지만 조희선 일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한 번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 정도로 낯선 사람보다 더 냉혹했다.“란아, 이분은 누구야?”정란 곁에 있던 청년이 웃으며 물었다.“우리 큰이모 아들이에요. 감옥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나온 줄 몰랐네요.”정란이 웃으며 설명했다.감옥 갔었다는 소리에 청년의 눈빛도 호기심과 경멸로 바뀌었다.“진서준, 나왔으면 취직해서 새출발해.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지 말고.”정란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잘난 체했다.진서준은 뼛속까지 우월감으로 뭉친 정란의 모습이 역겨웠다.“너랑 상관없어!”진서준이 쌀쌀맞게 말했다.“너 사람이 왜 그래?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 남의 호의도 몰라주고.”정란은 진서준이 반격하자 즉시 화를 냈다.“란아, 그만해. 요즘 젊은이들은 성격이 다 이래. 자기를 위해서 하는 말도 나쁘게 해석해서 듣지.”정란 곁에 있던 청년이 웃으며 그녀를 말렸다.이어서 청년은 진서준에게 자신을 소개했다.“저는 공민찬이라고 해요. 란이 남자친구이고 지금 인사처에서 근무하고 있어요.”인사처는 내부 부서 중 가장 핫한 부서로, 많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쓴다.공민찬은 나이가 진서준
오션호텔은 서울시의 오래된 5성급 호텔로, 허씨 가문이 기업주다.“알았어. 점심에 꼭 갈게.”진서준도 마침 자기 가족이 그들의 도움 없이도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그럼 여기서 부자들이 입는 옷을 구경하고 있어.”말을 마친 정란은 공민찬의 팔짱을 끼고 좀 저렴한 매장으로 향했다.공민찬은 인사처에 들어가긴 했지만 집에 돈이 많지 않아 명품 매장은 반년에 한 번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정란은 얼굴이 좀 반반한 것을 빼면 아무 실력도 없었고, 지금 60만 원 좀 넘는 월급을 받으면서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그녀는 체면을 세우기 위해 고급 모조품 가방을 들고 다녔다.진서준은 신사복 코너에서 몇 벌을 고른 후 판매원에게 짙은 회색 양복을 가져오라고 했다.“고객님, 이 양복은 가격이 좀 비싼데, 다른 것도 좀 보실래요?”판매원은 진서준이 부자로 보이지 않아 친절하게 귀띔했다.“가격은 문제가 아니고, 맞으면 됩니다.”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네, 그럼 이쪽으로 와서 입어보세요.”판매원이 진서준을 탈의실로 안내했다.진서준은 값비싼 양복으로 갈아입은 후 더 멋있어졌다.판매원도 홀딱 빠진 듯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이 옷이 고객님의 얼굴이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립니다.”진서준은 거울을 본 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걸로 할게요.”평소에 진서준은 정장을 입기 싫어하고, 캐주얼하고 편안한 옷을 좋아한다.이런 정장을 입은 횟수는 손꼽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이 양복의 가격은 3,000만 원입니다. 카드로 하시겠습니까?”여자 판매원이 물었다.“카드로 할게요.”진서준이 은행카드를 꺼내 판매원에게 건넸다.“잠시만요.”잠시 후 여자 판매원이 카드와 계산서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고 끌리는 마음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이렇게 돈이 많고 잘생긴 청년은 지금 이 사회에서 보기 드물다.그녀와 같은 여자 판매원은 돈 많은 남자를 하나만 꼬셔도 평생 돈 걱정 없을 것이다.“어머
자기 여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조희선은 너무 잘 알고 있다.진서준이 감옥에 있을 때, 조희선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조정연을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조정연은 그녀를 만나지도 않고 문전박대했다.조정연은 조희선과 친자매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심지어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된 친구보다도 못했다.정이 싹 떨어진 조희선은 부자가 된 지금도 조정연을 찾아갈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이제 와서 정란이 그들 일가를 가족 회식에 초대한 것은 틀림없이 이 기회를 빌려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다.“괜찮아요, 어머니. 어차피 그 집에서 초대하는 거니까 우리는 가서 먹기만 하면 돼요.”진서준이 허허 웃었다.“나는 참을 수 있는데, 걔들이 험한 말을 하면 네가 걔들과 싸울까 봐서 걱정이지.”조희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걔네와 싸우지 않을 것을 약속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진서준이 다짐하자, 옆에 있던 진서라도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엄마, 오빠가 절대 손을 쓰지 않을 거예요.”진서라와 조희선 앞에서 진서준은 웬만한 일은 참고 넘어갔다.하지만 상대방이 눈치 없이 진서라와 조희선에게 손을 대면 그는 절대 참을 수 없다.가족은 진서준에게 건드리면 안 되는 역린이다.아들과 딸이 그렇게 말하자 조희선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알았어. 너희 뜻대로 해.”거의 점심이 됐을 때 서정훈이 깨어났다.곁을 지키고 있던 심해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서정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여보, 드디어 깨어났군요.”서정훈은 여전히 허약했고, 종잇장처럼 창백하던 얼굴에 핏기가 조금 돌아왔다.“수술은 잘됐어?”그는 힘없이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그러자 심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진 선생님이 당신을 살렸어요.”서정훈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침에 최문혁 등 의료진을 만났을 때 그중 진씨 성을 가진 의사는 없었다.심해윤은 그가 듣고 화를 낼까 봐 감히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진 선생님이 당신을 살렸다는 것만 알면 돼요.”말을 마친 심해윤은 즉시
서정훈의 성미를 아는 심해윤은 우성환 원장을 불러다 서정훈을 잘 돌보라고 부탁한 후 비서를 따라 이번 회식 장소인 오션호텔로 갔다.점심시간이 되자 진서준도 진서라와 조희선을 차에 태우고 오션호텔로 왔다.차를 세운 후, 진서준은 조희선을 차에서 안아 내리고 휠체어에 앉혀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이때 정란 일가는 호텔 3층 창문 옆에 서서 진서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진짜 올 줄은 몰랐네.”정란이 진서준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5성급 호텔이 그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 게다가 방금 민찬 씨가 아버님한테 들은 바로는 오늘 점심 심 처장님도 여기서 식사하신대요.”정란의 아버지 정태호가 공민찬에게 물었다.“민찬아, 이따 식사할 때 심 처장님을 좀 소개해 줄래?”공민찬이 으쓱하며 웃었다.“문제없습니다. 이따가 다 같이 심 처장님께 한 잔 올리러 갑시다.”이번 식사 자리에 공민찬의 아버지도 운 좋게 동행했다.인사처 처장이자 서울시 부시장의 부인이라,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정란 일가도 TV에서나 볼 수 있었다.그런 인물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그들은 잔뜩 흥분했다.“아래를 좀 봐요. 진서준이 들어온 것 같아요.”정란의 말을 듣고 모두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진서준 일가는 한 중년 남자의 뒤를 따라 담담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오션호텔 입구에서 미모의 호텔 직원 몇 명이 진서준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어서 오세요!”그녀들은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굽혔고, 머리를 평소보다 더 낮게 조아렸다.이 호텔을 허씨 가문에서 운영하고 있어 진서준을 본 적이 있고 진서준의 신분을 알기 때문이다.진서준은 담담했지만, 앞에서 가던 중년 남자는 깜짝 놀라며 살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오션호텔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공손했지, 이렇게 격식을 갖춰 인사한 적은 없었다.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은 중년 남자는 가슴을 더 활짝 폈다.“오빠, 5성급 호텔이라서 그런지 종업원 태도부터 다르네.”
진서준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조정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언니, 다리가 아직 안 나았어? 진작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 언니를 만날 시간이 없었어. 지금 만나도 늦지 않지.”조정연이 만나자마자 조희선의 상처를 들추자, 진서준은 은근히 화가 났다.같은 부모한테서 나온 자식인데, 조정연은 왜 이렇게 악독할까?조희선은 그래도 괜찮은 듯 얼굴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네가 바쁘다는 걸 알고 나도 찾지 않았어.”정란 일가가 말하기 전에 진서준은 직접 조희선을 밀고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진서준이 주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정란은 다소 불쾌한 듯 그를 째려보았다.“늦게 와놓고 사과도 없이 그냥 앉아?”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항상 이 시간에 점심을 먹어. 아까 몇 시에 오라는 말은 안 했잖아.”진서준은 조희선과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말대꾸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다.정란 일가가 감히 불손한 말을 한다면, 그는 절대 오냐오냐하지 않을 것이다.“웃기네. 우리가 밥을 사는데, 네가 밥 먹는 시간에 맞춰야 하니? 란이 몇 시에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늦게 와?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조정연이 진서준을 향해 성난 목소리로 야단쳤다.“우리 탓이야. 우리 탓이야. 다음에는 꼭 일찍 올게...”조희선은 진서준의 손을 누르며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보낸 후 계속 사과했다.“또 오겠다고? 당신들이 5성급 호텔에 평생 한 번 와도 대단한 거지.”정란이 코웃음을 쳤다.정란 일가가 밥을 사는 거지만 그들은 감히 비싼 것을 주문하지 못했다.현재 정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버지 정태호뿐이다.남자친구 공민찬도 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헤프게 쓰지 못한다.“5성급 호텔이 뭐가 대단해서. 우리 어머니가 오고 싶으면 매일 올 수도 있어.”진서준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놈이 뭘 그리 잘난 척해?”정민이 보다못해 진서준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정민이 눈알을 굴리더니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감옥에는 극악무도한 사람들 천지라고 하던데, 안에 있을 때 매일 얻어맞았어?”“뭘 물어? 팔다리가 비쩍 말라 가지고 딱 봐도 얻어맞게 생겼구먼.”정란이 맞장구를 쳤다.무심코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조희선은 가슴이 뜨끔해 안쓰럽고 미안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녀가 그동안 진서준에게 감옥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은 상처를 들추어내 아프게 할까 봐 걱정돼서였다.정민의 말을 듣고 나서 조희선은 진서준에게 매우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알고 싶으면 한 번 들어가 보지 그래.”“됐어. 내가 너 같은 범죄자와 뭘 비교해!”진서준의 말에 정민은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정민은 아직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곧 졸업한다.아직 일자를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올해 졸업하는 학생이니 취직이 어렵지는 않다.“진서준, 너 취직이 안 되면 우리 아버지 회사에 가서 건물 청소나 해.”정란이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지금 사회에서 감옥살이한 적이 있다는 말만 들어도 공기업은 감히 채용하지 못한다.사기업도 지금은 구직자의 경력을 중요시하는 편이다.진서준같이 감옥 갔다 온 대학생은 거의 취직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공장의 단순 생산직은 어쩌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정태호가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덤덤하게 말했다.“서준아, 우리도 친척이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이모부로서 내가 최대한 도와줄게.”“필요 없어요.”“그래, 계속 집에서 부모에게 빌붙어 살아.”진서준이 거절하자, 정란이 코웃음을 쳤다.사실 지금 진서준이 정태호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정태호는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쓸모없는 친척을 돕는 것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것이다.그 뒤로 정란 일가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조희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희선은 어쨌든 친척인데 일이 너무 커져서 앞으로 얼굴도 못 보는 것은 원치 않았다.“민찬 씨, 시간이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
이 말이 나오자 방 안의 분위기가 다소 묘해졌다.조호의 머리는 미친 듯이 회전했다.‘이게 무슨 뜻이지? 설마 조상규의 아내를 탐낸다는 건가?’“진서준 씨, 농담이죠? 제 아내는 그저 다도 실력만 조금 괜찮을 뿐입니다.” 조상규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조상규, 거참 겸손하네. 네 아내는 피부도 하얗고 몸매도 좋고 얼굴은 요염한 여우처럼 매혹적인데?”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치파오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다.이 행동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오영수조차도 눈썹을 꿈틀거리며 진서준이 도대체 뭘 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혹시 진짜 여자의 아름다움에 반해버린 건가?치파오 여자는 난감하게 웃으며 진서준의 손을 밀어냈다.“진서준 씨, 농담이 지나치네요. 저도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 젊은 아가씨들과는 비교도 안 돼요.”“맞아요, 진서준 씨. 혹시 여자가 필요하시면 잠시 후 가게 아가씨들을 전부 데려오겠습니다. 마음껏 고르세요.”조상규가 웃으며 말했다.“젊을 땐 숙녀의 매력을 몰라보고 철없이 어린 여자를 보물로 여긴다고 하지.”진서준의 손이 다시 치파오 여자의 허벅지 위에 올려졌다.“난 이렇게 성숙하고 섹시한 여자가 좋더라. 점심 식사 후에 네 아내 잠자리 기술을 직접 체험해 보면 어떨까?”이 말을 듣자 조호 일행은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겉보기엔 신사인 줄 알았던 진서준이 사실 이렇게 천하의 난봉꾼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도 모자라 남편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아내를 달라고 하다니, 조상규가 격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자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오영수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진서준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오영수는 진서준이 절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진서준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게다가 진서준이 김연아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진서준 씨, 정말 농담이 지나칩니다. 우선 차부터 드시죠.”조상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 분노를 억눌렀다.누구라도 이런 말을 직접 들으
“진서준 씨나 잘 모셔. 내가 당장 전화해 안배할 거니까.”조상규는 단호한 말투로 말하며 조호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알겠습니다.”조호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았다.“진서준 씨, 이쪽으로 오시죠.”휴게실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손짓하며 오영수를 가리켰다.“이쪽은 내 친구 오영수야.”“오영수요? 설마 그 오씨 가문 사람입니까?”조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맞아.”오영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 씨,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조호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오씨 가문은 르벨에서도 손꼽히는 명문대가였고 감히 귀도파 따위가 건드릴 상대가 아니었다.“괜찮아. 사실 나도 조상규 씨 같은 고수를 한 번 상대해 보고 싶었거든.”오영수가 담담하게 대응했다.조호는 이때다 싶어 슬쩍 말을 붙였다.“오영수 씨가 진서준 씨와 친구라면 이제부터 우리도 한 식구 아닙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하지만 오영수는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난 집에 자주 가지도 않아. 나한테 잘 보여봤자 얻을 건 없을 거야.”오영수는 오랫동안 전신전에서 임무를 수행해 왔고 사람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그러니 조호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목적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아, 아닙니다. 그냥 오영수 씨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었을 뿐입니다.”조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자기 속내를 대놓고 들켜버리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었다.조호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참, 진서준 씨. 이따가 제 아들도 와서 직접 사과드릴 겁니다.”하지만 진서준은 대수롭지 않아 하는 태도였다.“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진짜 화났다면 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네, 그 말이 맞네요.”조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조호는 아까 진서준이 조상규 같은 대종사를 가볍게 처치하는 걸 직접 확인했다.그러니 조호는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었다.쓸데없는 행동으로 진서준의 심기를
체육관 안은 죽은 듯이 조용했다.믿을 수 없는 장면에 사람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귀도파의 최종 병기라 불리던 조상규가 진서준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얻어터질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조상규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영수를 가볍게 쓰러뜨린 자였기에 실력 하나만 봐도 절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단 한 가지 결론만이 모두의 앞에 놓였다.지금 귀도파을 건드린 이 청년은 인간을 뛰어넘는 괴물이었다.“와, 대박이야. 이 녀석 실력이 이렇게 대단했어? 야, 너 때문에 나 큰일 날 뻔했잖아.”늑대가 정신을 차리고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엄승현을 노려봤다.조상규 같은 고수도 진서준 앞에서는 그저 두들겨 맞을 뿐이었는데 늑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링에 올라가 진서준과 붙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늑대 형, 오해입니다. 저도 저 자식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엄승현이 기겁하며 변명했다.어제 진서준이 왜 무사하게 유흥업소에서 나갈 수 있었는지, 자기가 호랑이를 찾아갔을 때 호랑이가 왜 버럭 화냈는지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그 모든 이유는 진서준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호랑이의 부하 중에 진서준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멍때리지 말고 얼른 튀어. 이따가 저놈이 우리까지 상대하면 너도나도 여기서 뒤질 거야.”늑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다들 얼른 도망쳐.”엄승현도 체면 따위 집어치우고 그 뒤를 따랐다.링 위에서 조상규는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조상규의 얼굴은 돼지머리처럼 퉁퉁 부어올랐고 피까지 줄줄 흘러내렸다.“아까 네가 뭐라고 했더라? 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는다 하지 않았어?”조상규를 내려다보는 진서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그 말에 조상규는 흠칫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진, 진서준 씨. 살려주십시오. 제가 눈이 멀어 감히 진서준 씨에게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조상규는 머리를 박아가며
하지만 조상규 앞의 보호막은 한 치도 밀려나지 않았다.“이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상규의 손바닥이 진동했다.그리고 산을 뒤엎는 듯한 힘이 오영수를 덮쳤다.그러자 오영수의 몸이 통제할 수 없이 끊어진 연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쿵!오영수의 몸이 바닥에 세게 내리꽂히며 몸속에서 우두둑하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모두가 넋이 나간 채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4대 천왕을 가뿐히 쓰러뜨린 오영수가 인간도륙의 한 방에 허무하게 무너졌다.역시 인간도륙의 명성은 헛소문이 아니었다.“대박이야, 사촌 형 너무 멋져요!”조호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고 신나서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이봐, 이제야 알겠어? 이게 귀도파의 진정한 실력이야.”늑대가 잔뜩 으스대며 자기가 오영수를 때려눕힌 것처럼 신나 있었다.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오영수에게 다가가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올리더니 장청의 힘을 체내에 흘려보내며 치료하기 시작했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 저 사람 실력이 너무 강하네요. 제가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오영수는 깊은 자책감에 고개를 숙였다.적어도 몇 방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단 한 방도 막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것이다.“저 사람은 노련한 대종사입니다. 대장님이 못 이기는 게 당연하죠. 이제부터는 제가 상대할게요.”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서서 링 위로 걸어갔다.“저 자식 미쳤나? 대체 뭘 믿고 올라가는 거야?”늑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설마 살려달라고 빌려는 건 아니겠죠?”엄승현이 비꼬듯 말했다.“끝까지 숨어서 안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깡은 있네.”조호가 코웃음을 쳤다.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도대체 진서준이 올라가서 뭘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때, 링에 올라오는 진서준을 확인한 조상규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어라? 여기서 다시 보네.”그날, 서광문이 갑자기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조상규와 진서준은 이미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