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오게 되면 알게 되겠죠.”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원경휘도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만약 진서준이 정말로 호텔 임원에게 연락했다면 그는 끝장이었다.원경휘 등 사람들이 김명진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지성은 인내심이 닳았다.“이 자식들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야? 간 지가 언젠데!”이지성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지팡이를 짚으며 룸을 나섰다.룸에서 나오자마자 이지성은 702번 룸에 경비원들이 몰려있는 걸 보았다.이지성은 고수빈 등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으리라고 예상하고 몰래 다가가 보았다.그는 제일 뒤에 서서 사람들 틈 사이로 바닥에 드러누운 고수빈 등 사람들을 보았다.“멍청한 것들, 여기서 소란을 피우네.”이지성은 낮게 욕하더니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았다.그가 진서준이라는 걸 확인한 이지성은 안색이 종이처럼 창백하게 질려서는 지팡이를 잡은 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왜 여기 있지?”이지성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떴다.그는 지금 진서준에게 자신이 여기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장이었다.“고수빈 그 자식들이 내 이름을 말했을지 모르겠네. 상관없어. 내일 바로 우 종사님을 찾아가서 진서준을 죽여달라고 해야겠어!”이지성이 호텔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명진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도착했다.“도련님!”김명진이 부랴부랴 달려오자 원경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X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감히 우리 형님을 때리려 해?”김명진은 자신의 먼 친척인 원경휘를 보자마자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원경휘는 그에게 차여서 멀리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고 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다른 경호원들은 그 광경을 보자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서준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 가르치지 못한 탓입니다.”김명진은 빠르게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허리 숙여 사과했다.진서준의 잔이 비어있는 걸 본 김명진은 서둘러 그에게 물을 따라줬다.그의 행동에 현장에 있
이지성은 서울에서 재벌가 자제에 불과했지만 재벌가 자제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김명진 같은 최고 재벌가 자제였기에 그의 주위에는 자산이 몇조 원인 친구들뿐이었다.이지성처럼 자산이 몇백억 밖에 되지 않는 가문 출신은 김명진과 같은 무리에 낄 자격이 없었다.그래서 고수빈이 이지성이라고 했을 때 김명진은 잠깐 멈칫했다.곰곰이 되짚어봤지만 그의 친구 중에 이지성은 없었다.“이름이 뭐라고요?”김명진의 질문에 고수빈이 다급히 대답했다.“이지성이요. 낙산컴퍼니 이씨 일가 이지성이요!”그 말에 진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진서준은 전에 이혁진에게 경고한 적이 있었다. 이혁진도, 이지성도 절대 두 번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 말라고 말이다.만약 고수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만큼은 절대 이지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이지성 어디 있어요?”이지성이 어느 가문 자제인지 김명진이 고민하고 있을 때 진서준은 이미 고수빈의 앞에 섰다.“그... 706번 룸에 있습니다.”고수빈은 진서준이 거물이라는 걸 깨닫고 황급히 대답했다.이지성의 위치를 파악한 뒤 진서준은 곧바로 706번 룸으로 향했다.그러나 진서준이 도착했을 때 룸 안에 사람이 없었다.진서준의 처음 보인 반응은 고수빈이 자신을 속였을 거라는 것이다.“날 속인 거죠?”진서준은 돌아온 뒤 고수빈의 다리를 밟았다.“아!”고수빈은 밟혀서 앓는 소리를 내면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진서준 씨, 전 정말 진서준 씨를 속이지 않았어요. 이지성 씨는 진짜 706번 룸에 있어요.”“조금 전에 가봤는데 없던데요!”진서준이 화를 내며 말했다.“떠났을 수도 있죠. 조금 전에 정말로 저희랑 같이 밥을 먹었어요. 믿기지 않는다면 물어보세요.”고수빈은 진서준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제발 자신을 살려달라고 하고 싶었다.다른 사람들은 고수빈의 비참한 모습을 보더니 본인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조금 전에 저희는 이지성 씨랑 같이 밥을 먹었어요!”“밥 먹을 때 이지성 씨가 자
“별거 아닌데요, 뭘. 그러면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두 분 편히 식사하세요.”김명진은 진서준을 향해 웃더니 자발적으로 룸에서 나갔다.진서준은 이지성의 일을 생각하느라 입맛이 떨어졌다.“연아 씨, 다 먹었어요?”“네.”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이만 가요. 내가 바래다줄게요.”진서준이 말했다.진서준은 이지성이 이렇게 갑자기 떠난 이유가 이곳에서의 소란을 듣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봤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진서준의 짐작이 맞았다.이지성은 호텔을 나선 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이혁진과 같이 묵는 호텔로 돌아갔다.“왜 그래? 왜 이렇게 허둥지둥거려?”침대에 누워 TV를 보던 이혁진은 이지성의 초조한 모습을 보고 불쾌한 듯 물었다.“아버지, 큰일났어요!”이지성이 지팡이를 짚으며 빨게 이혁진을 향해 다가갔다.“무슨 일 있어? 설마 진서준이랑 마주친 건 아니지?”이혁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진서준과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이혁진은 다른 원인은 떠오르지 않았다.“맞아요!”이지성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이 널 봤어?”이혁진은 TV를 끄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뇨. 절 봤다면 절대 절 돌려보내지 않았겠죠.”이지성은 머금고 있던 물을 삼키며 계속해 말했다.“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제가 서울에 왔다는 걸 알고 있어요. 아버지, 혹시나 시간을 끌면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내일 우 종사님께 진서준을 죽여달라고 해요!”이지성은 이미 진서준에게 마음속 깊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진서준만 보아도, 또는 진서준이 그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만 알게 되어도 이지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래.”이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드러냈다.“우 종사님께서 조금 전에 날 만나러 왔어. 오늘 점심에 아주 대단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더라. 우 종사님이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더라도 그분을 모시면 돼. 우 종사님 말씀을 들어보니 우 종사님 사부님보다 더 대단하다고 해.”우소영의 사부보
진서준은 김연아를 집으로 데려다준 뒤 허사연이 걱정되어 차를 타고 허씨 저택에 들렀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문을 연 건 허윤진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젖어 있고 얇은 파자마를 입고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파자마 속 아름다운 몸 선이 보였다.진서준은 힐끗 본 뒤 시선을 거두어들였다.“사연 씨 보러 왔어요.”진서준이 허사연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허윤진의 미소가 곧바로 사라졌다. 그녀는 코웃음을 친 뒤 고개를 돌리며 자리를 떴다.진서준은 어리둥절했다.“내가 뭘 어쨌길래 저러는 거지?”“언니 샤워 중이에요. 기다려요.”허윤진은 소파에 엎드려서 휴대전화를 봤다.그러면 이따금 진서준을 힐끔댔다.“성태 아저씨는요?”“아빠는 오늘 집에 없어요. 나랑 언니뿐이에요.”허윤진의 길고 늘씬한 두 다리가 움직이면서 매끈한 발목과 종아리가 보였다.평소 허성태가 집에 있을 때면 허윤진은 이렇게 입지 않았다.비록 부녀 관계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러지 않는 게 좋았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본다면 안 좋은 소문이 돌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서준 씨, 이틀 뒤에 권해철 씨 사문에 간다고 했죠?”허윤진이 갑자기 물었다.“네, 왜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같이 가도 돼요?”허윤진은 자리에 앉은 뒤 기대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어렸을 때부터 전 먼 곳에 놀라가 본 적이 없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안 돼요. 전 권해철 씨랑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가는 거예요.”권해철은 그의 사문에서 쫓겨났었다. 그러니 이번에 그와 함께 산에 오른다면 권해철의 사문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싸울 수도 있었다.비록 진서준과 권해철 모두 실력이 강하다지만 정말로 싸우게 된다면 권해철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어도 허윤진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일반인이었기에 권해철 사문 사람들이 허윤진의 목숨으로 그를 위협한다면 위험했다.이번에는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할 수
진서준은 그 조건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이 자세를 허사연이 본다면 오해할지도 몰랐다.진서준이 말을 마치자마자 위층에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허윤진은 토끼처럼 바로 진서준을 풀어주고는 다른 소파 위에 앉았다. 진서준과 딱 달라붙어 있은 적이 없던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그녀의 빨개진 얼굴이 조금 전의 일을 얘기해주고 있었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던 허사연은 진서준을 보자 싱긋 웃으며 물었다.“사연 씨가 걱정돼서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허사연이 입고 있는 옷은 허윤진의 것보다 더 얇았다. 진서준은 심지어 안쪽의 중요 부위까지 보았다.허사연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진서준은 깜짝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허사연은 진서준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자신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렸다.그러나 이미 아래층까지 내려왔고 그녀와 진서준은 연인이기도 했으니 굳이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두 사람은 언젠가는 서로를 솔직히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허사연은 지금 진서준에게 이런 복지를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바보, 왜 오늘 갑자기 절 걱정하는 거예요?”허사연은 머리를 닦으며 평온한 얼굴로 진서준의 곁에 앉았다.그녀에게서 맡아지는 옅은 향기에 진서준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아름다운 얼굴이 진서준의 바로 앞에 있었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허사연은 평소보다 더 희고 부드러워 보였고 빨간 입술도 아주 요염했다.진서준은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허사연을 끌어안으며 애정 행각을 벌이려고 했다.“뭐 해요?”허윤진이 타이밍 좋지 않게 끼어들면서 진서준의 손을 쳐낸 뒤 허사연을 자신이 앉고 있던 소파로 끌고 왔다.진서준은 조금 화가 났다. 허윤진은 그의 일을 자꾸만 망치려고 했다.진서준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본 허사연은 참지 못하고 몰래 입을 가리고 웃었다.“이지성이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진서준은 흑심을 억누르며 진지한 얼
낙산컴퍼니는 이제 진서준의 것이었지만 허사연이 파견한 양소빈이 관리하고 있었다.이혁진은 진서준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에 낙산컴퍼니로 가서 소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그가 낙산컴퍼니에 있다는 걸 진서준이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를 찾으러 올 것이었다.“우 종사님, 잠시 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이혁진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현재 이혁진은 자신의 자산과 생명을 전부 우소영에게 걸었다.만약 우소영도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면 진 선생님을 찾아가야 했다.“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당신이 준 것을 우리 사부님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면 전 겨우 20대인 청년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우소영은 차갑게 말했다.탁현수의 명령이 없었다면 이씨 일가가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절대 서울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종사인 그녀에게 일반인을 죽여달라고 하다니, 그녀에게는 크나큰 모욕이었다.그러나 사부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씨 일가가 탁현수가 아주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로 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우 종사님, 이놈 보통 놈이 아니에요. 혼자서 십여 명을 상대할 수 있어요!”이혁진은 진서준이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했다.그런데 우소영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혼자 십여 명을 상대할 수 있으면 대단한가요? 그런 사람은 무인의 문턱도 넘지 못해요. 진짜 무인이라면 아무리 약해도 50명 정도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죠.”우소영은 태연하게 말했고 이혁진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이제 막 무인의 문턱을 넘은 초보도 50명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니.그렇다면 종사는 얼마나 강할까? 혼자서 군대 하나를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이혁진은 이제야 세가들이 왜 그렇게 종사를 숭배하는지 알게 되었다.이내 이혁진과 우소영은 낙산컴퍼니 1층에 도착했다.이혁진은 차에서 내린 뒤 능숙하게 우소영을 회사로 안내했다.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혁진은 회사 사람들 반 이상이 바뀐 걸 발견했다.사실 저번에 은영호 부자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양소빈은 회사
“누군가 회사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양소빈이 말했다.“누군데요?”“안내데스크 말을 들어보니 전 사장이라는데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이혁진 씨 그래도 사나이네요.”진서준은 이혁진이 유지수처럼 자기 가족을 납치할 줄 알았다.오늘 진서준은 진서라를 따갈 준비까지 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절대 다치지 말아요!”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낙산컴퍼니로 향했다.양소빈은 회사의 임원으로서 안내데스크로 향했다.성숙하고 아름다운 양소빈을 본 이혁진은 차갑게 코웃음쳤다.“당신이 그 망나니가 만나는 여자야?”이혁진의 모욕에 양소빈은 무척 화가 났다.“무슨 헛소리예요? 경비원을 시켜서 당신의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세요.”이혁진은 그 말을 듣더니 경멸에 차서 웃었다.“그래. 그러면 경비원 불러와.”이혁진의 건방진 모습에 양소빈은 곧바로 이 건물 관리인에게 연락했다.관리인은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비원 네 명을 보냈다.“저 사람 쫓아내세요!”양소빈은 이혁진을 가리키며 말했다.경비원은 앞으로 걸어가서 이혁진을 끌고 가려 했다.그런데 줄곧 뒤에 서 있던 우소영이 갑자기 손을 썼고 네 명의 경비원이 순식간에 날아가서 벽에 쿵 부딪혔다.그 광경에 양소빈과 회사의 다른 직원들 모두 넋이 나갔다.노인인데 어떻게 힘이 이렇게 강한 걸까?게다가 힘만 강한 게 아니라 속도도 빨랐다. 그들은 심지어 우소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흥, 이제 누굴 더 부를 거야?”이혁진은 건방진 걸음걸이로 양소빈에게 다가갔다.“당신이 그 자식 여자라면 우선 당신부터 손봐줘야겠어!”양소빈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혁진이 여자인 그녀에게 손을 대려 할 줄은 몰랐다.우소영의 눈동자에 경멸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그를 말리지 않았다.이혁진은 양소빈의 앞으로 걸어가서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때리려 했다.양소빈은 그 광경을 보고 서둘러
우소영은 종사였기에 이혁진을 기습하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느낄 수 있었다.그녀조차도 이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쿵 소리와 함께 난동을 부리던 이혁진은 그대로 멀리 날아가서 몸이 벽에 박혔다.이 건물은 완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성년이 들소라고 해도 벽에 균열을 내기는 어려웠다.진서준의 발차기에 담긴 힘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벽에 처박힌 이혁진은 죽기라도 한 건지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진서준 씨...”양소빈은 제때 도착한 진서준을 보고 안도했다.만약 진서준이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얼마나 고생했을지 모른다.진서준에게 손을 쓰려던 우소영은 당황했다.“진... 마스터님?”우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두 손도 통제할 수 없이 떨렸다.고개를 돌린 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우소영을 본 뒤 말없이 양소빈을 향해 다가갔다.양소빈의 뺨에 남은 빨간색 손바닥 자국을 본 진서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관절에서 콰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아파요?”진서준은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안 아파요. 왔으면 됐어요...”자기보다 몇 살이나 어린 남자가 바라보자 평온하던 양소빈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진서준은 자신의 체내에 있는 영기로 양소빈의 부기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사람이 워낙 많고 치료할 때 움직임이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조금 남사스러웠다. 소문이라도 난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가서 수건으로 얼음찜질 좀 해요.”진서준이 말했다.“괜찮아요.”양소빈은 고개를 저었다.“얼른 가요.”진서준은 용납할 수 없다는 어조로 강하게 말했다.양소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양소빈이 떠난 뒤 진서준은 회사의 남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분노에 차서 따져 물었다.“당신들이 그러고도 남자입니까? 회사 사장 남자한테 맞고 있는데 그걸 멀뚱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어요?”진서준의 호통에 남자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그들은 조금 전 양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