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진서준에게 연락했을 때, 진서준은 수련 중이었다.벨소리 때문에 수련 중에 정신을 차린 진서준은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김연아 씨가 왜 나한테 연락한 거지?”진서준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는 점심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분명 조성우 부부가 김연아에게 다시 한번 진서준에게 사과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일 테다.역시나 진서준이 연락을 받자마자 김연아는 다짜고짜 말했다.“진서준 씨, 저녁에 시간 있어요? 진서준 씨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요.”음식을 대접한다는 건 결국 다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조해영 씨 일 때문이죠?”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네... 그런 셈이죠.”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그냥 보내줬다는 건 더 따지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조해영 씨가 목숨 귀한 줄 모르고 날뛴다면 모를까.”진서준은 앞뒤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조해영을 봐주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사람을 시켜 조해영이거나 조성우 부부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진서준 씨가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란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지유 언니랑 형부가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김연아가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저랑 같이 저녁 먹어주는 거로 생각해 줘요. 그래야 저도 지유 언니랑 형부가 안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김연아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어디 가서 먹을 거예요?”“유일 호텔은 어때요? 김씨 일가에서 새롭게 오픈한 호텔이에요.”김씨 일가라는 말에 진서준은 그곳이 김연아가 운영하는 호텔인 줄 알았다.“김씨 일가요? 김연아 씨 집안에서 오픈한 곳인가요?”진서준이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호텔을 운영하겠어요?”김연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영운 그룹 대표 김풍 씨가 운영하는 곳이에요.”진서준은 서울에 비교적 큰 집안인 김씨 일가가 있다는 걸 그제야 떠올렸다.“네, 그럼 지금 갈게요.”“호텔 입구에서 봐요.”전화를 끊은 뒤 김연아는
행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면서 진서준은 김연아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가서야 김연아는 진서준을 놓아줬다.“혹시 화를 낼 생각은 아니죠? 전 다른 남자들이 제게 집적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예요.”김연아가 자발적으로 말했다.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하지만 연아 씨도 이제는 남자 친구를 찾아야죠. 병이 완전히 나았잖아요.”김연아의 구궁한증은 진서준에 의해 완전히 치료됐다. 그녀는 이제 점점 다른 여자들과 같이 울 줄 알고 웃을 줄 알게 되었다.김연아의 재력과 외모라면 서울시 그 어떤 남자도 고를 수 있었다.“남자 친구를 찾을 때가 되긴 했죠. 하지만 제가 좀 까다로워서요. 가장 강한 남자가 아니라면 싫어요!”김연아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대꾸했다.“강하다는 건 어떤 뜻이죠? 설마 모든 걸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모든 것에 가장 강해야 한다는 건가요?”“그건 아니에요. 하나만 잘하면 돼요. 예를 들면 의술이나 무공이 아주 강해서 절 지킬 수 있으면 돼요.”김연아는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두 점은 분명 진서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적어도 지금까지 서울시에서 진서준보다 의술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무공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만월호에서의 결투로 진서준은 큰 명성을 얻었다.진서준도 김연아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서 대꾸하지 않았다.그에게는 이제 허사연이 있으니 다른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생각은 없었다.그렇게 한다면 유지수 그 여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김연아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엘리베이터가 멈춘 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김연아가 예약해 둔 룸으로 향했다.룸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말했다.“고객님, 음식은 지금 올리면 될까요?”“네, 지금 올리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종업원이 떠난 뒤 룸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답답하고 어색했다.결국 김연아가 먼저 입을 열어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진서준 씨, 앞으로는
진서준은 비록 엄청난 실력을 원했지만 그의 수련 속도로는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수련해도 그 정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허사연이 일반인이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허사연도 조금씩 수련시킬 생각이었다.진서준은 체맥과 재능이 장철결에 매우 적합하여 구창욱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진서준이 아무리 애원해 봤자 구창욱은 그에게 수련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허사연은 일반인이기에 그녀가 수련을 시작하려면 아주 어려웠다.그러나 구창욱의 말에 따르면 은영과라는 영약이 사람의 체맥을 바꿔주고 일반인도 공법을 수련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진서준이 생각하는 공법은 무도나 술법 대사와는 달랐다.진서준이 수련한 공법은 진짜 선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인생은 고달프고 짧은데 매일 한 곳에서 수련하는 게 뭐 재밌다고 그래요? 차라리 밖에 많이 나가서 인생을 즐기는 게 낫죠.”김연아가 감개하며 말했다.과거 김연아는 구궁한증 때문에 매일 회사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그러나 완전한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된 지금, 그녀는 이 세상에 무미건조한 일만 있는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즐길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됐다.진서준은 웃었다.“그럴 거예요.”장철결 수련 단계가 높아질수록 진서준의 수명 또한 증가한다.수명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진서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음식이 곧 올라왔고 진서준과 김연아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조금 전의 어색함은 사라졌다.두 사람이 있는 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큰 룸 안, 이지성과 그의 친구들이 그 안에 있었다.“지성이 형, 형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누구한테 맞은 거야?”누군가 웃으며 물었다.“뭔 소리야? 지성이 형이 어떤 사람인데 누가 감히 형 다리를 부러뜨린단 말이야?”“설마 교통사고라도 당했어? 그동안 우리랑 같이 밥 안 먹은 이유가 있었네.”그들은 이지성의 다리가 어쩌다가
우소영이 현재 서울에 있었기에 이지성은 아무도 두렵지 않았다.“사실 며칠 전에 감히 제 여자를 빼앗으려는 건방진 자식을 만났거든요.”고수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저번에 초운산 레이싱에서 고수빈은 진서준에게 원한을 품었다.그러나 진서준은 그가 안중에도 없었고 심지어 그의 이름마저 잊었다.“뭐라고요?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인데요?”이지성은 그 말을 듣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별 볼 일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에요.”고수빈은 일부러 진서준을 깎아내렸다.“그런 사람을 고수빈 씨가 해결하지 못한다고요?”이씨 일가가 망한 뒤로 이지성은 더는 예전처럼 무식하지 않았다.분명 고수빈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 테다.상대방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필요했다.“전 조폭 쪽은 잘 몰라서요.”고수빈이 웃으며 말했다.“이지성 씨가 호스텔 그룹의 성철 어르신과 아는 사이라고 들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좀 구해줬으면 해요.”강성철 얘기가 나오지 이지성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강성철은 진서준의 사람이었기에 지금 강성철을 찾아간다면 스스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지성은 이씨 일가와 강성철이 척을 졌다는 걸 얘기할 수 없었다.“그건...”이지성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고수빈이 어떤 이득을 줄지 기다렸다.고수빈도 이지성의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카드 한 장을 꺼냈다.“이지성 씨, 안에 1억이 들어있습니다. 전 그 녀석이 죽기를 바라는데 가능할까요?”고수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수빈이 1억으로 원수를 죽여달라고 하자 이지성은 내심 놀랐다.그러나 거저 굴러들어 온 복을 그냥 차버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이지성은 곧바로 카드를 거두어들였다.“문제없어요. 돈만 준다면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찾아 이 일을 맡길 테니까요. 참, 그 사람 이름이 뭔가요? 어디서 살고 어떻게 생겼어요?”고수빈은 당황하더니 이내 말했다.“그 자식 이름이 진서준이라는 것
룸 안에 들어서자마자 고수빈은 이지성을 향해 눈빛을 보냈고 이지성은 그의 모습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무슨 일이에요? 말로 해요!”이지성이 짜증을 내며 고수빈을 흘겨봤다.“이지성 씨, 조금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엄청 예쁜 여자를 봤어요!”고수빈은 자리에 앉은 뒤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엄청난 여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말이다.이지성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쳤다.세상 물정 모르는 고수빈이라면 안목이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얼마나 예쁘길래 그렇게 신난 거예요?”이지성이 덤덤히 말했다.“허씨 일가의 허사연 씨 본 적 있죠?”고수빈의 질문에 이지성은 피식 웃었다.“본 적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밥도 먹은 적 있어요.”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이지성의 비위를 맞추며 그에게 아부하기 시작했다.“역시 지성이 형, 허사연 씨 같은 미녀랑 밥도 같이 먹은 적 있다니 대단하네!”“지성 씨가 허사연 씨와 같이 식사한 건 허사연 씨의 영광이죠!”“이지성 씨랑 허사연 씨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거 아닐까요...”아부가 과한 것 같아 이지성은 서둘러 그들을 말렸다.혹시라도 이런 얘기가 진서준의 귀에 들어간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다들 헛소리 하지 말아요. 전 허사연 씨랑 그냥 친구예요.”이지성이 서둘러 말했다.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믿지는 않았다.고수빈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지성 씨, 제가 아까 본 그 여자는 허사연 씨랑 막상막하였어요. 외모와 몸매 모두 아주 최상이었죠!”고수빈의 말에 다들 구미가 당겼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 남자였고 그들처럼 하는 일이라고는 유흥밖에 없는 재벌가 자제들에게 화제는 오로지 하나, 바로 여자뿐이었다.특히 예쁜 여자에 관한 얘기가 가장 많았다.“고수빈 씨, 그 말 사실이에요? 허사연 씨는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인데 그녀와 막상막하라니, 우리 서울에 또 그런 미녀가 있다고요?”“그러게. 고수빈 이 자식 오버하는 거 아니야?”다들 고수빈이
“진서준 씨, 당신이 절 치료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김연아는 반짝거리는 큰 눈으로 진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은 김연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했다.“만약 제가 김연아 씨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면 김연아 씨는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거예요.”진서준이 솔직히 대답했다.“하지만 진서준 씨가 제 병을 치료한 뒤로 전 더는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싶지 않은데요.”김연아는 무더운 여름날처럼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게다가 고백과 다름없는 그녀의 말까지 더해지자 진서준은 더욱더 안절부절못했다.분위기는 다시 한번 어색해졌고 룸 안은 조용해졌다.진서준은 김연아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진서준이 제일 처음 만났던 사람이 허사연이 아니라 김연아였다면, 그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김연아였을지도 모른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진서준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문밖에서 고수빈 등 사람들은 방 안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문을 열었다.상대방이 말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진서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누구세요?”진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기 몸으로 김연아를 가렸다.“비켜요. 우리는 당신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한 사람이 다가가서 진서준을 옆으로 밀쳤다.진서준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닿기 전 주먹을 뻗어 상대의 얼굴을 때렸다.퍽 소리와 함께 먼저 진서준을 때리려 했던 사람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조금 취기가 올랐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한 주먹에 80kg쯤 되는 성인을 날려버리다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인가!고수빈도 당황했다. 진서준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자 그는 단번에 표정이 바뀌었다.“당신!”원수를 만나게 되자 고수빈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서준은 고수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초운산에서 고수빈이 진서준을 도발한 적이 있지만
김연아는 원래도 외모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화장까지 하니 허사연보다 조금 더 예뻐 보였다.고수빈 등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로 침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많은 남자가 저열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김연아는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진서준의 뒤에 숨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또 성가시게 했네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 사람들로는 성가시다고 하기도 부족하죠.”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수빈과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무능력한 인간일 것이다.진서준의 모욕에 고수빈 등 사람들은 흉악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 씨, 여긴 당신 혼자예요. 만약 편하게 죽고 싶다면 지금 나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려요.”고수빈 등 사람들은 기껏해야 7, 8명 정도였다.고수빈이 보기에 진서준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혼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네요.”진서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수빈을 바라보았다.고수빈 같은 머리가 텅 빈 사람들이 항상 그의 신경을 긁었다.“X발, 같이 덤벼서 저 자식을 때려죽이자고!”고수빈은 말을 마친 뒤 테이블 위에서 술병을 집어 들어 진서준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김연아는 진서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술병이 날아오자 참지 못하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진서준 씨, 얼른 비켜요!”고수빈 일행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깨 고소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이미 진서준이 피바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그러나 고수빈의 술병이 진서준에게 날아들기 전, 진서준이 발을 뻗었다.고수빈은 바닥에 드러누워 마치 잘 익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고수빈은 숨 쉬는 것마저 힘들었다. 표저옫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고수빈 씨, 괜찮아요?”고수빈의 친구들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다들 같이 덤비라니까요. 저 자식을 죽이라고요!”고수빈이 분노에 차
“그래요. 그러면 지금 당장 호텔 경비원을 불러올게요. 그들이 와도 당신이 이렇게 건방지게 굴 수 있을까요?”말을 마친 뒤 고수빈은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 경비원을 찾으러 가려 했다.진서준은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룸 안에서 울려 퍼지면서 무언가가 고수빈의 종아리를 꿰뚫었다.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드러났다.룸 안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수빈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쓰러져 끊임없이 경련했다.“내가 말했죠.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면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 말라고.”진서준은 의자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복도에 서 있던 종업원이 들어왔다.종업원은 룸 안의 광경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얼른 여기 경비원 불러요. 이 자식이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룸 안의 사람들은 종업원을 보자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곧바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종업원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얼른 702번 룸으로 와요. 여기 싸움이 났어요.”김연아는 상황을 보더니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우리 얼른 가요. 만약 김씨 일가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일이 복잡하게 돼요!”김연아는 김씨 일가가 진서준의 은혜를 입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기에 조급해했다.“무서워하지 말아요. 김씨 일가 사람이 온다면 오히려 내게 사과할지도 모르니까요.”진서준은 포도 한 알을 먹으면서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덤덤한 태도에 김연아도 자리에 앉았다.호텔 직원은 진서준의 거만한 말을 듣고 같잖다는 듯이 입을 비죽였다.이내 호텔 경비원이 삼단봉을 들고 진서준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경비팀장은 피비린내를 맡더니 미간을 구겼다.유일 호텔은 새로 개업한 호텔이라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됐다.“누가 때린 거죠?”겉으로 보기에 단순히 질문하는 것 같아도 사실 경비팀장은
도지아는 그 표정이 왠지 묘하게 신경 쓰였다.부모님이 나가자 집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우리 집에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모님이 좀 들뜨셨나 봐.”도지아가 무심하게 해명했다.“괜찮아, 이해해. 우리 집도 손님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엄청 챙기시거든.”진서준이 웃으며 대응했다.“맞다, 아까 우리 동생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도지아가 본론을 꺼냈다.“이상한 점? 글쎄, 딱히 못 느꼈는데?”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네 동생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아까 네가 유흥업소에 갇혔을 때, 걔가 엄승현 찾아가서 인맥을 동원해 널 구해달라고 부탁했어.”도지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동생이 진짜 요즘 이상해. 말로는 독설을 퍼붓는데 속은 여전히 착해.”“혹시 일부러 너희를 멀리하는 거거나 너희를 보호하려는 거 아닐까?”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뭔가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설마 민수가 잡혀갔을 때 하경범 부하들이 협박이라도 한 걸까?”도지아도 진서준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날, 도지아의 부모와 도민수는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민수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해야겠어.”도지아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도민수가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꺼버렸다.“이 자식이 정말...”도지아가 인상을 찌푸렸다.“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일단 그냥 내버려둬.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진서준이 위로하듯 말했다.한편, 노래방의 한 방에서 도민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하얀 가루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고 있었다.그러고는 완전히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때? 기분 좋아?”노란 머리 청년이 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비열하게 웃었다.
다들 그 말을 듣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진서준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깔끔한 상태로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엄승현은 눈을 굴리더니 이내 눈치 빠르게 잽싸게 뛰어가 아부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호랑이님, 아까 소란을 일으킨 그놈 찾으시는 거죠? 제가 어디 갔는지 압니다. 당장 안내해 드릴게요.”“뭐라고?”조호의 얼굴이 싹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사람을 찢어버릴 눈빛이 번뜩였다.엄승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호랑이 씨, 그놈 진짜 제대로 혼내줘야 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지금 바로 길을 안내할게요.”“닥쳐, 이놈아.”철썩!조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승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혼자 뒤져. 왜 애꿎은 사람까지 끌어들여? 꺼져!”힘들게 저 귀신 같은 무시무시한 녀석을 보내버렸는데 어디서 굴러온 개념 없는 놈이 다시 자기를 이끌고 저 녀석에게로 데려가겠다는 거지?조씨 가문 거물도 없는데 조호 본인이 감히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조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엄승현은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뭐, 뭐야? 호랑이가 지금 겁먹은 거야?”“이상하네, 저놈이 대단한 배경이라도 있나?”“말도 안 돼. 저놈 그냥 외지인이잖아. 배경은 개뿔.”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엄승현은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틀림없이 호랑이가 직접 손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동부 구역은 호랑이 구역이잖아. 근데 내가 길을 안내하면 체면이 안 서잖아. 소문이 퍼지면 체면도 구겨질 거고.”“승현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요.”다들 엄승현의 말에 공감하자 엄승현은 자신감을 되찾고 비웃었다.“두고 봐. 오늘 밤 도민수 그 녀석 가족이 다 뒤질 거야.”20분 후.진서준과 도지아는 차를 타고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건물에 들어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지아 집 문 앞에 섰다.“엄마
갑자기 누군가 봉쇄된 유흥업소에서 걸어 나오니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어라? 진짜 저 녀석이네? 근데 왜 멀쩡하지?”엄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조호가 직접 나서서 판을 깔았다면 피를 안 보고 끝날 리가 없었다.진서준이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만신창이가 됐어야 정상인데 지금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했다.“어서 나랑 가서 진서준한테 감사하다고 하자.”도지아가 도민수를 잡아끌었다.“가고 싶으면 혼자 가. 난 안 가.”도민수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뭐야, 너 왜 그래? 아까는 진서준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잖아?”동생의 앞뒤 다른 태도에 도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닥치고 신경 꺼.”도민수는 누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동생의 거친 행동에 도지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진서준을 찾아갔다.“이상하네, 저 녀석 진짜로 멀쩡하잖아?”엄승현 일행은 의아해하며 웅성거렸다.“승현 오빠,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나도 몰라.”엄승현은 고개를 저었다.“혹시 저 녀석이 호랑이한테 뭔가 큰 보상을 약속한 거 아닐까요? 호랑이가 저 녀석을 저렇게 고분고분 풀어 줄 이유가 없잖아요?”단발머리 여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가능성 있어. 아니면 어떻게 호랑이의 구역에서 저렇게 멀쩡하게 나왔겠어?”“그래, 직접 물어보자.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나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 괜찮아?”도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다친 것처럼 보여?”진서준이 홀가분한 말투로 되물었다.“이깟 조무래기 건달도 못 이길 거면 내가 감히 하경범을 건드릴 수 있었겠어?”“그렇긴 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는 도지아도 잘 몰랐다.황예은에게 슬쩍 떠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 황당했다.황예은의 입에서 나온 진서준은 거의 만능 인간이었다.세상에 정말 그런 남자가 존재할까?“야, 너 대체 어떻게 호랑
“뭐? 네 개가 되라고?”정장 남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폭발했다.“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개 취급해? 거울이나 보고 네 꼴부터 확인해.”조호도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네가 종사인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귀도파에도 종사가 없는 게 아니야. 종사라는 이유로 날 얕볼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우리 귀도파도 그냥 조직이 아니야.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진서준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그래? 그럼 너희 귀도파 주인은 누구야?”조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이 청년이 하는 말이 참 기분이 나빴다.진짜 주인이라니, 자기를 개 취급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기분 나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조호가 이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건 귀도파 뒤에 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르벨 하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조호가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익숙한 가문의 이름에 진서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결국 하씨 가문에 빌붙은 거였군.”“빌붙다니? 우리 조씨 가문은 단순히 의지하는 게 아니야. 하씨 가문에서 우리 조씨 가문의 대단한 인물을 공양하고 있거든. 그분은 대종사야.”조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래? 대종사였어? 하씨 가문에서 그 대종사를 공양하고 있어?”진서준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짙은 흥미를 보였다.“그럼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네가 말하는 그 대단한 인물 말이야.”“좋게 말하는데 너 선 넘지 마. 얼른 여기서 나가. 네가 종사라 오늘은 특별히 봐주겠어.”조호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근데 계속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가문 거물을 보겠다고 떠들면 내가 장담하건대 넌 무조건 죽을 거야.”종사와 대종사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격차가 컸다.이 애송이가 조씨 가문의 거물을 이길 수 있다는 건 조호가 보기엔 한낱 망상일 뿐이었다.“상관없어. 마침 요즘 할 일도 없는데 잘 됐어.”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언제든 너희 집안 그 거물 불러내. 하씨 가문이 공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 좀 해보자고.”“죽고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