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진서준에게 연락했을 때, 진서준은 수련 중이었다.벨소리 때문에 수련 중에 정신을 차린 진서준은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김연아 씨가 왜 나한테 연락한 거지?”진서준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곧 그는 점심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분명 조성우 부부가 김연아에게 다시 한번 진서준에게 사과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일 테다.역시나 진서준이 연락을 받자마자 김연아는 다짜고짜 말했다.“진서준 씨, 저녁에 시간 있어요? 진서준 씨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요.”음식을 대접한다는 건 결국 다시 사과하기 위해서였다.“조해영 씨 일 때문이죠?”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네... 그런 셈이죠.”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그냥 보내줬다는 건 더 따지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조해영 씨가 목숨 귀한 줄 모르고 날뛴다면 모를까.”진서준은 앞뒤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조해영을 봐주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사람을 시켜 조해영이거나 조성우 부부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진서준 씨가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란 거 나도 알아요. 하지만 지유 언니랑 형부가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김연아가 말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저랑 같이 저녁 먹어주는 거로 생각해 줘요. 그래야 저도 지유 언니랑 형부가 안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김연아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어디 가서 먹을 거예요?”“유일 호텔은 어때요? 김씨 일가에서 새롭게 오픈한 호텔이에요.”김씨 일가라는 말에 진서준은 그곳이 김연아가 운영하는 호텔인 줄 알았다.“김씨 일가요? 김연아 씨 집안에서 오픈한 곳인가요?”진서준이 물었다.“당연히 아니죠.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호텔을 운영하겠어요?”김연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영운 그룹 대표 김풍 씨가 운영하는 곳이에요.”진서준은 서울에 비교적 큰 집안인 김씨 일가가 있다는 걸 그제야 떠올렸다.“네, 그럼 지금 갈게요.”“호텔 입구에서 봐요.”전화를 끊은 뒤 김연아는
행인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면서 진서준은 김연아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가서야 김연아는 진서준을 놓아줬다.“혹시 화를 낼 생각은 아니죠? 전 다른 남자들이 제게 집적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예요.”김연아가 자발적으로 말했다.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아뇨. 하지만 연아 씨도 이제는 남자 친구를 찾아야죠. 병이 완전히 나았잖아요.”김연아의 구궁한증은 진서준에 의해 완전히 치료됐다. 그녀는 이제 점점 다른 여자들과 같이 울 줄 알고 웃을 줄 알게 되었다.김연아의 재력과 외모라면 서울시 그 어떤 남자도 고를 수 있었다.“남자 친구를 찾을 때가 되긴 했죠. 하지만 제가 좀 까다로워서요. 가장 강한 남자가 아니라면 싫어요!”김연아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며 대꾸했다.“강하다는 건 어떤 뜻이죠? 설마 모든 걸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모든 것에 가장 강해야 한다는 건가요?”“그건 아니에요. 하나만 잘하면 돼요. 예를 들면 의술이나 무공이 아주 강해서 절 지킬 수 있으면 돼요.”김연아는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두 점은 분명 진서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적어도 지금까지 서울시에서 진서준보다 의술이 강한 사람은 없었다.무공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만월호에서의 결투로 진서준은 큰 명성을 얻었다.진서준도 김연아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서 대꾸하지 않았다.그에게는 이제 허사연이 있으니 다른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생각은 없었다.그렇게 한다면 유지수 그 여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김연아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엘리베이터가 멈춘 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김연아가 예약해 둔 룸으로 향했다.룸에 들어서자 종업원이 말했다.“고객님, 음식은 지금 올리면 될까요?”“네, 지금 올리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종업원이 떠난 뒤 룸 안의 분위기가 조금 답답하고 어색했다.결국 김연아가 먼저 입을 열어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다.“진서준 씨, 앞으로는
진서준은 비록 엄청난 실력을 원했지만 그의 수련 속도로는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수련해도 그 정도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허사연이 일반인이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허사연도 조금씩 수련시킬 생각이었다.진서준은 체맥과 재능이 장철결에 매우 적합하여 구창욱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진서준이 아무리 애원해 봤자 구창욱은 그에게 수련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허사연은 일반인이기에 그녀가 수련을 시작하려면 아주 어려웠다.그러나 구창욱의 말에 따르면 은영과라는 영약이 사람의 체맥을 바꿔주고 일반인도 공법을 수련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진서준이 생각하는 공법은 무도나 술법 대사와는 달랐다.진서준이 수련한 공법은 진짜 선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인생은 고달프고 짧은데 매일 한 곳에서 수련하는 게 뭐 재밌다고 그래요? 차라리 밖에 많이 나가서 인생을 즐기는 게 낫죠.”김연아가 감개하며 말했다.과거 김연아는 구궁한증 때문에 매일 회사를 더 크고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다.그러나 완전한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된 지금, 그녀는 이 세상에 무미건조한 일만 있는게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즐길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차고 넘친다고 생각됐다.진서준은 웃었다.“그럴 거예요.”장철결 수련 단계가 높아질수록 진서준의 수명 또한 증가한다.수명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진서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음식이 곧 올라왔고 진서준과 김연아는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조금 전의 어색함은 사라졌다.두 사람이 있는 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큰 룸 안, 이지성과 그의 친구들이 그 안에 있었다.“지성이 형, 형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누구한테 맞은 거야?”누군가 웃으며 물었다.“뭔 소리야? 지성이 형이 어떤 사람인데 누가 감히 형 다리를 부러뜨린단 말이야?”“설마 교통사고라도 당했어? 그동안 우리랑 같이 밥 안 먹은 이유가 있었네.”그들은 이지성의 다리가 어쩌다가
우소영이 현재 서울에 있었기에 이지성은 아무도 두렵지 않았다.“사실 며칠 전에 감히 제 여자를 빼앗으려는 건방진 자식을 만났거든요.”고수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저번에 초운산 레이싱에서 고수빈은 진서준에게 원한을 품었다.그러나 진서준은 그가 안중에도 없었고 심지어 그의 이름마저 잊었다.“뭐라고요? 그 사람 뭐 하는 사람인데요?”이지성은 그 말을 듣자 눈썹을 치켜올렸다.“별 볼 일 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에요.”고수빈은 일부러 진서준을 깎아내렸다.“그런 사람을 고수빈 씨가 해결하지 못한다고요?”이씨 일가가 망한 뒤로 이지성은 더는 예전처럼 무식하지 않았다.분명 고수빈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 테다.상대방 대신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좋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필요했다.“전 조폭 쪽은 잘 몰라서요.”고수빈이 웃으며 말했다.“이지성 씨가 호스텔 그룹의 성철 어르신과 아는 사이라고 들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좀 구해줬으면 해요.”강성철 얘기가 나오지 이지성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강성철은 진서준의 사람이었기에 지금 강성철을 찾아간다면 스스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지성은 이씨 일가와 강성철이 척을 졌다는 걸 얘기할 수 없었다.“그건...”이지성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고수빈이 어떤 이득을 줄지 기다렸다.고수빈도 이지성의 뜻을 이해하고 곧바로 카드 한 장을 꺼냈다.“이지성 씨, 안에 1억이 들어있습니다. 전 그 녀석이 죽기를 바라는데 가능할까요?”고수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수빈이 1억으로 원수를 죽여달라고 하자 이지성은 내심 놀랐다.그러나 거저 굴러들어 온 복을 그냥 차버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이지성은 곧바로 카드를 거두어들였다.“문제없어요. 돈만 준다면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찾아 이 일을 맡길 테니까요. 참, 그 사람 이름이 뭔가요? 어디서 살고 어떻게 생겼어요?”고수빈은 당황하더니 이내 말했다.“그 자식 이름이 진서준이라는 것
룸 안에 들어서자마자 고수빈은 이지성을 향해 눈빛을 보냈고 이지성은 그의 모습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무슨 일이에요? 말로 해요!”이지성이 짜증을 내며 고수빈을 흘겨봤다.“이지성 씨, 조금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엄청 예쁜 여자를 봤어요!”고수빈은 자리에 앉은 뒤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마치 엄청난 여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말이다.이지성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쳤다.세상 물정 모르는 고수빈이라면 안목이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얼마나 예쁘길래 그렇게 신난 거예요?”이지성이 덤덤히 말했다.“허씨 일가의 허사연 씨 본 적 있죠?”고수빈의 질문에 이지성은 피식 웃었다.“본 적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밥도 먹은 적 있어요.”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이지성의 비위를 맞추며 그에게 아부하기 시작했다.“역시 지성이 형, 허사연 씨 같은 미녀랑 밥도 같이 먹은 적 있다니 대단하네!”“지성 씨가 허사연 씨와 같이 식사한 건 허사연 씨의 영광이죠!”“이지성 씨랑 허사연 씨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던 거 아닐까요...”아부가 과한 것 같아 이지성은 서둘러 그들을 말렸다.혹시라도 이런 얘기가 진서준의 귀에 들어간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다들 헛소리 하지 말아요. 전 허사연 씨랑 그냥 친구예요.”이지성이 서둘러 말했다.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믿지는 않았다.고수빈은 히죽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지성 씨, 제가 아까 본 그 여자는 허사연 씨랑 막상막하였어요. 외모와 몸매 모두 아주 최상이었죠!”고수빈의 말에 다들 구미가 당겼다.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 남자였고 그들처럼 하는 일이라고는 유흥밖에 없는 재벌가 자제들에게 화제는 오로지 하나, 바로 여자뿐이었다.특히 예쁜 여자에 관한 얘기가 가장 많았다.“고수빈 씨, 그 말 사실이에요? 허사연 씨는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인데 그녀와 막상막하라니, 우리 서울에 또 그런 미녀가 있다고요?”“그러게. 고수빈 이 자식 오버하는 거 아니야?”다들 고수빈이
“진서준 씨, 당신이 절 치료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김연아는 반짝거리는 큰 눈으로 진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은 김연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했다.“만약 제가 김연아 씨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면 김연아 씨는 다른 여자들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었을 거예요.”진서준이 솔직히 대답했다.“하지만 진서준 씨가 제 병을 치료한 뒤로 전 더는 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싶지 않은데요.”김연아는 무더운 여름날처럼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게다가 고백과 다름없는 그녀의 말까지 더해지자 진서준은 더욱더 안절부절못했다.분위기는 다시 한번 어색해졌고 룸 안은 조용해졌다.진서준은 김연아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진서준이 제일 처음 만났던 사람이 허사연이 아니라 김연아였다면, 그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김연아였을지도 모른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진서준이 곧바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문밖에서 고수빈 등 사람들은 방 안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곧바로 문을 열었다.상대방이 말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진서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누구세요?”진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자기 몸으로 김연아를 가렸다.“비켜요. 우리는 당신을 만나러 온 게 아니니까!”한 사람이 다가가서 진서준을 옆으로 밀쳤다.진서준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닿기 전 주먹을 뻗어 상대의 얼굴을 때렸다.퍽 소리와 함께 먼저 진서준을 때리려 했던 사람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조금 취기가 올랐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한 주먹에 80kg쯤 되는 성인을 날려버리다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인가!고수빈도 당황했다. 진서준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자 그는 단번에 표정이 바뀌었다.“당신!”원수를 만나게 되자 고수빈은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서준은 고수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초운산에서 고수빈이 진서준을 도발한 적이 있지만
김연아는 원래도 외모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화장까지 하니 허사연보다 조금 더 예뻐 보였다.고수빈 등 사람들은 멍청한 얼굴로 침을 흘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많은 남자가 저열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김연아는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진서준의 뒤에 숨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또 성가시게 했네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 사람들로는 성가시다고 하기도 부족하죠.”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수빈과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무능력한 인간일 것이다.진서준의 모욕에 고수빈 등 사람들은 흉악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 씨, 여긴 당신 혼자예요. 만약 편하게 죽고 싶다면 지금 나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려요.”고수빈 등 사람들은 기껏해야 7, 8명 정도였다.고수빈이 보기에 진서준이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혼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었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네요.”진서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수빈을 바라보았다.고수빈 같은 머리가 텅 빈 사람들이 항상 그의 신경을 긁었다.“X발, 같이 덤벼서 저 자식을 때려죽이자고!”고수빈은 말을 마친 뒤 테이블 위에서 술병을 집어 들어 진서준의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김연아는 진서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술병이 날아오자 참지 못하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진서준 씨, 얼른 비켜요!”고수빈 일행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깨 고소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이미 진서준이 피바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그러나 고수빈의 술병이 진서준에게 날아들기 전, 진서준이 발을 뻗었다.고수빈은 바닥에 드러누워 마치 잘 익은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고수빈은 숨 쉬는 것마저 힘들었다. 표저옫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고수빈 씨, 괜찮아요?”고수빈의 친구들이 서둘러 그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다들 같이 덤비라니까요. 저 자식을 죽이라고요!”고수빈이 분노에 차
“그래요. 그러면 지금 당장 호텔 경비원을 불러올게요. 그들이 와도 당신이 이렇게 건방지게 굴 수 있을까요?”말을 마친 뒤 고수빈은 힘겹게 바닥에서 일어나 경비원을 찾으러 가려 했다.진서준은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룸 안에서 울려 퍼지면서 무언가가 고수빈의 종아리를 꿰뚫었다.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드러났다.룸 안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수빈은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쓰러져 끊임없이 경련했다.“내가 말했죠.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다면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 말라고.”진서준은 의자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복도에 서 있던 종업원이 들어왔다.종업원은 룸 안의 광경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얼른 여기 경비원 불러요. 이 자식이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룸 안의 사람들은 종업원을 보자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곧바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종업원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얼른 702번 룸으로 와요. 여기 싸움이 났어요.”김연아는 상황을 보더니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우리 얼른 가요. 만약 김씨 일가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일이 복잡하게 돼요!”김연아는 김씨 일가가 진서준의 은혜를 입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기에 조급해했다.“무서워하지 말아요. 김씨 일가 사람이 온다면 오히려 내게 사과할지도 모르니까요.”진서준은 포도 한 알을 먹으면서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의 덤덤한 태도에 김연아도 자리에 앉았다.호텔 직원은 진서준의 거만한 말을 듣고 같잖다는 듯이 입을 비죽였다.이내 호텔 경비원이 삼단봉을 들고 진서준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다.“어떻게 된 일이에요?”경비팀장은 피비린내를 맡더니 미간을 구겼다.유일 호텔은 새로 개업한 호텔이라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됐다.“누가 때린 거죠?”겉으로 보기에 단순히 질문하는 것 같아도 사실 경비팀장은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