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빈이 간 후, 허윤진은 또 황은비와 대치하며 화를 냈다.“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얼른 놔!”황은비는 웃으면서 얘기했다.“평생 안고 있을 건데?”허윤진은 뻔뻔한 황은비를 보다가 진서준을 돌아보았다.진서준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난 허윤진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진서준, 얼른 차에 가서 기다려!”진서준도 사실 난처했다. 두 사람은 자기 할 말만 하느라 그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허윤진이 명령조로 얘기하자 진서준은 그저 담담하게 얘기했다.“전 허윤진 씨의 하인이 아닙니다.”진서준이 자기 말에 반박하자 허윤진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래, 딱 기다려.”말을 마친 허윤진은 몸을 돌려 떠났다.사람들은 허윤진이 떠나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황은비도 진서준의 팔을 놓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씨, 혹시 화 나셨어요?”황은비는 그저 허윤진을 약 올리기 위해 진서준의 팔을 잡았다.사실 황은비는 진서준과 허사연이 무슨 사이인지 몰랐다.그래서 본인의 행동이 진서준을 불쾌하게 만들었을까 봐 걱정했다.“괜찮아요. 밑진 것도 없고.”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었다.황은비는 부드러운 소재의 기능성 티셔츠와 속옷을 입고 있었다.그래서 황은비가 그의 팔을 그러안았을 때, 진서준은 황은비의 몸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진서준의 말을 들은 황은비는 약간 부끄러워했다.평소에는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그녀였지만 남자와 이런 접촉은 처음이었다.“그래도 앞으로는 이런 스킨십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진서준이 말을 이었다.“알겠어요.”황은비는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보고 물었다.“진서준 씨는 허사연 씨와 무슨 사이예요?”진서준은 바로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예요.”황은비는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진서준의 입에서 나오는 확답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후 크게 실망했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황은비가 발랄하게 얘기했다.“진서준 씨, 저 진서준 씨한테 반했어요.”그 말에 진서준
아무리 카레이싱이라고 하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그래서 진서준은 시속 80을 넘지 않았다.1분도 되지 않아 진서준과 허윤진의 시선 속에서는 차량들이 사라져 버렸다.“왜 이렇게 느리게 운전하는 거예요!”허윤진은 약간 화가 나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이 카레이싱을 모른다는 건 장난인 줄 알았더니만 진짜였다.“천천히 운전하면 안전하잖아요. 전에 초운산에 와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차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진서준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죽음의 문턱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목숨 귀한 줄 모른다.허윤진 같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사람은 깊이 생각할 줄 모른다.“정말 괜히 데려왔다니까!”허윤진은 진서준을 노려보더니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쐬었다.빵빵!이때 뒤에서 차량의 경적이 들려왔다.허윤진은 호기심에 고개를 빼고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이상하네. 시합이 시작되면 다른 차량은 진입 불가인데. 왜 갑자기 다른 차량이 나타난 거지?”진서준은 경적을 듣고 백미러를 쳐다보았다.그들의 뒤에 있는 건 토요타 차량이었는데 작지만 속도는 빨랐다.순식간에 그 차는 진서준의 옆으로 다가왔다.토요타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안대를 쓴 대머리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네가 진서준이지?”진서준이 그 대머리를 보자 시선이 날카로워졌다.이 얼굴은 TV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바로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을 죽이고 다녔다는 외눈박이 형제였다.다만 진서준은 그들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허윤진은 대머리의 말을 듣고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씨, 저 사람들 알아요?”“외눈박이 형제예요. 신문이나 기사에서 본 적 있을 거예요.”진서준이 얘기했다.허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각했다.“신문이나 기사를 안 봐서 외눈박이 형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네요. 뭐 레이싱 선수라도 돼요?”조수석에 앉은 박동민은 섹시한 옷차림에 예쁜 얼굴을 가진 허윤진을 발견하고 음탕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형, 오늘 밤 잘 즐길 수 있겠는데
“안돼!”허윤진은 진서준이 토요타에 치이기 직전의 모습을 보면서 눈이 붉어졌다.말로는 진서준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어제 진서준이 그녀를 구해준 후, 허윤진은 진서준을 다시 보게 되었다.토요타는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진서준을 향해 덮쳐가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이 차에 치였다면 무조건 죽었을 것이다.쿵.차는 그대로 진서준을 박았다. 하지만 날아간 건 진서준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오른손으로 차를 내리찍었다. 토요타 엔진이 부서져서 산산조각이 났고 기계가 부서져 기분 나쁜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마치 차가 친 것이 사람이 아닌 강철로 된 벽인 것처럼 말이다.차의 트렁크 부분은 아예 들려있었다.하얀 연기가 차에서 뿜어져 나왔다. 에어백에 묻힌 외눈박이 형제도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제 자리에 있는 진서준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차에 치여 날아갈 줄 알았던 진서준이 그 자리에 서 있다니.두 사람은 진서준의 오른손을 보면서 겁을 먹었다.한 손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는 토요타를 진정시켰으니 말이다.오른손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가?설마 진서준이 종사 급이라도 되는 건가?허윤진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딱 벌렸다.한 손으로 차를 막다니!‘저게 사람 맞아?’진서준은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진서준이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외눈박이 형제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손승호는 죽일 수 없지만 이 두 킬러는 바로 죽일 수 있다. 차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얼른 차에서 내려 도망치려고 했다.진서준을 보는 두 형제의 눈에는 비웃음이 아닌 두려움으로 가득했다.손승호는 분명 진서준이 쓰레기일 뿐이라고 했다.“날 죽이러 온 거 아니야? 왜 도망치는 거야?”진서준은 오른손을 거두고 두 사람을 보면서 차갑게 웃었다.박형민이 얘기했다.“너... 도대체 누구야.”그는 한 손으로 차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유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박형민은 서울
바닥에 쓰러진 박형민은 울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허윤진은 그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진서준은 허윤진을 보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차에서 기다려요.”허윤진은 그제야 조수석에 올라타 아까의 장면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진서준이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은 잊고 싶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눈을 감으면 진서준이 한 손으로 차를 막아 나서던 장면이 떠오른다.“나쁜 자식! 그렇게 강하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괜히 걱정하게 만들어 놓고!”허윤진은 뜨거운 두 볼을 만지면서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도로 위에서, 진서준은 박형민의 얼굴을 밟고 차갑게 그를 내려보았다.“네 동생이랑 같이 죽어버려.”그 말을 들은 박형민이 재빨리 빌었다.“제발 용서해 줘. 내 모든 재산을 다 너한테 줄게.”“늦었어.”진서준은 박형민의 목에 발을 갖다 대고 힘껏 밟았다.박형민의 눈에 안광이 사라지더니 얼굴에는 믿기 힘들다는 듯한 표정만 남았다.그는 자기가 서울시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진서준은 박형민은 처리한 후 산 앞으로 와서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그러자 산에 박힌 박동민이 그대로 떨어졌다.박동민은 이미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고 척추는 부러져서 허리가 구부정했다. 진서준의 주먹에 박동민의 두 팔 뿐만 아니라 몸안의 내장까지 거의 가루가 되었다.지금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꽤 대단했다.진서준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체내의 영기를 끌어올렸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밝은 빛이 나와 박동민의 몸에 내려앉았다.그 순간, 박동민의 몸은 빠르게 불타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가루도 남지 않았다.외눈박이 형제를 다 처리한 후, 진서준은 차에 올라탔다.“괜찮아요?”진서준이 차에 타자 허윤진은 고개를 돌려 진서준을 보면서 걱정했다.진서준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날 걱정해 주는 거예요?”진서준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이자 허윤진은 또 화가 났다.진서준에게 있어서 허
가격이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도 훌륭했지만 하민규의 헤네시 베놈과는 차원이 달랐다.게다가 하민규는 그들 중 운전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예전에 카레이싱 시합에서도 그는 몇억이 되는 고급 차를 몰고 매번 1등을 차지했다.하지만 이번에 그는 20억 원에 가까운 헤네시를 몰았지만, 오히려 2위가 되었다.“허윤진과 그녀의 남자 친구!”“뜻밖에도 허윤진의 남자 친구가 차신이었네!”진서준과 허윤진이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황은비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녀는 진서준이 무조건 1등을 할 거라고 믿었다. 왜냐면 그는 진 마스터니까!진서준에게 잔뜩 화가 나 있던 허윤진은 사람들이 숭배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비록 허윤진이 예쁘고 돈도 많았지만 이런 시선은 처음으로 받아보았다.그래서 그녀의 기분은 한껏 들떠 있었다.“여러분, 제가 찾은 보디가드 실력이 괜찮죠?”넋 놓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씩 허윤진 곁으로 다가와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윤진아, 이런 차신 보디가드는 어디서 찾았어? 나도 추천해 줘.”“나도 이렇게 멋있고 실력 있는 보디가드 갖고 싶어.”“윤진아, 우리 이렇게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는데, 네 보디가드 나한테 하룻밤만 빌려줘!”직진 스타일의 몇 여자들은 직접 진서준의 손을 잡고 추파를 던졌다.허윤진은 마치 암탉이 갓난 병아리를 보호하듯이 진서준의 앞에 막아 나섰다.“내 보디가드는 내 거야, 절대 남에게 줄 수 없어!”진서준은 허윤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웃음이 나왔다.비록 어른이지만 그녀의 행동과 말투는 어린아이와 같았다.바로 이때, 하민규의 헤네시 베놈이 옆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자 화려한 옷차림에 잘생긴 얼굴의 청년들이 앞에 나타났다.그러자 허윤진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즉시 흩어져서 하민규에게 길을 내주었다.“운전 실력이 대단하네요!”하민규는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 앞에 있는 허윤진을 무시하고 두 눈을 빤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열광적인
진서준은 하민규가 왜 자기한테 차를 선물하려 하는지 알고 있었다.그는 그저 하민규와 평범한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 금전적으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우정은 일단 돈과 섞이면 금방 변질된다.사람들은 차를 몰고 초운산에서부터 마그레라로 이동했다.마그레라라고 불리는 이곳은 서울시에서 가장 크고 럭셔리한 술집이었다.가장 기초적인 노래방 외에도 재벌 2세들이 즐기는 오락거리가 많았다.하민규 일행이 들어서자, 매니저는 아첨하는 표정으로 재빨리 그의 앞으로 왔다.“민규 도련님, 오늘에는 노래 부르러 오셨어요? 아니면 마사지 받으러 오셨어요?”하민규는 품에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 황금 카드를 꺼내 매니저에게 건네줬다.“제일 크고 럭셔리한 룸으로 안배해 주세요.”제일 큰 룸은 면적이 거의 170평이었고 안에는 평소에 볼 수 있던 오락시설이 전부 설치되어 있었다.서울시에도 유일하게 마그레라만이 이런 룸이 있었다.“이걸 어쩌죠, 민규 도련님. 오늘 제일 큰 룸은 이미 다른 분께서 예약했어요...”매니저는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긴장한 눈빛으로 하민규를 바라보았다.그는 단지 마그레라의 매니저일 뿐, 회장이 아니었다.만약 하민규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다.이 일은 매니저랑 관계가 없었지만, 재벌 2세 같은 사람들은 변덕스럽기에 그지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제일 큰 룸이 없다는 말을 듣자 하민규의 얼굴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제일 큰 룸이 없으니 작은 걸로 하죠.”진서준이 말했다.매니저는 보잘것없는 진서준을 보고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의 생각에는 룸을 바꾸는 것도 하민규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그럼 서준 형님의 뜻대로 할게요. 룸을 바꿔주세요.”진서준이 말했으니 하민규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하지만 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 천하의 하씨 집안의 도련님이 이 젊은 청년의 말을 듣다니!“아직 서서 뭐 하세요?”매니저가 반응이 없는 것을 보자, 하민규는 이마를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지금 바로 안
몇몇 낯선 남자가 들어오자, 모든 사람은 멈추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허윤진의 어깨를 움켜쥔 중년 남자는 흐릿한 눈빛에 새빨개진 얼굴이었다. 분명히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다.그는 방 안의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고 모두 청년들이라는 것을 보자 그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렸다.“이 계집애랑 아는 사이지? 이 년이 글쎄 방금 내 뺨을 때렸어. 이 일은 어떻게 할래?”진서준은 벌떡 일어나 허윤진을 향해 걸어갔다.비록 허윤진이 성질이 더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녀가 괜히 다른 사람의 얼굴을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흉측한 중년 남자가 허윤진에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네가 분명히 나를 먼저 모욕했잖아!”허윤진이 눈시울을 붉히며 반박했다.중년 남자는 이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옷 입은 꼴을 봐. 나와서 몸이나 파는 그런 년이잖아? 몸 파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아직 어리둥절해 있던 사람들은 중년 남자와 허윤진의 대화를 듣고 바로 무슨 일인지 알아차렸다.사람들은 중년 남자를 불쌍하게 바라보았다.허씨 집안은 원래 만만치 않았고 오늘 밤 이 자리는 심지어 하민규가 초대한 자리였다.중년 남자가 허윤진에게 손찌검하는 것은 하민규를 도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한 사람이 하민규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진서준은 허윤진 곁으로 다가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에 얹힌 중년 남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이 손 당장 놓아. 아니면 넌 죽을 줄 알아!”진서준이 자기 손목을 잡자, 중년 남자는 화가 나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중년 남자의 뒤에 있던 보디가드들이 진서준을 에워쌌다.보디가드들의 몸에는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용맹함이 느껴졌다.그들이 따라다녔기에 중년 남자가 감히 이렇게 날뛸 수 있었다.“서준 씨, 구해줘요!”허윤진은 진서준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에는 간절함이 아른거렸다.갑자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룸 안에서 들려왔다.우드득!그러자 중년 남자는 가슴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윤진이 화를 내자, 다른 여자들은 더 이상 진서준을 에워싸지 않았다.그래도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진서준의 연락처를 물어봤다.룸 안의 분위기는 다시 살아났다.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고 함께 게임도 했다.허윤진은 돌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진서준을 보고 입을 삐죽이며 물었다.“서준 씨, 함께 노래 할래요?”“아니요. 괜찮아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녀는 체면이 깎인 듯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서준 씨, 저 여우 같은 여자랑 노래하지 말고, 저랑 노래하는 건 어때요?”황은비가 빙그레 웃으며 진서준의 팔을 껴안았다.“윤진아, 한 남자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몰라.”그러자 허윤진이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그녀의 생각은 단순했다. 그저 진서준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그 말을 전하기가 부끄러웠다.“네가 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뜻이야.”이 말을 들은 허윤진은 몹시 당황했다.“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저런 남자를 좋아해?”그녀는 말을 마치고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을 집어 들고 몇 모금 마시며 긴장한 마음을 감추었다....마그레라의 회장 대기실. 아까 그 중년 남자는 자기 보디가드들을 데리고 안으로 왔다.대기실은 매우 럭셔리하게 꾸며져 있었다. 력셔리한 테이블 뒤에는 캐주얼한 옷차림의 30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품에는 치마를 입은 여자가 앉아 포도를 먹여주고 있었다.이 남자가 바로 마그레라의 회장인 김성진이었다.김성진의 다른 한 신분은 바로 김춘근의 동생이었다.서울시에서 김춘근은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부산시에서 그는 지하 세력의 왕이었다.“양 회장님, 룸에서 여자들이랑 놀지 않고, 저한테 와서 뭐 해요?”김성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싱겁게 물었다.“제 손이 하나 부러졌어요. 놀기는 개뿔! 더 놀다간 이 목숨도 날아가겠어요.”양시후는 진서준이 부러뜨린 손을 들어 김성진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이 말을 듣자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