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헌의 오만한 모습을 본 진서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같은 피가 틀림없네.”손지헌의 모습은 손승호와 다를 바가 없었다.진서준은 차갑게 손지헌을 노려보며 그에게 걸어갔다. “강성철이 오기 전까지 같이 한번 놀아보자고.”그 말을 들은 손지헌은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리고 약간 두려운 표정으로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뭘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날 건드리면 이따가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해줄 거야!”손지헌은 으름장을 놓으며 진서준을 협박하려고 했지만 진서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그건 강성철이 오고 난 후에 볼 일이지.”진서준은 바로 한 손으로 손지헌의 멱살을 잡고 테이블 앞으로 끌고 갔다.“여자한테 술을 강요하는 걸 좋아하잖아? 잘됐네. 난 남자한테 강요하는 걸 좋아해서.”진서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다섯 병의 고량주와 열 병의 와인을 가리키면서 얘기했다.“1분에 한 병씩 마셔. 만약 못 마시면 네 손가락을 하나씩 부러뜨릴 거야. 그리고 직접 네 입에 술을 들이부어 주지.”손지헌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불안해하면서 입을 열었다.“너 미쳤어? 이 술을 다 마시고 나면 거의 죽는 거랑 다름없잖아!”손지헌이 평소에 술을 자주 마시는 건 맞지만, 그의 주량은 센 편이 아니었다.고량주 한 근이 그의 한계였다. 그것도 천천히 마셔야 했다.평소에 그에게 술을 강요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술을 한계까지 마실 일도 없었다.하지만 오늘 진서준을 만난 것은 큰 실수였다.“네 생사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이윽고 그는 한 손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모든 술병의 뚜껑이 동시에 날아가 천장에 박혀버렸다.손지헌은 그 뚜껑들을 보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이, 이게 사람이야?’“일단 고량주부터 시작하자.”진서준이 고량주 한 병을 가져와 손지헌의 앞에 놓았다.“시작.”그 말을 들은 손지헌은 고량주를 들고 병째로 마셨다.두 모금 마셨을 때부터, 손지헌은 목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타들
손지헌의 두 부하는 진작 깨어있었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손지헌을 보면서 두려움에 식은땀을 흘렸다.그들은 귀신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손지헌은 진서준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고 뼈를 다 뽑고 싶은 정도였다.“넌 이제 끝장이야! 강성철이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까!”말을 마친 손지헌은 겨우 바닥에서 일어나 룸 밖으로 갔다.같은 층에서 밥을 먹던 고객들도 인기척을 느끼고 문을 연 채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있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호텔에서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니야?”“쉿, 조용히 해. 저 사람들의 H배지 못 봤어? 다 호스텔 그룹의 사람들이라고!”“저 뒤에 있는 사람 좀 봐! 강성철 아니야?”사람들은 강성철을 보고 놀라서 가슴이 철렁했다.이 호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강성철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다만 그들은 강성철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호텔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설마 호텔에 원수라도 있나?선글라스를 끼고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강성철은 카리스마가 물씬 느껴졌다.“강성철 형님!”손지헌은 강성철 앞에 와서 억울하고도 분통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완전히 망가져 버린 손지헌의 왼손과 얼굴에 가득한 피를 본 강성철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도련님, 감히 누가 도련님을 건드린 겁니까.”강성철은 항상 손씨 가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손지헌의 아버지는 기관의 사람이었다. 조직 사람으로서, 강성철은 기관의 사람을 가장 두려워했다.“저는 그저 저 사람의 부하 여직원들에게 술을 좀 강요했을 뿐인데, 작은 회사의 회장 따위가 감히 날 죽이려고 했습니다!”손지헌은 턱으로 진서준이 있는 룸을 가리키며 표독스러운 눈으로 얘기했다.“성철 형님, 이따가 저 자식의 사지를 잘라버리고 살려두세요.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보여줘야죠. 매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할 겁니다.”사지를 자르는 것은 고대의 형벌 중 하나다.원한이 깊지 않은 이상 그 정
손광진이 그렇게 존경하는 사람에게 감히 시비를 걸다니.이 소식을 손광진이 알게 된다면 복수는커녕,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인 일이었다.정신을 차린 손지헌은 얼른 진서준에게 얘기했다.“진 선생님, 아까는 제가 몰라뵈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제발 저한테 기회를 한 번 주세요! 제 할아버지는 진 선생님을 매우 존경하고 계십니다. 눈앞의 사람이 진 선생님이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이런 불경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겁니다!”손지헌에게서는 아까와 같은 오만방자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애절하게 빌면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손지헌의 두 부하는 그 모습을 보고 멍해서 서 있었다.그들은 손지헌이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비굴해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강성철은 무표정으로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다. 손지헌이 뇌가 있다면 무조건 진서준에게 사과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손지헌은 바로 고개를 돌려 강성철을 쳐다보았다.“성철 형님, 제발 뭐라도 얘기해 봐요!”강성철은 차갑게 코웃음치고 진서준의 귓가에 낮은 소리로 얘기했다.“진 선생님, 손씨 가문의 실력은 약한 편이 아닙니다. 게다가 손지헌의 아버지도 어느 정도의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손 하나를 부러뜨렸으니 앞으로 선생님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이대로 용서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약간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알겠습니다. 그럼 용서해 주죠.”손지헌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돌리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감사합니다,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철 형님! 진 선생님, 제가 진 빚은 두 배로 갚도록 하겠습니다!”진서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손지헌은 이미 반년이나 빚을 졌으니 두 배로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떠나기 전, 진서준은 손지헌에게 경고했다.“내 신분을 손승호에게 알리지 마.”손지헌은 놀랐지만 또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그는 진서준과 손승호 사이의 갈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해서 놀랐다.또 손승호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지헌은 손승호가 왜 입원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누가 감히 형한테 손을 댄 거야!”손승호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의 얼굴이 떠올랐다.이를 꽉 문 손승호가 얘기했다.“내 여자를 뺏은 그런 자식이 있어. 지헌아, 나중에 시간 되면 나 보러 병원에 와.”“알겠어. 지금 당장 갈게.”손지헌은 얼른 운전기사더러 서울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VIP 병동으로 온 손지헌은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은 손승호를 발견했다.그 모습에 손지헌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너도 이런 꼴을 당하는구나!’“형, 이게 무슨 일이야. 누가 이렇게 심한 짓을 한 거야. 형을 이렇게 때려놓다니...”손지헌은 마음 아파하는 표정으로 화를 내면서 손승호를 쳐다보았다. “진서준이라는 범죄자 새끼야!”손승호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얘기했다.진서준이 범죄자라는 말을 들은 손지헌은 살짝 놀랐다.그는 진서준이 옥살이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떠한가. 지금 진서준은 만인지상의 진 선생님이다.“범죄자? 그러니까 겁도 없이 형을 건드리지!”손지헌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하는 척 얘기했다.“형, 내가 당장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그 새끼를 감옥에 처넣으라고 할게.”손지헌은 손승호의 성격을 잘 알았다.그는 이해심이 없고 멍청하며 뒤끝이 길다. 그래서 그를 건드린 사람은 평생 기억하면서 언제 복수할지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진서준이 손승호를 이 정도로 만들어 놓았으니 손승호는 진서준을 감옥에 보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손지헌이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손승호가 소리 질렀다.“전화하지 마! 난 그 자식의 사지를 부러뜨리고 길가에 내던져서 평생 구걸이나 하게 만들 거야. 감옥에 보내는 건 너무 가벼운 벌이야.”손승호의 말을 들은 손지헌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 그럼 다른 사람이라도 찾았어?”손승호는 입꼬리를 올리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그래. 어젯밤에 외눈박이 형제한테 도움을 청했어.외눈
진서준도 자기 뒤에 있는 차량을 발견했다.그 차에 앉은 사람이 손승호가 고용한 킬러라고 생각했다. 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달려오더니 진서준 앞에서 멈춰 섰다.은백색의 마세라티 스포츠카였다.그 차를 본 진서준은 한숨을 돌렸다.“틀렸네. 손승호가 보낸 킬러인 줄 알았더니만.”킬러들은 보통 조용하게 일을 처리한다. 이런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거의 없다.차 문이 열리자 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쭉 뻗은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그 다리와 몸매를 보면서 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이 몸매는 진서준이 아는 여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몸매였다.하지만 상대방이 차에서 내리자 진서준은 굳어버렸다.“허윤진!”허윤진이 왜 여기에... 게다가 이렇게 섹시한 차림으로...허윤진은 차에서 내려 진서준을 돌아봤다.그리고 진서준이 자기 몸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했다.“변태! 어딜 보는 거예요!”허윤진은 10센티미터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진서준 앞에 와서 창피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 숨을 깊이 쉬며 평정심을 되찾았다.“윤진 씨가 왜 여기에... 설마 나 찾아온 거예요?”어젯밤의 일 때문에 진서준은 허윤진 같은 멍청한 여자와 더는 얽히고 싶지 않았다.허윤진과 가까이하면 진서준은 해만 입을 것이다.“뻔뻔하기는. 내가 왜 서준 씨를 찾아와요!”허윤진이 소리쳤다.진서준은 한숨을 돌렸다. 그는 허윤진이 자기를 찾아왔을까 봐 나름 걱정하던 참이었다.“그럼 잘됐네요. 비켜주세요. 집에 가야 해서.”진서준이 한숨을 돌리는 모습을 본 허윤진의 눈에서는 분노가 이글거렸다.아까까지만 해도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의 가슴과 다리를 보더니, 이제 와서 성인군자인 척하는 것이 역겨웠다.“잠깐, 가지 마요!”허윤진은 두 팔을 벌려 진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왜요? 날 만나러 온 것도 아니면서.”진서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윤진을 쳐
평소의 초운산은 조용했지만 오늘은 아주 시끌벅적했다.도로에는 수억 원짜리 스포츠카가 가득 세워져 있었다.반짝이는 네온사인, 신나는 음악,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까지. 없을 것이 없었다.화려하게 차려입은 30여 명의 남녀들이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허윤진을 본 사람들은 얼른 몰려왔다.“윤진아, 오늘 정말 섹시한데? 설마 저 남자한테 넘어간 건 아니지?”“오랜만이네. 허윤진이 남자를 다 데려오고.”“우리 공주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걸 알면 학교의 남자들이 다 울겠어.”사람들의 농담에 허윤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얘기했다.“이 사람은 그저 내 보디가드 겸 기사일 뿐이야. 남자 친구는 절대 아니야!”허윤진의 해명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뿐, 믿어주지 않았다.학교에서 허윤진은 남자와 단둘이 있는 경우가 없었다.게다가 그녀의 스포츠카에 타 본 남자도 없었다.눈앞의 이 남자는 차림이 수수하지만 몸에서 우아한 기품이 흘러넘쳤다.“윤진아, 그럼 말 바꾸기 없기다? 나 네 보디가드가 마음에 들어.”허윤진과 비슷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가 진서준 곁에 와서 그의 팔을 그러안고 몸을 갖다 댔다.허윤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놀란 눈으로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자기 팔에 매달린 여자를 보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그는 황보식의 연회에서 이 여자를 본 기억이 있었다.황은비는 진서준이 자기를 쳐다보자 웃으면서 윙크를 날렸다.황은비는 황정식의 손녀였다. 그래서 저번 연회에 황은비도 참석했었다.“이 여우 같은 계집애가? 얼른 놔!”허윤진은 정신을 차리고 화가 난 얼굴로 황은비를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두 사람 다 대학의 4대 미인이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황은비는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친구가 아주 많았다.하지만 허윤진은 상대적으로 도도하고 시크하며 이성과 대화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허윤진의 욕에도 황은비는 전혀 개
고수빈이 간 후, 허윤진은 또 황은비와 대치하며 화를 냈다.“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야! 얼른 놔!”황은비는 웃으면서 얘기했다.“평생 안고 있을 건데?”허윤진은 뻔뻔한 황은비를 보다가 진서준을 돌아보았다.진서준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난 허윤진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진서준, 얼른 차에 가서 기다려!”진서준도 사실 난처했다. 두 사람은 자기 할 말만 하느라 그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허윤진이 명령조로 얘기하자 진서준은 그저 담담하게 얘기했다.“전 허윤진 씨의 하인이 아닙니다.”진서준이 자기 말에 반박하자 허윤진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래, 딱 기다려.”말을 마친 허윤진은 몸을 돌려 떠났다.사람들은 허윤진이 떠나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황은비도 진서준의 팔을 놓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씨, 혹시 화 나셨어요?”황은비는 그저 허윤진을 약 올리기 위해 진서준의 팔을 잡았다.사실 황은비는 진서준과 허사연이 무슨 사이인지 몰랐다.그래서 본인의 행동이 진서준을 불쾌하게 만들었을까 봐 걱정했다.“괜찮아요. 밑진 것도 없고.”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었다.황은비는 부드러운 소재의 기능성 티셔츠와 속옷을 입고 있었다.그래서 황은비가 그의 팔을 그러안았을 때, 진서준은 황은비의 몸매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진서준의 말을 들은 황은비는 약간 부끄러워했다.평소에는 발랄하고 활기 넘치는 그녀였지만 남자와 이런 접촉은 처음이었다.“그래도 앞으로는 이런 스킨십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진서준이 말을 이었다.“알겠어요.”황은비는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보고 물었다.“진서준 씨는 허사연 씨와 무슨 사이예요?”진서준은 바로 대답했다.“제 여자 친구예요.”황은비는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진서준의 입에서 나오는 확답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후 크게 실망했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황은비가 발랄하게 얘기했다.“진서준 씨, 저 진서준 씨한테 반했어요.”그 말에 진서준
아무리 카레이싱이라고 하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그래서 진서준은 시속 80을 넘지 않았다.1분도 되지 않아 진서준과 허윤진의 시선 속에서는 차량들이 사라져 버렸다.“왜 이렇게 느리게 운전하는 거예요!”허윤진은 약간 화가 나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이 카레이싱을 모른다는 건 장난인 줄 알았더니만 진짜였다.“천천히 운전하면 안전하잖아요. 전에 초운산에 와본 적이 있는데 여기서 차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어요.”진서준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죽음의 문턱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목숨 귀한 줄 모른다.허윤진 같은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 사람은 깊이 생각할 줄 모른다.“정말 괜히 데려왔다니까!”허윤진은 진서준을 노려보더니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쐬었다.빵빵!이때 뒤에서 차량의 경적이 들려왔다.허윤진은 호기심에 고개를 빼고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이상하네. 시합이 시작되면 다른 차량은 진입 불가인데. 왜 갑자기 다른 차량이 나타난 거지?”진서준은 경적을 듣고 백미러를 쳐다보았다.그들의 뒤에 있는 건 토요타 차량이었는데 작지만 속도는 빨랐다.순식간에 그 차는 진서준의 옆으로 다가왔다.토요타 조수석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안대를 쓴 대머리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네가 진서준이지?”진서준이 그 대머리를 보자 시선이 날카로워졌다.이 얼굴은 TV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바로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을 죽이고 다녔다는 외눈박이 형제였다.다만 진서준은 그들이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허윤진은 대머리의 말을 듣고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씨, 저 사람들 알아요?”“외눈박이 형제예요. 신문이나 기사에서 본 적 있을 거예요.”진서준이 얘기했다.허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생각했다.“신문이나 기사를 안 봐서 외눈박이 형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네요. 뭐 레이싱 선수라도 돼요?”조수석에 앉은 박동민은 섹시한 옷차림에 예쁜 얼굴을 가진 허윤진을 발견하고 음탕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형, 오늘 밤 잘 즐길 수 있겠는데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정장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던 엄승현은 정장 남자의 따귀를 맞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이유는 단 하나, 정장 남자의 아버지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었다.호랑이는 르벨 동부 지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엄승현의 집이 좀 잘사는 건 맞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았음에도 엄승현은 감히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비굴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조 도련님, 방금은 제가 많이 실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엄승현은 황급히 와인 한 병을 따더니 단숨에 들이켰다.술이 모두 넘어가자 엄승현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조 도련님, 우리 아버지와 도련님 아버지는 오랜 사업 파트너입니다.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호텔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그러나 정장 남자는 엄승현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네 술 한 잔 얻어먹자고 이러는 줄 알아?”엄승현은 그 말에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조 도련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간단하지. 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가 아는 사이니까 네가 와인 한 병 더 마시면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이놈들은 여기 남아야 해.”정장 남자는 도지아를 비롯한 일행을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그 말을 듣자 모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엄승현 뒤로 숨었다.“승현 오빠, 제발 구해주세요.”여자들은 울먹이며 엄승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들이 엄승현의 동정을 자아냈다.엄승현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정장 남자에게 부탁했다.“조 도련님, 제발 이 애들은 봐주십시오. 다들 제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한 잔씩 올리는 걸로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말이 끝나자마자 정장 남자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그
“나도 너 같은 외지인들 많이 봤거든. 기를 쓰고 우리 도시에 자리 잡으려 하는 놈들 말이야.”갑자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하는 엄승현을 보며 진서준은 질린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이놈 정신 상태가 이상하네.'그때, 도민수가 나서서 말했다.“형, 우리 그냥 딴 데로 갈까요?”“왜 딴 데로 가려고 해?”조금 전 진서준에게 밀린 탓인지 엄승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여긴 귀도파 구역인지라 싸움이 금지되어 있잖아요. 아까 그놈 패버렸는데 혹시 그놈이 귀도파에 일러바치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도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이 말을 들은 도민수 일행도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르벨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동부 지역을 장악한 최대 조직이 바로 귀도파였다.귀도파 조직원은 수천 명이었고 하나같이 잔혹한 놈뿐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게다가 여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생 신분인지라 괜히 귀도파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귀도파 두목 호랑이와 친구거든.”“대박, 승현 오빠 인맥이 대단하네요.”“역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남자다워요. 귀도파 두목이랑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우리 다 함께 승현 오빠를 위해 한잔하자.”모두가 잔을 들며 엄승현에게 한 잔을 권하자 엄승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엄승현은 이때다 싶어 슬쩍 도지아를 바라봤다.자기를 보고 감탄하는 줄 알았는데 도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곧이어 아까 엄승현에게 얻어맞았던 정장 남자가 불같이 뛰어들었다.그리고 남자 뒤에는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잔뜩 따라왔다.이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순식간에 엄승현 뒤로 숨어들었다.“너 진짜 지원군 데려왔네?”엄승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군자는 복수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는 법이야. 네가 아까 날 때린
“승현 오빠, 시원하게 잘 팼어요. 저 개자식 확실하게 밟아버리세요.”“우리 승현 오빠 앞에서 감히 까불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흥, 승현 오빠는 우리 헬스팀 에이스야. 감히 이런 분을 건드려? 주제 파악이 안 돼?”도민수 일행은 정장 남자가 피범벅이 된 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이 분위기에 엄승현도 한껏 고무되었다.“지금 당장 꺼져. 안 그럼 넌 오늘 병원 중환자실 예약이야.”엄승현이 또 술병을 들어 정장 남자를 협박했다.“너 독한 건 인정하지.”정장 남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말 똑바로 해. 그리고 우리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엄승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차기를 날렸고 정장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미안해.”정장 남자가 이를 갈며 억지로 사과했다.“성의가 없잖아, 다시 제대로 해.”엄승현이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죄송합니다!”정장 남자가 억지로 분을 삭이며 다시 외쳤다.“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엄승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이제 꺼져.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또 쓸데없이 까불다간 진짜 뼈를 바스러뜨릴 줄 알아.”정장 남자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더니 떠나기 전 엄승현을 빤히 쏘아봤다.“승현 오빠 최고예요!”“승현 오빠는 저놈 사과를 받아낼 정도로 대단하네요.”“승현 오빠 아직 여자친구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몇몇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승현을 바라봤다.팽팽한 분위기가 풀리자 도지아가 다가와 도민수를 설득했다.“민수야, 이제 누나랑 같이 집에 가자.”“나 안 가. 갈 거면 누나 혼자 가. 나 귀찮게 하지 마.”도민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도지아를 밀쳐냈다.“야, 너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엄승현이 곧바로 다가와 얼굴을 굳히며 도민수를 꾸짖었다.그러곤 다시 다정한 눈빛으로 도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나, 괜찮아요?”“응, 난 괜찮아.”도지아가 예의 바르게
“그만해!”도지아가 황급히 외치며 도민수의 앞을 막아섰다.“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손찌검은 하지 말고요.”“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도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누나를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어이쿠, 여기 또 미녀 한 분이 오셨네?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은데?”정장 남자가 도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도지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말했다.“이봐요, 제 동생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나요?”“이놈이 내 얼굴을 때렸거든. 이걸 어쩌면 좋을까?”양복남이 쌀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내 친구 엉덩이를 만졌잖아. 한 대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도민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내가 그년 엉덩이를 만진 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게다가 그년은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데? 남자 꼬시겠다는 거 아니야?”정장 남자가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그 말을 듣자마자 도지아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이 인간이 도민수의 친구를 성추행했고 도민수가 그걸 못 참아 주먹을 날린 거였다.“이봐요, 당신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제 동생이 참지 못한 거죠.”도지아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양복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가씨, 이놈 누나 맞지? 그럼 내가 화해할 방법을 알려 줄게. 오늘 밤 아가씨가 나랑 즐겁게 놀아주면 아가씨 동생이 날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그 순간, 도민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이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 그 입 다시 놀려 봐? 진짜 네 머리 터지고 싶어?”정장 남자의 선을 넘는 말에 도지아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 경찰이 판단하게 하자.”“경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알고 개소리하는 거야? 그놈들이 감히 날 잡아갈 수 있을 것 같아?”양복남은 코웃음을 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 넌 빠져.”도민수가 도지아를 옆으로